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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법
 
저자 : 김창흡
역자 : 조성덕
 
내용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경솔하게 하다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살펴 듣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주고받을 때 십중팔구는 앞뒤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때로는 거칠고 엉성하여 말의 맥락을 살피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치밀하고 고지식하여 말의 논리에 얽매이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영특하여 억측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며, 때로는 어리석고 식견이 짧아 귀착점을 찾아내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비근한 말을 듣고서 고원한 데에서 탐구하기도 하며, 때로는 오묘한 의론을 듣고서 천박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만나서 대화를 하지만 그 말이 어긋나고 모순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것은 단지 성격이 편협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체로 마음을 안정되게 갖는 자는 적고 방심(放心)하는 자는 많아서,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 간신히 시간을 내어 말을 주고받으니, 곡절을 잘 살펴 제대로 말이 오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동문서답하는 것은 자세하게 듣지 않아서 생기는 실수이니 허물이 그래도 적다. 그러나 낮을 이야기하는 말을 반대로 밤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듣고, 추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말을 반대로 더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듣는 경우는 바로 미장(迷藏)1)의 경우이니 더욱 가증스럽다. 심지어 “흐르는 물을 베고 자며 돌로 양치를 한다[枕流漱石]”2)는 말과 “노루 옆에 있는 것이 바로 사슴이고, 사슴 옆에 있는 것이 바로 노루이다.[獐邊鹿鹿邊獐]”3) 같은 경우는, 골계적인 말을 하여 자기잘못을 완성시키거나, 혹은 얼버무려서 자신의 졸렬함을 감추는 것이니 마음에 가장 큰 해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논쟁할 때에 이 같은 증후가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제거하여, 뿌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남에게 논리상 밀리게 되면 발끈하고 이기려는 마음이 발동하여, 이윽고 남의 말이나 글에서 흠집을 찾아내어 억지로 그를 꺾으려고, 앞뒤는 다 잘라버리고 달랑 한 구절만 거론하거나, 본뜻을 살피지 않고 지엽적인 것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모두가 자기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남을 이기려고 힘쓰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생각이 깊을수록 병은 더욱 중해지는 법이다.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싸우려는 기세가 있는 자와는 변론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때 만약 이와 같은 부류를 만난다면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로써 본다면, 함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세상에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함께 말할 만한 상대인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고, 함께 말할 만한 상대가 아닌데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다.” 하시고, 또 말하기를 “중등 이상의 자질이 되는 사람에게는 고원한 도리를 말해줄 수 있지만, 중등 이하의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원한 도리를 말해줄 수 없다.”고 하셨으니, 남과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이 가르침을 언제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凡人發言。多失之率易。而亦未能審聽他人之言。故酬酢之間。十八九不湊著。或麤疎而不尋語脉。或密固而滯於言詮。或英邁而失之臆度。或昏短而不究歸著。或聽邇言而尋之於高遠。或聽眇論而忽以爲膚淺。以此終日接話。而其不爲齟齬矛盾者幾希。然其不會聽言者。非但由性質有偏而然也。大抵定心者少而放心者多。忩忩擾擾之中。撥忙酬應。宜未能審悉曲折而善爲往復也。如問東答西。則失之未詳。其過猶少。如聞說晝。必反以夜聞。說寒。必反以暑。乃迷藏之類。尤爲可憎。至於枕流漱石。獐邊鹿鹿邊獐之類。或滑稽而遂非。或依違而藏拙。最爲心術之害。與人爭辨之際。乍覺有如此證候。不可不痛祛而不留根也。亦有理屈於人而怫然勝心之發。尋討人言句罅漏而强拗折之。或截去首尾而孤擧一句。或窮搜枝葉而不察本旨。此則全出於未能平心而務欲勝人。蓋用意愈深而做病愈重。荀子曰。有爭氣者。勿與較。凡與人接話。如逢如此之類。括囊可也。以此知可與晤語之人。天下鮮矣。孔子曰。可與言而不言。謂之失人。未可與言而言。謂之失言。又曰。中人以上。可以語上。中人以下。不可以語上。凡與人酬酢者。不可不服膺此訓。 

※ 주석
1) 미장(迷藏)은 아이들의 놀이의 일종인 착미장(捉迷藏)을 말하는데, 곧 베[布]로 눈을 싸매고 하는 숨바꼭질이다. 여기서는 서로 모순됨을 가리킨다.
2) 진(晉) 나라 때 손초(孫楚)가 왕제(王濟)에게 “돌을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한다.[枕石漱流]”고 해야 할 것을 잘못하여 “돌로 양치하고 흐르는 물을 벤다.[漱石枕流]”고 하였다. 그러자 왕제가 “물을 어떻게 베며 돌로 어떻게 양치질하는가?” 하니, 손초가 “물을 베는 것은 귀를 씻고자 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하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하고자 해서이다.”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排調》
3) 왕안석(王安石)의 아들 원택(元澤)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노루와 사슴 한 마리씩을 왕안석에게 보낸 적이 있었는데, 원택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혹자가 묻기를 “어느 놈이 사슴이고 어느 놈이 노루인가”라고 하자, 원택이 답하기를 “노루 옆에 있는 놈이 사슴이고 사슴 옆에 있는 놈이 노루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후 경전을 해석할 때도 이와 같았다. 《朱子語類 권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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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김창흡의 문집인 《삼연집(三淵集)》권36 「만록(漫錄)」 가운데 한 부분이다. 만록은 성리서나 성리학에 관한 견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인물과 고사, 제도 등에 관해 적은 것이다. 여기 소개한 글은 그 중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대화 및 언어 사용에 있어 특히 빠지기 쉬운 잘못,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자세하고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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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김창흡(金昌翕 : 1653∼1722)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호는 삼연(三淵), 자는 자익(子益),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영의정 수항(壽恒)의 아들이며 창집(昌集)ㆍ창협(昌協)의 아우이다.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아버지가 사사(賜死)되자 경기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장자》와 《사기》를 좋아하고 시도(詩道)에 힘썼으며, 친상(親喪)을 당한 뒤에는 불전(佛典)을 탐독해 슬픔을 잊으려 하였다. 그 뒤 주자의 글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유학에 전심하였다. 그는 형 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고, 이황(李滉)의 주리설(主理說)과 이이(李珥)의 주기설(主氣說)을 절충하는 경향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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