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격동의 내일을 믿기 시작했다. 그것은 몇 달, 기껏해야 일 년이면 일어날 일이었다. 가을은 뜨거울 것이고 그러고 나면 봄이 온다(더는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훗날 낡은 청바지를 발견하고 «68년 5월에 입은것이다"라고 말할 때까지). 또다시 5월"은 혁명의 회귀와 다른 사회의 도래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는 기대였고, 가브리엘 뤼시에르를 감옥에 넣고 머리가 긴 젊은이들 모두를 극좌파"로 간주하며 시위와 모든 것을 막는 법에 환호하면서 혁명이 돌아오는 것을 막으려고 하던 이들에게는 강박이었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두 부류로 갈라졌다. 5월의 투쟁자들과 투쟁자가 아니었던 사람들, 그들은 같은 반감으로 나뉘었다. 5월은 개인을 분류하는 방식이 됐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시국에 어느 쪽에 있었는지를 물었다. 양쪽 모두 똑같이 폭력적이었으며 서로 그 어느 것도 용서하지 않았다 - P137

사회를 바꾸기 위해 통합사회당에 남아 있었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마오, 트로츠키주의자들, 엄청난 양의 이념들과 개념들을 알게 됐다. 사회적인 운동, 서적들 그리고 잡지들, 철학가들, 비평가들, 사회학자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 부르디외, 푸코, 바르트, 라캉, 촘스키, 보드리야르, 빌헤름 라이히, 이반 일리치, 텔켈, 구조적인 분석, 서사학, 생태학. 어차피 『상속자들」이건, 섹스 자세에 관한 스웨덴 소책자이건, 모두 새로운 지식과 세상의 변화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전대미문의 언어들 속을 헤엄쳤으며, 이 모든 것들을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한 달 만에 몇 년을 따라잡았다. 낡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공격적인 것들, 감동적인 것들, 더는 새로 배울 것이 없어도 터번을 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되찾았음에 안도했다. 앙드레 브루통은 안타깝게도 2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 P138

우리는 일종의 취한 상태에서 마약, 환경 오염 혹은 인종차별주의를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을 마치고 나오면서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헛수고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어쨌든 학교는 무언가에는 쓸모가 있었다. 우리는 끝도 없이 묻고 또 물었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 우리는 모든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1968년은 세상의 첫해였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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