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슬픔이라는 개념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갔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이우리에게 전한 이 슬픔은 우리를 스펙터클의 관객석에 ‘가만히 앉
‘아 있을 수 없게 하는 특별한 슬픔의 형식이었다. 존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그리하여 광장으로 나서게 만드는 슬픔이었다."(61쪽)슬픔은 이렇게 혁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1980년대 ‘광주‘를 통해 그랬듯이 ‘세월호‘로 존재의 지진과 정치적 각성을경험했다. 슬픔의 주체로서 광장을 메웠다. 저자가 라캉의 말을 빌려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보다 슬픔을 끌고 가는 힘이다. 권력의부패와 무능이 야기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 죽음과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말기. - P205

못했다. 마음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무치는 나날이다. 일터 괴롭힘이든 아동학대든 학교 왕따든 성폭력이든 다수의침묵과 방조 없인 불가능하단 얘기다. 살면서 가해자가 되지 않기위해 정신 차리고 피해자가 됐을 때 대응하자며 공부하지만 시급한건 목격자로서 행동 매뉴얼, 남의 일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 같다.
영화 <패터슨>의 남자 주인공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는 운전석이라는 공적 공간에 비눗방울 같은 막을 만들어 고요를 누린다.
사람과 주변을 관찰하고 시상을 떠올리며 짬짬이 시를 쓴다. 그의내적 세계를 함부로 터뜨리거나 침해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생각과감정을 가진 노동하는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장면은 천국 같았다. 우리 일상이 시를 낳는 공간이 되려면 똥물 같은 언사를 휘두르는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같이 뒹굴고 치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나도 ‘반격하는 몸‘이 되고 싶다. 시 쓰는 운전기사를 위해. - P209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첫인상은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나는 무시무시한 소음에서 비롯된다. 갱도 안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가 없다. 램프 불빛은 뿌연 탄진에 막혀 얼마 뻗지 못한다."(53)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한 장면이다. 1936년 영국 북부지역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기록한 오웰은 그곳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지옥 같았다" (32쪽)고 말한다.
오웰이 묘사한 지옥을 나도 보았다. 석탄 먼지 어둑한 공간을밝히는 희미한 손전등, 굉음을 내며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 그 아래 수십 개 구멍에 몸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넣어 살피고 바닥에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치우는 사람, 2킬로미터 넘는 동선을 오가며 일 - P210

명 ‘낙탄 작업‘을 나 홀로 처리하던 스물넷 청년은 기계에 빨려들어가 몸이 분리된 채 숨을 거둔다. 태안화력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사고 당일 CCTV 장면이다.

오웰은 같은 책에서, 해마다 광부 900명당 하나꼴로 사람이 죽어갔다며 오랫동안 광부생활을 한 이라면 누구나 자기 동료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보게 된다고 보고한다. 김용균 씨가 일하던 작업장도 다르지 않다. 태안화력이 속한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산
‘업재해로 아홉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이 통계가 섬뜩한 것은 죽음의 누적이 아닌 죽음의 허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떨어진 석탄을손으로 줍지 않도록 개선해달라, 어두워서 위험하니 조명을 밝게해달라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고 한다. 이 의도적 외면은 죽어도 되는 사람과 죽지 않는 사람이 갈리는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 P211

어머니 김미숙 씨를 보면서 오웰이 말한 ‘눈뜬 자‘의 힘을 느낀다. ‘김용균법‘으로 일컫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어머니는 누워 있지 않고 광장이나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고 김용균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다른 죽음을 막아내자고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이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나라 구하다 죽은 위인도 이렇게 길게 추모하지 않는다. 이제그만하라."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은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이 잔인한 체제다.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는 청년이 더는 없도록 하는게 나라 구하는 일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 씨는 한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햇빛이다. 그 빛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단지 이 느낌을다른 부모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 P212

저자는 십수 년간 책을 만든 편집자 출신으로 시골로 거처를 옮겨 안빈낙도의 삶을 산다. 풀·새·나무 • 자연밥상 이야기가 멋들어지게 펼쳐지는데, 독서 내공이 빚은 수려한 문장력과 영혼을 정화하는 고고한 인용문에 매혹되어 책장이 막 넘어간다. 어쩔 수 없이알아버린, 살충제 달걀의 예고편이 되어버린 산란계 이야기는 "닭뿐 아니라 소와 돼지, 젖소 등의 동물에게서 사람들이 어떻게 달걀과고기와 젖을 뽑아내는지 그 실상 (13)을 차분히 들려준다.
그리고 무능한 도시주의자이자 애매한 육식주의자이며 마음만생태주의자인 내 마음을 아는 듯 실행 매뉴얼을 내놓는다. "고통의고기‘를 대량 소비하는 육식의 습관을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는 일,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공장식 사육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일, 달걀 하나를 사더라도 좀 더 건강한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을 선택함으로써 닭들의 사육 환경을 개선시키는 일" (133쪽)이 사소해 보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이고 ‘꼭 필요한 연민‘이라는것이다. - P219

3년 전 친족 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 씨를 인터뷰했을 때다. 그는 가해자로부터단절된 이후 일상의 변화를 말했다. 요즘 눈에 독기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시끄러운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세월호 사건에 남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평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힘든 과거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더 이상 일상이 엉망이 되지는 않는 상태를 그는 ‘평범함‘으로 규정했다.
평범한 삶을 누구는 집 안에서 찾고 누구는 집 밖에서 찾는다.
무엇이 평범함이냐, 그 뜻과 의미와 기준은 각자 다르다. 평범함이행복이고 평범하지 않음이 불행이 아니라, 평범의 기준이 나에게있으면 행복하고 남에게 있으면 불행한 거 같다. 평범함의 의미를자기 삶의 맥락에서 똑부러지게 규정하는 은수연 씨에게서 불행의그림자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 P254

남성, 이성애자, 대졸자, 비장애인, 기혼 출산자 등 ‘디폴트맨‘에게 세상은 수월하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에제 화장실도 충분하다. "남성의 권력이 언어 자체에 깃들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말의 민감성‘을 기르지않아도 되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래서 남자에게 남성성을 설명하려면, 비남성이 겪는 존재의 제약을 설명하려면, "물고기들을 상대로물에 관해 이야기 (63) 하는 것처럼 애를 먹게 된다.
생존의 문제다. 글쓰기부터 타로점까지 배움의 자리에 여자가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하다는 증거다. 그 배움의종착역은 ‘디폴트맨 자리‘의 탈환보다는 제거가 됐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언제나 옳아야 하고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심장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떨쳐내고 "자기를 잘 드러내고 감정을 잘 인식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누리"는 복락을 누려야 하니까. 동시에 "여성과 소수 집단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정책 결정에 반영" (5) 하려면 우선 ‘여탕의 언어‘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 P263

"게으름뱅이로서 나는 맹세한다. 터무니없이 오랜 시간을, 특히 몇몇 기업 양아치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려 투쟁하기로 가능한 한 스트레스가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내기로 천천히 먹기로 리얼 에일을자주 마시기로 더 많이 노래하기로. 더 많이 웃기로, 토하기 전에 정시근무라는 회전목마에서 내려오기로 혼자 있을 때나 남들 앞에서나 스스로 즐기기로 일이란 단지 고지서에 찍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기로 친구들이 힘의 원천임을 항상 기억하기로 단순한 것을즐기기로, 자연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로 대기업과 회사에 소모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그 대신 좋은 것을 많이 만들기로, 순리를 벗어나기로. 아무리 사소한 수준이라도, 세계와 주위 사람을 변화시키기로" (영국 게으름뱅이 연합 맹세‘ 목록 중에서) - P271

《잘 표현된 불행》은 그즈음 눈에 들어왔다.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이라는 명제를 발견하곤 행복 없이 사는 훈련에 임하면서조석으로 시를 읽던 중 만난 823쪽짜리 황현산의 시 평론집이다.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지 못할 나무나 집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못할 불행도 없다. 불행도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선율 높은 박자와 민첩하고 명민한 문장의 시를 얻을 권리가 있다."(605쪽)이 책을 인식의 베개 삼아, 나는 깊이 있는 독해의 향연을 누리고 덤으로 글쓰기의 목적과 방향도 잡았다. 왜 행복하지 못할까 비탄하는 반성문이나 이런저런 조건이 충족되면 언젠가 행복해지리라는 판타지 장르가 아니라 불행의 편에 서서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록물을 썼다. 그런다고 불행의 내용이 바뀌진 않지만 ‘잘표현된 불행‘은 묘한 쾌감을 주었다. 불행에서 오는 인식과 감정의진수성찬을 발견하자 조금 행복해지는 것도 같았다. 내가 해보니좋아서,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불행 전도사가 되었다. - P273

이것은 잘 표현된 불행! ‘개인의 증언이 어떻게 사회의 변화에기여할 수 있나‘라는 문제의식을 담아낸 결과물에 감격하는 내게그가 말했다. "불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불행하다 여겼거든요. 불행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서 자꾸 행복한 이유를 찾는 강박이 있었고 행복을 전시하곤 했어요. 그게 꿋꿋함, 씩씩함, 밝음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으니까 문제의식을 스스로 잘 의식하지 못했지만 마음 한 켠은 불편하고 헛헛했어요. 그런데 불행해도 되는 거구나 생각하니 자유로움을느꼈고, 그래도 되는구나 싶으니 운신의 폭도 넓어지고요. 그러니까불행을 이야기할 용기가 생겼어요." - P274

주부는 집 안에 머무는 일면적이고 기능적인다. 그러니 실제 삶에서 ‘락페에 온 아줌마‘처럼 지정 구역을 벗어난사람을 ‘처음 보면‘ 혼란을 느낀다. 그게 심하면 혐오가 될 테고.
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삶의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인터뷰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번 낯선 존재와 마주하는데,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며 공부하는 중이다. 얼마 전엔 비혼모를 처음 봤다. 만남이 거듭되자 그는 "책 낸 사람 처음 봐요" 내게 말했고 "이렇게 글 잘 쓰는 비혼모 처음 봐요" 나도 고백하고 같이 깔깔댔다. 처음 보면 한 사람이 비혼모로 보이지만 자꾸 보면 비혼모는 결혼제도 외부에 위치한 상태의 설명일 뿐임이 드러나고 자기 한계와 고민을 안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입체적인존재로 다가온다. 처음 보고 계속 보는 게 관건이다. 영화처럼 서로삶이 스밀 때까지. - P278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어르신도 청년 시절엔 섬이 갑갑했다.
제주의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고 ‘서울 유학‘을 몹시도 꿈꾸었지만가난 때문에 포기했고 돈 벌러 일본을 드나들다가 결국 간첩 누명까지 썼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그의 무죄를 증명한 건 어린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동창과 이웃인 제주 사람들이었다. 팔순의 길목에서 생의 한 주기를 돌아보는 그는 서울 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며 벗이 있는 고향에서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 말씀에서 배웠다. 잘산다는 건 내 일상을 오래 묵묵히 지켜본 사람을 갖는거구나.
청춘의 몸은 질문을 낳는다. 1960년에 제주 청년이 그랬듯이2017년에 부여 청년이 뒤척인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이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나마 막막한 질문만이 숨길을 열어주고 살길로 인도한다. 근래 육지 것이자 서울 것이라는 정체성을 받아 안은 나 역시 질문의 말풍선 하나 띄운다. 육지-서울이라는 다수, 주류, 중심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 P281

"고립은 피해자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확보하는 과정으로서 가정(31쪽)폭력의 주요한 형태의 하나" (31) 라고 한다. 어디 가정폭력뿐일까. 성폭력이나 학교폭력의 경우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그래서 ‘세상과의 연결‘, 즉 내 존재를 남이 알게하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상황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아울러 ‘피해자‘란 어떤 일시적 상태의 명명이지 한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다. 폭력과 존엄 사이가 그들이 무자비한 국가폭력에맞서 어떻게 존엄을 지키고 살아갔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이주여성들의 생존담도 꼭 그러하다. "피해자의 취약성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이들의 행위성을 강조한다."(187쪽)사실 그날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살면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여러분도 폭력을 당하면 꼭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단체를 찾아가라고. 이런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착잡했지만, 《아무도몰랐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잘한 것 같다.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중요하니까. - P284

내가 아는 배움의 최고 동력은 절실함이고 필수 조건은 덩어리시간이다. 당장 생존에 필요하지도 않고 놀 시간도 없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라니 얼마나 고역일까. 자투리 시간으로 학습지 하듯 해치우는데 생각이 여물까 싶다. 6학년 학부모에게 제안했다. 어떤 점이 힘든지 아이에게 물어보고 독서록을 당분간 쉬어보라. 자기 의견과 생각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게 하라. 그래야 아이에게도 의견과 생각이 형성되고 글도 잘 쓴다고 말이다.
사실 그 마음 모르지 않는다. 나도 엄마로서 아이 손에 스마트폰 대신 책이 놓여 있길 바란다. 집에 책이 널려 있으면 우연히라도손에 닿아 펼쳐 볼 텐데 무슨 몹쓸 것인 양 만지지도 않는 아이들과나는 산다. 글은 오죽하랴. 처음엔 섭섭하다가 속으로 비난했는데지금은 내버려둔다. 나는 책 읽는 엄마니까 아이 뜻을 존중해줘야지 최면을 걸다가 아이가 아직 본능이 살아 있어서 ‘거부‘도 하는구나 건강하다는 징표로구나, 해석술을 발휘하는 단계까지 왔다. - P288


"나를 방목한다/ 빈둥빈둥/ 내가 사랑하는 어슬렁어슬렁이다//속도와 움직임 다 버린다! 그냥 햇살/ 그냥 해찰이다." 저녁 아홉 시가 넘자 정장 차림의 직장인 무리가 들어온다. 그들의 신청곡일까.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흐르고 흥성흥성 말이 피어난다. 삼겹살집 지글거림이나 노래방의 왁자함이 아닌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듣고 노래에 얽힌 사연을 곁들이는 장면은 회식이라기보다 누구도 배제되는 사람 없는 민주적인 ‘봄 회의‘
같았다. "봄과 슬픔을 투시하고/ 구체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 누구보다 먼저 온몸으로 발언하리." 우리는 레드 제플린을 시작으로 올드 록을 듣다가 너바나의<컴 애즈 유아Come as You Are>까지 도달했다. "센티멘털만이 서럽게 기타 줄을 튕기는 봄밤, 음악은 봄비처럼 본래 감성을 두드려 깨운다. 나를 나로 환원시키는 시간, "나도 모르는 나의 깊이"를 잰다. - P310

자유기고가로 일할 때부터 최저 원고료를 보장하지 않는 곳과는 가급적 일하지 않았다. "대중소설가가 그 출판사와 절교를 한다는 건 식량 수송로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234쪽)는데, 비슷한 강도의 결단으로 버텼다. 남들 보기에 유명의 날개를 단 나는 아직도 ‘돈몇 푼‘ 갖고 싸운다. 수십 번 망설이다 그래도 말한다. 안정된 직업,
고정된 급여 없이 오직 글에서 밥을 구하는 노동자를 위해.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길을 터나가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미련스러움 때문에 내 일이 좋다. 새해를 맞아 순정하게 다짐해본다.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이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아름다운것을 써나가고 싶습니다." - P320

이 자리에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수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삼성을 정부가 한 번 제대로 처벌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싶어요.
또 하나의 가족은 없다. 지금까지 삼성그룹에서만 320명의 직업병 피해 제보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에어컨 수리기사로 일하던 서른두 살 최종범 씨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인 형은 말한다. "삼성 조끼를 입은 동생의 자부심도 컸습니다. (.…)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를 먹여 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25) 그로부터 7개월 뒤,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도 노조를 인정하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P333

나는 노조 사무실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기타 코드 어설프게 잡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토록 열심을 다했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랑과 신념이 가슴에 출렁대던 시절임은 분명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급류에서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사람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사랑의 원리를 깨우쳤다. "삶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은 무시되고, 개개인은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111쪽)도록세상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기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 P342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것들만 곁에 남아 있다. 무던한 사람, 철 지난노래, 변치 않는 신념, 짠 눈물 같은 것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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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22-11-02 1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님께서 적어 주신 오늘의 한문장 덕분에 오늘 제 하루는 충분히 ‘선물‘이 되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주옥같은 문장들을 캐내셨는지요.
십 년 전, <올드걸의 시집>으로 처음 은유 작가를 만났던 그때의 기쁨이 되살아나네요.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단 좋은 시절이었다 생각이 듭니다. 요즘 세상은 아수라장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2-11-02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물‘이 되었다니... 고맙습니다.
고단하고 시끄러운 시절에
은유 작가의 문장들에 매혹당하는 요즘입니다.
세상이 ‘아수라장‘ 맞아서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