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절판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 알베르 카뮈
-13쪽

허공 속에서 공은 많은 천체들과 함께 운행하는 인간의 별처럼 보인다. 높이 뜬 공이 풍경 전체를 사람의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공을 향해 벌린 인간의 두 팔은 비바람 속에서 자족한 나무의 모습이다.-20쪽

발바닥의 굳은살이나 닳아진 구두의 뒤축에는 체중이 시간을 통과해나간 무늬가 찍혀 있다. 맨발로 땅을 달릴 때 나는 진화의 이름을 퇴화해버린 내 발바닥이 가엾다. 가엾기는 하지만, 맨발로 달릴 때 발바닥과 세상과의 직접성은 반갑다. 그 반가움과 함께 나는 조심조심 달린다.-38쪽

팔은 다리의 움직임과 연결되어서 흔들린다. 팔이 다리에 맞추어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는 직립보행 이전의, 네 발로 땅을 기던 시절의 추억이 살아있다. 인간의 육체 속에서 이 추억은 멀고도 희미한 등불로 깜박인다.-43쪽

공 차는 인간의 육신에는 산하의 모습이 숨어 있다. 공을 찰 때 산하는 인간의 육신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속의 공 차는 사람이, 다음 순간 땅 위에 쓰러질지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그의 팔다리는 산하의 흔적을 드러내 보인다.-45쪽

장년의 사내들에게서는 오래 산 사람들의 누린내가 풍긴다. 그 누린내는 피로감일 수도 있고 건강함일 수도 있다. 또는 완강함일지도 모르겠다. 피로와 건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건강한 자들만이 피로의 감미로움을 안다. 그들의 공 차는 모습이나, 등물하는 모습에서도 생활의 냄새는 배어나온다. -57쪽

공차기는 속박과 비상 사이의 떨림이다. 그래서 공을 차는 인간은 때때로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61쪽

공이 둥글지 않으면 놀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은 입체의 중심에서 표면에 이르는 모든 거리가 같다. 이 공간기하학적 사태는 경이롭다. 공은 이 절대적인 등거리성으로 모든 충격을 순수하게 수용하고 반응한다. 공은 거기에 와 닿는 발길에 따라 무수한 질감과 방향성으로 새로 태어난다. 공은 인간의 몸이 아니면서도 몸의 일부이고 몸과 몸 사이의 또 다른 몸이고, 그 연결자이다. 그래서 공을 찬다는 행위는 생명을 밖으로 내질러 낯선 공간 속으로 연장시키는 일이다. 공은 살아 있는 짐승과 같다.-64쪽

닳아진 공을 보니까 공에도 생애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공이 발길에 채여서 튕겨져나갈 때 공은 발길의 힘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순결한 매개물일 터인데, 닳아진 공의 표정에도 그 순결의 자취들이 남아 있다. 닳아진 공의 생애는 그 어느 구구의 편도 아닐 채 스스로의 늙음을 완성하면서 남루하지 않고 초라하지 않다. 그 공을 꿰매는 인간의 손과 인간의 작업도구 또한 그러하다.-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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