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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 해 ㅣ VivaVivo (비바비보) 2
O.T. 넬슨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10월
평점 :
뜨인돌 청소년소설 시리즈 Viva Vivo(에스페란토 어로 살아있는 삶) 제 2권이다. 비교적 독특한 상황 설정과 인간성에 비춰볼 때 대체로 그럴 법한 사건이 위기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결말은 안정권으로 맺으면서 다소 열려 있는데 어느 정도 독자에게 맡겨두면서도 방향은 정해주는 쪽이다. 원제는 'The girl who owned a city'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자아이가 도시를 하나 세우고 자기 소유로 하여 그것을 지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렇게 단순할까. 일단 열두 살의 리사가 그런 야심을 갖게 된 동기는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아주 끔찍할 수도 있는 일에서 출발한다. 미래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까. 아무튼 그 동기는 자의가 아니라 재해다.
열두 살이 ‘기성’세대가 되어야하는 어느 나라(혹은 도시)는 지구상 과거, 현재, 미래에 있었지도, 있지도, 있기가 쉽지도 않을 공간이다. 하지만 그 공간은 과거와 현대의 어느 시간에나 속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폐쇄된 공간에서 열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펼치는 사건에서 많은 부분 현실 속의 이야기로 읽히는 부분과 깨닫게 되는 점들이 있다. 절정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들리는 교훈조의 구절이 좀 걸리긴 한데 리사가 다섯 살 동생에게 들려주는 침대머리맡의 이야기 식으로 풀어놓아 그나마 그런 부분을 좀 요령있게 넘어가려는 것 같다.
삶의 가치를 획득해야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삶의 가치란 개개인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리사를 통해 작가가 말하는 삶의 가치는 ‘도전’과 ‘생각’으로 요약된다. 생필품이 없어 굶어죽을 수도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리사만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생각으로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 자신과 동생을 지키고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움을 몰아낸 것이다. 아이들이 만든 갱단에 맞서 도시를 탈환할 수 있었던 힘도 두려움 없이, 얻은 것들을 지키려는 의지 덕분이었다.
눈여겨 볼 점은 리사가 많은 아이들의 리더가 되어 회의를 열어 논의를 모으고 강력한 힘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발휘하는 능력이다. 책임감이 투철하고 힘든 일에 솔선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구체적인 보상을 해서 얻어냈다. 다섯 살 어린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맡기고 자립심과 자생력을 길러주었다. 그저 나누어주는 식의 도움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찾고 키운 것(도시)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자 다른 아이들은 비난했지만 리사는 자신의 소유권을 논리적으로 납득시켰다. 소유권의 문제는 어린 아이들이 ‘정말로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장난감’을 하나라도 가지고 싶어 하는 심리를 리사가 읽어내는 것으로 다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리사는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생각’을 하는 자신과 달리 ‘생각’을 하지 않는 다른 아이들을 이상하게 여겼다. 물론 연날리기에 좋은 5월을 그냥 넘겨버린 건 아깝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코앞에 있으니. 갱단에 맞서 싸우고 성을 지킬 의용군을 짜고 협력과 전략으로 3개의 갱단을 무릎 꿇리는 리사가 이 책이 보여주는 멋진 리더상이다. 여자라고 얕보면 큰일 나는 광경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어 통쾌하다. 감상적이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장치는 아예 없다.
리사가 농장이 아니라 학교를 도시의 근거지로 삼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히 넓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을 무척 기뻐했다. 아이들만 사는 도시 글렌바드를 세운 리사는 ‘좋은 걸 얻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그걸 지켜나갈까’를 궁리한다. 그리고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부분은 잊어버리려고 한다. 대신 나쁜 일이 생겼을 땐 그걸 어떻게 좋게 바꿀까를 생각할 것이다. 지도자 리사의 행보에 두근거린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리사가 어떻게 권력을 분산하여 참다운 행복의 도시를 꾸려갈지. 리사 혹은 리사의 도시는 현실의 아이들이 흔히 겪는 학교(폭력)문제를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지혜’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또한 갱단의 두목과 그 수하에 있는 애들의 심리 또한 두려움에 근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간간히 만화처럼 들어가 있는 삽화와 지도가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과 주제의 무게를 덜어준다.
읽으며 아쉬웠던 점을 몇 꼽아야겠다.
1. 위기를 극복하고자 동분서주 하는 리사는 자신을 일찍이 미국 식민지 정착민에 빗댄다. 순례자라고 칭하는 그들에 비해 내이티브 아메리칸들을 인디언이라고 칭하며 서술하는 아래의 구절은 거슬린다.
- 그들 역시 우리처럼 고생을 했다. 인디언들의 침략에도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 인디언들은 아마 탐 로건의 유치한 협박보다 훨씬 더 끔찍했을 것이다. 순례자들이 자유를 찾아 바다를 건넌 이유는 왕과 독재자들에 짓밟혀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자유가 더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p75)
2. ‘사실은/사실’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진 건 근래 들어서다. 이 책이 쓰인 건 30여년 전이지만 우리나라 초판 1쇄는 올해 10월10일이다. 그래서인지 ‘사실은’이란 말이 자주 발견된다. 나는 이 말에 과민하게 두드러기가 돋기 때문에, 원문에도 ‘사실은’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었던 것인지 역자의 언어습관으로 들어간 것인지 의문이 난다.
예를 들면,
- 장난감이 몇 개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차지하려고 항상 싸우곤 했다. 질조차도 사실은 그 때문에 종종 화를 내곤 했다. ...... ‘나눔? 어쩌면 그거야말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몰라.’ 리사는 어느 날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리사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사실 장난감 개수만 따져보면 한 명당 두세 개는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지만,..... (p145)
---> ‘사실은/사실’을 빼고 읽어도 내가 보기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오히려 깔끔하다.
3. p221 중간쯤
- 리사는 아까 집어던진 책을 다시 집어서 순환계를 그린 화보를 살펴보았다. 리사는 책과 리사의 팔을 번갈아서 보고 또 보았다.
---> 내용상 밑줄 친 ‘리사는’은 ‘질은’의 명백한 오역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