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산책한다


보내고 돌아온 사람의 곁에
망각은 있다

비가 다녀간 흔적이 있군요
흙이 마르려면 시간이 걸리겠어요

망각은 커튼을 걷고 찻물을 데운다
다 타기까지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어요
새하얀 식탁보를 바라보며
선 채로 허물어지는 사람 곁에

망각은 창을 열고 손짓한다
망각의 손짓 한 번에 노랑턱멧새가 날아온다

멧새는 텃새예요 텃새는
계절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고 머무는 새를 뜻해요

물은 쉽게 끓는점에 도달하고

산책할까요?

당신은 축복받은 새에게서
시끄러운 새. - P88

닫히지 않는 불의 입구를 본다.

한 마리의 몸을 가르고
수십 마리로 날아오르는 새들을

당신은 모든 것을 등뒤로 보내려 하고

망각은 오르막길을 좋아한다.
한 걸음 뒤에서 걸으면
당신의 쏟아지는 뒷모습
발자국까지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끓어요, 휘발되도록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게

지워줄게요, 전부

잡아먹히며 평온한 하루가 간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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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오래 간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
노인처럼 따뜻하고 좁은 곳에 숨어 있고 싶다. 날씨만 좀 따뜻해지면 한강에 나가보는 것이 제일 좋은데, 한강의 물빛은 내 멜랑콜리를 가장 오랫동안 보아왔던 대상이다.
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마음이 얼어붙었다. 지금이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을 시간인데도 영하 7도, 내일 아침 기온은 영하13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독한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지만 내 몸이 버텨줄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간질환을 가족력으로 가지고 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그 때문에 차례차례 쓰러졌다. 하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심장병이 있다거나 신체적 기형을 갖고 태어나는 운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알코올이 그동안 나를 적잖이 - P226

위무했다. 알코올은 견고한 생활의 질서를 견디는 동안 생채기가 난 영혼을 달래주었고, 얕은 상상력에 기름을 부어넣어 주었으며, 만성적인불안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게 해주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술을끊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생장점을 손으로가리고 무작정 불리한 날씨를 견디는 겨울나무들에게 눈길을 좀 더 줘야겠다. - P227

한국일보문학상 시상식장에 다녀왔다. 수상자인황정은 씨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녀는 우리 회사의 청탁으로 원고를 쓴 필자이기도 하다. 의외로 시상식장은 한산했다. 동료문인들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또래 소설가들은 더더욱 없었다. 더욱 특이했던 것은 수상자의 가족조차 시상식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황정은 씨가 무척 고독하고 단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황정은 씨의 소설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뼈저린 맑은 적막이 그의 소설에푸른 독의 향기를 선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이없게도 어떤 작가들은 적막을 빌리기도 한다. 그의 내부에서는적막이 태어나지 않으므로 할 수 없이 적막을 어디선가 빌려오는 것이다. 그것은 가짜 적막이다.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흘러넘친다. 그러면서그는 끝없이 외롭다고 하소연한다. 자신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고 스•스로 맹렬하게 주문을 건다. 그의 적막은 인사도 잘하고 사회성도 밝은 이상한 적막이다. - P228

주간신문에 사진에세이 연재를 시작하기로 하고, 그동안 찍어서 남 몰래 보관해온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첫 번째 연재물에 들어갈 사진으로 나무를 찍은 사진을 골랐다. 내가 찍어서보관하고 있는 사진은 사람을 찍은 것과 동물을 찍은 것, 그리고 날씨를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첫 사진을 식물로 정했다. 이렇게생각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생명은 동물에서 식물로, 발언에서 응시로진화하기 시작했다고. 이것은 좀 경솔한 진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나는 노골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숨소리와 그것에서 나는 냄새를 예전만큼 긍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그것들을 역동적인 생의 작용이며 절제의 유혹을 초월한 순수한 에너지라고 찬탄해왔다. 나는 욕망을 언어로 말하는 그들의 명료한 의지와 의사가 맘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눈에 그것은 다만, 살아서 움직일 수있는 것들의 오만처럼 보인다. 살아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훨씬 고귀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 그리하여 나는 고양이보다 선인장이 편하고, 강아지보다 벤자민이 편해졌다. 선인장을 물어뜯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회초리 같은 것을 들고 고양이를 나무랄 것이다. - P285

투명하고 차갑고 푸르고 높고 따뜻한 상처의 힘


해거름의 술집에서 김도언을 처음 만났다. 술빛보다 찬란하고 깊은 눈동자는 황홀과 불안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나는 피리에 홀린 물고기처럼 그의 틈새에 파랗게 깃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궁토록 불친절한 사람이어서 함부로 스스로에게 희망의 언약을 베푸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곧 구원을 믿는 자의 결벽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다만 그의 눈빛에서 더 이상 나의 슬픔이 내 내부에만 머물 수 없으리란 것을 예감하고 말았다.
김도언은 여전히, 또 오래도록 ‘잘 웃지 않는 소년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상처의 힘을 온 영혼으로 살아내는 사람의 자세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울지 않는 사람과 잘 웃지 않는 사람 사이에 어떠한 불화가 존재할 수 있는지 나는 아직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투명하고 차갑고 푸르고 높고 따뜻한 책 안에서 나는 그가 이 세계에 대해 꿈꾸고 있는 화해와 용서와 구원의 증거를 물빛처럼 환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은 김도언에게 한 번 호명된 사람과 사물과 책들과 언어들이 비로소 어떠한 생명력으로 스스로의 놀라운 길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자명해진다.
경이로운 장르의 책 한 권이 우주 안에서 빠르게 하느님에게 잊혀지고 있는 지구의 위치를 다시 특별하게 붙들어 매어놓는다. 김도언의 사색가적 직관만이 베풀 수 있는 이적이다.

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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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인‘이라는 이데아적인 관념이 실재한다면, 시집을 내기 전의 시인이 시집을 낸 시인보다 진짜 시인에 더 가까울 것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집을 펴내는 순간 시인에게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시험이 오는 것 아닐까. 작가와 시인에게 오만함은 어떤 부분에서는 필요한 것인데, 그것은 당당함과 의젓함의 표현이어야 한다. 자신을 타자와 구별 짓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다른 이에 대한 업신여김의 표현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나 시인은 걸인보다 낮을 수 있고 황후보다도 높을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다들 황후보다 높은 쪽만 되려고 하지는 않는가.
책을 내기 전과 후, 상을 받기 전과 후, 혹은 편집위원 같은 영향력 있는 자리를 맡기 전과 후가 늘 다름없는 소설가와 시인,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문학의 희망을 발견한다. 내가 지지하는 문학은 낮아서 높아지는 문학, 세상의 그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 문학이다. 이게 불가능한것이라면, 아마도 내가 마시는 술이 조금 더 늘겠지? - P171

누구나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나게 되는데, 신중하면 신중할수록 좋은 선택의 순간은 세 가지라고 쓴 적이 있다. 배우자, 첫 직업, 칫솔이라고. 어디 이 세 가지뿐이겠는가. 모든 선택은 다 어렵고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요소들에 대해서 우린 선택의 기회조차 가질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그렇고, 형제가 그렇고, 직장 상사나 동료가 그렇다. 심지어는 사는 도시나 동네조차 우리 맘대로 결정하기 힘들다. 내 쌍둥이 형만 해도 회사의 명령에 따라 근무 도시를 다섯 번이나 옮겨야 했다. 나는 그 도시들의 이름을 간혹 중얼거리곤 한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들의 내역에는 시와 소설도 포함시키고 싶다. 시와 소설은 매순간 마주치거나 쏟아지는 언어, 사고, 상상력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작업이다.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는 동안의집중과 긴장을 쾌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시와 소설을 쓰면서 행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선택이란 사실상 시인과 소설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것은 그냥 시와 소설이 하는 것이다.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생각하자는 구조주의자들의 아이디어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 P175

시는 혹독한 결핍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 결핍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것이어서 참혹하다. 시 쓰기는 이 참혹의 진창을 뒤져 사금을 줍는 행위다. 여림 시인은 진창에 들어가 사금을 줍다가 평생토록 햇볕 한 번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나는 그의 죽음이 서럽다. 그를 지상의 영토에서 무자비하게 추방한 이는 다름 아닌 시인들이다. 그 잘나고 힘센 시인들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고 명랑한가.
여림 시인은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세상을 뜨기전까지 단 한 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가얼마나 ‘세상에게 철저히 지기만 하는 시인이었는지를. 그래, 모름지기 - P198

시인이라면 패배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패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시인은 실패한 시인, 아니 가짜 시인일 뿐이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나는 비겁하게도 세속의 편리와 풍요를 포기할 자신이 없어 시인의 길을 가지 못했다. 나는 비겁을 못 면했고 그 대가로 부끄럽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느 날은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다. 나는 지금 지나치게 불행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불행이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불행의 옷소매를 붙잡아야 하지 않는가. 같은 해 같은 지면으로 등단한 시인이 죽음으로써 내게 심어준 편견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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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어떤 위악적인 상징처럼, 상 위에는 이름 없는 개 한 마리가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사람 몇을 위해 온몸을 찢어 고기로 꿇고있었다. 선생님은 당신이 당장 내일 죽을지 아니면 몇 개월, 몇 년을 더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어떤 특정한 것도 희망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생과 사 따위 자신이 주관할 수 있다고 감히 믿었던 모든것을 자연의 섭리에 신의 뜻에 맡기겠다는 것.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왜 살고 있는가. 섬뜩한 단언이지만 질문을멈추는 순간 우리는 즉사한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시 왜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품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으로, 살기 위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질문에 대응하고 작동하는 정신의 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질문을 해야 한다.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지면 알 수 없는 것과 알지못하는 세계에 대한 몽상이 무성해질 텐데, 내 가슴속에서는 매일매일바람에 슬리는 질문과 대답이 지나간다. - P18

9월 11일이다. 불세출의 반미 저항운동가 빈 라덴이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빌딩을 공격했던 날. 하지만 내게 9월 11일은 릴케가 쓴 일기 형식의 매력적인 소설 《말테의 수기가 시작되는 첫날로 기억된다. 책의 첫 페이지, 9월 11일자 일기는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몰려든다. 하지만 내 생각에 사람들은이 도시에서 죽어가는 것만 같다. 방금 집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내 눈에보이는 것은 이상하게도 병원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20세기가 막 시작될 즈음, 릴케는 도시의 음울한 풍경을 비관적으로 묘사한다. 묘사하는 시인의 눈, 시인의 입술이 보이는 듯하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몰려들지만, 도시는 사람들에게 쉽게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시는 자본과 욕망으로 들끓고 그 거품 위에서 자란다. 그 거품에 질식할 수밖에 없는 섬약한 사람들은 도시를 경멸하면서도 도시를 떠나지도 못한다. 이미 전원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마치 선악과를 맛본 최초의 인류처럼.
이 책이 쓰인 것은 20세기 초, 산업자본이 삶의 레토릭을 막 지배하기 시작할 즈음이다. 릴케는 그 시대의 불우한 공기를 맡는다.  - P23

진화의 시절은 끝났다. 나에게 어울리는 퇴행의알맞은 속도를 참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점차 말을 지우고 침묵앞으로 나가야 한다. 구호와 선언으로 들끓는 세계, 좁은 골목과 비대한차들, 무너지는 집과 태어나는 욕망들, 착시와 오물들, 비극배우를 열심히 흉내 내는 시인들, 수많은 선구자들, 옳고 바른 이들, 영악한 자들이섞여 있는 이곳에서 맹렬한 혁명을 꿈꾸며 사는 것도 퍽이나 민망한 일이다. 나는 이곳을 버리거나, 아니면 진즉에 투항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이가 되어 있다. 한잔의 순결한 술을 마시고 중얼거려보자. 살아 있는 몸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진부한 것 아닌가. 이를테면, 살아 있는 몸은 체중과 성욕을 관리해야하고, 날씨와 은행 잔고 등을 체크해야 한다. 부패하지 않은 몸의 형편은 그토록 남루한데 나는 오늘 어디를 바라보나. - P55

당신들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문장은 온도를 가진다.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문장도 있고 피까지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문장도 있다. 좋은 문장은, 적정한 온도를 가진문장이다. 문장의 적정한 온도는 작가의 비범한 감각에 의해 통제된다. 문장의 온도를 통제할 감각을 가지지 못한 작가는 불행한 작가이거나혹은 가짜 작가이다. 그 감각은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천연적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지만, 글을 쓴다 - P68

는 행위 자체가 뜨거운 일은 아니다. 그것이 어떤 선동에 소구되는 격문일지라도,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의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과는 놀라울정도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장의 온도와 현실의 온도가 구분되지 못하고 연계될 때, 광고 문안이나 반성문 같은 천격의 문장이 나온다.
문장의 온도는 문장이 갖는 의미 내용에 대한 작가의 심리적 태도가만들어낸다. 그 태도는 필연적으로 ‘거리‘를 상정한다. 거리두기에 실패할 경우 작가는 문장의 온도를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가마에 불을 넣는 도공의 운명과도 같다. 가마에 바짝 다가갈 경우 도공은 화마를 입을수 있고, 너무 멀리 떨어질 경우엔 불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다. 의미 내용에 조건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의 심리적 태도가 뜨겁다고 느낄 때,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작가는 문장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노력을 해야한다. 반대로, 문장이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미적지근하다고 느낄 때, 문장을 가열시키는 감각이 필요하다. 문장은 대상에 대한심리적 태도가 변개하는 동안 빚어지는 의식의 흐름 같은 것이다. 요컨대 한 문장의 머리와 꼬리의 온도마저 다를 때, 그것을 감각으로 다스리는 것이 가능할 때, 그것은 천상의 시가 된다. - P69

문학은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이고 싶어도 모일 수 없는 소외되고 유리된 작가들의 이름을, 그 변방의 상상력을 우리는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가급적 환한 곳과 등을 질 때, 그의 정신과 문장은 홀로 영험해진다. - P135

병들어 죽은 대추나무를 베어냈다. 신동옥 시인이 거들어주었다. 마당이 훨씬 훤해졌다. 이제 햇볕과 대추나무는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내 키보다 조금 더켰을 뿐인 대추나무, 해마다 쭉쭉 커서 대추알을 주렁주렁 매달더니, 올해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요절한 천재처럼 굵고 짧게 살다 간 대추나무. 베어낸 잔가지는 뒷산으로 끌고 가 버리고 큰 가지는 화목재로 쓰기위해 양지에 눕혀 놓았다. 잘 마르면 장작을 만들어 난로에 넣고, 그 불로 동태탕이나 끓여먹어야겠다. 그런 계절이 온 거다. 파블로 카잘스의 첼로가 잘 어울리는, 펄펄 끓는 탕에 독한 술이 어울리는.
12월은 11월을 장사지내는 달. 11월을 엄하면서 보내는 달. 나는 허리가 아프고, 아픈 허리 때문에 손가락만 민첩하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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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자는 어디에 있는가


운명적인 의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나는 좋은 의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쁜 의자만 가졌던 것은 아니다. 의자를 주제로 세 편의 시와 한편의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이 의자에 대한 내 동경을 모두 해소해주진 못했다. 결국 나는 내 의자를 직접 만드는 경험을 가지게 될 것같다. 의자를 찾기 위해 긴 골목 끝으로 나아가 세상 앞에 첫발을 내딛은 적이 있다. 나의 의자는 어디에 있는가. 내 의자에 쓰일 나무는 어느산에서 자라고 있나. 이제 곧 북반구의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겨울은,
얼음과 불 따위 어떤 결벽들을 거느리는 계절이다. 얼음과 불은 언제나서로를 긴장하게 만든다. 방심을 느슨하게 대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달아난다.
민망하게도 나는 사람의 눈을 보면 그가 외로운 사람인지 뻔뻔한 사람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에 가깝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신발을 신어왔다. 신발에 이끌리느라 의자를 갖 - P14

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공주가 되지 못한 여자 친구에게 따뜻한 저녁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의자를 찾아야 해.
이 세계는 자본가들에게 충분히 장악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이상의 의자를 가진 자들이다. 이 지상의 사람들은 의자를 가진 사람과 의자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다만 착한 식물들과 함께살고 있다. 이런 비애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의자는 식물이 동물의 욕망을 가지는 동안 스스로 변한 것이다. 운명적인 의자를 결국 만나지 못하고 이 생이 끝난다면,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픔것이다.
먼지 쌓인 의자가 가득한 술집에서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워한다. - P15

지난 봄, 투병 중인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을 모시고 경기도 성남으로 보신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화려한 삶,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리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신 선생님은 가톨릭에 귀의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궁구하고 있던 터에암 선고를 받으셨다. 삶의 유한함과 오만이 낳은 죄를 깨닫고 당신을 모시기로 했는데, 상을 주는 대신 병을 선물로 주셨을 때 신에 대한 원망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수십 차례의 방사선과 항암 치료, 세간의 지나친 관심 등 어지간히 투병생활에 이골이 난 그 즈음의 선생님은 모든것을 달관한 듯, 인자하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시 삶을 산다면 이름을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모든 표식을 버리고, 이런 시골에 파묻혀 시골 무지렁이 여인과 살 섞으며 빈대떡이나 붙여 팔며 살고 싶다. 탁주는 직접 손님들이 먹고싶을 만큼 떠먹게 ‘다라이‘ 속에 쟁여놓고 바보처럼 단순하게 살고 싶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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