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는 이 이야기의 시작부터 등장하고, 끝까지 함께할 인물이다. 그는 결혼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문학과 정치, 그리고 스스로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어떤 이유론가, ‘구원‘인 것으로 보인다. 리스는 예의 바른 태도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상처는 혼자서 감당하는 사람이다.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라나 이튼 칼리지에, 다음에는 케임브리지에 진학한 리스는 "누가 봐도 바보라는 소리를 내가 듣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런 배경들 때문이라기보다는 너그러운 신의 섭리 덕분"이라고 말한다. 리스는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어리석을 정도로 단순하게" 믿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그 믿음이 "나 자신의 부적응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했다"고 여겼지만 말이다. - P70
리스는 자기 친구의 결점들을 알면서도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는 오웰을 "표면적으로는 너무도 편안하고 붙임성 있는 남자, 유쾌하고, 유머 감각과 재치가 있으며, 사려 깊고 다정한,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남자"라고 여겼다. "나는 그가 속으로는 다루기 곤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속으로는 극도로 내성적이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독 퓨도르 pudor (수치심을 뜻하는, 리스가 마찬가지로 설명하지 않고 남겨둔 단어다)를 타고난 것처럼." 오웰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가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데 있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소 둔했거나, 둔해 보였다." 이는 어쩌면 오웰이 "한 번도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P70
아일린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마치그들의 얼굴과 행동 방식이 유리같이 투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을 관찰한다고, 훗날 어느 소설가 친구는 아일린을 모델로 한 인물을 내세워 쓴다. "그가 들여다보는 건 사람들의 감정이다." 리디아는 아일린이 "세련되고, 세심하며, 대단히 총명하고 지적이었다. 아마 그 애가 결혼한 남자와는 다른 면에서 재능이 있었을 뿐, 결코 그보다 재능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쓴다.
아일린은 몸이 몹시 매력적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다소어색했지만 말이다. 아일린은 키가 크고 날씬했고, 흔히 아일랜드인의 몸 빛깔로 여겨지는 색깔들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칼은검었고, 눈은 연한 푸른색이었으며, 피부색은 섬세한 흰색과 분홍색이었다. 아일린의 말에 따르면 볼 색깔은 연지를 발라서 그 - P71
런 거였지만 말이다. "그걸 꼭 발라야 돼?" 나는 그렇게 못마땅해 했다. "안 바르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보일걸." 아일린은 대답했다. 그 애는 조지가 ‘고양이상‘이라고 부르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오웰은 사람들을 도발하려고 "무산 계급의 코스튬"을 입지만, 아일린은 옷차림에는 정말로 관심이 없고, 보통 품질은 좋지만 "허름하고 솔질하지 않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 "다소 단정치 못하기는 " 하지만 아일린에게는 독특한 우아함이, "두 다리 위로 아름답게 균형 잡힌 몸이 있다. 아일린은 "매우 사려 깊고 철학적인" 사람이다. - P72
그는 경청하는 데 있어 비상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삶에 대한 감각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아일린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주는 영향을 온전히 받았고, 그것을 고립된 상태로가 아니라 연결된 모든 것들과 함께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아일린이 말을 할 때면, 그 말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말, 재미있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린다. 리디아는 이렇게 기억을 떠올렸다.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할 때면 그 애의 두 눈동자는 춤추듯 이리저리 움직였고, 이목구비는 온통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일린이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윤색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그 일이 그 애가 묘사한 것처럼 재미있게, 혹은 뜻밖의 방식으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있었다. 그럼에도 아일린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정확성을 문제 삼는사람은 없었다. 그런 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애가 하는 과장에 악의가 깃들어 있는 일은 드물었다. - P72
자신이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일부러 완전히 터놓고, 마치 ‘책 속의 인물들을 논하듯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의 본능을 지닌 사람이다. 타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본능. 아일린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인간이든 동물이든 다른 존재에게서 그 정수를 뽑아낸 다음, 그 각자를 자신만의 삶을 그러므로 플톳을 지닌 캐릭터로 빚어낼 수 있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바꿔냈고, 여기에는 많은 경우 주변인들을 그들 자신보다도 명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이 된 자신을 상상하는 이런 능력은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관대해지는 성향이 되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능력은 심지어 자신조차 자기편을 들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일 수도 있다. 아일린의 파악하기 어려운 면모, 엉뚱한 말,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태도, 그리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뛰어난지성을 본 리디아는 결국 그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좌절감을 발작적으로 터뜨리게 된다. - P73
가부장제는 이 세상에 5,000년에서 1만 년 정도 존재해 왔다. 그 이전의 몇몇 시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사회들은 아이를 키워내는 일, 모성에 가치를 두는 일, 혹은 성적인 상대를 ‘여성이 선택하는 일‘ 위주로 꾸려져 있었다. 시몬 드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가부장제를 전쟁과 연관 지어 다음과같이 쓴다. "남자들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게 만드는 데에서 자신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를 찾는다. 이것이 인류 역사 내내 아이를 낳는 성별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죽이는 성별에게 우위가 주어져 온 이유다. 그럼에도 보부아르는 이것이 실은 이 치에 맞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세상은 언제나 남자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충분해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86
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견해에 따르면, 가부장제는 유목 생활을 하던 수렵 채집 공동체들이 정착해 땅과동물들과 여자들과 후손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발달했다. 경계가(검은 상자들이, 울타리들이) 중요해졌다. 이건 누구 땅이지? 저 짐승은 누구 거지? 이 아이는? 남자들은 자손의 재생산에 통제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여자들의 섹슈얼리티는 일부일처제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통제되었다. 부의 성별을 남성으로 유지하기 위해 상속은 오직 아들에게만 가능해졌다. "어머니로서의 권리가 전복된 건 세계 역사상 기록될 만한 여성의 패배였다. " 엥겔스는 이렇게 쓴다. "남성은 집에서도 명령을 내렸고, 여성은 강등되어 노예 상태로 전락했으며, 남성이 지닌 욕망의 노예이자 자손 생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성은 최초의 노예였다. 여자들은 짐승들과 함께 가축화되었다. 1938년,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썼다. "우리 뒤에는 가부장제가 놓여 있다. 무용함과 부도덕함과 위선과 노예근성으로 가득한그 비밀스러운 집이..." - P87
이제 한 명의 작가이자 한 사람의 아내가 된 나는 거장이라불리는 남성 작가들을, 그 생각 없는 "20세기 중반의 여성혐오자들(이 자리에는 거의 모든 유명한 이름을 넣을 수 있다)을 부러워하는나 자신을 깨닫는다.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혹은 그들이 했던 작업·여행·총기류 소지·성적인 기행 등등과 관련된 무언가 때문에 부럽다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이유로 부러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가장 부러운 건 그들의 창작 환경이다. 그 남자들 중 너무도 많은 수가 우주의 도덕적·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사회 구조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그 구조에서는 여성의 보이지 않는 무급 노동이 그들에게 창작할 시간을, 따뜻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쿠션은빵빵하게 부풀려져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가 글을 쓸 시간은 쇼핑이나 요리, 본인이나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 청소하기, 일상적인 - P89
편지 쓰기, 손님 접대, 여행이나 휴일 일정 잡기, 아이 보기(마치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혹은 자기 아이들이 아니라는 듯 육아를 ‘도와주고 감사 인사를 받는 경우는 제외), 기타 등등의 일을 할 필요에서 해방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시간이 귀중한 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모든 유한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경제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시간은 거래하거나 흥정하거나 슬쩍하거나 훔칠 수있다. 주말은 유한하다. 배우자와 함께 주말이라는 할당된 시간과공간을 가지고 저글링을 해보려고 애를 쓰는 어떤 양육자든 그렇게말할 것이다. 삶은 유한하다. 아일린과 오웰이 함께했던 삶을 살펴볼수록, 나는 오랜 과거에 존재했던 그 역학관계가 나 자신이 엮여있는 역학관계 속으로 혼란스럽게 메아리쳐오는 걸 느꼈다. 다른모든 귀중한 재화가 그렇듯 시간에의 접근 역시 젠더화되어 있다. - P90
모든 귀중한 재화가 그렇듯 시간에의한 사람이 일할 시간은 다른 사람이 시간을 들여 하는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남자가 일해야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그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여자는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80년 전의 결혼을 살펴보다 보면 거리감이 주는 가짜 위안(우리는 당연히 저것보단 발전한 상태겠지?)도 느껴지지만, 세상은 결코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전율도 느끼게 된다. 내가 아는 이성애 커플 가운데 가정 환경 및 여타 환경을 여자가 자신을 위해 해주는 것만큼 조성해 주어서 여자도 자신만큼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남자는 많지 않다. 한 손에 꼽고 손가락이 남을 정도다. 룸미러에 비친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법이다. 보이지 않고 급료도 없으나 당신의 시중을 드는 것이 생의 피할수 없는 목적이기에 꼭 감사를 표할 필요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이 - P90
익을 얻는다는 것. 그건 당신이 해낸 일을 당신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냈다고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정복한어떤 섬에서 재산을 몰수했든, 허공에서 말들을 짜냈든 간에 말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급료를 줄 필요도, 고마워할 필요도없다. 그저 서문에 ‘나의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진심을 담아 한 문장꽉 채워서 써주면 그만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작가의 상상력에는 엄청나게 유리한 것이 된다. 작가에게 있어 상상력의 첫 번째 임무는 글 쓰는 자아를창조하는 것이다. 그건 상당히 큰일이지만, 당신들 두 사람이 함께착수하면 도움이 된다. 아내가 당신을 믿어주기에 당신도 당신 자신을 믿게 된다. 이렇게 영양분을 공급받은 자아는 작품을 생산해낸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작품이 자아의 증거가 된다. 나는 만들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P91
그리고 이 문장 속에서 당신의 아내는 사라져버린다. 작가들은 불안정한 것으로 악명이 높고, 굳건한 심지 따위는 없으며, 지지받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텅 빈 중심으로 무너져내리기십상인 부류다. 누군가가 당신 주변을 움직이고 있으면 당신은 중심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관객이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스타일 것이다. 이렇게 남성중심성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남성의 상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떠받치는 존재가 반드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공중 줄타기에서 와이어가 보이면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다. 보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는 줄을 타는 그 행위를 하늘로 솟구치게 해주는 실질적인 와이어 - P91
이며, 종종 지적인 와이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행위가 정말로 놀라운 일이 되기 위해서는 와이어도 아내도 지워져야 한다. 당대에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렇다. 아내의 노력은 그 노력으로 이익을 얻는 남자에게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그 뒤에, 아내는 남자의전기 작가들에 의해 남자가 이뤄낸 일들에서 지워진다. 혹자는 이를 1,000년이나 이어져 온 (혹은 오웰의 경우에는 거의 한 세기나 이어져온) 남성 특유의 무신경함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후일에 역사가그를 찾아내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어느 위대한 작가의 아내가 해온 보이지 않는 노력에 마음이 끌린다. 앞서 말했듯 부러움 때문이다. 내게도 아일린 같은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P92
그러다가 작가처럼 생각한다는 건 곧 남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건 남성의 관점에서 오웰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오웰이 그것을 어떻게 얻어냈는지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여성이자 아내로서의 나는 아일린의 삶이 두렵다. 그 안에서 나는 목숨을 건 투쟁을 본다. 그건 자아를 유지하는 일, 그리고 여성이 갖추면 너무도 칭찬받는 가부장제적 덕목인 자기희생과 자기말소 성향, 이 두가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다. 자기희생과 자기말소 성향이야말로 우리의 노력과 시간을 훔쳐 가는 기본 구조의 일부다. 아일린은 무엇을 내주었고, 그 대가로 무엇을 감당해야 했을까? 20년 동안 분투하며 생활과 가정을 꾸려온 경험에서 나온 이 질문이 내뿜는 한기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나는 이것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아일린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 - P92
다. 우리 시대 여성들은 동등한 존재라고 불린다. 가정에서 상상할수 없을 만큼 불균형하게 과도한 노동을 하고, 미래 세대를 돌보고, 많은 경우에는 이전 세대도 돌보고 있음에도 그렇다.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 우리는 이 모든 노력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그 간극을 만드는 일에 공모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 간극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나는 특권을 지닌 백인 여성이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시간과 노력과 삶을 약탈하고 훔쳐 가는 일종의 전 지구적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노력 없이 얻은 특권을 지닌 나는 가부장제에 관해 말하는 일이 두 가지 이유로 편치만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부유한 서구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충격적인 인종차별, 가난과 계층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이는 나로서는 둔감해질 수도 있는 투쟁들이다. - P93
이곳에, 혹은 세상의 다른 어딘가에 사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나보다 훨씬 더 힘들게살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계속 침묵을 지킬 수만은 없다. 어디서든, 어느 인종과 계층에서든, 여성들은 집 안에서는 남성들보다많은 노동을 무급으로 하고 집 밖에서는 남자들보다 적은 돈을 벌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변하지 않고 반박되지도 않는 이성애적 규범이 존재한다. 그 규범은 민족과 피부색과 계층을 뛰어넘어 만연해 있다. 여성 집단이 남성 반려자들과 똑같은 권력이나 자유, 여가 시간이나 돈을 가진 곳은 지구상에 단 한군데도 없다. 표면상의 계층적 평등도, 반대로 부도, 이 불평등한 부담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어느 곳에서나 그렇다. 공산 국가에서는 여성 - P93
평등에 관한 수사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가사와 돌봄 노동을 책임지고 있고,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민주 자본주의 사회의 돈도 커플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여성은 부유하다 해도 여전히 가사노동을 책임진다. 설령 다른 사람에게, 보통은 여성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노동의 일부를 맡길 수 있다고 해도 그렇다. 지구상의 모든 사회는 여성들이 제공하는 무급 노동과 저임금 노동 위에 세워져 있다. 만약 그 노동에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 액수는 10조 9,000억 달러에 이를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돈을 지불하게 되면 부와 권력은 재분배될 것이고, 그렇게 재분배를 하다 보면 가부장제의 자금줄은 말라버리고 이빨은 뽑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94
또한 여러 개별적인 예외 사례도 존재한다. 한 사람(대부분 여성)이 모든 일을 다 해내는 한부모 가정이 있다. 사랑하고 살아가는 데필요한 노동을 좀 더 평등하게 분담하는 이성애 및 동성애 커플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젠더 이분법이 (좋은‘ 여자가, 혹은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가 하는 개념들과 함께) 도전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젠더를 조금 더 유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무엇이 여성이고 무엇이 남성인가 하는 허구의 이야기들로부터, 그리고 그런 정의들이 은밀하지만 아주 은밀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품고 있는 노동과 돌봄에 관한 억측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런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여긴다. 젠더화된 부담에 주의를 집중하면 우리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 생기게 될 것만 같다. 사실 그 불화의 원인은 이미 거기 있고, 그건 우리 둘 중 누구도 - P94
저명한 적 없는 가부장제의 보이지 않는 계약이 부과한 것인데도그렇다. 내가 하는 너무도 많은 여성이 똑같은 심정을 느끼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속삭이는 목소리로 한다. 우리는 갈등을 피한다. 그러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을 제대로 바로잡는 데 실패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정당한 억울함 밑에는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수 없게 만드는 수치심이 있다. 나는 내가 동등한 존재인 척하는 동안 개를 산책시키고, 식료품을 구입하고, 치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기분이 언짢은 10대들을 위로하고, 빨래를 갠다. 내가 동등한존재인 척하면서 채소를 썰고, 상담사와 병원과 변호사에게 연락을취하고, 냉장고를 청소한다. 사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일도 꺼리지 않는다. 이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진 내 진짜 삶이니까 안다, 나이가 들면 나는 젊은 시절의 내가 지니고 있던 분주함을, 인생의 목표를, 넓은 마음으로 바쁘게 소용돌이치듯 꾸려나가던 삶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동 분담은 평등하게 하기가 어렵다. 그 노동 가운데 너무도 많은 부분이 나다운것‘이라는 정의 안에 녹아 들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서, 혹은 ‘그냥 좋게 좋게 지내면서 아일린이 종속되어 있던 힘들과 똑같은 현재의 힘들에 내가 종속되어 있지 않은 척하는 건 일종의 광기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노동으로부터해방된 척하면서 그 노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 P95
가부장제는 한 편의 허구다. 모든 주요 인물은 남성이고, 세계는 남성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여성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배역cast, 아니 계급caste 이다. 우리 모두 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이야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현실을 대체해 버렸다. 우리 삶을 풀어뭘 다른 서사도,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어떤 역할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부장제에는 외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 허구에서는 두 가지 주된 목적의 사라지게 만드는 속임수가있다. 하나는 여성이 하는 일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남성이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다른 하나는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행동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이 남성을 결백해 보이게 한다. 이 속임수는 가부장제의 사악하고 이중사고적인 핵심이다. 전기들을 읽으며 나는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가부장제는 오웰이 자기 아내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허용해주었다. 그런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전기 작가들이 그가 그 모든일을 혼자 해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허용해 주었다. 전기 작가들은•오웰의 이야기에 들어갈 사실들을 세상에서 골라내는데, 그 사실들 - P102
은 이미 오웰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이 선별해 놓은 것들이다. 가부장제와 전기의 서술 기법은 솔기 없이 매끈하게 결합한다. 오웰을가르치고 키워 낸, 그에게 영향을 주고 도와준 여성들을 편집실 바닥에 흩날린 종이 부스러기들처럼 남겨놓는다. 건물이 올라가고 나면 제거되는 지지대들처럼.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오웰이 표현했듯, 까발리고 싶은 어떤거짓말이, 주의를 집중시키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공교롭게도 어떤 사람이.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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