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로드 Audre Lorde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시인, 흑인이며 다양한 인종의 존엄을위해 싸운 전사, 문학과 철학 교사, 도서관 사서, 출판인, 암생존자, 엄마,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레즈비언, 그리고영원한 아웃사이더. 1934년, 뉴욕시 할렘에서 카브리해국가인 그레나다 이민자 가정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인도제도에 관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 살 때부터읽기, 말하기, 쓰기를 익혔다. 헌터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전공했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아공공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레즈비언 게이공동체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게이인 에드워드 롤린스와 결혼해두 아이를 낳았다.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분노,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투, 아프리카여성 신화로서의 블랙 페미니즘을 미려하면서도 생동하는언어로 담아낸 시집 《최초의 도시들The First Cities》《타인이 사는 땅으로부터 From a Land Where Other PeopleLive》 《석탄Coal》 《블랙 유니콘>><<거리의 놀라운 산수TheMarvelous Arithmetics of Distance: 1987-1992》 등을 펴냈다.
자기 인식의 진화와 섹슈얼리티를 다룬 자전신화 《자》,
페미니즘 바이블로 손꼽히는 에세이와 연설문 선집 시스터아웃사이더>, 유색인종 여성들에 관한 에세이 《나는 너의자매다 Am Your Sister》, 암과의 사투를 진솔하고도 날카롭게담아낸 《암 일지The Cancer Journals》 등을 펴내며 인종, 성,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목소리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에 유방암을 선고받았다. 6년 만에 간암으로전이되었고, 투병 끝에 1992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 레즈비언, 엄마, 전사, 시인‘으로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절망을 혁명의 고질병으로 여기며˝
평생 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혐오에 맞서 결연히 싸웠다.

오드리 로드는 인종, 계급, 젠더에서 모두 비주류 쪽의 카드를 가지고 태어났다. 보통 이런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다. 소수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언어를 찾는 일은 생존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건 눈에 띄고 싶을 때는 보여지지 않다가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도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견뎌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다행스럽게도오드리 로드는 스스로 ‘낙인찍힌 자‘라고 부르는 것을 겁내지 않는 유별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다이크 등 그 시대의가장 불온한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었고 그에 걸맞는 삶을 기꺼이 살아갔다.
이렇게 살 수 있었던 뿌리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세계에서 꼿꼿하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되 아무것도 잊지 않는 어머니의 방어술은 뿌리를 옮겨온 이들이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매일 조금씩 자신을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수자들은 적응할 수 없는 것을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 경험과 지식이 분리된 세계에 살아간다. 그것은 무지개가 되지만 종종 올가미인 ‘우리‘를 만들어낸다.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지배자의 연장으로는 지배자의 집을 부술수 없다." 이 두 문장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오드리 로드의 불굴의 정신을 담고 있다. 《자미》는 그 정신의 뿌리를 알려준다. 이 책에는 저자에게 흔적을 남긴 아름답고 강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신을죽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다시 짓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면, 여자인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당장.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여자들의 사회》 저자

오드리 로드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능한 일일까?
가만히 오드리 로드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또한 지구에태어나 인간으로서 인생이라는 것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된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의 빼곡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가 살아 있다고, 인생은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자미》의 모든 문장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알려주는 이 또한 오드리 로드 자신이다. 분명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토록 자세하고 내밀하고 풍성하게 삶을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게도어둡고 빛나며 복잡하고 단순명료한 순간이 삶으로써 언제나 나와 함께했음을 나는 오드리 로드를 통해서야 가까스로 믿게 되었다.

_유진목 시인, <연애의 책》 저자

‘언어와 시와 사랑과 좋은 삶‘이 한데 버무려진 이야기를 오래 꿈꿨다. 바닷가에 발을 조금 적시고 마는 그런 사랑 말고 파도에 휩쓸려 정수리까지 젖어버려서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신나는 사랑 사랑이 끝나도 시로 남아서 영원의축복을 누리는 사랑. 자발적인 헌신과 상스러운 섹스가 있지만 나쁜 남자는등장하지 않는, 마음이 놓이는 사랑 이야기.
《자미》에서 이 모든 서사의 욕망이 충족되었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형벌이던 시대를, 거짓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위엄 있게 살아낸다. 사랑과 글쓰기의 힘이다. 그래서 그의 자전신화는 상호 탐구와 존재 연결에 관한 보고서다. 얼마나 멋진가. 추방된 존재의 서사가마침내 사랑의 역사로 재배열되는 삶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더 큰 우주로팽창하는 그의 생애는 별빛 같은 언어를 쏟아낸다.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찬탄과 동경을 담아 숨죽이며 읽었다. 시시하게 살기싫지만 고통이 두려워 잔뜩 움츠린 내 삶에 그의 이름을 "정서적인 타투"로 새기고 싶다. 사랑, 여성, 글쓰기로 된 구축물 <자미》는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미래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 은유 작가, <크게 그린 사람》 저자

《자미》는 오드리 로드의 삶을 ‘관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관계를 촘촘히 채운 이들은 여성들이다. 어머니와 자매처럼 가족관계에서 시작해 수많은친구와 연인 등으로 뻗어나간다. 로드가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그 관계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뉴욕의 흑인·여성·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일종의 문화기술지로도 읽힌다.
‘자매들‘과의 관계는 로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생존을 위한 단단한 의식주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무엇보다 로드에게 정서적으로 사랑이 충만한 일상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한편, 이 관계들은 굵직한 상처와 커다란 상실감도남겼다. 다시 말해 《자미》는 이 관계들에 대해 로드가 보내는 사랑의 언어이며 동시에 애도의 언어로 가득하다. 로드에게 영양분을 준 만큼 상처도 준 관계들이지만 그 상처마저도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로드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서로를 북돋아주며 성장한 관계들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사랑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의 약자와 소수자가 사랑하기를방해하는 권력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사랑을 굳건히 믿는 마음만큼 질긴 저항도 없다.

-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말을 부수는 말》 저자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여성 운동 연대기가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나는클리토리스 이야기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읽을 때부터 조금 당혹했다. 《자미》

는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 내내 여성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했고그 사랑은 운동의 동지나 자매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몸을 온전히 드러낸, 침대 위에서 기분 좋게 엉켜 있는 두 여자의 땀에 젖은몸에서 흘러나오는 그러한 사랑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과 투쟁의 영역이 키스와 관능과 성애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메마른상상은 언제부터 왜 하게 되었던 걸까?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말했듯, 성애는 "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우리안의 가장 깊고 강력하고 풍요로운 것을 신체적·감정적·심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즉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향한 열정"이다.
이 열정은 힘과 앎과 연결의 원천이 되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 나와 타자를 섞어주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뻗어나가 자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키스가 없다면 운동도 없다. 아아, 오드리 로드처럼 쓰고 오드리 로드처럼 살고 싶다. 《자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가장 정치적인 자전신화다.

_하미나 작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

흑인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과 혐오를 목격할 때마다 나는 오드리 로드에게 의지한다. 로드가 그러한 공격들에 어떻게 응전할지 궁금하다. 로드의 우아함과 힘, 맹렬한 지성은 모든 흑인 여성을 옹호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록산 게이 작가,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저자

《자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오드리 로드의 아웃사이더 성향에 관한서술은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

_앨리슨 벡델 작가, 《펀 홈》 저자

내 목소리에 담긴 힘을, 멍든 살갗의 수포 아래서 문득 거품을 일으키듯 부풀어 오르는 강인한 나를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

아버지는 나에게 묵묵하고, 강렬하며, 집요한 정신적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버지의 흔적은 먼빛이다. 나와 혼돈 사이에는 횃불처럼 활활 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다이크들처럼 서서 내 여정의 경계를 장식하고 구분한다. 이 친절하고도 잔혹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나를 집으로이끌었다.

내 생존의 상징들을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

호박의 계절부터 그해의 자정까지 언니들과 나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거실의 장밋빛 리놀륨 바닥에 난 구멍에 대고 돌차기 놀이를 했다.
토요일이면 누가 바깥으로 심부름하러 나갈지, 누가 빈 퀘이커 오트밀상자를 가질지, 밤에 누가 마지막으로 욕실을 쓸지, 누가 제일 먼저 수두에 걸릴지를 놓고 싸워댔다.

여름철 사람들로 가득한 할렘의 거리에서 풍기는, 살수 트럭이 잠시 물을 뿌리고 간 뒤 길에서 다시 태양을 향해 피어오르는 썩은 내. 나는 목이 짧은 가게 주인한테서 우유와 빵을 사러 길모퉁이로 뛰어가다가 어머니에게 꺾어다 줄 풀을 찾으려고 걸음을 멈췄다. 지하철로 이어진 철제 살대 아래 새끼 고양이처럼, 반짝 빛나는 동전을 찾으려고 또걸음을 멈췄다. 나는 늘 신발 끈을 묶으려 허리를 숙인 뒤 그대로 미적거리며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했다. 돈을 수중에 넣는 법을, 어떤 여자들이 꽃무늬 블라우스 주름 아래에 부어오른 위협처럼 품고 다니는 비밀을 슬쩍 들여다보는 방법을.

‘오늘의 나‘라는 여성이 되기까지 나는 어떤 이들에게 빚을 졌는가?

멜로이스는 142번가에 살았고 머리를 다듬는 법이 결코 없었으며이웃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쯧쯧 혀를 찼다. 델로이스가 커다란배를 당당하게 내밀고 거리를 걸을 때면 여름철 햇빛을 받은 푸슬푸슬한 머리카락에서 빛이 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그가 시詩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면 신발 끈을 묶는 척 몸을 숙이고블라우스 아래를 들여다보려 했을 때조차도 나는 델로이스에게 말을걸지 않았는데 내 어머니가 그와 말을 섞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마치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내가 언젠가 알고 싶은 누군가처럼 움직였으므로, 신의 어머니도, 그리고 오래전 내 어머니도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고, 어쩌면 언젠가는 나도델로이스 같은 몸짓을 지니게 될 터였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델로이스의 배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후광 같은 고리 모양 햇빛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내 배가 납작하다는게, 나는 머리와 어깨로만 햇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서운했다. 바닥에등을 대고 눕지 않는 한 햇빛이 그렇게 내 배에 내리일은 없었다.
나는 크고, 흑인이고, 특별하고, 늘 웃는 델로이스를 사랑했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그를 무서워했다. 어느 날 나는 델로이스가 142번가에서 신호등을 무시한 채 느리고 신중한 동작으로 연석 아래로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았다. 흰색 캐딜락을 몰고 지나가던 하이 옐로* 남자 하나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델로이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빨리빨리 좀 움직이라고, 느려터진 데다가 얼빠진, 얼굴도 웃기게 생긴 년아!" 캐딜락은 델로이스를 거의 치고 지나갈 뻔했다. 델로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걷던 대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집, 부엌을 쓸 수 있고 가구가 구비된, 그러나 침구는 제공되지 않던 방에 세 들어 살다 죽었던 루이즈 브리스코에게. 내가 우유를

한 잔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마시지 않았고, 내가 침구를 갈고 의사를 불러주겠다고 하자 웃었다. "그 의사가 엄청나게 귀여운 남자가 아니라면불러봤자 소용없지." 브리스코 씨의 말이었다. "날 위해 아무도 불러줄필요 없어. 내 힘으로 혼자 이 세상에 왔으니 똑같이 내 힘으로 떠나련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엄청나게 귀엽지 않다면야 쓸모가 없지." 방 안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냄새가 났다.
"브리스코 아주머니, 전 당신이 정말 걱정돼요."
그러자 그는 마치 내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한다는 듯, 그럼에도 그 말이 고맙다는 듯 나를 흘낏 보았다. 회색 이불 속, 부종이 심한커다란 몸으로 누운 채 그는 다 안다는 듯 씩 웃었다.
"뭐, 괜찮다, 애야. 널 원망할 마음은 없어. 너야 어쩔 수가 없겠지. 그게 네 천성이니 말이다."

내 꿈속에 등장하는, 공항에서 내 뒤에 서 있다가 자기 자식이 나한테 자꾸만 일부러 몸을 부딪쳐대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백인 여자에게 자식 간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 주둥이에 주먹을 한 방 날리겠다고 말할 셈으로 몸을 돌린 순간 나는 그 여자가 이미잔뜩 얻어맞은 뒤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여자도, 아이도 얼굴은 멍투성이인 데다가 눈가가 시커멓게 물든 만신창이였다. 나는 돌아서서 슬픔과 분노에 젖어 걸음을 옮겼다.

한밤중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얇은 잠옷만 걸치고 맨발로 내 차로달려오며 비명과 고함을 지르던 창백한 얼굴의 소녀에게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아, 제발 병원에 데려가주세요, 선생님……." 소녀의 목소리는 농익은 복숭아와 초인종 소리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내 딸과엇비슷한 나이인 그 소녀가 수풀이 우거진 밴 두저 스트리트의 굽은 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고 차창을 열었다. 한여름이었다.
"그래, 그래. 내가 도와줄게. 타려무나."
그런데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소녀의 얼굴은공포로 일그러졌다.

소녀는 울부짖더니 홱 돌아서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검은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만한 공포를 느낀 것일까? 진짜 나와 그 소녀가 바라본 나 사이의 간극 속에 나를 버려둔 채, 그는 도움도 받지 않고 떠났다.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백미러를 통해 길모퉁이에서 그 소녀가 악몽의 실체에게 붙들리는

장면이 보였다. 가죽재킷과 부츠, 남성, 백인.
소녀가 아마 어리석은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차를 몰았다.

내가 구애했고 또 떠났던 첫 여자에게. 그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는 여성들은 비싸고 때로는 낭비벽이 심하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당신을 빨아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한다.

내가 쉴 곳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 나섰고 때때로 쉼터가 되어준 무장 부대에게. 검게 물든 내가 완전한 이 모습 그대로 세상으로 나설 수있도록 자비 없는 태양 아래로 나를 밀어내준 타인들에게.

아프레케테가.
되어가는.
내 안에 깃든 여행하는 여성에게.

나는 언제나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 되기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진가장 강하고 풍부한 면모들을 내 안에, 내 속에 받아들여 지구가 언덕과산봉우리를 품듯 내 몸에 골짜기와 산맥이 공존하기를 바랐다.
나는 여느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속에 들어가고 싶은 동시에 상대가 내게 들어오기를 바라며, 떠나고 싶은 동시에 떠나보내고 싶으며, 사랑을 할때면 뜨거우면서도 단단하고, 또 부드럽고 싶었다. 밀어붙이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때는 쉬거나 밀어붙여지고 싶다. - P19

목욕물 속에 앉아 놀 때면 미끄럽고 접혀 있으며 부드럽고 깊은, 내 안깊숙한 그곳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나의 진주이자 나의 돌출부인,
다른 방식으로 단단하고 민감하고 취약한 그곳의 핵심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나를 영영 핵심에 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해묵은삼각형이 길게 늘어나고 평평해져, 할머니와 어머니와 나라는 우아하고강인한 삼위를 이루고, 그 안에서 ‘내‘가 필요에 따라 한 방향 또는 양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 P19

영원토록 여성. 내 몸은 더 늙고 오래되고 현명한 다른 삶들의 살아있는 재현이다. 산맥과 골짜기, 나무, 바위․ 모래, 꽃, 물, 돌. 지구상에서 만들어진 것들. - P20

그레나다 사람들과 바베이도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걷는다. 트리니다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레나다를 찾았을 때 나는 내 어머니의 힘을 이룬 뿌리가 거리 위를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내 어머니 조상들, 내 어머니 선조들,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들을 정의하던 흑인 섬 여자들의 나라라고. "섬 여자들은 아내 노릇을 잘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미 더한 것을 겪었으므로 이 여성들이 가진 아프리카인다운예리함에는 보다 부드러운 모서리가 있고, 그들은 비가 내리는 따뜻한거리를 오만하면서도 점잖은 태도로 휘젓고 다니며, 나는 힘과 취약함속에서 그 모습을 떠올린다. - P21

어린 시절, 냉장고 문이 부서지거나 전기가 나갔을 때, 언니가 스케이트를 빌려 타다가 입가가 찢어졌을 때처럼 온갖 위기나 재난이 닥칠때마다 어머니가 입 모양으로 이 기도문을 들릴락 말락 하게 외우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린 나는 기도문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위 같고 엄격한 내어머니가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읊는 상대인 그 어머니란 누굴까 하는수수께끼에 골몰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공공장소에서 얌전히굴게 하는 법을 알았다. 집 안에 남은 유일한 먹거리를 주의 깊게 계획하여 차려낸 식사인 척하는 법도 알았다.
어머니는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는 일일지라도 정성껏 하는 법을알았다. - P24

어머니는 자연사박물관을 오가는 길은 몰랐어도 아이들을 똑똑하게 키우려면 그런 데 데려가야 한다는 건 알았다. 아이들을 박물관에 데려간 어머니는 겁이 나서 오후 내내 우리 자매들의 통통한 위팔을 꼬집어댔다. 우리가 얌전치 못하게 군 탓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단정한 모자 차양 아래서 빛나는 박물관 경비원의 연푸른 눈이 우리에게서악취라도 풍긴다는 양 이쪽을 내내 주시하고 있어 겁이 났던 것이다.
이건 어머니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P26

린다는 초록은 귀중하다는 것, 물에는 평온과 치유를 가져다주는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 토요일 오후 집 청소를 끝낸 후면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공원을 찾아가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다. 때로는 142번가에 있는 할렘 강가에 가서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D트레인을 타고바다에 갈 때도 있었다. 물가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말이 없어지고, 나긋나긋해지고, 정신을 딴 데 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그레나다의 그렌빌, 카리브해가 내려다보이는 노엘스 힐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짙은 라임 향기 속에서 어머니가 태어난 곳, 캐리아쿠섬이야기도 해주었다. 치유의 효과를 가진 식물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지만 우리는 그런 식물들을 한 번도 본 적 - P27

이 없었으므로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어머니가 살았던 집 앞에 자라던 나무와 과일과 꽃 이야기도 해주었다.
한때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노엘스 힐의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흥얼거렸지만, 나는 코 고는 소리와 악몽 때문에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공동주택어둠 위로 그물처럼 걸려 있는 사포딜라와 망고를 상상해야만 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믿었기에 견딜 만했다. 비록 엄청난 에너지와집중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그저 잠깐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영영 생각할 장소도 아니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곳도, 정의하는곳도 아니라고 상상했다. 우리가 올바르게, 또 검소하게 살아가고, 길을건너기 전에 양옆을 확인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달콤한 장소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 P28

캐리아쿠에서 안니 이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나버린 다른 여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염소를 치고 땅콩을 기르고 곡물을 심고 땅이 옥수수를 잘 길러내도록 흙에다가 럼주를 부었으며, 여자들이 살 집과 빗물 집수장을 지었고, 라임을 수확했고, 자신들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한데 엮었다. 바다로 나간 남편 없이도 잘 살아남은 여성들, 남편이 돌아오지않더라도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마디빈, 프렌딩, 자미. 캐리아쿠 여성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그레나다의 전설이며,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캐리아쿠의 레스테르와 하비 계곡 사이 언덕에서 나의 어머니, 벨마 집안의 딸이 태어났다. 안니 이모의 집에서 여자들과 라임을 따며 여름을 보냈다. 훗날 내가 그레나다를 꿈꾸게 되듯, 어머니는 캐리아쿠를 꿈꾸며 자랐다. - P29

캐리아쿠. <구드스쿨 아틀라스>에도, <주니어 아메리카나 월드 가제트>는 물론, 내가 찾아본 그 어떤 지도에도 실려 있지 않은 곳. 그래서지리 수업시간이나 도서관 자습시간마다 이 마법의 섬을 찾아다녔지만찾지 못한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곳은 환상이거나 망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옛날식 이름일 거라고, 어쩌면 실제로 어머니가 말하는 곳은 사람들이 퀴라소라고 부르는 서인도제도 저 먼 곳 네덜란드령의 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집이란 사람들이 여태까지지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 목을 졸라 교과서의 페이지 사이에 가두지못한, 여기가 아닌 어느 다정한 곳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곳은오로지 우리만의 공간, 나무에 매달린 블루고*와 빵나무 열매, 너트메그와 라임과 사포딜라, 통카콩, 그리고 붉고 노란 파라다이스 플럼 사탕으로 가득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이었다. - P30

나는 어째서 늘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어째서 머무르기 힘들며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극단에 있는 것이, 냉정을 잃지 않고 한가운데로 똑바르게 이어지는 한가지계획을 고수하기보다 편안한지 말이다.
내가 분명 이해하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결단이다. 그것은 완고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움을 유발하지만, 종종 효과를 발휘한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일상어에서 여성과 강한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눈먼, 등이 굽은, 미친, 아니면 흑인 따위의 일탈적인 형용사가 뒤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어렸을 적 강한 여성이라는 말은 평범한 여성, 그러니까 그저 ‘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남성‘과 동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이 제3의신분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 P31

덕분에 우리는 토요일 아침마다 살을 얼만큼 추운 날에도 시내 곳곳의 슈퍼마켓이 문을열기도 전에 줄을 서야 했다. 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들어가서 한 사람당 약 100그램씩 할당된 보급품이 아닌 버터를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슈퍼마켓을 기억해두었다가 차비가 공짜인 나를 종종 함께 데리고 다녔다. 어떤곳이 흑인에게 호의적이고 또 아닌지도 모두 기억해둔 덕분에 전쟁이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특정 시장이나 가게에는 발길을 끊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전쟁 중 귀한 물자를 놓고 어머니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였는데, 어머니는 그 무엇도 결코 잊지 않았으며,
용서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 P40

내가 다섯 살, 여전히 법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있던 시절, 처음 간학교는 135번가와 레녹스 애비뉴에 있는 지역 공립학교에 개설된 시각장애인 학급이었다. 학교 한구석에 있는 파란 나무 부스에서는 백인 여자들이 아이가 있는 흑인 어머니들에게 우유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그시절의 나는 허스트 무료우유기금에서 주는 빨갛고 흰 뚜껑이 달린 작고 귀여운 병에 담긴 우유가 정말 먹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것은 자선이고, 따라서 나쁘고 모욕적일 뿐만 아니라 우유가 미지근해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며 절대 받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두 언니가 다니던 가톨릭 학교에서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공립학교는 내 기억대로라면 언니들에게는 협박용으로 쓰이던 장소였다. 둘중 누군가가 잘못을 한다든지, 학교 성적이나 품행 점수를 나쁘게 받아오면 그 학교로 ‘전학시킨다는 식이었다. ‘전학‘이라는 말은 수십 년 뒤
‘주방‘이라는 말이 암시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 P41

영원한 도움의 마리 수녀님은 십자가의 형태를 한 압제를 휘둘러1학년을 다스렸다. 그는 기껏해야 그때 열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싶다.
덩치가 컸고, 아마 금발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엔 수녀들이 머리카락을 꽁꽁 감추고 다녔으니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눈썹은 금빛이었고, 성체수녀회의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유색인과 원주민 아동들을 돌보는 데 전적으로 헌신해야만 했다. 돌본다는 것이 꼭 마음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게다가 영원한 도움의 마리 수녀님은가르치는 일을 싫어하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반을 ‘페어리‘와 ‘브라우니‘라는 두 모둠으로 나누었다. 인종주의는 물론이고 색의 사용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에 와서는 어느 쪽이 우등생이고 어느 쪽이 문제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매번 브라우니 모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말이 너무 많아서, 안경을 깨뜨려서, 아니면 끝도 없는 행동 규범 중 또 무엇을 어겨서등등 그 이유는 수도 없었다. - P51

"발없는새는 날아가는 곳마다 가지 없는 나무를 찾는다"

하고 싶은 말이 가장 힘센 언어가 되어 내게서 쏟아져 나올 때면 그것들은 기억 속 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을 닮았고, 그러면 나는 지금 해야 할 모든 말의 의미를 다시금 평가해보거나, 어머니가 옛날에 했던 말의 가치를 다시금 검토하게 된다.

내 어머니는 말word과 특별하고도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언어language라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말을 시작한 것은 네 살이 되어서였다. 세 살이 되었을땐 안경을 통해 보이는 사물의 새로운 본질을 배웠고, 희한한 빛과 매혹적인 형상들로 이루어졌던 나의 세계는 차츰 본래의 시시한 윤곽을 찾아갔다. 그렇게 인식한 세상은 다채롭거나 혼란스러운 면에 있어서는예전만 못했으나 심한 근시 때문에 초점이 고르지 못한 눈으로 보던 세상에 비하면 훨씬 더 편안했다. - P57

삶의 육감적인 요소들은 가려져 있고 불가해했으나 암호화된 구문에 실려 등장했다. 어쩌다 보니 사촌들 모두가 시릴 삼촌이 "뱀뱀쿠" 때문에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탈장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것이 분명 "저쪽 아래와 관련 있는 문제임을 경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목에 담이 걸리거나근육이 당겨 기분 좋게 손으로 주물러주는, 아주 가끔 일어나는 마술 같은 일을 할 때 어머니는 척추를 마사지하는 것이 아니라 "잔달리zandalee를 깨웠다."
나는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 "코훔코훔에 걸렸고, 그러면 모든 게
"크로-보-소", 즉 뒤죽박죽이거나 적어도 약간 기울어졌다.
나는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다. - P59

오늘날까지도 내 마음속에 피카소가 그린 정물처럼 영영 살아 있는슬픔과 비애의 정수는, 바로 우리 집 부엌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다세대주택의 벽돌 외벽에 버려진 실크스타킹 한 짝이 비바람을 맞으며 걸려있던 쓸쓸한 풍경이다. 어머니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동생들을 돌봐야했던 큰언니를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한 손으로 창틀을 붙들고 매달려 있던 그 부엌 창문에서 보인 풍경이었다.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맞게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나를 컴컴한 부엌 안으로 끌어올려줬던 덕에 나는 한 층아래 통풍구 속으로 떨어지는 일을 면했다. 그 순간 느낀 공포와 분노는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회초리로 얻어맞은 건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버려지고 찢어진 채 벽돌 벽에 걸려 비를 맞고 있던 스타킹이 뿜어내던슬픔, 박탈감, 외로움이 기억난다. - P76

며칠 뒤, 수업이 끝나자 전교생이 반별로 강당에 모여 줄을 섰고, 수녀님들이 우리에게 푸른 잉크로 각자의 이름, 주소, 나이, 그리고 혈액형이라는 것이 새겨진 둥글납작한 크림색 뼛조각을 하나씩 줬다. 걸쇠없는 금속 사슬에 달린 이 원판 조각을 전교생이 목에 줄곧 걸고 다녀야 하며, 그동안 내내 절대로 벗으면 안 되고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체벌을 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동안 내내라는 말에는 무한이라거나 영원같이 그 자체로 구체적인생명력과 에너지가 담긴 것 같았다.
수녀님들은 조금 있으면 방독면이 도착할 거라며, 우리가 안전한곳을 찾아 부모를 떠나 시골로 가야 했던 가여운 영국 아이들 같은 신세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남몰래 그건 정말 신나는일이 될 텐데 하고 생각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바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였지만 도저히 그런 신세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차마 나오지 않았다. - P95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할 수 있던 가장 두려운 상황은 잘못을 저지르고 들키는 것이었다. 실수란 폭로, 어쩌면 절멸을 뜻했다. 어머니 집에는 오류를 범할 공간이 잘못을 저지를 공간이 없었다.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흑인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내면에 있는 충족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본뜬 대로 나는 몇 번의 내 다음 생이 지나간 뒤에 아보메의 진흙으로 만든 서늘한 방에서 만나게 될 세불리사만큼 검게, 그리고 외롭게 자라났다. 어머니는 백인 남성들의 혀에서, 당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인해 배운 온갖 교활하고 견제적인 방어술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이런 방어술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조금씩 죽었다. 모든 색채는 변하고 서로가 되었으며섞이고 나뉘고 무지개와 올가미로 흘러들어갔다. - P102

세인트마크플레이스의 성체수녀회 수녀들도 나를 내려다보는 태도이긴 했으나 최소한 그들은 수녀로서의 사명 속에 인종차별을 숨기기라도 했었다. 세인트캐서린학교, 자선수녀회 수녀님들은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장식도 핑계도 없이 인종차별을 일삼았으며, 나는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집에서도 도움받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땋은 머리를 놀려대자 교장인 빅투아르 수녀는 내가 "돼지꼬리‘ 머리를 할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머리 모양을 더 ‘적절하게‘ 바꿔주라"는 가정통신문을 나한테 들려 보냈다. - P105

전교생이 입던 푸른색 개버딘 교복은 아무리 자주 드라이클리닝을해도 봄이 오면 곰팡내가 풍겼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리로 돌아오면 내자리에 "냄새 나"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곤 했다. 블랑슈 수녀에게 쪽지를 보였더니, 그는 유색인들이 실제로 백인과 다른 체취를 풍긴다는걸 내게 알려주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못된 쪽지를 쓴 건 잔인한 일이기에, 내일 점심시간이 끝난 뒤 내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이 다른 아이들한테 나에게 잘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 P105

하지만 나는 너무도 내 어머니를 닮은 딸이었기에 남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파괴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난 우리 학년에서 제일 똑똑했다. 그런데 부반장으로 뽑히지 못했다. 무언가 엄청나게 잘못됐다. 억울했다.
기독교인의 의무로서 내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헬렌 램지라는 체구가 작고 다정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겨울 동안 자기 썰매를 빌려준 적도있었다. 그 애는 교회 옆집에 살았는데, 그날 학교가 끝난 뒤에 자기 집에 코코아를 마시러 오라고 초대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벗어나 안전한 우리 집을 향해 길 건너로 내달렸다. 책가방을 다리에 부딪쳐가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교복 주머니에 핀으로 고정해놓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따뜻하고 어둡고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나는 그대로 집 앞쪽에 있는 내 방까지 달려가서 책과 외투를방구석에 집어 던진 뒤 분노와 실망으로 꺼이꺼이 울며 그대로 소파베드에 몸을 던졌다. 혼자가 되고 나서야 지난 두 시간 동안 내 두 눈을 타오르게 했던 눈물을 마침내 쏟아낼 수 있었다. 나는 한없이 울었다. - P111

예전에도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싶어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너무 커서, 나중에는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절대 가질 수 없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반장선거도 마찬가지였을까?
내가 너무 간절히 원했던 걸까?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 그 말이었던 걸까? 어머니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원하면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쩐지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선거는 내가 간절히 원하면서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라고 처음으로 확신한 일이 - P111

었다. 제일 똑똑한 학생이 반장이 될 거라고 했고, 내가 제일 똑똑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건 내가 나 스스로 해낸 일, 그래서 반장이된다는 결과를 보장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제일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제일 똑똑한 학생, 그건 나였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되어주지 않았다.
어머니 말이 맞았다. 나는 선거에서 떨어졌다. 어머니 말이 줄곧 옳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팠고,
그 아픔 때문에 나는 아까만큼이나 격렬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식구가 있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 만큼 나는 빈집에서 마음껏 슬픔을 누렸다. - P112


"봐라, 새는 잊어버리더라도 덫은 결코 잊지 않는단 말이다! 내가 분명 경고했지!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울며불며 집에 돌아오다니, 무슨 짓이냐? 내가 백번은 말하지 않았니, 그 사람들 뒤꽁무니나 따라다니지말란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인 오줌싸개 녀석들이 너 같은 검둥이 꼬마한테 뭐라도 넘겨주길 기대했다니, 무슨 이런 얼빠진 게 다 있냐?" 퍽!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니?" 내가 어머니의 성난 주먹세례와핸드백 모서리를 피해보려 몸을 옹송그리자 어머니는 내 양어깨를 붙들었다.
"그래, 내가 바보 같은 반장선거 때문에 쓸데없이 울면서 집에 오지말라고 말하지 않았니?" 퍽! "우리가 널 학교에 보내주는 이유가 대체뭐라고 생각하니?" 퍽! "남들 일에 기웃거리지만 않아도 훨씬 잘 지낼거다. 울음 그쳐, 어서, 울음 그치라고!" 퍽! 어머니는 아까 내가 쓰러져울던 소파베드로 나를 질질 끌고 갔다.
"그래, 울고 싶어? 그럼 울 일을 만들어주마!" 이번에는 아까보다 내어깨를 살짝 잡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남들일 때문에 발 동동 구르는 바보짓은 그만하고 일어나라. 당장 나가서 얼굴 씻고 오거라. 사람처럼 굴란 말이다!" - P113

"선거가 공평하지가 않았다고요, 어머니. 그래서 운 거예요" 나는식탁에 놓인 갈색 종이봉투를 열었다. 상처받은 걸 인정하면 고통을 받게 된게 내 탓이 될 터였다. "반장선거 때문이 아니라 불공평한 게 싫었다고요."
"공평, 공평이라, 대체 공평한 게 뭐냐? 공평한 걸 바라거든 하느님얼굴이나 바라봐라." 바삐 손을 놀려 양파를 통 안에 집어넣던 어머니가동작을 멈추고 몸을 돌려 손으로 내 턱을 받치더니 우느라 퉁퉁 부은 내얼굴을 쳐들게 했다. 아까는 그렇게 날카롭고 노엽던 어머니의 눈은 이제 그저 피곤하고 슬퍼 보였다.
"아가, 공평하건 아니건 그걸 뭣하러 고민하고 있니? 그냥 너는 네할 일을 하고 남들 일은 남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거라." 어머니는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치워주었고, 나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분노가 가셨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봐라, 바보 같은 일로 몸부림을 치다가 머리가 다 엉망이 되었잖니. 얼굴이랑 손 씻고 와서 저녁으로 먹을생선 재우는 거나 도와다오." - P114

녀오자고"
미국의 인종주의는 부모님이 미국에 온 이래로 매일같이 헤쳐 나가야 했던 새롭고도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부모님은 인종차별을 개인적인 괴로움으로 취급했다. 두 분은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는 현실과 미국의 인종주의라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아이들을 가장 안전히 지키기위해서는 그것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아가 그 속성조차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백인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그들이 품은 악의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나에게 꼭 필요했던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도 역시 배우지 않고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고가, 절대 믿지 말라는그 사람들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를 지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게 참이상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어머니는 왜 백인이 아니냐고, 또 아버지와나처럼 문제적인 피부색이 아닌 것은 물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언니들과도 완전히 다른 피부색을 지닌 릴라 이모와 에타 이모는 왜 백인이아니냐고 물어보면 안될것 같았다. - P120

"하지만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옳지도, 공정치도 않았다! 심지어 나는 바탄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시까지 쓰지 않았던가.
부모님은 이런 부당한 일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몸을사렸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나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한테서 내 분노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두 언니마저도 그 어떤 이례적인 반미 행위도 일어나지않은 것처럼 구는 부모님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 했다. 미국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담은 편지를 쓴 건 나뿐이었다. 내가 습자지 일기장에 쓴 편지를 보여주자 아버지가 다음 주 사무실 타자기를 쓰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종업원의 피부는 희고 카운터도 흰색이었으며 내가 어린 시절을 떠나보낸 그해 여름 워싱턴에서 내가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도 흰색이었다. 워싱턴에 처음 갔던 그 여름의 하얀 열기와 하얀 보도블록과 하얀석조 기념물 때문에 여행이 끝날 때까지 구역질이 났으므로 결국 그 여행은 딱히 졸업 선물이라 하기도 뭣한 것이었다. - P123

띠 모양의 긴장이 달 표면에 부는 월풍처럼 내 몸의 앞뒷면을 휩쓸고 있었다. 다리 사이로 살짝 볼록한 생리대의 촉감이 느껴졌고, 날염블라우스 앞섶에서 빵나무 열매 냄새가 옅게 피어오르는 것도 느꼈다.
그것이 내 몸에서 풍기는 여성의 내음, 따뜻하고, 수치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러운, 너무나 다디단 향이었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뒤 그날 내게서 풍기던 그 냄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상상한다. 손을 씻고 물기를 훔친 뒤 앞치마 끈을풀어 단정하게 벗어놓은 어머니가 소파에 누운 나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또 빠짐없이, 우리는 서로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어루만진다.
마늘의 속껍질을 빨리 벗겨내려고 절구 밑면의 단단한 모서리로내리쳐 으깼다. 마늘을 썰어 절구에 던져 넣고 흑후추와 셀러리 잎을넣었다. 흰 소금을 뿌려 마늘과 후추와 옅은 녹황색 셀러리 잎을 눈처럼소복이 덮었다. 양파와 피망 몇 조각을 넣고 절굿공이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 그 에세이는 『빼앗긴 자들』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 새로운 유토피아 정치학」에 서문으로 쓴 글이었어요. 전 이 책에 실린 논의 대부분이 대단히 지적이고 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친근하고,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감정도 이용한다는 사실에 좀 놀랐어요.
저 역시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 악감정은 없어요. 저도 결국엔지식인인 걸요. 하지만 아이디어가 교훈이 되거나, 독선이 되거나, 그냥 의견이 되면 성가시죠. 제가 맞서려고 애쓰던 건『빼앗긴 자들』에 대한 반응만이 아니에요. 그 작품이 유독 아이디어밖에 없는 것처럼 다뤄지긴 하지만, 제가 반대한 건 SF를 포함해 모든 문학을 지적으로만 분석하려 드는 경향이에요. 문학을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라거나 "저자의 메시지는 뭘까?" 같은 질문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격분의 한숨을 내쉰다) 어떤 예술이든 다른 말로 바꿀 수 있는 언어적 사고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 안에서 벌어지는다른 것도 비평에 포함해야만 해요. 어떤 소설이나 시도 분명한 한 가지 의미만으로 환원할 순 없어요. - P98

이런 사고방식은(디킨스는 그 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다뤘어요)아이의 성장 전체에 손상을 입혀요. 상상력이란 우리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상상력을 아끼거나 방해하거나 업신여기는 건 끔찍한 짓이고, 무엇에 대해서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어리고 성장 중인 정신에는 특히 해로워요. 아이들은 상상하고, 상상과 실제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전 아이들이 대부분의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별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은 동화를 알아요. 그리고 거짓말도 알 때가 많아요. 어쨌든 이성과 상상, 둘 다 훈련이 필요하지요. 몸을 움직일 때처럼 이성과 상상도 운동을 해야 해요. 지금도 합리적인 사고는 어느정도 훈련하지만, 상상력은 미국의 교육에서 점점 설 자리를잃고 있어요. 이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에요. - P101

「사용 설명서」 중에서시인이 대사로 지명됩니다. 극작가가 대통령으로선출됩니다. 새로 나온 소설을 사려고 건설노동자들이 사무장들과 같이 줄을 섭니다. 어른들이 전사원숭이들, 애꾸눈 거인들, 그리고 풍차와 싸우는 미친 기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길잡이와 지적인 도전을 찾습니다. 문해력은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글쎄요, 어디 다른 나라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 나라에서는 아닙니다. 미국에서 상상력이란 보통 TV가 고장 났을 때나 쓸모 있을지 모르는 뭔가로 간주되거든요. 시와 희곡은 실제 정치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소설은 학생과 주부, 그리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읽는 겁니다. 판타지는 어린아이와 모자란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고요. 문해력이란 사용 설명서를 읽을 수 있다는 거랍니다! 저는상상력이 인류가 가진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주 보는 엄지의 유용성을 넘어설 정도죠.
저는 엄지손가락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미국만은 아니에요. 유럽 문학도 포함이죠. 문제는 우리가 예전처럼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살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난200년간 관계가 엄청나게 달라졌죠. 예전에는 동물들에게서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삶의 일부였고, 밭에서 함께 일하는동료로서나 식량 공급원으로서, 양털 공급원으로서 인간의복지에 꼭 필요한 존재였죠. 지금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까마득한 거리에 두고 얻어요. 지금은 다른 동물과 한방에 있지도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100년 전이었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전 정말 모르겠어요. 아마 그 상황을 어떻게든좋아하거나 아니면 참는 수밖에 없겠죠. 요새 아이들은 인간외에 다른 생물은 만져본 경험도 없이 성장해요. 우리가 소외된 건 당연하죠. 우린 지구상에 다른 생물이라곤 존재하지도않는다는 듯이 도시에 살 수 있어요. 사람들이 무관심해지고,
종 하나쯤은 멸종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놀랍지 않아요. 우린 계속 다른 존재를 접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요.
전 동물을 다루는 문학과 어린이책 같은 문학이 그들과 최소한의 접촉이라도 하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아주 중요하고요. 그렇지만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문학계 사람이 많진 않아요. 문학계 사람들은 동물을 다룬다면 감상적인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해버리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감상주의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나쁜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 P104

「책 속의 짐승」 중에서


왜 대부분의 아이와 많은 어른은 진짜 동물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 양쪽에 반응하고, 우리의 지배 종교와 윤리들은 인간이 이용할 대상이라고만 보는 존재들에게 매혹되고 또 그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할까요. 산업사회에서는 예전처럼 우리와 일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 식량의 원재료나 우리에게 이득이 될과학 실험 대상, 동물원과 TV 속 자연 프로그램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진기한 존재들, 우리의 심리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두는 애완물일 뿐인데?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동물 이야기를 주고 동물에 대한 관심을 북돋아주는 건, 우리가 아이들을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열등한 존재로, 정신적인 ‘원시‘인으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린 애완동물과 동물원과 동물 이야기들을 어린이가어른으로, 배타적인 인류로 발전하는 길의 ‘자연‘스러운 단계로 보는 거죠. 지성도 없고 무력한 아기에서 시작해서 지적인 성숙과 지배의 영광을 획득하기까지 거쳐야 할 사다리쯤으로요. 존재의 대 사슬만물이 가장 낮은 무생물부터 가장 높은 신까지 계층적으로 연결되어질서를 이룬다는 개념이라는 계통 발생의 단계를 반복하

는 개체 발생이랄까요.
하지만 그 아이가 찾는 건 뭘까요. 아기 고양이를보고 흥분하는 아기, 「피터 래빗』을 또박또박 읽는여섯 살짜리 블랙 뷰티』를 읽으면서 우는 열두 살짜리라면? 문화 전체가 부정하는데 그 아이는 알아차리는 게 무엇일까요?

네이먼

그 후에 작가님은 "우리는 세상을 우리 인간들과 우리의 소유물만으로 축소했지만, 그 세상에 맞게 태어나지는 않았다"고하셨죠. 마치 비극적인 공포소설 같네요. 우리가 어떤 세상을만들어놓고서, 우리에게 잘 맞지 않고 우리 스스로만을 이야기하는 그 세상에 대한 문학을 만들다니요.



르 귄


우리가 그 세상에 살도록 맞춰지기는 했죠. 하지만 그 세상은우리가 살 수도 있을 세상에 비하면 너무 작은 일부예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공포소설 느낌은 덜하고 실존적인 실수라는 느낌이 더해지니까요. - P109

사라지는 할머니들 중에서


예외
남자의 소설을 논하면서 저자의 성별을 언급하는경우는 몹시 드물다. 여자의 소설은 저자의 성별과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아주 잦다. 표준은 남성이다.
여성은 표준의 예외, 표준에서 배제된 존재다.
비평에서나 서평에서나 이 예외와 배제를 실천한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가 위대한 영국 소설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비평가는 애써 그녀가 예외임을 보여줄 수 있다. 멋진 요행이라고 말이다.
예외와 배제의 수법은 다양하다. 여자 작가는 소설의 ‘주류‘에 속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그 작가의 글은 ‘독특하며 후대 작가들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않는다. 어떠한 ‘컬트‘의 대상이다. 그녀는 매력적이고, 우아하며, 마음을 저미고, 감성적인) 연약한 온실의 꽃이며 그러니 남성 소설가의 (강력하고, 선이 굵고, 대가다운 활력과 경쟁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제임스 조이스는 거의 나오자마자 정전에 올랐다.
버지니아 울프는 정전에서 배제되거나 마지못해 받아들여졌으며 그러고도 수십 년간 의구심을 샀다.
정교하고 효과적인 서술 기법과 장치를 갖춘 『등대

로가 기념비적으로 막다른 길인 『율리시스』보다후대의 소설 쓰기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침묵, 유배, 교묘함‘을 선택하고 은둔 생활을 한 제임스 조이스는 스스로의 글과 경력 외에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 나라에서 지적, 성적, 정치적으로활발한 사람들이 이루는 비범한 집단으로 꽉 찬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내내 다른 작가들을 읽고, 서평을 쓰고, 출간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연약한 쪽이고, 버지니아 울프가 굳센 쪽이다.
조이스가 컬트의 대상이고 우연이며, 울프는 20세기 소설의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풍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전주의자들은 결코 여자에게 중심을 부여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반드시 주변에 남겨져야한다.
어떤 여자 소설가가 1급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배제 수법은 여전히 작동한다. 제인오스틴은 존경을 많이 받지만, 그래도 어떤 본보기로 여겨지기보다는 독특하고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우연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실종될 순 없어도, 완전히포함되지도 않는다.
작가의 생존기에 일어나는 폄하, 누락, 예외는 작가의 죽음 이후 일어나는 실종의 준비 작업이다.

르 귄


오, 데이비드. 그건 완전 벌집을 쑤시는 질문이에요. 사람들은 수십 년째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죠.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을 어디까지 대변할 수 있는가? 제 아버지는 인류학자였고 이 질문과 정면으로 부딪쳤어요. 이해하려는 시도는언제 동의 없는 가져다 쓰기가 되어버리는가? 이 문제는 물론 백인이 인디언 권은 당사자들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 ‘북미 원주민‘이라는 표현보다 인디언이라는 표현을 고수했다의 목소리로 쓸 때 극심하게 눈에 띄었죠. 페니모어 쿠퍼 19세기 작가로, ‘개척자』 『모히칸족의 - P116

최후』 『대평원』을 포함해 5개의 소설을 엮은 ‘가죽 스타킹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시리즈는 특히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를 그린다 때부터요. 그 작가들은, 당시에는 문학적인 목소리가 없었지만 분명 자기들만의구술 문학과 자기들만의 목소리와 자기들만의 견해가 있었던인디언들의 목소리를 멋대로 가져다 썼어요. 인디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죠. 다 백인들을 통해 해석되어야 했어요.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나요. 여자들에게 문학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목소리가 없었던 수천 년 동안은 남자들이 여자를 대변했죠. 그것도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에요. 하지만 좋아요, 그렇다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말할 수 없다는 데까지정치화해버리면, 난장판이 되어버려요.  - P117

그러다 보면 아무도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을 대변할 수 없다고 해야 하니까요. 이게 다른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되면 또 꼬이지만요. 물론 다른 동물에게 목소리는 없죠. 원래 그렇게 타고났고, 우리처럼언어를 쓰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린 어느 정도까지 대변할 수 있을까요? 아주 제한적인 정도까지밖에 안 돼요. 그렇다고 우리가 동물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동물에게감정이 없어서라거나, 우리가 동물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동물이 생각을 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행동과학자들처럼 굴 필요는 없죠. 심지어 비트겐슈타인처럼,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할필요는 없어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존재의마음을 상상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상대를 멋대로 이용하지 않도록, 매 걸음을 아주아주아주 조심해야죠.  - P117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반으로 추론할때도 많은데, 사실 그게 애트우드의 SF가 하는 일이죠. 지구에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 특히 정치적인 방식을 가져다가 그걸 기반으로 추정한 미래를 그리면서 끔찍한 가정, "세상에, 이렇게 되고 말 거야"를 보여주는 거예요. 하지만 사실 그건오래된 SF 기법이에요. 왜 자기 작품이 SF라고 불리기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몇 가지 이유를 상상하기가 어렵진 않죠. 분명히 출판사에서도 애트우드가 ‘장르 작가‘라고불릴까 봐 싫어할 테고요. 잘 팔리지도 않을 테고. 하지만 마거릿 애트우드는 그런 우둔한 이유에 영향받기에는 너무 영리하고 복잡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게 서로를 좋아하는 작가들로서 우리가 계속 나누는 대화에 가끔 굉장한 불편을 초래하죠. 그냥, 제가 SF를 쓸 때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내가SF를 쓴다는 것도 안다고만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전 그 작품에 다른 이름이 붙게 하지 않을 거라는 말도요. 다만 그건 제가 SF를 쓰지 않을 때도 똑같아요. 제가 ‘SF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SF가 아닌 작품을 SF라고 불러주는 것도 원치 않아요.
이런 범주가 개인적으로 제게는 아주 많이 중요하거든요. 전언제나 애트우드의 책을 리뷰할 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하죠애트우드는 나중에스스로가 SF를 쓴다는 점을 시인했고, 르 귄과 이 문제를 두고 주고받은 대화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 P124

진지한 문학에 대하여밤중에 뭔가가 그녀를 깨웠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아주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그런데 누구지? 왜 신발이 젖었지? 비는 오지 않았는데, 저기, 다시 그 무겁고 젖은 발소리다. 하지만 몇 주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는데, 폭염만 계속됐는데, 갑갑한 공기와 곰팡이 냄새, 아니 썩은 내인가, 아주 오래된 살라미 아니면 초록색이 되어버린 간 소시지에서 나는 것 같은 달콤한 썩은 내. 아, 또다. 삑삑 소리가 나는 느린 발걸음, 그리고 썩은 냄새가 더 강해졌다. 뭔가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썩어가는 살을 뚫고 나온 발꿈치뼈가 부딪치는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그게 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건 죽었는데, 죽었단 말이야! 저주받을 셰이본 다른 진지한 작가들과 힘을 합쳐 그것의 오염된 손길에서 진지한 문학을 구하기 위해 묻어놓았더니 그걸 무덤에서 끌고 나왔어. 그 텅 빈 데다 뾰루지투성이인 얼굴, 썩어가는 눈동자의 무감각하고무의미한 눈길이 얼마나 무서운지! 셰이본 그 바보는 뭘 한다고 생각한 거야? 진지한 작가들과 진지

한 비평의 끝없는 의식들에 관심도 안 둔 거야? 공식적인 추방 의식들에 반복된 저주, 심장을 관통하고 또 관통한 말뚝들, 신랄한 비웃음, 무덤 위에서끝도 없이 춘 엄숙한 춤들에 하나도 관심을 안 뒀어? 그 작자는 야도 Yaddo, 뉴욕의 예술가 커뮤니티의 순결을 보존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사이파이와 반리얼리즘 소설을 구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도못 한 거야? 코맥 매카시는, 비록 터무니없이 애매한 어휘를 훌륭하게 사용해대는 걸 빼면, 그의 책에있는 모든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에 나라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다룬 많고 많은 초기 SF 작품들과 놀랍도록 흡사하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사이파이 작가라곤 할 수 없다는 걸, 코맥매카시는 진지한 작가고 그러니까 정의상 장르를 쓴다는 품위 떨어지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야? 셰이본은 어떤 미친 멍청이들이 퓰리처상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주류‘라는 말의성스러운 가치를 잊어버렸단 말이야? 아니다. 그녀는 삑삑 젖은 발소리를 내며 침실까지 들어와서 이제는 그녀를 굽어보는 그 물건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로켓 연료와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의 고향 크립톤에서 온 물질로, 슈퍼맨의 힘을 약화한다의 악취가 풍기고, 세찬바람 속 황야의 낡은 저택처럼 삐걱거리며, 뇌는 과일처럼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두 귀에서 작은 회색

세포들을 뚝뚝 흘리는 그 물건을 하지만 그녀의 주목을 요구하는 그 물건의 힘은 강력하고, 그 물건이손을 뻗자 그녀는 반쯤 썩은 손가락 하나에 낀 타는 듯한 금반지를 보았다. 그녀는 신음했다. 어떻게그 물건을 그렇게 얕은 무덤에 묻고는, 버려두고 그냥 걸어올 수가 있었을까? "더 깊이 파요, 더 깊이파!" 그렇게 외쳤건만, 그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자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녀에게 꼭 필요한 다른 진지한 작가와 평론가들은 지금 어디 있나? 그녀의 『율리시스』 책은 어디있을까? 침대 옆 협탁 위에는 독서등을 받치는 데쓴 필립 로스 소설책 한권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얇은 책을 들어 끔찍한 골렘히브리 신화에서 사람의 형상을하고 움직이는 존재. 현대 판타지에서는 종종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흙 인형이나 괴물을 가리킨다 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나그걸로는 부족했다. 필립 로스도 그녀를 구할 순 없었다. 괴물이 비늘 덮힌 손을 그녀에게 얹자 반지가타는 석탄처럼 그녀를 지졌다. 장르가 그녀의 얼굴에 시체의 입김을 불어넣자 그녀는 지고 말았다. 그녀는 더럽혀졌다. 죽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그녀는이제 결코 문예지 집필 의뢰를 받지 못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혜자


일생을 연기에 바친 배우는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만이 아니라 시대의마음을 사로잡는다. 현실과 허구를 오가면서 모두의 희망과 아픔과 욕망이 그녀를 통해 경이롭게 표현된다. 그리하여 세상의 찬탄을 받는 스타가 되지만 그만큼 그녀는 거대한 고독과 허무 속에 놓인다. 그리고 그고독과 허무가 토대가 되어 스크린 속에 또 다른 얼굴로 재탄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김혜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중·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었으며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길」을 본 후 젤소미나 같은 역을 마음에 품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1기에 합격했으나 자신의 연기에 실망해 이내 그만두고, 도망치듯 떠나 결혼해 첫아이를 낳고육아에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망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고, 스물일곱 살 때 연극으로 다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의 대표적인 극단 ‘실험극장‘에서 연기의 기본부터 다시 배웠으며, 열망에 훈련을 더한 시기를 거쳐 ‘민중극장‘, ‘자유극장‘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면서 ‘연극계의 신데렐라‘ 로 떠올랐다. 이후 1969년 개국한 MBC에 스카우트되어 본격적으로TV 드라마에 출연하며 수많은 배역으로 살아왔다.
「전원일기」 「모래성」 「겨울 안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뭐길래] [엄마의 바다] [여 ] [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 [엄마가 뿔났다] ]청담동살아요」 「디어 마이 프렌즈」 [눈이 부시게] [우리들의 블루스」등 10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연극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19 그리고 80」 「셜리 발렌타인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주인공 역을 했으며, 영화로는 「만주」 「마요네즈」 「마더」[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비록 현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더라도 그 사이에서 바늘귀만 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기를 하는동안 살아 있음을 느꼈고,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1966년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기상을 시작으로 MBC 연기대상,
KBS 연기대상, 마닐라 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LA 비평가협회상 등에서수차례 수상했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 4차례, 여자최우수연기상 4차례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것은 연기밖에 없습니다. 배우나 정치인이나 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자고 하는 것인데, 정치보다는 연기를 통해 줄 수 있는희망이 더 크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나는 배우가 훨씬 더 좋습니다.
하지만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많습니다. 나이가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오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수준은 나날이 높아져 가는데 정치인들은 왜 맨날 그 모양일까요? 무식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무조건 어거지를 쓰고 선동을 해서 국민을 갈라치기해한쪽의 표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국민이 몹시 불편해한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불안해한다는 걸. - P353

우리가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를 논하기 전에 정말 이 사람들이 나라를 생각하나, 이 사람들이 정말 통치 철학이 있는 사람들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 패거리들이 모여 그 거짓말을 옹호합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 패거리끼리 나눠 먹으면서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가장 저질 드라마를 - P353

보는 것 같습니다.
배우는 훌륭한 대본이 있어야 빛이 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대본도 형편없고 출연진도 형편없습니다. 그냥 삼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무 철학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런걸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초보 작가가 써도 저렇게 쓰지는 않습니다. 비서들이고 측근들이고 다 있는 사람들이, 나랏돈으로 월급 주는 보좌관이 아홉 명이나 된다는 이들이 형편없는 드라마를 매일 쓰고 있고, 형편없는 대사를 매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연기밖에 모르는 국민이지만 어떻게 저렇게까지 무식할 수가 있고, 저렇게까지 생각이 없을 수가 있나.
보는 사람이 창피할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얼굴 들고 다니는 거보면 수치심도 없고 부끄러움을입니다. - P354

문제는 저 드라마를 안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국민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까. 더구나 피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행세하는 자들이니까 더욱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돈으로 밥 먹고 헛소리하는 것은 자유이니까 뭐라 할 수 없지만, 다 국민 돈을 물쓰듯 쓰는 사람들입니다. 다시보기 싫은데 안 볼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이 나라에 태어난 숙명일까요?
뛰어난 영화, 뛰어난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예술입니다. 관객을 매혹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 - P354

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대사가 관객을 창피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감동과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선동하고 거짓말하고, 자신이 한 일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거기에 되지도 않는 연예인과 소위 작가라는 자들까지 가세해편가르기를 부추깁니다. 코미디에 빗대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사악한 코미다를 하는 자들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자존심이 상합니다. - P355

그러면서도 이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게 나는 너무 감사합니다. 곧 망할 것 같은데 이렇게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 국민이성실하게 살아서 그런 것입니다. 아침에 보면 출근길에 그렇게차가 막히는데도 매일 출근하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그런사람들의 힘 덕분입니다. 그 마음이 합쳐져서 나라가 지탱되고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큼 머리가 있고, 지성이있고, 철학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정치를 겪고 전쟁을치르면서 진정한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청문회나
"국정감사 같은 것을 보면 유치해서 볼수가 없습니다. 저들은절대로 나라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봐 줄 수가 없는 하류인생들입니다. 정당정치가 패거리 정치라는 의미는 아닐 텐데, 웃기는 게 아니라 슬픔 뿐입니다. - P355

사람이 근본은 있어야 합니다. 설령 가난하게 자랐어도 사람의 근본을 잃지 않은 사람이 정치에 나서야 합니다. 국민들은계속 마음이 허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누가 옳은가,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서고 앞으로 나아가나, 이러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하는 짓을 보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저럴래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나만 그런 걸까요? 눈 가지고 귀 가진 사람은 정치인이라는 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세운 나라인데, 얼굴 두꺼운 인간들이자기 패거리들의 권력 유지만을 위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저 정도는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면서본 가장 무능력하고 질 낮은 사람들입니다. 기회주의적이고 후안무치한 연기를 하는 데는 대종상 감입니다. - P356

리젯 우드워스 리스라는 시인이 쓴 ‘삶에 대한 작은 찬가‘라는 시를 벽에 붙여 놓고 가끔씩 소리내어 읽습니다.


살아 있음이 기쁘다. 하늘의 푸르름이 기쁘다.
시골의 오솔길이, 떨어지는 이슬이 기쁘다.
개인 뒤엔 비가 오고 비온 뒤엔 햇빛난다.
삶의 길은 이것이리, 우리 인생 끝날 때까지.
오직 해야 할 일은 낮게 있는 높이 있든
하늘 가까이 자라도록 애쓰는 일.


나는 살구꽃 필 때가 좋습니다. 커다란 나무에 조그만 꽃들이 자욱하게 서려서 멀찌감치 서서 보면 분홍색이 연하게 떠오릅니다. 한 2, 3일 행복하게 해 주고 나서, 우리가 모르는 미풍에도 후룩 집니다. 무게도 안 느껴질 듯한 자그마한 새가 앉아도 떨어집니다. 눈송이보다 더 가벼운, 손톱만 한 나비들이 내려오는 것처럼, 그리고 곧이어 라일락이 한창입니다. 담 밖으로가지가 나도록 라일락을 많이 심었습니다.  - P364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다똑같은 현상이 일어날까요? 세상에서가장 아름다운 사람도,
볼품없는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 이게 나이를 먹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약간 슬프기도 하고 약간 기쁘기도 합니다.
밤에 잠을 푹 안 자서 그런지 불안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쓸쓸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이를 떠나서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밀려드는 감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대본을 쓰고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그 불안감을 밀어냅니다. - P366

 ‘끝나는 날까지 단정하게 살리라.‘라고 피곤하고 귀찮아서 흐트러져 있고 쓰러져 있다가도 ‘아니야, 누가 보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도 단정하게 사는 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하면서 힘을 내어 일어납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싶습니다.
배우는 속옷도 잘 갖춰 입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사고가 나거나 갑자기 죽었을 때 병원이나 사람들이 내몸을 수습해줄 때 창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귀찮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단정히 합니다.
- P367

이제는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별로 없는 나이입니다. 매일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삽니다. 배우로서 마지막 생을 잘끝마치고 싶습니다. 인생 고비 때마다 ‘이만하면 감사하다‘며나를 다독였습니다.
배우는 죽지 않으면 연기해야 합니다. 누구도 내 역할을 대체할 수 없으니까. 링거 맞고 촬영장에 나간 적도 수없이 많고,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병원에서 녹화했습니다. 대중에게 늘 그리운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연기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 연기하는 것,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 두 가지만으로도 벅찹니다. 둘 다 잘마무리하고 싶습니다. - P370

늙어 가는 사람은 늙음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김남조 시인의 이 시를 좋아합니다. ‘자책과 놀며‘라는 제목의시입니다.


내가 지쳤다는 사실을
자책한다
나태와 안일 그 피부병을
자책한다

이다지 감미로운 - P370

시간 죽이기를
자책한다

미지근한 온도
희석된 긴장
절망보다도 무개성한 허탈을
자책한다

달력엔
자책의 날짜들만 잇달아
숙달 외길을 달리는
자책 취미를
자책한다

많지 않은 세월에
자책과 노느라
나의 밤낮이 바쁘다
하여 바쁘게
자책한다 - P371

그리고 저녁이 옵니다. 3층 내방 창문 너머로 저녁이 오는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옅은 색조의 어둠이 점점 짙어져 가면서 나중에는 나무들도 꽃들도 그 어둠에 몸을 맡깁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또 강하게.
나를 깨우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연기할 때가 아니면 이렇게 늘쩍지근하고 게으른 사람인데, 그럴 때마다 내 생각을깨우쳐 주고, 자극을 주는 분들이 있어 왔습니다. "김혜자, 일어나!" 하고 말해 주는 것 같은 이들이 나를 정신나게 하고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고비고비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살게 했구나 하는 것을. ‘아, 정말 기가 막힌다. 신은 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닐 텐데, 어떻게 굽이굽이마다 고마운 사람들을 보내 주셨을까?‘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일부러계획을 한 것도 아닌데, 나를 생각해 주고 끊임없이 일을 하게해 주는 사람들, 살아야 할 이유를 갖게 해 준 그 사람들이 얼 - P372

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인생은 기억할 단 하루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로 빛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생을 살았다생각합니다. 나는 참 축복받은 배우이구나 합니다. 언제까지가나의 삶일지는 모르지만, 남은 삶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실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봅니다. 그리 해 주시기를 신께 기도하며 창을 닫습니다. - P373

김혜자


일생을 연기에 바친 배우는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만이 아니라 시대의마음을 사로잡는다. 현실과 허구를 오가면서 모두의 희망과 아픔과 욕망이 그녀를 통해 경이롭게 표현된다. 그리하여 세상의 찬탄을 받는 스타가 되지만 그만큼 그녀는 거대한 고독과 허무 속에 놓인다. 그리고 그고독과 허무가 토대가 되어 스크린 속에 또 다른 얼굴로 재탄생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김혜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중·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었으며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길」을 본 후 젤소미나 같은 역을 마음에 품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1기에 합격했으나 자신의 연기에 실망해 이내 그만두고, 도망치듯 떠나 결혼해 첫아이를 낳고육아에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망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고, 스물일곱 살 때 연극으로 다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의 대표적인 극단 ‘실험극장‘에서 연기의 기본부터 다시 배웠으며, 열망에 훈련을 더한 시기를 거쳐 ‘민중극장‘, ‘자유극장‘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면서 ‘연극계의 신데렐라‘
로 떠올랐다. 이후 1969년 개국한 MBC에 스카우트되어 본격적으로TV 드라마에 출연하며 수많은 배역으로 살아왔다.
「전원일기」 「모래성」 「겨울 안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뭐길

‘엄마의 바다 「여 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 엄마가 뿔났다」청담동살아요」 「디어 마이 프렌즈」 눈이 부시게 우리들의 블루스」등 10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연극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19 그리고 80」 「셜리 발렌타인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주인공 역을 했으며, 영화로는 「만주」 「마요네즈」 「마더」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비록 현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더라도 그 사이에서 바늘귀만 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기를 하는동안 살아 있음을 느꼈고,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1966년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기상을 시작으로 MBC 연기대상,
KBS 연기대상, 마닐라 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LA 비평가협회상 등에서수차례 수상했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 4차례, 여자최우수연기상 4차례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삼십 대 끝자락이던 때, 혜자 님과 산으로 들로 긴 여행을 다녔습니다. 영화 ‘마더」촬영지가 전국에 흩어져 있었던 덕분이었는데, 그만큼 저나 촬영감독, 프로듀서 모두 아름다운 로케이션 찾기에 한껏 욕심을 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영화를 보았을 때, 모두가 단번에 깨닫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 최고의 풍광은 무엇보다도 혜자 님의 얼굴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카메라는 점점 더 혜자 님의 커다란 두 눈을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는것을. 그 신비로운 두 눈을 통해 그분의 영혼을 들여다보았다… 라는 식의 상투적인표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해 가을과 겨울. 그분의 두 눈이 어떻게 시네마스코프의 드넓은 캔버스를 집어삼켜 버리는지 카메라를 통해 생생히 지켜보았습니다. 경이로웠습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이 칭송해 온 혜자 님의 명연기에 대해 제가 굳이 어떤 말을덧붙일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그 놀라운 섬광 같은 순간들이 필름에 담겨지기도 전에,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먼저 맨눈으로 목격했다는 것은 저에게 분명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의 행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혜자 님의 눈빛에 어울리는 맑고 깊은 이야기를 써낼 수 있기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 봉준호(영화감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 여자가 지금 현실이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역을 했습니다. 보는 사람들을절망에 빠뜨리는 역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삶에 절망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내가 맡은 역으로 그 절망을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절망적이어도 저 멀리 희망이 보여서 비집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역을 했습니다. 형편없는 몰골의 역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 여자에게 희망이 기다리고 있나?‘
그것을 따졌습니다.
누구나 날개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않습니다. 내 살을 뚫고 나올 뿐입니다. 내 어깨에서 얼마나 아프게 나왔겠는가, 그 날개. 등가교환과 같은 것입니다. 날개깃이살을 뚫을 때 얼마나 아프겠는가.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공이되고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뚫고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 P138

하지만 모든엄마는 나의 일부가 확대된 것입니다. 「겨울 안개」는 암에 걸려가족들 사랑 속에 죽는 엄마였고, 「사랑이 뭐길래」는 호랑이같은 남편 밑에서 쥐여사는 엄마였습니다. 장미와 콩나물은무식하지만 경우 바른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마더」는 아들을보호하기 위해 모성이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차갑고 텅 빈 엄마였습니다.
「전원일기」 덕분에 나는 많이 성숙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원일기」가 내 인생에 나타나 준 것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잠깐의 배역을 맡았던 사람들이든 끝까지 함께한 연기자들이든, 최불암 배우나 고두심 배우, 김수미 배우든모두가 내 연기 인생을 관통한 만남이었고, 최고의 만남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지금도 양촌리에 가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또 어떤 때는, 우리가 이 다음에 죽으면 어딘가에서 다 모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함께 다시 만나 이번 생에서 우리가 한 「전원일기」를 이야기하면서, 그때 참 행복했다고 웃으며 말할 것 같습니다. - P147

그래서 내가 대발이 엄마 역을 맡고, 점잖은 역은 윤여정 배우가 맡았습니다. 윤여정 배우는 뛰어난 연기자라서 그 역을훌륭하게 해 냈습니다. 나는 참으로 신에게 감사합니다. 얼마나나에게 이 역저역을 시키셨는지.
감정적으로는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 더 순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김정수의 작품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연기자로서는 단연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선호했습니다. 김정수 작가도 당연히 작가이니까 극단적인 면이 있지만, 그이는 그것을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표현됩니다. 김수현 작가는 박박 긁고, 할퀴고, 몸서리쳐지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두 여자가 막상막하입니다. 두사람 덕분에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생각하면 배우로서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여자입니다. - P212

나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며 모든 것입니다. 배우는
"이만큼 하면 됐다.‘거나 ‘이 정도면 성공했다.‘라고 멈춰서는 안됩니다.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서 해야 합니다. - P213

나, 아들, 딸, 또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그 사람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죽을 줄 알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다정했을 것이고, 한 가지라도 더 신경 써 주었을 것입니다. 걱정도 덜 끼치고, 떠날 때 내 염려 안 하도록 자립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죽으리라는 생각을 어떻게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을까요?
얼마나 바보 같은가요? ‘어, 정말 이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네.
하고 느끼게 할 줄 몰랐습니다. 언제나 내가 먼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떠났을 때 충격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그런데 남편 문상을 온 사람 중에 무좀 양말을 신고 온 이가있었습니다. 슬픈 와중에도 그 발가락 모양이 어찌나 우습던지울면서 얼굴을 가린 채 웃었습니다. 인생은 그만큼 부조리의연속입니다. - P220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가끔 사람들로부터 ‘저렇게까지 세상물정을 모를 수 있나?‘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들 임현식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습니다. 그런 일들로 내가 속상해하고 있을 때 아들이 뒤에 와서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순진한지는 아빠랑 나만 아는데…. 아빠는저세상으로 떠나고, 우리 엄마 어떡하나.…."
정말 그랬습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뒤에서 희생한 다른 이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곳은 없습니다. 내가 남편에게도 잘했고, 아이들에게도 너무나좋은 엄마였고, 그리고 연기도 빼어나게 잘했다? 그런 건 있을수 없습니다. 나는 배우로서 살아온 것 말고는 모든 부분에서부족한 여자였습니다. - P221

내 아들 임현식에게도 온통 용서받을 일뿐입니다. 내가 낳은아들인데도 온전히 첫번째 순위로 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제나 첫 번째였습니다. 내가 대본을 생각하면서 멍하니 앉아 있으면 아들은 "엄마 주위에 담이 쳐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고. 그래서 아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옷을 붙잡고 떼쓰는 일을 나한테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대본만 들면 내 방에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얼마나 쓸쓸하게 컸을까요? 아들이 커 가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꿈을품고 있는가를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들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엄마이지만 그런 말을 할 상대가 아니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없이 미안합니다. - P222

나는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이 그냥 멍하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본 속 여자가 머릿속에 가득이었습니다. 날마다 그러했기 때문에, 어린 딸이 배 아프다고 하면 "아가, 이리 와." 하고 안아 주었지만, 대본 속 역할을 생각하듯이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대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 딸은 나를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아이들을 낳긴 낳았지만 내가 하는 배역을 더 많이생각하느라 아이들에게 전력투구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라고할 수도 없었습니다.
생에 감사합니다. 나는 그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천성적으로없는 사람입니다. 내 딸 임고은이 언젠가 내 대본 뒤에 써 놓은글이 있습니다.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생각해. 나도 엄마 같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어‘ - P223

사람들은 내가 현모양처인 줄로만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살림도 못하고, 대본만 받으면 그날부터 대본 속 인물이되어 버려서 식구들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배우이니까 당연하다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우로서 잘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남긴 자잘한 상처들이 흐지부지 묻히지 않도록 가족에게 상처를주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떳떳하지 못하면정말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나를 배우로 인정해 주는 가족의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연기에 집중하면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 P224

어떤 이는 나에 대해 ‘김혜자는 자신을 비워 내고 캐릭터를받아들인다기보다 언제나,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게 비어 있다. 마치 일상이 없고 늘 배우로만 사는 사람처럼, 아니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사는 집을 옮겨갈 뿐 현실적 인물이 아닌것처럼 배우로 존재한다.‘라고 썼습니다(대중문화전문기자 홍종선), 나 스스로도 대본을 외고 연기를 하는 것 외에는 모든 면에 부족하고 의지박약인 자신이 싫은 적도 많았습니다. 배우가아니었으면 신이 보시기에도 아무 데도 쓸모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부족한 여자이기 때문에 신이 좋은 남편을 붙여 주었고, 착한 아들과 딸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많은 사람을 용서하고 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한테 용서를 빌 만큼 잘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못한 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인간에게든 신에게든 내가 다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 P225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연기하면서, 늙는다는 것은 슬프고서글픈 일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늙으니까 기억도 깜빡거리고, 자식들은 엄마를 약간 바보 취급합니다. 마음대로 빨리 죽어지지도 않고, 살아서 신나는 일도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1926~2022)이 96세를 일기로 세상 떠난 뉴스를 보면서, 나랏일로 바빴겠지만 그래도 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식들이 이런저런 일들로 논란거리가되고, 며느리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불행하게 죽는 것까지 다봐야만 했으니까.
자식들은 왜 그렇게 부모에게 야단을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야단치는 말투입니다. 이드라마에서도 막내아들 민호(이광수)가 나에게 소리를 버럭버 - P249

럭 지르는 것이 서글펐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아들동석이 엄마인 나에게 그렇게 하는데, 그럴 때면 이 사람들이실제로 배우인 내가 싫어서 그렇게 악을 쓰나 하는 바보 같은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작가들을 옛날부터 존경했습니다. 물론 김정수, 김수현,
노희경 작가처럼 잘 쓰는 작가를 작가들은 어떻게 다 알까? 늙도록 살아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나이 먹은 사람의 심정을이렇게 잘 알까? 실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맡은 역은 치매에 걸리는 슬픈 역이지만, 잘 쓰는 작가라서 믿고 했습니다. - P250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긴 하나 병든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식으로 죽어 간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회에서 회자는 요양원을 탈출합니다. 치매에 걸린 희자는 새벽에 정아에게 전화를 걸어 요양원으로 자신을 데리러 와 달라고부탁합니다.
"너는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는다고 했지. 정아야, 나도 그러고 싶어. 감옥 같은 좁은 방 말고."
어찌 보면 우리 모두 길 위에 선 삶입니다. 아니면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우린 다 인생이라는 기로에 서 있는 쓸쓸한 방랑자‘인지도 모릅니다. ‘죽더라도 길 위에서 멋지게 죽을거야‘라고 선언하며 희자와 정아는 호기롭게 차를 몰고 떠나지만, 요실금 때문에 차를 세워야만 합니다. - P254

「디어 마이 프렌즈」를 하면서 다른 배우들 연기 보는 재미도컸습니다. 정아 역은 ‘나문희 이상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매번 감탄하며 봤습니다. 윤여정 배우는 말할것도 없습니다. 극 중에서 그녀가 맡은 충남이 나이 어린 교수들에게 "니들이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니들 스스로 니들가치를 모른 거라고 할 때, 그리고 고두심 배우가 아픈 엄마에게 "나 속 썩이려고 병원 안가시냐?"고 악다구니 쓸 때, 말 그대로 ‘연기의 신들‘이 느껴졌습니다. 박원숙 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옛 연인과 재회하는 장면은 잠깐이지만 그간의 세월이 느껴 - P254

졌고, 주현 배우는 얼렁뚱땅하는 것 같지만 다 표현합니다. 신구 배우는 이 드라마에서 처음 같이했는데, ‘정말 잘하는구나.
내가 신구 배우를 이제야 처음 만난 걸 보면 아직 연기해야 할게 한참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원래 막장이야."라고 모두가 외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정 사진을 재미 삼아 찍습니다. 엄마 친구들의 이런 다양한 삶을 알게 된 박완은 마지막에 말합니다.
다만 소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좀 더 오래 가길,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오래 가길" - P255

PD저널의 방연주 객원기자라는 분은 「디어 마이 프렌즈」를보고 리뷰에 노벨문학상을 탄 쉼브르스카의 시를 인용했습니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어떻게 사는가보다 어떻게 죽는가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인생에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희경 작가가 한 말처럼,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젊은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치열함을 살고 있는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
과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희망을 세상에 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영향 미치는 아 - P256

름다운 작품을 하는 게 꿈인 내게 참으로 감사한 작품입니다.
인생이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사랑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언제까지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나도 하면서 즐거운, 그런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디어마이 프렌즈」를 만난 것이 연기자로서 축복이었습니다. 내가 배우로서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tvN이 20대에서 40대를 타깃으로 한 케이블 방송임에도 「디어 마이프렌즈」는 케이블과 종편을 통틀어 8주 연속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지켰으며, 역대 tvN 프로그램 중 시청률 5위의 기록을 세우며 한국드라마의 소재와 다양성을 확대시킨 수작으로 남았다. 한국방송비평상드라마부문 대상,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작가상, YWCA가 뽑은 좋은TV프로그램상 대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드라마 작품상, 백상예술대상TV부문 극본상을 수상했다.) - P257

노희경은 그만큼 무서운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계획대로, 자기가 생각한 대로 씁니다. 그리고 대사가 매우 신랄합니다. 가슴을 콕콕 찌릅니다. 뾰족한 것으로 그냥 찌르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서는 "아팠지?" 하고 만져 줍니다.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사람입니다. 조금 쌀쌀맞은 작가인데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이유입니다. - P268

노희경 작가는 보는 이의 심장을 할퀴는 것 같은 대사를 씁니다. 그래서 그녀 자신이 날이 서 있어 보입니다. 똑똑하고, 냉정하고, 개성 뚜렷하고, 어느 면에서는 싸가지 없고,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배우의 목을 조르거나 손목을 물어 버린 적도 있다는 말까지 들릴 만큼 독특한 작가입니다. 신랄하게 대사를전개하다가도 마지막에는 가슴이 미어질 만큼 아프게 합니다.
어느 작가와도 다른 작가입니다. 혼자 저쪽에 서 있는 들풀 같은 사람, 그것이 그녀에 대해 내가 느낀 것입니다.
며칠 전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다시는 힘들게 연기하지 마세요."
그래서 내가 답했습니다.
"누가 노희경 씨에게, ‘그리 빼빼 마른 중학생같이 되면서까지 글 쓰지 말아요‘ 한다고 그렇게 되겠어요? 언제나 그렇게 되면서까지 쓰겠지요." - P268

아는 사람이 나에게 동영상을 하나 보내 주었는데, 영상 속에서 수탉이 온 힘을 다해 울다가 지쳐서 기절해 쓰러집니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납니다. 그 수탉이 너무나도 우리 두 사람,
노희경 작가와 나 같아서 그 영상을 그녀에게도 보내 주었습니다. 있는 것을 다 뽑아내고 소리를 지르다가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 있다가 다시 일어납니다. - P269

만지고 나서 나를 꼭 껴안고 아이처럼 한없이, 한없이 움니다. 그것은 지문에 없습니다. 이병헌 배우가 잘 하겠지 하고안 써 놓은 것 같습니다. 자세히 써 있는 장면들도 있지만 그장면에는 써 있지 않습니다. 배우는 오직 연기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에 그렇게 하라고, 그전 장면들에서는 이병헌 배우가더 못되게 굴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에이병헌 배우의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사랑한단 말도, 미안하단 말도 없이 내 어머니 강옥동 씨가내가 좋아했던 된장찌개 한 사발을 끓여놓고 처음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난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난 내 어머니를 이렇게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는 걸."
이 내레이션이 더 가슴 아프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간 것은 이병헌 배우의 진심 어린 열연 때문이었습니다.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앤딩 내레이션
[이남규, 김수진] p112, 113


자신이 70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혜자는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엄마 옆에 앉아서 날마다 느끼는 자신의 변화를 고백합니다.
"그냥 궁금했어. 여기서 얼마나 더 나빠질까. 요즘 아침마다일어날 때 좀 놀라. 하루가 다르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어젠 분명 저기까지 걸었는데 오늘은 숨이 가빠.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지는 건가 궁금해서……. 화장실 가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못 간다며, 늙으면 나도 좀 더 차례차례 늙었으면 받아들이는게 쉬웠을까 싶은 거지 그냥."
그러자 엄마가 말합니다.
"다시 애기 때로 돌아가라는 거라고 생각하면 단순해져.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인 살 수 없는 때로 돌아가는구나, 그런."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향해 갈 때 혜자는 말합니다. - P103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이 불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 기억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무섭습니다."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모든 꿈이 과거형이 되어 버린준하(남주혁)가 젊은 혜자(한지민)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던 때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동 국물 위에 뜬 기름띠를 보면서 무지개 떴다며 혜자는 호들갑을 떱니다.  - P104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연기라는 세상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바보라
가볍게 휙 떠나올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 볼 만한 거겠지요.
이 길에서 자꾸만 나의 지난 일들이 겹쳐집니다.
하늘이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80을 눈앞에 둔 내 인생의 길 끝에서
나는 내 꿈 앞에 서 있습니다.

광고에서 이 내레이션이 끝나고, 저쪽 하늘에서 이쪽 하늘까지 펼쳐진 오로라를 바라봅니다. ‘나를 믿고 걸어갑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내가 읽는 마지막 내레이션이 곧 나자신의 말이기도 합니다.  - P108

나이가 들면 그렇습니다. 손이 바쁘고 주변이 어수선해집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고 있지, 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부산스럽고 수선스러웠지만, 그 자리에 있던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때 - P111

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하다는 것을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할지라도 그래도 살아서 좋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대본을 쓴 이남규, 김수진 작가에게 허락을 받아 이곳에도옮겨 놓습니다. 내레이션 녹음을 위해 수십 번 읽고,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위해서도 여러 번 반복해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좋은 글입니다. - P112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 P112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P113

셜리 발렌타인」 단순히 갇힌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여성이 이혼한 친구의 제의로 그리스 해변으로 떠나는 이야기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연극이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여자를 통해 인간의 의미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셜리는 누구나 조금씩 닮은 보통 여자입니다. 나에게도 셜리의 모습이 조금은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마음속은 잘고도 깊은 상처로 금이 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여러 꿈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꿈과는 전혀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 그것이 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특히 여자가 끝부분에서 자신만 불행한 게 아니라남편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눈자체가 커진 것입니다. - P122

어"
상처투성이가 된 셜리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됩니다. 날마다 자기 생각만 하던 여자가눈을 뜬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되는행복한 결말입니다.
안락한 현실로부터 탈출해서 자기를 찾는 게 진짜 인생을사는 것이 아닐까? 그냥 편안하게 안주해 버리면 삶의 모든 시간을 소모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상처를 입더라도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던가는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셜리 발렌타인」은 일깨워 줍니다. 셜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불쌍한 여자입니다. 그러나 혼자가 되면서 자기를 찾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좀 더 단순하고 혼자가 되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꿈꾸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그것은 인생의 낭비이니까. - P123

나는 매니저도 없고, 소속사도 없습니다. 누가 나를 매니지먼트해 주는 사람도 없고, 의상을 챙겨 주는 코디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다 책임져야 합니다. 또 그래야만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나는 그냥 나 혼자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작품에 들어가면 내가 맡은 역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구현해 내야만 하는 인물이니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조언을 해 줄 때도 있지만,
누가 매번 내 옆에서 길잡이가 되어 줄 수는 없습니다. 나는 늘 ‘나만큼‘ 해서 카메라 앞에 나갔습니다. 그것이 나인 것 같습니다.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