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시는 승인하고 구성하고 조직할 수있으며, 거부하고 파괴하고 해체할 수 있다. 그러나 거부는 승인의마지막 패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는 제가 부르는 노래를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웃음으로 다시 확인되는 것은노래의 존재다. 분석의식에서 떠날 수 없는 시는 제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는(만)그 세계의 전문가다. 시는 순진하면서도 순진하지 않아서, 자유와평등을 완전하게 누리고 생명이 모욕받지 않는, 풍요로운 세계가실현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세계가 존재할 수없다고도 믿지 않는다. 불행의 끝까지 가게 하는, 어떤 불행의 말이라도 그 말을 시 되게 하는, 고양된 감정을 그 세계가 아니라면어디서 얻어올 것인가. 시는 현실에 내재하는 현실 아닌 것의 알레고리다. 그 점에서 시는 진보주의자다.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진보주의를 정의할 것인가, 사물을, 말을, 사람을 시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옳은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높이로 정신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시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의 윤리다

내 생각이 시에서 벗어난 적은 없으며, 내 삶과 크고 작게 연결된 제반 문제를 시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늘 시에 대해서 말하고, 시와말을 하면서, 일상에 쫓기고 있는 한 마음의 평범한 상태가 어떻게시적 상태로 바뀌는가를 알려고 애썼다. 어떤 사람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기억을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오는 기술이 시라고 말했지만, 나에게 시는 말 저편에 있는 말을 지금 이 시간의 말 속으로끌어당기는 계기이다.
시는 모든 것에 대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끝까지 말하려 한다.
말의 이치가 부족하면 말의 박자만 가지고도 뜻을 전하고, 때로는이치도 박자도 부족한 말이 그 부족함을 드러내어 사람의 마음을움직인다. 능변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시를 잘 쓰는 것은 그럴 만도 한 일이겠지만, 어눌하게 말을 잇다가 자주 입을 다무는 사람들 - P6

도 좋은 시를 쓴다. 물을 떠낸 자리에 다시 샘물이 고이듯 시가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유장한 말이 되기에는 너무 기막힌생각이나 너무 복잡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특별한 상태에서 그 생각이 돌처럼 단단한 것이 되거나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것이 되기를 기다린다. 시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지우고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하며,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인간의 척도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까지 닿으려고 정진하는 시의 용기와 훈련은 우리가 상상했던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극히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말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 이 비평집에 어떤 통일성이 있다면,
그것은 저 시적 상태의 계기와 그 상태의 은총으로만 얻게 되는 정진의 용기를 어느 시에서나 발견하려고 애써온 도정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P7

바타유는 잘 알려진 그의 저서 ‘에로티즘』에서 에로티즘이 야기하는 존재론적 효과에 관해 이렇게 쓴다. "이내적 체험은 내가 추측으로는 느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원칙적으로 이 체힘은 그 밑바닥에서 어떤 종류의 ‘자아감(感)‘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이 기본 감정은 ‘자의식‘이 아니다.
자의식은 사물에 대한 의식의 결과로, 명백하게 인간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자아감은 필연적으로 그 감정을 느끼는 자가 불연속성 속에 갇혀 고립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 P17

위에 솟아오를 "교향악"이바타유에게서도, 랭보에게서도, 이 내적 체험을 위해 우선 중요한 것은 육체이다. 그러나 바타유에게서는 자아의 고립감을 깨뜨리는 성적 환상의 관점에서나 생식을 통한 지속성 유지의 관점에서나 고찰해야 할 것은 오직 육체에 국한되지만, 시인인 랭보에게서는 육체적·감각적 착란"의 밑바탕에 말이 있다. "사색의 개화"
는 줄곧 말의 이치에 의지하고, 그 결과인 "미지"는 말에 의해 표현된다. 말은 육체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다른 육체,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생각되는 자‘의 육체이다. 서정의 주체에 관해 말하기위해서는 이 육체와 말에 대해 말해야 한다. - P20

의식의 실제 텍스트가 다를 뿐이다. 몸의 텍스트가다른 것일 수 없다고 믿는 주체의 환상이 있을 뿐이다. 랭보가 고문하려던 것은 사실 몸이 아니다. 감각을 착란하면서 그가 원하는 것은 의식 주체가 몸에서 읽으려는 읽은, 또는 읽었다고 믿는 텍스트를 거부하고 파괴하려는 것이다. 주체는 세계라고 부르는 거대한 몸에 둘러싸여 있으며, 한편으로는 제 시선으로 그 거대한 육체를 끌어안는다. 주체가 이 세계의 육체와 소통하는 것은 그에게 부속된 육체를 통해서이다. 내가 자판을 두들겨 글을 쓸 때, 내 주체는 손가락 끝으로 세계와 만난다. 오래된 자판은 내 손가락을 알아본다. 글을 쓸 때 내 주체는 이 손가락이며 자판이고, 자판이 놓여있는 책상이다. 책상까지 연결된 나의 몸은 또 다른 몸과 만난다.
보는 자이며 보이는 자인 주체는 자기 시선의 주체이면서, 타자의시선에 주제가 된다. 게다가 나와 손가락과 자판과 책상의 관계에서처럼 주체와 주제의 경계는 모호하다.  - P22

중요한 것은 감각적형상과 모험의 구체적 개별성이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은유의 기능과 환유의 기능일 텐데, 이때 환유는 그 기능의 관점에서만 본다면은유와 구별되는 다른 기능이 아니다. 그 동시적 기능 속에서 은유는 환유의 확장된 외연이며 환유는 은유의 구체적 실현이다. 전통적으로 보편적 아날로지의 상징체계에 종속되어 거기서 원관념을빌려와야 했던 은유는 이제 환유의 개별적 모험의 도움으로 천상의 일을 인간세계로 끌어내리고, 환유는 그 고립에서 벗어나 제 안에 묶여 있던 은유의 힘을 발휘하여 한 세상사의 보편적 구조에 접근한다. 문학적 글쓰기에서 주체와 타자가 역전하는 것도 이때이다. 은유와 환유의 동시적 기능화는 보편적 표상으로서의 주체와구체적으로 운동하는 타자의 대질이며 그 상호 간섭이자 자리바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질과 간섭, 이 자리바꿈보다 더 정치적인 것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삶을 바꾸는‘ 일이며, 문학적 자율성의 원칙이 거기 있다. - P47

우리가 역사를 믿는다면, 아니 최소한의 변화라도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저 폐쇄된 자율성이 문학의 목표일 수는 없다. 자율성은 목표의 원칙이 아니라 방법의 원칙이다. 최초의 의도에 따른 문학의 자율성은 낡고 억압적인 관념을 전도하는 방법이며,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방법이며, 우리 존재의 집인 언어에 대해 가장거룩한 개념을 돌출하려는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을말하기 위한 비범한 방법이다. 내가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기로 결정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자유로워야한다. 무엇에 대한 진실은 무엇에 대한 자유이다. 문학은 자율성으로 그 자유를 확보한다. 그래서 문학의 자율성은 그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 실천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실천한 것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실천하려는 것에 의해서도, 실천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에 의해서도 평가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고립과 증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긍지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P49

이 일이 쉽지 않았다는것은 우리의 현대시사가 말해준다. 젊은 시인들이 변방의식에서벗어나게 된 것은 이 땅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불행이 우리의 불행이 아니라 이 다국적 자본의 시대에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는 불행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며, 그 불행을 훌륭하게 표현하려는 용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서구편향‘ 따위의 말은 이제 통용될 수 없으며, 해체니 일탈이니 하는무의미한 말로 그들의 작업이 환원될 수도 없다. 좋은 시는 어느땅 어느 곳에서나 쓰이고 있지만, 이 풍성한 동력을 편향되게 휩쓸어갈 물결은 어디에도 없다. 아니 어떤 물결도 벌써 우리의 물결이다. 젊은 시인들이 두려워하기보다는 안타까워해야 할 것은 어두운 안개 속에서 정처 없이 쏠리는 뒷공론들뿐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내뱉는 말들은 얼마나 위험한가. 내가 시 세 편을 거의 췌언에가깝게 분석한 것도 그 때문이다. - P68

문학은 언어를 도구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언어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자주 언어를 목표로 삼기까지 하기에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더 이성적이다. 문학은 가진 바 수단을 다하여 미지의 것을 파헤쳐 그 현상 하나하나를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며, 혼란을 정리하고 분석하여 거기에 언어적 질서를 부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안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실제로는 모르는 것임을 폭로하고, 그래서 질서를 혼란으로 전복하는 것도 문학의 일이다. 오만한 성급한질서가 반성하지 않는 현실의 우둔함을 더욱 두텁게 할 때, 자각된 모름과 품 넓은 혼란이 명석성에 이르는 길을 더욱 넓힐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학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이미지도 그 가치는 양면적이다. 이미지는 한편으로 혼란과 미지에 언어의 초벌 그림을 그려주어 우리를 안심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근한 얼굴을 낯선 얼굴로 바꿔놓아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미지가 가장 아름다운 것도 그때이다. - P71

사실, 말이 사물을 유연하면서도 명확하고 깨끗하게 지시하는 일에서 늘 실패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순수 언어에 대한 시의 소망은 저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부정하는 언어에 이른다. 그러나 이 부정은 사물의 깊은 속내를 말로다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현실 속에 ‘숨은 신들‘이 (다시 말해서타자들이) 저마다 제 말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고쳐 말하고 다시고쳐 말하려는 노력과 그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부정의 언어, 곧시의 언어는 늘 다시 말하는 언어이며, 따라서 끝나지 않는 언어이다. 모든 주체가 타자가 되고, 그 모든 타자가 또다시 주체가 된다고 믿는 희망이 이 언어의 기획 속에 들어 있다. 시는 꿈과 현실이,
상상할 수 있는 것과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작은 나와 큰 나가, 비루한 사물과 너그러운 말이, 불모의 현실과 생산하는 현실이 갈등하기를 그치는 자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 있다고 믿는다. 시의 길이거기 있다기보다는 시가 그 길을 믿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P75

어떤 언어의 찌꺼기도 없이 순결하게 태어날 음악이태로나마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것도, 어떤 초월적인 힘의 은총이나 개입이 아니라, 역시 인간의 실천이다. 순수시가 지향하는 침묵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괄호 속에 묶어두고 관상하려는 조치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 거기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극진한 노력과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끝없이 확인하는언어적 노력이다. 이 점에서, 순수시가 시의 이상일 수는 없어도,
순수시의 이상이 시의 이상이자 모든 윤리적 기획의 이상인 것은확실하다.
시는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고 시범한다. 탈출과 해방의 상승의지와 그 강도에 비례하여 더욱 강화되는 현실 분석의 악마적의식이 현실에 내재하는 초극의 가능성에서 서로 만날 때, 아직 걷히지 않은 저 베일이 존재하는 것의 시적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현실이 또 하나의 현실과 겹쳐 나타나는 이 알레고리의 공간을 어떤방식으로든 포함하지 않는 시는 없다. - P83

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시는 승인하고 구성하고 조직할 수있으며, 거부하고 파괴하고 해체할 수 있다. 그러나 거부는 승인의마지막 패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는 제가 부르는 노래를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비웃음으로 다시 확인되는 것은노래의 존재다. 분석의식에서 떠날 수 없는 시는 제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시는(만)그 세계의 전문가다. 시는 순진하면서도 순진하지 않아서, 자유와평등을 완전하게 누리고 생명이 모욕받지 않는, 풍요로운 세계가실현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세계가 존재할 수없다고도 믿지 않는다. 불행의 끝까지 가게 하는, 어떤 불행의 말이라도 그 말을 시 되게 하는, 고양된 감정을 그 세계가 아니라면어디서 얻어올 것인가. 시는 현실에 내재하는 현실 아닌 것의 알레고리다. 그 점에서 시는 진보주의자다.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진보주의를 정의할 것인가, 사물을, 말을, 사람을 시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옳은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높이로 정신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시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의 윤리다. - P85

한 언어가 다른 언어와 대면할 때 그 말의 결을 깨뜨리는 균열을경험하게 되지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도 함께 만나게 된다. 우리의 짧은 논의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모국어 속의 외국어성‘을정의한다면, 그것은 말이 그 일상성에서 벗어나려는 내재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국어로부터 외국어성을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은 말이 제시하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맥락을 다양하고 새롭게 해석해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겠다. 이 성격과 능력이 두 언어 사이의 번역을 가능하게 하고, 번역에 시적 성격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면, 우리의 심층의식과 외부 사물이 깊이 조응하는 자리에 모국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 조응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탈과 흠결에 크게 의지하는 번역은 기형도의 사랑없는 글쓰기와 닮은 점이 있다는 점도 덧붙여 말해야겠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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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내가 바라보이는 야산의 공동묘지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쫑쫑 땋아 내린 자그마한 몸집의 소녀가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울다 지쳐 넋을 잃고 멀리 들판의 아지랑이 너머로 아른거리며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씩 그녀는 사랑하는 이라도 어루만지듯 정겨운 손길로 무덤을 어루만졌다. 봄에 구례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그녀의 일과는 이 무덤가를 찾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 어쩌면 앞으로는 어머니를 못 찾아 올란가 모르것소. 나 일본으로 갈라요. 일본 가서 고학이라도 할라요. 일본 가는 증명 벌라고 호적등본도 떼다 놨소. 할머니한테 말도 일러놨고...... 어머니, 내일 또 올게요." - P105

그녀가 아무리 쌀쌀맞게 대해도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를 알았다는 남편 최규복지극정성이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거무잡잡한 얼굴의 최규복은 장난기가많아서 언제나 웃음을 몰고 다녔다. 유달리 식성이 까다로운 시할머니가밥상을 물려놓고 맘에 안 들어 인상을 쓰고 있으면 할머니 앞에서 곱새을 추고 여자 치마를 둘러 입고 한바탕 난리를 치러서 기어이 할머니를 웃기고 마는 최규복이었다. 베틀을 못 이겨 하는 그녀를 밀쳐내고 자기 솜씨를 한번 보여주겠다며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해준 것도 남편이었다. 곯아떨어졌다가 간혹 눈을 떠보면 남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팔다리를 주무르고 있기도 했다.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괜찮은 사람일 뿐, 자기의 삶과 관계된 사람이고 집이라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았다. 온몸의 힘을 모아 간신히 가마솥 뚜껑을 열어 밥을 푸다가도 불현듯 한숨이 나왔다. 내가 왜 여기서 밥이나 푸고 앉아 있을꼬. 공부를 하러 가야하는데……….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건가. 밥 하고 반찬 만들고 빨래나 하며 사는 것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은 최후의 힘까지 짜내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고죽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느껴졌다. - P114

떠나기 전날 밤, 남편은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살아가기 힘들 것이오. 바보같이 나 기다리지 말고, 몇 해 기다려서오지 않거든 다른 사람 찾아가오. 내가 가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어질 텐데………. 당장 당신 외가로가 있으려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간다고 그녀의 삶이 달라질 리없었다. 남편이 떠난다는 애절한 슬픔도 없었고, 정말 다시 못 올 길을 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시 어디 다녀오겠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담담했다. 다음날 구례읍 경찰서 앞에서 징병 떠나는 사람들의 환송식이 열렸다. 말이 환송식이지 조선 사람 치고 남의 전쟁터로 끌려가는 자식과남편을 환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봄햇살은 유난히 화사하고, 수십개의 깃발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을 가득 안고 펄럭였다. 출정식이 끝나고 남편이 잠시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어제 저녁 같지 않게 남편은 평소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 P115

"우리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근데 우리가 언제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여자라고 공부도 못했고, 부뚜막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딸자식은 딴 집 식구니 입이나 줄이자고 철도 안 든 나이에 시집을 가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친정에서나 시집에서나 태어나면서부터 종처럼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여자들이 남자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봉건적 잔재와 계급을 타파해야 합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합니다." - P123

49년 3월 20일경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도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어떻게 보낼까 난감하기만 했던 겨울이 어느새 봄기운에 쫓겨 가고 있었다.
유격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봄은 가장 즐거운 소식이었다. 여전히 폭설이 내리는 날도 있었지만, 눈이 내려도 양지쪽은 하루만 지나면 질퍽하게녹았다. 그녀의 아이도 따스한 봄빛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잘 나오지도 않는 젖을 두 손으로 다부지게 움켜쥐고 빨아대는 아이를 가만히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편하게 집에서살던 때라면 최씨문중 종손이니 떠들썩한 돌잔치라도 치렀으련만 잔치는커녕 언젠지도 모르고 돌이 지났고, 굶기를 다반사로 했던 아이였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작은 이빨이 돋으면서 칭얼거리기도 하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꺄르륵 꺄르륵 숨이 넘어가도록 잘 웃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의 웃음을 봐도 암담할 뿐이었다.  - P149

그게 바로 적들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나는무엇을 할 것인가?
그녀의 눈빛은 날이 갈수록 단단하고 매서워졌다. 키가 작아 동생을없으면 동생의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던 어린 시절 종이가 없어 검정 숯으로 벽이란 벽마다 잔뜩 글씨를 썼다가 두들겨 맞던 여자, 공부가 하고싶어 일본으로 가려다 아버지에게 들켜 강제로 시집을 가야 했던 여자,
시집가기 싫어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던 그 여자는 이제 자신의 삶을 갉아먹던 모든 족쇄를 끊고 당당한 인민의 전사로 우뚝 서가고 있었다. - P152

낯선 능선에 홀로 서서 어디로가야할지 막막하게 서 있던 그녀는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화엄사골에 있을 광의면당을 찾기 위해 무조건 동쪽을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으니 무작정 해 뜨는방향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토벌대의 눈에 띌까봐 그녀는 좋을 길을 버리고 아사리 구멍(가시덩굴이나 잡목이 꽉 들어찬 숲을 헤치면서 능선을 몇 개 넘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작은 소릿길이 나왔다. 아무래도 산사람들이 다니는 길 같아 그 길을 따라 걷던 그녀는 무심코 앞을보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십 미터 앞이 온통 누랬다. 기백 명이 넘어 보이는 토벌대의 누런 군복 때문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그녀는 이미 산비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 P155

단오 이전에는 아무 풀이나 먹어도 독이 없다던 간부들의 말이 생각나냇가에 비죽비죽 고개를 내미는 고사리밥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참꽃(진달래)을 따먹기도 하고 닥치는대로 나물을 뜯어먹으며 최대한 쌀을 아꼈지만, 이십 일이 지나자 가져온 식량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사나흘간은나물만 한 솥씩 삶아 배를 채우거나 물로 끼니를 때웠다. 나물이 독했는지 계속 설사를 하는 바람에 탈진상태가 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처참한굶주림이 계속되었다.
쌀이 떨어진 지 열흘이 지나도 연락원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나물이고 물이고 입에 닿기만 하면 소태처럼 써서 아무것도 입에 댈 수가 없었다. 손발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차츰 눈이 어두워지고 힘차게 들려오던 물소리도 가물가물 멀어져갔다. 아이는 기를 쓰고 젖만 빨아댔다. - P158

하부는 상부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제일의 철칙이던 빨치산에게 구례군당의 조직적인 하극상 사건은 도당 전체에 한바탕 회오리를 몰아왔다.
구례군당을 지도하던 백운산 특각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당의 명령을 어긴 전원을 총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은 문제의 원인도 모른 채 원칙을 어겼다고 해서 무조건 총살할 수는 없다는 다수의 뜻에 따라 조사단이 파견되고 신오동 및 몇몇 지도부의 반당적인 행위가 샅샅이 밝혀져 그들이 제명되거나 부서이동을 당하는 것으로 사건은 막을 내렸다. 전남도당에서는 최초이자 최후의 내부 사건이었다. - P164

뒤돌아볼 경황도 없이 최정호의 뒤를 따랐다. 어디를 어떻게 해서 토벌대가 겹겹이 둘러싼 뱀사골 능선을 빠져나왔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다음날 피아골 군당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다래덩굴 아래서의 그 숨막히던 기억만, 그 다래덩굴 아래만 그녀의 머릿속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아이가 죽었다는 걸 그녀는실감할 수 없었다. 슬픔도 서러움도 없었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저밑도 끝도 없는 막막함만이 아이를 낳으려고 쫓겨난 빈집을 찾아가던 날매섭게 휘몰아치던 눈보라처럼 오랫동안 그녀를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가 죽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항상 아이를 추스르던 버릇으로어깨를 으쓱하다 보면 등은 텅 비어 있었다. 언제나 정겹게 등을 짓누르던 아이의 무게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아이가 아무데도 없음을, 그녀의 등에도 품에도 다른 어디에도없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 P172

아이를 낳던 날 방구들을 파내던 경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태어난날부터 내쫓겼던 아이, 죽는 날까지 울음 한번 시원하게 터뜨려보지 못하고 쫓겨 다니던 아이, 네 앞에서 결코 부끄러운 어미는 되지 않겠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토록 질긴 운명과 슬픈 이별을 강요하는가. 어미는 그것을 부숴버리고야 말겠다. 이 땅의 모든 어미가 밥을 달라고 우는 아이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야 말 테다.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는 날 어미는 네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테다.
네가 큰 소리로 맑은 웃음을 터뜨려도 입을 막지 않고, 같이 웃으며 힘차고 뜨겁게 너를 안아줄 테다. 여기서 쓰러지는 건 아이를 두 번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내색하지않아도 아이를 잃은 충격은 역시 컸던 모양인지 뱀사골에서 좀 좋아지던건강이 다시 나빠졌다. 당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건강이 최우선이었다. 예전처럼 다른 동지들의 짐만 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의 일꾼으로, 아니 아이까지 두 몫의 일꾼으로 이제는 제 할 일을 다하는 투사가 되어야 했다. - P173

성원 전체가 보급투쟁을 갔는데 그날 오후까지 살아 있는 게 확인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박종하의형박정하도 바구리봉부근에서 적에게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박춘산도 여기서 죽고, 그를 따라입산했던 여동생 박정숙도 며칠 뒤 전사했다. 부대 사람들 모두 어두운얼굴이었다. 하기는 더 이상 병력을 보충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전남도당의 최후가 머지않은 셈이었다. 그날 바구리봉에 걸린 태양도, 노을도유난히 붉었다. 동지들이 흘린 핏빛처럼. - P186

해방의 그날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그때쯤엔 웃으며 오늘을 기억할 수 있겠지. 어쩌면 혁명사업이란 소태 같은 것이 아닌가. 쓰디쓰지만 먹고 나면 몸에 좋은 것. 쓰디쓴 날을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해방은 기어코, 기어코 오고야 말 테지. 그러나 살아서 그 서글픈 추억을 되씹을 수 있었던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좋은 추억이 되겠다던 김선우도,
영원히 잊지 않겠다던 오금일도 54년 빨치산 최후의 무렵에 적과 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람 좋은 미소만 띠고 있던 구례의 ‘각시순사‘ 김병추도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다. 소태처럼 쓰디쓴 혁명의 물결에그들은 하나뿐인 생명까지 던져버린 것이다. - P190

고민이 있어 보이는 대원에게 일부러다가가서 말을 들어주기도 하고, 상담한 내용은 상부에 건의하여 반영하기도 했다. 자신의 활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기일이 아주 좋았다. 이현상이 처음 했던 말대로 정말 그녀의 역할은 어머니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현상은 아이를 잃고 난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달래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녀로서는 입산한 지 두해가 다 되어가지만 아이 때문에 체계적인 조직생활을 해보지 못하다가처음으로 구체적인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당에 대한 죄책감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차츰 엷어져갔다. 너무 바빠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 P197

그 후로도 남편은 그녀가 하는 일마다 불쑥 나타나서 무슨 트집을 잡아서든 그녀에게 경고를 내리기 일쑤였고, 행군이라도 하는 날이면 가장 무거운 짐을 그녀에게 맡기곤 했다. 오기가 치솟아 그녀도 두말없이 남편이가져온 짐을 짊어졌는데 당연히 맨 나중에 처지기 마련이었다. 대열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걷다 보면 남편이 혼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나타나면 짐을 받아줄 생각도않고 자기 혼자 앞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또 처지면 말없이 기다리고, 보다 못한 박종하가 가끔씩 그녀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도 못마땅한 기색으로 보거나 달려와서 말리는 남편이었다. - P200

한 달이 지났다. 몸이 약해 늘 비실거리던 그녀도 이제는 웬만한 남자못지않게 행군을 하고 보초도 설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남편의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현상의 그 말없는 웃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렇게 조금씩 그녀를 단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녀를진정한 혁명가의 길로 한 걸음씩 이끌기 위해 더 큰 사랑을 선택한 것이었다. 남편의 사랑에 비하면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난생 처음으로 온몸이 떨리는 흥분을 맛보았던 자신의 가슴속에는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적인 것으로 보는 세상의 편견이 숨어 있었음을 그녀는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그런 기대가 배신당한 아픔의 표현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이 자신의 실수를 눈감아주고 약한 자신을 보호해주길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곧그녀를 영원히 나약한 여자로, 남자의 종속물로 만드는 함정일 뿐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자기의 아내로만 본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한길에서 살아갈동지로,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대우한 것이었다. - P201

이제는 무거운 짐을 지고도 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보초도 제법 노련하게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남편 역시 자신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의 사랑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남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솟구쳤다.
남편이 징병에 끌려갈 때 솔문에 매달려 휘날리는 일장기를 보고 착잡해했던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남편이 살아 돌아왔을 때 반가웠던 것도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어쩔 수 없이 함께 보낸 시간과 그 시간속에서 길들여진 정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P201

낯설고 재미없던 세상이 그녀 곁으로 쑥쑥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남이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바둥대는 것 같던 지난날의 삶도 이제 그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소박당한 채 어린아이들을 거느리고밤마다 이야기책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했던 어머니의 삶도, 그 어머니를버려야 했던 아버지, 여자니까 일본글 같은 것 배울 필요 없다며 결혼하기 싫어서 머리까지 잘라버린 그녀를 한 달 만에 시집보낸 그 아버지의삶도 이제 그녀는 흐르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자가 공부하는 것조차 싫어 서둘러 시집보낸 딸이 남편과 함께 더 새로운 공부를 하며 이렇게 살고 있는 줄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아버지가 준 최고의 선물은 그러고 보면 서둘러서 지금의 남편에게시집보내준 것이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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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4월 10일경, 곡성 봉두산에 있던 도당 연락과 분트가 적의 기습으로전멸당하고 생포자까지 생기는 바람에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존의모든 연락루트가 차단됐다. 몇 차례 서부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루트에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으로 도중에서 모두 희생되고 말았다.
곡성군당 위원장을 지내 그곳 지리를 잘 아는 그에게 동서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연락루트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4월 16일, 야산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노곤노곤한봄볕에 새 생명이 움터오는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빨치산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춘궁기의 시작이었다. 도당에도 식량이 바닥나 하루를 굶은 채그는 연락루트 확보작업을 할 대원 일곱 명을 거느리고 밤길을 나섰다.
비상미 한 톨도 없었다. 야산에는 쑥과 취가 제법 먹을 만하게 자라 있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쑥과 취를 뜯어 소금만 넣고 항고에 삶아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겨울 내내 소금밥만 먹은데다 이틀을 굶었으니 그렇게 맛 - P9

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장염으로 오랫동안 앓고 있었는데 이날쑥을 한 항고 먹은 다음부터는 신기하게 설사가 잡히고 통증이 가라앉았다. 예부터 장 나쁜 데는 쑥이 직방이라더니 민간요법도 과학성이 있는모양이었다. 봄나물 덕분에 병도 고치고 허기도 면한 그들은 봉두산으로들어가기 직전 황전면 면소재지 가까운 마을에서 남의 집 담을 타넘어 도둑질을 했다. 제일 좋은 집을 골라 들어간 탓에 일곱 명이 한 달은 견딜수 있을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밥이 해결됐으니 발걸음도 가벼워서 봉두산에 날 새기 전에 도착했다. - P10

"고생들이 많제라? 끼니도 때우기 힘들 것인디 얼른 이거나 드시오."
같이 먹자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박 씨는 국물 한 수저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식구가 열이니 산에 있는 그나 박 씨나 먹고 사는 게 비슷했을 텐데도 투박한 손으로 닭을 찢어주며 기어이 그에게만 고기를 먹이려는 박 씨의 순박한 심성에 가슴이 저려왔다. 작년 여름인가 보급투쟁을 나갔을 때그는 박 씨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여름철이라 일을 마치고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는데 올망졸망한 아이들까지 십여 명이 둘러앉아 멀건 보리죽을 먹고 있었다. 기름기 없는 얼굴에 마른버짐이 희끗희끗한 그 가난한 농부는 남은 죽도 더 이상 없었는지 빈 대접 하나를 가져다십시일반으로 자기들이 먹던 죽을 한수저씩 덜어 그에게 보리죽 한 사발을 내밀었다. 뒤져보면 꿔다놓은 보리 한 됫박쯤은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것마저 털어 가면 당장 내일부터는 입에 거미줄을 쳐야 할 형편 같았다.
그가 아무리 굶었다고 하더라도 종일 힘겨운 일을 마치고 난 농부의 유일한 끼니까지 뺏어먹을 수는 없었다. 그는 덜어준 죽에 입도 대지 않고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기껏 힘겹게 보급투쟁 해놓은 쌀 두어 되를 꺼내 놓았다. 박 씨도 그 농부와 형편이 다를 리 없었다. 그런 박 씨가설날에나 쓰려고 아껴놓았을 닭을 그를 위해 내놓은 것이다. - P12

모든 성원들의 길잡이이자 중요한 이론교육지인 <로동신문>이 발간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의약품의 경우도규제가 심했지만 그래도 약은 광주나 대도시의 약국을 샅샅이 훑고 다니며 소량씩 구입하면 안전했다. 그러나 종이는 달랐다. 농가에서 문종이외에 종이가 필요할 리가 없으니 규제가 심해서 추적당할 가능성이 매우높았다. 돈이 있어도 구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당에서는 모두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돈으로 못 사면 방법이라고는 종이공장을 습격하는 수밖에 없는데 종이공장 사장의 성향을 알 수도없을뿐더러 경찰들의 감시도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의 조직선을 이용해 주변 종이공장의 실태를 알아보도록 했다. 조직을할 수 없으면 하다못해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생각이었다. 주변에 두 군데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것과 재고가 남아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모두 곡성에 있는 공장이었는데, 곡성은 원래 이전부터 조직력이 취약해 함부로 조직하려고 나섰다가는 경치기 십상이었다. - P14

"워매?"
공원이 깜짝 놀라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당신들 통도 크요이, 시방 주인집 사랑방에 순사들이 잠복해 있음서조깨 전에 야식까지 해묵고 금세 잠들었는디."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그들이 떠난 후 공원이 신고만 하면 아깝게 얻은 이 종이를 팽개치고 튀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얼른 주머니에서 5천 환을 꺼내 공원의 손에 쥐어주면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 사람은 천지분간 못하고 자요. 당신만 모른 척하면 되오. 이거 오천환이니 모른 척하고 자요."
"고마워요. 그러것소."
돈이 든 손을 꼭 움켜쥐고 공원은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순박한청년 같았다.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뜀박질로 밤새 행군을 계속했다. 모든 간부들이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그날 밤 박영발이 다시 그를 불렀다. - P15

집은 살림살이가 제법 괜찮은지 억새대로 지붕을 이었는데 달빛이 은은하게 떨어지는 억새지붕이 참 아름다웠다. 워낙 마을에 빨치산이 들어온적이 없어서인지 집주인은 매우 친절했다. 백운산 주변 마을에선 요즘 들어 보기 드문 일이었다. 수십 번씩 빨치산에게 살림살이를 털리고 난 주민들이 이제는 빨치산만 보이면 뭐든지 감추느라고 난리였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빨치산이 느끼기에도 호의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이마을엔 난생 처음 빨치산부대가 들어왔으니 쌓인 불만이 있을 리도 없고 오히려 약간의 호기심도 발동하여 다들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자청해서 챙겨주었다. 20분만에 보급을 완료하고 1선에 모였는데 다들 허리가 휘도록 배낭 가득 쌀을 짊어지고 있었다.  - P17

봉두산 분트로 돌아온 그는 다음날부터 모든 지하조직원을 대도시로보내 필요한 약품을 구입하게 했다. 일주일 후 페니실린, 머큐로크롬, 붕대, 소독솜, 주사기 등 다량의 약품을 총사령부로 보낼 수 있었다. 물자를확보할 수 있는 정도의 조직도 대단한 도움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현재의 당의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대도시로 조직기반을 확대해야 했다.
이런저런 궁리 속에 산은 점점 검푸르게 자신을 불태우며 여름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이 산에서, 동지 곁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라는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한치 앞의 역사를 알 수 없듯이. - P19

친구고 부모고 없던 그 험난한 시절에도 어디에나 아름다운 사연은 많았다.
고생을 한 보람은 충분했다. 고철과 김춘옥이 세상에 다시없는 맛이라며 정말 맛있게, 꽤 많은 수박을 하루 만에 다 먹어치웠던 것이다. 다음날김춘옥의 하산일자가 결정되어 내려왔다. 8월19일, 일주일 후면 김춘옥은 산을 떠난다. 1950년 9.28후퇴와 함께 입산했던 만 2년의 사생활이 끝나는 것이다. 이제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이다. 과연그녀가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까. 바깥사회의 고통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총알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날인가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안일함이나 긴장의 이완이다. 어쩌면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적보다 훨씬 어려운 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해갈수 없는 길이었다. 숨막히는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갔다. 백운산의 여름은 점점 뜨겁게 타올랐다. - P33

"좋네."
당과 조직을 해치지 않는 한 무슨 방법을 써도 좋다. 살아남아서 임무를 수행하라. 고철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비겁하게 자수를 한다, 자수? 그렇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아니, 비겁해지더라도 나에게는 해야 할 임무가 있다. 죽고 사는 것도 자신의 자존심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죽는 것은 깨끗하고 단순하고 고결하지만, 그럼 그에게 맡겨졌던 임무는 어쩔 것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임무를 완수하시오, 완수하시오, 완수......
"서장님은 자수 외에는 나를 살릴 방법이 없소? 솔직하게 대답해주어야 내 태도를 결정할 수 있소."
- P41

"그것도 책임지겠네."
함께 싸우던 동지들이 생포되거나 자수한 뒤에 얼마나 많이 이용됐는가, 심지어는 부대를 결성해 동지였던 빨치산을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밀고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비행기로 자수를 권유하는 방송을 해대고………. 만약 자신도 그런 식으로 이용된다면 그렇게까지 살아남을 생각은 없지만, 자수한 사실이 기사화만 되더라도 그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터였다. 충격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를 따르고 신뢰하던 하부원들 중에서는 심각하게 동요하는 사람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그의 지하조직 임무를 아는 사람은 박영발과 고철, 단 두 사람뿐이었다. - P42

구빨치로 자수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투철한 사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다. 자수∙∙∙∙∙∙ 그 말의 찜찜한 여운이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장님!"
침묵을 깨고 그가 서장을 불렀다.
"당신의 인격을 믿고 당신 말에 순응하겠소. 나는 당분간 공산주의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오. 나만 살겠소. 그 대신 당신은 나의 신변은 물론언론보도 등으로 나를 이용하려는 어떤 것에도 일체의 책임을 져주시오.
살기 위해 자수는 하지만 생사를 같이 했던 동지들을 팔아먹을 수는 없소. 그렇게까지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소. 나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지않겠다면 자수할 것이니, 나머지 모든 것은 당신이 책임을 지고 여기 있는 여러분들 앞에서 서약해주시오."
- P43

누구나 살다 보면 가끔씩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만난다. 그리고 때로는그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그 사람의인생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52년 8월 19일의 사건이 그랬다. 자수는 그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김춘옥만 데려다주고 오는것이 그날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가?"
화순으로 달리는 지프차 안에서 경찰서장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김춘옥과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결혼할 사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할 사이니 그렇게 대답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없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김춘옥이 그의 팔을슬며시 잡아당기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어떻게 하죠?" - P44

"글쎄요. 운명을 걸고 부딪쳐봅시다."
운명? 그렇다. 이제 그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미처 준비도끝나기 전에 갑작스레 다가와 버린 일이지만 어차피 그의 임무는 지하조직의 건설이었다. 그의 운명도, 전남도당의 운명도, 이 땅 사회주의운동의 운명도 그가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지프는 어둠을 가르며 보성-화순간 국도를 달려갔다.
화순경찰서 앞, 경찰서의 간부들이 그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앞에서 간단한 인사만 마치고 그들은 경찰서장을 따라 관사로 갔다. 종일준비했던 듯 푸짐한 저녁상이 들어왔다. 배가 무척 고팠지만 일부러 준비해 놓은 추어탕이며 김치며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매웠다. 짠 소금만으로 몇 년을 보내왔으니 고춧가루 범벅인 김치가 매울 수밖에 없었다. 정신 못 차리게 매운 김치를 씹으면서야 비로소 자신이 산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여기는 산이 아니다.  - P45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몰라 순간순간 가슴 졸이고, 날이면 날마다 적의 총탄에 사람이 죽어가는 산이아니다. 쓸쓸함, 허전함, 두려움……….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솟구쳤다. 그는 단 한 번도 동지들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46년 이래처음으로 조직을 떠나온 것이다. 이제 그 혼자 모든 것에 대항해 싸우고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혼자서!
다음날 그들은 자수진술서를 썼다.
"저는 여순반란사건 당시 아버지가 좌익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자 그 충격으로 산에 입산했으며…….… 몸이 약해 더 이상 산에서 활동하기도 힘든데다 공산주의 활동에 염증을 느껴………."
염증을 느껴.....… 정말이지 그런 자술서를 써야 하는 자신이 굴욕스러웠다. - P45

전라남도 총사령부 사령관 김선우, 전남 보성 출생………. 총사와 화순군의 조직체계, 현재의 생존자, 직책, 경력 등이 모두 도표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정확했다. 누군가의 이름 위에는 붉은 색으로 가위표가 그어지고 그 옆에 사망 날짜와 장소까지 완벽하게 기입돼 있었다.
가슴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경찰에서는 빨치산의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서장이 웃으며 의자를 내밀었다. 서장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서로가 속한 사회적 관계를 떠나면 그들은 아마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서장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반동권력의 하수인이었고, 그에게는 성심껏 최선을다해 진실로 잘해주겠지만 자신의 일로 돌아가면 빨치산 토벌을 지시해야 하는 적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세상이었다. - P46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휴전협정 전문이 실린 신문을몇 번이고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빨치산 문제는 다뤄져 있지 않았다.
전선이 없어지면 빨치산에게 남은 건 궤멸뿐인데, 혹시나 했던 포로교환에도 빨치산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휴전에 기뻐하면서도 빨치산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왜 북한은 빨치산 문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자신의 전선을 지키라는 것인가? 이 휴전상태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제 통일이란 어쩌면 자신들이 살아생전에 보지 못하는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었다. 남한의 빨치산은 전선도 없어진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남한자체의 힘만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 죽음을 넘나들며 체험한 사실이었다. 남한 정부는 입산자 전원에 대한 세밀한자료를 갖고 있었다. 이제 빨치산들이 경찰의 정보망을 피해 지하로 잠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이 되었다.  - P63

집행유예를 받은 것만 믿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권상수는 경찰에게 끈질긴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권상수는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결국 경찰에 협조하기로 하고구례 지하조직을 깨뜨리기 위해 양경한의 조직에 가담한 것이었다. 간첩이승엽의 비서라는 이유로 도당에서 의심했던 양경한이 아니라 권상수가 바로 조직을 팔아넘긴 장본인이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를 팔아 얻은 권상수의 생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에게 한 번 꼬리를 물린 권상수는 그 후로도 계속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수십 명의 동지들을 감옥으로 팔아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구례군당을 완전히 박살내기 위해 군당으로 재입산했다가 권상수의 정체를눈치 챈 군당 성원들에게 총살당하고 말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일수록 죽음은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권상수뿐만 아니라 수많은 배신자들의최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 P77

"김왕규는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는 친일파이며 민족반역자요. 나는적어도 우리 조선민족을 외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김왕규는 일제시대에 일본정부의 관료로 출세한 친일파요. 그런 친일파가 해방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애국자 행세를 하며 설치고 있소. 나는그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오. 김왕규는 자기 입으로 자기를 애국자라 하며 나를 비애국민으로 매도하지만 과연 누가 애국자고 누가 비애국민이오? 내가 취조를 받기 위해 검사 방에 갈 때마다 김왕규는양담배를 수북이 쌓아놓고 피워댔소. 전쟁이 끝나고 우리 민족의 경제를부흥, 발전시켜야 할 이 마당에 양담배를 피워대다니! 그가 과연 애국자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오. 누가 애국자였고 누가 이 민족을위해 살았으며, 누가 사형을 언도받아야 할지는 역사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이 아니라 능지처참형을 선고한다 할지라도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애국적 행위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제의 앞잡이들이 선고하는 무엇도 인정하지 않소!"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 P78

미제의 식민지정책은 더 노골화될 것이고, 권력을 잡기 위해 조국을 미제에 팔아먹은반동권력의 횡포도 점점 더 심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영원한 후퇴란없다.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들이 다 죽고 난 뒤, 어쩌면 한 세기 뒤일 수도 있다. 세게 눌린 용수철일수록 더 거세게 튀어오르듯이 억압당하는인민들은 언젠가 다시 자신들의 피로써 항거할 것이고, 미래의 새로운 세대는 한국현대사의 초기에 피로 씌어진 역사의 바탕 위에서 더욱 거세게타오를 것이다. 그 밑거름만 되어도 좋다. 자기가 반드시 살아서 그날을봐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단지,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권상수 같은비겁한 배신자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지 않고 일본으로 가는 밀항 루트를 개척할 수 있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얼마 남지 않은 빨치산 동지들의안전을 보장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자책감만이 그를 괴롭힐 뿐이었다.
3월 말, 제법 따스한 햇살이 사형언도를 받고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가는 그의 여위고 상처 난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저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르며 맑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는 햇살에 시린눈을 치켜뜨며 사라져가는 종달새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 P79

최근에 왔다는 몇 사람만 한 손에 하얀 쌀밥 한 덩이를, 다른 한 손으론 고무신에 멀건 소금을 받아들었다.
순천에서 매일 소금을 바른 꽁보리밥만 먹다가 쌀밥을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안 먹다니 웬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반찬 없이 하얀 쌀밥을 일주일만 먹으면 당장 밥냄새도 싫어지고 밥꼴도보기 싫어지며 급기야는 이질에 걸려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12방에만 해도 그런 이질 중환자가 일곱 명이었다. 따발총 환자라고 불린 그들은 이빨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눈이 침침해지며 계속 설사를 해대 하루 종일 변기통에만 앉아 있었다. 교도소에서는 그렇게 남아돌아가는 쌀밥을말려 과잣집에 비싼 값으로 팔아 축재를 했다. 집과 연락이 닿고 집에서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사실을 청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남한에 아무 연고도 없는 이북 출신이거나 연락이 돼도 식구들마저 굶고있는 기본출신들은 사식 하나 시켜먹지 못하고 그대로 이질에 걸려 죽어갔다. 그가 온 후 한 달 동안만 해도 수십 명의 동지들이 이질에 목숨을잃었다. 사람의 목숨을 쌀 한 말과 맞바꾸는 셈이었다.  - P81

말 뒤엔 당연히 몽둥이찜질이었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치욕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죽음처럼 허망한 것도 없지만, 또 인간의 생명처럼 끈질긴 것도 없다.
그는 언젠가 전투 중에 포탄을 머리에 맞고 허연 뇌수가 땅으로 철철 흘러내린 부상자를 본 적이 있었다. 뇌수의 절반이 흘러내렸는데도 그는 죽지 않았고, 마침 곁에 있던 의무지도원이 흙은 털 겨를도 없이 솔잎새만뜯어낸 후 뇌를 다시 집어놓고 머리를 꿰맸었다. 얼마 뒤 그는 멀쩡하게살아났다. 언어장애나 뭐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멀쩡하게 나아서 한 일 년을 더 살았던 그는 그 후 다시 가슴에 직격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목숨을 구걸하진 않지만 살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였다. - P82

그러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가을이 오고, 54년 12월 30일 대법원에서 무기로 형이 확정되었다. 목숨이야 건졌지만 사형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평생을 적의 감옥에서 갇혀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있으니 미래에 대한 희망, 해방의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이 절망보다도 오히려 수십 배 고통스럽다는것은 그런 기다림을 경험한 자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 P83

보안과장이 쌀 무게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고, 그동안 그들이 공공연하게 쌀을 훔쳐 먹은 사실을 모를 리도 없었다. 훔쳐 먹은 것은 보안과장에게도 소장에게도 다 뇌물로 올라갈 것이 뻔했다. 그 앞에서 마지못해 쇼를 하는 것이라 해도 보안과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빨갱이 하나쯤 죽는다고 해도 문제될 것 없는 세상인데 그래도 과장은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이다.
다음날 다시 보안과장이 그를 찾아왔다. 단식 나흘째, 물 한모금 넘기지 않았지만 산에서 열흘씩도 굶었던 걸 생각하면 별 고통스러울 것도 없었다. - P93

보안과장이 그와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보안과장이라고 자기 눈앞의 온갖 부정들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보안과장은 이번만이 아니라이전부터 그러한 숱한 모순들 앞에서 몸을 숙이며 살아왔고, 그는 어떻게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쳐왔다. 그러나 모든 것에 질서가 있다는 보안과장의 말은 옳았다. 하나의 거대한 모순이나 부정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는 조직의 힘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안 된다. - P94

얼마 뒤면 또다시 원상복귀할 거라는 것을 그는알고 있었다. 원천적으로 부정의 질서를 제거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도부정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이번 단식의 효과도 오래갈 리 없었다. 열사람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말도 있거니와 위로부터 부정을 근절하지않는 이상 혼자 힘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잘되면 순간적인 처방일 뿐이었다. - P95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그 잘못된 제도에 빌붙거나 그 제도를 도우며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실패로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그들은 분명히 옳았다. 후회는 아니었지만 승리를 확신하며 싸우던 그때가, 콩 한 조각을나눠먹던 동지들이 그리운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죽음이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적과 대등하게 싸웠고 지금은적의 포로로 갇혀 있다. 담장 밖을 구경하지 못한 지도 벌써 3년, 언제쯤이나 담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담장 밖의 세상에 언제쯤 풍요한 인민의나라가 세워질까? - P98

김규호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래야지요. 취업 중에 있는 우리 동지들을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할 동지도 반드시 필요하오. 동지가 그 일을 하시오. 동무의 말이 옳소."
"선생님은?"
김규호는 대답 없이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그는 지금도 알수 없다. 전술적으로 전향이 필요하긴 해도 자신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없다는 뜻이었을까?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던 김규호는 감방에서 공산주의 교육을 시켰다 하여 5년 형을 추가 받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복역하다 위암에 걸리자 스스로 이불을 찢어 목을 맸다. 적들 앞에 자신의 죽어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향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김규호의 말을 듣고도 그는 한동안 망설였다. 김춘옥을 데려다 주러 갔다가 자기까지 자수를 해야 했던 그날의 복잡한 심정과 똑같았다. 전향서 한 장에 지금껏 가져왔던 사상이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전향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서글픔, 분노......, 온갖 생각이 들끓었다. 7월 4일 그는 드디어 전향서를 썼다.  - P99

국가에서 금지하는 사상을 머릿속에 지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좌절을 느낄 때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던 김규호의 미소를 떠올렸다. 김규호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사상을 한 치도 양보하지않고 살다 죽었다.
나는 무엇인가? 살아남아서, 세상으로 나와서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철저하지 못한 사상성 때문인가, 아니면 반동의 시대 때문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아무튼 그는 전향을 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던 김규호는 그대로 특사에 남았다. 그가 사랑했던 많은동지들은 남녘의 산과 들에서 죽었다. 남한에서의 치열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교도소 특사에 갇힌 채 막을 내렸다. 그의 앞날에는 이제까지와는전혀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과 치욕의 삶이.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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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저집에서 닭죽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왔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대접이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묵어가면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게다가 후퇴하는 사람들이니 내색은 안 해도 떨떠름하게 대하던 주민들이 명절날이나 잡는 귀한 닭을 자진해서 잡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인민군들은 별말도 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인민들을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맛있는 닭죽을 얻어먹으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에 무릎을 치고 있었다. - P266

낯익은 백운산 정챙이골에 다시 서자 감회가 새로웠다. 굶어죽기 직전 그들은 백운산을 떠났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다시 오고 싶지 않던 곳이었는데, 그러나 아프고 지긋지긋한 추억일지라도 오히려 그 아픔만큼 그리움도 깊어지는 것일까. 꼭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10월 초, 백운산에도 서서히 단풍이 오르고 있었다. 이런 행군이 처음인 대부분의 대원들이 너무 지쳐 있어서 그는 대원들을 정챙이골에 남겨둔 채 몇 사람만 데리고 광양군당과 선을 대기 위해 광양 옥룡골로 떠났다. 여수와 광양에서 후퇴한 기관원들이 우글거리는 옥룡에서 백운산 지구당책으로 내정된 정귀석과 유격대 사령관으로내정된 유몽윤을 만난 그는 도당의 지구당 결성 결정을 통보하고 즉시 각군당과 연결하여 지구당 결성을 서둘렀다. 지구당 결성과 더불어 훈련방법, 월동대책, 투쟁방향 등이 제시됐다.
같이 왔던 인민군들은 기어이 후퇴를 하겠다며 지리산으로 떠나갔다. - P267

후퇴하는 마당이라고 관공서는 물론 학교까지 불태우는 초토화작전을 펴고, 사전 선전작업도 없이 과다한 현물세 징수를 해 인민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고, 그래서 만약 이 조국해방 전쟁이 수포로 돌아간다면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설사 이런 문제가 조국해방 전쟁 실패의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투쟁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은우리가 고통 받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인민의 삶을 파괴하면서 어떻게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한 번의 실수가,
한두 사업 오류의 결과가 이토록 엄중하고 냉혹한 것인가. 그는 두려움을느꼈다. 군당 위원장으로서 내려야 할 무수한 결정들 앞에서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해야 할 것인가. 오류를 저지르고 나면 냉혹한 자기비판으로도책임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남는 법이었다. 그 실패가 곧 역사와 인민의 퇴보요 슬픔이요 패배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P283

그는 천천히 담배를 끄고 호롱불도 끄고 드러누웠다. 이제라도 늦지않았다. 몇 가지 사업의 오류로 인민들의 지탄은 받고 있지만 결정적인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인민들은 우리 편이다. 이제부터 나의할일은 바로 인민의 마음을 잡는 것이다. 첫날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하던 그날의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렇다. 인민의 마음만 잡으면 된다. 수십 번후퇴를 하더라도 인민들이 이 뜨뜻한 방구들처럼 우리를 녹여준다면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지난 오류에 매달려 절망할 필요는 없다. 혁명가에게 과거란 없듯이, 과거가 쌓아올린 현재의 자리와 당장 싸워야 할오늘의 임무와 빛나는 내일이 있을 뿐이다.
등허리가 시큰거리게 뛰어다녀야 할 내일을 위해, 새로 인선해야 할 간부들의 이름이며 자꾸 떠오르는 수많은 일거리를 다 지워버리고 그는 애써 잠을 청했다. - P283

바로 눈앞에 두고 볼 수 없다는 것도 못지않은 고통이었다. 서로가자신의 일로 바쁘기도 했고, 간부쯤 되는 사람이 시간이 된다고 해서 함부로 그녀를 찾기도 어려웠다. 사랑을 하면서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원칙을 이탈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작은 원칙의 파기로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6.25 직후 해방 소식을 듣고도 동지들의 손에 처형당해야 했던 전인수만 해도 그랬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신경이 쓰이고 더 잘해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게 분명한 임무를 맡을 때, - P299

더욱이 자신은 그 임무를 부여하는 사람일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사람을 제외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테지만, 그 임무는 해도 좋고 안 해도좋은 일이 아니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외면하고 마음 편한 대로 사랑하는 이를 특별대우해서 임무를 해제시킬 때 순간이야 즐겁겠지만 기다리는 것은 더 큰고통이다. 사랑하는 이 대신 그 어려운 임무를 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과 똑같은 동지인 것이다. 사적인 감정에 얽매인 간부를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소문이야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남녀문제만큼 민감하고 미묘한 게 또 어디 있는가. 문제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는가였다. 동지들 앞에 떳떳하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랑을 하기위해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
특별한 전투 없이 평온한 봄이 찾아왔다. 봄비가 몇 차례 내리고 나더니 불쑥 봄이 무르익은 3월 20일경이었다.  - P299

물이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둣빛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 그 새싹은나뭇잎으로 금세 무성하게 자랐다. 녹음이 짙을수록 빨치산의 생활은 안정을 찾아갔다. 군경도 전면적인 토벌작전을 중지하고 야산 수색과 보급로 차단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백아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도당과각 군당도 서서히 자기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갔다. 곡성군당도 5월 20일,
드디어 곡성 한복판에 있는 통명산 말골 골짜기(곡성군 오곡면 말골마을이있는 골짜기)로 전 군기관이 거점을 옮겼다. 후방교란 작전으로 매복습투쟁, 도로파괴, 통신망 교란투쟁 등과 보급투쟁은 쉬지 않고 진행되었지만 이렇다 할 큰 전투는 없었다. 비교적 조용한 여름이 깊어갔다.
여름과 함께 소련이 유엔에서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한번 해방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여순사건, 작년 여름의 광주 입성, 그 짧았던 해방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의지만으로움직여지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 P313

미제의 완전한 한반도 점령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저지되었다. 세계의 복잡다양한 얽힘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부숴졌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거대한 역사의 덩어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확신하면서도 웬일인지 정체 모를 허전함은 마음 깊숙이 똬리를 틀고 사라지지 않았다. 생성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아름답고 분명한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에는 슬픔도 있는 것일까. 한인간, 그 개체는 죽도 인류는 발전한다는 위대한 진리 앞에서도 그는 가끔씩 섬뜩한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 P314

따뜻하지만 어쩐지 쓸쓸해 뵈는 웃음을 지으며 김선우는 그를 내보냈다. 그제야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수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가. 김선우에게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겠는가. 그와 김춘옥이 남몰래 눈을 부딪치며 얼굴을 빛낼 때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한편으로는 위원장의 사랑을 축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두고 온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으로 밤잠을 설쳤을지도 몰랐다. - P315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간신히 말을 마친 박영발은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였다. 그는 깜짝놀라서 기요과장을 불러댔다. 깜빡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박영발은 말도못하고, 기요과장을 부르지 말라는 듯 힘없이 손을 저었다. 그러나 곧 기요과장이 뛰어 들어왔다. 한 마디도 더 말할 수 없을 지경까지 박영발은꼿꼿이 앉아 그와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 놀라운 자기 절제력이었다. 이상하게 그는 박영발을 볼 때마다 잔뜩 독기를 품고 꼿꼿하게 목을 추켜세운 한 마리 독사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풀숲에서 그런 뱀을 만날 때면 두려움에 떨면서도 징그럽다기보다는 묘하게 화려하고 고독한 아름다움에넋을 잃고 지켜보곤 했었다. 박영발에게는 바로 그런 독기 서린 무서움이있었다. - P330

지금보다 몇 배는 끔찍했던 빨치산 경험을 한 그로서도 충격적이었는데,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 충격을 넘어 엄청난 고통이요 절망이었을 것이었다. 휴전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죽어가면서 언제까지버틸 수 있을 것인가. 세균전, 네이팜탄, 미국……….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스쳤다. 새벽길을 밟아 군당으로 돌아가는 길, 이슬에 젖은 숲은 아침 미명을 받아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 P331

2년여의 세월 동안 우리 모두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기차표 파느라고 정신이 없던 그가, 강제로 다가오는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를 짓누르는 그물에서 도망치고싶어 술이나 마시던 그가 어떻게 변해 있는가? 여수로 생선 떼러 갔다오는 생선장수 어머니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자기 인생에 분노하던 조용식이 얼마나 즐겁게 자기 인생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 살다 죽어갔는가? 낭자한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채로 자기 일의 의미도 모르고 밥이나 짓던 양봉순이 얼마나 당당한 인민의 전사로 성장했는가? 그는 그제야 오랫동안 짓눌러오던 조용식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말골 골짜기에도 점점 뜨거운 태양이 내리찍기 시작했다. - P347

"비홉디다, 비호. 내 생전 그렇게 전투에 도가 튼 사람은 첨 봤소. 여자가 아니드라고요."
그 대원은 침을 튀겨가며 양봉순 칭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하튼곡성군당은 양봉순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무기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얼마 후 양봉순은 남부군으로 떠나갔다. 양봉순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전투에 단련된 탄탄하고 거친 손길이었다.
"위원장 동무! 꼭 살아계시씨요이. 구빨치 때부텀 얼매나 고생했는디꼭 살아서 좋은 세상 봐야지라."
눈물을 글썽이며 살아서 좋은 세상 보자던 양봉순은 그 뒤로 다시 볼수 없었다. 그것이 서로의 마지막 모습인 줄도 모르고 그들은 오랜 동지를 아쉽게 떠나보냈다. 그렇게 살아있자고 다짐했던 양봉순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될 줄은 그도 양봉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P362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은 도도한 윈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후세의 평가가 어찌 됐든 전남도당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시기가 다가왔다. 얼마 전부터 정찰활동을 시작했던 수도사단의 대공세였다. 51년11월 말부터 다음해 2월까지 계속된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자, 지리산으로 2천여 명을 파송하고 난 뒤에도 천여 명이 넘었던 전남도당은 불과3백 명으로 줄어 있었다.  - P363

그렇게 소박하고 순박한 이였다. 다를 것 없는 그들이 서로 총을 겨누어야 했던 세상,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든 것일까. 순박한 그 형사의 말대로그가 그 형사를 살린 거라면 한호현은 바로 그를 살린 장본인이었다. 한호현의 집안은 곡성에서도 괜찮은 편에 속하는 집으로 중학까지 마친 삼형제가 모두 함께 입산을 했다. 한호현은 그중 막내였는데 큰형도 사람이무던하고 좋았으며, 곡성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한호현은 그가 특별히아끼는 사람이었다. 인텔리이긴 했지만 당성도 좋았고 능력도 있었으며진지했다. 대중성이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사사건건 원칙을 들먹이고 나서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윤옥을알아보고 존경한 것도 바로 그와 한호현이었다.  - P375

2월 29일 도당과 선이 닿았다. 석 달 만이었다. 곡성의 상황보고를 올렸더니 잠시 후 그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으로 임명했으니 당장 백운산 도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곡성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몇하고만 급하게인사를 나누고 그날 밤으로 곡성을 떠났다. 만 1년 3개월간의 곡성 생활,
곡성 사람들은 그를 눈물로 떠나보냈다. 이별이 아쉬웠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무사할지, 지금까지처럼 철저하게 지형을 이용하면서 살아남아야 할 텐데………. 이 중에는 다시 못 볼 사람도 있을 터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쳐다보려고 자꾸 뒤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의 아득한 점으로 사라지고 사연 많았던 통명산도 멀어져갔다. - P376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은 보랏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 P384

정지아, 지아. 이 이름에는 저주와 눈부신 은총이 함께 새겨져 있다. 저주받은 꿈을
‘품고 붉게 타오르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어미와 눈 덮인 백아산을누빈 아비는 어쩌자고 하나뿐인 딸의 이름을 지아(智我)라고 붙였을까. 꿈꾸는 일은 쉽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꿈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정지아는아직 쓰라리게 사랑하고 기억해야할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살이 에이는 문장으로 진술하고 있다.
-방현석 소설가 • 중앙대 교수

나는 실천문학사 대표였던 1990년 계간 <실천문학>에 4회에 걸쳐 연재됐던 빨치산의 딸을 세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가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되는 일을 겪었고, 작가 정지아도 수배되어 수년간 갖은 풍상을 겪었다. 세월이 흘러 이 책이 재출간되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정지아가 응어리진 가족사의 멍에에서 벗어나 지난 세월과화해하기를 바란다. 그를 아끼고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활발한 작품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이석표 문화유통북스 대표

남로당 중심의 진보세력들이 벌인 정치활동에서는 합법과 비합법 또는 무장투쟁이라는 복합적인 전술이 구사되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공개된 사실자료와 함께 이 운동에 직접 참여한 핵심인물들의 체험과 증언에 의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요구를 훌륭히 충족시키고 있다. 이들의 역경과수난의 가족사는 우리 현대사의 한 전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통일된 자주국가의 수립만이 그를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남식  현대사연구가

다 잊혀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떠내려간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대지의그림자가 사라지는가? 남북 어디에 있든, 또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한다. 전쟁은, 분단은, 역사는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존재의 망각‘ 상태에 빠진 이들에게 《빨치산의 딸》은 말한다. 이 통렬한 과거사가 우리의 오늘을 만들고 있다!
너무 실감 나서 숨이 막힌다.

김형수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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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 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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