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월요일


공책을 산 다음에 여기에 써놓은 것을 베낄 것이므로 새해에 걸맞은 미사여구는 생략하겠다. 이번에 내게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두 주일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있던 끝이어서 플리트 가까지 몸을 끌고 나갈 기운이다. 내 오른손 근육의 감각도 일하는 아줌마 손처럼 마비된 느낌이 든다. 이상한 노릇이지만 문장을다루는 것도 마찬가지로 뻣뻣한 느낌이다. 이치로는 한 달 전보다 더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2주간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은 이를 하나 뺐기 때문이며, 또 너무 지쳐서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 마치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1월 안개와 같은, 오랜 동안의 우울한 생활. 앞으로 몇 주 동안은 하루에 한 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정한다. 오늘 아침은 그 시간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그 일부를 여기서 쓸 수가 있다. 레너드는 외 출 중이며, 1월분 일기가 상당히 밀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기를 쓰는 것은 글을 쓴다는 부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 P19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는 기분 내키는대로 앞질러 달려 나가는 그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가의 돌부리에 견딜 수 없게 차이면서 달려나가는것이다. 그러나 가장 빠른 타자기보다 더 빨리 쓰지 않았다면, 또쓰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든지 했다면 이 글은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의 장점은 만약에 내가 머뭇거렸다면 빼버렸을 사소한 것들을 우연하게도 건져 올렸다는 데에 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쓰레기 속의 다이아몬드인 것이다. 만약 버지니아 울프가 나이 50이 되었을 때, 이 일기를 근거로 회고록을쓰려고 해도 문장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저 쉰살의 버지니아 울프를 위로하고 벽난로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수밖에 없다. 일기장을 태워서 쪽지들이 새까만 필름처럼 타면서 그 안에 빨간 눈이 생기도록 태워도 좋다는 허가를 내주게 될 것이다.  - P20

그러나 쉰 살의 버지니아 울프를 위해 내가 준비하고 있는이 일을 생각하면 그녀가 부러워진다. 이보다 내가 더 좋아할 일은 없다. 그 생각을 하니 다음 토요일에 맞이하게 될 내 서른일곱 번째 생일도 그리 무섭지 않아진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이나이든 부인(이 나이가 되면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50은 많은 나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항의할 테고, 나도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겠지만) 때문이고, 또 다른 까닭은 지금처럼 갇혀 있는 몇 주 동안, 저녁에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의 기초를 금년 중에 확실하게 다져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친구들의 지금의 상태, 그들의 성품에 관한 이야기들을 쓰고, 그들이해놓은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그들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예측을 해보리라. 이 쉰 살의 부인은 내가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충분히 많이 썼다(1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 P20

4월 12일, 토요일


「몰 플랜더스‘를 읽다가 10분을 쪼개서 이 글을 쓴다. 내시간표대로였다면 이 책은 어제 끝마쳤어야 하는데, 읽다가 말고런던에 가고 싶은 욕망에 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디포의 눈을 통해 런던을 보았다. 특히 헝거퍼드 다리에서 바라다본 도시의횐 교회와 궁전이 그러했다. 나는 그의 눈을 통해 성냥을 팔고있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세인트 제임스 광장의보도를 치마를 끌며 걷고 있는 소녀들은 『록새너』나 『몰 플랜더스』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다. 2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이와 같은 압력을 가하는 디포는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위대한 작가라는 포스터가 디포의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니! 내가 도서관에 가까이 가자 포스터가 나를 손짓해 불렀다. 우리는 다정하게 악수를 했다. 그러나 나는 포스터가 항상 민감하게 나에게서 몸을 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자인, 그것도 머리가 좋은 여자이며, 신식 여자인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포스터에게 디포를 읽으라고 명령했다.
포스터 헤어져서 도서관에 가서 디포를 몇 권 더 빌렸다. 가는 길에 비커스 서점에서도 한 권 샀다. - P27

4월 20일, 부활절, 일요일


긴 논문을 쓰고 나면 으레 나태해지는데, 이번 달 들어 쓴 두 번째의 긴 논문인 디포에 관한 글을 마친 뒤여서 이 일기를 꺼내 읽었다. 자기가 쓴 글을 읽을 때는 항상 일종의 죄스러운 열정으로읽게 된다. 내 일기의 문체는 난폭하며 제멋대로인 데다 번번이비문법적이며,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단어들이 눈에 띄어 읽기가좀 괴롭다. 앞으로 이 일기를 읽을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이것보다는 훨씬 더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자 한다. 이 일기에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이 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조금 칭찬을 해 - P29

도 좋을 것 같다. 이 일기에는 거친 구석과 박력이 있으며, 때로는뜻하지 않게 어떤 문제에 대해 급소를 찌를 때가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처럼 나만을 위해 글을 쓰는 습관은 글쓰기의좋은 훈련이 된다는 신념이 나에게는 있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는 근육을 이완시켜준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다고 해도신경 쓸 것은 없다. 이처럼 글을 빨리 쓰고 있으니 대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순식간에 돌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닥치는 대로 단어를 찾고 골라서, 펜에 잉크를 묻히느라 쉬는 시간 말고는간단없이 그 단어들을 내던져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직업적인글을 쓰는 일이 좀 편해진 것 같은데, 이것은 차 마시고 난 뒤에스스럼없이 보낸 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 같은 것이 내 앞에 떠오른다.  - P30

그러다 보면 따로따로 떠다니는 인생의 부유물 같은 소재들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될지 모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소설 속에 사용하는 것 말고도 다른 용도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일기가 어떤 모양이기를 바라는가? 짜임새는 좀느슨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떠올라오는 어떤 장엄한 것이나, 사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 감쌀 만큼 탄력성이 있는 어떤 것. 고색창연한 깊숙한 책상이나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도 던져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한두 해 지난 뒤 돌아와 보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저절로 정돈이 되고, 세련되고, 융합이 되어 주형으로 녹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정말 신비스럽게도 이런 저장물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같은 주형이 우리 인생에 빛을 반사할 만큼 투명하면서도, 예술 - P30

작품의 초월성이 갖는 침착하고 조용한 화합물이기를 바란다. 오래된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검열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내키는 대로아무거나 쓰는 것이다. 내가 별생각 없이 써놓았던 것에서, 쓸 당시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묘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만함은 곧 지저분함이 된다. 어떤인물이나 사건을 기록해야 할 때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펜이 길잡이 없이 멋대로 제 갈 길을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안 그러면 버넌 리의 글처럼 느슨하고 지저분해질 염려가 있다. 버넌리가 글들을 연결하는 방식은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느슨한 감이 있다. - P31

레너드의 판정을 듣고 나는 「벽 위에 난 자국Mark onthe Wall을 읽을 마음이 생겼는데, 읽고 나니 결점투성이였다. 언젠가 시드니 워터로우가 한 말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의 가장 나쁜 점은 남의 칭찬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단편 때문에 칭찬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으므로, 크게신경은 쓰지 않을 것이다. 칭찬을 받지 않으면 아침에 글 쓰는 일이 힘들어진다. 그러나 의기소침하는 것도 불과 30분이다. 일단글을 쓰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 사람이란 부침을무시하는 법 또한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여기서는 칭찬받고, 저기서는 아무 말도 못 듣는 일을. 머리와 엘리엇에게는 주문이 들어왔지만 나에게는 없었다. 변함없는 중요한 사실은 문학에 종사하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라는 것. 정신이 이처럼 안개 속에있듯 몽롱한 것에는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이 깊은 곳에 숨어 있기는 하지만. 인생에는 썰물과 밀물이 있는 법이고, 그 법칙이 숨어 있는 원인을 설명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썰물과밀물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 P32

4월 10일, 토요일


운이 좋으면 다음 주에 『제이콥의 방Jacob‘s Room』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묘사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계절은 봄이다. 다음 몇 가지를 적어두겠다. 금년에나무에 새싹이 나온 것을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한다. 하긴 나뭇잎이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밤나무 몸통에도 늘 보던 까만 쇳빛이 보이지 않으며 늘 무언가 부드럽고 옅은색깔이 보이는데, 이것은 평생 보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한겨울을 건너뛰고 마치 한밤중의 태양과 같은 계절을 보낸뒤, 환한 대낮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밤나무 잎이 돋았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작은 파라솔 같은 잎이 우리들 창가의 나무 위에 퍼져 있다. 그리고 묘지의 잔디는 마치 녹색 물처럼 오래된 묘석 위에 퍼져 있다. - P48

내가 쓴 모든 것을 냉철한 시선으로 다시 본다. 이것은 옛날부터 있어온 "화려한 심정의 토로"에 대한 것으로서, 틀림없이휘클리의 비판은 옳다. 그러나 이 병은 내가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고, 헨리 제임스에게 감염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위안이될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나는 이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임스」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다. 한 가지 이유는 ‘타임스」에글을 쓸 때는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헨리 제임스의경우에는 글 쓰는 것을 복잡한 무늬의 도안을 그릴 때처럼 장식을 많이 달게 된다. 그러나 데즈먼드는 자청해서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과 비난에 대한 어떤 규칙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운명적으로 무더기로 비난을 받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남의 이목을 끌고,
특히 나이 든 신사들을 짜증나게 하는 모양이다. 틀림없이 「씌어지지 않은 소설」을 헐뜯을 것이다. 이번에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사람들을 분개시키는 이유다. 늘 그래왔다. 사람들은 "건방지다"고 말한다. 여자가 글을 잘쓰다니, 또 게다가 타임스」에 글을 쓰다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제이콥의 방을 쓰기 시작하는 일을 좀 미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대로 값어치가 있다. 심지어는 워클리의 글에서 마저 자극을 받는다.  - P49

5월 11일, 화요일


나중을 위해 적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새 책을 쓰기시작하면 그처럼 신나게 끓어오르던 창조력은 얼마 뒤에는 조용해지고, 좀 더 차분하게 일하게 된다. 의심이 생긴다. 그러다 체념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 그리고 머지않아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이 일을 계속하게만든다. 조금 불안하다. 이 구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하자마자 익숙한 풍경 속을 걷고 있는 사람처럼 된다. 이 책에서는 즐겁게 쓸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않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 P50

『돈키호테』도 그런 동기에서 씌어졌다는 인상이 깊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을 계속해서 즐겁게 하려고 한다. 내가 판단하는 한, 아름다움과 사색은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생겨난다. 세르반테스는진지한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별 생각이 없고, 우리들이 보듯 『돈키호테』를 보고 있지 않다. 사실 이것이 문제다. 비애나 풍자의어디까지가 힘들이지 않고 우리 것이 될 수 있는가. 혹은 저런 위대한 인물들은 자기들을 바라보는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능력을가지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이야기의 대부분은 재미없다. 아니,
그정도는 아니지만 제1권의 끝 부분은 좀 그렇다. 이곳은 분명히 읽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쓴 부분이니까. 말은 조금밖에 하지 않고, 많은 부분을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은 마치 이야기의 그부분을 더 이상 발전시키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갤리선의 노예들이 행진하고 있는 광경이 그 예다. 세르반테스도 내가 느끼는 만큼의 아름다움과 비애를 모두 느꼈을까? 나는 두 번이나 ‘비애‘라는 말을 썼다.
이것이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 본질적인 것일까?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 부분 전체에서 볼 수 있듯이, 돛을 펴고 위대한 이야기의 돌풍을 타고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페르 - P52

난도, 카르디노, 루신다의 이야기는 당시 유행에 맞춘 궁정풍의에피소드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쨌든 나에게는 지루하다. 나는 「단순한 고아도 읽고 있다. 재기 넘치고, 효과적이고 재미있지만 아주 무미건조하며 말쑥하다. 세르반테스에게는 그 모든것이 있다. 아직 설익은 상태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깊고, 대기에비유될 만하다. 살아 있는 등장인물들이 인생 그대로의 알차고윤색된 그림자를 던진다. 이집트인들은 대부분의 프랑스 작가들이 그렇듯, 그 대신 본질적인 가루를 조금 주는데, 그것은 훨씬 더톡 쏘는 느낌이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결코 그만큼 포괄적이거나광범위하지는 않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얼 쓰고 있는 건가! 늘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제이콥의 방을 쓰고 있다. 날마다의 일이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일이 끝난 뒤 장애물을 멋지게 뛰어넘든지, 아니면 차단 봉을 떨어뜨리든지 할 때까지는 내 정신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또 딴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지 흄의 산문을 구해 나를 정화해야겠다. - P53

소설을 쓸 때는 우리 마음이 담대하고 자신에 차 있어야 한다. 엘리엇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조이스 씨가 더 잘하고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늘 그렇지만, 내가 계획하고있는 일에 관해서 충분히 분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오므라들고, 좀스럽게 되고, 주저하게 된다. 이건 결국 다 끝났다는 뜻이다. 두 달 동안 일했던 것이 그 원인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에벌린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여성에 관한 글을 하나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문에 발표된 바넷 씨의 반대 의견에 대한 맹렬한항의문이다. 두 주전 나는 산책을 하면서 쉬지 않고 『제이콥의방』을 구상해왔다. 인간의 마음은 참 요상하다! 변덕스럽고, 불성실하고, 그림자 앞에서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어쩌면 내 마음밑바닥에서는 모든 점에서 내가 레너드에게 뒤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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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1882-1941

열세 살이 되던 1895년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처음신경증 증세를 보인 후 수차례의 정신 질환과 자살 기도를 경험한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모더니스트로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궈놓은 선구적 페미니스트, 1907년 블룸즈버리 그룹을 형성하여 화가 덩컨그랜트, 경제학자 J. M. 케인스, 소설가 E. M. 포스터, 후에 남편이 된 레너드 울프 등과 문화와 사회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울프는 세계 현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지성인으로 떠오른다. 
1915년에 처녀작 『출항』간행 이후 「제이콥의 방』(1922) 『댈러웨이 부인』(1925)「등대로』(1927) 『세월』(1937) 등의 소설과 페미니스트에세이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1929)을 출간했으며 많은 평론과 에세이, 작가의 내면 풍경을 솔직하게풀어놓은 여러 권의 일기를 남겼다.
울프는 그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온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다. 아울러 이성적 언어 이전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만큼이나 삶의 심연에 천착해 깊고 다양한 문학 세계를 이루었다. - P-1

왜 지금 울프인가? 1941년 3월 28일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 강에 투신 자살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왜 지금 내놓는가?
20세기 초라면 울프에 대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위상 정립 작업이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한 1980년대라면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활발하게 진행된 페미니즘 논의와 연관시켜 페미니스트로서의 위치 설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울프는 누가 뭐래도 페미니스트이다. 울프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여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절대로 울프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주의 문학이다. 사랑을 설파한 문학, 이타주의利他主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의 고전이 그녀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은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잠깐씩 들른 간이역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인본주의라는 정거장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훤칠한 한 그루의 나무로, 또는 페미니즘의 대모라는 또 한 그루의 잘생긴 나무로 우리의 관심을 지나치게 차지하여 우리가 크고도 울창한 숲과 같은 이 작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바야흐로 이 깊은 숲을 조망할 때가 온 것으로 믿는다. 지금 우리가 울프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집이 울프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읽는 이의정서를 순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울프 전집 간행위원회 - P-1

8월 4일, 월요일

공책을 하나 사서 먼저 크리스티나 로세티에 대한 인상을, 다음으로 바이런에 대한 인상을 쓰기 전에 우선 여기 몇 자 적어두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이유는 르콩트 드릴의 책을 많이 사서 지금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타고난 시인이라는 큰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신에 대해 소송을 벌인다면 크리스티나야말로 내가 맨 먼저 불러낼 증인이 될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글은 우울하다. 우선 크리스티나는 스스로를 사랑에 굶주리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삶에 대해서도 굶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시에 대해서도 크리스티나는 종교가 자기에게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굶주리게 했다. 크리스티나 - P9

에게는 두 사람의 좋은 구혼자가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나름대로 특이한 데가 있었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특정한 색깔의 크리스천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색깔을 한 번에 몇 달밖에 유지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첫 번째 구혼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더욱 안 좋았던 것은 두 번째 콜린스의 경우다. 콜린스는 매우 유쾌한 학자였고, 비세속적인 은둔자였으며, 크리스티나를 한결같이 숭배했으나 콜린스를 교회의 우리 안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콜린스가 사는 곳을 애정 어린 마음만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크리스티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크리스티나의 시 또한 거세되고 말았다. 크리스티나는 성경의 「시편」을 시의 모양으로 바꾼다든지, 자신의 모든 시를 기독교 교리에 맞게 쓰려고 하였다. 그 결과 스스로의 뛰어난 독창력을 엄격한 금욕으로 굶겨볼품없게 말려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자유만 주어졌더라면 크리스티나는 브라우닝 부인보다 훨씬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아주 쉽게 글을 썼다. 참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생각을 어린애처럼 쓰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재능은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크리스티나는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사색도 했고, 상상력도 지니고있었다. 세속적으로 추측컨대 크리스티나는 점잖지 못한 것이나 - P6

기지가 뛰어난 것이나 모두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희생에 대한 대가로 크리스티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도 크리스티나의 시를 다시 한 번 더 읽어본 것에 불과하며, 그것도 이미 알고 있는 시에만 눈길이 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없다.


8월 7일, 수요일

아샴에서 쓴 일기에는 자질구레한 것들, 꽃이랑 구름, 딱정벌레나 계란값 등에 대한 꼼꼼한 관찰로 가득 차 있다. 혼자 있으니 달리 기록할 사건도 없다 큰 사건이래야 고작 애벌레 한 마리를 으깨 죽였다는 따위거나, 우리들이 흥분한 사건이란 어젯밤 루이스‘에서 가정부들이 돌아왔다는 것 정도다. 가정부들은 레너드에게는 전쟁 관계의 책들, 그리고 나에게는 영국 평론』을 가져다주었는데, 거기에는 국제연맹에 대한 브레일스퍼드의 글이랑『환희」에 대한 캐서린 맨스필드의 글이 들어 있었다. 나는 환희』를 읽고 "캐서린도 이젠 끝났군!" 하고 소리치며 내동댕이쳤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캐서린에 대해 여자로서, 또 작가로서 얼마만큼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캐서린의 지력은 아주 얕은 두께의 흙으로서, 완전 불모의 바위를 겨우 1.2인치 - P11

의 두께로 덮어 싼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환희」는 비교적 긴 작품이므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갈 기회가 있었을 터이다. 대신 캐서린은 피상적인 재치를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구상 전체가 빈약하고 경박하며, 설사 불완전하더라도 값있는 정신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문장도 서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캐서린이 둔감하고 냉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시 읽기는 하겠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계속 글을 써서 스스로와 머리를 만족시킬 것이다.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글 한 편으로 캐서린의 사람됨에 대해 이처럼 많은 것을 읽어낸다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까?
어찌 되었든 읽던 바이런을 계속해 읽게 되어 매우 기쁘다. 적어도 바이런에게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있다. 사실 바이런이 여자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상상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더 재미가 생겼다. 특히 어리석거나 배우지 못한 여자들은 바이런에게 머리를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많은 여자들이 바이런을 고쳐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거틀러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하기나 하려는 듯, 늘 이 말을 했지만) 누군가의 전기를 철저히 읽고 거기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어 붙여 그 사람의 사람됨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참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쿠퍼나 바이런이나 다른 누구의 이름이든 간에 전혀 뜻하지도 않던 책의 페이지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은 갑자기 멀어져죽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B의 시가 말할 수 없이 서툴다는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무어가 거의 황홀경 - P12

에 빠져 인용하는 부분이 그렇다. 왜 그들은 B[바이런]의 「앨범」류의 시를 시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시는 L. E. L.이나 엘라 휠러 콕스보다 나을 것도 없다. 사람들은 B가 할 수있고, 또 스스로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풍자를 하지 않도록 설득시키고 말았다. B는 풍자(호라티우스의 패러디)가 든 가방과「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를 가지고 동양에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B에게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야말로 지금까지 씌어진 것 중 최고의 시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B는 젊었을 때는 자신의 시에 대해 확신을 가진 적이 없었다. B와 같은 독선적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시적 자질이 없었다는 증거다. 워즈워스나 키츠 같은 시인들은 다른 것을 믿듯이 스스로의 재능도 믿었다. B의 성품은 종종 루퍼트 브룩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브룩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바이런은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편지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바이런은 또한 여러 면에서 뛰어난 성품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무도 바이런이 잘난 척하는 것을 조롱해서 못하게 한 적이 없으므로, 좀 지나치게 호러스 콜처럼 되고 말았다. 바이런을 조롱할 수 있는것은 여자뿐이었는데, 여자들은 오히려 그를 숭배하고 말았다.
바이런의 부인에 대한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그 부인은 비웃는 대신 못마땅한 표정만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이런은 ‘바이런적‘이 되고 말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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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산사람이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습니다.

살아 세운 허술한 집보다
단정한 햇살이 결 고운
식솔 거느리고 먼저 앉았는데

먼 산 가차운 산
무더기째 가슴을 포개고 앉은
무심한 산만큼도 벗하고 싶지 않아
우리보다 무덤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승사람일 적
우리만큼 미련퉁이였을
그가요 살아 세운 허술한
집에서 여즉
그와 삶을 나누고 있는 우리에게요
점심밥만큼 서늘한 설움이
장한 바람에 키를 낮추는데 - P15

낫을 겨누어 베허버리는 건
누워 앉은 무덤입니다. - P16

신원경


산소에 갈 때마다 저 둥근 무덤 속에 친밀한 육체가들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몸이 흙을 껴안고, 시간과 함께 서서히 허물어져 마침내 형체를 잃으며 우리를 떠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우리는 무덤 속에 사랑하는 이가 잠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가 유독 좋아했던 사과 한 알을 들고 함께 나눠 마실 막걸리를 뿌린 뒤, 잠든 조카가 무사히 모든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두 번씩 절을 올린다. 돗자리 위에서 우리는 슬픔과는 영무관한 이야기를 한다. 작년의 농담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자리를 턴다.
지난해에 가지치기했던 나무는 이전과 동일해져서 우리는 꼭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다. 산소에 다녀오면 큰아버지는 한동안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영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산 자의 몸에 붙어온 영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그 얼굴들을보고 온 날이면 무덤보다도 할 말 없는 사이가 친밀하지 않은 사이는 아니라고 이해한다. - P17

폐병쟁이 내 사내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 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 P18

유계영


모든 존재의 고통이 ‘나‘의 고통 위로 쓰러지는 일.
이것이 시인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인간의 살해 역사가 ‘나‘의 전쟁이 아닐 리 없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우리가 이미 죽은 자들의 고통에 휘말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허수경의 첫 시집은 먼데서 시작하는 듯 보이지만 시의 현장은 먼 데가 아니다. 시인은 죽은 존재들을 다시 낳고, 그들을 위해 쓸쓸한 밥상을 차리고, 사랑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과 회복에 현재 시제로 가담한다. 언제나 과거의 말단에 서 있는것. 시인의 시간만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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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내가 이 집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창밖의 초록을 그토록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우리가 이 집 말고 다른 집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날 날씨가 그렇게 화창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그날 공인중개사는 ‘이 집을 마음에 들어한 다른 부부가 오늘 오후 가계약 여부를 알려주기로 했다‘며 두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곤 ‘여기 집주인이 건물도 많고 신용이 확실한 분이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공인중개사 말이니까. 말 그대로국가가 인증한 사람이 보증하는 곳이니까 괜찮으리라 믿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지 않았다면 수호는 지금 내 옆에 있을 텐데, 우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한 번도입 밖에 내본 적은 없지만 지수는 수호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 집이 좋다고 한 사람도, 이 집에 살자고 한 사람도 자기였기 때문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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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신을 단속하는 일이라면 조금 자신 있었다. 나이들어도 세상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주변에 크게 폐 끼치는 존재는 되지 않으리라 과신했다.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을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되는 것.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 ‘나‘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점과 더불어 좌표도 같이 움직이는데다 다른 그래프와 충돌하며 곡선과 직선이 찌그러지고 휠 거라 예상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나이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 P175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희주도 그랬을까? 요즘 내가 느끼는 걸 희주도 체감할까?‘
부하 직원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거나 몸이 쇠해질 때마다 기태는 희주 생각이 났다. 이제 와 뭔가 의지하고 싶다거나 자기연민이 들어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쩐지 희주라면 이런 자신을판단하거나 혐오하기 이전에 이해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연애 시절 대화가 가장 잘 통했던 사람도 희주였고 살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도 희주였다. 그런데 우리는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희주의 안부가 궁금할 때 기태는 종종 차대표의 SNS 계정에 들어갔다. 게시물을 잘 올리지 않는희주에 비해 차대표는 자기 매체를 부지런히 운영하고 활용했다. 가끔은 차대표의 계정에서 희주의 소식을 더 자주 확인할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단둘일 때보다 여럿이 함께일 때가 많았지만 기태는 둘 사이에 오가는 묘한 기운이랄까 성적 긴장이 신경쓰였다. 특히 희주 쪽에서 좀더 적극적이었는데, 아는사람은 알아차릴 수 있는 암시와 암호를 볼 때 그랬다.  - P176

나를 향해 활짝 열린 로버트의 동공을 보자 내 눈동자도 거기호응하듯 크게 벌어졌다. 실은 며칠 전 나는 화면 속 로버트의 얼굴을 보고 작게 동요했다. ‘저 남자, 날 감상하고 있어‘란 자각이 들어서였다. 로버트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편에 속했는데도 그런 감정이 전해졌다. 동시에 ‘오랜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긴장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데 그게 전혀 느끼하거나부담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런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헌수와 헤어진 뒤 누군가와 정신적으로도또 육체적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 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사실 대상과무관하게 외국어 수업에는 어느 정도 성애적인 측면이 있었 - P233

다. 일말의 더듬거림과 망설임, 지연과 기쁨, 찰나의 교감, 수치심과 답답함, 긴장과 해소,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 실수와용서 등이 그랬다.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응. 나 잘 지냈어. 당신은?
-나도.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은 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더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같은 말과 몇몇 감상을. 얼마 뒤 로버트는 그 큰 눈으로 화면 속 슬라이드 교재를 훑다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 P234

별생각 없이 대꾸해놓고 방금 전 문장이 후 어떤 유혹처힘 들리면 어쩌나 걱정했다. 내가 로버트의 시선을 의식해 생긴 긴장이었다. 에코스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와 유대가 쌓이는 경우는 흔했다. 나 또한 샌드라나 로즈와 겪은 일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로버트로 바뀌자 그 공기가 좀 달라졌다. 어쩌면 온갖 풍부한 감정이 담긴 인간의 눈을 너무 오랜만에봐서 그런지 몰랐다. 뇌를 다쳐 일상적인 의사 표현이 어려웠던 내 어머니도 얼마간 나와 눈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그 안에는 어떤 미안함이나 고마움보다 의심과 비난이 자주아른거렸다. 음식. 그래. 엄마는 자기 음식을 제일 좋아했지. 다른 사람 칭찬은 잘 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는 누굴 만나든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는 데 가장 큰 관심을 쏟았다. 더불어 그걸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배역을 떠넘기는 데 능숙했다. 심지어 그게 딸이라 해도, 언젠가 헌수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엄마는 거의 재난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자기 딴에는 조실부모한 사람을 위로하려 한 말이었겠지만, 늘 그렇듯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거였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두 눈으로 내게 가장 많이 보낸 메시지는 ‘미안해‘도 ‘고마워‘도 아닌 ‘두려워......‘였지. - P235

일년 뒤 어머니마저 폐암 진단을 받는 바람에 오 년간 또 어머니를 간호해야 했다. 대학 시절을 포함해 거의 십 년가량을가족 간호로 보냈지만, 대학 졸업 즈음 어머니가 떠나고 졸지에 고아가 돼 병역을 면제받았다. 언젠가 침대에서 헌수는 "그십년 중 이 년 정도는 엄마가 나 빼준 거라 생각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헌수가 그런 농담을 하기까지 혼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현수와 헤어지고, 육 인용 병실 보호자용 침대에 혼자덩그러니 누워 있을 때면 더러 헌수와 함께 <러브 허츠>를 듣던 아침 풍경이 떠오르곤 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모 이름을 보고 불길한 표정을 짓던 내 모습과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눈으로 지켜보던 현수 얼굴도. 그때만 해도 그게 우리 관계의파열음이 될 줄 몰랐는데. 이제 와 헌수 말을 빌리자면, 그런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사람들처럼. - P250

병실에서 혹은 쇠락한 고향 골목에서 홀로 어둠과 마주하며나는 종종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미 많은 걸 잃었다 여겼는데 여전히 잃을 게 남은 삶 속에서, 자꾸자꾸 잃는 과정에서,
물수건으로 엄마 뒤를 닦고 엄마 눈을 본 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었던 때,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때, 그러지 못했으나 거의 그럴 뻔했던 때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가족 간병을 경험한 헌수는 어쩌면 그게 뭔지 너무 잘 알아서, 그걸 다시 겪을엄두가 안 나서 나를 떠난 걸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내 쪽에서 먼저 정중하게 도망친 거였지. 물론 칼같은 이별은 아니었고 그뒤 몇 번의 재회, 몇 번의 잠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먼저 안녕이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우리가 이제 다시는못 볼 사이가 됐다는 걸 알았다.  - P251

ㅡ.....
ㅡ나는 늘 부러웠거든 자기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ㅡ......
현수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아마 헌수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 되는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건 ‘좋은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일지몰랐다. 마치 내가 나의 삶에 계속 놀라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 삶도 잘 판단 않게 된 것처럼. 당연한 얘기지만 긴 시간 엄마 옆에 머물며 내가 가장 그리워한 사람은 헌수였다. 나와 결혼할 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 그랬다. 헌수와 헤어지고 이 년 뒤 엄마 병실에서 쪽잠을자는데 만취한 헌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보호자용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들고 슬며시 병원 복도로 나갔다. 그러곤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동화에 집중했다. 헌수는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만약 지금 너를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 - P252

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그러곤 그런 스스로가 창피했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날, 통화가 끝난 뒤에도 병실 복도에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 P253

나는 로버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력도 안 될뿐더러 지금 내 마음을 어색하게 번역했을 때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누락과 손실이, 하찮은 세부하나하나가 내 감정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으로 느껴질것 같아서였다. 기쁨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슬픔은 달랐다. 고통만큼은 내 슬픔의 언어, 감정의 뿌리, 모국어로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모국어로 말한들 과연 그게 온전히 전해질까?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고작 이렇게 말했다. - P253

로버트의 순수하게 활짝 벌어진 동공을 보자 내가 생각보다 이 이별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 시절 누군가와 정기적인 대화를 나눴다 해서, 긴장과 웃음, 안부를 나눴다 해서 헤어짐이 이렇게 서운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지. 직장에서는 그 모든 게 지겨웠는데. 사회적 감각의 스위치를 꺼두고만 싶었는데, 고향에서 엄마와 나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로세계가 쪼그라들자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실수하고, 변명하고, 거짓말하고, 반문하고, 더러 표 안 나게 유혹하고, 티나게 매혹하고, 긍정하고, 의심하고, 호응하는 사회적 몸짓이. 그래서 그 일부를 한동안 내준 로버트가 필요 이상으로 소중하고 친밀하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번쯤 캐나다에 직접 가보고 싶을 정도로.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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