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置換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 P20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데이브 힐턴이 톱타자로 진구 구장에서 아름답고 날카로운 2루타를 날린 그 순간에 - P46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점이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 자신의 체험에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P105

내 생각에는(이라고 할까, 그렇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런 자유롭고 내추럴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쓰는 소설의 밑바탕에 자리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동력이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엔진입니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순수한 내적 충동이란 그 자체의 형식이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습득해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P109

@@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P110

소설가로 적합한 사람은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라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 결정할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쑥 튀어나오면 얘기가 백팔십도 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식으로. - P120

통상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획득하고,
일반적으로 묵직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그 무게를 잃고형해만 남습니다. 지속적 창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시간의 도움을 얻어 그런 과격한 역전을 몰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키포인트입니다. - P137

내가 경애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그런 ‘망치질‘을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라고. 그 기분,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것과 똑같은 일을 나도 수없이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 더 고치면 도리어 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라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는 쉼표를 빼고 넣는 것을 예로 들어 그 포인트를 적확하게시사한 것입니다. - P164

‘근육은 빠지기 쉽고 군살은 붙기 쉽다‘는 것이 우리 몸의 하나의 비통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감퇴를 보완하려면 체력 유지를 위한 정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불가결합니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 P183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tell a story입니다. 그리고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입니다.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큼직한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가 되는 지하부분도 깊숙이 파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치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그 지하의 어둠은 더욱더 무겁고두툼해집니다. - P188

작가는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 즉 소설에 필요한 양분을 찾아내 손에 들고 의식의 상부 영역으로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태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전환해나갑니다. 그 어둠 속에는 때로는 위험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때때로 다양한 형상을 취하며 사람을 미혹시키려 합니다. 또한 표지판도 지도도 없습니다. 미로같은 곳도 있습니다. 지하 동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방심하면 길을 잃고 헤매고 맙니다. 그대로 지상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어둠 속에는 집합적 무의식과 개인적 무의식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태고와 현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는그것을 해부하는 일 없이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데 어떤 경우에그 패키지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 같은 깊은 어둠의 힘에 대항하려면, 그리고 다양한 위험과일상적으로 마주하려면 반드시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한지 수치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하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강한 편이 훨씬 더 좋겠지요. 그리고그 강함이란 타인과 비교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강함이 아니라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강함을 말합니다. - P189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입니다. 실로 재미라고는 없는, 말 그대로 산문적인 결론인지도모르지만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비판을 받든 상찬을 받든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든 아름다운 꽃 세례를 받든 나는 아무튼 그런 방법으로 글을 쓰는 것밖에는 그리고 또한 그렇게 사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P195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경향이 어느 한쪽으로기울면 인간은 늦건 빠르건 반드시 다른 한쪽에서 날아오는 보복(혹은 반동)을 받게 됩니다. 한쪽 편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육체적인physical 힘과 정신적인 spiritual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이건 대단히 심플한 예지만, 만일 충치가 욱신욱신 아프다면책상을 마주하고 찬찬히 소설을 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당신에게갖춰져 있다고 해도, 만일 당신의 육체가 물리적인 격한 통증에끊임없이 습격당한다면 집필에 의식을 집중하는 건 일단 불가능하겠지요. 우선 치과 의사에게 찾아가 충치를 치료하고ㅡ즉몸을 합당하게 정비하고 그런 다음에 책상 앞에 앉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너무도 단순한 이론theory 이지만 이건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 몸으로 배운 것입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각각 서로를 유효하게 보조해나가는 태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 P199

@@소설이란, 스토리란, 남녀와 세대 간의 대립이나 그 밖에 다양한 스테레오타입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고 그 날카로운 칼끝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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