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평화를 생각한다
정희진


선생이 싫어했던 사람


얼마 전 지인 A가 이른바 ‘높은 자리‘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가 오래도록 바라던 일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할 사람이지!"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이 탄식(?)에는 A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경멸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실려 있었다. 심지어 그가 우리의 생활 반경을 떠났다는 안도감마저 담겨 있었다. 그렇다. 그는 아마도대한민국에서 가장 "의기意氣 방자 放恣한"인간 중 한 명일것이다.
‘의기 방자함‘은 신영복 선생의 표현으로, ‘의지가강함‘과는 결이 다른 말이다. 선생은 의지 대신
‘의기‘를 씀으로써 의지가 지나친 상태를 강조하였고, ‘방자하다‘에서 의기가 제멋대로인 태도를 드러내고자하였다. 방약무도榜若無道한 사람, 즉 도리를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 이들을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형은 진보 진영에도 있고 페미니스트 중에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본인은 정의를 위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정의는 자신이 ‘정의‘한 것이다. 언제나 세상을 망치는 것은 인간의 거짓됨이 아니라 옳다는 믿음이다. 올바르다는 - P123

확신과 의기가 만났을 때, 우리는 수많은 역사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마오쩌둥시대의 문화대혁명이 그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의지가 필요한 ‘나약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에게 의기가 방자한 사람은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부러운 경우는 아마도 체력 때문일 것이다). 대개 의기가 방자한 인물은 악인이 많다. 아니, 나는 의기 자체가 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을 좋아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상에는 분명한 악이 있고, 악인이 있다. 의기가 방자한 사람은 존재 자체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의기는 본래자신의 몸 외부로 향하는 투사적投射的인 성질을 갖기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 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3장 『주역』의 관계론‘을 논하는 부분에 나온다. 당신 말로는 "여담이라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근대성, 평화, 인간관계, 인간의 조건 등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보여 준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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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
정지우


고전에 대한 관심은 묘할 정도로 시대마다 이어진다. 고전교양 인문학 열풍이 불어 출판 시장을 휩쓰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고전 원전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늘어 원전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기도 한다. 대학의 인문학 관련 전공들은사라지고, 대학원생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할 정도로 위기라곤 하지만, 사람들은 잊을 만하면 ‘고전‘을 찾는다. 특히, 유가, 노장, 불가 등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은 돌고 돌듯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최근에는 AI가 전 세계를 휩쓸어 삼키면서, 인간
의 노동, 창작, 사회적 역할 등을 모두 대체할 거라는 공포가 가득하다. AI의 학습, 연구, 창작 능력도 가공할 정도여서 과연 종래의 인문학 연구 같은 것이 얼마나 유효한가에 대한논의도 치열하다. 당장 기존 인문학 관련 논문들을 AI에게학습시킨 후 새로운 연구 주제를 요청하면, AI는 하루종일 수천 개의 아이디어도 생성해 낼 수 있다. 연구자들이AI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되지못한다.
그런 와중에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고전‘에 대한 관심을가진다 할지라도, 고전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지않을 수 없다. 가령, 『논어』를 읽는다는 건 ‘공자님 말씀‘을 - P101

암기하고 지식을 쌓는다는 뜻일까? 챗GPT에게 물어보면 공자의 이야기쯤은 금방 요약할 텐데, 그것이 큰 의미가있을까? ‘공자님 말씀‘을 우리가 잘 안다고 해서 앞으로의 거친 미래에 도움이 될까? 이런 의문들을 마주하지 않을 수없다.
그럼에도 고백하자면, 나는 거의 매일 고전을 읽는다. 마음이 약간 허하다 싶으면 곧장 홍자성의 『채근담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상록』을 집어 든다. 가끔은 성경도 들춰 본다. 마음 깊이 내려가고 싶을 때는 카뮈나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다시 읽는다. 서양철학자인 니체나 라캉의 책은 거의 매년 새로운 마음으로 읽고 있다. 그 이유는 고전의 한 줄 한 줄에 챗GPT와의 채팅에서보다 더 유용하거나 많은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의 한 줄, 한 단어 속에 시대를 넘어선 어느 한인간과의 진실한 ‘대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우리 시대에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다른 시대 한 인간과의 진실한 대화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심지어 그 ‘인간‘은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또 읽히며, ‘대화할 만한‘ 가치가있다고 검증된 이들이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오랜 세월의 무게에 담긴 신뢰 덕분에, 더 진지하고 깊이있게 모든 단어와 문장을 대하게 된다. 나아가 그 무게감이 - P102

역으로 내 삶에 들어와 나를 바라본다. 챗GPT의 수많은 문장들보다도 고전의 ‘한 단어‘가 나를 뒤흔들며 내게 가하는 힘이 더 강력하다. 이 강력함을 느끼고자, 나는 고전을찾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이 고전에 부여하는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야기여도, 고전이 아니라 지하철 화장실에 써 붙인 문구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무게감 없이다가온다. 그러나 내가 고전에 그만한 무게감을 부여하고있기 때문에, 역으로 고전은 의미심장한 무게감으로 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는다. 즉, ‘고전‘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밤을 지키면서, 그들에게 지침을 제공하고, 때론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를 걸고 고민한 성찰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고전은 우리에게 진짜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고전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전을 대하는 태도‘다. 고전 속에 틀림없이 우리 삶에 의미 있을만한 통찰이 있다고 믿고 고전을 대하는 것, 그래서 그 고전을 기준으로 다시 우리 삶을 돌아보며 재구성하는 일이야말로 고전 읽기의 기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논어』나 『맹자』 원전을 집어 든다고해서, 곧바로 그런 태도가 장착되어 고전의 고유한 의미와 무게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단언하긴 어렵다. 오히려 고전을 - P103

대하는 그러한 태도를 만들어 가는 데 일정한 안내자가 필요할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그 안내자가 있다. 바로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부제로 내놓은 신영복 교수의「강의」다.
신영복 교수는 『강의』에서 자신의 ‘고전 독법‘에 대해 명료한 관점을 제시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는 ‘관계론‘이라는 화두에 따라 『주역』, 『논어』, 『맹자』, 노장, 묵자, 순자, 법가등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고전들을 읽어 내겠다고 밝힌다. 이는 막스 베버 이후 서양의 사고관에 익숙해진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다시 돌아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것은 베버의 체계에는 동양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있는 관계론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고 있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강의』, 36쪽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읽다 보면, 확실히 고전이 고전에만 머물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동양고전들에 대한 단순한 이해를 돕는 걸 넘어서, 끊임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삶을 묻게 한다. 특히, 어느덧 - P104

부인할 수 없는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한번 그의 길 안내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주역』은 물론 점치는 책입니다. 점쳤던 결과를 기록해 둔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앞의 책, 88쪽

『강의』를 집어 들기 전까지만 해도, 『주역』만큼은 내 관심 밖이었다. 책에서 말하듯 『주역』은 어디까지나 점치는 책이고, 아무래도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게 ‘현대인‘인 나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사주팔자나 점성술 등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그런 것들을 진지하게 믿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책을 제쳐 두고 『주역』을 읽고 공부하는데 관심이 가긴 어려웠다. 그러나 강의』에 등장한 다음 구절을 읽자마자, 내 생각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 P105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앞의 책, 89쪽

점치는 걸 단순히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우주에 대해 내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겸허함‘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지적하자, 그 이야기에 곧바로 공감이 갔다. 그는 인간 마음에 공통된 어떤 ‘약함‘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모든 걸‘ 안다는 자만에 빠지기도 했다가, 그 속에서후회하고 다시 불안에 떨기도 한다. 사실, ‘점‘을 친다는 건 그 자체로 내가 현재나 미래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겸손을 전제에 두고 있다. 타인이 찾아낸 어떤 원리에 경의를 표하고 그에 따라 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즉,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타자에게 기대어 보겠다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강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자기중심성‘의 세계관을 집요하게 경계하면서, 우리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내 안에 먼저 바로 서야 함을 강조한다.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P106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다른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을 인仁이라 합니다. 자기가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의 책, 42쪽


이러한 이야기는 듣기 좋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 같은것이어서, 어쩐지 우리 시대에는 ‘귓등‘으로 들릴 것만 같다. 그러나 『강의』를 따라 동양고전의 세계로 젖어 들수록,
그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각자도생‘하며 자기만의 안위와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시대에, 과연 우리 삶을 보다
‘살리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을 생각하며 관계에서의조화를 찾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영복 교수가 『주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관계의 기술‘은 뭘까? 그것은 ‘절제와 겸손‘이다.

『주역』에서는 ..."항룡유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경계입니다. 초로 만들어진 날개를 달고 있는 이카루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자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 P107

있습니다.-앞의 책, 131쪽


우리는 대체로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를 생각한다. 상대가 내게 이익을 주는가, 필요가 있는가, 나의 성공에도움을 주는가, 같은 생각으로 관계를 따지고 배치한다. 그렇게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상대의 쓸모를 고민하며 관계를 맺는다. 상대가 ‘나로 인해‘ 어떤 도움을 얻는지, 내가 상대에게 주는 것은 오히려 ‘희생‘이라 생각하여 마이너스(-)적인 면으로 본다.
그러나 신영복 교수는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볼 게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의 존재란 결국 타인들과의 관계망 속에 위치해 있는 하나의 점이다. 그 전체적인 면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나의 존재가 ‘적절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나 혼자만 도드라져 보인다고 좋은 게 아니다. 나 혼자 하늘 끝까지 오르면 결국 후회한다. 오히려 주변인들과의 조화 속에서 잘어우러져 있어야 하는 게 ‘관계‘를 고려할 줄 아는 태도인것이다. 영화로 친다면, 주연 배우 하나만 튀어서는 곤란하고 조연 배우들과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고 보는 셈이다.
그런 조화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는점에서, 우리 스스로 인생과 관계에서의 ‘감독‘이 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 P108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제대로 배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학창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과의 조화보다 일단 공부 열심히 해서 1등 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후에도 취업에서든 면접에서든 다른 이들과의 조화보다는 나 혼자 도드라져서 1등 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러다가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비로소 동료 관계나 팀에서의 역할 등이 중요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 조차 각자도생이 흔해지고 있으며, 다른이들을 누르고 혼자 정치와 실적을 통해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속에서 결국 관계의 조화는 이루지 못하고, 서로를 ‘자기중심적‘으로만 대하는 문화가 확산되기도 한다.
신영복 교수는 그런 점에서 동양의 고전들을 ‘관계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고전 독법‘에 대한 하나의 전범을 본다. 그의그 집요한 시도는 결국 고전이 그의 삶에, 그리고 그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나아가 그와 독자가 형성하고 있는 한 사회와 문화에까지 어떠한 ‘무게‘로 전달된다. ‘나‘ 중심으로 모든걸 사고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인생과 사회 전체에 하나의 무게 있는 관점이 던져지는 것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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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시간을
시간이 미래를


봄이 오면 봄꽃 피고 여름 오면 수영하고
그런거 말고

존재의 바다로 풍덩 빠져드는
그런 시

쓰고 싶었는데요

아침에 뜨는 해가 만드는
벽의 빛

그런 거 말고
그런 시시한 거 말고

그런데 이상하게 감동적인 거 말고

정직하게 좋은 시
쓰고 싶었는데요 - P-1


점심 먹고 산책 갔습니다

햇빛이 쓴 것과 햇빛이 지운 것
검은건반과 흰건반처럼

허리가 길고 검은 개
긴 전신주 그림자

그런 것 뭉텅뭉텅 밟고 지나갔고요

한의원 한약방 냄새
구구구 비둘기들

지나가며

혁명!
이라고 쓰인 책과

혁명! - P-1

없는 세상 사이에서

전기세 오르고 가스비 오르고
월급이 삭감되어도

해를 보며
이상하게 마음 안에 빛이 가득 차 있어요

미래없음 전망없음
희망인력 힘찬잡부

마치 하나의 말인 것처럼
지나가면 지나가겠지요

희망이 시간을요
시간이 미래를요

냉장고 안에는
애호박이 양상추가 - P-1


썩어가고 있어요 천천히 조용히
살아 있음을 다하는 형태로

대파를 한단 사면
대파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떠올리듯이

머리 위의 빛이 나지 않는 비행기를
계속 문지릅니다

그러면 날아갈 수 있다는 듯이

반박자 빠른
제멋대로 느려지는
그런 리듬

그런 발자국
속에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있어요 - P-1

보고 있습니다

반은 그늘에 반은 햇빛에
잠긴 채로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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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현

2017년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가 있다.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이다. - P-1

ㅣ시인의 말


물속에 일렁이는 빛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빛은 만질수 없고 두 손에 가둘 수 없고 그래서 신비롭구나.
만질 수 없는 장면과 마음을 붙드는 게 시라면 다정하게열린 창문, 흐르는 노래였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컵 속 얼음이 찰랑거린다. 여름이다.
이 시들을 쓰며 나의 시간은 조금 더 갔다. 이것을 읽으며당신의 시간도 조금 더 가기를. 그래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빛을 함께 볼 수 있기를.

2023년 여름
주민현 - P-1

이 시집의 ‘넓은 테라스‘에는 당신을 위해 비워둔 의자가 하나있습니다. 그 의자는 밤의 물질로 만들어졌고, 그 의자에 앉으면 "세상이 몹시 외롭고 이상한 별처럼" 보이고, "어째서 신은/텅 빈 새장을 이렇게나 많이 걸어두었을까" 세계가 불가사의해지며, 당신은 "당신의 가장 외로운 부분을 향해 다가갈"겁니다. 그 ‘가장자리‘에서 당신은 한 시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대화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하기에. 그 시인은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싶어요" 속삭이는 사람,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는 "삶의 외로운/구경꾼이자 싸움꾼"입니다. 당신은 의자에 앉아서 시인이 상영하는 ‘오래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 영화에는 떠도는 빛이 있고, 그것은 인간, 그것은 기억, 그것은 역사, 그것은한 영혼처럼 보입니다. 그 빛은 자신을 위해 비워진 의자에 앉아 자신의 삶을 지켜보는 자신을 응시합니다. "무언가 돌아본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끝났다는 것"이지만, 다시 "삶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이것이 제가 이 시집을 통해 쓴
‘유령‘ 이야기이고, 저는 당신께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 비워둔시집 속 의자에 앉아 ‘당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기를. "이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해"라는 시인의 전언에 "멀리가는 느낌이 좋아" 답하게 되기를. 그 대화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시작되기를.

김현 시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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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와 희철이에게
김중미


"만나서 하는 일이란, 무슨 할 일을 만드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만나서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이야기 나누는 그런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저 만난다는사실 그것이 그냥 좋을 뿐이었다."(「청구회 추억)
1988년부터 지금까지 공부방 큰이모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그저 계속 관계를 만들고 이어 갈 뿐이다. 처음 공부방 문을 연 뒤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공부방은 여전하다. 계속해서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흘러 고이기때문이다.
선생은 한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의 추억을 적으며 두려움과 절망을 잊었다고 했다. 선생에게 "청구회 추억은 그 절망의 작은 창문"(「담론』)이었다. 공부방이 38년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과 쌓은 추억, 그시간의 힘 때문이다. 사형을 앞두었던 선생의 그 절망에 댈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매 순간 두렵고, 버겁고, 지쳐 절망에 빠진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을 절망에서 구원한 청구회추억처럼, 나는 동호, 희철이와의 추억이 있어서 도망가지않고 계속 아이들을 만났다. 상도가 공부방 앞에서 11톤원목 트레일러에 치여 죽었을 때도, 79년생 아이들이 번갈아 구치소를 들락거릴 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고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청구회 아이들이 선생에게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던 것처럼 공부방 아이들이 - P93

내게 창문이었다. 그 창으로 보이던 별빛, 어둠을 밀어내고 기어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햇빛 덕분에 살았다.
청구회 회원들이 ‘어린이‘여서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여러 책에서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정대의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현대문학을 읽던 노인, 생계를 위해 피를 팔면서 헌혈 전에 물을 너무 마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청년,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던 목수, 치약 하나도 빌려 쓰지않으려고 위악을 부리던 청년. 선생의 눈과 귀는 청구회의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약자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에서 맹자의 ‘이양역지‘ 를소개하며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해말한다. ‘본 것‘과 ‘못 본 것‘은 생사가 갈리는 차이라고했다. 선생에게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 관계를 갖게되는 것이었다. 선생이 만난 청구회의 조대식, 이덕원, 손용대는 천진무구한 어린이가 아니라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상징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선생은 자신이 특별히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대답하지않았다. 나는 선생의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이를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존재로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로 - P94

어린이들을 대한다. 마냥 순수할 것만 같은 아이가 가시를드러내거나 되바라진 말을 하면 ‘애답지 않다‘고 혀를 찬다. 여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여남은 살이든, 어린이들 역시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 그들이 통과하는 시간으로부터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어린이의 삶에도 그 시대의 문화,
질곡과 정서가 고스란히 새겨진다. 원래 나쁜 아이, 원래 착한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선생은 "어떤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그 자체로받아들이기보다는 그 개인적인 아픔이나 고통 속에서 그것의 사회성 나아가서는 역사성을 읽어 내야 한다"고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 몸에 새겨진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여름방학이 되면 충북 괴산으로 공부방 초중고아이들과 대학생, 이모 삼촌들이 다 같이 여름 캠프를 간다.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우리를 품어 주는 ‘솔뫼농장‘은 시설이 매우 낡았다. 주변에 생수 공장이 생기고, 자연 하천이 사방공사를 하고, 논농사 중심에서 밭농사로 농사 형태가 변하면서 수자원까지 고갈되어 물 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은 리조트나 캠프장 대신 ‘솔뫼농장‘으로 가는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지만, 낡고 추레하고 불편한 그곳이 오히려 우리의 장을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 P95

곳이기 때문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시설 좋은 수영장이나 워터파크가 아닌 개울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논다. 깊은곳이나 물살이 센 데가 있어도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 이모 삼촌들이 함께하니 안전하다. 잠은 여자 방, 남자방에서 스무 명, 서른 명이 한꺼번에 자기 때문에, 예민한 아이는 코 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또 어떤 재미있는 하루가 펼쳐질까 기대에 찬 눈빛을 맞춘다. 누구도 외딴 점으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디서든 장을 이루어 함께한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힘찬 에너지를 뿜어낸다. 캠프3박 4일 내내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공부방 아이들이 웃는 모습은 어떤 분노와 슬픔이라도 다녹일 만큼 강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폭염 속에서 80인분의 세끼 밥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5월 햇살보다 눈부시고, 6월의 숲보다 더 싱그럽고,
9월의 하늘보다 더 푸르다. 그러나 아이들의 그 웃음 뒤에 어른들보다 더 깊은 상처와 상실, 두려움, 분노, 불안이 숨어있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 숨은 무기력과 불안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지 않으면, 그렇게 웃던 아이들이 드러내는 분노와 무기력까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경제적 결핍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른 결핍을 낳기도 한다. - P96

공부방이 있는 지역에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이주 배경을 가진 주민이 많다. 재개발로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기 전에는 가난한 이웃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았다. 먹을 것을 나누고, 불편한 몸을 대신해 주며 살았다. 가난한 동네의 골목은 생명의 연결망이었다. 그 연결망을 따라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여 ‘우리‘가 되었다. 골목에는 외딴 점이 없었다.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여러 개의 ‘장‘을이루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선과 장은 구제금융과 재개발의 파고를 겪으며 끊어지고 사라졌다. 팬데믹 이후에는 사람들이 각자 외딴 점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저마다 각자도생밖에 길이 없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외딴 점이 된다. 정부는 아이들이 외딴 점이 되지않게끔 학교 안에 돌봄교실, 늘봄학교를 만들며 생색은내지만, 그곳에서는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기 힘들다. 아이들을 그저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볼 뿐 주체로 여기지않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러 책에서 연대는 위에서 소수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모여이루는 낮은 연대가 진짜라고 했다. 나는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가 어린이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 P97

더 낮은 자리에 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연대하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 연결이 간절하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없다.

「청구회 추억을 다시 읽으며 만남과 연결에 대해, 그 이후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다. 「청구회 추억」을 통해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끈 만남을 추억하며, 내가 서 있는 길을 자각하고 다음 걸음을 생각한다. 「청구회 추억」 덕분에 추억 여행을 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을 선물한 ‘청구회‘ 주인공들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선생과같은 어른이 필요하다.
「청구회 추억」 말미에 있는 선생의 문장으로 추억 여행을 마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 - P98

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생각하면 명멸하는 추억의 미로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 역시 이윽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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