영화, 감독을 말하다 인터뷰로 만난 SCENE 인류 2
지승호 지음 / 수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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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기울어가고 있는 요즈음에 이 책의 리뷰를 뒤늦게 쓴다.

 올해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적으면서 일련번호를 매겨보았다. 마이페이퍼와 DVD 리뷰로 두 군데에 올려서 순서는 왔다갔다 한다. 리뷰 쓰지 않은 영화도 몇 편 있다. 단지 내가 본 순서로 번호를 달았고 지금 백열한 번째 페이퍼가 올라가있다. 올해 내가 가장 의미 있게 본 우리영화는 ‘밀양’이다. 그래서 감상도 절절히 나왔던지 모르겠다. 이론적인 바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감정에 이는 대로 보고 느끼고 나만의 시각으로 보려고 했다. 그리고 좋은 부분을 보려고 했다. 한 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건 권력행사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두려움과 난관을 이기고 결과물을 탄생시킨 지난한 노력이기도 하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랄까. 우선 편견을 유발하기 쉬운 전문가리뷰나 사전 정보를 보지 않고 영화를 먼저 대하려고 했다. 나중에 간혹 읽은 경우는 몇 있다.

 지승호의 <영화, 감독을 말하다>는 전작 <감독, 열정을 말하다>의 계보를 잇는다. 흑과 백의 대조적 표지색깔부터, 비슷한 구성이면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다. <영화, 감독을 말하다>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좀더 적극적으로 맞붙어서 대화를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양쪽이 모두 전작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느낌을 준다. 인터뷰어로서 준비를 많이 한 표가 나는 부분이나 논지의 방향이 좀 어긋난다고 느껴지는 구석이나 모두 상당한 열의가 읽히는 부분이다.

 표지의 얼굴 여섯 중,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만 본 것이 없다. ‘디워’ 논란으로 처음 이름을 듣게 된 감독이다. ‘후회하지 않아’는 제목만 들어보았고 동성애 영화라는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는 동성애자라는 소문이지만 그게 정치적 견지의 동성애자라는 쪽으로 기울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상당히 호감 가는 내용의 인터뷰 내용이 많았고 아직 많이 의외로(!) 순정한 부분을 갖고 사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안에 대해 돌멩이 날라올 걸 예상하고도 솔직한 주장을 펼 수 있는 사람이니.

 저자와 6인의 신(scene)인류가 나누는 대화는 물 흐르듯 가다가 격돌하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는데, 군데군데 밑줄을 그어 두어야할 구절들이 많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예술적 가치관을 엿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삶의 철학을 엿볼 수도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비단 영화라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의미 있는 ‘변명’을 통해 그들의 영화에서 미처 알아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영화가 소통의 어떤 도구라면 이들의 변명 또한 소통의 물꼬를 튼다. 놀라운 것은 영화를 너무 정치적 올바름의 견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들이 털어내는 이야기들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를 그냥 영화로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 많은 해석을 달지도 말고 지나치게 의미심장한 꼬리표를 달지도 않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즐감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역설적 이야기다. 그들도 만들어가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져간다는 신조다.

 각 감독별로 내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와 간단한 내 느낌을 정리해 본다. 

 - 김태용/영화로 경계의 벽을 허물다

이 사람은 영화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선물가게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하는 사람들 생각을 굉장히 많이 바꾸게 만들어준다는 이유로 영화에 점점 빠져 들어간다고 한다. 나쁜 사람이라도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지만 영화를 잘 만드는데 나빠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단다.

<가족의 탄생>을 보았다. 여성성이 강할 것 같은데 의외로 남성성이 강한 내면이 엿보이고 켄로치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외유내강형이랄까. 이것도 나의 오해일지도..

- 박진표/순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게 아니라 원래 뜨거워요. 뜨겁다는 것이 단순하다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정말 단순해요. 왜? 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없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이거 왜 만드니?라는 것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으면 정말 영화를 못 만드는 사람이에요.' 나 스스로. 영화적인 것은 없다,라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서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려면 그것을 제어하려는 기제와 충돌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롤모델도 없고 지향점도 없기 때문에 그냥 내 멋대로 내 할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를 봤다. 다소 눌변인 것 같고, '공부를 안 하니까 표현능력이 자기 생각에만 그친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면이 보인다. 말에 멋을 부리지 않고 정직한 인상이다. 남성적으로 생긴 외모이지만 비교적 여성적인 내면을 가진 것 같다.

- 박찬욱/영화, 벼린 날에 베이다

 예술가의 인생은 그런 거. 묵묵히 일상과 예술이 결합되어 있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예술가, 삶의 기복이 없이 평온하게, 꾸준하게 작품을 많이 만드는 그 어떤 꾸준함, 그걸 바흐에게 제일 배우고 싶단다. ‘엄밀하고 수학적인데 아름답고 감성적인 그런 것이 딱 결합되어 있으니까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죠.’  역시 가장 합리적인 인상을 준다.

 <복수는 나의 것>,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봤다. 그의 영화에서 받은 느낌과 그의 언어가 결합되어 딸깍,하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가장 애정을 보이는 감독이란 느낌이 대화에서도 물씬.

- 이송희일/영화와의 후회하지 않을 굿 로맨스를 꿈꾸다

 ‘저 같은 경우는 동성애는 자본주의 현상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관통해오고 있는 총체적인 가부장제 상황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봐요. 또, 여성운동도 핵심적인 아젠다라고 친다면, 스스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자신이 예전의 소수자주의, 그렇게 얘기했던 것처럼 모든 것 자체를 폭력화하면서 스스로 권력화되고 있는 과정들을 밟고 있는 것은 성찰적이지 못한 운동이라고 봅니다.’ (p239)

 ‘그람시라는 인물을 좋아해요. 헤게모니라는 게 설득과 동의인 건데......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과정들이 결국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평론이나 인디 진영이나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을 설득해서 ’이 이야기를 같이 생각해보자‘라고 하는 화법도 만들어가야겠지요.’ (p247)

<후회하지 않아>부터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보고 있지만.

- 임상수/사회의 위선을 지성으로 까발리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오래전 봤는데 기억이 흐릿하고 <바람남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정원>을 봤다. 인터뷰어의 언어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가장 긴장감이 느껴졌던 대화다. 인터뷰이가 오히려 인터뷰어인 것 같은 상황의 뒤집기에서 짜릿한 통쾌함이 느껴지는 대화가 이어지는데 임상수 감독의 영화만으로는 오해하기 쉬웠던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냉소적인 것 같지만 꽤 인간적이란 생각이 드는 감독이다. 의식적으로 시각의 균형을 잡고 살고자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 같다.

‘386이 예전에 운동권 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간 게 뭐가 나쁜 일이겠어요? 가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그런 상황이 이 영화에 있는데, 임상수가 그걸 비꼰 건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왜 그걸 질문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걸 보고 마음이 찔리는 사람은 찔리는 거고, 그걸 보고 누굴 생각하면서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소한 거죠, 그걸 보고 ’저게 뭐 어때?‘ 하는 사람은 또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전 그것만 보여주는 거에요. 그게 정확히 우리의 삶의 모습인 거고, 그게 옳으냐 그르냐는 사실 제가 얘기하고 있지 않죠. 단칼에 그게 옳냐 그르냐 얘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p294)

- 최동훈/영화계의 타짜로 떠오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인터뷰다. 인터뷰이의 언어가 정연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내용이 쏙쏙 들어오거니와 영화를 즐기는 데에 참고해야할 사항도 많은 편. 가장 자신감에게, 솔직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 같다. 자신에 대한 확신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주제비평에 대한 반감에 공감되는 면이 있다.

‘그렇죠. 실은 이상한 방식이죠. 주인공이 모두를 끌고 가야 되는데, 모두가 주인공을 몰면서 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주제라는 말보다 이야기의 정체가 뭐냐라는 것과 드라마적인 태도가 무엇이냐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이야기의 정체는 굉장히 간단한 문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얘기는 되게 쉽죠. 그런데 이걸 내가 어떤 드라마적인 태도로, 어떤 드라마적인 톤으로 가꿔가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정체가 약간씩 달라져요. 그게 너무 재밌는 거죠. 이렇게 쓸 때 틀리고 저렇게 쓸 때 틀린데,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할까?’ (p385)

<범죄의 재구성>, <타짜> 모두 봤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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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는 모차르트 같은 인터뷰어가 아니라, 계속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살리에리가 되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담백하다. 솔직한 욕심도 읽을 수 있어 더욱 인간적이다. 재미와 감동과 의미를 함께 주는 책인데 읽은 지 좀 되어 두서없이 적었다. 술술 읽히는 대화 속에서 감독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유명한 감독이름과 작품들을 덤으로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의미 있는 읽기가 될 것이다. 영화에 관심이 조금 덜한 사람들에게는 우리 영화에 대한 관심갖기와 즐거운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좀 걸리는 부분이라면 구술로 한 걸 옮겨놓았지만 글로 쓰는 과정에서 문장은 조금 더 다듬었으면 하는 점이다. 하기야 그랬다면 각 감독과 저자의 언어습관이나 어감, 성격이 드러나는 데에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6+1의  '변명'은 충분히 들어볼 만하고, 아름답다.(나답다,라는 어원에 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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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직업병 같이 되어버렸지만 2쇄 찍을 때 필요할라나요^^)

p28 위에서 여섯째 줄 ; 겨우 알릴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인 된 건데요. (-->상황이)

p43 아래에서 일곱째 줄 ; 적다고 안 하진 않겠지 (--> 하진)

p147 아래에서 열 번째 줄 ; 콘스라스트도 아주 좀 낮고 (--> 콘트라스트도)



(덧 ; 이 책을 선물해주신 아영엄마님 감사합니다. 생일선물로 제가 졸라서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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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7-12-2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기야 그랬다면 각 감독과 저자의 언어습관이나 어감, 성격이 드러나는 데에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그리고 틀린 글자 고치기 위한 2쇄는 들어갈 수 있을른지 모르겠습니다.

프레이야 2007-12-22 10:14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읽은 즉시 써야 되는건데 한참 지나서 쓰려니 영 두서가
없네요. 저자의 바람대로 의미있는 읽기였어요. 3탄도 기대합니다.^^
감독들이 생각하는 영화란, 감독이란, 그리고 배우에 대한 생각까지도
읽는 재미가 솔솔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