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시시, 하다보니 "매우 짙고 선명하게"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시‘의 사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시퍼렇고 시뻘겋고 시커멓고 시허옜다. 팔방이었다면 시퍼렇고 시뻘겋고 시커멓고 시허옇고 시꺼멓고 싯누렇고 싯멀겋고 시뿌옜을 것이다. 온갖 시들이 모여 시뿌예진 곳, 다름 아닌 시의 한복판이었다. 한바탕 놀았는데 다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나가기는 더 힘든 거리가 바로 여기였다. 그제야 떠올랐다. 스무 개가 넘는 시의 뜻 중 첫번째는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못마땅할 때 내는 소리"라는 사실을 감탄사 시와 함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 시의 사거리에서는 헤매지 않을 도리가 없군."
오.발.단: 일기죽일기죽
오늘 발견한 단어는 ‘일기죽일기죽‘이다. 기억의 수면아래 잠자고 있다가 일기 때문에 급작스레 깨어난 단어이기도 하다. "입이나 허리 따위를 이리저리 자꾸 느 - P54
리게 움직이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인데, 말과 걸음이 빠른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동작이기도 하다. 연상은 나를 또다시 ‘이기죽이기죽‘으로 이끈다. "계속 밉살스럽게 지껄이며 짓궂게 빈정거리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뜻을 읽는 동안 묘하게 기분 나빠지는 단어다. 일기에서 일기죽일기죽으로, 일기죽일기죽에서다시 이기죽이기죽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일이삼 같아서 정겹다. "일이는 알겠고 삼은 어디 있는데?" 누가 묻는다면 ‘실기죽샐기죽‘이라는 단어를 말해주어야겠다. "물체가 자꾸 한쪽으로 천천히 조금 기울어지거나 쏠리는 모양"을 일컫는 단어다.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다. "일기, 일기죽일기죽, 이기죽이기죽, 그리고 실기죽샐기죽의 공통점은?"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는 거. 날마다, 자꾸, 계속, 조금이라도! - P55
극중 남자 선배 D는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닌 셈이다. 그가 던진 농담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비중을 낮춰주는 데 농담의 진짜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비중의 비장함을 외면하는 농담이야말로 최고의 농담일 것이다. 중요성과 중요도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틈을 내주는 농담 말이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귀중하고 요긴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수 있다. 스스로 무너지는 농담은 상대에게 다가가겠다는적극적인 신호다. 그가 펼쳐 보이는 빈틈을 흔흔히 온기로채워주고 싶어진다. 뼈 있는 농담은 상대의 빈틈에 정확히명중한다. 농담을 듣는 사람은 웃으면서도 뜨끔해졌음을부인할 수 없다. 뼈 있는 농담을 듣고 "나는 치킨도 순살로만 먹는데!"라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둘은 격의 없는 ‘농담 관계‘가 된다. 이처럼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농담도 있다.
농담으로 인해 삶의 농담도 변한다. 지루한 일상에 던져진 날카로운 농담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바쁜 삶에던져진 농담은 숨을 고르게 한다. 농담을 딛고 기지개를 켜 - P61
거나 농담에 기대 설핏 옷을 수도 있다. 농담을 징검돌 삼아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갈 수도 있다. 농담이었을 뿐인데, 돌아보니 농담이 농담으로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 있는농담으로 내 안에 자리잡은 것이다. 그럴 때 농담은 꼭 진담같다. 확실히 나는 농담을 사랑한다.
오. 발. 단: 거시기
오늘 발견한 단어는 ‘거시기‘다. 거시기는 살아 계실 적 아빠가 즐겨 쓰던 단어이기도 하다.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라는 뜻에 걸맞게, 아빠는 해마다 더 자주 거시기를 찾았다. 눈치 게임을 하듯, 스무고개를 넘듯, 이심전심을 확인하듯, 간혹 어떤 거시기는 바로 알아맞힐 수 있었지만, 대다수 거시기는 내게 너무 멀었다. 아빠가 아는 사람을 내가 다 알지는 못했고 아빠가 가리키는 사물은 눈앞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독심술을 발휘하듯 미간을 찌푸린 채 ‘거시기‘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으면 아빠가 말했다. "이 상황이 참 거시기하 - P62
네?" 어쩌면 작년 이맘때 출간된 내 여섯번째 시집 없음의 대명사는 별별 거시기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P63
인터뷰
수경 누나의 첫 메일을 받은 것은 2011년 11월 26일 금요일이었다. 새벽 네시오십오분에 온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은아, 불면증이 나의 징글징글한 벗이라 이 시간에도 나는 깨어 있네." 메일을 다 읽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독일 뮌스터의 새벽을 떠올렸다. 거기도 춥겠지, 스산하겠지, 중얼거리며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말의 명증과 말의 허위를 우리, 보듬자." 이듬해인 2012년 5월 12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저녁 일곱시 사십분에 독일에서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은아, 엘 그레코의 그림이 전시되는 뒤셀도르프에서 우리 은이가 이 무참한 색의 축제를 보면 무슨말을 할까 생각했다." 한 달쯤 전 내 첫 산문집인 『너랑 나랑 노랑이 나왔는데, 고맙게도 책의 추천사를 써준 누나였다. 메일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오래 사유하자." - P89
허수경‘이라고 쓴다. 조금 있다가 "허수경"이라고 발음해본다. 쓸 때는 그저 먹먹하던 것이 발음하니 목울대까지 가득차오른다. 액체에 가까운 마음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각각의 마음들이 돌고 돌아 미안함으로 모인다. 누나 생전에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많았다. 이제는 하고 싶었던 말, 꼭 해야 했을 말이 되었다.
지난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이 운명했다. 소식을 접한 많은 이가 슬퍼했다. 공중으로 손을 뻗기도 했다. 뭐라도 잡을 것이 없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밤새 허수경의 시집을 읽었다. 웃고 있는 시들도 슬펐다. 울고 있는 시들은 통곡으로 다가왔다.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엇보다 누나는 거기에 잘 있을까. - P90
2011년, 허수경은 한국을 두 번 찾았다. 연초에 다섯번째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들고 고국을 찾았던 그는 연말에 장편소설 「박하」 출간 시기에 발맞춰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모르긴 몰라도 십 년 동안 어지간히 그리웠을것이다. 돌아와서 여전한 것과 사뭇 달라진 것, 완전히 변한것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전의 마지막 방문이 될 거라는 사실을 감히 예감할 수 있었을까.
그리움이란 것은 한없이 어렴풋하고 아슴아슴하다가도, 북받쳐오르면 쉽게 진정시키기 어렵다.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이 퍼뜩 떠올라 심신을 단단히 옥죄는 것처럼, 그리움은 한번 고개를 들면 걷잡을 수 없이 우리를 삼키려든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리움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물리적으로 뗄 수도 없다. 그리움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지금 그리움을 계속하는 중이다.
처음 허수경을 만나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부터 그의 두 눈에는 그리움이 그렁그렁 들어차 있었다. 그가 - P91
활짝 웃을 때 속으로는 꺼이꺼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보는 사람이 뭉글할 정도로 두 눈이 투명했으므로, 그에게 다가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숭늉처럼 푸근하고 따뜻했다. 그저 약간의 너스레면 충분했다. 마음에 담은 이들을 정성스레 보듬고 도닥이는 게 바로 허수경이었다. 그 앞에선 절로 "폐병쟁이 내 사내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나 "낯익은 당신"(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이 되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불가항력적으로 애틋해졌다. 불가능하게 애처로워졌다. 그때마다맵싸한 바람이 불어왔다. 2018년 가을, 그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코끝이 시큰하다. 아리다.
허수경이 머물던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여섯 번이나 그를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첫 만남 때 ‘선생님‘이었던 허수경은다음에는 자연스레 ‘선배님‘이 되었고, 세번째 마주할 때 나는 그를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던 것처럼, 그 호칭은 불쑥 튀어나왔다. - P92
낯설어지면서 갱신되는 어떤 것을 생각하니 근사하다.
"모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적인 모든 상황에서 낯설어지게 될 때, 어떻게든 새로운 형식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새로운 예술형식은 한인간의 형식이 변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형식이 낡아졌다고 느끼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갱신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때가 닥쳤을 때, 나는 가장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거고."
결국 누나만의 시를 발견하기 위해, 누나만의 시를 쓰기위해 떠난 셈이네.
"한 사람의 재능은, 슬프게도 그것을 가진 사람이 다 알수 있는 건 아니야. 그걸 잘 모르니 우리는 참, 우릴 쉽게쓰는 것 같아. 나는 시라는 문명의 한 장르에 목숨을 건대목이 있어. 그래서 떠났지. 정처 없어졌지. 그래서인지 인생의 어떤 순간을 시에 거는 사람을 보면 좋으면서도 쓸쓸하다." - P97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 일부를 읽으며 약력 보고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개나리 노란 한숨, 저 바람이 스치며 간다.
노란 한숨이 아직은 작게 내려오는 봄빛 아래에서
바람이 스친, 아린 자리를 쓰다듬으며 허공에 머물러 있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 P114
오. 발. 단: 새봄
오늘 발견한 단어는 ‘새봄‘이다. 수경 누나는 봄이라고말한 뒤, 꼭 새봄임을 덧붙이곤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새봄은 있지만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은 없다는 사실을. 새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번째는 "겨울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봄", 두번째는 "새로운 힘이 생기거나 희망이 가득 찬 시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가 처음 봄이라고 말할 때는 새봄의 첫번째 뜻으로, 다음에 힘주어 말할 때는 새봄의 두번째 뜻으로 얘기했던것 같다. 겨울을 보내고 첫봄을 맞이할 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양손에 하나씩 사이좋게 쥐고 시작하라고, 오늘은 국제 간호사의 날, 보살피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힘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일 것이다. - P115
오. 발. 단: 비거스렁이
오늘 발견한 단어는 ‘비거스렁이‘다.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가 오기 전의 날씨와 비가 온 후의 날씨 사이에 "거스르다"가 있는 셈이다. ‘비거스렁이하다‘라는 동사로활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일상에서 "한바탕 쏟아붓더니 비거스렁이하네"처럼 이 단어를 구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는 십중팔구 "비거 뭐?"라고 되물을것이다. 몰라서 쓰는 시처럼, 알아도 쓰지 못하는 단어가 있다. - P122
봄과 어울리는 동사를 떠올린다. 열다, 싹트다, 자라다, 시작하다. 피어나다..... 앞 문장에서 사용한 ‘떠올리다‘ 또한 봄과 어울리는 동사다. 봄의 생장력 앞에서 청춘을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으니까. 결심이 비로소 움직임으로 ㅇ어지는 시기가 어쩌면 봄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봄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시작을 응원하겠다는 각별한 마음을 건네는것이기도 하다. 봄이 오면 으레 새기는 문장이 있다. 꽃이든 사람이든, 지기 전에 먼저 피어야 한다는 것. 봄에 선물하기 좋은 꽃을 살피는 일은 피자고, 함께 피어나자고 미리속삭이는 일이기도 하다. - P130
오. 발. 단: 발밤발밤
오늘 발견한 단어는 ‘발밤발밤‘이다. 상자를 든 아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단어다. 발밤발밤은 "한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 ‘발맘발맘‘도 있다. 발밤발밤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하다. 바람을 일으키는 동작보다는 바람 쐬는 자세와 더 어울리고, 도착을 목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몸가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밤‘이 두 번들어가 있어서일까. 가로등을 벗 삼아 발밤발밤 산책을 나설 때 해묵은 감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만큼 밤이 더 어두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P254
그런데 감각적‘이라는 말이 늘 긍정적으로만 사용될까? 그것은 세련되고 말끔한 무언가를 가리킬 때만 사용되는것일까. 저 단어가 자극성이나 도발성을, 나아가 ‘생각 없음‘ 이나 사려 깊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수용되는 어떤 단어가,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란과 공포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맞닥뜨리는 온갖 감각들을 떠올려보라. 그때의 감각은 의도치 않게 열리는 것이다. 개중에는 기분 좋은 감각도 있지만 나를 당황시키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감각은 종종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감각적인 감각, 감각을 자극하는 감각. 별수 없이 나는 감각으로 되돌아간다.
감각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오감과 맞닿아 있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지는 데서 찾아오는 느낌. 찾아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종의 느낌이 감각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각의 세계 - P258
에 ‘그냥‘은 없다. 감각은 주저하는 법이 없다. 받아들이는데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그것을 나만의 어휘로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화되지 않은 감각은 아직반쯤은 눈을 감고 있는 셈이다.
알아차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린 것을 내 말로 붙잡아두는 것. 이것이 감각 작용이다. 감각은 흩뿌려져 있다가 어느 순간 발각된다. 발각된것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것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이 순간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 ‘잊다‘와 ‘잃다‘가 흔히 ‘버리다‘와 결합해 ‘잊어버리다‘와 ‘잃어버리다‘로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잊지 않고잃지 않는 마음은, 실은 ‘버리지 않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모은다. 모은 것을 가지고 유용하거나 무용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 P259
봄이 ‘해맑아지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흐드러지는 계절이다. 가을이 ‘흐무러지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허물어지는계절이다. ‘넘쳐흐르는‘ 게 기백이라면 ‘흘러넘치는 것은 기운이다. 넘칠락 말락, 흐를락 말락 하는 것, ‘희망‘이다.
‘하염없음‘과 ‘하릴없음‘은 없을 때만 발화하는 단어다. 없음을 ‘후회‘하는 것은 ‘한탄‘이다. 없음을 다시 있게 하는 것, ‘함께‘다. - P284
오. 발.단: 햇덧
오늘 발견한 단어는 ‘햇덧‘이다. 햇덧은 "해가 지는 짧은동안" 혹은 "일하는 데에 해가 주는 혜택"을 뜻하는 단어다. 햇덧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었다. 해가 지고나면 하루도 저문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밤과 친해지면서 더이상 햇덧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으나 글쓰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햇덧을 보고 있다. 글이 안 풀리면 밖에 나가 햇덧에 의지해 걷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햇덧은 꼭 덧신 같다. 햇덧 아래서 걷다보면 어느덧 다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햇덧은 덧나지 않는다. 해가 가도 해는 뜨니까. - P285
오.발.단: 잠비
오늘 발견한 단어는 ‘잠비‘다. 잠비란 "여름에 일을 쉬고 낮잠을 잘 수 있게 하는 비라는 뜻으로, 여름비를 이르는 말이다. 여름일을 하던 도중 소낙비가 내려 잠을 청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단잠이고 꿀잠일 것이다. 그때내리는 비가 단비고 잠비일 것이다. 봄비가 가고 잠비가 온다. 5월이 가고 6월이 온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시절이 가고 시절이 온다. 시의적절하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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