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그림‘ 시리즈 중에는 색다른 그림 한 점이 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개>라든가 <모래에 묻히는 개>라고불린다. 보기에 따라서 있는 힘껏 급류를 헤엄쳐 건너는 것같기도 하고, 개미지옥의 흘러내리는 모래에 삼켜져 어찌할도리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 개는 나야, 라고 
생각했다.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는 때로 힘찬 물살처럼 빠르게 흐르지만 대개 기운이 빠질 정도로 느리다. 그리고 갔다가 되돌아왔다가 하는그 과정의 국면마다 희생은 차곡차곡 쌓여 가야만 한다. 게다가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번번이 낯 두꺼운 구세력이 가로채 간다.
하지만 그 헛수고처럼 보이는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떤 열매도 맺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모래에 묻히는 개」,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프란시스코 데 고야, <개(모래에 묻히는 개)>,
1819-23년, 석고 벽에 유채(현재 캔버스에 유채), 131.5×79.3cm,
프라도미술관 소장.

‘체감 시간‘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다.
이런 말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체감온도‘는 온도계가 표시하는 온도와는 별개로 사람이 느끼는 온도를 가리킨다.
‘체감 시간‘은 거기서 나온 연상으로, 시계나 달력상으로는 같은시간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것이 빠르다거나 느리다며 다르게 느끼는 걸 말한다.
나는 요즘 ‘체감 시간‘이 무척 빠르다.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것은 인생의 끝이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고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두렵다거나 슬프다는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원래 신슈信州 (나가노현)의 고원에 자그마한 산장을갖고 있었는데, 이번 봄에 고도가 조금 낮은 곳으로 옮겼다. 그래도 해발 1,200미터 정도는 된다. 숲속의 작은 집이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 P13

순식간에 지나가리라.
이 계절이 되도록 집 주변에는 눈이 수십 센티미터나 쌓여 자동차를 주차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로가 꽁꽁 얼어 스노타이어를 장착해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없었다. 그랬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나무들이 일제히 새싹을 틔우고 매화, 복숭아, 벚꽃,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등색색의 꽃들도 피었다. 순백이던 야쓰가타케 연봉(해발2,899미터의 최고봉을 비롯한 8개의 고봉이 늘어선 산)은 산꼭대기 부근에만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다. 저 추웠던 겨울은 한바탕꿈이었던가. 아니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꿈인가. 흡사 여우에 홀린 것 같다. - P14

연구실의 책을 버린다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 학생들에게 가져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막상 책을 처분하려니 쉽지않다. 오래된 책을 정리할 작정이었지만 1970~80년대에 손에넣은 책들은 귀중하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쓸데없이 그런 느낌이 든다. 내게는 현실의 기억과 얽힌 일들이 그들에게는먼 과거의 일이다. 예컨대 베트남 전쟁이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그렇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당시 읽었던 책을 책장에서 꺼내 한 구절 읽어주기도 한다. 읽은 뒤 문득 깨닫고 보면 그 책은30~40년 전에 입수한 것이다. 학생 시절의 나에게 누군가 해방(일본에서는 종전終戰이라 한다) 전의 책을 읽어 주는 격이다. 학생 시절의 나는 내 앞에 놓인 시간에 끝이 있다는 걸 개념상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건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언제까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을 상상하고는 조바심을 쳤다. 젊은이와 노인의 ‘체감 시간‘에는 그만큼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 P15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그래서 젊은이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식의 낙관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그 반대다. 노인이 된 내 경험과 감각이, 시간은 얼마든 넘쳐 난다고 생각(착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 P16

나는 1951년생이다. 그해 조국에서는 한국(조선)전쟁이 한창이었다. 사춘기 때는 베트남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되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한국은 군사독재의 절정기였고, 두 형은 투옥되어 있었다. 서른 살 이후의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사가 ‘임시적인 삶‘이었다. 중장기적인계획을 세우고 인생을 설계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쉰 살 가까이 되어 우연히 대학에 취직했을 때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주변 동료들이 정년 때까지의 수입과 지출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모습이었다. 사회조직 속에 편입된 머조리티(다수자, 주류)의 ‘안정‘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죽을지도 예측할 수없는데 노후를 대비한 양치질이라니, 무리였다. 이 나이 되도록 어떻게든 살아온 것은 수많은 우연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일본 사회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일본에서 인생 마지막까지 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당초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일조선인을 배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1960년대 말까지 ‘국민 건강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1년 뒤면 나는 만 70세다. 정년퇴직이다. 말 그대로 노인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오래 - P19

살기를 바란 적도 없다. 애당초 장수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자체를 가치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인생의 자기목적화라 할 수 있다. 인생의 가치는 그런 차원의 것과는 달라야 한다. 사람은 진실, 아름다움, 정의, 공정, 평화 등 개개인의 삶을 넘어선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게 아닐까. 젊은 시절부터 그런 생각이었다.
물론 그 ‘가치‘가 가짜이거나 왜곡된 것인 경우도 많다. 거짓 ‘가치‘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데에 이용되어 온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 원칙조차 내팽개쳐진 세계,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식조차 잃어 가는 세계다. - P20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함‘이라는 탁월한 고찰을 제시했다. 그것은 막대한 희생의 대가로 얻은 평화를 위한 고찰이다. 하지만 이 역시 크고 작은 아이히만들의 끊임없는 출현을 막을 힘이 되지는 못했다. 국회에서 태연히 거짓말을 지껄이는 정치인, 자료를 은폐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관료, 그것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멍하니 사고 정지 상태에 빠져 있는 다수의 국민. 일본사회의 이런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정년을 연장하려 하는 한편으로 의료비나 사회보장비는 억제하려 하고 있다. 켄 로치 KenLoach (1936~) 감독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묘사한 것처럼, 노인과 사회적 약자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 P22

이 나이까지 살아남았기에 ‘악몽의 시대‘를 목격하게 됐다. 형들이 옥중에 있던 군사정권 시절에 "나는 그저 두 눈 부릅뜨고이 운명이 어디로 향하는지 속속들이 지켜보라고 스스로에게 명했다."(「나의 서양미술 순례』) 지금은 이 빠진 무력한 노인이 됐지만, 30년 전에 한 그 말을 다시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는 그렇다 치고, 눈만큼은 부릅뜨고 지켜볼 작정이다. - P22

지금 세계를 뒤덮은 불안은 ‘코로나 사태‘만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뉴스에서 미얀마군이 자국 시민들을 폭행하는 장면을보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광주다.‘ 다친 시위대를 구조하려던 구급대원 세 명을 군인들이 구급차에서 끌어 내려 곤봉과 총대로 마구 두들겨 패는 장면이었다. 그 구급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목숨은 건졌을까. 그 뒤의 일은 모른다. 이런 무도한 폭력이 미얀마뿐 아니라 홍콩, 태국, 벨라루스, 러시아 등지에서 일상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 폭력이 ‘역병처럼‘ 세계에 만연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시대인가.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앞으로 1년. 한국이 저 암흑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정년 뒤 조용한 은퇴 생활을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지만, 세계는 그것을 허락해 줄 것 같지 않다. - P28

화를 잘 낸다. 특히 컴퓨터나 휴대폰을 쓸 때 잘 다룰 줄 모르는 건 물론이고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 자체에 어두운 탓에 마음이 몹시 상한다. 내 패스워드를 잊어버리고, 신용카드 결제도 뜻대로 안 된다. 그런 자신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한다. 하얀천에 뚝뚝 떨어진 ‘늙음‘이라는 검은 얼룩이 서서히 번져 나가는느낌이라고 할까.
20년쯤 전에 독일의 뮌스터라는 도시에 갔을 때 공영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차체를 비스듬히 아래로 기울이는 모습을 봤다. 승객, 특히 고령자가 부담 없이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한 장치였다. 나와 아내는 거기에 감동해서 우리가 사는 일본의 도시에도 이런 장치가 어서 보급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우리가 그런 혜택을 입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없이 고령자나 약자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 뒤 어느새 일본에도 그런 버스가 꽤 보급되었다. 지금은 그 버스를 반기며 감사히 노약자석에 앉게 됐다. 50대 무렵의 나는 고령자의 ‘타자‘로서 ‘타자‘인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내 몸에 ‘늙음‘이라는 낯선 타자가 비집고 들어와 나의 내부를 침식하고 있다고 느낀다. - P37

이 이야기는 ‘해방된 노인‘들이 떨치고 일어나 작금의 상황에 파문을 일으킨다는 꿈, 일종의 우화다. 현실의 많은 청년들은 자진해서 ‘회사 인간‘이 되어 안정을 얻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다. 가토의 ‘노학공투‘는 흥미진진한 꿈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런 우화를 나도 이야기하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려 하지 않는 꿈, 다른 인생의 꿈을 제시하는 것, 그 역시 노인이 할 수 있는 사회 공헌이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늙음이라는 타자‘와 끈기 있게 사귀고 대화해 나갈 작정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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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낳다


겨우내 몇 번의 혹한이 다녀갔지만
좀처럼 눈도 비도 내리지 않았다
나는 불 꺼진 빈집에 들어
남쪽 드넓은 들판의 험준한 바위산을 어림
한다
다른 산들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
푸른 밤이면 가랑이 사이에서 달을 낳는
슬픔의 깊이를

나는 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슬픔으로 가득한 지워지지 않는 바다와 포구가 있음을

나는 또한 안다
거친 수로를 맴돌던 바람 아직 잠들지 못하고
산정의 키 작은 나뭇가지 상고대는 꽁꽁 얼어 있음을

나는 기억한다
혹한 속에서도 강바닥부터 조금씩 물이 
흘러 물길을 열고

흐르는 것은 모두 크고 작은 슬픔을 안고 간다는 것을

나는 손을 뻗어 속삭인다
처마 밑 붉은 등 바람에 흔들리는 밤이면
거친 산등성이에 꽃망울 조심스레 잎을 낼 것이라고

나는 또한 말할 것이다
그 무렵 늦은 마음으로
나 다시 너에게로 갈 것이라고

먼 풍경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는
제 몸의 가지가 어디로 뻗을지 알지 못한다
수천 년을 흐르는 강 또한
물길이 어디로 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지가 어디로 뻗든
물길이 어디로 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지마다 초록이 오르고 꽃이 만개하고
물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움트는
나무와 강이 품고 빚어내는
먼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뻗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하여 그것들이 빚어낼 훗날의 풍경 또한
서둘러 예단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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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쓰기는 독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글쓰기에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타자와의 소통이 되어야 하죠. 그 타자가 나 자신일 때는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고, 사회적인 자소서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라면 그 사람과의 원활한 소통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아야 해요. 꼭 명심할 것은 사회적 자기소개서의목표는 이 글을 보는 타자를 배려해야 하고, 고려해야 하고, 그 사람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 P247

매끄럽게 글을 쓰는 것과 번지르르하게 쓰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자소서는 여러분의 표현 능력과 센스를 보는 수단입니다. 그리고 정성스러움도 봅니다. 자소서의 특징을 알고 짜임새 있게조직했다는 사실을 구조와 문단에서 보여줘야 해요. 인사담당자는 글을 보면서 조직 생활을 잘할 친구인지, 논리적인 친구인지,
핵심을 잘 파악하는 친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글은 주인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최대한 정성을 들여서 쓰면 분명 이로운 점이있을 겁니다. - P258

자소서도 마찬가지예요. 오타가 있는지 꼭 확인하셔야 해요. 오타보다 더 심각한 실수도 있습니다. 회사 이름을 잘못 쓰는 겁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냐고요?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종종 합니다. 제 이름이 나민애인데 학생들이 제 이름을 나인애, 나민예 등으로 바꿔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메일을다 읽기도 전에 기대감이 와장창 깨져요.
어떤 학생이 A전자에 자소서를 넣었어요. 꼭 다니고 싶다는말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화를 썼는데 ‘저희 아버지께서는 예전부터 B전자제품만 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예전부터 백색가전은 B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썼다면 어떨까요? 수많은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회사 이름만 바꾸다가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죠. 안 뽑고 싶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소서를 쓴 다음에는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보는 퇴고를 꼭 하시길 바랍니다. - P259

구하기 시작했을강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제가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래도하긴 해야 하니 카메라를 앞에 두고 셀프 촬영을 했습니다. 이후에 촬영한 내 목소리를 듣는데 소름끼치고, 영상 속의 내 모습이뚱뚱하고 못생겨 보이더라고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열심히 촬영하고, 열심히 봤습니다. 보다 보니까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다음엔 녹음기를 사다가 제 말을 녹음했습니다. 먼저 초 단위로 강의 스크립트를 썼습니다. 그리고 3분짜리 5분짜리 스크립트를 외우고 심지어 농담까지도 외웠죠. 그걸 녹음하고 다시 듣고또 녹음하고 다시 듣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실력이 늘어납니다. 저처럼 내향적인 사람도 발표를 잘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기만 한다면요. - P270

발표를 할 때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시선 처리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 눈을 바라보는 거죠. 엄청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 한 명씩 눈을 봤는데 그러면 저와 눈이 마주친 아이들의 고개가 파도타기처럼 다다다다 숙여집니다. 선생님은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저같은 소심형 인간은 상처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빈 책상에 놓인 가방을 보고 얘기하거나 학생들 노트북에 붙여진 스티커를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허공을 보면서 얘기할수는 없잖아요. 시선을 마주치는 게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크더군요. 그럴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쳐다보는 것이 방법입니다. 그리고 좀 익숙해진다 싶을 때 눈을 조금씩 맞춰 보는 거죠. - P271

목소리 톤도 중요합니다. 앞에서 발표할 때는 의도적으로 톤을 낮춰서 시작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당황하면 목소리 톤이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더 낮게 시작하세요. 음계로 따졌을때, 평소 내 목소리가 ‘미‘ 톤이라면 발표에서는 ‘도‘에서 시작하세요. 그래야 ‘솔‘에서 끝납니다. 평상시 ‘미‘ 톤인데 긴장해서 ‘미나 ‘파‘에서 시작한다면 초음파 돌고래 톤으로 끝날 거예요. 듣는 사람도 당황스럽고 본인은 더 당황스럽겠죠.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잠깐씩 쉬어주는 것도 팁입니다. 급하다고, 부끄럽다고 쉬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말과 말 사이에 휴지를 넣어주는 거예요.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과말, 문장과 문장 사이의 속도를 조절하면 발표자가 안정되었다는인상을 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발음도 좋아져요. 제가 사실 발음이 좋은 편은아니라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넣어줘서 보완하곤 합니다. 시선, 목 - P271

소리 톤, 속도, 말할 때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조절하면 이사님 앞에서 발표를 하든 면접관과 심층 면접을 하든 크게 당황하지 않을수있어요.
마지막으로 자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에 나와 서는 순간, 청중들이 보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발표자의 뒤통수입니다. 만약 피피티를 설명하는데 몸을 완전히 돌리고 등만보인다면 어떨까요? 청중들이 불편할 수 있겠죠. 그러니 해야 할말은 미리 다 외우는 게 좋습니다. - P272

내가 대답을 못 할 질문이 들어왔을 때도 우아하게 반응해야합니다. 우선 버퍼링 시간을 가져보세요. 바로 받아치지 마시고 3초정도 ‘음‘ 하는 생각의 버퍼링을 거치고, 그다음에 "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저쪽에서 나에게 싸움을 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참 좋은 질문이네요"라고 말하는 거죠. 그다음에, "그 질문의 내용을 보완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잘 조절하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반드시 즉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미루고 현명한 대응을 추후에 마련하세요. 이런 여유의 전법이 필요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 P273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항상인문학적인 인간으로만 살 수는 없죠. 모든 글을 다 잘 쓰고 싶지만 잘 안되더라도 메일 등 공적인 글쓰기로 소통을 잘하면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궁금했지만 사실 누구에게 물어보기 애매했던 부분들까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는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늘 만나왔던 글쓰기에 대해 되돌아보고, ‘나는 제법 잘 써요‘라는 성취감 속에 사시면 좋겠습니다. - P273

책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독후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독후감과 서평은 조금 다릅니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의 차이죠. 독후감은 독후감대로 의미가 있고, 서평은 서평대로의미가 있습니다.
독후감은 영혼을 성장시키는 글입니다. ‘그 책을 읽었더니 나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었어요‘, ‘책을 읽었더니 내 심장이 이렇게 반응했어‘ 이렇게 심장의 말을 쓰는 것이 독후감입니다. 서평은 독후감에 비해 조금은 지적인 영역이에요. 심장이 한 말을 바탕으 - P279

로 하되 머리가 이성적, 지적,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쓴 글이죠.
영혼의 성장은 누구의 문제일까요? 나 자신을 위한 문제입니다. 독후감은 나를 위한 글쓰기예요. 여기 민지라는 친구가 기후위기로 열병을 앓는 지구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가정합시다. 민지는 에어컨을 오래 틀었던 일을 반성하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지않은 일을 반성하고, 에너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을 반성하며, 이제부터 환경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실천도 계획하죠. 이것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서평은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요, 내가 쓴 글이여러분에게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의 글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쓰기죠. 독후감은 독자가 없어도 돼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읽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본인을 위한 글쓰기니까요. 하지만 서평에는 독자가 있습니다. 서평은 글을 쓴본인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예비 독자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 P280

독후감에서는 개인의 과거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읽었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래서 읽은 나의 소감을 강조하고, 나개인적인 반응을 적고, 이런 가치를 내면화하게 되었다고 서술합니다. 반대로 서평은 우리의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주는 글이니까요. 그래서 독후감보다 보편적인 반응을 예상하며, 내가 파악한 가치를 남과 공유합니다. 즉, 독후감이 나에게 집중하며 나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개인의 글쓰기라면, 서평은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나누는 글쓰기입니다. - P280

앞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서평을 쓰면 ‘이 책이 내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때문에 인생 독서를 하게 되죠. 내 영혼의 서가에 책을 꽂는 겁니다. 서평을쓰려면 오래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분석까지 하니 추론 능력이 높아집니다. 읽기가 배우는 ‘학의 영역이라면 서평쓰기는 익히는 ‘‘의 영역입니다. 두 가지가 합쳐져서 비로소학습이 되고 공부가 완성됩니다.
서평을 읽으면 책을 안 읽은 사람도 본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최신 트렌드를 알고 싶지만 책을 다 사서 읽을 수 없다면 그책에 대한 서평을 찾아서 읽어보세요. 또는 책을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될 때도 서평 읽기는 유용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을 읽으면 희미했던 점이 뚜렷해지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도알게 됩니다. 책뿐만이 아니라 영화도 그렇잖아요. 어려운 영화를 본 후 이해가 잘되지 않을 때 영화 평론을 찾아보면 그 장면이 그 - P281

런 의미였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처럼요.
서평을 많이 읽고 쓰면 다른 텍스트를 분석하는 능력치도 향상됩니다. 특히 전문 서적이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레벨이 상승하죠. 읽기로는 정리가 안 될 때 글로 쓰면 정리가 됩니다. ‘남이 쓴 한 권의 책이 내가 쓴 한 페이지의 글‘이 되었을 때 그 책은 내책이 됩니다.
서평은 독후감을 잘 써본 사람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독후감에 너무 빠져 있으면 서평을 쓰는 데 불리해집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서평엔 독후감적인 부분이 존재합니다. 독후감을 쓸때 어떻게 쓰나요? 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됐는지 이유를 쓰고 줄거리를 쓰죠. 그리고 내가 느낀 점에 대해서 소감을 붙입니다. 이런점은 서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읽은 책의 줄거리와 느낌이 서평에 들어가죠. - P282

다만, 서평은 이것만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독후감과 유사하지만 ‘읽었노라, 즐겼노라, 느꼈노라‘만 쓴다면 서평이라고 할 수없습니다. 서평에는 말 그대로 책에 대한 평가, 장점과 단점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들어가야 합니다. 저자에 대한 사전 조사도 필요하죠. 분석을 하려면 경험도 있고 데이터베이스도 풍성해야 합니다. 뭔가 알고 배운 사람이 분석을 잘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독후감 쓰기를 추천하고 성인에게는 서평 쓰기를 추천합니다. - P282

서평은 의외로 배우기 쉬운 글쓰기입니다. 이건 일종의 장르 글쓰기라서 문법이 존재하거든요. 장르 글쓰기란 여기에 어떤 내용이들어갈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글쓰기입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하죠. 어떤 약속이 있냐고요? 이 책을 안 읽은 사람들에게 모종의 도움을 줄 거라는 약속입니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책 제목을 넣고 서평을 찾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 P283

생각할까?‘, ‘나는 이렇게 판단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판단할까?" 이런 걸 알고 싶어서 찾습니다. 또는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어떤 책인지를 알고 싶을 때도 서평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 책에 대해 알고 싶을 때도 서평을 읽으면 책의 대략적인 윤곽을 알 수 있습니다.
안 읽은 사람도 어느 정도는 읽은 듯 만들어 주는 게 서평의 규칙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장단점이 있고, 여기에 주목해야 하고, 여기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서평이 뭔지 아는사람이 다른 서평을 찾아서 검색하고, 서평이 뭔지 아는 사람이 규칙에 맞추어 서평을 쓰는 겁니다. 서평의 독자는 책의 예비 독자들입니다. 고객이 분명한 글쓰기라는 것이죠. 그래서 서평을 장르 글쓰기라고 하는 겁니다. - P284

서평의 중반부는 줄거리로 시작합니다. 줄거리 요약이 나온다? 서평 좀 읽고 써본 사람들은 ‘척‘ 하고 알아듣습니다. 이제 앞부분이 끝나고 중간 부분이 시작된다는 것을요. 그러니까 ‘이제부터줄거리를 요약하겠다‘는 말은 쓰지 마세요. ‘여기가 바로 책의 내용이야‘ 이런 얘기도 필요 없어요. 그냥 줄거리 요약이 시작되면그게 중반부의 시작이 됩니다.
단, 줄거리는 길게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줄거리 요약이 길면 내가 분석하고 판단한 장점과 단점에 대해 논할 분량이 줄어듭니다. 어디까지나 줄거리의 ‘요약‘입니다. 요약은 간략하게 쓴다는말입니다.
좋은 비평문을 쓰려면 책을 장악해야 합니다. 내가 이 책을 장 - P287

악했는지 아닌지 셀프 점검하려면 이 책을 한 문단으로 깔끔하게요약할 수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서평의 줄거리는 짧고 굵게, 분명하고 깔끔하게 한두 문단 정도로 쓰면 됩니다.
요약을 마무리했다면 이제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딱 3개만 찾으세요. 직접 인용을 할 부분입니다. 왜 3개냐고요? 10개, 20개도 찾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이 중요하다는 말은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을 선택해서 고르는 일도 중요한판단입니다. 뭔가를 발췌하고 인용했다면 왜 그게 중요한지를 쓰세요. 이 부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지, 어떤 상징이 있는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쓰는 거죠. 줄거리와중요한 부분, 중요한 이유. 여기까지가 서평의 중반부입니다. - P288

내가 준 별을 문장으로 표현해 보세요. 어떠어떠한 면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어떤 점에서 긍정적이다, 무엇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총평을 내리세요.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할지 쓰는 겁니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번아웃이 온 사람,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 등이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과 이유를 적으면 마지막 결론이 완성됩니다.
조금 모자란다 싶으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가치를 제시하고, 연계 도서 등 확장할수 있는 유형을 제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 P289

이런 구조가 서평의 가장 흔한 패턴입니다. 물론 변주도 가능합니다. 누가 읽으면 좋을지 대상을 서두에 밝혀도 좋고, 줄거리를 글 맨앞에 써도 좋습니다. 서평 쓰실 때는 이런 점을 꼭 기억하세요.


°서평이란 책을 직접 읽고 쓰는 것이다.
°책만 대상으로 쓰지 않고 저자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쓴다.
°단 한 줄이라도 나의 ‘판단‘이 있다면 성공이다. - P289

저자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그의 어마어마한 이력 때문에 비판적인 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평에 장점만얘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단점만 얘기해야 할까요? 그저 자신이본 것만 쓰면 됩니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더 없어도 될까 걱정하는 분도 있는데, 얹어도 됩니다. 저자는 열린 마음으로 책의 장점과 단점을 귀담아들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책이 본인한테 좋았으면 ‘나한테 좋았는데 당신한테도 좋지 않을까요‘라고 쓰고, 이 책의 어느 부분이좀 아쉬웠으면 ‘이 부분이 아쉬운데 당신한테도 좀 아쉽지 않을까요‘라고 쓰는 거예요. - P290

장점을 쓸 때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어느 부분이다.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점입니다‘라고 쓰는 겁니다. 소설이라면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어느 부분입니다, 그부분은 우리에게 이러한 울림을 줍니다‘라고 쓰는 거죠. 실용서라면 ‘독자들에게 가장 큰 효용이 되는 부분은 어디이고, 이 부분의지표가 효율적입니다‘라고 쓸 수도 있겠죠. 이런 장점 찾기가 서평의 분석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특징을 잘 찾아낼 수 있을까요? 대게를 먹을 때살을 잘 파먹으려면 포크 같은 기다란 꼬챙이가 필요합니다. 도구 - P290

가 있어야 살을 효과적으로 많이 긁어낼 수 있잖아요. 책도 비슷합니다. 중요한 부분을 골라낼 때는 미리 이런 문장을 적어놓고 시작해 보세요.
‘주목할 부분을 한번 찾아보자.‘
‘감명 깊은 부분을 찾아보자.‘
이렇게 써서 포스트잇으로 붙인 후 찾으면서 읽으면 훨씬 잘보입니다. 중요한 부분과 특징을 뽑아야 책에 대한 장악이 가능하고 남한테 도움도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의도적으로 저런 문장의도움을 받으세요.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기도 하거든요.
장점 쓰기보다 어려운 것이 단점 쓰기입니다. 내가 단점을 써도 될 수준인가를 고민하진 마세요. 단점이 보이면 쓰는 겁니다.
단, 단점이 없는데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단점을 못 찾아내면 저자에게 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보이는그대로, 특징적인 부분을, 그것이 좋든 나쁘든 밝히는 게 서평의 분석입니다.
만약에 어느 부분에서 책의 허점을 
발견했다면 이렇게 쓰세요. ‘어떤 점이 아쉽다‘ 혹은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더 좋은 저작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등이 단점을 서술하는 서평의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 P291

주제적인 제목, 즉 가제를 정하고 그 가제를 따라서 한 편의 글을완성했다면 이제 최종 제목을 붙일 시간입니다. 최종 제목 쓰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글쓰기 수업의 심화 단계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제목에 대한 겁니다. ‘어떻게 하면 제목 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저는 최종 제목을 짓는 네 가지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식 외에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저는 네 가지 공식 중에서 하나를 골라 적재적소에 쓴다면 제목 쓰기의 난관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09

내가 쓴 글이 읽는 사람에게 훅 들어가길 원한다면 돌직구 제목을 선택하는 게 좋겠죠. 새벽 감성으로 촉촉하게 썼다면 감수성 제목을 생각해 보세요. 지적이고 학문적인 분위기를 주고 싶다면 모범생 제목을, 다른 사람들에게 트렌디하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싶다면 이상한 스타일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 넷 중에 여러분이 쓰실 만한 게 하나는 있겠지 싶어서 이렇게 제목을 만드는 공식을 준비해 봤습니다. 제목 짓기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면 이 넷 중에 하나를 실천해서 본문에 맞는 제목을 찾길 바랍니다. - P315

글쓰기를 땅에 글자라는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제목을 심는 곳이 가장 비싼 자리입니다. 정말 비옥하고 좁은 자리이기 때문에 선별한 단어만 잘 배치해야 합니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금싸라기 땅이 바로 제목의 자리죠.
가제는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도 있지만 수식어를 덧붙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옳은 끝맺음으로써의 최종 제목도 만드는 데 전략이 꼭 필요합니다. 제목 하나를 어떻게붙이느냐에 따라 본문이 활짝 피느냐, 조금 흐려지느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 P317

우리는 일상에서 제목을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목 쓰기를 굳이 배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일상에 제목의자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광적으로 메모를 하는 편인데요, 날마다 오늘 하루를 기념하기 위해 일기를 씁니다. 다이어리 꾸미기도 퍽 좋아해요. 오늘 일과 감정을 자세히 쓸 시간이 부족하면 간단하게나마 메모를 남깁니다. ‘이상하지만 기분은 좋았던 날‘, ‘구름이 예뻐서 사진을 남겼던 날‘, ‘올해 석양이 제일 예뻤던 날‘, ‘아이들이 속 썩여서 많이 힘들었던 날‘, ‘남편하고 싸운 두 번째 날‘ 등 이렇게 쓰죠. 이런 글들이 저의 하루를 마감하는 제목이에요. - P317

저는 하루를 잘 마감하고 제목으로 남겨서 일기에 묻어두고 잊어버려야 다음 날을 잘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에도 제목을 붙일 수 있어요. 카페에 한두 시간 있었다면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마시고 카페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해 제목을 붙여보세요. 그 제목이 모이면 오늘 하루의 제목이 됩니다. 하루의 제목이 모이면 1년의 제목이 되고, 70년, 80년 쌓이면 우리 인생의 제목이 됩니다. 여러분도 하루를 잘 살고 마치면서 ‘오늘의 제목‘을 달아보세요. - P318

여러분과 저는 한 편의 책을 쓰듯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저자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그 여정 중에 잠깐 만났습니다. 작은 하이파이브 같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맨 마지막 날에 우리가 우리의 책장을 덮을 때 좀 뿌듯한 제목이 달리기를, 당신이라는 책의 멋진 제목을 응원할게요. 결국 국어는 그 제목 하나를 위해 배우는 거 아닐까요.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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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가 누군지 명확하게 모른다. 저 소설가도 그것을 찾고있다. 나는 소설을 보면서 그가 찾은 답변을 살펴보겠다."
우리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이 있고, 진정한 나를 알아내는 것은 불교에 귀의해 오랜 수련을 거쳐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며 지속적으로 탐색해 보는 거죠. 수많은 경우의수를 말이에요. - P115

정리하면 소설은 일종의 인간 탐구 보고서입니다. 소설을 말그대로 풀면 작은 이야기거든요. 누군가는 소설을 ‘잡스러운 이야기‘,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뒷담화 같은 이야기‘라며 폄하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적으로나 양식적으로나 인간 존재를 이렇게까지 집중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한 경우가 거의 없어요. 소설은 누적된 인간 경험의 총체이며,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한 일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고, 인간이 어디까지 될 수 있고, 어디까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탐색하며 소설을 읽으면 참 좋습니다. - P117

저는 드라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추리물과 청춘물을 즐겨보는데요, 우리나라 드라마를 싹쓸이하고도 더 이상 볼 게 없으면대만드라마로 갑니다. 일본 드라마와 중국 드라마로도 가요. 그런데 드라마가 좀 질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소설로 갑니다. 드라마도 재미있지만, 소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를 구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압도적으로 많고요.
영상으로 보여줄 수 없는 무거운 진실이나 심의에서 탈락할수 있는 이야기, 깊고 내밀한 묘사, 시청률 때문에 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소설에서는 접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와 소설을 양손에쥐고 있을 수 있다면 정말 최고일 것 같네요. - P123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20명 안팎의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으면 어디 가서 대화할 때 빠지지 않았어요. "너그거 읽었어?", "너도 읽었어?"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작가들이 많다는 건 우리에겐 축복이고 장점이죠. 골라 읽을 수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뜻이니까요.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 분모가 사라지고 다양성의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소설의 지형도가 북두칠성처럼 큰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은하수입니다. 다양성의 지평이 확대되면서 ‘북두칠성의 시대‘에서 ‘은하수의 시대‘가 되었죠. 그만큼 본인 취향의 소설을 고르시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아쉬운 것은 책 읽는 독자가 줄어들었다는점입니다. 요즘엔 소설보다 영상을 더 많이 탐색하죠.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양성의 총합이 줄어드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상 탐색 외에도, 소설 탐색 또한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 P128

"세상에 홀로 우는 것은 없다. 혼자 우는 눈동자가 없도록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빚어졌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위로를 받았어요. 세상에 홀로 우는 것이없도록 우리가 두 개의 눈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손도 두 개입니다. 외로울 땐 나의 왼손이 오른손을 잡아줄 수 있죠. 이런 생각을 하면 비통한 마음을 쓴고전시가들은 나의 오른손을 잡아주는 나의 왼손, 혹은 혼자 울지말라고 생겨난 두 눈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아주 오래전부터 견뎌온 사람들을 보면서 오늘 나의 슬픔은 조금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슬픔 앞에서 내 슬픔은 위로를 받고 조금 더 견뎌볼 힘을 얻습니다. - P142

생명을 주제로 하는 동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가끔씩 사는 게 삶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경쟁이 일상화돼 있으니까 내가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 거죠. 그런데 인간은 원래 같이 사는 존재이지 이기고 홀로 살아남는 존재가아닙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삶을 생존이라고 해석하는 게 요즘 사회입니다. 이런 현대의 문법에 아주 예쁜 말과 아름다운 스토리로맞서는 작품들이 바로 생명의 동화예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선 안 돼. 너를 살리는 게 나를 진짜 살아있게 해." - P182

좋은 듣기는 좋은 질문을 낳고,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을 낳고, 좋은 답변은 다시 좋은 듣기를 불러옵니다. 이런 선순환이 모여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도 해요. 우리 전통 시의 양상에 문답시가 있는데요, 묻고 답하는 오고 감이 한 편의 작품이 되는 것이죠. - P205

에세이의 작법은 ‘격물치지格物‘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격물치지란, 아주 구체적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며 추상적인 의미와 이치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앞서 마중물로 제시했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람, 경험이나 기억,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한말 등이 바로 구체적인 것들이죠. 이렇게 구체적인 것들을 먼저세워놓고 그 뒤에 의미, 생각 등을 정리해 붙이는 겁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정에 큰 지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앞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일화나 사건이든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반드시 등장해서 중심을 잡아줘야 합니다. 추상적으로 모호하게 끝나는 게 에세이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죠. - P240

에세이의 묘미는 쓰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해석입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에세이는 당연했던 것에의문을 가져 보는 시간입니다. 남들이 알려주는 의미에서 벗어나진정한 나만의 의미를 찾자는 겁니다.
이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이라고 쓰고 잠깐 멈추세요. 남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춰서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나의 인생과 삶과 사건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한 가지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에세이에 넣어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쓰세요. 그 표현 뒤에는 나만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이어쓰기 좋거든요. - P241

그런데 일단 써보시면 아실 겁니다. 과정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사실을요.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감정의 디톡스 시간이 됩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만 글입니까. 가장 소중한 내가 볼 건데요. 그러니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기쁨을 느끼실 거예요. 조금더 열심히 쓰면 책으로 출간도 가능합니다. 요즘은 대량 생산만하는게 아니라 책 한 권만 출간해 주는 업체도 많거든요.
처음 에세이를 썼을 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너무 못났더라도 지우지 말고 나의 비밀 폴더에 살포시 넣어두세요. 어렸을 적 보물들을 상자에 담아뒀던 것처럼 일단 담아두세요. 넣고 닫아버려도 그 글은 내 안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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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

1979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나태주 시인의 딸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강의평가 1위를 기록한 글쓰기 강의를 맡고 있다. 2007년문학사상 신인평론상을 통해 등단했으며 저서로는「제망아가의 사도들」, 「내게로 온 시 너에게 보낸다」, 「책 읽고 글쓰기」,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 등이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동아일보에서 주간 시평 《시가 깃든 삶》을 연재하며 시대의 정신과 감수성에 맞는시를 찾고 소개하는 ‘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EBS <나의 두 번째 교과서>, <딩동댕 유치원>, CBS <세바시>, 유튜브 <교육대기자TV>, <다독다독> 등에 출연해 대중에게 문해력의 중요성을 알리고, 국어의 재미를 전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책에 대해 우리는 저자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읽는 사람은 책 뒤에 숨겨진 저자의 시간에 대해 추측할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책의 뿌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왜 이 사람이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 ‘이 사람은 어떤 배경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됐을까?‘, ‘이 사람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겉으로 드러난 문자의 총합을 읽는 게 아니라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라고 조금이라도 깨닫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
나를 위한 메시지를 책에서 찾아내는 순간이 바로 책과 대화하는순간입니다. 이런 소통의 과정이 바로 진짜 독서죠. 유명한 사람이 무슨 말을 적어놓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온 어떤 메시지 혹은 구절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은 독서라는 ‘대화‘를 시작하신 겁니다. - P28

책을 읽을 때 꼭 기억해 주세요. 책을 사면 텍스트만 오는 게 아니에요. 그 책을 쓴 저자의 영혼이 따라오고, 일생이 따라옵니다.
책은 저자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애써 피어올린 꽃과 같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배운 공부, 사랑했던 사람, 살았던 시대.
모든 게 꽃이 필연적으로 피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는 보이지 않는 저자를 살펴주세요. 안 보이는 것을 읽었을 때 우리는 "아주 잘 읽었다"고 말합니다. - P29

혹시 여러분,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지인들과 카페에서브런치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요, 신나서 막 떠들기도 하죠. 그런때 어떨 때는 공허해지고,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후회도 생깁니다. 회식은 더합니다. 회식할 때 분위기가 시끌벅적하잖아요. 신나게 먹고 마신 후 밤늦게 택시를 타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올때가 있어요. 괜히 말했다 싶고,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들이 있죠.
그 모든 대화를 지우고 싶을 때, 우리에게는 조금 다른 대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럴 때 조용히 책을 봅니다. 졸릴 때까지요. 다음 날 아침이 돼서도 그 찜찜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또 조용히 앉아서 책을 봐요. 책을 볼 때는 가만가만, 저자하고 단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 P30

소설을 보면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작가가 특별히 나에게 보여주는 세계인 거죠. 지식이 담긴 학술서를 보면내가 몰랐던 것을 저자가 특별 과외 해주는 것 같아요. 제 마음이저자를 따라다니며 생기를 찾을 때도 있죠. 책을 매개로 한 저자와의 소통은 브런치나 회식에서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떠들었던 말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독서라는 대화는 내가 시작하고, 내가 덮을 수 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서 소비되는 대화가 아니라 - P30

내 안으로 들어와 쌓이는 대화가 됩니다. 저는 인간관계에 지치면실제 사람이 아니라 책 속의 사람(저자)을 찾아갑니다.
한번 해보세요. 의미 없고 헛된 대화에 지쳤다는 생각이 들 때한 권의 책을 통해 단 한 명의 저자와 이야기를 시작하세요. 이런 대화는 나한테 유익한걸?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 P31

시집을 읽을 때 60편 중에서 단 한 편이라도 내 마음에 들면 저는 성공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실린 건 시인의 마음이잖아요. 그 사람의 마음을 쓴 것이지 내 마음을 쓴 게 아니거든요. 저는 수많은 시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나면 이런 감탄사를 터뜨립니다.
"어머, 어머! 이거 내 마음인데, 이 사람이 벌써 갖다 써놨네"
시는 이미지, 언어,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어떤 단어나 구절이마음에 든다면 그것을 모아 간직하세요. ‘이 시를 다 이해하겠다‘ 는 욕심은 조금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한 줄, 또는 어떤 구절이 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시집은 이미 여러분한테 온 거예요.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떤 때는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를읽다 보면 ‘아, 내가 느낀 마음이 이거였구나!‘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꼭 내 마음을 미리 써놓은 것 같죠. 이렇게 시집을 읽으면 자기마음을 알게 됩니다. 알쏭달쏭 있는지도 몰랐던 내 감정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장점이 있어요. - P32

소설은 작가가 낳은 자식입니다. 그렇기에 작가가 누구냐가 소설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작가가 18세기 사람인지,
우리랑 동시대 사람인지, 동양 사람인지, 서양 사람인지에 따라 소설은 달라지죠. 그래서 작가의 이력을 확인하고 소설을 읽으면좋습니다.
또 소설은 작가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모의실험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 따뜻한 곳이야‘, ‘이 세상은 좀 이상한곳이야‘, ‘이 세상은 정말 살기 힘들어‘, ‘여긴 전쟁 같은 세상이야‘
등 각각 판단이 다릅니다. 작가는 주인공을 허구라는 실험실 안에 넣어 정답을 찾아보라고 시키고 그 과정과 결과를 모아 소설을 씁니다. 이걸 보는 독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간접 경험인 셈이죠. ‘나는 잘 몰랐는데 이 소설의 세계가 사실 지금 세계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면, 나와 작가가 비슷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거예요. - P33

에세이는 작가의 일화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일화가 소설처럼 연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에피소드처럼 따로따로 읽히죠 그럼 연결되지 않는 이 이야기를 왜 읽을까요? 에세이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자세입니다. 작가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떠한 모토로 삶을 살고 있는지, 삶을 대하는 자세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한두 개의 일화와 작가의 자세를 얻어갈 수 있다면 에세이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에세이에는 소란스럽거나 흥분된 글이 없어요. ‘주식 잘하는 법‘, ‘건물주 되는 법‘이런 실용적 내용이나 최신 정보도 없어요. 인생이란 무엇이고, 내가 걸어온 삶이란 무엇이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삶의 잔잔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게 바로 에세이입니다. - P34

책을 읽으면 내 안에 스며들어와서 내 정신과 영혼의일부가 됩니다. 텍스트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를가져와서 내 안에 일부가 되게 만드는 것이 독서의 끝입니다.
내 안에 꽂히지 않으면 어떤 읽기도 의미가 없습니다. 필사할때도 우리는 글씨를 쓰면서 의미를 되새기려고 하잖아요. ‘구절아, 내 맘에 들어오렴‘ 이런 뜻이죠. 결국 읽기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입니다. 목표를 너무 원대하게 두지 말자고요. 그러면 가다가 지칩니다. 책에서 ‘나 자신의 구절 찾기‘를 해보세요. 이소박한 목표가 독서의 처음이자 완성입니다. - P43

영화 <곡성>을 보셨나요? 곡성이 지역 이름일까요? 곡하는 소리를 말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죠. 그런데 정리가 된 사람은 이를 다른 사람한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자신이 찾은 의미를 설명할 수 있으면 영화를 잘 본 겁니다. 영화의 디테일까지다 기억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쥐고 나오면 이 책은 내 안에 들어온 겁니다. 모든단어와 모든 이해를 완성하지 않았다고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 P46

저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사진을 찍습니다. 덜 싼 여행 가방도 찍고, 아이들 표정도 찍고, 밥 먹으러 가서도 찍고, 돌아오는 순간에도 사진을 찍어요. 3년, 5년, 10년이지난 후에도 사진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르륵 보면 그 여행이 다시 복기가 됩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책의 귀퉁이를 접고, 밑줄 긋고,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고, 타이핑도 해보세요. 그러면 사진을 따라서 여행을 기억하는 것처럼 책을 다시읽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는 즉각적으로 생기기보다 나중에 생기기도 합니다. 여행할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의미가 여행을되새기면서 따라오는 것처럼 말이죠. 스냅 사진 같은 메모를 통해책의 의미를 되새기는 깊이 있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 P47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희성(변요한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농담 그런 것들."
대본을 쓰신 김은숙 작가를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시를 잘아는 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대사는 나오기 힘들거든요. 김희성이 좋아하는 저 모든 것들은 바로 시인의 전형적인 친구들입니다. 선비에게 문방사우가 있다면 시인에게는 무용 - P57

한 아름다움이 있지요. 이백은 달을 노래했고 윤동주 시인은 「별헤는 밤」을 썼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를 썼고, 마종기 시인은 「바람의 말을 썼지요. 별처럼 꽃처럼 무용한 것들을사랑한 사람들이 바로 시인입니다. 밥도 되지 않는 무용한 것들이왜 좋은 걸까요? 내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지도 못 하는데 왜 사랑하는 걸까요?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다 순간적으로 왔다가 금방 사라집니다. 시인은 지나가는 찰나의 감정을 포착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죠. 우리가 영원히 스무 살이라면 과연 스무 살이 찬란할까요?
저는 제가 가장 예뻤을 때 예쁜 줄을 몰랐어요. 스무 살 때 사람들이 "참 예쁜 나이구나"라고 말해도 저는 저를 미워했죠. 마찬가지로 지금 이십 대 청년들에게 "참 예쁜 시절입니다" 하면 그들은 잘모르더군요. 찰나니까 알 틈이 없어요. 하지만 찰나니까 아름답습니다. 금방 잃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지만 아주 소중하죠. - P58

시는 지금 이 순간을 남깁니다. 찰나에 나를 스쳐간 어떤 감정이스냅 사진처럼, 딱 한 번 찍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습니다. 공중으로 사라지는 감정의 시간을 포착해 내 앞에 현현시키

시는 지금 이 순간을 남깁니다. 찰나에 나를 스쳐간 어떤 감정이 스냅 사진처럼, 딱 한 번 찍을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습니다. 공중으로 사라지는 감정의 시간을 포착해 내 앞에 현현시키는 겁니다. 마법 같은 순간이죠.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인들도 살금살금 가서 휙 낚아챌 준비를 늘 하거든요. 아버지는 머리맡에 항상 종이와 연필을 두고 주무셨습니다. 왜 이런 습관이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다 사정이 있었어요. - P59

어느 아침에는 아버지가 잠에서 깨자마자 막 괴로워하셨습니다. "내가 어젯밤에 어떤 시를 꿈속에서 썼어. 정말기가 막힌 구절을 썼는데 아침에 눈 떠보니까 기억이 안 나." 이걸잡아야 한다며 시를 쓰십니다. 쓰면서 계속 지우세요. "이것도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그러더니 다음 날부터 아예 머리맡에다가 종이랑 펜을 두고 주무시더라고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쓰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 번도 성공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메모 준비는 항상 하셨어요. 비록 꿈에서 쓴 시는 못 잡더라도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을 훅 잡아서, 언어로 포착해서 시로 쓰겠다는 의지가 있으셨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자라서인지 저는 시인들이 안쓰러울 때도 있습니다. 순간에 왔다 순간에 사라지는 무언가를 포착하겠다는 마음이 시인들에게 너무 간절하거든요. 예술가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 P59

시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지만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돌아오게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고 마법입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살잖아요. 인생이 소중한 건 게임처럼 리셋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시를 읽으면 지나간 줄 알았던 과거가 내 앞에 다시 돌아옵니다. 아주 순간이지만, 이런 순간을 놓칠 수가 없기에 저는 아직도 시를 읽습니다. - P64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 《성서설》전문 - P67

아기가 뱃속에서 "엄마, 고마워, 한 달, 엄마, 고마워, 두 달" 이렇게 열 달을 헤아리기 위해서 손가락이 열 개가 되었다는 시적해석입니다. 이 시를 읽고부터는 제 손을 볼 때마다, 세면대에서손 씻고 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제가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닌데 손가락을 볼 때마다 감사해야 할 것 같고, 더불어 착해지는 것 같아요.
비합리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시적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가 ‘인간은 본디 착하게 태어난 존재다‘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성선설을 믿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함민복 시인이 그 믿음을 대신 써준 거죠. 게다가 확실한 증거, 열 손가락을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었는데 몰랐던 뭔가를 하나씩 알아가게 됩니다. 내 마음을 수집한다고 할까요, 밝힌다고할까요. 저는 시가 어두운 밤하늘에 뜬 작은 별들 같습니다. 그 별들이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환해지지는 않지만, 별들이 영영 없다면 내 마음이 또 얼마나 외롭겠어요. - P68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과거에 아이를 못 봐서 쩔쩔매던 저를용서했습니다. 한강 소설가처럼 대단한 분도 왜 그래, 왜 그래 울다가, ‘괜찮아‘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이건 세상 모든 엄마가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정말 힘들었구나, 서른 살 민애야. 그때 정말 애썼구나‘라며 저를 다독였습니다.
이렇게 본인하고 비슷한 아픔을 찾아서 확인하면 애써 외면하던 아픔에 직면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냥 묻어두는 게 아니라 그때 충분히 애썼다는 것을 알게 되죠. 육아 초보 엄마인 제자신을 똥멍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를 읽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한강 소설가는 소년이 온다 같은 좋은 소설도 여러 편 쓰셨는데 시집과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시와는 또 다른 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 P71

일상의 순간도 시가 되지만 살다가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것을 토해냈더니 시가 되기도 합니다. 시는 산꼭대기, 구름 위에서본 풍경을 읊는 게 아닙니다. 시는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 우리 바로 옆에 있어요.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울지 않는 마음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 P74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것

사람이 오면
사람이 가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더는 말하지 말아야지 - P75

암병원 흐릿한 건물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마음
마음을 시로 쓰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는 마음

_박소란, 「울고 싶은 마음」 전문, 
「있다」 수록, 현대문학, 2021 - P76

시인은 지금 울고 싶은 마음입니다. 울고 싶은데 울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버스를 타고 울음을참아요. 그래도 창밖을 내다보게 됩니다. 차창 밖으로 흐려진 간판들이 보입니다. 간판들이 왜 흐려졌을까요? 눈물이 차올랐거든요. 눈물이 차오르니까 간판이 뿌옇게 보입니다. 이렇게, 울음이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병원에 놓고 홀로 집으로 돌아온 적 있으신가요? 몸은 버스에 탔는데 마음은 타질 못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마음이 너무 많이 아팠으면 그 이후로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할 수없어요. 비가 오는 날마다 내 마음 아프게 한 그 사람이 생각날 거잖아요. 이 시의 모든 단어가 저는 단 하나의 단어, ‘사랑한다‘로들립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저 시의 어느 한 구석에 내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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