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배냇저고리 높새바람 17
하은경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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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는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갓 구워진 빵처럼 고소하고 신선한 풍미가 느껴지는 이런 동화집을 만나면 즐겁다.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초콜릿을 담은 작은 상자 같기도 하다. 고학년 단편집으로 11편의 작품을 실어놓았는데 읽어보면 4학년 정도의 초등학생이라면 읽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고학년아이들이 읽기엔 좀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각 작품의 끝에 작가노트를 적어두었는데 그걸 읽는 재미가 있다. 소소하게 지나가버린 유년의 기억들이 세월을 먹고 더 또렷이 들고 일어나 성인이 된 작가에게 동화의 소재가 되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그 정서를 이야기 속에 녹여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솜씨가 모두 감동적이다. 기발한 발상만이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작고 하찮게 느껴질 만한 에피소드를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서 오래도록 묵혀놓았다가 내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애정이 가는 작품들이다.

 한 편 한 편 인상 깊었지만 그중 몇 편에만 간단히 주관적인 감상을 적어두고 싶다.


 - 까탈마녀에게 무슨 일이? (강정연)

 여자아이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될 만한 소재를 남동생의 눈으로 풀어놓았다. 엄마도 없는 집의 오누이, 일이 바쁘고 고된 아빠, 그리고 따로 사는 이모. 이들이 서로 보이지 않게 나누는 사랑의 대화들이 다 들리는 것처럼 알콩달콩 마음이 푸근해지는 작품이다. 사건을 숨겨두고 독자로 하여금 궁금해 하게 하는 솜씨 또한 감탄스럽다. 유쾌하고 발랄한 웃음이 풋 하고 터져나오게 한다. 작가이름을 보니 ‘시사 in’에서 ‘어린이책 부문 올해의 책’으로 꼽은 동화 <건방진 도도군>의 작가다.

 - 난 꼭 유명해져야 돼 (김려령)

 보육원의 고아와 평범한 아이가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는 감정이 건강하다.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입양문제를 들고 나왔고 칙칙하지 않게 이야기 한다. 섣불리 어떤 결론을 내리지도 않는다. 장점은, 씩씩한 4학년 남자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여리기도 하고 씩씩하기도 한 심성을 잘 보여준다. 흠이라면, 결미의 한 문장인데 도식적이란 생각이 든다. 불필요하다기보다 오히려 아이의 착한 마음을 어른이 과잉해석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태양이 웃음소리가 운동장에 왕왕 울렸다.’로 끝났으면 더 좋았겠다.

 - 곰 인형의 장례식 (김영혜)

 아주 독특한 발상이다. 뒤집기의 쾌거가 주는 여운이 길다. 일상의 판타지 같기도 한 설정인데 읽어가다보면 심각한 분위기를 엎어주는 유머와 반전이 돋보인다. 죽음을 또 다른 시작으로 본 점, 슬픔을 기쁨과 환희로 승화한 점, 사물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작가의 철학이 잘 녹아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김영혜의 작가노트는 그런 생각들을 좀더 자세히 풀어놓았는데 의미심장하게 읽어볼 만하다. 진지한 내용을 이렇게 동화 속에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녹여 놓았다. 그 솜씨가 부럽다.

 - 바다로 간 로또 할아버지 (김혜연)

 이적의 노래 가사가 나온다.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가족들이 제각각 잘못한 일을 떠올리며 고민하다가 반전에서 배꼽 잡는다. 홀로 되었고 가진 재산도 없는 노인과 식구들의 마음이 과장되지 않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마음의 부채는 어느 가족이든 서로 갖고 사는 것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미워죽겠다는 듯..

 - 개구리 (선자은)

 따돌림과 생명에 대한 예의를 잘 섞어 녹여놓았다. 가해를 하는 아이들도 어쩌면 모종의 두려움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자기 자신에 대한, 캄캄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 행동으로 인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목숨들. 세상에 흔한 일. 그것은 폭력과 그것으로 인한 죽음인데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목숨들이다. 세상의 모든 개구리들에게 속죄하듯 글을 풀어냈다는 작가의 변이 신실하게 느껴졌다. 신선한 충격이다.

 - 공주의 배냇저고리 (정승희)

 엄마의 딸의 이야기. 생활 속의 작은 갈등이 풀어지며 딸이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유쾌한 문체와 함께 재미나다.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엄마도 한때는 다 그런 ‘딸’이었다. ‘그런 딸’은 또 그런 ‘엄마’가 될 것이다. 내말 안 듣고 오늘아침에 머리 안 감고 학교 간 작은딸, 먹는 것 좋아해서 ‘공주’처럼 통통한 우리집 통통공주, 사랑한다!!

 - 고추 따 간다 (최은영)

 양성평등의 문제는 동화의 소재로 종종 나오는데 이 작품은 이야기 방식이 거침없고 자연스럽다. 등장인물과 그 관계도 유쾌하게 설정해 두었다. 어릴 적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느꼈던 감정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남동생만 두둔하던 외할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한 내가 아니었나. 5학년 쯤이었지. 그런 여학생이 나오고 그 남동생이 나오는데 그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남아선호 사상에 제일 많이 물들어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등장시키는데 여기선 두 분의 성향이 각각 다르다.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을 바꾸게 되는지 그 계기를 보는 일 또한 무척 즐겁다. 순진한 남자아이(손자)의 눈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결미에 보면 결코 순진하지만은 않은 엉큼한 요 녀석, 마음에 든다. 

 

이 외에도 생활 판타지적인 이야기 몇 편도 기억에 남는다. 열 한 편 모두 색다른 느낌과 공감을 준다. 하나씩 까서 먹는 초콜릿처럼. 야곰야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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