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켈레비치는 죽음을 종교적 개념에 기대어 해석하지않는다. 따라서 그에게 무화nihilisation는 철저히 불합리한 사태이고, 소멸도 불멸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무가 이해 불가능하다는 점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기회이자 신비로운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죽음』, 399쪽) 그 누구도 죽음을 거치지 않고서는 인식이 한계에 맞닥뜨리는 순간을 알 수없으며,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들을 알아차릴 수 없다. 죽음은 단 하나의 사실만을 제외하고 다모든 것을 소멸시키게 되는데, 무엇보다 소중한 그 사실은 바로 "존재했음"이다. - P177

장켈레비치가 밝힌 바 있듯이, 그의 철학적 사상은 그 어떤 철학자보다 러시아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비체계적인 사상을 금언적으로 풀어내는 ‘슬라브적 부조리‘의 실존철학자이자 작가인 안톤 체호프 Anton PavlovichChekhov(1860∼1904)의 영향은 지대하다. 장켈레비치 스스로 "나는 환생한 체호프이었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체호프는 그의 실존철학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게다가 그는 톨스토이의 ‘빛 속의 신비‘에 공감한다. 장켈레비치의 철학 사상에 있어 ‘신비‘는 인간이 절대로 밝혀내거나 발견할수 없는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성으로그 한계에 다가서려는 인간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이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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