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매력”에서 브루노 베텔하임이 언급한 대목들이 이 장의 마지막,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나온다. 오래전 시공사에서 발간한 책 두 권을 들춰보았다. 밑줄이 군데군데.
백설공주와 왕비는 동일 인물로 본다. 거울이 내는 가부장적 목소리에 길들여진 여성의 이중적 욕망이 난쟁이라는 미성숙함의 내적억압과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려는 성숙한 자기욕망을 반복하게 한다. 거울과 유리관을 깨는 것으로 죽음과 침묵의 시간을 지나거나 불 붙은 구두를 신고 자아파괴적 광무를 추고서야 탈출에 이른다. 여성을 비정상적 정신의 소유자로 규정하고 소외시킨 ‘변덕’이라는 ‘덕성’을 변심, 변장을 넘어 변화로 변주해나가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소설 ”오, 윌리엄“에서 인물의 말을 통해 “작가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창조와 죽음, 생과 멸을 집행하는 권위가 남성작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기에 어두운 불빛 아래서 부단히 펜을 놀려 자기 언어로 이야기를 방사한 여성작가들의 대두, 흥미진진하다.


- 1장 여왕의 거울

여왕은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할 양으로 세이렌의 빗과 이브의 사과 같은 여성적 계략을 전복적으로 사용해 천사 같은 백설 공주를 죽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술수는 딸을 통해 자신이 실현하려던 바와는 정반대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백설공주가 수동적인 처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공주를 영원히 아름답고 생명력 없는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바로 가부장적 미학이 젊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이다. 광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왕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인습적인 기술은 죽을 만큼 고통을 준다.
그러나 온순하고 자아가 없는 공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여성의 기술이, 그 기술이 자기를 죽이긴 해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이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 수단을 제공한다. - P130

릴리스나 메데이아처럼 자기 파괴적인 백설 공주는 자녀 살해와 그 시도에 내재한 자기 살해를 결심한 살인자가 될 것이다. 결국 그녀 자신이 고안한 빗과 코르셋처럼 확실하게 여성의 복식인 불타는 구두를 신은 채 백설공주는 이야기, 거울, 자아상으로 만든 투명한 관 밖에서 끔찍한 죽음의 춤을 말없이 출 것이다. 이 죽음은 그녀의 유일한 행위는 죽음의 행위이며 자아 파괴라는 치명적인 행위임을 암시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왕이 추는 죽음의 춤이 침묵의 춤이라는 것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 P134

18세기 말까지 여성들은 글만 쓴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중요한 현상인데) 가부장적인 이미지와 인습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허구의 세계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앤 핀치와 앤 엘리엇부터 에밀리 브론테와 에밀리 디킨슨에 이르는 자부심 강한 여성들이 남성 작가의 텍스트라는 유리관에서 나와 여왕의 거울을 폭파했을 때, 오래전 침묵 속에 추었던 죽음의 춤은 승리의 춤, 언어를 향한 춤, 권위의 춤이 되었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