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는 행복했다.
아들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틀 헨리는 위층으로 데려가 재웠고, 아이 엄마와 아이의 여동생인 아기도 위층으로 올라갔다. 큰아이 둘은 서재에 있는 카우치 겸용 침대에 재웠다. 구석에 있는 전등 불빛이 아들에게 쏟아졌다. 그녀가 원한건 오로지 이것이었다. 이거면 되었다. 크리스의 눈동자가 투명해 보였다. 얼굴도 투명해 보였다. 회색 머리칼은 여전히 놀라웠지만 아들은 좋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족부 전문 병원에 대해,
자기 밑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와 자신이 내야 하는 보험료와 환자들의 보험에 대해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집에 세 들어 사는사람 이야기도 했는데, 지금은 누가 욕만 하면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꽥꽥거리는 앵무새를 데리고 사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친구와 같이 사는 곧 결혼할 것 같은 젊은 남자라고 했다. 아들은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 P125

날은 매우 화창했다. 어제의 구름은 완전히 사라졌고, 햇살이집안으로 환하게 비쳐들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큰 거실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만은 찬란했고, 바닷가재 부표들이 가볍게깐닥거렸다. 가재잡이 배 한 척이 바다에 나가 있었고, 나무들은만을 따라 가느다란 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 같이 큰 파도를 구경하러 레이드스테이트파크에 가기로 했다. "애들은 정말 제대로 된 바다를 구경한 적이 없거든요."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진짜 바다요. 뉴욕으로 흘러드는 형편없는 바다 말고요. 애들에게 메인 해안을 보여주고 싶어요. 여기에도 있긴 하지만" - P131

그들은 또 한번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낮이 지나갔고, 마침내 마지막 밤이 되었다. 올리브는 너무나 지쳤다. 그 시간 내내 리틀 헨리를 빼면 어느 아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녀를 응시했다. 점점 대담해지는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볼때마다 아이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면 얼른 시선을 내려피했지만, 이제는 계속 보고 있었다. 시어도어는 크고 푸른 눈으로, 애너벨은 작고 검은 눈으로 무슨 이런 애들이 다 있는지.
마침내 아이들은 서재로 잠을 자러 갔고, 리틀 헨리-얼마나착한지가 위층에서 잠을 자는 동안 올리브는 크리스토퍼와앤과 아기와 함께 앉아 있었다. 올리브는 이제 젖이 밖에 나와있는 것을 보는 데 얼마간 익숙해졌다. 좋지는 않았지만, 익숙해지고는 있었다. 그리고 앤이 측은했다. 슬픔 때문에 체구가 줄어든 듯 보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앤 역시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 P138

"크리스토퍼." 그녀가 용기를 내서 아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결혼한다."
아들이 어중간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쳐다보고 이렇게 말하기까지 영원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결혼할 거라고 말했어. 잭 케니슨하고."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보았다. 의심의여지 없이 창백해졌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곧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염병할 잭 케니슨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예요?"
"얼마 전에 아내와 사별했어. 전화로 네게 그 사람 얘길 한 적이 있는데, 크리스." 그녀는 얼굴이 활활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느꼈다. 아들의 얼굴에서 빠져나온 모든 피가 그녀의 얼굴로 들어온 것 같았다. - P139

퍼하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손을 빼냈다. 그 순간 진실이 점점 커지며 공포스럽고 빠르게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녀는 어마어마한 수준의로 실패한 것이다. 실패는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 분명했지만 여태 깨닫지 못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그런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이다. 다른 가정에서는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와 같이 지내면서 대화를 나누며 웃었고, 손주들은 할머니 무릎 위에앉았다. 그리고 다 같이 놀러 다니고, 뭔가를 같이 하고, 함께 식사하고 헤어질 때 키스했다. - P148

 아들은 엄마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 모든 남자가결국에는 이런저런 형태로-그렇게 하듯이.
잭이 조용히 말했다. "저기, 올리브, 잠시 같이 바람 쐬고 옵시다. 드라이브 좀 하고, 그다음엔 내 집으로 가요. 여기서 벗어나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생각이에요." 올리브는 일어서서 코트와 큼직한 검은색핸드백을 가져왔고, 잭에게 이끌려 스바루로 갔다. 그는 그녀를태우고 자신도 차에 탔다. 그리고 출발했다. 올리브는 거의 뒤를 돌아볼 뻔했지만 그러는 대신 눈을 감았다. 어차피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다. 그녀의 집, 그녀와 헨리가 아주오래전에 지은 집, 지금은 작아 보이는 집, 중요한 건 땅일 테니누가 됐건 매입한 사람이 완전히 허물어버릴 집 그녀는 감은 눈뒤에서 그 집을 보았고, 그녀 안에 일어난 전율이 뼛속을 통과했다. 그녀는 그 집에서 아들을 키웠다-엄마 없는 아이를 키운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한 번도 깨닫지 못한 채, 이제그 아이는 집을 떠나 멀리멀리 가버렸다. - P150

가을이었다. 나뭇잎은 색깔이 달라졌지만 아직 떨어지지는 않았다. 라킨 씨네 집 옆의 단풍나무들은 색색의 아름다운 비명을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 집은 전소되어 주저앉기 전에도 한동안 보기 안쓰러웠다. 무릎 높이로 자란 풀과 더이상 손질되지 않는 관목이 집 앞쪽의 크고 웅장한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로저 라킨이 줄곧 거기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들이 놀란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는 건 얼마나 끔찍한가! 바로 밑에서 마약중독자 둘이 몹쓸 마약을 조제하는 동안 불에 타서 죽는다는 것은 당연히 수군거리는 소리가 많았다. 라킨 부부는 늘 자기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 있었다.
루이즈는 예뻤고, 그건 타운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 P152

그 말은 구슬처럼 순식간에 수진에게 굴러왔는데, 진실한 무언가가 말해졌으나 자신은 붙잡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는 사무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오. 그녀는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햇살 한줄기가 먼 창문을 통해 느닷없이 들어와 버니의 책상 위에 작은 빛의 띠를 그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책상 위에그를 향해 놓인 작은 액자를 보았다. "누구예요?" 그녀가 액자를향해 고갯짓을 하며 물었다.
그가 액자를 돌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흑백사진 속에 부부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옛 시대 사람들처럼 보였다. 남자는수염이 풍성하고 슈트에 폭이 좁은 타이를 맸으며, 여자는 머리에 꼭 맞는 모자를 썼다. "부모님이셔." 그가 말했다.
"그렇군요." 수진이 눈을 찡그리고 사진을 보았다. "혹 그분들이 정통파 유대교 신자셨어요?" - P164

버니는 망설여지면서도 더없이 진지해지는 것을 느꼈다. 변호사로서 자신의 책무를 훨씬 벗어난 뭔가를, 오래전 아내에게 모호하게 말했던 것을 빼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뭔가를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느낌이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다음은 이거야. 믿음이 있느냐고 있어, 문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거야. 하지만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지. 믿음이 맞아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오, 말씀해주세요 버니."
버니는 손을 목덜미에 갖다댔다. "할 수가 없어, 수천, 설명할말이 없어, 우리보다 더 큰 뭔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를 넘어서는 거야. 나는 거의 평생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았어." 그는 실패했다고 느꼈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 P185

수진이 말했다. "저도 그런 걸 느끼곤 했었어요. 오랫동안 아저씨가 방금 말씀하신 그런 걸 느꼈어요. 하지만 저도 설명은 못하겠네요." 버니는 대답하지 않았고, 수잔은 계속 말했다. "어렸을때, 그리고 혼자 있을 때ㅡ전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주로 혼자시간을 보냈어요-종종 나가서 걸어다녔는데 그때 그런 걸 느꼈어요. 아주 심오한 느낌이었어요. 그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방식으로 이해한 것이었겠지만, 저는 그 느낌이 신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그런 신은 아니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 P185

신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왜 암에 걸리나, 지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냐, 그런 이유요.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저는 당신 지금 엉뚱한나무를 긁고 있어,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가 덧붙였다. "하지만 어떤 나무가 맞는 나무인지, 어떻게 잘 긁어야 할지는 저도잘 모르겠어요."
책상 앞에 앉아 버니는 멍하니 믿기지 않는다는 느낌에 빠졌다. 수진이 하는 말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잰이 덧붙였다. "그런 기분이, 그런 느낌이 왜 더이상 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버니는 강을 내다보았다. 늘 그렇듯 강 풍경이 또 달라져 있었다. 지금 강물은 더 초록빛을 띠었고, 하늘을 뒤덮은 구름은 더높이 올라가 있었다. "다시 느끼게 될 거야." 그가 말했다. - P186

수진이 말했다. "그거 아세요. 버니? 저는 이 문제를 많이 생각했어요. 정말 많이요. 그리고 제가.………… 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어요. 그러니까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해서요. 제 머릿속을 스친 표현은 이건데요. 우리가 할일은-어쩌면 우리의 의무일 수도 있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신비의 무게를 가능한 한 우아하게 견디는 것이다." - P187

"사람들은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간단다." 버니가 말했다. "정말로 그래. 사람들이 뭘 끌어안고 사는지 보면 늘 놀라게돼."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수진, 너는 방금 내게 남편이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 그게 뭐건 그것에 대한 네 경험도알지 못한다고 했어."
"맞아요." 수잰이 말했다. "버니, 정말 현명하세요. 사랑해요."
버니가 말했다. "수, 나도 사랑한다." 그는 이제 기분이 나아졌다고, 그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불편한 마음이 얼마간 덜어졌다고 몹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만 더. 내 말 잘 들어라."
"듣고 있어요." 수잰이 말했다.
그가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실컷 울어, 평생 그런 적이 없었을 만큼 맘껏 울어. 다 울고 나면 뭘 좀 먹고, 종일 굶었을 텐데."
"맞아요. 안 먹었어요. 뭘 좀 먹을게요. 약속해요. 하지만 더이상 울고 싶진 않아요. 버니. 저 사실・・・・・・ 사실 지금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럼 노래를 부르렴." 그가 말했다. - P188

버니는 책상 앞에 앉아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종의 조용한놀라움이 그의 가슴속을 관통했다. 수잰은 용케 타락하지 않았고, 그녀가 이야기할 때 보여준 정직한 태도는 단연코 작지 않은선물이었다. 그녀는 순수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숨쉬는 것처럼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수재의 순수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지난 세월 직업적으로 누적된 그의 불안을 얼마간 씻어내준 것같았다. 잠시 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에게 수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 P189

수잰이 그를 어떻게 도와주었는지는 그만의 비밀로 남겨둘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혼자 간직하는 숱한 비밀을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의 비밀은 전혀 나쁠게 없다고, 그는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 P190

병이 들기 전에 신디는 지역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그녀는 책을 사랑했다. 오, 정말로 책을 사랑했다. 책의 촉감을, 책의냄새를 사랑했다. 마냥 조용한 것도, 조용하지 않은 것도 아닌도서관의 분위기를 사랑했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가끔 와서 오 - P197

전을 통째로 보내는 노인들을 사랑했다. 그녀는 노인들에게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법이나 읽고 싶은 잡지를 찾는 법을알려주는 일이 좋았다. 그중 가장 사랑했던 일은 책을 대출해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찾아와 그녀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느낀 점을말해주었다. 신디는 모든 책을 읽었고, 지금도 침대옆 탁자와창턱에 책이 잔뜩 쌓여 있었다. 바닥에도 몇 권 있었다. 그녀는특별한 선호 없이 어떤 책이든 좋아했고, 가끔 그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셰익스피어를, 샤론 맥도널드의 스릴러소설을, 새뮤얼존슨의 전기를, 여러 극작가의 작품을 읽었고, 유치한 로맨스소설도 읽었다. 또한 시도 읽었다. 그녀는 속으로 시인은 신의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P198

신디는 어렸을 때 시인이 되려고 생각했다-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 하지만 아이였던 그녀는 시를 좋아했고, 3학년 때 담임선생은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젊은이를 위한 시선집』을 그녀에게 주었다. 여동생이 그책 여기저기에 빨간색 크레용을 칠해놓았을 때, 신디는 그애를 때렸다. 나중에 여동생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신디는 그 기억 때문에 늘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하지만 신디는 그 책이 온통 빨갛게 되기 전에 거기 실린 모든 시를 외웠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작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로 안내를 받는 기분이 얼마간들었다. - P198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해줄 때 다정했고, 신디는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마찬가지로 궁핍한 처지에 있던 신디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디는 시를 썼지만 혼자만 읽었다. 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신디보다 두 살 아래인 앤드리아 드리는 일 년 전 미국의 계관시인이 되었고, 신디는 메인주 크로스비 출신이 그런 위업을 달성한것에 속으로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 솔직히 신디는 앤드리아가 쓴 시가 늘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앤드리아의 시는 용감했다. 신디도 그것은 알았다. 앤드리아의 시는 그녀의 삶이 주된내용이었고, 신디는 그것들을 읽으면서 자신은 절대 앤드리아처럼 쓰지 못했으리란 걸 깨달았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그런 식으로 쓰는 건 신디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담배를 피울 때 볼이 쏙 빨려들어가던 것을 보면서 느낀 역겨움은 결코 쓸 수 없었을 것이고, 심지어 그녀 자신에 관한 것도쓸 수 없었을 것이다. - P199

신디가 쓸 수 있는 것은 2월의 햇빛에 대해서였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2월에 대해 불평했다. 춥고 눈이 오고 이따금 비가 오고 눅눅하다고 불평했고, - P199

얼른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신디에게 2월의 햇빛은 늘비밀 같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2월에는 낮이 점점 길어졌는데, 잘 관찰하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의 끝마다 세상이 조금씩 더 열렸고, 더 많은 햇빛이 황량한 나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약속했다. 그 햇빛이, 약속했다. 그건 얼마나 굉장한일인가. 침대에 누워 신디는 지금도 볼 수 있었다. 하루의 마지막 금빛이 세상을 여는 것을. - P200

올리브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아, 알지. 내가 하고싶은 말은, 내가 별로 잘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지금 마음아픈 거고. 정말로 마음이 아파. 요즘 이따금-드물게,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이따금 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헨리가 내게서 그런 모습을 전혀 못 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로워."올리브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또 이런다. 내 이야기만 하고 있네. 요즘 내 이야기는 많이 안하려고 하는데." - P205

올리브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말했다. "신디 쿱스, 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나쁜 기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 그녀가 뒤로 기대앉아 두 발목을 꼬았다.
"하지만 무서워요!"
"오, 나도 알아. 알지. 당연히 무서울 거야. 사람들은 모두 죽는 걸 무서워해."
"모두요? 그게 사실인가요, 키터리지 선생님? 선생님도 죽는게 무서우세요?"
"나도 죽는 게 죽을 만큼 무서워. 그건 사실이야."올리브가자세를 고쳐 앉았다.
신디는 그 말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잘 수용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것도 가능하겠지. 어떻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신디는 느꼈다-자신이 거의 평범한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냥요."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그냥 너무 외로워요. 이렇게 외로운 거 싫어요."
"당연히 싫지." - P206

"선생님 나이에도 죽는 게 무서우세요?"
올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맙소사. 내가 이미 죽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죽는 건 무서워." 그리고 올리브가 말했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신디는 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녀는 톰과 아들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 없이 영원히 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올리브의 말이 맞았다. 그들 모두 그녀가 가고 있는 곳으로 가고있었다. 그녀가 지금 가고 있는 거라면.
"고마워요" 신디가 말했다. "그리고 와주셔서 고마워요."
올리브 키터리지가 일어섰다. "잘 있어." 그녀가 말했다. - P207

한동안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고,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올리브가 말했다. "톰이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신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 키터리지 선생님. 그이가혼자 산다는 생각도 견딜 수 없어요. 못견디겠어요. 정말로 못견디겠어요. 그이는 그저……… 오, 혼자 두기엔 덩치만 큰 아기같아요. 그래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요. 하지만 그이가 다른누군가와 같이 있는 걸 상상하면 마음이 더 아파요."
올리브는 그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신디. 너하고 톰은 같이 자랐어. 헨리하고 나도 그랬고. 우리는열여덟에 만나서 스물한살에 결혼했지. 진실은… 네가 그 사람하고 같이 살았다는 거야. 그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올리브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사라지지 않아." - P212

올리브가 눈을 깜박였고,
마침내 말했다. "문득문득 그이가 몹시 그리워, 신디. 잭이 잘해주지 않아서가 아니야, 대체로 잘해주니까.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헨리가 생각날 것 같아."
"선생님이 와주셔서 정말로 기뻐요." 신디가 말했다. "나를보러 와주지 않는 사람 말을 믿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니, 나라면 믿을 거야. 그냥 믿어."
"하지만 왜 보러 오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올리브, 오래된친구들이 저를 보러 오지도 않아요."
"무서워서 그래."
"거참 유감이네요!"
"오, 동의해.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선생님은 무섭지 않으시잖아요."
"무섭지 않아."
"죽는 건 무서운데요?"
"그렇지."올리브가 말했다. - P215

"알겠어요." 신디가 말했다. "제가 곧 죽을 사람이니까 말해도 안전할 거라고 여기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쟤한테말하지 못할 게 뭐야,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고요."
올리브가 말했다. "네가 죽을지 안 죽을지 나는 몰라."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 올리브가 말했다. "문 앞에 크리스마스 화환이 아직 걸려 있더라. 그러는 사람들을 종종 봤는데이유를 모르겠어."
신디가 말했다. "오, 저도 그거 싫어요. 톰한테 몇번이나 말했는데, 그이는 왜 떼어내는 걸 자꾸 잊어버리죠?"
올리브가 허공에 손바닥을 휙내리쳤다. "경황이 없어서 그래,
신디. 요즘 다른 것에는 집중할 수가 없을 거야."
어리둥절했지만, 신디는 올리브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단순한 말이었지만, 완벽한 사실이었다. 오, 가엾은 톰!
신디는 생각했다. 톰 내가 그동안 당신한테 너무했어..…… - P223

신디가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장엄했다. 한낮의 빛이 끝을 향하면서 입 벌린 모습을 한 태양이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노란색을 쏟아냈고, 그 빛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비쳤다.
그리고 그다음 일어난 일은 이것이다―신디는 이 일을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했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올리브가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녀는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한번 더 말했다. "2월의 저 햇빛 좀 봐.‘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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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 마지막 문단에서 ˝퍼하고 있어요˝가 정말 어떤 의미 있는 문장인줄 알고, 뜻을 잠시 생각했던 거 있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