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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싹 ㅣ 내인생의책 그림책 5
스티브 브린 지음, 강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1월
평점 :
기분좋은 그림책을 만났다. 마음이 소란하고 복닥거리면 그림책 처방을 권한다. 단순한 글과 그림이 주는 정신적 위로가 생각보다 크다. 간결하고 꼭 필요한 말과 글, 장식을 벗고 소박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한 그림과 색채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좀 더 단순해지라고 그러면 웃을 일이 많다고 “오잉~” 하고 까불어주는 것 같다. “오잉”은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어린 개구리의 대사다. 번역부터 아주 재미있게 옮겨 놓았다. 주인공 ‘찰싹’의 개구쟁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원제는 ‘Stick’. ‘찰싹’은 잘 어울리는 우리이름이다. 개구리 ‘찰싹’은 뭐든지 자기 힘으로 혼자 하겠다고 설치고 나오는 서너 살 아이의 모습이다. 위험한 짓은 못 하게 해도 꼭 해보고야말고 아무 거나 못 먹게 해도 아무 거나 입으로 먼저 가져가는 아이. 그걸 일일이 통제하려다보면 엄마는 늘 아이와 전쟁을 치르듯 하루를 보내야한다. ‘찰싹’의 엄마는 느긋하게 앉아서 미소 짓고 바라본다. 가장 바람직한 엄마의 모습이다.
‘찰싹’은 혼자 해 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아직은 서툴다. 뜻밖의 시도로 뜻밖의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어린 아이가 무작정 호기심에서 집을 나가 앞만 보고 걷다보면 집과는 더욱 멀어지는 일들이 흔히 있다. 내 가출 사건이 떠오른다. 세 살적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엄마에게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더란다. 내가 집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던 덕에.
‘찰싹’은 낯선 세상으로 모험의 길을 떠나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예상치 못한 모험만큼 그 교통수단이나 가는 곳이 흥미롭다. 늪의 풍경과 갖가지 동물들이 멋지게 그려져 있고 그곳을 벗어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모험을 하게 되어서도 다음 장에 벌어질 장면이 늘 예상을 뒤엎는다. 전체적으로 ‘찰싹’의 빠른 이동을 보여주기 위해 속도감이 느껴지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생동감 있다. 속도감을 더 강조해야할 부분은 장면을 분할하여 그려 넣었다.
이런저런 위험한 일도 잘 피하고 하루 동안의 모험이 끝났다. 해가 저물 무렵, 찰싹은 이제 홀로 되었다. 어린 ‘찰싹’에게는 처음 마주하는 낯선 장소, 낯선 시간이다. 차분한 인상을 주면서도 활기를 잃지 않는 색감이다. 여기서도 글은 거의 없고 호들갑스럽지 않다. 놀을 바라보는 ‘찰싹’의 뒷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있는데 그 덩치가 아주 커 보인다. 이제 ‘찰싹’은 모험을 떠나기 전의 어리기만 한 개구리가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정말 ‘찰싹’은 다 컸을까. 겨우 하루 동안의 모험으로? 돌아온 ‘찰싹’은 여전히 개구쟁이, 고집불통이다. 이 그림책에게 눈여겨볼 점이라면 촐싹대는 ‘찰싹’의 곁에 든든히 붙어있는 대상이다. 기다리고 있다가 포근히 맞아준 엄마개구리와 낯선 곳에서 방황하는 어린 영혼의 귀가를 도와준 타인. 모험과 성장은 자신의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우리를 키워준 어떤 대상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할 수 없어도 그 힘으로 우리는 자라는 것이다. 우리를 키우는 건 불안정한 시간과 공간, 예상치 못한 사건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타인의 보살핌이다. 누군가 나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우리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작가, 스티브 브린은 직접 하지 않는다. 얼마나 유머러스하고 지혜로운 방식인지, 마지막 장면을 보면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흐뭇한 웃음을 준다. 돌아온 ‘찰싹’에게서 어떻게 그런 환한 빛이 나게되는지. 작가는 엉뚱한 척, 모르는 척, 돌려서 농담을 거는 것 같다. 사람은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빛나는 존재다. 결코 혼자서는 될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나는 그렇게 빛을 주는 존재로 배경이 되어도 좋겠다.
그림도 글도 유쾌한 그림책이다. 그림만 재미있게 봐도 상관 없지만 그림독해력이 있는 아이라면 글이 적으니 그림에서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그림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를 더해서 볼 수 있는데, 가령 거울이나 그림자를 이용하여 '찰싹'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번 더 반영해 준다. 하물며 자동차 타이어의 스틸 부분에 그 모습이 다 비칠 정도다. 섬세한 시선이다. 그런 부분에서 그림책을 보는 이는 '찰싹'이 혼자 가고 있지만 누군가가 늘 따라다니며 보살핌과 관심의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안도감! 이건 그림책을 보는 사람(아이건 어른이건)이 얻고자하는 가장 큰 미덕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동물들의 표정 또한 특징을 살려 재치있게 그렸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속도감이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점은 아이들의 성미와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