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꽃집을 지나는데 창문에 예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리엄마도 한때는 소녀인 적이 있었답니다." 발걸음이 멎었다. 뭐랄까. 애잔함과 서글픔과 허탈함이 차례로 밀려왔다. 매년 어버이날이면 애들한테 카네이션 달라고 조를 때는 언제고, 저문구에 쓰인 ‘우리엄마‘에 나도 해당된다는 사실이 인정하기싫었다. 어느덧 내가 효孝 마케팅의 판촉 대상으로 위로받는처지가 된 게 못마땅했다. 그럼 뭐 지금은 시들었어도 예전엔생기 어린 꽃이었다는 건가? 고쳐 주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지금도 소녀일 때가 있답니다." 예전에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노문희 씨를 인터뷰한 적이있다. 그녀의 담당 구역인 건물 3층 복도 끝에 휴식 공간이 있었다. 새의 둥지처럼 몸 하나 겨우 웅크릴 공간, 책상 하나 놓이니 꽉 차는 창고 같은 방이지만, 다행히 벽면의 통유리 너머로짙푸른 나무가 흔들려 운치를 더했다. 책상 위에는 낡은 스프링 노트가 정물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학생들이 버린 노트를 주워서 일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넘기는 노트에는 깨알 같은 글씨와 소녀 얼굴의 스케치가 마치 전혜린의 노트처럼 동경과 낭만으로 일렁였다. 나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까맣게 염색한 보글보글 억센 파마머리에, 울퉁불퉁 힘줄 튀어 - P11
나온 마른 손등에, 소매통넓은 파란색 작업복을 걸친 청소부단풍예순살의 그녀가 감수성 주체로 여기 책상에 앉곤 한다는 사실이 마냥 낯설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 엄마도 가을이면 ㄷ잎, 은행잎을 주워서 식탁유리 밑에 끼워 놓곤 했던 생각이 났다. 엄마가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가 주운 것은 낙엽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살면서흘린 것, 놓친 것, 떨궈진 것들을 낙엽에서 봤던 게 아닐까. 잃어버린 당신 시간을 모으듯 몸을 구부려 줍고 부서질세라 쥐고고이 간직하는 동안 엄마는 가을을 통과하는 소녀였던 거다. 나는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았다. 엄마로 오래 살았다. 남들은 나보고 젊은 엄마라고 말했지만 나는 일찍엄마가 된 소녀였다. 엄마 아닌 생에 대한 갈망이 컸다. 앞치마풀어버리듯 엄마의 옷을 간단히 벗어버리고 싶었다. 체념인지적응인지 마흔에 다다르자 심신의 변화가 왔다. 최승자 시인의시구대로 "모든 일이 참을만해요. 세포가 늙어가나 봐요" 하는상태가 되었다. 그럭저럭 살만했고 얼렁뚱땅 살아졌다. 하지만 심신의 변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체력의 저하와 감각의 퇴화가 그래프처럼 항목별로 고르게 나타나는 건 아니었단 말이다. 나는 여전히 왕성하게 분열 중인 세포를 발견했다. 두루두루 참을 만하다가도 견딜 수 없어지는 순간에 불쑥 튀어 오르는 힘, 내 피만 알아차리는 저항. 그것은 한숨이나 - P12
눈물 같은 울컥함으로 나타났다. 나는 불행을 예민하게 느꼈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본래적 자아로 회귀하려는 어떤 경향성일 것이다. 일상의 아수라장 안에서도 뭉그적뭉그적 나의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그때마다 나는 어떤 소녀와 대면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올드걸‘은 고정된 인격체가 아니라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그러니까 피부에 잔주름 없애고 명품몸매 가꿔 ‘영우먼‘이 되려는 욕망처럼 눈가의 물기와 사유의탄력을 잃지 않는 올드걸이 되려는 욕망도 있다. 그런데 올드걸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영우먼은 미용산업, 성형산업, 의류산업을 거쳐야 만들어지므로 매스컴에 의해 떠들썩하게 알려지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반면, 노트 하나 시집 한 권이면 족한 올드걸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회의 거미줄 같은 자본 시스템을 경유하지 않는 존재는 발굴되지도 부각되지 않는법이니까. 또한 일상생활에서 엄마 역할로 기능하면 딱히 드러날 기회가 없기도 하다. 나이 든 여자를 마주하고 당신은 꿈이 뭐냐고, 무얼 욕망하느냐고, 어떤 슬픔이 있냐고 물어본다는 건 영 어색하다. 나도엄마에게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보통명사 ‘엄마‘의 사적 영역은 한때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우리 모두에게 상상 불가능한지대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걸은 살아 있다. - P13
누군가 나에게 올드걸의 정의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이나 권력, 자식을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고 본래적 자아를 동력으로 살아가는 존재, 늘 느끼고 회의하고 배우는 감수성 주체‘라고.
내 생애 첫 시집은 《한국명시선》이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하얀 거품, 까만 포도알 같은 아이의 눈망울, 세모 지붕에 낮은울타리가 쳐진 집으로 뛰어가는 들판의 아이들 등등 70년대 지방 소도시에 있는 이발소 달력 그림에 쓰일 법한 사진에다가, 윤동주, 이육사, 김소월 등의 국정교과서 수록 시가 어우러진 사진판 양장본 책이었다. 내가 둥그런 바가지머리 아이였을 때그 시집을 방바닥에 드러누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 두번째 시집은 잡지 부록으로 딸려 온 《세계의 명시-애송시 200선》으로, 국내편 국외편이 섞여 있었다. 괴테의 <첫사랑>, 릴케의 <가을날〉, 롱펠로의 <인생찬가〉 등 어색한 번역에 따른 비장한 시어를 나는 아무 이물감 없이 그대로 흡수했다. 책을 읽다보면 심오하고 난해해서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느낌에 압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소싯적 읽은 시들이 그랬다. - P14
아이에서 소녀로 자라면서 나는 시의 풍요를 제대로 누렸다. 문학적 감수성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그 시절에는 시가 봄날 개나리처럼 어디에나 흐드러졌다. 꼭 시집을 사지 않더라도스프링 연습장 겉표지에 조병화의 <남남>, 서정윤의 <홀로서기>,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같은 시가 예쁜 글씨체로꾸며져 있었다. 그뿐인가. 대중가요도 시적 정취가 물씬했다. 산울림과 들국화와 김광석의 어떤 가사는 시보다 시적이었다. 나는 노래와 시를 구분치 않았다. 노트를 쫙 펴고 한쪽에는 이형기의 <낙화>, 그 옆에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베껴쓰곤 했다. 부피가 얇고 작아서 손에 쏙 들어가는 시집은 선물용으로도그만이었다. 삼천 원에 그만큼 기품 있는 선물이 또 없었다. 친구들과의 갈등에서 속상함을 표현할 때나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존경과 사랑을 고백할 때 등 언어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시집을 뒤적거렸다. 연애편지에도 시 한 편씩 꼭 곁들였다. 그렇게 꽃이 피고 낙엽이 질 때마다 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시가 쌓였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김남주와 박노해의해방문학 시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뜨겁게 달궈진 불온한 언어는 정신의 성냥불을 확 그어 주곤 했다. 비장미와 숭고미와낭만성과 유치함이 교차하던 이십 대, 온통 정서 과잉의 그 시대. 일상, 연애, 투쟁 어느 곳에서도 나는 손 길게 뻗어 시에 의 - P15
을 지했다. 시로 지은 집에는 어김없이 사람의 얼굴이 누워 있었으니, 그 인연이 매개한 ‘말들의 풍경‘은 그대로 세상 읽기의 독본이 되어 줬다.
서른 중반 즈음부터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삶이복잡계 수준으로 얽혔고 이성복 시인의 시구대로 "몇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을 지나오면서 나는 더 이상 한갓 취향으로 시를 읽을 수 없었다. 생이 기울수록 시가 절실했다. 일을 마치고늦은 밤 귀가하면 식구들은 잠들고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곤했다. 식탁 위에는 라면 국물이 반쯤 남은 냄비와 뚜껑도 닫지않은 김치 보시기, 고춧가루 묻은 젓가락이 엑스자로 놓여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벗은 양말은 발아래 낙엽처럼 채였다. TV는 저 혼자 무심하게 떠들고 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손에 잡히는 시집을 빼서시를 읽었다.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 한 30분씩 시를 읽으면서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예가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 P16
읽으면서 나는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했다.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마치 혈관주사처럼 피로 직진하는 시 덕분에 기력을 챙겼다. 꿈 같은 피안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남루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났다. 시가 주는 묘한 해방감의 정체가 무언지는 몰랐다. 그런데 얼마전 친구가 소설에서 봤다며 ‘조선조 사대부 여인에게는 시가짓기를 금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 책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결혼은 항상 숙명과 같은 엄숙한 얼굴로 가시울타리를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울타리 안에서 순치된 가축처럼고분고분 살아갈 뿐이다. 이것이 남권 사회의 순리다. 가장 무난한 방도는 회의하지 않는 일이다. 남권 사회에 있어서 여인의 회의는 독약이나 같다. 조선조 사대부 여인들에게 시가 짓기를 금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눈뜨는 것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 아닌가. - 이영희의 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1권
문학에 눈뜨는 일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고, 회의에 눈뜨는일은 존재에 눈뜨는 일이었다. 시를 읽는 동안 나 역시 생각에 - P17
음서 생각으로 돌아눕고 곱씹고 되씹고 뒤척이기를 반복했다. 흔한 기대처럼 시는 삶을 위로하지도 치유하지도 않는다. 백석시인이 노래했듯이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할 뿐이다. 사는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굳이 삶을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시가 내게 알려 준 것도 삶의 치유 불가능성이다. 니체가 말했듯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끔찍한재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바닥까지 시는 깊게 내려간다. 시를 통해 나는 고통과 폐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을, 고통과의 연결 고리를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일명 진실과의 대면 작업이다. 어디가 아픈지만 정확히 알아도 한결수월한 게 삶이라는 것을,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확실한 절망을 믿는 게 낫다는 것을 시는 귀띔해 줬다. - P18
삶은 천연덕스럽고 시는 몸부림친다. 시가 뒤척일수록 삶은 명료해진다. 삶이 선명해지면 시는 다시 헝클어버린다. 나는 시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 아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좋은 시를 읽으면 자동인형처럼 고개가 올라간다.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누르듯이 책장을 덮는다. 방 안을 한 바퀴돌고 나서야 다시 시 앞에 앉아 베껴 쓴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글쓰기 충동에 시달렸다. 시가 휘저어 놓아 화르르 떠올랐다가 층층이 가라앉는 사유의 지층들. 몸에 돌아다니는 말들을어디다 꺼내 놓고 싶었다. 꺼내 놓고 싶은 만큼 꺼내 놓고 싶지않았다. 나에게 고유한 슬픔일지라도 언어화하는 순간 구차한슬픔으로 일반화되는 게 싫었다. 우리가 입을 다무는 것은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말하고 싶음과 말할 수 없음, 말의 욕망과 말의 장애가 충돌하던 어느 가을날, 나는 이미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말은 나를떠났다. 계속 쓰고 싶었다. 궁여지책으로 사유를 자극한 시 한 - P19
편과 차오르는 말들을 나란히 블로그에 올렸다. 혹여 누가 그섬에 닿더라도 시 한수 나눈다면 덜 민망하리라 더 인정 어리리라 생각했다. 그 후로 사는 일이 힘에 부치고 싱숭생숭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시를 읽고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싶을 때마다시를 핑계 삼았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회한이 쌓이고, 시집이 늘었고, 눈물이 마르고, 아이들이 커 가고, 《올드걸의 시집》이 자랐다. - P20
이 책은 단순하게는 서른을 지나 마흔에 들어선 한 여성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 챙겨 주고픈 구닥다리 모성관의 소유자이자, 문득 일상을 전면 중지하고 홀연한떠남을 꿈꾸는 몽상가이자, 시시때때로 아름다운 언어에 익사당하고 싶은 문자중독자이고, 밥벌이용 글을 써야 하는 문필하청업자이며, 사람 만나 이야기하고 그 소소한 행복을 글로 쓰길 좋아하는 데이트 생활자인 나. 수많은 존재로 증식되는 나를 추스르느라 휘청거리며 살아온 날들을 담았다. 요란한 삶이고 빈 수레다. 살면서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지만 학위가 없고, 책 읽기와 - P20
글쓰기로 생활비를 벌지만 명함이 없고, 시를 늘 곁에 두지만 등단이나 전공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능력이 닿지 않는다 해야겠다. 이런 나의 삶의 이력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살면서 민망한 적 많았다.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되지 않고 성과를 축적하지 않는 삶은 설명하기도 이해받기도 어려웠다. 오직 노릇과 역할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 성과와 목표로 한 생애를 평가하는 가부장제 언어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말이 바닥났을 때, 시가 내게로 왔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잘 정의한대로 "모든 것에 대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끝까지말하려 하는 시", 그 포기하지 않음에 기대어 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동시에, 익숙한 나로부터 떠나는 연습을 일삼았다. 지금나는 손에 쥔 것은 없으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더 많아졌으니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었구나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엄연하게는 삶과 시의 합작품이다. - P21
이것을 왜 책으로까지 묶어야 하는지 고민이 길었다. 블로그와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에 연재한 ‘올드걸의 시집‘을 읽고 "시가 좋아졌다" "시집을 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용기를 냈다. 시의 사적 소유가 아닌 시의 공적 순환을 위해서 뻔뻔해지기로 했다.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이는 아주 일상적으로는 끼니마다 밥 차리는 엄마의 고단함을 남편과 아들이 알아보 - P21
는 것이고, 음식점이나 편의점이나 경비실에서 일하는 사람과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시를 읽는 것은 타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고, 나를 허물어뜨린 자리에 남을 들여놓는 행위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고 존재가 존재를 닦달하지 않는 세상. 그것을 ‘시‘와 ‘시에 곁들여진 수다‘가 조금이라도 도우면 좋겠다. 2011년 가을부터 연구실에서 시 세미나 ‘말들의 풍경‘을 진행하며 열 명 남짓한 벗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시를 읽었다. 시의 이해도와 삶의 만족도가 동시에 상승했다. 말을 들어 주고, 말을 만들어 가는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엄마의 돌연한 죽음으로 삶의 일회성을 자각했고 존재의요청을 들을 수 있었다. 나로 하여금 생을 귀히 여기도록 영감과 자극을 준 눈물겨운 인연들이 있다. 이 책에는 수많은 타인의 지분과 체온이 깃들어 있음을 말하고 싶다. 2012년 다시 가을 - P22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 장석남의 시 <옛노트에서> - P35
홍상수는 사랑을 교통사고라고 생각할까. 그런 것도 같고아닌 것도 같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사랑의 숭고함을 말하지않고 신발처럼 일상의 맨바닥을 지탱하는 소모품 같은 사랑을얘기한다는 점에서 교통사고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이합리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감정중추로 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또 본능적이고 실재적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달콤한 충돌을 왜 피하냐고 묻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번개처럼 이미 와 있는 사건으로서의 사랑을 얘기한다. <옥희의 영화>에서 그의 사랑관이 드러나는 대사. "사랑 절대로 하지 마. 정말로 안 하겠다, 결심하고 버텨 봐. 그래도 뭔가 사랑하고 있을 걸……." 받아 적고 싶어 손이 움찔했다. 니체가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줬듯이, 속물 대마왕 홍상수가 사랑의 사이비 신도였던 나를 일깨운다. 사랑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 P38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_함성호의 시 <낙화유수〉 - P39
삶이라는 극지
그대라는 대륙
목표도 없이, 계획도 없이 그대를 여행하는 것이 이번 생을 횡단하는 나의 본질적 계획이었네 -박정대의 시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부분 - P45
한 사람은 끝없이 자기를 바닥으로 몰아간다 더 이상 가라앉지 않을 때까지 그녀는 대기중으로 그녀의 전부를 흩어놓고 싶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껍데기의 공허를 맛보고 싶다 사랑이 그녀를 밑바닥에 이르게 한다 그녀의 텅 빈 육체 안엔 이제까지의 그녀가 아닌 다른 영혼이 심어진다 -이선영의 시 <사랑하는 두 사람> 부분 - P51
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 - P54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 _채호기의 시 <사랑은> 부분 - P55
직감이라는 것. 선천적인 부분도 있지만 나이 들면서 경험치에비례해 발달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고통 체험이 감각세포를단련시키는 것 같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번뇌 그 후, 눈에 들어오는 세계는 넓고 깊어진다.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한테 가을날 단풍이나 밤하늘 둥근 달이 이전처럼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또 자아 붕괴의 통증으로 몸부림쳐 본 사람은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에서도 고유의 느낌을 짚어내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름의 곡절을 겪으며 나도 철이 좀 들었을까. 지난주에는선배한테 ‘아현동 철거 사진전‘을 보러 가자고 문자 메시지가왔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담에 가자고 하려다가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망설였다. 좀처럼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고강인하며 냉철하기 이를 데 없는, 나하고는 종 자체가 다른 사람인데 그날은 문자만으로도 어떤 ‘흔들림‘과 ‘갈망‘이 읽혔다. 난 발목 잡는 일 더미를 제쳐 놓고,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연탄이었느냐"를 읊조리며 나갔다. - P56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 - P58
그렇게 부산스럽게 준비한 저녁 먹고서 식탁을 정리하고는, 한쪽에 밀어 두었던 책과 노트북을 끌어와서 긴긴밤을 보냈다. 둥근 모서리에 배를 붙이고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이유식을 먹었던 그곳에서, 나 역시 더운 밥덩이를 넘기고 매운 책뭉치를 삼키고 비린 언어들을 게웠다. 일명 생계형 글쓰기. 밥상에서 밥을 위한 글을 쓰면서 나는 밥의 절실함과 서러움을 배웠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을 위해서 운다는 말처럼 배 굶고 아픈 것들이 더 잘 눈에 들어왔다. 나의 반려가구인 그 원형식탁 의자 한 개는 삐걱거려 두꺼운 테이프로 붙여 가며 버티다가 결국 버렸다. 다른 하나는 쿠션이 푹 꺼졌다. 멀쩡한 의자가 두 개뿐이다. 식탁도 다리 쪽 부품이 빠져서 살짝 피었다. - P64
이 틈이 좋아요 내 살과 당신의 살 사이, 서로 다른 육즙의 신선한 향내 뭍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는 여기는 시들지 않는 신접살림이 바람개비처럼 까불거리죠 이쪽이기도 하고 이쪽 아니기도 한 소슬한 틈새의 배갯머리에서 시간이 숨구멍처럼 휘는 이곳의 혼돈이 좋아요 -김선우의 시 <빨에 울다> 부분 - P66
사람 떠나고 침대 방향 바꾸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불과 베개 새것으로 바꾸고 벽으로 놓던 흰머리 창가로 두고 잔다 밤새 은현리 바람에 유리창 덜컹거리지만 나는 그 소리가 있어 잠들고 그 소리에 잠깬다. 빈방에서 적막 깊어 아무소리 들을수 없다면 나는 무덤에 갇힌 미라였을 것이다. 내가내 손목 긋는 악몽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먹은 것 없어도 저녁마다 체하고 밤에 혼자 일어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바늘로 따며 내 검은피 다시 붉어지길 기다린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_정일근의 시 <그 후〉 - P69
생의 거품을 제거하는 방식이든 생의 금을 덧입히는 방식이든, 저마다 나답게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학벌, 가족, 직급, 재산 등을 제외한 나머지 그 실재를 열망하거나, 이름과 얼굴을 바꾸면서 과거 청산을 도모하거나, 기민한 태도로 이익을 챙기거나, 그런다. 연예인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자기를 지우고 바꾸고 숨기고 갱신한다. 남루한 혹은 지루한 생을 리모델링하는 그 힘들이 놀랍다. 인생이라는 책에서 한페이지만 찢어 낼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잠시 헷갈린다. 어지럽고 어리둥절하다. 그들의 변신 욕망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를물어야 할 것이다. 자기를 억압하느냐 해방하느냐.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나는 오해될 것"이고 "결국 나는 나를 비켜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하는 거 같다. 살면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은 이름, 감각, 느낌, 음악, 이야기...... 나에게 존재를 위해 금가루 뿌리는 일이란 음악이내미는 손 잡는 것,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 느낌을 나누는 것. 그리 호사 누리며 살기로 한다. - P71
나는 오해될 것이다. 너에게도 바람에게도 달력에게도
나는 오해될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신호등 앞에서 기나긴 터널을 뚫고 지금 막 지상으로 나전철 안에서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다. _이장욱의 시 <오해> 부분 - P72
할 말 못할 말, 들을 말 못 들을 말. 찬란한 말, 쓰라린 말, 참담한 말, 간절한 말, 희미한 말, 비정한 말, 흔드는 말, 지독한 말, 다정한 말, 사는 동안 숱한 말의 숲을 통과한다. 도무지 그 말이 어려워 서성이기도 했고, 그 말에 채여서 주저앉기도 했고, 그말이 따스해 눈물짓기도 했다. 그렇게 추억이란 말의 기억이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말대로 모든 흔적은 상흔이다. 완전한 제거는 없다. 누렇게 곰팡이 슨 말들과 소화되지 않은 말들을 껴안고 한평생 살아간다. 가끔 텅 빈 몸에서 말의 편린들이 덜컹거리면, 외로운 몸뚱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인기척이 반갑기까지 하다. 어느새 정이 든 게다. - P73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산에 묻히는 소리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 이성복의 시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 P79
어디 살림만 그러겠는가 싶다. 삶은 그 자체가 낭비다. 책 한권을 어렵사리 읽어도 돌아서면 내용을 까먹지 않던가. 두툼한책 한 권에서 단어 하나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수학도 몇번을 풀어야 자신 있게 답을 쓴다. 수년간 다달이 부은 보험금을 해약하면 푼돈만 남는다. 사는 게 총체적으로 낭비라는 걸인지하지 못할 때는 살림만 미워했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 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은 아니다. 좀 나아졌다.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고 쌀을 씻으면서, 땅에서 난 그것들을 만지면 마음이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 바닥 구석구석에 어질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으며 헝클어진 번뇌를 같이 모아 버린다. 떨어진 단추를 달고 터진 솔기를 꿰매면서 벌어진 마음의 틈을 메운다. 해 드는 오후 마루에 앉아 빨래를 반에서 반으로 접으며 미련과 회한을 접는다. 날 괴롭히는 것이 날 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 - P82
온전한 순결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대를 다 닦겠는가 더러워진 방 팍팍 문질러 훔치다보면 그대를 내가 닦는 것인가 나를 그대가 닦는 것인가 후줄그레한 걸레의 물기에 어른거리는 세월이여, 조각난 마음이여 -이재무의 시 <걸레질> - P83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몸이 말라비틀어지고 영혼이 꺼멓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망신의 사랑이여! - 김중식의 시 <모과> - P87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못한다 몇 번씩 얼굴을 바꾸며 내가 속한 시간과 나를 벗어난 시간을 생각한다 -신해욱의 시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부분 - P91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송이 참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는 교회라지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가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거였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가이리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란 코트에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_김이듬의 시 <겨울휴관> - P96
아득한 고층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난간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 P100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심보선의 시 <슬픔이 없는십오초> - P101
하나의 시험대가 주어졌음을 알아챘다. 내 신체가 거부하는 그곳, 불편함을 느끼는 대상에 바로 나를 성장시킬 무언가가 있다며 니체는 "금단의 땅에서 열매를 구하라"라고 했다. 유목은 한국에서유럽으로 여행 가는 게 아니라, 자기로부터 떠나는 능력이다. 나의 정체성은 다른 내가 될 가능성이다. 그동안 배운 이론들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앞으로 삶을 뚫어야 하는 상황. 불현듯용기가 났다. 원한 감정을 털어버리자. 나를 개방하자. 내 살 곳은 속세다. 산 중턱 절간에 절대 고요를 원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심심해서 살지 못한다. 사람과 사건이 넘쳐 나는 이 대지가나의 삶의 절대 조건이다. - P104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에 있을까.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나는 적어도 그랬다. 근데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뭔가 늘 못마땅하고 모자란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치를 들고 정자를 짓고 물길도 트고, 그렇게 땀 흘리면서 친구도 만나고 하루가 가고 한 시절이 갔으니 말이다. 이마 위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에서 느끼는 자유 지옥을 느끼던 그곳이 천국으로 변하기도 하는 경험은 매우 짜릿하다. 밥 짓고 아이 키우고 두세 시간 출퇴근 기분 내면서 살아 보고 싶어졌다. 동료한테 우리 앞으로 삼성전자 직원보다 더 열심히 살아 보자며 웃었다. 즐겁게 이사했고 부엌도 정리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개운하다. 정이 생겨서 다니는 게 아니라 다니다 보면 정이 - P104
들게 마련이다. 우선은 시 세미나를 시작하고 니체를 일독할참이다. 삼선동에 놓인 나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이것이 셀프 구원 - P105
내가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내가 늙어 자식에게 의탁하든, 비참하고 비루한 생이 지겨워 눈물바람 할 테고 태어난걸 후회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살 만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하겠지. 육아가 힘들 때 아이들이 족쇄 같아 ‘괜히 낳았다‘고 워망했던 것처럼 더러는 괜히 죄 없는 부모님을 탓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힘든 일 포기하고 떠난다고 자유롭지 않다. 그건 자유에 대한 환영이고 망상이다. 넘지 못할 것 같은 산도 한 걸음 내딛으면서 다리 힘이 길러지고, 그러면 다음 봉우리는 더 쉽게 건널 수 있다. 근육이 튼튼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면 삶의 어느 고비에서도 성큼성큼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궁극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면걸린 데서 또 걸린다. 살아보니 그랬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좋기만 한 관계는 가짜이고,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은 무탈한 일상이 행복은 아니었다. - P112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못 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 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 함께. -강형철의 시 <사랑을 위한 각서8 - 파김치> - P113
<바다> 라는 시를 읽다가 청승맞게 공상에 빠져버렸다. 푸른하늘의 ‘겨울 바다‘가 생각나서 찾아들었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 ‘바다‘가 연상되어 또 그것을 듣고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정말이지 이럴 때만 좋다. 이럴 때만 사는 것 같다. 나의 영혼이 촛불처럼 환해지고 기타처럼 딩가딩가 자유롭게 춤을 춘다. 가족들이랑 캐리비안베이 가는 거 말고,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데는 여수 밤바다다. 혼자서 가고프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여수행 우등고속을 끊고 떠났다가 여수에서 며칠 묵고, 또백석이 "자다가도 바다가 보러 나가고 싶다"라고 한 통영에도가고, 민박집에서 하루 종일 방 끝에서 방 끝으로 뒹굴면서 책보고 밤이면 파도 소리 들으면서 글 쓰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붙박이 인생 청산하고 떠돌이처럼 살면 내가 어떻게 될지궁금하다. 그럼 사는 일이 덜 지겨울까. 역할에서 빠져나오면 나비처럼 자유로울까. 여섯 시간째 뱃속이 텅 비었다고 전화하는 딸내미에게 즉시 달려가지 않아도 되면 나의 인생이 더 고상해질까. 밥에 묶인 삶. 늘 떠남의 욕망에 시달린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바다 되어 출렁이고, 마음만은 지중지중 물가를 거닌다. - P118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하구려 섧기만하구려 _백석의 시 <바다> - P119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핼쑥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쳤고 또 누구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서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 보면 십팔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책처럼 싸짊어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파트는 서서히 눈에 불을 켠다 - P125
이빨이 가려운 잡견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싶은 아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잘사는 법과 싸움의 엉성한 방어자세를 가르치는 젊은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밤이면 아파트가 울고 울음소리는 근처 으슥한 공원으로 기어나가 흉흉한 소문들을 갈기처럼 세우고 돌아온다 새벽까지 으르렁거린다 십팔, 십팔평 임대 아파트에 평생을 건 사람들을 품고 아파트가 앓는다. 아파트가 운다 아프다고 콘크리트 벽을 쾅쾅 주먹으로 머리로 받으면서 사람들이 운다 _최금진의 시 아파트가 운다> - P126
원래 큰 사건이 생기면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끊임없이 이어지기 일쑤다. 수습하다가 지치셨다. 그래도 엄마의 표정은 늘 그렇듯이 밝았지만 가슴속은 이미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허물어지고 있었다. "나는 집이 좁아도 괜찮다, 오빠도 몸이 불편하지만 자유롭게 잘 살지 않느냐, 왜 내 행복을 남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라고 아무리 말해도 내 집 마련해서가정 꾸리고 사는 자식 보는 것을 부모 임무의 완결판이라고생각하는 엄마를 설득하기엔 논리가 부족했다. 모든 엄마들이 그럴 거다. ‘남들처럼 평범하게‘가 이 땅의 엄마들에게는 너무 소박한 바람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자동차나보험회사 광고에 나오는 정상가족의 판타지를 버리지 못하는한, 엄마의 자리에서는 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미 한 방향으로만 사고가 굳어져버렸기에, 적극적으로 다른 삶의 유형을 기대하고 상상하면서 희망을 찾을 수가 없는 거다. 우리 엄마 역시, 결핍과 우울에 겨워하다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고 몸 안에서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이라고, 나는 엄마의 죽음 - P130
을 이해했다. 김중식 시인의 시구대로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않으시는 어머니, 원초적 모성으로서의 엄니, 신문이 조종하는 대로 사고하고 광고에 나오는 대로 욕망하는 엄마, 사회적 모성으로서의엄마. 어떤 개념을 걸어도 ‘엄마‘는 문화적 산물이고, 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더 이상 엄마들이 아프지 않은 세상을 위해, 나부터 아프지 않고 울지 않는 엄마가 되는 일이 남았다. 자식이울까 봐 미리 우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가 웃어서 자식도 옷게하는 그런 행복한 엄마들이 많아지는 세상, 엄마가 내게 남겨주신 숙제다. - P131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_김경주의 시 <주저흔> 부분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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