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노인 병원 수족관에 자라 한 마리 납작
엎드려 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생의 주름 잔뜩
오므리고 누워 있듯 그렇게 누워 있다
거대한 층층의 현대판 고려장이다
모시기 마땅찮은 이들이 의논 끝에 이곳에
넣어 두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하루 ㅡ반나절 ㅡ30분이 이렇게 더디 간다
환자복 하나 안간힘 다해 휠체어 바퀴 한 번
밀어 3cm이동한다
다른 환자복 죽 한 그릇 삼키는데 삼천갑자
동방삭이다
삶은 어쩌면 처음부터 저렇게 느리게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빈손에 하얗게 굳어 있는 발바닥 삶이
코에 튜브를 낀 채 뒤집어져 있는 삶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라가 공기방울 밀어 올리듯
아주 천천히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른다
죽음 곁에 놓인 삶의 부스러기들
물티슈 크리넥스 화장지 오줌통
깎아 놓아 누래진 사과쪽들이
완강히 생의 끈을 잡고 놓지 않는 동안
아, 아프지 않고 살기가 저렇게 힘이 들까
나서 죽는 일이 저렇게 힘이 들어?
메마른 눈물인 듯 링거액 아슬아슬히
떨어지고
있는 힘 다해 살아 있는, 허나 죽어 가는
사람들
형광등 불빛에 눈이 시린
수족관 칸칸마다 엎드려 있는
이따금 오래된 기억인 듯 손발 움직여 보는
p 26, 27

쑥꽃
아무래도 너를 무명씨라 해야겠다 길가 풀덤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나, 눈여겨 보잖으면 밥풀떼기만 한 너를 쉬 보지 못할 터
그렇게들 살아가는 물결, 보이잖는 그 물결에도 뿌리가 있어 삼신할미 손자국 같은 시퍼런 잎닢의 뿌리가 있어 그렇게 질기게 끈질기게 자자손손 배추씨로 배추씨보다 더 작은 바로 그 무명씨로
칠십 평생 날 밝으면 지게 지고 나서던 이씨라고 할까 쇠도 늘어붙는 땡볕 차 밑에 기어들어 땅땅 망치질하는 김씨라고나 할까 쥐뿔이나 이름 있는 것들의 허망함이 얼마나 깊은지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 P15
생의 통점通點에서 올라오는 매콤한 연기
맨발의 땅 이마에 맺힌 허연 소금기
죽은 자리 이듬해 햇쑥으로 다시 돋는 그 꽃이 암요, 영원합니다요 - P16
날마다 새로워지는 중
늙음도 달리 보면 새로워지는 것 저녁밥 먹고 난 후의 마루 끝 초저녁별도 새롭게 뜰 것이다 하늘 호숫가 파리하게 잠긴 낮달의 흔적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나날이 새로워지는 어느 한 사람하고 바람 살랑대는 햇빛 맑은 날이면 열무 밭에 나가 거름도 줄 것이다
이승을 다 돌아본 것 같은 그 즈음 하얀 나이에 달력의 글자가 꼭 선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리 파리와 수박씨를 애써 구분해야 하는 것도 아니리 - P20
항아리에 대고 하는 말처럼 이 빠진 말 후엉후엉 하여도 눈짓으로 알리
그래서 차츰 작아지고 희미해지고 먹먹한 귀 고요가 흘러가는 소리 유난히 크게 들리어도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중,
그런 어느 날 토란잎에 빗방울 둥그런 오후 등 돌려 걷고 있는 하얀 어깨를 감싸 안는 손 따뜻하고 환하리 - P21
내 아는 사람이 그러는디, 자기 엄니 아부지가 일흔 둘에 예순 아홉인디, 아부지가 직장암인가 대장암인가로 똥구멍을 뗘냈댜, 똥구멍을 뗘내고 옆구리에 똥주머니 같은 걸 차고 사는디, 보통 때 보면 뜨드미지근한 누런 똥이 비닐 팩 같은 똥주머니에 차는 것이 보인다댜, 그 똥주머니를 즤 엄니가 갈아주는디, 암만 남편이래두 그 주머니 비울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와 은단도 깨물고 담배 연기도 쐰다더먼, 또 그 아부지도 정신은 풀 멕인 광목처럼 짱짱헌디 구겨진 신세가 하두 ●무서운 말● 기가막혀 북어처럼 입만 딱 벌리고 한숨만 폭폭 내쉬는 게 일이랴, 헌데 어느 날 두 냥반이 마음을 아주 싹 고쳐먹었다느먼. 그러니께 그게 뭐냐면 티콘가 뭔가 허는 쬐그만 중고차 한 대 사가지고 집밖으로 나돌아댕기는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시청 문화원 백화점 시민단체 할 것 없이 할만한 디는 빠짐없이 전화해, 주부 대상 노인 대상 행사 프로그램을 빼곡히 적어놓고, 도시락 싸들고 쫓아댕기며 어느 땐 수건, 어느 땐 밥그릇, 경품이란 경품은 죄다 받아온다는겨. 그 - P22
래, 한 번은 무슨 무슨 마라톤 대회에까지 나가 두 노인네가 똥주머니 받쳐 들고 뛰다 걷다 하였는디, 그 바람에 운동화 두 켤레랑 츄리링 두 벌 돈으로 따져 십만 원 어치는 빠지잖게 받아와,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내미 딸내미헌티 전화 걸어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는다는디, 그러면서 그 이 하는 말, 사람 사는 일이 정말 맘먹기에 달렸지유?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 듣는 말이 아닌데도 정말 그런 것 같아, 그 말이 문득 무섭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 P23
자라
노인 병원 수족관에 자라 한 마리 납작 엎드려 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생의 주름 잔뜩 오므리고 누워 있듯 그렇게 누워 있다 거대한 층층의 현대판 고려장이다 모시기 마땅찮은 이들이 의논 끝에 이곳에 넣어 두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하루 ㅡ반나절 ㅡ30분이 이렇게 더디 간다 환자복 하나 안간힘 다해 휠체어 바퀴 한 번 밀어 3cm이동한다 다른 환자복 죽 한 그릇 삼키는데 삼천갑자 동방삭이다 삶은 어쩌면 처음부터 저렇게 느리게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빈손에 하얗게 굳어 있는 발바닥 삶이 코에 튜브를 낀 채 뒤집어져 있는 삶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라가 공기방울 밀어 올리듯 아주 천천히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모른다 - P26
죽음 곁에 놓인 삶의 부스러기들 물티슈 크리넥스 화장지 오줌통 깎아 놓아 누래진 사과쪽들이 완강히 생의 끈을 잡고 놓지 않는 동안 아, 아프지 않고 살기가 저렇게 힘이 들까 나서 죽는 일이 저렇게 힘이 들어? 메마른 눈물인 듯 링거액 아슬아슬히 떨어지고 있는 힘 다해 살아 있는, 허나 죽어 가는 사람들 형광등 불빛에 눈이 시린 수족관 칸칸마다 엎드려 있는 이따금 오래된 기억인 듯 손발 움직여 보는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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