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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지막 여름 ㅣ 고학년을 위한 반딧불 동화 3
유타 리히터 지음, 이지영 옮김, 문지현 그림 / 해와나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그래도 뭔가 믿을 만한 게 필요하잖아. 그런 게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야!”(p132)
주인공 안나가 유일한 남자친구 다니엘에게 하는 말이다. 열셋의 나이에 생각지도 못한 슬픔을 맞아야 하는 친구와 그 모습을 보며 많은 변화를 겪는 안나. 그 변화는 아무런 표정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물밑에서 은근하고 깊게 일어나는 변화다.
책제목 <우리들의 마지막 여름>은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3개의 단어로 조합된다. 그것을 키워드로 보고 책을 읽어도 좋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우리들의’, 죽음을 말하는 ‘마지막’. 그리고 길게만 느껴졌던 유난히 더운 ‘여름’은 호된 열병과도 같이 사람을 단련시키는 시련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이란 말은 역설적으로 희망적이란 것을 책을 다 읽고 나면 느낄 수 있다. 드러나는 아픔과 드러나지 않는 아픔이 자연스러운 감동으로 이어지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서정성이 돋보인다. 아름다운 풍경묘사와 함께 계절을 읽을 수 있는 미려한 문장이 잔잔한 감흥을 준다. 하지만 마냥 감상적이지 않고 새로운 인식으로 이끌어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안나와 다니엘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견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죽음을 앞에 둔 사람 곁에 가기조차 꺼리는 안나와는 달리 죽음 앞에서 분노하고 그것을 이겨보려고 애쓰는 다니엘은 결국 신에 대한 생각에 이른다. 두 사람이 나누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해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 성장에 의미있는 대화다. 하느님이 없다면 기도를 해도 소용없는 것이고 우리가 믿거나 안 믿거나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말처럼 수호천사도 기적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믿을 만한 게 필요하다는 안나의 말에 다니엘은 창꼬치를 내세운다. '꼬맹이들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인‘ 수호천사나 기적 따위에 매달리느니, 창꼬치 신에게 도전해 보겠다고, 창꼬치를 잡기만 하면 분명 엄마는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 다니엘. 창꼬치를 잡고 칼로 머리를 찌르고 심장을 꺼내 한 손에 쥐어도 펄떡대는 그 물고기의 생명력을 믿고 싶은 다니엘을 점점 이해하게 되는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와 미려한 문장에 실은 인물들 내면의 움직임이 마음으로 전해지는 책이다.
결말 또한 식상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공감되며 가슴 뻐근한 감동이 절제된 감정으로 전해온다.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른들과의 심적 갈등, 이성친구와 동성친구 등 교우관계,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과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생각, 그리고 호된 시련을 두고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마음의 조건들. 아이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세계가 조금은 좁혀져가는 순간의 기쁨 또한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경험이다.
역시! 우리는 뭔가 믿을 만한 게 필요하다. 그런 게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하지만 다니엘이 다시 창꼬치를 잡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해 여름 그 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