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한 어떤 확신도 없이 맞은 오늘의 마흔은 미혹이다. 내경험에 비쳐보자면, 마흔은 분명 어른이 아니다. 공자시대에 마흔은 어른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마흔에 이른 사람들은 철이 나지 않은 그저 늙은 소년이다. 마흔의 소년 소녀들. 그들은 확신도, 삶의 목적도모호한 채 여전히 흔들린다. 마흔이 불안한 건 그 때문이다. 왜 그럴까? 삶을 통찰하는 지혜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 대신에 실용을 따르고 익혔다. 한마디로 천박한 실용주의이다. 돈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배워온 것이다. 정말로 돈만 있다고잘 살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문제는 지혜이다. 지혜를 배우지못한 채 맞은 마흔은 미혹이고 재앙이다.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림도 흔들림 나름이다. 마흔, 그들은 방황한다.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 P29
공자는 낚시는 했지만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지는 않았고, 새를 활로 쏘아 잡기는 했지만 둥지에서 잠자는 새를 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물을 써서 고기를 잡으려고 한다. 둥지에서알을 품고 있는 새라도 잡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더 많은 물고기를잡고 더 많은 새를 잡는 것을 더 훌륭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공자는 왜 굳이 낚시대를 드리워 물고기를 낚고 둥지에 있는 새는 잡지 않았을까? 공자는 사람이 인애 없이 사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세상이 인애를 업신여기고 물질을 숭상하면서 날이 갈수록 살기가 팍팍해졌다. 탐욕은 세상을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으로 만든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인, 의, 예지, 신이 펼쳐지면 세상이라는 사막을 초원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들은 다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관련이 있다. 더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세상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 P30
행복은 거창한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사소함에서 온다. 햇빛 한 줄기, 메아리, 솔숲의 향기, 물의 반짝임, 불쑥 솟은 모란의 붉은 움, 아이들이 까르륵 웃는 소리, 이웃의 친절함, 안 먹고 안 쓰며 평생모은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할머니들, 여름 새벽의 차가운 공기들, 연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 반딧불이들, 소나기 뒤 앞산 골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새벽 수련꽃, 새벽에 배달된 신문, 방금 구워낸 크로아상,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황금빛 맥주 첫 잔, 제주도의 비자나무 숲길, 앵두열매, 레몬향, 따뜻한 크림스파게티, 구운 양고기, 창가에 울리는 편종소리, 재즈의 다정하고 슬픈 선율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 함흥냉면, 베트남 쌀국수, 팥빙수, 다정한 키스의 순간들, 작은 선물, 풀밭 위를 날아가는 꼬리에 점박이무늬가 선명한 나비....... 이 모든 것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대개는 돈 없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이것들은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일상을 둘러보라. 그리고 그것들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어라. - P50
고독은 그 본질에서 혼자 있는 능력이다. 혼자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 (《고독의 위로》) 창의성의 발현과 개인 자아의 발달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혼자 있는 능력 속에서 길러진다. 고요는 혼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고요 속에서 사람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들과 차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의 분별이 나타난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그런 분별이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 탓이다. 활달한 소통은 인생의 성공으로, 고립은 그 반대로 비치기 쉽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세상에 잘 적응함은 심리적인 불완전함의 결과물이다. 반면에 자발적 고독은 욕망과 두려움의 지배에서벗어나 심리적 평형 속에서 안정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의 태도이다.
고독은 개인화 과정에서 누구나 불가피하게 겪는 경험이라는 걸 받아들이자. 사람은 고독 속에서 자기를 깊이 돌아보고 마음의 평화를얻는다. 고독은 불완전한 것이며 부적응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완전과 적응으로 가는 도약대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 P85
혼자 있어보라. 혼자 그윽함에 머물면서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일에 부지런해져 보라. 고독을 권하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만존재의 심연에 이를 수 있는 까닭이다. 고독에 처하지 않는다면, 고요도 있을 수 없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인가? "갠 날에 할 일을 미적거리다가 비를 만나게 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에 할 일을 꾸물대다가 날이개게 하지 않는다."(정약용) 갠 날에 할 일은 갠 날에, 비오는 날에 할 일은 비오는 날에 하는 것, 그것이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하되 항심을 유지할 것. 새벽이 오면 새벽에 마음을 두고, 저녁이 되면 저녁에 마음을 둘 것. 이 모든 일이 마음이 고독 속에 있을 때 가능하다. 새벽 숲속을 채우는 청아한 새소리들, 아기 웃음소리, 실내에서 저 혼자 타는 촛불, 사랑하는 이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 저물녘 만조에 이른 바다. 새해 처음으로 맞는 일출의 장엄함....... 이런 것들에 가슴이 뛰지않는다면, 이미 당신의 인생에서 봄과 아침은 지나가버렸음을 알아야한다. 봄과 아침을 헛되이 흘려보냈다면 살아 있는 게 곧 기적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없다. - P87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우리는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존재의 생물학적 인지적 형질이 미묘하게 바뀌어버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책과 그것을 읽는 사람은 항상 역동적 상호작용을 한다. "텍스트와 인생의 경험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은 양방향적이다. 우리는 인생 경험을 실어 텍스트를 이해하고 텍스트는 삶의경험을 뒤바꿔놓는다." (《책 읽는 뇌>>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뇌의 역량이 커지고 생각과 감정은 성장한다. 존재의 내적 형질이 바뀔 뿐만 아니라 내적 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책 읽기는 치유와 정화의 힘을 준다. D.H. 로렌스는 그의 시<치유>에서 이렇게 적는다. "오랜 기간의 혹독한 참회 / 삶의 과오에대한 각성, 그리고/ 오류의 끝없는 반복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우울한가? 따분한가? 자기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때마다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해 책으로 달려간다. 책 읽기는 인생의 슬픈 터널을 지나서 의식의 고양이라는 신세계로 가는 길이다. 이가을 아침에 가슴이 뛰는 것은 내가 책 속에서 사는 까닭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은 모든 책들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 P123
보르헤스는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상상했지만, 나는 우주를 한권의 책으로 상상한다. 우주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읽어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읽어갈 거대한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책이라는 낙타를 타고 우주라는 이름의 사막을 타박타박 횡단하는 중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인간의 불가피한 욕망이야말로 문명의 진화를추동해온 힘이다. 책 읽기를 그친 세계에서는 문명의 역동적인 발전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세계는 아주 빠르게 쇠퇴하고 소멸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거창한 소명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 권이나 두 권의 책을읽는 것은 거기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 P132
지금 붉은 병꽃이 한창이고 뜰에는 모란과 작약의 꽃도 만개했다. 뜰에 핀 갖가지 꽃들. 그 꽃들 위에서 잉잉대는 벌들. 꽃과 벌들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영원의 흐름 속에 있는 시간의 일부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들을 반납하러 간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더러는 누군가를 만나고, 더러는 어딘가로 움직인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나의 생각함이 아니다. 생각함이란 존재에 대한 머뭇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배고픔 앞에서 헐떡거리고 목마름 앞에서 물을 갈망하며 서 있는 나일 뿐이다. 순수의식 그 자체로 대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이다. 책은 이 순간과 순간의 나를 아름답게 한다. 순간마다 책을 수유함으로써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삶이 쓰여진다. 휘리릭 넘기며사는 삶보다는 순간의 페이지를 음미하는 삶이고 싶다. - P190
벚꽃이 피고, 모란과 작약이 만개한 이 봄날, 나는 내가 살아온 과거도 아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도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순간에 있으며, 내 자신 속으로 깊이 빠져든 존재다. 나는 나 아닌 것의 모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은 지금 이 순간 아닌 것의 모든 것이다. 나는 나로서 살 수 있는 솔직성 그 자체, 즉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는 존재의 운동 그 자체이다. 이 우주에서 먹고 자고 욕망함으로써 유일한 가능성으로 출현할 수 있는 나! 나는 삶을 소유할 수 없다. 삶 그 자체가 바로 나이고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 P191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마당 웅덩이에 술잔의 물을 부으면 겨자씨로 배를 만들어야 한다. 술잔을 띄우면 붙어버릴 것이니 물은 얕고배는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기가 깊지 않으면 대붕도 큰 날개를 띄울힘이 없다. 그러므로 구만리의 바람이 발아래에 있어야만 바람을 탈 수 있다.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막힘이 없어야만 장차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다. 장자, <소요유>, <장자> - P279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이 커다란 날개를 가진 대붕은 제 날개의 힘만으로는 날지 못한다. 대붕이 구만리 상공으로 치솟아 날기 위해서는큰바람이 있어야 한다.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작은새는 작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수 있지만 대붕은 큰바람이 일어야만날 수가 있다. 하물며 큰 인물은 어떠하랴. 대자유를 누리는 큰 인물은 타고난 바 현실 조건을 뛰어넘는 자이고, 그 현실 조건을 뛰어넘을 때 따르는 시련과 수난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대자유인도 있을 수없다. 장자의 자유, 유유자적한 삶을 이해하고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우리는 더욱 깊어져야 한다. - P279
부엌에서 노모는 간고등어를 굽고 그 비릿내와 함께 청국장을 한 상에 올린다. 청빈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조촐한 식탁이다. 아, 흰밥과 김장김치와 함께 떠먹는 청국장이 혀끝에서 아득해진다. 늦가을의 모근들은 왜 헐렁해지고, 청국장엔 왜 ‘청‘이 들어가는가. 산림욕장을 다녀오던 오후 내내 병자호란 시절 청나라 군사들이 먹었다는 청국장이 지금 내가 먹는 그 청국장과 맛이 같은가에 대한 생각으로 골똘해진다. 들에 지천으로 널린 야생초 가운데 여가 어여쁘고, 입에 들어가는 것들 중에는 청국장이 혀에 달다. 그랬으니 이 나라 상고시대 조상들이 먹었던 청국장을 먹으며 가난해도 외롭지 않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백석) 어여쁘고 달고 쓸모 있는것들과 더불어 사니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러니 나도 정녕 늦가을의 풍운아 아닌가! - P328
늦가을 저녁 부엌에서 흰밥과 청국장과 간고등어로 배를 채운 뒤홑이불 속에 몸을 뉘고 저 북쪽 마을에 언제 첫눈이 내리는가를 짚어본다. 무서리 내리고 울타리의 황국이 시든 뒤 물은 얼고 첫눈은 오는가. 머잖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어지는 산과 산을 성큼성큼 달려와미시령 천지간까지 눈보라는 자욱하게 덮게 될 것인가. 청국장은 청국장을 모르고 사랑은 사랑을 몰라본다. 눈보라치는 새벽에는 외로움에 진절머리를 치며 밀항한 남자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추위로 곱은 손을 녹이며 두고 온 처자에게 편지를 쓸 가슴이 아직도 나에겐 남아 있는가. - P329
나는 늦가을의 사람으로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늦가을에 안착한다. 영원이라는 잣대로 재면 하루는 찰나이고, 일생은열린 문 앞을 지나가는 빠른 말과 같다. 늦가을 해질녘의 고즈넉한 시간을 서성거리며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한 사람, 나와 태어난곳은 다르지만 태어난 해가 겹치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는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라고 물었다. 철학자같이 삶을 통찰한 그는 이런 핵심에 닿는다. "삶이라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느라 낭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도그마에 얽매이지 말라.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1955~2011)의 말이다. - P332
삶은 갈망에서 타오르는 것이고, 우직한 도전에서 빛나는 도약을하는 것! 갈망이 다하면 풀들은 시들고, 갈망이 다하면 숲속의 가왕포으로 군림하던 매미나 능란한 사냥꾼인 늙은 사마귀도 죽어 풀밭에나뒹군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라고 적었다. 나 역시 늦은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하고, 새벽 다섯 시에는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뉘우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늦가을이니까. - P334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아도 인간처럼 허둥거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부지런한 벌‘이나 ‘근면한 개미‘도 예외가 아니다. 그 곤충들이 일하는 모습은 부지런해보이지만, 사실은 전체의 78%의 시간을 쉬거나 빈둥거린다. 동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을 풀고 쉬는 데 사용한다. 그들이 활동하는 것은 꼭 먹이가 필요할 때뿐이다. 그밖에는 내키는 대로 게으름을 피우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제멋대로 상상하듯 권태에 빠지지는 않는다.
레기네 슈나이터, <소박한 삶>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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