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형태를 부여할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어떻게 발견할까? 이 문제는 이제 내게는 싱거울 정도로 쉬워졌다. 나는 책을 읽으면 된다. 내게는 새 책에 대한 기대가 새삶에 대한 기대, 곧 내 목소리와 합쳐질 새 목소리에 대한기대나 같았다. 작가들은 나에게 새 ‘눈‘과 새 ‘목소리‘를준다. - P95
"오래된 휴대폰 쓰시네요! 저도 오래전에 그걸 썼었는데 바꿨어요." 내 휴대폰은 사용한 지 대략 10년은 된 것 같다. "배터리 괜찮아요? 왜 안 바꾸세요?" 사실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나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갑자기 두 번 다시 이런 말을 할 기회가 없다는 듯이, 피를 빨아먹을 인체를 발견한 모기처럼 쏜살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필수적인 광물 중에 콜탄이라는 것이 있어요. 콜탄에서는 탄탈룸이 추출되는데 탄탈룸은 전기를 꼭 붙잡고 있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콜탄이 가장 많이 묻혀 있는 나라는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인데 IT산업이 발달하자 콩고민주공화국이 부자가 되는 것은 따논 당상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일어나지 않았어요. 반대로 아동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리게 되었고 고릴라들은 서식지를 잃었어요.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마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처음 알게된 것처럼 많이 놀랐어요. 그 뒤로 몇 번 휴대폰을 바꾸려고 하긴 했는데, 에이 관두자, 다음에 바꾸지 뭐, 그렇게 미루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 P120
나는 이 말을 다다다다 했다(그가 지루해하고 관심을잃을까 봐. 그리고 그의 눈치를 봤다. 그동안 몇 번은 이런 말을 했지만, 조금 과한 것 같다, 그래 봤자 뭐가 바뀌나, 경제는 누가 살리냐, 취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휴대폰바꿔, 신제품이 기분을 업그레이드해준다 등등의 말만 들었다. 그때마다 힘이 빠졌었다. 그런데 그는 내 대답을 잘들어줬다. 그러고는 몇 초간 침묵하다니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솔직히 그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했다. ‘살다 보니 이런 말을 듣는 날도 있구나!‘ 어찌나 감개무량했던지 손이라도 덥썩 잡을 뻔했다. 어쨌든 이것은 나의 새로운 목소리다. 내가 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것을 의식해서 뭔가를 하지 않기로 하고 처음 한 일이었다. 나의 새로운 목소리가 나의 오래된 목소리를 이기길 바란다(나의 오래된목소리는 세련된 디자인의 편리한 최신 상품을 좋아한다). 스마트폰과 콩고민주공화국의 아이들과 고릴라의 이야기에 내가 놀랐다면 우리가 세상과 연결되는 무수한방식, 그 여파의 예측 불가함에 놀랐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나는 세상에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까?"라는 심란한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새로운 목소리‘는 내가 지구의 현실과도, 미래와도 연결되는 하나의 방 - P121
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고릴라와 아이들과 숲이 생각난다. 나는 몇 번은 좋은 꿈을 꿨었지만 아직 이 세상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해봤다. 이 사실이 슬프기 때문에, 좋은 연결이야말로 기쁨이자 힘, 어둠 속의 희망(나는 다른 입장에서,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희망을 걸고 있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생명, 자연, 삶의 의미와 가치(삶의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미래 지향적인 존재라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마음이 있는 사람들, 변화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강하고 고귀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그 사람들을 존경하면서 그 사람들의 가치를존중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살고 싶다. - P122
나는 머뭇거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가 거대한 고래가 내 위로 건물처럼 높게 솟아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는 완전히 수면 밖으로 나와 있었고, 따개비로 뒤덮인 얼굴에서 슬로모션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하나까지 보였다. 나는 고래가 천천히 도로 물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질 때까지경외감에 사로잡혀 바라보았다.
나는 이 장면을 읽을 때 부러움으로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질 뻔했다. 따개비로 뒤덮인 거대한 고래 얼굴이 신처럼 로스를 굽어보는 장면이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에서 벗어난 로스가 본 세상이다. 두려움의 감옥 문을 열고 나와서 본 현실은 그렇게나 크고, 그렇게나 신비롭고, 그렇게나 놀랍도록 다정한 것이었다. 고래와 헤어진 로스는 자신이 그렇게나 원하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아버지였다. 로스는 바닷속에서 이룬 것-사랑과 신뢰을 바다 바깥에서도 이루었다. - P137
나무그네에 앉아 다리를 흔들면서 그런 대화를 나누는 둘을 바라보는 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들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사랑을 나눠주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나의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었다. 돌핀맨의 삶, 복피디의 삶, 연산호를 걱정해서 복 피디에게 제주로 와달라고 연락한 사람들의 삶, 춘삼이의 삶, 춘삼이를 야생 방류하려고 애쓴 사람들의 삶, 춘삼이를 품고 있는 바닷속 다른 생명들의 삶, 이들 생명과 질적으로 다른 관계를 맺은 크레이그와 로스의 삶, 나에게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라고 권한 친구와 후배의 삶, 또 뭐가 있지? 나를 무사히 제주공항에 데려다준 기장과 승무원 일동의 삶? 「바다의 숲을 펴낸 출판사 편집자들의 삶? 내가 모르는 모든 삶. 아! 쌍안경을 발명한 사람의 삶도. 그리고 우리 세월 - P148
호 아이들의 삶도(내가 복 피디를 알게 된 것은 세월호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모여서 이 한순간이 되었다. 그 숱한 이야기와 시간들이 돌고래 무리를 입 벌리고 바라보는 생명에 무지한 멍청이(나)를 둘러싼 봄의 대기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쓸쓸함 너머, 덧없음 너머, 세상은 빛나고있었다. 나는 보고 싶은 것을 봤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내 마음속에 무의미가 도사리고 있다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내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같다). - P149
만약 어떤 평범한 하루가 유난히 빛이 나는 하루로 기억에 남는다면 어떤 한 순간이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생명 그 자체, 춘삼이가 살아서 다시 돌고래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되어야 할것이 된다!) 그 자체에 감동했고 그 감동은 진실했다. 자아실현을 하는 데 힘을 쓰려면 그냥은 어렵고 창조적으로 힘을 쓰게 도와줄 뭔가가 필요하다. 토대와 기준이 될단어와 문장도 없이, 같이 할 사람도 없이 힘을 낼 수는없다(다시 말하지만 토대가 없다는 것은 나의 두려움이다. 힘을 쓰려고 해도 쓸 기준이 없거나 낮다는 것도). 2번 돌고래는 나에게 기쁨을 상기시킨다. 그 단어를 들으면 나는 언제나 그날의 진실한 기쁨, 깨끗한 기쁨, 티없는 기쁨, 생명이 약동하는 기쁨을 느낀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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