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 속 그 못가에서 동무동무 끼리끼리 샘터어린이문고 7
임홍은 지음, 김종도 그림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아이가 어릴 적 그러니까 10년 전인가, 동화읽는어른 모임 행사 중 빛그림 공연을 처음 보았다. 그림책 ‘똥벼락’을 보여줬는데 음성도 구수하고 익살스럽게 연출되기도 했지만 하얀 슬라이드에 표현되는 검은 그림자 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빛살창으로 비치는 그림자처럼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 이후, 모 대극장에서 한 그림자 연극에도 데려갔다. ‘피터와늑대’ 그리고 ‘오필리어의 그림자극장’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는 그때 참 흥미로워했다. 나도 검은 형체와 실루엣만으로 동작하는 인물들과 배경에 묘한 자극을 느끼며 마음의 현이 훨씬 섬세해짐을 느꼈다. 얼마 전 작은 딸에게는 ‘프린스 & 프린세스’라는 그림자영화 디비디를 사줬더니 재미있어했다.

 아이들과 내가 그림자에 매혹되는 까닭은 잘 모르겠지만 보편적인 감성이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우는 맛도 있을 테고 음성연출과 음악효과에 더 많이 감각할 수도 있을 테다. 요즘, 아이들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 지나친 상징이나 교조적인 말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의 그림들 속에서 이런 글과 그림은 어쩌면 너무 수수해서 눈에 띄지 않는 시골길섶 한 구석의 들꽃 같다.

 글쓴이 임홍은은 북한작가로서 이 소박한 동화의 원제는 <동무 동무>이며 1937년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글이다. 그래서 새로 나온 책에서도 그대로 ‘동무’라는 말을 써서 ‘친구’보다 훨씬 정겹게 들린다. 그린이 김종도의 그림은 여러 좋은 어린이책(저 중 고학년)에서 두루 볼 수 있다. '겨레아동문학선집 1'- <엄마 마중>(보리 출판사)에 그린 수수한 흑백 삽화는 김동성의 그림으로 환하게 빛나는 그림책 <엄마 마중>(소년한길)과 비교된다. 물론 김동성의 그림은 그대로 매혹적이다. 그외에도 익살스럽게 그린 '화요일의 두꺼비'나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그린 '전쟁과 소년'의 삽화도 이야기를 돋보이게 한다. 김종도는 특히 토속적인 배경과 우리 아이들의 둥글고 납작한 얼굴을 꾸밈없이 사랑스럽게 그리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동물을 주요 등장인물들로 하는데 각 동물의 특징을 잘 살려 실루엣을 그렸다. 그리고 죽죽 뻗은 나무와 하늘거리는 나뭇잎들, 여린 풀들의 살랑대는 소리까지, 작은 정령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숲속 풍경을 검은 그림자들이 담고있다. 배경에는 수채화를 엷게 풀어 단색으로 채색한 또 다른 그림자들을 두어 검정색과 조화로운 그라데이션를 이루는데 단조로운 색감이 깔끔하다. 뭔가 이야기를 잔뜩 품고 있는 것 같은 숲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곱상한 테두리를 한 액자 안에 담겨 있는 느낌이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성격과 재주를 갖고 살고 있는 네 친구들이 어떻게 우정을 만들고 '그 숲 속, 그 못가에서' 언제나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않게 되었는지, 술술 읽히는 쉬운 문장과 분단 이전의 우리말을 재미나게 살려놓은 말맛에 빠지게 된다. 이야기 줄거리는 소박하다. 흔히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은 그런 귀설지 않은 이야기다. 낯선 것만 찾을 것 같은 아이들은 친숙함과 익숙함에 흥미를 더 느끼는 경향이 있다. 사슴의 뿔 위에 앉은 까마귀, 사슴 등에 앉은 생쥐 그리고 사슴 발 아래서 뒤돌아보며 목을 쭉 빼고 있는 거북이. 이들이 어떻게 나뭇꾼을 따돌리는지,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같이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골탕 먹이는 네 명의 친구들이 발휘하는 기지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발랄한 빛이 난다.

 일제시대에 쓰인 점을 봐서 동물을 잡으려드는 나뭇꾼은 일제의 폭압을, 힘없지만 힘을 모으는 동물들은 우리민족을 비유한 건 아닌지. 저학년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깊이 하여 이야기의 재미와 흥겨운 감동을 반감할 필요는 없기도 하지만, 3학년 쯤이면 조금 들려주는 것도 좋겠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자 그림 중 내가 느끼기에 가장 강렬한 그림이 하나 있다. 강한 보색대비를 이루는 검정과 노랑 배합의 그림으로 깊이 패인 함정 위로 사슴의 한쪽 뒷다리가 끈에 묶여 함정 위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사슴이 얼마나 놀라 울부짖고 있는지. 글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괜히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어떤 장면을 최고로 꼽는지 주거니받거니 이야기 해 보면 아이들의 정서를 감지할 수도 있다.

 꾸밈없고 고운 우리말맛이 정겹게 살아있는 글과 한편의 빛그림 연극을 선사하는 이 책은 독후에 극본으로 간단히 써서 역할극을 해보아도 좋은 활동이 될 것이다. 물론 그냥 소리 내어 읽어도 재미나다. 초등 1학년에서 3학년까지 두루 읽을 수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8-21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1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5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