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절판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아직 사는 데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벌써 죽는 데 익숙해져야 해요. 우리는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 위로 난 좁다란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필사적으로 땅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심연 속의 영원함에 매력을 느껴요. 때로는 몸을 내밀고 영원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느껴요.

우리는 거의 신경을 쓰고 있지 않지만, 절벽 가장자리에는 이런 팻말이 세워져 있지. '몸을 내밀면 위험합니다.'-16쪽

그런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개혁과 새로운 것, 혁명적인 것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싸우고 법석을 떨지요? 결국에는 자연의 법칙만이 유일하게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 말이에요. 혹시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오늘 당신이 떨어진 것처럼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던가요?-25쪽

우리가 나폴리를 향하고 있지만, 지금 내려가지 않고 올라간다고 해서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니오. 물론 북쪽은 위에 있고, 남쪽은 아래에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쪽으로 가면 오르막길이 없고, 북쪽으로 가면 내리막길이 없는 것은 아니오.-27쪽

어느 순간 아버지는 집 안에 이방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새로운 눈으로 아버지를 관찰하는 아들이다. 아들이 자신의 적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결국 아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 대해 판단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더 강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동맹자가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결코 자기 자신에게 위선적이지 않아야 한다.-78쪽

선물을 살 때 사람들은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사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진짜 선물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정복이라고나 할까.-88쪽

파시오나리아, 나는 네 손을 놓아야 하고, 너는 벽 사이의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야 해. 그러니까 파시오나리아, 너도 안녕. 너는 나의 삶에서 떠나 국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저들은 너에게 국가의 위선을 가르치겠지. 이제 더 이상 네 생각도 네 것이 아니게 될 테고, 너는 교육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지. -113쪽

국가는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만들고, 밤이면 도시들을 환한 불빛으로 비춰준다. 그렇지만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의 행동과 생각까지 규제하고, 법률과 규정의 풀어헤칠 수 없는 실타래 속에 우리를 더욱더 옭아매고, 우리를 더욱더 하찮은 톱니바퀴로, 피를 빨아먹으면서 헛되이 돌아가는 무서운 기계의 톱니바퀴로 만든다.-114쪽

완전히 나만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내가 완전히 거기에 속해 있다는 의미에서 그래요. 나는 그 신비로운 세계, 그림자들과 욕망들, 두려움들이 가득한 그 세계의 포로이고 절망적으로 혼자예요. 나는 고통스러운 발을 이끌고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끝이 없는 길을 헤매고 있어요.

힘들겠군, 마르게리타. 혹시 자전거라도 한 대 살 가능성은 없소? 노고를 상당히 덜어 줄 텐데.-141쪽

나는 단지 선생님을 위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뱉는 독약은, 국가의 태만함과 관료제의 귀머거리연한 무관심 때문에 공동체의 선을 위해 정직하게 일하고 힘겹게 살아온 삶의 마지막 날들을 슬프게 보낸 그 모든 사람들과 내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165쪽

고양이보다 훨씬 더 대단한 영웅, 고양이보다 훨씬 더 커다란 승리를 거둔 영웅이다. 왜냐하면 나는 치촐라타 덩어리를 부수고 깨뜨렸으며, 바로 오늘 저녁에는 완벽하게 파괴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는 내 영혼을 장애물 너머로 내던졌으며, 단지 하느님만 나를 제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사물은 절대 막지 못할 것이다!-230쪽

마르게리타, 어제는 당신이 '추론'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오늘은 '신랄하다'고 말하는군. 당신 생각을 표현하는 데 평범한 낱말들로는 충분하지가 않소? 당신도 이제 애매한 지성주의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것이오?

아뇨. 단지 낱말들의 꽃밭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떤 이국적인 꽃을 하나 꺾어 낡은 생각을 새로운 꽃으로 치장해 보는 것이 좋아요.-316쪽

과거는 맥주 한 잔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욕을 주는 사람은 그 모욕을 모래 위에 쓰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은 청동에 새겨 두는 법이에요.-319쪽

조반니노,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저건 악마 같은 전략이에요. 만약 열다섯 사람이 누군가에게 덤벼든다면 그것은 공격이에요. 하지만 이백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격분한 군중의 납득할 만한 반응'으로 소개될 수 있어요. 법은 군중을 처벌할 수 없어요. 군중은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있지요.-323쪽

나는 지금 아프지 않게 해 주는 기계들이 있는 치과에 가는 것이 아니야. 옛날식 치과에 갈 거야. 어렸을 때 우리를 아프게 했던 치과에 말이야. 그런 고통을 포기하면 내 젊음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우리 세대는 엘리베이터와 비행기를 불신하지만 고통을 두려워하지는 않아!-339쪽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대란 메스가 자신의 생살을 찢는 것을 확고한 눈으로 지켜볼 수 있고 울지도 않는 세대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너무나도 존중해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심지어 자신의 살이 외과 의사의 칼에 의해 고통당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아요.-340쪽

햄릿, 기술의 발전이 단순한 사람들을 매혹시키듯 너 또한 매혹시키는구나. 너는 거기에 혹하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기술 발전을 문명과 혼동하게 될 것이고, 또 네 근본에서 벗어나게 될 거야. 사람들이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없을지라도 너는 개다움을 배신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348쪽

나는 근무를 할 때마다, 또 치명적인 커브 지점에 도착할 때마다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며 생각하지. '다음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어내릴 거야.' 권태가 나를 짓누르고 있어, 마르게리타. 그리고 더욱더 내 일을 힘들고 어렵고 불쾌하게 만들지 나는 절망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싶고, 바로 몇 년 전부터 창가에 있는 아가씨의 미소 속에서 내가 읽어 내는 초대에 응하고 싶어. 그런데 매번 뒤로 미루지. 바로 특급열차 136호 기관사의 이야기를 생각하기 때문이야.-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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