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에게 유대인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 문제였다. 《전체주의의 기원》 서문에서 한나는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유감스러운 사실 중 하나는, 유대인 문제가 정치적 문제임을 적군은 알았으나 정작 유대인 친구들(유대인 자신들)은 몰랐다는 것이다." 한나는 유대인에게 고향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유대 민족국가 건립은 반대했다. 《아우프바우》에 게재한 칼럼에서 한나는 모든 유대인이 고향을 가질 수 있는 유럽식 연방제를 지지했다. 그래야만 유럽에서 그랬듯 민족국가 체제가 실패하더라도 안전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한나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이에 항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는 이를 "권리를 가질 권리"로 공식화했다. 한나는 유대인 전선을 원했고 여러 국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의 연대를 바랐다. - P157
1951년 여름, 유럽 여행 후 한나는 뉴 헤이븐에 가서 그가 남긴문학적 유산을 살펴보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H. B.에게〉라는 시를썼다.
살아남았다. 그런데 죽은 사람과 함께 살 수는 없을까? 말해다오, 그들의 친구의 목소리는 어디로, 한때의 그들의 몸짓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도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면 좋으련만.
그들을 떠나보내고 그들의 텅 빈 눈에 드리운 베일을 끌어당기는 그 애통함을 누가 알까. 도대체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자신을 보내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바꾼다. - P175
한나가 마르크스를 비판한 주된 이유는 마르크스가 노동 활동을 인간 조건의 근본적 활동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었다. "노동은 인간의 창조자다." 마르크스의 이 한 문장은 한나에게 모든 걸 말해주었다. 한나는 노동, 작업, 행위라는 세 가지를 각각 구분하면서 우리를 자연 그리고 우리의 동물 상태에 묶는 것이 노동이라고 가정한다. 한나에 따르면 좋은 삶이란 노동 활동만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공적영역으로 나아가 말과 행동으로 타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 P211
"정치를 논하는 작가는 이 세계를, 인간사pragmata ton athropon가 뒤얽힌 이 세계를 사랑한다."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혹은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실제로 벌어진일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모르 문디는 한나가 《인간의 조건》 서문에 적은 "멈추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구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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