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자료를 집요하게 찾고 그것에 근거해
흔들리지 않고 기울지 않고 쓰고자 한 마음이 느껴진다.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소설가 김훈의 방식.

방아쇠를 당길 때,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홀로 독립된 생명체였다. 둘째 마디는 언제 당겼는지도 알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스스로 직후방으로 작동해서 총알을 내보냈다. 그러므로 이토를 조준해서 쏠 때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절망감과 복받침, 그리고 표적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전쟁과 침탈과 학살과 기만의 그림자까지도 끊어 버리고 둘째 마디의 적막과 평온을 허용해야 할 것이었다. - P159

-필요한 몇 가지를 말하겠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그렇게 깊이 나간다면 공개를 제지할 수밖에 없다. 방청인들은 모두 퇴정······

진술을 제지하고 방청객들을 내보낼 때마다 마나베는 위기를 느꼈다. 사실관계를 파고들수록 정치성이 드러나고 있었고, 외국 언론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마나베는 서둘러서 모든 일을 끝냈다. - P238

안중근 사건의 신문과 공판 기록은 소설적 재구성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긴장되어 있다. 그 짧은 문답 속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고, 그 시대 전체에 맞서는 에너지가 장전되어있다. 이런 대목들은 기록의 원형을 살려나갔다. 조도선曹道先,
1879~1928, 유동하夏, 1892~1918 안중근의 조력자로 하얼빈에 동행했었고, 재판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안중근 거사와 직접 관련성이 낮다고 생각해서 소설의 구성에서 제외하였다.
- 작가의말 중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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