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며, 복가시나무, 가시나무, 쥐똥나무, 황철나무 등 잡목이울창한 까치산 후미진 계곡 속으로 끌려간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슬픔과 분노가 범벅된 아버지의 울부짖음만이 산울림처럼 쩌렁쩌렁 울려왔다.
월곡리 사람들은 아무도 아버지의 죽음을 말리지 않았다. 아이들과 노인들까지도 마을 앞 돈들막 위에 모여 서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표정하게, 까치산 계곡에서 울려오는 아버지의 울부짖음을 심장에 송곳질하는 아픔을 참으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끌고 간 청년들보다도 아버지의 죽음을 말릴 생각은 않고 무표정하게 구경만 하고 있는 이들 마을 사람들이 더 원망스러웠다.
미루나무에 묶인 채 마을 사람들을 향해 온몸의 힘을 쥐어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서울에서 돌아온 부면장네 도련님과 아버지가 부면장 집으로 오기 전 오랫동안 머슴을 살았던 대추나무집 최 주사어른과 통샘거리 박생원 어른도 불러보고, 땅뺏기 놀이며 자치기, 발들고 밀어내기 놀이 등에 가끔 나를 끼워주곤 했던 월곡리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 P231

그러나 내 울부짖음은 까치산 잡목숲 속에서 점점 희미하게 산울림이 되어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외로움과 고통을 주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를 끌고 간 청년들은 얼마 뒤에 찬란한 가을 햇살을 등지고 개선장군처럼 까치산에서 내려왔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돈들막으로 가서, 부면장 어른 부자와 이장 어른을 죽인 빨갱이의 앞잡이를 처치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물레방앗간 옆 째보네 주막으로 몰려가 술을 퍼마셨다.
아무도 미루나무에 묶여 있는 나를 끌러주지 않았다.
나는 미루나무에 묶인 채 해가 높이 떠오를수록 연리초꽃처럼 빨강보랏빛으로 변하는 까치산만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어디쯤 죽어 있을까. 먼 시선으로 잡목숲을 헤집고 있는 것이었다. - P252

산골의 짧은 가을 해가 미끄러지듯 할미산 너머로 떨어지고, 월곡리사람들의 마음처럼 음산한 어둠이, 대지에서부터 까치산 목을 조르기라도 하는 듯 꾸역꾸역 디밀고 올라가서야, 남편도 없이 곰배팔이‘ 아들과함께 사는 째보네 주막아줌마가 미루나무에 묶인 나를 풀어주었다.
그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아버지를 찾으러 까치산에 갈 수가 없었다.
언젠가 꼴을 베러 가서 낫을 부러뜨리고 돌아와 부면장네 할아버지한테, 눈에서 마른 번갯불이 튀도록 호되게 꾸중을 듣고 쫓겨났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어슬렁어슬렁 돌아왔을 때처럼. 나는 온몸의 물기가•좍 빠져 휘주근한 몰골로 아버지도 없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부면장 집에서는 나를 안으로 들여넣어주지 않았다. 은혜를 모르는 개만도•못한 살인자의 아들을 거두기 싫다면서 밖으로 내쫓고 대문을 걸어버렸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는 그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이문구와 내가 어느 술 취한 밤에 손님이 다 가버린 목로술집에 앉아 ‘글쟁이란 천업이다‘ 또는 ‘이담에 다 때려치우고 풍 맞아 손 떨릴 무렵에 송기원이나 이시영이나 아랫것들이 찾아오면 시치미 떼고, 이들 여직도 문학 같은 거 허구 댕기냐?" 해주고 싶다던 농담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스스로 ‘글동네와 거리두기‘를 오랜 기간 선택했던 때가 있어서 이러한 내면을 좀 아는 척하고싶다. ‘문학‘은 목숨 바쳐서 할 건 아니다. 글이란 언제나 때려치울 수있고 다시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그리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내색 않고 참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생업을 바꾸고 모른 척하는 일 또한 보통 내공으로는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형편이 괜찮다면 그냥 은거하여 가만히 앉아 책 읽고, 음악 듣고, 징징대거나 시달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늙어가는 것 또한 복 받은 팔자다. - P188

그는 언제나 ‘열외‘에 서서 어떤 작가도 다가서지 않았던 ‘독특한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표현은 창녀, 때밀이.
펌프, 개백정, 호스티스, 도둑, 알코올중독자 등의 등장인물들도 그랬지만 작가가 어떠한 윤리적 선택이나 제시라든가 판단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이야깃거리를 툭 내던지고 말 뿐이라는 데서 독특하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최서해의 소설이 극단적이고 비참한 삶의 장면들을 헤집어 보여주는 것과 어떤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조선작의 소설들은 같은 장면인데도 지나치게 비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묘한 활기와 낙천적 분위기로 흘러간다. 어떤 평자는 ‘소재주의의 위험‘
과 ‘줄거리 위주의 서술‘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를 ‘풍자‘와
‘체험의 우화적 처리‘로 보았다. 이를테면 버스 차장을 하다가 한길에떨어져 차에 치여 외팔이가 되고 창녀로 전락한 ‘영자‘의 이야기도 작가의 체험에서 변형된 이야기였다. 그 무렵에 김승옥이 시나리오로 각색해서 「영자의 전성시대」를 영화화한다고 조선작과 어울려 다닐 적에 조선작이 내게 실토한 적이 있다. ‘영자‘의 실제 모델이 있다는 것이다. - P189

조선작의 단편소설 「성벽」은 197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당시 서울 변두리에 번성했던 판자촌과 일대의 부랑자들을 그리고있는데,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더럽고 추잡한 일상이 무슨 놀이라도 벌여놓은 것처럼 활기차고 시끌벅적하다. 여기서 지문과 대화에 걸핏하면 나오는 은어나 패담의 사용은 이른바 ‘자기 계급‘만의 언어로써 서로의 동질감과 다른 자들과의 구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소리와 패담은 세상에서 쫓겨났거나 소외된 징표로서가 아니라 바로 이곳이 저들만의 독립된 보금자리임을 주장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보통시민들에게는 일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하는 불행의 순간을 연거푸 당할 적에도 상소리 한마디 날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딴청을 부린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하층민을 그리는 문체가 기묘한 활기와 낙천적분위기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밤마다 - P190

술타령으로 늘어졌고, 가출해버린 누나를 찾아다니다 쩔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가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신나게 악을 쓰며 ‘둑방동네아이들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노래‘를 불러댄다.

청계천 다리 밑에, 따라라라 라라라라
개떡 같은 집을 짓고, 따라라라 라라라라
귀신 같은 마누라와ㅡ
쥐약 먹고 죽고 싶네요ㅡ - P191

나는 개도둑인 아버지와 공장에 다니는 누나와 둑방동네에 산다. 누나는 개도둑질과 술로 나날을 보내는 아버지를 못 견뎌 가출하고 아버지는 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되어버린다. ‘나‘는 탱보네 자전거포에서 일해주며 아버지를 수발하다가, 누나가 사창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 개서방은 개를 잡아다 불에 그슬리곤 하던 둑방위의 모래밭까지 기어가 죽는다. 아침까지 아버지 시체는 거기 그대로 버려져 있었는데 동네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공사가 시작된다. 내일이면 청량리에서 제천 가는 고속전철이 달리게 되는데 그 개통식에 ‘아주 높은 사람‘이 타고 둑방동네의 건널목을 지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더럽고 추잡하며 헐벗은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동네가 그런 어른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며 어디선가 인부들이 까맣게몰려들어 삽시간에 건널목을 중심으로 양편에 높다란 합판 담장을 친다. 공사중에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되지만 인부들은 재수 옴 붙었다며세 번씩 침을 뱉고 모래를 깊이 파고 그 속에 묻어버린다. 저녁 무렵이되자 건널목에서 바라보이는 동네는 완전히 가려지고, 그들로서는 이 - P191

제까지 가져본 적이 없는 그네들끼리의 정다운 울타리를 얻은 셈이 되었다.
인부들은 밤까지 그 높은 성벽에 줄을 맞춰 전등불을 밝히고 합판 위에 페인트를 칠한다. 구린내를 풍기며 언제나 도도하게 괴어 있던 냇물에 썩은 널빤지와 녹슨 함석이나 찢어진 루핑 따위로 연이어진 판잣집의 그림자가 아니라, 줄지은 전등불이 밝히고 있는, 아름다운 색깔로말끔히 도장된 아스라한 성벽이 영롱하게 떠 있다.

다시 읽어도 앞뒤 짜임새가 꼭 맞아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파리 잡아먹고 시치미를 뚝 떼는 두꺼비처럼 노련한 조선작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 P1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령마루의 까마귀

현기영


서호부락 밖, 모래바람 부는 일주도로에 사람들이 작업반별로 무더기무더기 모여앉아 인원점호를 받는다. 서호 본고장 부락민들과 이곳에 정처를 둔 노형 피난민들로 된 성담 쌓는 울력꾼들이다.
세찬 갯바람이 굵은 생소금을 낮에다 뿌리는 듯 얼얼하다. 민보단 사람 넷이 죽창을 옆구리에 낀 채 바람에 종잇장 펄럭대는 손때 묻은 공책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또 턱짓으로 대가리 수를 헤아리기도 한다. 까마귀 오순경은 저만치 떨어져서 길가 밭담 위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대고 앉아 점호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저 순경이 먼빛으로 설핏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뒷목에 칼날이 닿는 듯 썰렁한 한기가 일어나는 귀리집이다. 저번날 소까이 지역에 들어갔다 오다가 들켰을 때 저 작자는 지서로 끌고 가 닛뽄도 칼날을 뒷목에다 대고 무섭게 닦달해댔다. "이 에미나이야! 바른대로 정 대지 못하가서? 너이 서방이 있는 산이 어드메야?" - P73

길가 밭의 푸릿푸릿 싹난 청보리를 쪼아먹는 까마귀 한 마리가 순경이 앉은 밭담 위로 푸릉 날아올라 아그작아그작 방정맞게 걸어다닌다.
저 순경 옷이 어쩌면 저렇게 까마귀 날갯죽지 색을 닮았을까. 게다가 바람에 날아갈세라, 턱끈까지 내려매고 눈썹 위로 푹 눌러쓴 모자 차양도 까마귀 부리처럼 뾰족하다. 그러니 서호 본고장 사람들이나 노형 피난민들이 저 오순경을 까마귀 오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까마귀 오순경이 메고 있는 총대엔 어서 점호를 끝내라고 태극기가 조급하게 펄럭인다. 흰 광목천 바탕에 청홍 색깔이 아주 뚜렷하다. 새것인 모양이다. 며칠 전만 해도 일본기 히노마루 붉은 원의 반쪽에다 검은 먹칠 바르고 네 귀엔 짝을 그려넣어 만든 헐어빠진 기를 달고나오더니 어느새 새걸로 개비했나? 진작 그럴 거지. 섬사람들이 뒷전에서 얼마나 쑤군쑤군 욕을 했는데. "물건 아낄 게 따로 있지, 발쎄 갈기갈기 찢어발기든가 불태워 없애부려야 마땅헌 일본기를 가지고 대한민국기를 맹글다니, 저것들은 밸도 소가지도 없는가?" "아이고, 쟈이들이 어떤 것들이라고 속창지를 차릴 것고 일본놈 치질 똥고망 핥으며해먹던 것들인디. 같은 섬 동포 갑죽 벗기기를 흉년에 송깃대 벗기듯하던 것들이 새나라 경관 노릇을 하고 있으니, 오죽헐 거여? 일본기로
태극기를 맹그는 거나 일본순사 출신을 대한민국 경찰로 맹그는 거나
매한가지가 아니냔 말이여!" - P74

칼칼한 모래바람에 휩싸인 채 잠시 길을 따라 걷다가 보리밭으로 들어선다. 말이 보리밭이지 한 달 넘게 하루에 두 번씩 울력꾼들이 왔다갔다하는 통에 밭 한가운데로 아주 번듯한 신작로가 나버렸다. 가슴높이로 둘러쳐져 있던 밭담이란 밭담은 죄다 허물어다 성 쌓는 데 써버려서 이 신작로는 아무 거칠 것 없이 쭉 뻗어나가 있다.
울력꾼들은 이제 성담을 끼고 도령마루 
쪽으로 걸어간다. 어른 키의 두 배 높이는 실히 됨직한 성담을 올려다보고, 또 성담 따라 끝간데까지 눈길을 보내어, 성이 멀리 도령마루 위로 가물가물 기어오르는 모양을 바라보면서 귀리집은 새삼 놀란다. 한 달 새에 저렇게 많이 일을 했나? 고생도 되게 하긴 했지. 손끝이 닳아 조막손이 되는가 싶었지. 특히 왼손은 흉측하기가 말이 아니다. 한 번 찍힌 돌에 검지는 손톱이 빠지고 중지는 가운데 뼈마디에 흉한 혹이 생겼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지긋지긋한 역사가 모두 끝난단다. 이제는 설마 울력 나오라는 말이 다시는 없겠지. - P75

바람결이 꽤 차다. 밭 경계선마다 둘러쳐져 바람막이가 되던 밭담이 죄다 없어졌으니 바람은 아무 거칠 것 없이 마구 휙휙 불어제친다. 귀리집은 바람이 불어오는 왼편 귀뺨을 머릿수건으로 잘 단도리한다. 등에 진 마른 솔가지 짐이 바람에 부스럭거린다.
울력꾼들은 여편네들과 열두서너 살짜리 어린것들이 대부분이고 어른 남자라곤 벌초한 봉분처럼 머리가 민둥한 중늙은이들이고 젊은축들은 별반 보이지 않는다. 개중에는 파뿌리 머리칼을 정수리에 옹쳐맨 상투짜리 일흔 넘어 뵈는 노인네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별안간 쌀쌀해진 날씨에 빡빡 깎은 머리빡이 시렸던지 낡은 중절모나 도리우찌, 개가죽감투, 또 하도 헐어서 죽은 까마귀 날갯죽지같이 몰골이 흉한 남바위를쓰고 나온 노인들도 더러 있는데, 이들은 묻지 않아도 서호 본고장 사람들이 틀림없으리라. 불탄 우리 노형마을에서 소까이되어온 사람들이 어느 경황에 저런 방한모를 챙겨 가져올까 말이다. - P76

불탄 집터에 가면 그래도 타다 남은 양식이 있을 텐데..... 마을엔 아직도 양식이 있었다. 산폭도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땅속이나 작박(돌무더기) 속에다 숨겨놓은 고구마며 좁쌀 섬이 있는 것이다. 귀리집도 정지바닥에 땅을 파고 쌀독을 묻어놓고 있었다. 지척이 천리라던가.
오리 밖에 고향을 두고도 못 가는 신세가 원통하기 그지없었다. 내 것을 내가 못 먹다니! 안으면 미어질 듯 뼈가래가 앙상한 젖아기를 볼 때마다 당장이라도 노형 집터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나 온몸이 덜덜 떨리곤 했다. 밀기울범벅 먹고 젖이 나올 리가 없었다. 풀주머니 쥐어짜듯, 두 손으로 아프게 젖을 쥐어짜도 그저 젖꼭지 끝에 이슬 슴슴 맺히듯 할 뿐이었다. 젖배 곯은 아기는 노상 칭얼거렸다. 맥없이 칭얼거릴 뿐 한번 되바라지게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다. 울 힘이 없는 거였다. 거떻게 죽어가는 젖꼭지를 빨아댈 힘도 없었다. 모진 목숨딸깍딸깍 딸꾹질처럼 이어가다 끝내 죽어버린 아기…… 아기가 죽은후부터는 단 한 번도 온전히 조밥을 해먹어본 적이 없었다. 돼지사료인밀기울에다 고구마를 쑹덩쑹덩 썰어넣어 범벅을 만들어 먹는다. 범벅도 소금이 귀해 바닷물로 간을 맞춘다. - P83

이런, 내가 몹쓸 년이다. 빌어먹을 년이다. 여기서 순원이 아방을 찾다니. 그이가 이렇게 쉽사리 죽었을 리가 없지. 그러나 그게 아니다. 포개진 시체를 끌어내다가 "저걸 보게" 하고 영순이 어멍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다행히 다른 시체 밑에 들어가 있어서 까마귀 부리에 쪼이지 않은 채 온전한 얼굴, 구레나룻이 사뭇 자라얼굴을 반쯤 덮고 있지만, 그건 깔축없이 순원이 아방이다. 가슴이 터질 듯 뛴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저 구뎅이에 들어가면 후제 시첼 영영 못 찾앙(찾고) 말아......" 영순이 어멍도 초조한 목소리로 걱정한다.
"저 밭담 뒤에 숨겨야 하키여."
귀리집은 얼른 머릿수건을 풀어 시체의 얼굴을 싼다. 영순이 어멍도자기 머릿수건을 풀어서 내준다.
"까마귀가 얼굴 못 해치게 하젠 허민 더 많이 싸야 헐 거여."
둘은 시체를 맞들고 담가에 얹어놓은 다음 주위를 살핀다. 마침 까마귀 오는 이쪽을 등진 채 돌막을 깔고 앉아 도령마루 쪽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여편네들도 모두 제 일에 열중이다. 두 사람은 담가를 들고 일부러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밭담으로 향한다. 밭담 밑에 담가를 잠시놓고 다시 주위를 살핀다. 까마귀 오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앉은 채 이번엔 모자를 벗고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귀리집이 눈짓한다.
둘은 힘껏 담가를 쳐올려 시체를 담 밖으로 내던진다. - P110

이는 우리가 도심지의 사무실이나 다방에서 흔히 보았던 ‘딱새와 찍새‘ 의 활동에 대한 관찰이 일반적인 인상에서 뭔가 다른 것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동맥」도 비슷한 관점과 입장으로 그려진 작품이지만 그맘때의 장시간 노동과 혹독한 노동조건, 그리고 저임금에 갖가지 불합리한 착취의 현실을 배경으로 깔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공이결국은 어떻게 타락의 시궁창으로 떨어지게 되는가를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짧지만 일화가 대단히 많은 이 단편에서 작가는 못다 한 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지옥도처럼 묘사된 서울 거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에게도 하소할 수 없는 세 소녀들만의 따뜻한 연대감은 이른 봄의 들풀처럼 굳세지만 씁쓸하다. 그리고 그것이 임금이든 이자든 화대가 되었거나 수술비가 되었거나 작가의 정확하고 꼼꼼한 돈계산에 대하여 경탄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본의 냉혹한 그늘을 힐끗 일별하게 되는 것이다. - P154

성벽

조선작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우리 둑방동네에서 개서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개를 훔치고, 훔친 개를 잡아서 보신탕집에 넘기는 일로 우리 세 식구(아버지와 나, 그리고 열여덟 살짜리 누나 이렇게 세 식구다)의생계를 삼아온 아버지니까, 그런 별명이 전혀 연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다가 아버지에게는 개하고 그렇고 그런 일까지 있었다는 알쏭달쏭한 소문도 나돌고 있으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개서방이라는 이름은 꼭 맞아떨어지는 별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개하고 진짜로 그따위 엉터리없는 장난을 저질렀는지 어쨌는지,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소문은 우리 둑방동네에 파다하게 퍼져버려서 심지어는 나까지도 싸잡아, 저 녀석도 혹시 개의 니노지에서 생겨난 자식이 아닐지 몰라, 하고 도매금으로 몰아때리는 사람까지도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니기미, 또 그렇다 해서 저들이 나를 어쩔 것인가. - P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그만 체험기

박완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남편이 통금시간이 지나고도 안 들어올때 보통 아내들은 어떤 걱정을 할까.
대개 교통사고 아니면 으슥한 골목길에 입을 벌리고 있을지도 모를 맨홀 걱정을 하리라. 나도 이 두 가지 걱정을 번갈아 하느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고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서 통금에 걸리지 않은 게 분명해지니 더욱 앞의 두 가지 방정맞은 생각밖에 할 게 없었다.
그러나 가게(남편은 전기용품상을 하는 장사꾼이다)를 열 즈음 해서 가게에다 전화를 걸었더니 점원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어제 안 들어가셨다고요? 그럼 큰일났는데요. 실은 어제 저녁 무렵 검찰청 수사과에서 나왔다는 형사하고 같이 나가셨거든요. 잠깐이면 된다고 하면서 데리고 가길래 아마 일보고 댁으로 바로 들어가셨거니하고 댁에 연락도 안 드렸는데." - P13

나는 다시 울먹이며 애원했다. 가족은 가족의 거처를 알 권리가 있는게 아니겠느냐고 따져보기도 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따져요. 따지길. 따질데가 따로 있지. 썩 비켜나지 못해요."
나는 초췌한 몰골로 처음부터 그에게 저자세로 나온 걸 후회했다. 몇호 검사실에 볼일이 있다든가, 당당한 얼굴과 당당한 용무를 가진 사람은 주민등록증만 보관시키고 수월하게 통과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수위는 젊고 토실토실한 귀여운 얼굴이었으나 눈빛만은 특이했다. 자기가 일단 죄인의 가족이라고 단정한 사람이면 단박 걸레쪽처럼 비참하게 주눅들게 할 수 있는 섬뜩한 무엇이 있었다.
나는 유월의 뙤약볕 아래 후끈후끈 악랄한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검찰청 건물과 수위에게 잔뜩 주눅이 든 채 지독한 절망을 느꼈다.
그곳엔 맨 주눅들린 여편네들 천지였다. 피의자 대기실 주변의 맨땅에 뙤약볕을 무릅쓰고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는 초라한 여편네들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뙤약볕에 생기와 수분은 다 증발해버리고 마지막 남아 있는 사람의 가장 흉한 찌꺼기처럼 보였다. - P15

이런 여편네들이 어디서 피의자를 실은 버스가 온다든가 대기실에서굴비 두름처럼 묶은 피의자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든가, 아무튼 푸른 수의자락만 흘긋 비쳤다 하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기발랄해지면서 민첩하게 그곳으로 엉겨들면서 힘차게 손짓도 하고 새된 소리로 악도 썼다.
그럴 때마다 교도관이나 사복 차림의 감시꾼들의 구박은 혹독했다. 반말지거리로 욕설을 퍼부으면서 짐승 몰듯이 내몰았고 여편네들 역시 - P15

억세고 줄기차게 이 구박에 맞섰다. 그럴 때 여편네들은 죽은 듯이 늘어져 있을 때와는 또다른 의미로 사람 같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사람의 얼굴에서 그렇게 완전히 수치심이 제거되고절망과 독기로만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여편네들이 피의자의 가족, 그러니까 아내나 어머니나 누이라고 알아차렸고, 푸른 수의를 보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혐오감을 느꼈고, 이어서 깜짝 놀라면서 나 역시 피의자의 아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떡하면 남편을 이 끔찍한 고장에서 빼낼 수가 있을까. 문득 섬광처럼 이럴 때 빽이라는게 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동시에 지금 당장생각이 나지 않는다뿐이지 나에게는 빽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내 나이를 합하면 거의 백세, 사람이 백 년씩 살면서 사귄 연줄 중 그래 이럴 때 돌봐줄 유력한 빽줄 하나가 없대서야 그게 말이 될까. 꼭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뿐일 것이다.
나는 그 생각나지 않는 걸 빠르게 생각해내려고 머리를 쥐어뜯다시피 조바심했다. 큰집, 작은집, 친정집, 사돈집, 외갓집, 이웃집, 동창생.....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한꺼번에 많이 나와 남편이 아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중에서 든든한 빽이 돼줄 만한 사람을 골라잡으려 했지만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생전 아무하고도 안 사귀고 산 것처럼 떠오르는 그럴 만한 얼굴이 없었다. - P16

"알아요. 알아. 누가 당장 교제비 달랬나. 본격적인 비용은 사건이 검사한테 넘어가고 나서 드는 거고, 에에또, 사건은 아직 우리 수사과에걸려 있으니까 서류는 내가 알아서 잘 꾸밀 테고, 우리 과장님 식사 대접할 정도의 비용이야 일간 어떻게 마련하실 수 있겠지?"
나는 그렇도록 해보겠노라고 했다. 그는 일어서면서 한마디 했다.
"김선생님 그 양반, 보아하니 법 없어도 살 양반이던데, 참 안됐단 말야."
그 소리가 나에겐 김기철이 그 머저리 우리 밥이더라 하는 소리처럼들렸다.
나는 내 남편이 권주임 같은 남자의 심문에 걸려들어 도저히 자기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법이라면 달라는 것 없이 두렵고 싫어서 자기 양심에 걸리는 일과 법에 걸리는 일을 동일시하며 조심조심 살아온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법의 그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걸 피할 수 있는 법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실제로 죄가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총이 결코 총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며, 칼이 결코 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듯이 법이 결코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의편일 수는 없을 것 같은 깨달음이 왔다. 뭔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 - P27

았고 남편은 쉬이 풀려날 것 같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미칠 것 같았다. 억울하다는 느낌이 목구멍까지 차니까 울음도 안 나왔다.
나는 남편의 초저녁 코 고는 소리와 새벽녘의 줄담배를 싫어하고 있을 터였다. 그것 때문에 짜증도 많이 내고 늘 침실을 따로 쓰기를 벼르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남편이 없고 보니 내가 그 코 고는 소리와 줄담배에 얼마나 깊이 길들여졌었나, 아니 그것들을 얼마나 좋아했었나를알 것 같았다. 그게 없는 곳에서 내 안면은 아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한때 나는 작가랍시고 언론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문제로 제법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진 적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하고보니 세상 하고많은 지붕 밑, 어느 지붕 밑에고 다 계집 서방이 만나 자식 낳고 사는게 사람 사는 기본형태라면 서방은 저녁에 계집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계집은 서방을 맞아 바가지 긁을 자유만 있으면 됐지 그 이상의 자유가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 P28

창구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길게 늘이고 줄을 서 있었고, 긴 폭이 얽히고 설켜 자기가 원하는 창구의 줄의 끝을 찾는 것만도 수월치 않았다.
면회 신청하는 줄, 신청서하고 번호표하고 바꾸는 줄, 번호 부르기를 기다리는 서너 시간 내지 네댓 시간, 번호 부르고 나서 구치소 정문 앞에서 또 줄서기, 주민등록증과 번호표를 교환하고 들어선 어딘지 모르게 딴 세상같이 서러운 구치소 안마당, 어둡고 음산한 대기실의 발돋움하고 올라서야 손이 닿는 높은 창구, 그 창구로 신청서를 디밀고 다시또 번호 부르기를 기다리는 기진맥진한 것도 같고 악에 받친 것도 같은 이삼십 분...... 이렇게 무려 대여섯 시간도 넘어 걸려서 면회실에 들어가니 철망이 든 두터운 유리 너머에 번호가 붙은 푸른 수의의 남편이있었다. 그런 옷은 형이 확정된 후에나 입히는 건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앞을 분간 못하게 눈물이 났다.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사이에 면회시간은 끝났다. - P29

옥바라지하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속도 수속이지만, 그런 수속절차를 거치면서 수없이 부딪쳐야 하는 해당 직원의 철저한 불친절과 경멸과 냉대였다. 그건 사람다운 오기가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면 견디기 어려운 천시요 구박이었다.
그렇다고 K지청의 수위들처럼 돈을 받아가며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친절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지쳐 있었다. 죄짓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보잘것없는 족속들의 뒤치다꺼리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넌더리가 쌓이고 쌓이니까 대인관계에서 사람 개개인에 대한 이해나 보살핌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기계처럼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 말 붙여볼 수 없는 기계 같은 냉혹성은 어떤 적극적인 구박보다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았다가는 단박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되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손해를 보게 마련이었다. - P31

나도 매일매일 주눅이 들면서 고분고분 길들여졌다. 나는 그전까지도 누구에게나 겸손했다. 행상이나 거지에게까지도 상냥하고 공손하게대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겸손이 아니라 나 역시 어떤 세도가나 권력자에게도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내 나름의오만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매일 아침 면회 갈 때마다 서대문 못 미쳐 광화문서부터 내 오기를 달래야 했다. 오기를 달랠 때처럼 내가 얼마나 오기가 센 여잔가를 느낄 적도 없었다. 내 온몸에 가시처럼 돋은 오기를 부드러운 털이되게 무마시키고 나서도 모자라 아예 구더기처럼 땅을 길 각오를 했다.
면회하기 위해 내가 통과해야 하는 절차와 사람을 가시철망으로 생각하면 됐다. 가시철망치고는 땅에 낮게 드리운 가시철망이라고, 그 가시철망을 상처 입지 않고 통과하는 길은 오로지 구더기처럼 그 밑을 기는 길밖에 없다고, - P31

내가 이런 파렴치한 억울함까지를 포함한 모든 억울함을 진짜처럼 느낀 나머지 내 억울함을 가짜처럼 느꼈음은 그들이 모두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여직껏 알고 지낸 누구보다도 가난했다. 마치 억울함만을 숙명처럼 보장받고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구치소와 친해지기 전에 내 상식으로 구치소엔 살인범을 비롯한 흉악범은 물론이거니와 신문을 떠들썩하게 하는 억대의 밀수범, 억대의 도박범, 억대의 탈세범, 수회 한 고급 공무원들이 갇혀 있어야 했고, 면회 온 사람도돈을 물 쓰듯 하는 그들의 가족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와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어느 날, 누군가가 친절한 미소로써 나에게 접근해왔다.
"사모님 같은 분이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면회를 하신대서야 말이 됩니까? 오죽한 사람들이 이 짓을 합니까? 돈푼이나 있는 사람은 다 특별 면회라는 걸 이용하니 사모님도 제가 그걸 알선해드리죠. 이거면 되니까요, 이거요."
그는 다섯 손가락을 짝 펴 보였다. 그후 나는 구치소 정문 앞 주차장에 즐비한 승용차가 이런 특별 면회자 중의 또 특수층의 차라는 것도알게 됐다 - P34

강변호사는 내가 설명하는 사건 내용을 시종 비웃는 듯한, 지루한 듯한 미소로써 들었다. 다 듣고 난 그는 사건에 대한 일언반구의 반문도없이 엉뚱스럽게도 작가의 남편이 장사꾼이란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나타냈다. 아마 친구가 내가 작가라는 소리까지 해놓은 모양이다.
"거참 이상한데요. 암만해도 이상해요. 작가의 남편이 상인, 이래도이상하고, 상인의 부인이 작가, 이래도 이상하고......"
사건을 검토할 척은 안 하고, 당사자들이 이십 년 넘어를 조금도 이상해하지 않으면서 산 것을 제가 뭐라고 혼자서 이상해하기에 여념이없는가.
나는 남의 삶에 대한 그의 이런 속기스러운 호기심과 안이한 이해방법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친구의 소개도 있고 해서 그가 호기심을 제풀에 가라앉힐 때까지 참았다.
그는 저절로 직업적인 자신만만한 태도를 회복하더니 간단히 말했다.
"불기소로 해드리면 되죠?"
"네?" - P36

한편 옥바라지하면서 귀에 박이도록 들은 말, 큰집에 들어가 있는 사람 쉬이 나오고 더디 나오는 건 뒤에서 손쓰기에 달렸다는 말이 내의식에 따끔따끔 걸렸다. 나는 남편을 위해 손쓰는 일을 너무 안 하고 있었다. 돈 없는 사람들이 밑져야 본전 식으로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본다는 검사실에 가서 애원하는 일조차 나는 못했던 것이다. 그 밖에 손쓴다는 일은 다 불법적인 수회의 방법이었고, 그때는 마침 폭력범 단속과함께 공무원 부조리 단속이 한창이었다. 나는 모든 불법에 그저 겁밖에 나는 게 없었다.
결국 남편을 위해 합법적으로 손을 쓰는 길은 변호사한테 의뢰하는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변호사에게 삼십만원을 주고 사건을 맡겼다.
그러나 남편은 기소됐다. 기소된 걸 나한테 재미난 듯이 알려준 건권주임이었고, 정작 강변호사는 의뢰인이 기소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려주자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전화로 알아보더니,
"거 어떻게 그렇게 됐나. 그럼 그까짓 거 보석으로 꺼내드리지."
또 한번 힘 안들이고 큰소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위임을 취소했다.
결국 남편은 재판받았다. 쌀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밥을 훔쳐먹은 도둑놈, 주인의 옷가지를 훔쳐낸 식모, 사고 낸 운전사, 버스칸에서 싸우다가 이를 부러뜨린 폭력범, 수금한 돈을 가로챈 점원 등, 삼십여 명의조무래기 잡범들과 함께 무더기로 재판을 받았다. - P37

그러나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네" 하고 대답할밖에 없는, 사건의 표피를 건드리는 데 불과한 판사의 신문이 한 사람 앞에 두 번 내지세 번씩이나 돌아갔을까. 그런데도 워낙 피의자가 많고 보니 서너 시간은 후딱 지나갔고 곧 검사의 구형이 있었다.
나는 변호사를 취소한 걸 은근히 뉘우치고 있었는데 재판을 보면서백번 잘한 일이다 싶었다. 왜냐하면 삼십여 명 중 단 한 사람도 변호사가 딸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에게만 변호사가 딸렸더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법정에서까지 그 고약한 억울함을 맛보았을 게 아닌가.
십오일 후의 언도 공판에서 남편은 자유의 몸이 됐다.
그는 다시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돌아오게 됐고, 처음엔 그것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니 차츰 시들해지면서 나는 다시 바가지를긁게 됐다. - P38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생활의 평온이 돌아오니 다시 그전처럼 자유의 문제를 생각하는 밤까지도 돌아왔다. 어느 날이고 자유를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 좋아져서 우리 앞에 자유의 성찬이 차려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전 같으면 아마 가장 화려하고 볼품 있는 자유의 순서로 탐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하고 많은 자유가 아무리 번쩍거려도 우선 간장종지처럼 작고 소박한 자유, 억울하지 않을 자유부터 골라잡고 볼 것 같다.
억울한 느낌은 고통스럽고 고약한 깐으론 거기 동반한 비명이 너무없다. 그게 워낙 허약하고 참을성 많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일 게다.
자기나 자기 가족에 대한 편애나 근시안에서 우러나는 엄살로서의 억울함에는 그래도 소리가 있지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숙명처 - P38

럼 보장된 진짜 억울함에는 더군다나 소리가 없다. 다만 안으로 안으로삼킨 비명과 탄식이 고운 피부에 검버섯이 되어 피어나기도 하고, 독한한숨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마지막엔 원한이 되어 공기 중에 떠 있을지도 모른다.
각종 공해가스가 충만한 공기 중에 그까짓 무해무익한 원한쯤 떠 있기로서니 어떨까도 싶지만, 글쎄 원한이 인체에 정말 무해무익할까. 화학적 공해처럼 그것도 일정량이 넘으면 공해의 구실을 할지 누가 아나.
육신을 해치는 공해가 아니라 심정을 해치는 공해로서 말이다.
내 친구의 동생이 이런 병을 앓은 일이 있다. 일류 대학 나와 일류기업체에 취직해서 승진도 순조로운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는데 초기엔 세상 살맛 없는 우울증에서 시작해서 괴상한 증세를 나타냈다. 그가 딛고선 땅이 무수한 맨홀 구멍을 숨기고 있다가 그가 발만 내디디면 그 음흉한 아가리를 벌리고 그를 삼켜버릴 것 같은 황당한 환상이 그것이었다. 이런 증세가 점점 심하게 되자 직장까지 그만두고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의사는 전지요양을 권했다. 공기 좋은 데를 아무리 찾아다녀도 별 차도가 없자 마지막으로 형이 있는 미국으로까지 전지요양을 갔다. 미국에 닿자마자 그 병은 감쪽같이 완쾌되어 지금은 아주 유능한 청소부 노릇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낸다고 한다.
그 청년도 혹시 그런 공해병 환자가 아니었을까. 잠 안오는 밤, 문득그런 생각을 해본다. - P39

「조그만 체험기」는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1975년 자영업자였던 남편 호영진이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옥바라지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쓴 작품이다. 이듬해에 ‘개인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고 검찰측의 입장만 밝혀서 문제가 되었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작품 발표 이후에 모종의 말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하튼 삼십여 년에 걸쳐 백여 편의작품을 발표한 박완서의 작품 가운데서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그가 등단하여 가장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무렵에 씌어졌고, 경험한 것들의 기억을 미세한 곳까지 찾아내어 재현하는 작가의 창작 특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 "행복의 질서가 지금 이곳에서 끝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되풀이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비판적 현실 파악의 단단함이 엿보"인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게 삶일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를따돌릴 것이다. 그것을 붙잡는 또 다른 방법은 살아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꿈들은 나를 무의식의 늪에 빠뜨리는 현실보다 더 완전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뭘까? 사는 것? 아니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아는 것? 몹시도순수한 말들, 작은 크리스털 방울들. 나는 촉촉이 반짝이는 형상이 내 안에서 뒹구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은 어디 있을까? 내게 영감을 달라. 나는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있으니, 나는 본질을 기다리는 틀을 갖고 있으니, 그런데 겨우 그게 내 전부라고?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몸과 영혼을 유익케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몸과 영혼으로 나누어 써야 할까? 아니면 자기 내면의 힘을 저 바깥의 힘으로 치환해야할까?  - P107

나는 계속해서 조용히 숨을 쉬었고, 내 몸은 공중에 따스하고 반투명한 웅웅거림으로 남은 마지막 소리 속에서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은 너무 완벽해서, 나는 두렵지 않았고 무언가에 감사하지도 않았으며, 신이라는 관념에 이끌리지도 않았다. 나는 이제 죽고 싶다고, 내 안에서 해방된, 고통 이상의 무언가가 외쳤다. 이 다음에 이어질 순간은 더 낮고 공허할 터였다.
나는 위로 오르고 싶었으니, 오직 하나의 끝과도 같은 죽음만이 내리막 없는 절정을 안겨 줄 터였다. 주위의 사람들이 일어나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연약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출구로 걸어갔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