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장바구니담기


밤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묘지로 땅을 뚫고 떨어져, 관과 시체들에 꽈당 부딪히고, 땅으로 스며들어간 잃어버린 영혼의 조각조각이 나를 찾아 손을 뻗는 것을 느끼는 것과 비슷해.-15쪽

일어난 일을 무조건 생각하지 않으려고 봉해버리면 오히려 그 생각은 더 강해져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쉴새없이 해대며 더 괴롭힌다. 그러니까 너는 어쨌든 다시 그것과 맞부딪쳐야 한다...... 거기를 밟아버려.-24쪽

늘 우리가 잉글리시 머핀에 잼을 발라 먹던 바로 그 부엌 식탁 앞에 앉아 떨리는 내 손가락들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행복했었다는 것을. 나중에 멍이 사라지고 나서 아내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같은 장소에서 내 피부를 쓰다듬으며 앉아 있었다. 몸을 갈가리 찢었다가 급하게 다시 꿰매어 붙인 것처럼 근육이 아팠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 뼛속에서 울리는 낯설고 굉장한 어떤 것을 느꼈다. 딸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내 마음은 그 아파트의 그 방,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생활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너한테는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어.-28쪽

관리소장은 종종 동물원 운영을 아내 마틸다와의 결혼생활에 비유했다.......
관리소장은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동물들을 보고 진화에 관한 다윈 이전의 이론, 즉 기린의 목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몸을 뻗다보니 길쭉해졌다는 이론을 생각해냈다. 마틸다의 마음속에는 어떤 종류의 욕망이 있을까 그는 궁금해졌다.(p77)-73쪽

룰루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몸속의 피가 수평으로 흐르는 광경을 상상했다. 재미있을 거야. 피도 재미있을 거야. 힘들이지 않고도 가고 싶은 데를 쉽게 갈 수 있으니까. 룰루는 생각했다. 해가 지고 동물원이 문을 닫은 후 네 다리로 다시 서야 할 때면,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79쪽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아버지를 아버지 이름의 유리방에 보존해 두고 싶었다. 국수공장의 벽을 가로질러 씌어져 있던 한자를 그려 넣어서, 오일 튜브들을 진열하고 붓들을 펼쳐놓고 순서대로 작품을 걸어놓고, 한 귀퉁이에는 베개로 침대 자리를 돋워 세워 놓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그녀의 힘으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그는 곰은 한 번에 여섯달 동안 동면한다고 말했다. 곰의 심장 박동이 약해진다. 숨은 거의 쉬지 않지만 살아 있다. 메리는 곰이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상상했다. 당연히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배고픔일 것이다. 그녀는 슬픈 실밥 자국이 있는 그 동물이 그들 뒤를 비트적거리며 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115-116쪽

사랑은 죽는 것과 같아.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같지.
가끔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가끔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156쪽

한 사람이 죽기 전에는 항상 어떤 순간이 있다. 암브루조는 마지팬을 생각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그는 재료를 찾아보았다. 아몬드 페이스트, 계란 흰자, 가루설탕. 그가 어렸을 때 노나는 페이스트를 밀어 동전 모양으로 작게 잘랐다. 그러면 암브루조는 꽃, 십자가, 테디 베어 등, 그만이 가진 틀로 찍어 사탕과자의 모양을 냈다. 그러고는 하나하나 먹었다. 혀끝이 마비되어 단맛을 느낄 수 없을 때까지.-165쪽

뱀이 얼굴을 지나갈 때 그녀는 숨을 죽였다. 비늘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뱀의 하얗고 편편한 배가 그녀의 쇄골을 건드렸다. 뱀의 무게가 축복처럼 느껴졌다. 뱀은 그녀의 팔을 감고 돌다가 어디로 갈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쿠션이 있는 소파 쪽으로 갔다. 그는 쿠션 밑에 들어가 자는 걸 좋아했다. 그녀는 천천히 그를 보내주었다.-200쪽

어스름 무렵이면 윌로비는 그녀를 찾아 돌아다녔다. 숲으로 들어온 후 미스 월드론은 크게 변했지만, 윌로비는 사람들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는 모습을 하도 많이 보아서 익숙했다. 그 자신도 한두 번 경험한 일이었다. ...... 그가 숲에 대고 외치면, 곧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고 뒤이어 땅을 울리는 작은 발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2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