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일에 대하여 - 뤽 다르덴 에세이
뤽 다르덴 지음, 조은미 옮김 / 미행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민자와 소수자들의 삶에 관심 기울이고 특히 고통받는 아이에게 조건 없는 무한 사랑을 주는 어른들을 꾸준히 보여준 다르덴 형제. 10여 년 전 <자전거 탄 소년>을 찍으며 써내려간 뤽의 철학적 사유. 그들 영화를 보며 받게 되는 위로와 구원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반복하여 쉼표를 찍게 만든 생각들, 오래 다듬으며 고심하여 언어를 고른 흔적이 보인다. ‘어른’다운 통찰에 숙성한 시적 문장들, 온건하면서 명철하다.
저자인 동생 뤽 다르덴은 철학을 전공했고 형 장 피에르 다르덴은 리에주 예술학교에서 조연출과 실험연출을 전공했다.

타인의 절대적 사랑은 또 다른 보호막, 두 사람이 하나로 존재하는 보호막, 갓난아이가 살기를 원하게 만드는 보호막, 죽는다는 두려움을 점차 삶의 행복으로 바꾸며 죽음을 - 향한 - 존재로 만드는 시간을, 삶을 - 향한 - 존재가 되게 하는 시간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보호막이 될 수 있다. - P73

그럼에도 인간이 만들어낸 "무한", 인간의, 오로지 인간적인 초월성을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안에 떨어진 무한"이 시간의 흐름에 속하며 다른 인간으로부터 내게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처음으로 타자를 향해 자신을 여는 것은 갓난아이로서 인간이 처음 겪는 트라우마이며, "그에게 떨어진 타자의 무한한 사랑, 무한한 사랑의 관계를통해서 이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다. 이 타자는 나중에 발생할 또 다른 타자와의 만남(두번째 트라우마)을 죽는다는 공포나 살인이 아니라 그에 대한 인정과 책임감으로 느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75

악의 소굴은 우울이라 불린다. 우울은 분리된 자의 삶보다 나아 보이는 존재 상태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엄청난 상상력이며, 보호막으로의, 닫힌 상태로의 회귀에서 오는 놀라운 힘이다. 이에 맞서는 것은 일시적이면서 강렬한 무한 사랑의 관계, 앞으로 다가올 모든 열림, 신뢰와 인정, 공감에 대한 모든 관계의 모태가 될 관계이다. - P99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가르치는 것은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가 주는 절대적 사랑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이때 어머니는 낳아준 엄마이거나 길러준 엄마일 수도, 여성이거나 남성일 수도 있으며, 젊었거나 늙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존재가 아이에게 절대적 사랑을 주기 위해 자신의 보호막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P108

민주주의는 사랑이 아니라 법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모두의 평등을 목표로 하는 이 법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인간적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이 법이 그의 가장 내밀한 문장으로 타자에 의해 인정받는 기쁨과 고통받는 타자를 위한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두려움 없이자유롭게 인정되고 존중될 수 있을까? - P133

타인과의 관계에서 악은 공감의 부재로 나타난다. 공감이 없으면 결코 인간의 가능성은 진화하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죽는다는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힘과 지배, 파괴의 욕구에 갇혀 있는 인간이거나, 제대로 된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인간이다. - P142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아이로 깨어난다. 이때 우리는 사랑으로 인해 잊어버리고 사그라진 두려움의 순간을 다시 겪고,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처럼 "밀크 커피 한잔, 빗소리, 몰아치는 바람 소리 같은 아주 소소한것들"에 미소 지으며, 새로운 하루가 "미지의 행복에 대한 바람"을 가져오리라 느낀다. 새로운 행복, 미지의 행복은 항상 다시 만나는 행복이다. 어린시절 경험한 무한한 사랑의 행복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이 행복은 늘 우리 안에 머물면서 어떤 새로운 행복이든 모두 받아들이고, 새로운 행복이 되어 다시 찾아오지만, 새 행복의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은 늘 간직하고 있다. 확실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 P159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표현한다. 표현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놀라운 공감의 능력을 되찾거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함께 나누거나, 인간적인, 그토록 인간적인 공통의 무기력을 발견한다. 죽는다는 두려움, 타자의 무한한 사랑, 타인을 위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은 고통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 고통에서 벗어날 출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이곳에, 이 세상에 있는 기쁨,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쁨, 삶 속에 있는 기쁨을 표현한다.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