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동시에, 작가와 그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공감은대단히 강렬한 열정이다. 그것은 페이지를 한달음에 넘기게만든다. 예술적으로는 별반 장점이 없는 것에 일시적으로나마더 날카로운 예각을 부여한다. 비픈과 리어던은 저녁 식사로 빵과 버터와 정어리를 먹었고, 기싱도 그랬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비픈의 코트는 저당 잡혔으며, 기상의 것도그랬을 것이다. 리어던은 일요일에 글을 쓸 수 없었고, 기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이 리어던인지, 풍금 소리를 좋아하는 것이 기인지 잊어버린다. 확실히 리어던도 기싱도 헌책방에서 기번의 책들을 샀으며, 안개속을 뚫고 한 권씩 집으로 날랐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유사성들을 계속 찾아내며, 소설과 편지를 뒤져 가며 그런 발견에 성공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낀다. 마치 소설 읽기가 작가의 얼굴을 찾아내는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 P144

실로 기상은 배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베이커가의 기차들은 그의 창문 아래로 증기를 내뿜으며 지나갔고, 아래층하숙인은 그의 방을 날려 보낼 정도로 심하게 코를 풀었으며, 하숙집 안주인은 무례했다. 식료품 가게 주인은 설탕을배달해 주지 않아 그가 직접 나르게 만들었으며, 안개에 목이 상해 감기가 든 그는 3주씩이나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펜을 들고 계속 써나가야 했으며, 이런저런 집안 걱정 때문에 마음이 비참하게 흔들렸다.
이 모든 일이 음울하고 단조롭게 계속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나약한 성품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파르테논의 기둥들과 로마의 언덕들이 여전히 안개와 유스턴 골목의 생선가게들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에 꼭 가볼 작 - P148

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테네에 갔고 로마를보았다. 시칠리아에서 죽기 전에 투키디데스를 읽었다. 그의 주위에서삶이 변하고 있었고, 삶에 대한 그의 시각도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해묵은지저분함, 안개와 파라핀유, 술 취한 하숙집 안주인이 유일한 리얼리티는 아닐 것이었다. 추함이 진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움의 요소도 있었다.
과거는 그 문학과 문명으로 현재를 굳건히 만든다. 어쨌든장차 그가 쓸 책들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이즐링턴이 아니라토틸라 시대의 로마에 관한 것이 될 터였다. 그는 부단한 사고 속에서 <두 가지 형태의 지성을 구분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고 있었다. 지적 능력만을 존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색의 지도 위에 자신이 도달한 지점을 표시하기도 전에 자기 인물들의 경험을 그토록 공유해 왔던 그는 자신이에드윈 리어던에게 부여했던 죽음을 공유했다. <인내, 인내>라고 그는 죽어 가면서 곁에 서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불완전한 소설가였지만, 대단히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 P149

토머스 하디의 소설들


토머스 하디의 죽음으로 영국 소설에 지도자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첫손에 꼽을 만한, 우리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다른 작가가 없다는 뜻이다. 그 자신은 결코 그런인정을 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세속에 물들지 않고 소박한 노인은 지금 같은 때 넘쳐나는 미사여구에 고통스러울만큼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소설이라는 예술을 존경받을 만한 일로 만든 소설가가 한 사람있었다는 것이 틀림없는 진실이다. 하디가 살아 있는 동안은그가 종사하는 예술을 천하게 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남다른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 - P151

우연의 일치를 멜로드라마에나 어울릴 만큼 극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소설이 장난감도 논증도 아니며인간 남녀의 삶에 대해 거칠고 과격하나마 진실한 인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아마도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페이지마다 울려 퍼지는 폭포 소리이다. 그것은 그의 후기작들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차지하게 될 힘의 첫발현이다. 그는 이미 세밀하고 숙달된자연관찰자임을 입증한다. 나무뿌리에 내리는 빗소리와 경작지에 내리는 빗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나무마다 다르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자연, 힘으로서의대자연을 의식하고 있다. 그는 자연 안에서 인간의 운명에공감하거나 그것을 조롱하거나 무심한 방관자로 남는 어떤영을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그런 감각이 있었다. 올드클리프 양과 시더리아에 관한 서투른 이야기가 기억에남는 것은 신들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 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P153

여성은 더 약하고 육욕적이며, 더 강한 자에게 매달려 그의시야를 흐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작품들에서 삶은이 요지부동의 틀 너머로 얼마나 자유롭게 넘쳐흐르는가!
밧세바가 짐마차에 실린 화초들 사이에서 작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어여쁜 모습에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이미그녀가 얼마나 심한 괴로움을 겪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로움을 주게 될지 알아차리거니와, 이렇게 우리가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하디의 능력을 입증해 준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인생의 모든 신선함과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매번 그런 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그에게 무한히 매력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그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을 더 친절하게 배려하며, 그녀들에게 어쩌면 더 깊은관심을 갖는 듯하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헛되고 운명은가혹할지언정, 그녀들 안에 삶의 열기가 남아 있는 한 그녀들의 걸음은 활달하고 웃음소리는 감미롭다. 그녀들에게는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장엄한 침묵 가운데 잠겨드는, 또는 일어나서 구름의 움직임과 꽃피는 숲속의 싱그러움과 하나가 되는 힘이 있다. - P160

하지만 웨섹스 소설들의 장대한 구조를 감안한다면, 이인물, 저 장면, 이 깊고 시적인 아름다운 어구 등 사소한 점들에 연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하디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그보다 큰 무엇이다. 웨섹스 소설들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으로 된 작품이다. 그 범위가 워낙 광대하다 보니불가피한 결점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것들은 그저 실패이고 또 어떤 것들은 지은이의 천재성의 그릇된 면만을 드러낸다. 하지만 웨섹스 소설들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 후에그 전체에 대한 인상을 추려 보면, 그 효과가 웅대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이 부과하는 옹색함과 왜소함에서 해방된다. 상상력은 한껏 확대되고 고양되며, 유머 감각도 십분 만족되어 실컷 웃게 되고, 지상의 아름다움을 실컷 들이마시게 된다. 또한 우리는 비감하고 사색적인 한 영혼의 속내로 들어서게 되는 바, 이 영혼은 가장 슬픈순간에도 엄정한 강직함으로 자신을 버티며 가장 분노로 내몰린 순간에도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연민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디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단순히 특정 시기와 장소에 국한되는 삶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강력한상상력과 심오하고 시적인 천재성을 가진, 온화하고 인간적인 영혼이 바라본 세계와 인간 운명의 비전이다. - P170

루이스 캐럴


루이스 캐럴 전작집이 넌서치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자그마치 1,293쪽의 두툼한 책이다. 그러니 변명의 여지가없다. 루이스 캐럴은 이제야말로 최종적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전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번에도 또 실패다. 루이스 캐럴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보면 옥스퍼드의 성직자이다. 또는C. L. 도지슨 신부‘를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보면 요술쟁이 요정이다. 이 책은 우리 손안에서 두 쪽이 나버린다. 그 - P171

것을 도로 이어 붙이려면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도지슨 목사에게는 삶이라는 것이 없다. 그는 이세상을 어찌나 가볍게 지나가버렸는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순순히 옥스퍼드로 녹아들어갔기에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모든 관습을 받아들였고, 얌전하고좀스럽고 경건하고 익살맞다. 만일 19세기 옥스퍼드 교수들에게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야말로 그 본질이었다. 그는 너무나 착해서 누이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너무나 순수하여 조카도 그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루이스 캐럴의생애에 실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수도 있다고 조카는 언뜻 비쳤을 뿐이다. 도지슨 씨는 대번에 그런 그림자를 부인한다. <내 삶에는 아무런 시련이나 고생이 없었다>라고 그는말한다. 하지만 이 물들이지 않은 젤리에도 완벽하게 단단한수정이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니, 어린 시절은 보통 천천히 시들기 때문이다. 소년이나 소녀가 자라 남자나 여자가 된 후에도 어린 시절의 부스러기는 남는다. 어린 시절은 때로는 낮에, 좀더 흔히는 밤에 돌아온다. 하지만 루이스 캐럴에게는 그렇지않았다. - P172

그럼에도 헨리 제임스의 위대함은 우리에게 그토록 명확한 세상, 너무나 분명하고 독특하여 우리가 만족한 채로 있지 못하고 그 비상한 지각들로 더욱 실험하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작가가 따라다니며 일일이 가르치는 것이나 그의 의도,
그의 조바심으로부터는 자유롭기를 원한다. 이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프루스트의 작품으로 향한다. 그에게서 우리는 대번에 공감이 확장되는 것을, 너무나 드넓게 확장되어 애초의 대상마저 잃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만일우리가 모든 것을 의식하게 된다면, 어떻게 무엇인들 포착할수 있겠는가? 헨리 제임스의 세계가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의 세계에 비해 물질적 경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모든것이 생각에 열려 있어서 수십 가지 의미의 음영을 받아들일수 있다면, 프루스트의 세계에서는 조명과 분석이 아예 그런경계 너머로 실려 간다. 무엇보다도, 미국인인 헨리 제임스에게는 그 세련된 도희성에도 불구하고 낯선 문명 가운데서편치 못한 그 자신이 예술의 힘으로도 결코 완벽하게 극복심리 소설가들  - P181

프루스트를 읽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부단한 우회에서 온다. 프루스트에게서는 개개의 중심점을 둘러싸고너무나 동떨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물들이 모여들므로 그런 집적 과정은 점차적이고 복잡다단하며, 그 사물들이 이루는 최종적 관계는 극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들에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다. 관계는 다른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날씨, 음식, 옷, 냄새, 예술, 종교,
과학, 역사, 그 밖에 무수한 다른 영향들과의 관계이니 말이다. - P183

심리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이런 왜곡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분석하고 구별하는 지성은 공감이 든 분노든 간에 항상그리고 거의 대번에 감정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무력화된다.
그리하여 인물들 속에 종종 비논리적이고 모순된 요소가 생겨나는 것은 아마도 보통의 감정적 물살보다 너무나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는 그렇게 행동하는가? 라고 우리는 거듭 물으며 어쩌면 미친 사람들이나 그렇게 행동하리라고 미심쩍게 대답하게 된다. 반면 프루스트에게서는 접근 방식이 똑같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생각하는 것과 그들에 대해 생각되는 것, 작가 자신의 지식과 생각 등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마음을 다 들여 이해하게 된다. - P190

그러나 프루스트와 도스토옙스키, 헨리 제임스 등 느낌과생각을 따라가는 데 전념하는 모든 작가들에게는 항상 작가로부터 넘쳐흐르는 감정이 있다. 마치 그렇게 미묘하고 복잡한 인물들은 책의 나머지가 생각과 감정의 깊은 저수지일 때만 창조될 수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작가 자신이 나서지 않을 때에도, 스테판 트로피모비치나 샤를뤼스 남작 같은 인물들은 비록 언명되지는 않았다 해도 자기 자신들과 같은 재료로 된 세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을 되새기고 분석하는 작업은 항상 의심과 질문과 고통의, 어쩌면 절망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적어도 그런 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악령』을 읽은 결과인 듯이 보일 것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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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닐거나 쏘다닌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그에게 더 큰의미가 있었다는 것은 그의 친구 몇몇이 각기 나름으로 그원정들에 대한 회고담을 내놓으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그는 아침 식사 후에 혼자서 또는 친구 한 사람과 함께 출발하여 저녁 식사 직전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 도보 여행이 성공적이었을 때는 커다란 지도를 꺼내 새로운 지름길을 붉은잉크로 표시해 두었다. 그는 온종일 동행과 한두 마디 이상하지 않은 채 얼마든지 황야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모양이다.  - P12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항상 그 배경에 있었다. 또한, 그는 사람들과의 일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고 일어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도못했지만, 어떤 사람을 묘사할 때면 그는 유명 무명의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냈다ㅡ 자신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불과 두세 마디로 정확하게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그의생각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정반대일 때도 있었다. 자신에게 진실하게 비치는 느낌은 누구보다도 존중했지만, 기존의평판이나 전통적인 가치들은 예사로 뒤엎고 무시하는 특유의 버릇이 있어, 당혹스럽고 때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추상적인 상념에 빠져 있는 듯하다가 문득 깨어나 그 선명한 푸른 눈을 뜨고서 자기의견을 말할 때면, 도저히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런 버릇은- 특히 그가 점점 귀가 어두워져서 그렇게 중얼대는 의견이 남에게도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 P15

 그의 딸들도- 비록 그는 여성의 고등 교육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똑같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마땅했다. 한때 딸 하나가 담배 피우는 것은 무섭게 꾸짖었지만 그의 견해로는 여성이 담배 피우는 것은 좋은 버릇이 못 되었다 - 그녀가 화가가 되어도 좋은지는 그저 묻기만하면 되었다. 그는 딸이 자기 일을 진지하게 여기기만 한다면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주겠노라고 확답해 주었다. 그는딱히 그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지켰다. 그런 종류의 자유가 천 개비 담배보다 낫다.
문학이라는 아마도 좀 더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오늘날도, 열다섯 난 딸이 따로 검열하지 않은 서재를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허락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에 대해 의심하는 부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허락했다. 몇몇 사실에 대해, 그는 아주 간략하게, 아주수줍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읽고 싶은 것을 읽으라고 말해 주었고,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라하고무가치한〉, 하지만 분명 다양했던 그의 많은 책들을 허락받지 않고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책들을 좋아하니까읽는다는 것, 실제로 좋아하지 않는 책들을 좋아하는 척하지 - P19

말아야 한다는 것 - 그것이 독서에 관한 그의 유일한 지침이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능한 한 적은 말로, 가능한 한 명료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 글쓰기에 관한 그의 유일한 지침이었듯이 말이다. 그밖의 다른 것은 스스로 배워야 할 터였다. 하지만 비록 그가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거나지식을 과시한 적은 결코 없었다 해도, 그것이 뛰어난 학식과 폭넓은 경험을 지닌 사람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정말이지 철없는 아이일 것이다. 언젠가 본드가의 양복점 주인이 자기 가게 앞을 지나는 아버지를 가리켜 <좋은 옷을 좋은 줄도 모르고 입고 가는 신사분>이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 P20

실제로 거리가 단점이기는 했다. 우리는 여름에만 그곳에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골 생활은 1년에두 달, 길어야 석 달로 제한되었다. 다른 달들은 내내 런던에서 지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누렸던어떤 것도 콘월에서 보낸 여름만큼 대단하고 중요하지는않았다. 런던에서 몇 달씩 지내고 난 뒤에 콘월로 떠나게 되니 시골 생활이 한층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우리 집과 우리정원이 있고, 만과 바다와 황야가 있고, 클로지, 헤일스타운늪지, 카비스 베이, 릴런트, 트리베일, 제너, 거나즈 헤드 같 - P24

은 곳들이 있고, 도착한 첫날 밤 노란 차양 뒤에서 파도가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모래를 파고,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바위틈을 뒤져 빨갛고 노란 말미잘이 촉수를 하늘거리는 것을, 아니면 젤리처럼 바위에 들러붙은 것을 보고, 물웅덩이에서 파닥거리는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별보배고둥을 줍기도 하고, 식당에서 문법책을 대충 훑으며만의 불빛들이 바뀌는 것이나 에스칼로니아 잎이 회색이나밝은 녹색인 것을 바라보고, 마을로 내려가 1페니짜리 압정한 통이나 주머니칼을 사고, 라 씨 - 하인들의 말에 따르면, 찰랑이는 곱슬머리 가발을 쓴 부인과 <광고를 통해 결혼했다는 ㅡ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가파르고 좁은 골목에서 나는 온갖 생선 냄새를 맡고, 생선 뼈를 물고 다니는무수한 고양이들과 집 바깥에 돋운 계단 위에서 구정물을수채로 쏟아 버리는 여자들을 보고, 날마다 노란 막이 덮인콘월 크림을 먹고, 블랙베리에 흑설탕을 듬뿍 뿌려 먹고・・・・・・ 이런 기억들로 몇 페이지라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보내는 여름이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인생 서막이 되게 했다. - P25

깃발들이 펄럭이고, 총성이 울리고, 배들이 질주하고, 수영 선수들이 물에 뛰어들거나 갑판 위로 끌어 올려지는 등아주 신나는 광경이었다. 세인트아이브스 사람들이 모여서구경하는 곳은 테라스 끝의 말라코프라는 이름의 팔각형 뜰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크리미아 전쟁 때 만들어졌을 마을에서 유일하게 장식적인 장소였다. 세인트아이브스에는오락 시설이 딸린 부두나 산책로가 없고 오로지 이 자갈 깔린 팔각형 뜰뿐이었고, 거기 있는 몇 개의 돌 벤치에는 특유의 푸른 세타를 입은 은퇴한 어부들이 앉아 담배를 피우며잡담을 하곤 했다. 레가타 날은 내 기억 속에 그 머나먼 음악소리와 작은 깃발들이 달린 줄과 돛을 올린 배들, 그리고 모래 위에 점점이 흩어진 사람들과 함께, 마치 한 폭의 프랑스 그림처럼 남아 있다. - P33

한 번은 우리가 성대와 가자미를 연거푸 낚아 올리며 한참이나 열중해 있자,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다음에 너희가낚시하러 올 때는 난 오지 말아야겠다. 물고기들이 잡히는걸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너는 원하면 와도 된다.> 완벽한교훈이었다. 무엇을 비난하거나 금지하는 대신 단지 자신의느낌을 말하고, 그 점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한 것이었다. 미끼를 문 물고기가 낚싯줄을 휙 잡아채는느낌은 내가 그때까지 알던 가장 짜릿한 전율을 주었지만,
아버지의 말에 그 매력은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아무 불평없이 낚시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열정의 기억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그런 활동의 즐거움을 떠올려 볼수있다. 사람이 모든 경험을 충분히 해볼 수는 없을진대,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그려 보는 무엇을 키울 수 있는 무한히소중한 씨앗 중 하나이다. 종종 우리는 그런 씨앗으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일어날 수도 있었을 일의 씨앗 말이다. 나는 그렇듯 <낚시>를 다른 여러 일시적으로 스쳐 간 일들, 예컨대 런던 거리를 거닐 때 지하층에홀긋 던지는 일별 같은 것들과 함께 분류해 두고 있다. - P39

세인트아이브스 서쪽 해안에 있는 트리베일이라는 내포(內浦)까지 도보 여행을 갔던 길에, 우리 일행이 집을 향해출발하기도 전에 가을 저녁이 저물기 시작했다. 어스름 속에서도 풍경은 너무나 선명하여 다들 말없이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바다를 향해 장엄하게 줄지은 거대한 절벽들이밤과 대서양의 파도를 맞이하며 서 있었는데, 마치 태곳적명령에 다시 한번 순종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의연하고 고고한 모습이었다. 이따금 멀리서 등대의 불빛이 안개를 뚫고황금빛살을 던지며 문득문득 바위들의 거친 형태를 드러내곤 했다. 그 광경만으로도 아직 6~7마일을 더 걸어가기에는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P43

창밖에서 짓누르는 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잠들지 못하고 밖에 나와 어둠 속에 팔이라도 뻗어 보는 것이리라. 불빛은 그 주위에 밀어닥치는 밤의 무한한 파도에비하면 얼마나 미약한 것일까! 바다의 배도 외롭겠지만, 이황량한 땅에 닻을 내리고 밤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물살에 홀로 노출된 이 작은 마을은 훨씬 더 외로워 보였다.
그런데도, 이 낯선 분위기에 일단 익숙해지자, 그 안에는크나큰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실체의 세계에서 유령과 정령들만이 나와 돌아다니는 듯했다. 언덕이 있던 자리에는 구름이 떠돌았고, 집들 대신 불꽃들만이 남았다. 눈은현실의 거친 외관에 긁힘이 없이 밤의 심연에 맑게 씻겨 기 - P46

운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대지는 그 무한한 세부들과 함께모호한 공간으로 용해되었다. 그처럼 감각이 새로워지고 민감해진 자들에게는, 집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불빛들은 너무 강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막 날아오르다 말고 붙잡혀 새장에 넣어진 새들과도 같았다. - P47

이제 나의 아버지를 묘사해 보겠다. 네사와 내가 그 이상한성격의 작렬에 아무 보호막 없이 노출된 것은 1897년 스텔라가 죽은 후 1904년 그 자신이 죽기까지의 7년 동안이었다. 스텔라가 죽었을 때 네사는 갓 열여덟 살, 나는 열다섯 살 반이었다. 내가 왜 <노출되었다고 하는지, 그리고 그를 왜 <이상한 성격>이라고 하는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어린마음과 몸의 닳아버린 껍질 속에 다시 들어가 살아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당시의 내 나이보다는 그의 나이에 훨씬 더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때보다 그를 더 잘 이해하는지? 아니면 그 엄청나게 중요한 관계의 각을 뭉개 버려, 그의 관점에서도 나 자신의 관점에서도 묘사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인지? - P55

나는 이제 모퉁이를 돌아 그를 보고 있다. 정면으로 보고 있지않다. 더구나, 『등대로』에서 어머니에 대해 글을 씀으로써 그추억의 힘을 상당히 지워 버린 것처럼, 거기서 아버지의 추억도 많이 지워 버렸다. 하지만 그도 여러 해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에 대해 쓰기까지는, 입술이 절로 달싹이면서 그와 논쟁을 벌이고, 그에게 화를 내고, 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속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던지, 그중 어떤 것들은 여전히 말할 만하다. 가령, 네사가매주 수요일에 검사받던 가계부 얘기를 꺼낼 때면, 나는 여전히 그 말 못하고 쌓인 해묵은 분노를 온몸으로 느낀다.
- P56

외그의 책들을 통해 나는 작가로서의 아버지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네사와 내가 집안 살림을 물려받았을 때, 나는 사교적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아버지는 그를 책에서만 만나게 된 지금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집요했다. 그 무렵 나를 지배했던 것은 폭군적인 아버지 -까다롭고, 격렬하고, 연극적이고, 노골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귀가 먹은, 애절한 - 애증이 교차할수밖에 없는 아버지였다. 마치 야수와 함께 우리에 갇혀 있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만일 열다섯 살의 내가 과민하고겁 많은 어린 원숭이로, 노상 침을 뱉거나 견과를 깨뜨려먹고, 껍질을 사방에 던지고, 잔뜩 찌푸린 채 꿍얼거리다 어두운 구석으로 훌쩍 몸을 날려, 우리 이쪽저쪽으로 그네를 - P69

타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고 하자. 그는 우리 안을 어슬렁대는 시무룩하고 위험한 사자였다. 뭔가 기분이 언짢고 마음이 상해 화가 잔뜩 나서, 갑자기 사나워졌다가는 또 아주겸손해지고, 그러다 또 위엄을 부린다. 그러고는 먼지투성이에파리가 들끓는 우리 한구석에 드러눕는 것이다. 
나는 1897년부터 1904년까지 그 불행했던 7년 앞에서 음츠러든다. 그 당시 우리의 삶만큼 고통에 시달리고 초조하고<비존재non-being〉로 무감각해졌던 삶도 별로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저 두 차례의 불필요한 타격‘ 때문이었다. 그 시절을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었을 두 사람을 잔인하고 무의미하게 죽여 버린 무차별적이고 생각 없는 도리깨질 때문이었다.  - P70

그에게 어떤 사상을, 가령 밀이나 벤담이나 홉스의 사상을 분석해 보라고 하면, 그는 (메이나드ㅅ가 내게 말해 준 대로) 예리함과명석함과 공정성의 본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인물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그는 극히 조야하고 유치하고인습적이라 그의 인물 묘사는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리는 그림만도 못할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려면, 케임브리지의 편파적인 교육이 내는 절름발이 효과를 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9세기의 작가라는 직업과 강도 높은 두뇌 노동의 폐해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결코 육체노동을 한 적이없었다. 그 두 가지 영향이 음악이나 미술에는 소질이 없고청교도적으로 키워진 바탕에 어떻게 작용했을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과 그것이 어떤 감수성을 강화하고 다른 어떤 감수성을 위축시켰을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 P76

그래서 그런 격렬한 분노의표출로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런 발작에는무엇인가 맹목적이고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데가 있었다. 로저 프라이" 는 문명이란 자각을 의미한다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아버지는 그처럼 자각이 결여되었으니 깨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그를 깨우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했고, 자기감옥의 벽들을 통해 이따금 깨달음의 순간들을 얻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즉, 자기 본위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해치지 못하며, 어떤 것도 어쩔 수 없이 거기 맞닥뜨린 사람들을 그토록 심하게 상처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무렵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즉, 아버지와 우리의 나이차 때문에 가로놓여 있던 심연 말이다. 하이드 파크게이트의 응접실에는 서로 다른 두 시대, 즉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 P77

우리 사이에는 완충 역할을 할한세40대가 있어야만 했다. 그가 격노할 때 우리 눈에 왠지 우스꽝스럽게 비쳤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는눈으로 그를 보았다. 우리가 본 것은 이제는 열여섯이나 열여덟 살 난 소년 소녀에게도 너무 명백하여 설명할 필요조차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철저히과거의 권력 아래 놓여 있었다. 버네사와 나는 둘 다 타고난모험가요 혁명가였음에도, 우리보다 50년은 더 늙은 사회의지배하에서 살았다. 우리의 투쟁을 그토록 힘들고 격렬하게만든 것은 이런 기묘한 사실이었다. 우리가 살았던 사회는여전히 빅토리아 사회였다. 아버지 자신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었다. 조지와 제럴드는 빅토리아 사람들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두 가지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개인적인 싸움과 동시에 사회적인 싸움을 말하자면, 우리는 1910년대에, 그들은 1860년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 P78

음악은 아직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흔히 듣게되는데, 그 말을 가장 잘 입증해 주는 것은 음악 비평의 애매한 상태이다. 음악 비평의 전통은 아주 얕으며, 음악 그 자체가 워낙 생동하는 예술이라 그것을 다루고자 하는 이들을 압도해 버리는 것만 같다. 문학 비평가는 놀랄 일이 별로 없으니, 거의 모든 문학 형식이 그 이전 것과 비교 가능하고 모든성취를 전부터의 기준에 비추어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에서 슈트라우스나 드뷔시‘가 하고 있는 일을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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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포


누군가 또는 뭔가의 1백 주년을 기념하는 사람은 자신이사라져 가는 유령을 평가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 다가오는 해체를 예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빈슨크루소』의 경우에는 그런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1919년 4월 25일에 『로빈슨 크루소』가 2백 주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그 작품을읽는가 또 계속 읽을 것인가 하는 통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오히려 영구 불멸의 『로빈슨크루소』가 나온 지 그렇게 짧은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니말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의 노력의 산물이라기보다 종족 전 - P31

체가 만들어 낸 익명의 소산 중 하나로 보인다. 그 2백 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스톤헨지의 세월을 기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우리의 이런 반응에는 아마 다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읽어 주는 로빈슨크루소」를 들었고, 그래서디포‘나 그의 이야기에 대해 마치 그리스인들이 호메로스에대해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든다는 사실도 한몫했을것이다. 디포라는 사람이 있었다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며,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가 손에 펜을 든 어떤 사람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지든가 아니면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인상이야말로 가장깊이 새겨져 가장 오래 남는 것이니 말이다. 대니얼 디포라는 이름은 로빈슨 크루소』의 표지에 나올 자격이 영 없어보인다. 그러니 이 책의 2백 주년을 기린다는 것은 마치스톤헨지가 아직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 그것이 여전히건재함을 불필요하게 상기시키는 일이 될 터이다. - P32

 우리는 디포의 전기‘를 쓴 라이트 씨가 이런 소설들은<응접실 테이블용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동의해도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용한 가구를 취향의 최종 심판자로 삼는 데 동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작품들이 겉보기의조야함이나 『로빈슨크루소』의 보편적 인기로 인해 마땅히누려야 할 명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통탄해 마땅하다. 제대로 된 기념비를 세우려 한다면 적어도 『플랜더스』와 『나의 이름은 디포의 이름만큼이나 깊이 새겨야한다. 이것들은 이론의 여지없이 위대하다고 부를 수 있는몇 안 되는 영국 소설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같은 작가의 더유명한 작품의 2백 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이 작품들의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 P33

디포는 소설가가 되었을 때 이미 나이가 꽤 들어 :슨‘이나 필딩‘보다 여러해 연장자였으며, 소설이라는 것이모양을 갖추어 출범시킨 최초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구적 역할을 강조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그가 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서 소설이라는예술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가지고 소설 쓰기에 임했다는 사실만 말해 두면 될 것이다. 즉, 소설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덕이 되는 교훈을 말함으로써 그 존재를 정당화해야만 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분명 수치스러운 범죄〉라고 그는셨다. <그것은 마음속에 큰 구멍을 내는 일종의 거짓말이다. 그 구멍 안으로 조금씩 거짓말하는 버릇이 들어오는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작품의 서문과 본문에서, 그는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결코 지어낸 것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에근거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목적은 악인을 회심시키고순진한 자들에게 경고하려는 지극히 고상한 소망에 있음을굳이 강조하고 있다.  - P34

디포가 따분하다고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하찮은 것들에 골몰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는 실로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그리는 위대한 작가에속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 본성의 가장 매혹적인 면이 아니라 가장 지속적인 면에 대한 앎에 기초해 있다. 헝거퍼드 브리지"에서 바라보는 런던, 잿빛에, 심각하고, 육중하고, 오가는 차량과 장사하는 이들의 가라앉은 소음으로 가득한, 배들의 돛과 도시의 탑과 놈들만 아니라면 산문적이었을 풍경 - P43

이 그를 떠올리게 한다. 길모퉁이에서 제비꽃 다발을 파는누더기 걸친 소녀들, 다리의 아치 아래 성냥이니 신발끈이니하는 것들을 참을성 있게 늘어놓는 풍상에 찌든 노파들은 그의 책에서 빠져나온 인물들 같다. 그는 크랩과 기싱의 유파에 속하지만, 그저 엄격한 배움의 장소에 함께 앉은 동학이 아니라 그 유파의 창시자이며 스승이다. - P44

소설 다시 읽기


우선, 지루하다. 우리 국민의 독서 습관은 연극에서 시작된 것인데, 연극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섯 시간 이상 계속무대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정해 왔다.
『해리 리치먼드』를 다섯 시간 동안 내리 읽어 봤자 빙산의일각일 것이다. 여러 날을 더 읽어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전체 줄거리도 희미해지고 책은 맛이 가시며 결국 자책만이남아 급기야는 작가를 비난하게 된다. 그보다 더 짜증스럽고힘 빠지는 일도 없다. 그것이 극복해야 할 첫 번째 장애물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기질로나 전통으로나 시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시야말로 문학의윗길이라는 믿음이 은연중에 퍼져 있다. 만일 한 시간쯤 책을 읽을 여유가 생긴다면, 매콜리‘보다는 키츠‘를 읽는 편이 낫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물며 소설은 장황하고 그리 유려하지도 못하며 케케묵은 가정사를 다루기 일쑤이다. - P55

소설이 그의 직업이다. 그것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적합한 형식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그것은 아름다움을, 전에 지니지 못했던 섬세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것은 자신을 해방하고 비슷한 무리로부터 구분되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유물에 걸리적거리지 않고, 자기가 가장잘 할 수 있는 말을 골라 말할 것이다. 플로베르는 늙은 하녀와 박제한 앵무새를 주제로 삼을 것이다. 헨리 제임스는 응접실 테이블 주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할 것이다.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은 추방되었다. 아니, 적어도 나이팅게일은 교통 소음을 배경으로 해서는 전과 다른 소리를 내며, 장미꽃도 아크등 불빛 아래서는 그다지 붉지 않다. 오래된 재료들의 새로운 결합이 있으며, 소설은 그 약점들을 위해서가아니라 그 장점들을 위해 쓰일 때 영원한 이야기의 참신한면모를 강화한다. - P67

러시아인의 관점


체호프를 읽을 때면 우리는 <영혼>이라는 말을 되뇌게 된다. <영혼>이라는 말이 그의 책 곳곳을 누비고 있다. 늙은 주정뱅이들도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쓴다. <너는 군대에서 아주 높아져서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됐지만, 네게는진짜 영혼이 없어. (……) 네 영혼에는 아무 힘도 없어.> 정말이지 러시아 소설에서 주된 등장인물은 영혼이다. 체호프에게 있어 영혼은 섬세하고 미묘하며 무수한 기질과 장애에달려 있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에게서 영혼은 한층 깊이 있고풍부한 것이 되며 격심한 질병과 신열을 불러일으키지만 여전히 주된 관심사이다. 아마도 영국 독자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나 『악령』을 재차 읽을 때 그토록 노력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79

심지어 반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거기에는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으며 희극적인 구석도 없다. 영혼이란 형태가 없다. 지성과도 별로 관계가 없다. 그것은 혼란스럽고산만하고 소란스럽고 논리의 통제나 시의 규율에 전혀 굴복하지 못하는 성싶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절절 끓는 소용돌이,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 맹렬하게 맴돌며 우리를 끌어들이는 용오름이다. 그것들은 순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영혼이라는 재료로만 되어 있다. 우리는 원치 않게 끌려들어휘돌아가며 눈이 멀고 숨이 막히고 그러면서도 현기증 나는희열로 충만해진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보다 더 흥분된 독서는 없다. 문을 열면 러시아 장군들과 러시아 장군들의 가정 교사들과 그들의 의붓딸들과 사촌들, 그밖에 잡다한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 들어서게 된다. 이들 모두가 목청 높여 제각기 극히 사적인 일들에 대해 떠들고 있다. 대관절 우리는 어디 있는 것일까?  - P80

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영혼이라는 저 당혹스러운 액체, 뿌옇고 거품 나는 소중한 것이 담긴 그릇일 뿐이다. 영혼은 어떤 장벽에도 구애되지 않는다. 그것은 넘쳐흐르며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섞인다. 포도주 한 병 값을 치르지 못한 은행원의 이야기가 어느 곁에 그의 장인과 장인이 형편없이 다루는다섯 명의 정부들의 삶 속으로, 우편배달부의 삶과 날품팔이여자의 삶 속으로, 그리고 같은 구역에 사는 귀족 여성들의삶 속으로 퍼져 나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지쳐도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그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다. 우리를 덮치는 이 뜨겁고 펄펄끓어오르는 것, 마구 뒤섞이고 경이롭고 끔찍하고 숨 막히는것 - 이것이 인간 영혼이다. - P83

이제 남은 이는 모든 소설가 중에 가장 위대한 소설가이니, 『전쟁과 평화』의 작가를 달리 어떤 말로 부를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톨스토이 역시 이질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외국인으로 느껴지는가? 적어도 우리가 그의 제자가 되어우리 자신의 기준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우리를 의심과 당혹감으로 물러서게 할 어떤 기이한 면이 그에게 있는가? 그의 첫마디에서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보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즉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보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우편배달부가 아침 8시에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은 저녁 - P83

영혼이 도스토옙스키를 지배하듯이, 톨스토이를 지배하는 것은 삶 그 자체이다. 모든 찬란하고 빛나는 꽃잎의 중심에는항상 이 <왜 사는가>라는 전갈이 숨어 있다. 책의 중심에서는 항상 올레닌, 피에르, 레빈‘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모든경험을 자신 안에 거둬들이고 세상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려보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의 욕망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산산조각 내는것은 사제가 아니라 그 욕망들을 아는 사람, 자신도 그것들에 탐닉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그것들에 조소할 때,
세상은 발밑의 먼지요 재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의 즐거움에는 두려움이 섞여 든다. 세 사람의 위대한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우리를 매혹하면서도 반발하게 하는 것은 톨스토이이다.
하지만 마음은 태어난 장소의 영향을 받는 법이니, 러시아 문학처럼 이질적인 문학과 마주치게 되면 한껏 날개 쳐진실에서 멀어지려 할 것이 분명하다. - P86

미국 소설


외국 문학으로의 소풍은 해외여행도 많이 비슷하다. 주민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풍광들이 우리에게는 놀랍게 보인다. 그 언어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나면서부터 그말을 써온 사람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는마음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나 찾아다니며 그것이야말로 프랑스나 미국 정신의 본질이라고 선언하고는 앞뒤 없는 맹신 위에 이론의 구조물을 쌓아올린다. 나면서부터 프랑스인이나 미국인인 사람들이 그런이론을 들으면 재미있어하거나 짜증스러워하거나 아니면잠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 P97

테크닉, 자기 재료를 형성하고 통제하는 힘을 결여하고있다는 것인데, 이 모든 견지에서 『배빗』은 금세기에 영어로쓰인 어떤 소설 못지않다. 그러므로 관광객은 양단 간에 선
‘택해야 한다. 즉, 영국 작가와 미국 작가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라고는 없으며 그들의 경험은 워낙 비슷해서 같은 형식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과, 루이스 씨는 자신을 영국 문학에 맞추어 형성했으므로 ㅡH. G. 웰스가 그 명백한 스승일것이다 ㅡ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미국적 특성들을 희생시켰다는 주장 말이다. 하지만 만일 작가들이 녹색인지 파랑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면, 독서의 기술은 훨씬 더 단순하고 덜 모험적이 될 것이다. 루이스 씨를 연구하면 할수록 드는 생각은 표면적인 판단은 기만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적인 침착성은 내부의 갈등하는 요소들을 거의 통제하지 못하며, 색깔들은 희미해져 버린다. - P105

 우리는 프랑스나 영국의 문학이 더 단순하다고, 모든 현대 문학이 이 새로운 미국 문학보다 더 단순하게 요약되고 이해하기 쉽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뿌리에는 불화가 있으니, 미국인의 자연스러운 성향은 처음부터 엇나갔던 것이다. 민감할수록 영문학을 읽어야 하는데, 영문학을 읽을수록그는 자기 입으로 말하는 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자기 것이아닌 경험을 표현하고 자기가 알지 못했던 문명을 비추는 그거대한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수수께끼와 당혹감에 더 민감해진다. 굴복이냐 저항이냐의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민감할수록, 아니 적어도 더 세련되었을수록, 헨리 제임스 같은 이들, 허게셰이머 같은 이들, 이디스 워튼 같은 이들은 영국의편을 들어 영국 문화를, 전통적인 영국 예법을 과장함으로써, 그리고 그 사회적 차이들을 너무 심하게 혹은 엉뚱하게강조함으로써 벌금을 치른다. - P112

 책을 덮고 영국의 들판을내다보노라면, 귓전에 새된 소리가 들려온다. 3백 년 전에그 부모가 바위투성이 해안에 버린, 그래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살아남은 아이의 첫 정사, 첫웃음의소리이다. 그는 다소생채기가 났지만 자존심이 강하며 따라서 소심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는 이제 성년의 문턱에 서 있다. - P116

소로


백년 전인 1817년 7월 12일,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연필 장수의 아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태어났다. 전기 작가들은 그의 명성보다는 그의 인생관에 대한 공감 때문에 매료되어 호의적인 전기를 써주었지만, 그의 책들에서 발견할수 없는 것은 그다지 말해 줄 수 없었다. 그의 삶에는 이렇다할 사건이 없었다. 그 자신이 말하듯 <그냥 집에 있는 것이타고난 재주였다. 그의 어머니는 동작이 재고 달변이었으며 혼자 쏘다니기를 워낙 좋아해서 자식 중 하나는 하마터면들판에서 세상에 태어날 뻔했다고 한다. 반면 아버지는 <작고 조용하고 우직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연필을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의 비결은 빵은 흑연과 백토와 - P117

물을 섞은 것을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만든 다음 가늘고 길게 잘라서 태우는 데 있었다. 하여간 그는 근면 절약하고 또주위의 도움도 좀 받아서 아들을 하버드에 보낼 수 있었다.
소로 자신은 그런 값비싼 기회에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하지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가 우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것은 하버드에서이다. 한우가 기억하는 그의 소년 시절모습에서 우리는 나중에 성인이 된 그의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 P118

그는 손재주가뛰어나서, 연중 40일 정도만 일해도 1년의 나머지 기간을 놀며 지낼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옛 인류의 후예라해야 할지, 아니면 장차 도래할 인류의 첫 사람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에게는 강인함과 극기심, 인디언과도 같이때 묻지 않은 감각과 동시에, 자의식과 까다로운 불만과 극히 현대적인 감수성이 있었다. 때로 그는 인간에게 가능한이상의 것을 지각하는 능력 때문에 여느 인간 이상의 능력을지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박애주의자도 인간에게 그보다 더 큰 기대를 걸거나 더 고결한 소임을 고취하지 않았다. 가장 고상한 정열과 봉사의 이상을 지닌 이들이 가장 기꺼이 주는 능력을 지닌 법이다. 삶은 그들에게 가진 것을 다내 놓으라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낭비하기보다 아껴 두라고하지만 말이다. 소로는 아무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해도,
여전히 그 이상의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 터이다. 어떤의미로 그는 언제까지나 만족하지 못했을 터이니, 그것이 그가 더 젊은 세대의 벗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는 앞날이 아직 창창한 나이에 죽었으며, 오래 병석에 - P130

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연으로부터 침묵과 인내를 배운 터였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거의말한 적이 없다. 자연으로부터 그는 만족하되, 생각없이 이기적으로 만족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혜를건강하게 신뢰하는 법을 배웠다. 그가 말하듯, 자연에는 슬픔이라는 것이 없다. <나는 가능한 한 삶을 즐기고 있으며,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임종의 자리에서 말했다. 마침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아들였을 때, 그의 마지막 말은 <큰사슴>과 <인디언>이었다. - P131

조지 기싱


마침내 중년에 이르러 그가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을 때, 한 친구가 죽으면서 연 3 백 파운드의 연금을 남겨주었다. 그리하여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는 원하는 글올쓸 수 있게 되었고 이 사색의 기록과 그에게 가장 소중하게 된 책들을 마지막 유산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 글의 매력은 건실하고 담담한 데 있다. 마치 날이 저문 후 더는 소망하거나 두려워할 장래의 빛이 없을 때 비쳐드는 잿빛 미광과도같다. 그런데도 그 최종적인 인상은 결코 울적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아 그토록 외적인 사치라고는 없는 삶이 그 자체로 충분할 수 있는 선물들을 발견한다는 것이 찬사를 받을만하다. 그는 드물게 빼어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머리는 우수한 편이었고 책을 좋아했지만, 오로지 그 두 가지재능만으로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재능으로 발전하지 않았으니 -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적어도 그가 독립적이고 무해한 인간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처럼 불굴의 삶에 고작 이런 형용사들을 쓴다는 것은 다소 빈약하게보이기도 하나, 그런 형용사들에는 흠결 없는 진실함의 매력이 있다.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모든 감정, 모든 생각, 모든책을 꾸준히 깎아 내 고갱이만 남겨 놓았다. 마치 가난한 사람들은 진실 아닌 것을 느끼거나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는 듯 - P135

이 말이다. 그러고서 남은 것은 강하고 변함없는 열기를 지닌 순수한 체질이니,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빛나게하여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든다. 그런 재능조차도 그가 필요로 하는 오죽잖은 것들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치 않았다는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는 온기와 빛을 얻기 위해 가진 책을 팔아야 했고, 시골에 가는 즐거움도 없이 지내야 했다. 이런 희생은 다른 많은 희생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다시금 그는 자신의두뇌를 팔아야 했으니, 이중적인 의미에서였다. 만일 그가 자신의 두뇌를 제대로 사용할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 모든 깎아 냄은 의심할 바 없이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으니, 마침내 행복할 기회가 왔을 때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마저 현저히 약해져 있었다. 젊은 날의 고된 투쟁, 그나마 독서와 산책에서 작은 기쁨이나마 얻기 위한 투쟁으로 근육을 혹사한 나머지, 그는 말년에자신을 둘러싸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보물들을 제대로 붙잡을수 없었다. 마침내 봄에, 아직 그것을 맛볼 시간이 있을 때, 그가 느끼는 기쁨은 그와 함께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으로 떨린다. 그는 자신에게 <이 신성한 평정의 시간에 대해 무엇인가 재난으로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아닌지> 자문한다.‘
- P136

이처럼 풍부케 하는 과정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항상낯설고 새로운 섬들이 어딘가 먼바다에 떠다니고 있어서 탐험과 보물찾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는 <고대 소아시아지리>가 있고, 저기에는 이집트가 있다. 모든 역사가 심연으로부터 그림들을 불러냈다가 도로 심연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아무러면 어떠랴. <아마도 내가 평생 고치지 못할 결점은 나로 하여금 지식을 찾게 하는 마음의 습성일 것이다. > 마지막에 가서 그는 <여러 해를 더 살고 싶다고 말한다." 다가올 해들이 그에게 새로운 것들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육신과 온세상을 넘나드는정신, 마침내 돌아와 그가 택한 그 한구석에 정착하는 정신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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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내린다는 건 틀린 표현이다.
들이붓고 있다.
천둥의 위력은 대단하다.
아직 ‘버지니아 울프‘에 빠져있지만 좀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다.
비 탓이다.
그런데
역시 가볍지 않다.

여행을 왜 즐기지 않느냐면,

어렸을 때 아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때까지 소아 뇌전증을 앓았다. 부모님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갔을 때 내가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하시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알려지지 않길 바라셨던 듯한데, 이렇게 두 번째 챕터에서 시원하게말해버린다. 문학 출판계에 들어와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 아팠던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무척 아름다운 방식으로 마구마구 해버린다는 점이었다. 첫 회사에서 한 시인의 인터뷰 자리에 갔던 적이 있는데 나와 같은 소아 뇌전증을 앓으셨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셔서 듣고 있다가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전 연령대에서 천 명에 네다섯 명은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전기 신호가 다르게 달린다는 - P13

이유로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과 오해는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혹시 같은 병을 앓았거나 앓는 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지지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것은 내가 쓰는글들이 다소 엉뚱하고 기괴하다 보니 혹 오해를 더할까 하는 걱정때문이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쓰러지는 발작이 가장 위험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나의 경우 잠들었을 때 부분 발작을 일으켰다. 숨을 쉴 수 없어서 깼다. 마치 거인이 내 목을 밟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한 시점에 다시 호흡이 돌아왔다. 오류가 난 컴퓨터를 억지로 껐다 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때로 얼굴 일부나 한쪽 팔이 마비되기도 했다. 누워 있을때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상의 가능성이 적었지만, 늦은 밤 혼자 겪으며 내면이 천천히 조각되었다. 치료를 위해 계절마다 대학병원의 층층을 엄마 손을 잡고 오락가락했다. 피프티 피플』을 쓴 것은 친지 중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이가 많아 인터뷰 대상자를 소개받기 쉬워서였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뇌파검사를 위해 머리카락 속에 풀을 잔뜩 바르면 프랑켄슈타인」에나올 만한 헤어스타일이 되었고, MRI 기계 속은 몸이 굳도록 추웠다. 그런 유년의 기억들이 내 안에 남아 있어서 병원 이야기를 쓰게된 것 같다. 혼자 느끼는 외로움도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감도 - P14

극대화되는 공간을 소설 안에 세워본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낯선 상황에서 피곤하면 발작이일어나곤 했으므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했다. 치료를받고 성장하며 발작은 사라졌고 다행히 아직 재발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발작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 그렇게 사망한 이의 사례가 보도되면 먼 나라의 모르는 사람인데도 슬퍼진다. 얼마 전에는 할리우드의 배우 캐머런 보이스가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뇌전증으로 인한수면 중 발작으로 사망했다. 할리우드의 배우라서 알려진 것이지, 비슷한 죽음은 지구 곳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현대사회에서도 모두가 평균수명을 누릴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 본 사람들이 인생에서중요한 선택을 더 잘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에 ‘만약 내가 4년 후에 죽는다면 후회할까? 8년 뒤라면?‘
하고 가정해보는 것만으로도 한결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아팠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70대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50권까지쓰는 것이지만, 충분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요절한 사람이아니라 열한 살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았던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뵐 때마다 무병장수를 빌어주시는 독자분 - P15

들께 부응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고 있긴 하다.
어쨌든, 발작을 빼도 딱히 건강한 젊음이었던 적은 없다. 박카스광고나 국토대장정 포스터에 좀처럼 이입을 못 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의학의 혜택 속에 살아왔다. 전근대에 태어나지 않아 행운이었다고 안도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여행에 대한 욕망이 약했다. 여행은건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선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나머지 여행까지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큰 결심을 하고 여행을 갈 때는 바탕화면에 유서에 가까운 지시 사항을 남기고, 담당 편집자님께 그때까지 쓴 원고를 예약 메일로 전송해두기도 했다. 매번 살아 돌아와서 잘 취소했지만………..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상태가 너무 신기하지 않은지? 꼭 개인적 얘기, 사람들 얘기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 지구가 초속30킬로미터로 빙글뱅글 날아가고 있는데 그 위에서 온갖 동식물이 38억 년 동안 생겨났다 멸종했다 하며 보글보글 지내왔다는 것이……. 우주는 죽어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어떻게 다들 살아 있지? 거의 매일 놀란다. 심장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었다니?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호흡이 계속된다니? 산책만 나가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환경주의자가 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팠던 - P16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경이의 스위치가 반발력 없이 딸깍딸깍 눌리고 말아서, 다른 아팠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얼마나 비슷한 성향일지 궁금해진다. 나의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스머프 같은 성격이 (특히 동료 작가들에게)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름의 맥락이 있다. 어둡고 죽어 있는 우주에서 기적 같은 지구에 산다는 것이 신기해,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개념의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잘 쓰인 여행 책, 화질 좋은 여행 프로그램,
친구들이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여주는 사진들을 즐기며충분히 만족해버리는 편이어서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17

물론 여행 초기의 뉴욕은 좀 위압적이었다. 일단 그 여행을 위해 일부러 구비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처음 며칠은 들고 나가지 못했다. 내가 가방에서 큰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관광객이다! 저기 관광객이 있다!" 하고 표적으로 삼을 것만 같았다. 오래된 똑딱이 카메라만 들고 일단 가까운 소호를 걷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설치 작품이 있었고, 설치 작품인가 싶어서 보면 그냥 누가 버린 가구이기도 했다.
많이 걸은 탓에 밤에 누우면 발이 뜨거워서 피곤한데도 금방 잠들지 못했다. 그래도 그 뜨거움은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수족냉증같은 건 몇 년이고 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뜨거움이었다. - P33

 리스트를짜는 데는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권이선·이수형 지음, 아트북스, 2012)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트앤드 디자인 뮤지엄• 
●모건 도서관 /미술관
●휘트니 뮤지엄
●구겐하임 뮤지엄
●프릭 컬렉션
●메트로폴리탄
●모마
●뉴욕 도서관 부속 갤러리
●첼시의 갤러리들 - P36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생산하는 짧은 소설들을 쓰며 소원이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진 것을 벅차했다. 생뚱맞은 소원인 줄알았는데 오래 품고 마음을 기울이고 있으면 가닿고 싶은 대상 쪽에도 신호가 가나 보다.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을 사랑한다. 책은 남의 책, 예술도 남의 예술이 최고…………. 생산자인 것도 좋지만 향유자일때 백배 행복하다. 향유라는 단어 자체가 입 안에서 향기롭다. - P39

애잔한 경영대 캠퍼스 커플이여, 당신들의 딸은 물건너갔습니다………. 그래도 대충 그럴 거라고 말하고 넘어간다.
어쨌건 좋아하는 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편이고, 새로 좋아할 만한 것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기도 해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뭔가 힘든 일을 만나 마음이 꺾였을 때 좋아할 만한 대상을 찾으려고 하면 이미 늦은 감이 있다. 괜찮은 날들에 잔뜩 만들어두고 나쁜 날들에 꺼내 쓰는 쪽이 낫지 않나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누가 "백억이 생긴다면? 천 억이 생긴다면?" 하고 가정하는 질문을 던지면 작업을 쭉 따라가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전시회에 가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제가 수집할게요" 하고 말하는 상상을 해버린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전시관을 짓고 도서관도 하나 짓고 기왕 지은 김에 공연장까지………. 규모가 커지는 데몇 초 걸리지 않으니 포부만큼은 CEO처럼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 P41

그러니 사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최악을 각오하고 여행하는지도 모른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조금 더 신경이 굵은 사람들은 무의식 깊이 묻어놓았겠지만. 아름다운 해변에도 맹독성 해파리들이 있고, 환한 잔디밭에서도 흉기가 칼집에서 빠져나온다.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같은 장소에서 언제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지금이 그리 좋지 않은 시대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들이 계속되고 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 P47

시민으로 기능하는 남성 캐릭터를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두는 전략은 나이브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확실히 나에겐 물러 터진 구석이있는 것 같다. 현실 약간 옆 안전한 공기층을 만드는 방식의 작가라서 그런 것이겠지 싶다. 그래도 10년 넘게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픽션 속의 캐릭터를 생각보다 자주 닮고 싶어 하고 또그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사실 남성 창작자들이 해야 하는 것인데 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남성성의 이미지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모델 쪽으로 슬쩍 옮기는 것이 효과가있을지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전략을 써야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는 늘 찌르는 전략과 녹이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고믿어왔다. 그리고 나는 녹이는 걸 잘하기에, 자꾸 친구들의 좋아하는 면을 소설 속에 녹인다.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다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S도 피프티 피플]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이름이 들어가 있다. 물론 직업도 배경도 다 다르고 그저 큰 눈으로 잘 울면서 묘하게 꼿꼿한 데가 있는 성격만 빌렸지만 말이다. - P65

언젠가 메트로폴리탄에 세 번째로 간다면, 두 번째로 갔을 때와마찬가지로 비 오는 날에 가고 싶다. 전시관과 전시관 사이 빗물이흐르고 공원이 내다보이는 유리창이 아름다워 낮게 한숨 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어떤 풍경에 반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숨을아는지? 그런 한숨이었다. 일기예보가 아주 어긋난다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도입부에 나오는 도나 타트의 소설 황금방울새를 들고가 읽다가 걷다가 해도 좋을 듯하다. 결국 박물관은 ‘한 번 봤으면됐다‘ 하는 장소가 아니라 몇 번이고 재방문하고 싶은 장소여야 하나 보다. 더하여, 뉴욕을 다룬 책들에는 입을 모아 메트로폴리탄의현대미술 파트가 별로라고 쓰여 있었는데 물론 모마보다 규모는 작지만 인상적인 작품들이 알차게 들어차 있어 빠뜨리면 안 될 듯하다. 여행 책들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박물관의 폐장 시간에 한꺼번에 밀려나온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걸으며 만드는 행렬에 슬쩍 동참해본 것도 좋았다. 그 물결 속에서걷고 있자니 청어라든지 정어리라든지 떼로 다니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 P72

돌바닥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 누워 있으니30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지구는 45억 년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항성과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우리는 짧은 수명으로 온갖 경이를 목격하다가 가는구나 싶었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 갔던 날이 나에게 그랬다. - P75

타임스스퀘어가 나타났다.
찾아간 게 아니라 나타난 거라서 흥분하고 말았다. 화려한 전광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임스스퀘어가 ‘여러 겹‘을 가진 공간이라서 벅찼던 것 같다. 지금 눈에 보이는 한 겹뿐 아니라 그동안 매체에서 접해왔던 겹들이 있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차를 탔던 시대까지 가도 타임스스퀘어는 언제나 타임스스퀘어기에 형성된 겹겹 말이다. 여러 겹을 겹쳐 만드는 인쇄용 필름처럼,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부채처럼 겹겹………. 나만 흥분한 게 아니어서 사방에서 탄성이 들렸다. 그 흥분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기도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두 여성과 신나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여행 계획을 물어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벌어지는 공간이었다. 따지고보면 그냥 전광판들 사이의 길쭉한 광장일 뿐인데도, 월리를 찾아서』의 한 장처럼 구석구석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나랑 졸업 무도회에같이 가주겠니?"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한 사람은 꼭 거꾸로 든다) - P85

기준을 세우는 데는 두 가지 해석이 필요했다. 나는 ‘두고 가다‘
를 흘리듯 잃어버린 것, 쓰고 버린 것에 다 적용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아주 제멋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매일의 산책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런 물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기뻐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 3백 장 정도를 가지고 있다. 따로폴더를 만들어두고 며칠에 한 번씩 열어본다. 그 가지각색의 사진들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목표가 없어야 취미가 즐거운 것 같다. 찍을 때의 원칙은 하나, 절대로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예뻐도 가져오지 않는 건 물론이고, 연출을 위해 건드리지도 않는다.
(딱 한 번 떨어져 있는 트럼프 카드의 앞면이 궁금해서 뒤집어본 적은 있다.) 꼭필요한 원칙이라기보단 재미를 위해서다. - P93

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나 홀로 채식‘ ‘샤이 채식‘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책에 슬그머니 써보는데 이러면 업무 미팅이 채식 레스토랑, 채식 카페에서 더 잡히지 않을까? 이 책을 함께 만들고 있는 위즈덤하우스 편집부 분들도 언제나 채식 레스토랑에서 미팅을 잡아주셔서기쁘다. 요즘 변화가 가속화되는 중인 듯해 다가올 날들을 설레며기다린다.
어쨌든 근사한 조화를 이루는 샐러드나 유난히 맛있는 과일은입 안에서 불꽃놀이 같은 느낌을 일으켜서 즐겁다. 연근 스테이크와애호박 만두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도 근사했다. 다시 뉴욕에 간다면 채식 레스토랑 투어를 해보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채식 요리도 뉴욕이 제일 맛있지 않을까?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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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몽테뉴의 <에세>를 읽고 싶어졌다.



몽테뉴


언젠가 바르르뒤크에서 몽테뉴는 시칠리아 왕 르네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보고 물었다. <왜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크레용으로 하듯 펜으로 자신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까? > 대뜸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용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으리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모습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 - P11

은 친숙하기 그지없으니까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 하지만착수해 보면 금방 펜을 내려놓게 된다. 그것은 심오하고 신비하고 압도적인 어려움을 내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문학사 전체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펜으로 자신을 그리는 일에 성공했을까? 기껏해야 몽테뉴, 피프스‘ 그리고 아마 루소‘ 정도일 것이다. 『의사의 신앙ReligioMedici』은 질주하는 별들과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영혼이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채색 유리와도 흡사하다. 보즈웰이쓴 유명한 전기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어깨 사이로 언뜻언뜻내다보는 그의 얼굴이 잘 닦인 거울 속에 비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자기 기분에 따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기영혼의 무게와 빛깔과 둘레를 그 혼돈과 다양성과 불완전함가운데 전부 펼쳐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일이며, 그 기술을 온전히 구사하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몽테뉴뿐이다.  - P12

마치 유령이 정신을 휙 스쳐 지나가 미처 그 꼬리에 소금을 뿌릴 틈도 없이 창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만 같다. 또는 떠도는 빛처럼 깊은 어둠을 잠시 비추고는 천천히 가라앉아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도같다. 그래도 말로 할 때는 얼굴과 목소리, 말투가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도 한다. 하지만 펜이란 유연성이 없는 도구이다. 펜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으며, 또 펜에는 그 나름의 습관과 격식이 있다. 펜은 독재자처럼 군림하여 보통사람들을 예언자로 만드는가 하면, 통상 머뭇거리게 마련인인간의 언어를 엄숙하고 당당한 행진으로 바꿔 놓는다. 몽테뉴가 뭇 망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단연 생생하게 두드러지는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의 책이 그 사람 자신이라는것을 우리는 단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가르치기를거부했고 설교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똑같다고 거듭 말한다. 그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신을 글로쓰고 전달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었으며, 바로 그것이<보기보다 거친 길>이다. - P14

 학문적 성취에 무슨유익이 있겠는가? 그는 항상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그는 그들이 나름빛나는 순간이 있고 열렬히 비전을 제시할때도 있지만, 가장 똑똑한 이들도 자칫 어리석음에 빠질 수있음을 목격했다. 당신 자신을 관찰해 보라. 한순간 기세가오르지만 다음 순간 유리가 깨진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만다. 모든 극단이 위험하다. 길에서는 아무리 진창이더라도 바퀴 자국이 패인 복판으로 가는 것이 최상이다. 글을쓸 때는 평범한 단어를 고르고 비약이나 웅변은 피할 일이다. 하지만 물론 시는 감미롭다. 최상의 산문은 시로 가득 차있다. - P18

 내적인 삶이 있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우리에게는 짐짓 꾸미는 태도만큼 의심쩍은 것이 없다.
저항하고 점잔을 빼며 법칙을 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망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게 된다. 우리는 공직에 봉사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명예를 부여해야 하며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허용할 때는 민망히 여겨야 하지만,
우리 자신은 일체의 명성이나 명예, 다른 사람에게 매이게될 직무들을 피하기로 하자. 우리 자신의 속을 알 수 없는 가마솥, 매혹적인 혼란과 뒤죽박죽인 충동들과 끊임없는 기적으로 들끓는 솥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영혼은 매 순간 경이로운 것들을 솟구쳐 내니 말이다. 운동과 변화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며, 경직은 죽음이다. 순응은 죽음이다. 그러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자가당착을 범하고, 황당한 헛소리를 쏟아내자. 세상이 뭐라 생각하든 말하든 개의치 말고 기발한 생각들을 밀고 나가자 사는것 말고는 달리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질서도 필요하다. - P20

그렇다면 여기, 모든 모순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무엇이 있다. 이 에세이들은 영혼과 소통하려는 시도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의 뜻은 명백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명성이 아니며, 장차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장터에 조각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영혼을 다른사람들과 소통하기를 바랄 뿐이다. 소통이 건강이며, 소통이진실이고, 소통이 행복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가장 병들어 있는 은밀한 생각들에까지 내려가 그것들을빛 가운데 드러내는 것,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위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무지하다면 그렇다고말하는 것, 벗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 P23

이 에세이들이 그 마지막에 이를 때, 아니 힘껏 달려 절정에 이를 때에 점점 더 분명히 떠오르는 것은 삶이다. 죽음이다가올수록 삶은 점점 더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자아와 영혼과 삶의 모든 측면이 더 소중해진다. 여름과겨울에비단 양말을 신는 것,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 저녁 식사 후에 머리를 손질하는 것, 물 마실 유리잔을 갖는 것, 평생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큰 소리로 말하는 것, 한 손에 휘추리를 들고 다니는 것, 혀를 깨무는 것, 발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 툭하면 귀를 긁는 것, 숙성시킨 고기를 좋아하는 것.
냅킨으로 이를 닦는 것(감사하게도 이빨이 튼튼한 것!), 침대에는 커튼을 달아야 하는 것, 기묘하게도 순무를 좋아했다.
가 싫어하고 또다시 좋아하게 되는 것. 어떤 사실도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게 내버려 둘 만큼 사소하지 않다. 또한 사실들 자체의 흥미로움 외에도 우리에게는 상상력으로 사실들을 변모시키는 신기한 힘이 있다. 영혼이 어떻게 항상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관찰해 보라.  - P26

어떻게 실질적인 것을 텅 빈 것으로, 연약한 것을 실질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를, 백주 대낮을 꿈으로 채우는가를, 현실뿐 아니라 환영(幻影)에도 설레는가를 죽음의 순간에도 사소한 일로 옷을수 있는가를. 또한 그 이중성과 복잡성을 관찰해 보라. 영혼은 친구의 부음을 듣고 깊이 애도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사람들의 슬픔에서 심술궂은 기쁨의 달콤 쌉쌀함을 느낀다.
영혼은 믿지만, 동시에 믿지 않는다. 온갖 인상들에 대한 그놀라운 민감성을, 특히 젊은 날의 민감성을 관찰해 보라. 부유한 남자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돈을넉넉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벽을 짓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집짓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혼은 그 모든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경과 공감 들로 짜여 있다. 하지만 1580년 당시에도 영혼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나 겁쟁이이고 관습적인 방식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니 말이다. 영혼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것이고, 우리의자아가 세상에서 사장 큰 괴물이요 기적이라는 것밖에는 모른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알아보고 하면 할수록, 내 기형적인 꼴에 놀라며 나 자신을 알 수 없어진다. 관찰하라. 끊임없이 관찰하라. - P27

여기 살아간다는 위태로운 과업에 성공한 한사람이 있다. 자신의조국에 봉사하고 은퇴한 삶을 살았던, 영주요 남편이 아버지였던, 왕들을 대접하고 여자들을 사랑하고 홀로 오래된 채들과 함께 오래 생각에 잠겼던 이가 있다. 그는 극히 미묘한것들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관찰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의 영혼을 이루는 모든 부조화한 부분들을 기적적으로 짜 맞추기에 이르렀다.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움켜쥐었다. 그는 행복을 성취했다. 만일 다시 살아야 한다면 똑같은 삶을 다시살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 눈 아래서 한 영혼이 내적인 삶을 펼쳐 가는 매혹적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즐거움이 모든 것의 궁극인가? 그렇다면 영혼의 본질에 대한 이 압도적인 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 욕망은? 이세상의 아름다움으로 족한가? 아니면 이 신비에 대한 어떤 - P28

설명이 다른 곳에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단지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을 뿐이다.
Que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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