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로드 Audre Lorde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시인, 흑인이며 다양한 인종의 존엄을위해 싸운 전사, 문학과 철학 교사, 도서관 사서, 출판인, 암생존자, 엄마,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레즈비언, 그리고영원한 아웃사이더. 1934년, 뉴욕시 할렘에서 카브리해국가인 그레나다 이민자 가정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인도제도에 관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 살 때부터읽기, 말하기, 쓰기를 익혔다. 헌터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전공했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아공공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레즈비언 게이공동체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게이인 에드워드 롤린스와 결혼해두 아이를 낳았다.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분노,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투, 아프리카여성 신화로서의 블랙 페미니즘을 미려하면서도 생동하는언어로 담아낸 시집 《최초의 도시들The First Cities》《타인이 사는 땅으로부터 From a Land Where Other PeopleLive》 《석탄Coal》 《블랙 유니콘>><<거리의 놀라운 산수TheMarvelous Arithmetics of Distance: 1987-1992》 등을 펴냈다.
자기 인식의 진화와 섹슈얼리티를 다룬 자전신화 《자》,
페미니즘 바이블로 손꼽히는 에세이와 연설문 선집 시스터아웃사이더>, 유색인종 여성들에 관한 에세이 《나는 너의자매다 Am Your Sister》, 암과의 사투를 진솔하고도 날카롭게담아낸 《암 일지The Cancer Journals》 등을 펴내며 인종, 성,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목소리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에 유방암을 선고받았다. 6년 만에 간암으로전이되었고, 투병 끝에 1992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 레즈비언, 엄마, 전사, 시인‘으로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절망을 혁명의 고질병으로 여기며˝
평생 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혐오에 맞서 결연히 싸웠다.

오드리 로드는 인종, 계급, 젠더에서 모두 비주류 쪽의 카드를 가지고 태어났다. 보통 이런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다. 소수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언어를 찾는 일은 생존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건 눈에 띄고 싶을 때는 보여지지 않다가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도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견뎌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다행스럽게도오드리 로드는 스스로 ‘낙인찍힌 자‘라고 부르는 것을 겁내지 않는 유별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다이크 등 그 시대의가장 불온한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었고 그에 걸맞는 삶을 기꺼이 살아갔다.
이렇게 살 수 있었던 뿌리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세계에서 꼿꼿하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되 아무것도 잊지 않는 어머니의 방어술은 뿌리를 옮겨온 이들이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매일 조금씩 자신을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수자들은 적응할 수 없는 것을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 경험과 지식이 분리된 세계에 살아간다. 그것은 무지개가 되지만 종종 올가미인 ‘우리‘를 만들어낸다.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지배자의 연장으로는 지배자의 집을 부술수 없다." 이 두 문장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오드리 로드의 불굴의 정신을 담고 있다. 《자미》는 그 정신의 뿌리를 알려준다. 이 책에는 저자에게 흔적을 남긴 아름답고 강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신을죽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다시 짓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면, 여자인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당장.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여자들의 사회》 저자

오드리 로드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능한 일일까?
가만히 오드리 로드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또한 지구에태어나 인간으로서 인생이라는 것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된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의 빼곡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가 살아 있다고, 인생은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자미》의 모든 문장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알려주는 이 또한 오드리 로드 자신이다. 분명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토록 자세하고 내밀하고 풍성하게 삶을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게도어둡고 빛나며 복잡하고 단순명료한 순간이 삶으로써 언제나 나와 함께했음을 나는 오드리 로드를 통해서야 가까스로 믿게 되었다.

_유진목 시인, <연애의 책》 저자

‘언어와 시와 사랑과 좋은 삶‘이 한데 버무려진 이야기를 오래 꿈꿨다. 바닷가에 발을 조금 적시고 마는 그런 사랑 말고 파도에 휩쓸려 정수리까지 젖어버려서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신나는 사랑 사랑이 끝나도 시로 남아서 영원의축복을 누리는 사랑. 자발적인 헌신과 상스러운 섹스가 있지만 나쁜 남자는등장하지 않는, 마음이 놓이는 사랑 이야기.
《자미》에서 이 모든 서사의 욕망이 충족되었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형벌이던 시대를, 거짓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위엄 있게 살아낸다. 사랑과 글쓰기의 힘이다. 그래서 그의 자전신화는 상호 탐구와 존재 연결에 관한 보고서다. 얼마나 멋진가. 추방된 존재의 서사가마침내 사랑의 역사로 재배열되는 삶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더 큰 우주로팽창하는 그의 생애는 별빛 같은 언어를 쏟아낸다.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찬탄과 동경을 담아 숨죽이며 읽었다. 시시하게 살기싫지만 고통이 두려워 잔뜩 움츠린 내 삶에 그의 이름을 "정서적인 타투"로 새기고 싶다. 사랑, 여성, 글쓰기로 된 구축물 <자미》는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미래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 은유 작가, <크게 그린 사람》 저자

《자미》는 오드리 로드의 삶을 ‘관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관계를 촘촘히 채운 이들은 여성들이다. 어머니와 자매처럼 가족관계에서 시작해 수많은친구와 연인 등으로 뻗어나간다. 로드가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그 관계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뉴욕의 흑인·여성·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일종의 문화기술지로도 읽힌다.
‘자매들‘과의 관계는 로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생존을 위한 단단한 의식주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무엇보다 로드에게 정서적으로 사랑이 충만한 일상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한편, 이 관계들은 굵직한 상처와 커다란 상실감도남겼다. 다시 말해 《자미》는 이 관계들에 대해 로드가 보내는 사랑의 언어이며 동시에 애도의 언어로 가득하다. 로드에게 영양분을 준 만큼 상처도 준 관계들이지만 그 상처마저도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로드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서로를 북돋아주며 성장한 관계들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사랑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의 약자와 소수자가 사랑하기를방해하는 권력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사랑을 굳건히 믿는 마음만큼 질긴 저항도 없다.

-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말을 부수는 말》 저자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여성 운동 연대기가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나는클리토리스 이야기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읽을 때부터 조금 당혹했다. 《자미》

는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 내내 여성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했고그 사랑은 운동의 동지나 자매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몸을 온전히 드러낸, 침대 위에서 기분 좋게 엉켜 있는 두 여자의 땀에 젖은몸에서 흘러나오는 그러한 사랑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과 투쟁의 영역이 키스와 관능과 성애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메마른상상은 언제부터 왜 하게 되었던 걸까?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말했듯, 성애는 "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우리안의 가장 깊고 강력하고 풍요로운 것을 신체적·감정적·심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즉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향한 열정"이다.
이 열정은 힘과 앎과 연결의 원천이 되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 나와 타자를 섞어주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뻗어나가 자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키스가 없다면 운동도 없다. 아아, 오드리 로드처럼 쓰고 오드리 로드처럼 살고 싶다. 《자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가장 정치적인 자전신화다.

_하미나 작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

흑인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과 혐오를 목격할 때마다 나는 오드리 로드에게 의지한다. 로드가 그러한 공격들에 어떻게 응전할지 궁금하다. 로드의 우아함과 힘, 맹렬한 지성은 모든 흑인 여성을 옹호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록산 게이 작가,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저자

《자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오드리 로드의 아웃사이더 성향에 관한서술은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

_앨리슨 벡델 작가, 《펀 홈》 저자

내 목소리에 담긴 힘을, 멍든 살갗의 수포 아래서 문득 거품을 일으키듯 부풀어 오르는 강인한 나를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

아버지는 나에게 묵묵하고, 강렬하며, 집요한 정신적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버지의 흔적은 먼빛이다. 나와 혼돈 사이에는 횃불처럼 활활 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다이크들처럼 서서 내 여정의 경계를 장식하고 구분한다. 이 친절하고도 잔혹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나를 집으로이끌었다.

내 생존의 상징들을 만들어준 이들은 누구인가?

호박의 계절부터 그해의 자정까지 언니들과 나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거실의 장밋빛 리놀륨 바닥에 난 구멍에 대고 돌차기 놀이를 했다.
토요일이면 누가 바깥으로 심부름하러 나갈지, 누가 빈 퀘이커 오트밀상자를 가질지, 밤에 누가 마지막으로 욕실을 쓸지, 누가 제일 먼저 수두에 걸릴지를 놓고 싸워댔다.

여름철 사람들로 가득한 할렘의 거리에서 풍기는, 살수 트럭이 잠시 물을 뿌리고 간 뒤 길에서 다시 태양을 향해 피어오르는 썩은 내. 나는 목이 짧은 가게 주인한테서 우유와 빵을 사러 길모퉁이로 뛰어가다가 어머니에게 꺾어다 줄 풀을 찾으려고 걸음을 멈췄다. 지하철로 이어진 철제 살대 아래 새끼 고양이처럼, 반짝 빛나는 동전을 찾으려고 또걸음을 멈췄다. 나는 늘 신발 끈을 묶으려 허리를 숙인 뒤 그대로 미적거리며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했다. 돈을 수중에 넣는 법을, 어떤 여자들이 꽃무늬 블라우스 주름 아래에 부어오른 위협처럼 품고 다니는 비밀을 슬쩍 들여다보는 방법을.

‘오늘의 나‘라는 여성이 되기까지 나는 어떤 이들에게 빚을 졌는가?

멜로이스는 142번가에 살았고 머리를 다듬는 법이 결코 없었으며이웃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쯧쯧 혀를 찼다. 델로이스가 커다란배를 당당하게 내밀고 거리를 걸을 때면 여름철 햇빛을 받은 푸슬푸슬한 머리카락에서 빛이 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그가 시詩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면 신발 끈을 묶는 척 몸을 숙이고블라우스 아래를 들여다보려 했을 때조차도 나는 델로이스에게 말을걸지 않았는데 내 어머니가 그와 말을 섞지 않아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마치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내가 언젠가 알고 싶은 누군가처럼 움직였으므로, 신의 어머니도, 그리고 오래전 내 어머니도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고, 어쩌면 언젠가는 나도델로이스 같은 몸짓을 지니게 될 터였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이 델로이스의 배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후광 같은 고리 모양 햇빛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내 배가 납작하다는게, 나는 머리와 어깨로만 햇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서운했다. 바닥에등을 대고 눕지 않는 한 햇빛이 그렇게 내 배에 내리일은 없었다.
나는 크고, 흑인이고, 특별하고, 늘 웃는 델로이스를 사랑했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그를 무서워했다. 어느 날 나는 델로이스가 142번가에서 신호등을 무시한 채 느리고 신중한 동작으로 연석 아래로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았다. 흰색 캐딜락을 몰고 지나가던 하이 옐로* 남자 하나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델로이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빨리빨리 좀 움직이라고, 느려터진 데다가 얼빠진, 얼굴도 웃기게 생긴 년아!" 캐딜락은 델로이스를 거의 치고 지나갈 뻔했다. 델로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걷던 대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의 집, 부엌을 쓸 수 있고 가구가 구비된, 그러나 침구는 제공되지 않던 방에 세 들어 살다 죽었던 루이즈 브리스코에게. 내가 우유를

한 잔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마시지 않았고, 내가 침구를 갈고 의사를 불러주겠다고 하자 웃었다. "그 의사가 엄청나게 귀여운 남자가 아니라면불러봤자 소용없지." 브리스코 씨의 말이었다. "날 위해 아무도 불러줄필요 없어. 내 힘으로 혼자 이 세상에 왔으니 똑같이 내 힘으로 떠나련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엄청나게 귀엽지 않다면야 쓸모가 없지." 방 안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냄새가 났다.
"브리스코 아주머니, 전 당신이 정말 걱정돼요."
그러자 그는 마치 내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한다는 듯, 그럼에도 그 말이 고맙다는 듯 나를 흘낏 보았다. 회색 이불 속, 부종이 심한커다란 몸으로 누운 채 그는 다 안다는 듯 씩 웃었다.
"뭐, 괜찮다, 애야. 널 원망할 마음은 없어. 너야 어쩔 수가 없겠지. 그게 네 천성이니 말이다."

내 꿈속에 등장하는, 공항에서 내 뒤에 서 있다가 자기 자식이 나한테 자꾸만 일부러 몸을 부딪쳐대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백인 여자에게 자식 간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 주둥이에 주먹을 한 방 날리겠다고 말할 셈으로 몸을 돌린 순간 나는 그 여자가 이미잔뜩 얻어맞은 뒤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여자도, 아이도 얼굴은 멍투성이인 데다가 눈가가 시커멓게 물든 만신창이였다. 나는 돌아서서 슬픔과 분노에 젖어 걸음을 옮겼다.

한밤중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얇은 잠옷만 걸치고 맨발로 내 차로달려오며 비명과 고함을 지르던 창백한 얼굴의 소녀에게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아, 제발 병원에 데려가주세요, 선생님……." 소녀의 목소리는 농익은 복숭아와 초인종 소리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내 딸과엇비슷한 나이인 그 소녀가 수풀이 우거진 밴 두저 스트리트의 굽은 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고 차창을 열었다. 한여름이었다.
"그래, 그래. 내가 도와줄게. 타려무나."
그런데 가로등 불빛 속에서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소녀의 얼굴은공포로 일그러졌다.

소녀는 울부짖더니 홱 돌아서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검은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만한 공포를 느낀 것일까? 진짜 나와 그 소녀가 바라본 나 사이의 간극 속에 나를 버려둔 채, 그는 도움도 받지 않고 떠났다.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백미러를 통해 길모퉁이에서 그 소녀가 악몽의 실체에게 붙들리는

장면이 보였다. 가죽재킷과 부츠, 남성, 백인.
소녀가 아마 어리석은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차를 몰았다.

내가 구애했고 또 떠났던 첫 여자에게. 그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는 여성들은 비싸고 때로는 낭비벽이 심하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당신을 빨아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한다.

내가 쉴 곳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 나섰고 때때로 쉼터가 되어준 무장 부대에게. 검게 물든 내가 완전한 이 모습 그대로 세상으로 나설 수있도록 자비 없는 태양 아래로 나를 밀어내준 타인들에게.

아프레케테가.
되어가는.
내 안에 깃든 여행하는 여성에게.

나는 언제나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 되기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진가장 강하고 풍부한 면모들을 내 안에, 내 속에 받아들여 지구가 언덕과산봉우리를 품듯 내 몸에 골짜기와 산맥이 공존하기를 바랐다.
나는 여느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속에 들어가고 싶은 동시에 상대가 내게 들어오기를 바라며, 떠나고 싶은 동시에 떠나보내고 싶으며, 사랑을 할때면 뜨거우면서도 단단하고, 또 부드럽고 싶었다. 밀어붙이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때는 쉬거나 밀어붙여지고 싶다. - P19

목욕물 속에 앉아 놀 때면 미끄럽고 접혀 있으며 부드럽고 깊은, 내 안깊숙한 그곳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나의 진주이자 나의 돌출부인,
다른 방식으로 단단하고 민감하고 취약한 그곳의 핵심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나를 영영 핵심에 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해묵은삼각형이 길게 늘어나고 평평해져, 할머니와 어머니와 나라는 우아하고강인한 삼위를 이루고, 그 안에서 ‘내‘가 필요에 따라 한 방향 또는 양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 P19

영원토록 여성. 내 몸은 더 늙고 오래되고 현명한 다른 삶들의 살아있는 재현이다. 산맥과 골짜기, 나무, 바위․ 모래, 꽃, 물, 돌. 지구상에서 만들어진 것들. - P20

그레나다 사람들과 바베이도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걷는다. 트리니다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레나다를 찾았을 때 나는 내 어머니의 힘을 이룬 뿌리가 거리 위를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내 어머니 조상들, 내 어머니 선조들, 자신이 하는 일로 자신들을 정의하던 흑인 섬 여자들의 나라라고. "섬 여자들은 아내 노릇을 잘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미 더한 것을 겪었으므로 이 여성들이 가진 아프리카인다운예리함에는 보다 부드러운 모서리가 있고, 그들은 비가 내리는 따뜻한거리를 오만하면서도 점잖은 태도로 휘젓고 다니며, 나는 힘과 취약함속에서 그 모습을 떠올린다. - P21

어린 시절, 냉장고 문이 부서지거나 전기가 나갔을 때, 언니가 스케이트를 빌려 타다가 입가가 찢어졌을 때처럼 온갖 위기나 재난이 닥칠때마다 어머니가 입 모양으로 이 기도문을 들릴락 말락 하게 외우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린 나는 기도문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위 같고 엄격한 내어머니가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읊는 상대인 그 어머니란 누굴까 하는수수께끼에 골몰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공공장소에서 얌전히굴게 하는 법을 알았다. 집 안에 남은 유일한 먹거리를 주의 깊게 계획하여 차려낸 식사인 척하는 법도 알았다.
어머니는 선택의 여지없이 해야 하는 일일지라도 정성껏 하는 법을알았다. - P24

어머니는 자연사박물관을 오가는 길은 몰랐어도 아이들을 똑똑하게 키우려면 그런 데 데려가야 한다는 건 알았다. 아이들을 박물관에 데려간 어머니는 겁이 나서 오후 내내 우리 자매들의 통통한 위팔을 꼬집어댔다. 우리가 얌전치 못하게 군 탓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단정한 모자 차양 아래서 빛나는 박물관 경비원의 연푸른 눈이 우리에게서악취라도 풍긴다는 양 이쪽을 내내 주시하고 있어 겁이 났던 것이다.
이건 어머니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P26

린다는 초록은 귀중하다는 것, 물에는 평온과 치유를 가져다주는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 토요일 오후 집 청소를 끝낸 후면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공원을 찾아가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다. 때로는 142번가에 있는 할렘 강가에 가서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D트레인을 타고바다에 갈 때도 있었다. 물가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말이 없어지고, 나긋나긋해지고, 정신을 딴 데 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그레나다의 그렌빌, 카리브해가 내려다보이는 노엘스 힐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짙은 라임 향기 속에서 어머니가 태어난 곳, 캐리아쿠섬이야기도 해주었다. 치유의 효과를 가진 식물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지만 우리는 그런 식물들을 한 번도 본 적 - P27

이 없었으므로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어머니가 살았던 집 앞에 자라던 나무와 과일과 꽃 이야기도 해주었다.
한때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노엘스 힐의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흥얼거렸지만, 나는 코 고는 소리와 악몽 때문에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공동주택어둠 위로 그물처럼 걸려 있는 사포딜라와 망고를 상상해야만 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믿었기에 견딜 만했다. 비록 엄청난 에너지와집중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그저 잠깐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영영 생각할 장소도 아니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곳도, 정의하는곳도 아니라고 상상했다. 우리가 올바르게, 또 검소하게 살아가고, 길을건너기 전에 양옆을 확인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달콤한 장소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 P28

캐리아쿠에서 안니 이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나버린 다른 여자들과 더불어 살면서, 염소를 치고 땅콩을 기르고 곡물을 심고 땅이 옥수수를 잘 길러내도록 흙에다가 럼주를 부었으며, 여자들이 살 집과 빗물 집수장을 지었고, 라임을 수확했고, 자신들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한데 엮었다. 바다로 나간 남편 없이도 잘 살아남은 여성들, 남편이 돌아오지않더라도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마디빈, 프렌딩, 자미. 캐리아쿠 여성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그레나다의 전설이며,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캐리아쿠의 레스테르와 하비 계곡 사이 언덕에서 나의 어머니, 벨마 집안의 딸이 태어났다. 안니 이모의 집에서 여자들과 라임을 따며 여름을 보냈다. 훗날 내가 그레나다를 꿈꾸게 되듯, 어머니는 캐리아쿠를 꿈꾸며 자랐다. - P29

캐리아쿠. <구드스쿨 아틀라스>에도, <주니어 아메리카나 월드 가제트>는 물론, 내가 찾아본 그 어떤 지도에도 실려 있지 않은 곳. 그래서지리 수업시간이나 도서관 자습시간마다 이 마법의 섬을 찾아다녔지만찾지 못한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곳은 환상이거나 망상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옛날식 이름일 거라고, 어쩌면 실제로 어머니가 말하는 곳은 사람들이 퀴라소라고 부르는 서인도제도 저 먼 곳 네덜란드령의 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집이란 사람들이 여태까지지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 목을 졸라 교과서의 페이지 사이에 가두지못한, 여기가 아닌 어느 다정한 곳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곳은오로지 우리만의 공간, 나무에 매달린 블루고*와 빵나무 열매, 너트메그와 라임과 사포딜라, 통카콩, 그리고 붉고 노란 파라다이스 플럼 사탕으로 가득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이었다. - P30

나는 어째서 늘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어째서 머무르기 힘들며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극단에 있는 것이, 냉정을 잃지 않고 한가운데로 똑바르게 이어지는 한가지계획을 고수하기보다 편안한지 말이다.
내가 분명 이해하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결단이다. 그것은 완고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움을 유발하지만, 종종 효과를 발휘한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일상어에서 여성과 강한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눈먼, 등이 굽은, 미친, 아니면 흑인 따위의 일탈적인 형용사가 뒤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어렸을 적 강한 여성이라는 말은 평범한 여성, 그러니까 그저 ‘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남성‘과 동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이 제3의신분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 P31

덕분에 우리는 토요일 아침마다 살을 얼만큼 추운 날에도 시내 곳곳의 슈퍼마켓이 문을열기도 전에 줄을 서야 했다. 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들어가서 한 사람당 약 100그램씩 할당된 보급품이 아닌 버터를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슈퍼마켓을 기억해두었다가 차비가 공짜인 나를 종종 함께 데리고 다녔다. 어떤곳이 흑인에게 호의적이고 또 아닌지도 모두 기억해둔 덕분에 전쟁이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특정 시장이나 가게에는 발길을 끊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전쟁 중 귀한 물자를 놓고 어머니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였는데, 어머니는 그 무엇도 결코 잊지 않았으며,
용서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 P40

내가 다섯 살, 여전히 법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있던 시절, 처음 간학교는 135번가와 레녹스 애비뉴에 있는 지역 공립학교에 개설된 시각장애인 학급이었다. 학교 한구석에 있는 파란 나무 부스에서는 백인 여자들이 아이가 있는 흑인 어머니들에게 우유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그시절의 나는 허스트 무료우유기금에서 주는 빨갛고 흰 뚜껑이 달린 작고 귀여운 병에 담긴 우유가 정말 먹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것은 자선이고, 따라서 나쁘고 모욕적일 뿐만 아니라 우유가 미지근해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며 절대 받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두 언니가 다니던 가톨릭 학교에서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공립학교는 내 기억대로라면 언니들에게는 협박용으로 쓰이던 장소였다. 둘중 누군가가 잘못을 한다든지, 학교 성적이나 품행 점수를 나쁘게 받아오면 그 학교로 ‘전학시킨다는 식이었다. ‘전학‘이라는 말은 수십 년 뒤
‘주방‘이라는 말이 암시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 P41

영원한 도움의 마리 수녀님은 십자가의 형태를 한 압제를 휘둘러1학년을 다스렸다. 그는 기껏해야 그때 열여덟 살이나 되었을까 싶다.
덩치가 컸고, 아마 금발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엔 수녀들이 머리카락을 꽁꽁 감추고 다녔으니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눈썹은 금빛이었고, 성체수녀회의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유색인과 원주민 아동들을 돌보는 데 전적으로 헌신해야만 했다. 돌본다는 것이 꼭 마음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게다가 영원한 도움의 마리 수녀님은가르치는 일을 싫어하거나, 아니면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반을 ‘페어리‘와 ‘브라우니‘라는 두 모둠으로 나누었다. 인종주의는 물론이고 색의 사용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에 와서는 어느 쪽이 우등생이고 어느 쪽이 문제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매번 브라우니 모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말이 너무 많아서, 안경을 깨뜨려서, 아니면 끝도 없는 행동 규범 중 또 무엇을 어겨서등등 그 이유는 수도 없었다. - P51

"발없는새는 날아가는 곳마다 가지 없는 나무를 찾는다"

하고 싶은 말이 가장 힘센 언어가 되어 내게서 쏟아져 나올 때면 그것들은 기억 속 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던 말들을 닮았고, 그러면 나는 지금 해야 할 모든 말의 의미를 다시금 평가해보거나, 어머니가 옛날에 했던 말의 가치를 다시금 검토하게 된다.

내 어머니는 말word과 특별하고도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언어language라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말을 시작한 것은 네 살이 되어서였다. 세 살이 되었을땐 안경을 통해 보이는 사물의 새로운 본질을 배웠고, 희한한 빛과 매혹적인 형상들로 이루어졌던 나의 세계는 차츰 본래의 시시한 윤곽을 찾아갔다. 그렇게 인식한 세상은 다채롭거나 혼란스러운 면에 있어서는예전만 못했으나 심한 근시 때문에 초점이 고르지 못한 눈으로 보던 세상에 비하면 훨씬 더 편안했다. - P57

삶의 육감적인 요소들은 가려져 있고 불가해했으나 암호화된 구문에 실려 등장했다. 어쩌다 보니 사촌들 모두가 시릴 삼촌이 "뱀뱀쿠" 때문에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탈장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것이 분명 "저쪽 아래와 관련 있는 문제임을 경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목에 담이 걸리거나근육이 당겨 기분 좋게 손으로 주물러주는, 아주 가끔 일어나는 마술 같은 일을 할 때 어머니는 척추를 마사지하는 것이 아니라 "잔달리zandalee를 깨웠다."
나는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 "코훔코훔에 걸렸고, 그러면 모든 게
"크로-보-소", 즉 뒤죽박죽이거나 적어도 약간 기울어졌다.
나는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다. - P59

오늘날까지도 내 마음속에 피카소가 그린 정물처럼 영영 살아 있는슬픔과 비애의 정수는, 바로 우리 집 부엌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다세대주택의 벽돌 외벽에 버려진 실크스타킹 한 짝이 비바람을 맞으며 걸려있던 쓸쓸한 풍경이다. 어머니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동생들을 돌봐야했던 큰언니를 향해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한 손으로 창틀을 붙들고 매달려 있던 그 부엌 창문에서 보인 풍경이었다.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맞게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나를 컴컴한 부엌 안으로 끌어올려줬던 덕에 나는 한 층아래 통풍구 속으로 떨어지는 일을 면했다. 그 순간 느낀 공포와 분노는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회초리로 얻어맞은 건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버려지고 찢어진 채 벽돌 벽에 걸려 비를 맞고 있던 스타킹이 뿜어내던슬픔, 박탈감, 외로움이 기억난다. - P76

며칠 뒤, 수업이 끝나자 전교생이 반별로 강당에 모여 줄을 섰고, 수녀님들이 우리에게 푸른 잉크로 각자의 이름, 주소, 나이, 그리고 혈액형이라는 것이 새겨진 둥글납작한 크림색 뼛조각을 하나씩 줬다. 걸쇠없는 금속 사슬에 달린 이 원판 조각을 전교생이 목에 줄곧 걸고 다녀야 하며, 그동안 내내 절대로 벗으면 안 되고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체벌을 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동안 내내라는 말에는 무한이라거나 영원같이 그 자체로 구체적인생명력과 에너지가 담긴 것 같았다.
수녀님들은 조금 있으면 방독면이 도착할 거라며, 우리가 안전한곳을 찾아 부모를 떠나 시골로 가야 했던 가여운 영국 아이들 같은 신세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남몰래 그건 정말 신나는일이 될 텐데 하고 생각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바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였지만 도저히 그런 신세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차마 나오지 않았다. - P95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할 수 있던 가장 두려운 상황은 잘못을 저지르고 들키는 것이었다. 실수란 폭로, 어쩌면 절멸을 뜻했다. 어머니 집에는 오류를 범할 공간이 잘못을 저지를 공간이 없었다.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흑인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내면에 있는 충족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본뜬 대로 나는 몇 번의 내 다음 생이 지나간 뒤에 아보메의 진흙으로 만든 서늘한 방에서 만나게 될 세불리사만큼 검게, 그리고 외롭게 자라났다. 어머니는 백인 남성들의 혀에서, 당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인해 배운 온갖 교활하고 견제적인 방어술을 내게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이런 방어술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들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조금씩 죽었다. 모든 색채는 변하고 서로가 되었으며섞이고 나뉘고 무지개와 올가미로 흘러들어갔다. - P102

세인트마크플레이스의 성체수녀회 수녀들도 나를 내려다보는 태도이긴 했으나 최소한 그들은 수녀로서의 사명 속에 인종차별을 숨기기라도 했었다. 세인트캐서린학교, 자선수녀회 수녀님들은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장식도 핑계도 없이 인종차별을 일삼았으며, 나는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집에서도 도움받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땋은 머리를 놀려대자 교장인 빅투아르 수녀는 내가 "돼지꼬리‘ 머리를 할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머리 모양을 더 ‘적절하게‘ 바꿔주라"는 가정통신문을 나한테 들려 보냈다. - P105

전교생이 입던 푸른색 개버딘 교복은 아무리 자주 드라이클리닝을해도 봄이 오면 곰팡내가 풍겼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리로 돌아오면 내자리에 "냄새 나"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곤 했다. 블랑슈 수녀에게 쪽지를 보였더니, 그는 유색인들이 실제로 백인과 다른 체취를 풍긴다는걸 내게 알려주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못된 쪽지를 쓴 건 잔인한 일이기에, 내일 점심시간이 끝난 뒤 내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이 다른 아이들한테 나에게 잘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 P105

하지만 나는 너무도 내 어머니를 닮은 딸이었기에 남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파괴된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난 우리 학년에서 제일 똑똑했다. 그런데 부반장으로 뽑히지 못했다. 무언가 엄청나게 잘못됐다. 억울했다.
기독교인의 의무로서 내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헬렌 램지라는 체구가 작고 다정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겨울 동안 자기 썰매를 빌려준 적도있었다. 그 애는 교회 옆집에 살았는데, 그날 학교가 끝난 뒤에 자기 집에 코코아를 마시러 오라고 초대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벗어나 안전한 우리 집을 향해 길 건너로 내달렸다. 책가방을 다리에 부딪쳐가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교복 주머니에 핀으로 고정해놓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따뜻하고 어둡고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나는 그대로 집 앞쪽에 있는 내 방까지 달려가서 책과 외투를방구석에 집어 던진 뒤 분노와 실망으로 꺼이꺼이 울며 그대로 소파베드에 몸을 던졌다. 혼자가 되고 나서야 지난 두 시간 동안 내 두 눈을 타오르게 했던 눈물을 마침내 쏟아낼 수 있었다. 나는 한없이 울었다. - P111

예전에도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싶어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너무 커서, 나중에는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절대 가질 수 없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반장선거도 마찬가지였을까?
내가 너무 간절히 원했던 걸까?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 그 말이었던 걸까? 어머니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원하면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어쩐지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선거는 내가 간절히 원하면서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라고 처음으로 확신한 일이 - P111

었다. 제일 똑똑한 학생이 반장이 될 거라고 했고, 내가 제일 똑똑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건 내가 나 스스로 해낸 일, 그래서 반장이된다는 결과를 보장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제일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제일 똑똑한 학생, 그건 나였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되어주지 않았다.
어머니 말이 맞았다. 나는 선거에서 떨어졌다. 어머니 말이 줄곧 옳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반장선거에서 떨어진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팠고,
그 아픔 때문에 나는 아까만큼이나 격렬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식구가 있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 만큼 나는 빈집에서 마음껏 슬픔을 누렸다. - P112


"봐라, 새는 잊어버리더라도 덫은 결코 잊지 않는단 말이다! 내가 분명 경고했지!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울며불며 집에 돌아오다니, 무슨 짓이냐? 내가 백번은 말하지 않았니, 그 사람들 뒤꽁무니나 따라다니지말란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인 오줌싸개 녀석들이 너 같은 검둥이 꼬마한테 뭐라도 넘겨주길 기대했다니, 무슨 이런 얼빠진 게 다 있냐?" 퍽!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니?" 내가 어머니의 성난 주먹세례와핸드백 모서리를 피해보려 몸을 옹송그리자 어머니는 내 양어깨를 붙들었다.
"그래, 내가 바보 같은 반장선거 때문에 쓸데없이 울면서 집에 오지말라고 말하지 않았니?" 퍽! "우리가 널 학교에 보내주는 이유가 대체뭐라고 생각하니?" 퍽! "남들 일에 기웃거리지만 않아도 훨씬 잘 지낼거다. 울음 그쳐, 어서, 울음 그치라고!" 퍽! 어머니는 아까 내가 쓰러져울던 소파베드로 나를 질질 끌고 갔다.
"그래, 울고 싶어? 그럼 울 일을 만들어주마!" 이번에는 아까보다 내어깨를 살짝 잡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남들일 때문에 발 동동 구르는 바보짓은 그만하고 일어나라. 당장 나가서 얼굴 씻고 오거라. 사람처럼 굴란 말이다!" - P113

"선거가 공평하지가 않았다고요, 어머니. 그래서 운 거예요" 나는식탁에 놓인 갈색 종이봉투를 열었다. 상처받은 걸 인정하면 고통을 받게 된게 내 탓이 될 터였다. "반장선거 때문이 아니라 불공평한 게 싫었다고요."
"공평, 공평이라, 대체 공평한 게 뭐냐? 공평한 걸 바라거든 하느님얼굴이나 바라봐라." 바삐 손을 놀려 양파를 통 안에 집어넣던 어머니가동작을 멈추고 몸을 돌려 손으로 내 턱을 받치더니 우느라 퉁퉁 부은 내얼굴을 쳐들게 했다. 아까는 그렇게 날카롭고 노엽던 어머니의 눈은 이제 그저 피곤하고 슬퍼 보였다.
"아가, 공평하건 아니건 그걸 뭣하러 고민하고 있니? 그냥 너는 네할 일을 하고 남들 일은 남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거라." 어머니는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치워주었고, 나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분노가 가셨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봐라, 바보 같은 일로 몸부림을 치다가 머리가 다 엉망이 되었잖니. 얼굴이랑 손 씻고 와서 저녁으로 먹을생선 재우는 거나 도와다오." - P114

녀오자고"
미국의 인종주의는 부모님이 미국에 온 이래로 매일같이 헤쳐 나가야 했던 새롭고도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부모님은 인종차별을 개인적인 괴로움으로 취급했다. 두 분은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는 현실과 미국의 인종주의라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아이들을 가장 안전히 지키기위해서는 그것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고, 나아가 그 속성조차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백인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그들이 품은 악의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나에게 꼭 필요했던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도 역시 배우지 않고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고가, 절대 믿지 말라는그 사람들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를 지닌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게 참이상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어머니는 왜 백인이 아니냐고, 또 아버지와나처럼 문제적인 피부색이 아닌 것은 물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언니들과도 완전히 다른 피부색을 지닌 릴라 이모와 에타 이모는 왜 백인이아니냐고 물어보면 안될것 같았다. - P120

"하지만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옳지도, 공정치도 않았다! 심지어 나는 바탄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시까지 쓰지 않았던가.
부모님은 이런 부당한 일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몸을사렸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화가 났다.
나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한테서 내 분노를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두 언니마저도 그 어떤 이례적인 반미 행위도 일어나지않은 것처럼 구는 부모님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 했다. 미국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담은 편지를 쓴 건 나뿐이었다. 내가 습자지 일기장에 쓴 편지를 보여주자 아버지가 다음 주 사무실 타자기를 쓰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종업원의 피부는 희고 카운터도 흰색이었으며 내가 어린 시절을 떠나보낸 그해 여름 워싱턴에서 내가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도 흰색이었다. 워싱턴에 처음 갔던 그 여름의 하얀 열기와 하얀 보도블록과 하얀석조 기념물 때문에 여행이 끝날 때까지 구역질이 났으므로 결국 그 여행은 딱히 졸업 선물이라 하기도 뭣한 것이었다. - P123

띠 모양의 긴장이 달 표면에 부는 월풍처럼 내 몸의 앞뒷면을 휩쓸고 있었다. 다리 사이로 살짝 볼록한 생리대의 촉감이 느껴졌고, 날염블라우스 앞섶에서 빵나무 열매 냄새가 옅게 피어오르는 것도 느꼈다.
그것이 내 몸에서 풍기는 여성의 내음, 따뜻하고, 수치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러운, 너무나 다디단 향이었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뒤 그날 내게서 풍기던 그 냄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상상한다. 손을 씻고 물기를 훔친 뒤 앞치마 끈을풀어 단정하게 벗어놓은 어머니가 소파에 누운 나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또 빠짐없이, 우리는 서로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어루만진다.
마늘의 속껍질을 빨리 벗겨내려고 절구 밑면의 단단한 모서리로내리쳐 으깼다. 마늘을 썰어 절구에 던져 넣고 흑후추와 셀러리 잎을넣었다. 흰 소금을 뿌려 마늘과 후추와 옅은 녹황색 셀러리 잎을 눈처럼소복이 덮었다. 양파와 피망 몇 조각을 넣고 절굿공이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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