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체험기
박완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남편이 통금시간이 지나고도 안 들어올때 보통 아내들은 어떤 걱정을 할까. 대개 교통사고 아니면 으슥한 골목길에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를 맨홀 걱정을 하리라. 나도 이 두 가지 걱정을 번갈아 하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고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서 통금에 걸리지 않은 게 분명해지니 더욱 앞의 두 가지 방정맞은 생각밖에 할 게 없었다. 그러나 가게(남편은 전기용품상을 하는 장사꾼이다)를 열 즈음 해서 가게에다 전화를 걸었더니 점원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어제 안 들어가셨다고요? 그럼 큰일났는데요. 실은 어제 저녁 무렵 검찰청 수사과에서 나왔다는 형사하고 같이 나가셨거든요. 잠깐이면 된다고 하면서 데리고 가길래 아마 일보고 댁으로 바로 들어가셨거니하고 댁에 연락도 안 드렸는데." - P13
나는 다시 울먹이며 애원했다. 가족은 가족의 거처를 알 권리가 있는게 아니겠느냐고 따져보기도 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따져요. 따지길. 따질데가 따로 있지. 썩 비켜나지 못해요." 나는 초췌한 몰골로 처음부터 그에게 저자세로 나온 걸 후회했다. 몇호 검사실에 볼일이 있다든가, 당당한 얼굴과 당당한 용무를 가진 사람은 주민등록증만 보관시키고 수월하게 통과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수위는 젊고 토실토실한 귀여운 얼굴이었으나 눈빛만은 특이했다. 자기가 일단 죄인의 가족이라고 단정한 사람이면 단박 걸레쪽처럼 비참하게 주눅들게 할 수 있는 섬뜩한 무엇이 있었다. 나는 유월의 뙤약볕 아래 후끈후끈 악랄한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검찰청 건물과 수위에게 잔뜩 주눅이 든 채 지독한 절망을 느꼈다. 그곳엔 맨 주눅들린 여편네들 천지였다. 피의자 대기실 주변의 맨땅에 뙤약볕을 무릅쓰고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는 초라한 여편네들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뙤약볕에 생기와 수분은 다 증발해버리고 마지막 남아 있는 사람의 가장 흉한 찌꺼기처럼 보였다. - P15
이런 여편네들이 어디서 피의자를 실은 버스가 온다든가 대기실에서굴비 두름처럼 묶은 피의자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든가, 아무튼 푸른 수의자락만 흘긋 비쳤다 하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기발랄해지면서 민첩하게 그곳으로 엉겨들면서 힘차게 손짓도 하고 새된 소리로 악도 썼다. 그럴 때마다 교도관이나 사복 차림의 감시꾼들의 구박은 혹독했다. 반말지거리로 욕설을 퍼부으면서 짐승 몰듯이 내몰았고 여편네들 역시 - P15
억세고 줄기차게 이 구박에 맞섰다. 그럴 때 여편네들은 죽은 듯이 늘어져 있을 때와는 또다른 의미로 사람 같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사람의 얼굴에서 그렇게 완전히 수치심이 제거되고절망과 독기로만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여편네들이 피의자의 가족, 그러니까 아내나 어머니나 누이라고 알아차렸고, 푸른 수의를 보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혐오감을 느꼈고, 이어서 깜짝 놀라면서 나 역시 피의자의 아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떡하면 남편을 이 끔찍한 고장에서 빼낼 수가 있을까. 문득 섬광처럼 이럴 때 빽이라는게 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동시에 지금 당장생각이 나지 않는다뿐이지 나에게는 빽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내 나이를 합하면 거의 백세, 사람이 백 년씩 살면서 사귄 연줄 중 그래 이럴 때 돌봐줄 유력한 빽줄 하나가 없대서야 그게 말이 될까. 꼭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뿐일 것이다. 나는 그 생각나지 않는 걸 빠르게 생각해내려고 머리를 쥐어뜯다시피 조바심했다. 큰집, 작은집, 친정집, 사돈집, 외갓집, 이웃집, 동창생.....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한꺼번에 많이 나와 남편이 아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중에서 든든한 빽이 돼줄 만한 사람을 골라잡으려 했지만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생전 아무하고도 안 사귀고 산 것처럼 떠오르는 그럴 만한 얼굴이 없었다. - P16
"알아요. 알아. 누가 당장 교제비 달랬나. 본격적인 비용은 사건이 검사한테 넘어가고 나서 드는 거고, 에에또, 사건은 아직 우리 수사과에걸려 있으니까 서류는 내가 알아서 잘 꾸밀 테고, 우리 과장님 식사 대접할 정도의 비용이야 일간 어떻게 마련하실 수 있겠지?" 나는 그렇도록 해보겠노라고 했다. 그는 일어서면서 한마디 했다. "김선생님 그 양반, 보아하니 법 없어도 살 양반이던데, 참 안됐단 말야." 그 소리가 나에겐 김기철이 그 머저리 우리 밥이더라 하는 소리처럼들렸다. 나는 내 남편이 권주임 같은 남자의 심문에 걸려들어 도저히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법이라면 달라는 것 없이 두렵고 싫어서 자기 양심에 걸리는 일과 법에 걸리는 일을 동일시하며 조심조심 살아온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법의 그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걸 피할 수 있는 법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실제로 죄가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총이 결코 총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며, 칼이 결코 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듯이 법이 결코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의편일 수는 없을 것 같은 깨달음이 왔다. 뭔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 - P27
았고 남편은 쉬이 풀려날 것 같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미칠 것 같았다. 억울하다는 느낌이 목구멍까지 차니까 울음도 안 나왔다. 나는 남편의 초저녁 코 고는 소리와 새벽녘의 줄담배를 싫어하고 있을 터였다. 그것 때문에 짜증도 많이 내고 늘 침실을 따로 쓰기를 벼르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남편이 없고 보니 내가 그 코 고는 소리와 줄담배에 얼마나 깊이 길들여졌었나, 아니 그것들을 얼마나 좋아했었나를알 것 같았다. 그게 없는 곳에서 내 안면은 아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한때 나는 작가랍시고 언론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문제로 제법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진 적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하고보니 세상 하고많은 지붕 밑, 어느 지붕 밑에고 다 계집 서방이 만나 자식 낳고 사는게 사람 사는 기본형태라면 서방은 저녁에 계집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계집은 서방을 맞아 바가지 긁을 자유만 있으면 됐지 그 이상의 자유가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 P28
창구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길게 늘이고 줄을 서 있었고, 긴 폭이 얽히고 설켜 자기가 원하는 창구의 줄의 끝을 찾는 것만도 수월치 않았다. 면회 신청하는 줄, 신청서하고 번호표하고 바꾸는 줄, 번호 부르기를 기다리는 서너 시간 내지 네댓 시간, 번호 부르고 나서 구치소 정문 앞에서 또 줄서기, 주민등록증과 번호표를 교환하고 들어선 어딘지 모르게 딴 세상같이 서러운 구치소 안마당, 어둡고 음산한 대기실의 발돋움하고 올라서야 손이 닿는 높은 창구, 그 창구로 신청서를 디밀고 다시또 번호 부르기를 기다리는 기진맥진한 것도 같고 악에 받친 것도 같은 이삼십 분...... 이렇게 무려 대여섯 시간도 넘어 걸려서 면회실에 들어가니 철망이 든 두터운 유리 너머에 번호가 붙은 푸른 수의의 남편이있었다. 그런 옷은 형이 확정된 후에나 입히는 건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앞을 분간 못하게 눈물이 났다.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사이에 면회시간은 끝났다. - P29
옥바라지하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속도 수속이지만, 그런 수속절차를 거치면서 수없이 부딪쳐야 하는 해당 직원의 철저한 불친절과 경멸과 냉대였다. 그건 사람다운 오기가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면 견디기 어려운 천시요 구박이었다. 그렇다고 K지청의 수위들처럼 돈을 받아가며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친절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지쳐 있었다. 죄짓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보잘것없는 족속들의 뒤치다꺼리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넌더리가 쌓이고 쌓이니까 대인관계에서 사람 개개인에 대한 이해나 보살핌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기계처럼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 말 붙여볼 수 없는 기계 같은 냉혹성은 어떤 적극적인 구박보다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았다가는 단박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되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손해를 보게 마련이었다. - P31
나도 매일매일 주눅이 들면서 고분고분 길들여졌다. 나는 그전까지도 누구에게나 겸손했다. 행상이나 거지에게까지도 상냥하고 공손하게대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겸손이 아니라 나 역시 어떤 세도가나 권력자에게도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내 나름의오만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매일 아침 면회 갈 때마다 서대문 못 미쳐 광화문서부터 내 오기를 달래야 했다. 오기를 달랠 때처럼 내가 얼마나 오기가 센 여잔가를 느낄 적도 없었다. 내 온몸에 가시처럼 돋은 오기를 부드러운 털이되게 무마시키고 나서도 모자라 아예 구더기처럼 땅을 길 각오를 했다. 면회하기 위해 내가 통과해야 하는 절차와 사람을 가시철망으로 생각하면 됐다. 가시철망치고는 땅에 낮게 드리운 가시철망이라고, 그 가시철망을 상처 입지 않고 통과하는 길은 오로지 구더기처럼 그 밑을 기는 길밖에 없다고, - P31
내가 이런 파렴치한 억울함까지를 포함한 모든 억울함을 진짜처럼 느낀 나머지 내 억울함을 가짜처럼 느꼈음은 그들이 모두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여직껏 알고 지낸 누구보다도 가난했다. 마치 억울함만을 숙명처럼 보장받고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구치소와 친해지기 전에 내 상식으로 구치소엔 살인범을 비롯한 흉악범은 물론이거니와 신문을 떠들썩하게 하는 억대의 밀수범, 억대의 도박범, 억대의 탈세범, 수회 한 고급 공무원들이 갇혀 있어야 했고, 면회 온 사람도돈을 물 쓰듯 하는 그들의 가족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와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어느 날, 누군가가 친절한 미소로써 나에게 접근해왔다. "사모님 같은 분이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면회를 하신대서야 말이 됩니까? 오죽한 사람들이 이 짓을 합니까? 돈푼이나 있는 사람은 다 특별 면회라는 걸 이용하니 사모님도 제가 그걸 알선해드리죠. 이거면 되니까요, 이거요." 그는 다섯 손가락을 짝 펴 보였다. 그후 나는 구치소 정문 앞 주차장에 즐비한 승용차가 이런 특별 면회자 중의 또 특수층의 차라는 것도알게 됐다 - P34
강변호사는 내가 설명하는 사건 내용을 시종 비웃는 듯한, 지루한 듯한 미소로써 들었다. 다 듣고 난 그는 사건에 대한 일언반구의 반문도없이 엉뚱스럽게도 작가의 남편이 장사꾼이란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나타냈다. 아마 친구가 내가 작가라는 소리까지 해놓은 모양이다. "거참 이상한데요. 암만해도 이상해요. 작가의 남편이 상인, 이래도이상하고, 상인의 부인이 작가, 이래도 이상하고......" 사건을 검토할 척은 안 하고, 당사자들이 이십 년 넘어를 조금도 이상해하지 않으면서 산 것을 제가 뭐라고 혼자서 이상해하기에 여념이없는가. 나는 남의 삶에 대한 그의 이런 속기스러운 호기심과 안이한 이해방법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친구의 소개도 있고 해서 그가 호기심을 제풀에 가라앉힐 때까지 참았다. 그는 저절로 직업적인 자신만만한 태도를 회복하더니 간단히 말했다. "불기소로 해드리면 되죠?" "네?" - P36
한편 옥바라지하면서 귀에 박이도록 들은 말, 큰집에 들어가 있는 사람 쉬이 나오고 더디 나오는 건 뒤에서 손쓰기에 달렸다는 말이 내의식에 따끔따끔 걸렸다. 나는 남편을 위해 손쓰는 일을 너무 안 하고 있었다. 돈 없는 사람들이 밑져야 본전 식으로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본다는 검사실에 가서 애원하는 일조차 나는 못했던 것이다. 그 밖에 손쓴다는 일은 다 불법적인 수회의 방법이었고, 그때는 마침 폭력범 단속과함께 공무원 부조리 단속이 한창이었다. 나는 모든 불법에 그저 겁밖에 나는 게 없었다. 결국 남편을 위해 합법적으로 손을 쓰는 길은 변호사한테 의뢰하는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변호사에게 삼십만원을 주고 사건을 맡겼다. 그러나 남편은 기소됐다. 기소된 걸 나한테 재미난 듯이 알려준 건권주임이었고, 정작 강변호사는 의뢰인이 기소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려주자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전화로 알아보더니, "거 어떻게 그렇게 됐나. 그럼 그까짓 거 보석으로 꺼내드리지." 또 한번 힘 안들이고 큰소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위임을 취소했다. 결국 남편은 재판받았다. 쌀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밥을 훔쳐먹은 도둑놈, 주인의 옷가지를 훔쳐낸 식모, 사고 낸 운전사, 버스칸에서 싸우다가 이를 부러뜨린 폭력범, 수금한 돈을 가로챈 점원 등, 삼십여 명의조무래기 잡범들과 함께 무더기로 재판을 받았다. - P37
그러나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네" 하고 대답할밖에 없는, 사건의 표피를 건드리는 데 불과한 판사의 신문이 한 사람 앞에 두 번 내지세 번씩이나 돌아갔을까. 그런데도 워낙 피의자가 많고 보니 서너 시간은 후딱 지나갔고 곧 검사의 구형이 있었다. 나는 변호사를 취소한 걸 은근히 뉘우치고 있었는데 재판을 보면서백번 잘한 일이다 싶었다. 왜냐하면 삼십여 명 중 단 한 사람도 변호사가 딸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에게만 변호사가 딸렸더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법정에서까지 그 고약한 억울함을 맛보았을 게 아닌가. 십오일 후의 언도 공판에서 남편은 자유의 몸이 됐다. 그는 다시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돌아오게 됐고, 처음엔 그것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니 차츰 시들해지면서 나는 다시 바가지를긁게 됐다. - P38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생활의 평온이 돌아오니 다시 그전처럼 자유의 문제를 생각하는 밤까지도 돌아왔다. 어느 날이고 자유를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 좋아져서 우리 앞에 자유의 성찬이 차려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전 같으면 아마 가장 화려하고 볼품 있는 자유의 순서로 탐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하고 많은 자유가 아무리 번쩍거려도 우선 간장종지처럼 작고 소박한 자유, 억울하지 않을 자유부터 골라잡고 볼 것 같다. 억울한 느낌은 고통스럽고 고약한 깐으론 거기 동반한 비명이 너무없다. 그게 워낙 허약하고 참을성 많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일 게다. 자기나 자기 가족에 대한 편애나 근시안에서 우러나는 엄살로서의 억울함에는 그래도 소리가 있지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숙명처 - P38
럼 보장된 진짜 억울함에는 더군다나 소리가 없다. 다만 안으로 안으로삼킨 비명과 탄식이 고운 피부에 검버섯이 되어 피어나기도 하고, 독한한숨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마지막엔 원한이 되어 공기 중에 떠 있을지도 모른다. 각종 공해가스가 충만한 공기 중에 그까짓 무해무익한 원한쯤 떠 있기로서니 어떨까도 싶지만, 글쎄 원한이 인체에 정말 무해무익할까. 화학적 공해처럼 그것도 일정량이 넘으면 공해의 구실을 할지 누가 아나. 육신을 해치는 공해가 아니라 심정을 해치는 공해로서 말이다. 내 친구의 동생이 이런 병을 앓은 일이 있다. 일류 대학 나와 일류기업체에 취직해서 승진도 순조로운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는데 초기엔 세상 살맛 없는 우울증에서 시작해서 괴상한 증세를 나타냈다. 그가 딛고선 땅이 무수한 맨홀 구멍을 숨기고 있다가 그가 발만 내디디면 그 음흉한 아가리를 벌리고 그를 삼켜버릴 것 같은 황당한 환상이 그것이었다. 이런 증세가 점점 심하게 되자 직장까지 그만두고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의사는 전지요양을 권했다. 공기 좋은 데를 아무리 찾아다녀도 별 차도가 없자 마지막으로 형이 있는 미국으로까지 전지요양을 갔다. 미국에 닿자마자 그 병은 감쪽같이 완쾌되어 지금은 아주 유능한 청소부 노릇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낸다고 한다. 그 청년도 혹시 그런 공해병 환자가 아니었을까. 잠 안오는 밤, 문득그런 생각을 해본다. - P39
「조그만 체험기」는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1975년 자영업자였던 남편 호영진이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옥바라지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쓴 작품이다. 이듬해에 ‘개인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고 검찰측의 입장만 밝혀서 문제가 되었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작품 발표 이후에 모종의 말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하튼 삼십여 년에 걸쳐 백여 편의작품을 발표한 박완서의 작품 가운데서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그가 등단하여 가장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무렵에 씌어졌고, 경험한 것들의 기억을 미세한 곳까지 찾아내어 재현하는 작가의 창작 특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 "행복의 질서가 지금 이곳에서 끝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되풀이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비판적 현실 파악의 단단함이 엿보"인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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