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의 갈등을 손쉽게 무대하지 않으려는정직한 태도, 인위적 도덕을 가차없이벗겨내는 담대함 온기에 속지 않으려는치열함 소재가 저절로 작가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성해나가 그 소재들을 불러낸 것이다. 그것을 작가의 ‘신명‘이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ㅡ이기호 소설가 - P-1

이 소설집은 ‘몰입‘의 파티다.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과 상황과 마음 들이다.
한 사람으로 한 세상을 품는 글들이다.
상황 속에 깊숙이 들어가 적확한 마음을
캐치해 나오는 그의 문장들이 선연하다.
책이 나오면 꼭 다음 문장을 적어 주변
감독님들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ㅡ박정민 배우 - P-1

성해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시작했다.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장편소설 ‘두고온 여름」이 있다. 2024년 혼모노로 이효석문학상우수작품상과 젊은작가상을, 2025년 길티 클럽호랑이 만지기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P-1

구름도 다 사라진 땡볕 아래, 판수도 악사들도 점점 지처가는 와중에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 피범벅에 몰골도 흉하겠으나 시야가 환하고 입가엔미소까지 드러워진다. 신령 근처에라도 가닿은 것처럼 몸이 가뿐하고 신명이 난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나는 고조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된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작두에서 내려오지 않던 신애기가 아연실색하며 나가떨어진다. 그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휘둥그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황보와 그의 가족도 기도를 멈추고 나를 올려본다. 할멈도 이 장관을 다 지켜보고 있겠지. - P153

여긴 도대체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모르겠어.
삼층에는 여덟개의 취조실을 배치해야 했다. 공간을 설계할 때는 요령과 경험도 필요하나 그것만을 불가결이라 할 수는 없었다. 불가결은 상상력이었다. 무형의 공간에 선을 더하고 면을 채우고 종국에는 인간까지 집어넣는일. 그곳에서 살아갈 인간을 위한 자문자답은 기본이거니와 미학과 독창성까지 살리는 일. 그것이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불가결이었다.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 건축의 본질이나 사명, 순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겼던 여재화였지만, 이 공간과 이곳에서 머무를 이들을 상상할 때면 잊었던 초심이 저변에서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한 시기가 서서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 P180

그가 눈을 뜬다. 철문 옆에는 건물의 연혁과 발주처등을 음각으로 새긴 정초석이 놓여 있다. 경동수련원.
1980년 완공 1983년 증축. 그 말미에 내무부 장관의 이름과 함께 설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구보승. 남자는 정초석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린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경동수련원이 아닌 구의 집으로부른다. 건축가에 얽힌 소문 역시 여전히 무성하다. 그의재능을 질투한 스승이 그를 독살했다는 설, 폐결핵으로서른이 되기 전 요절했다는 설, 한국 건축의 미래를 비관해 일찌감치 일본으로 떴다는 설, 건축가의 성을 따 그 건물을 ‘구‘의 집이라 부른다는 것도 속설 중 하나다. 이 건물이 어떻게 구의 집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남자는 알지못한다. 건물의 이름은 그의 스승인 여재화가 붙였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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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는 이 이야기의 시작부터 등장하고, 끝까지 함께할 인물이다. 그는 결혼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문학과 정치, 그리고 스스로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어떤 이유론가, ‘구원‘인 것으로 보인다. 리스는 예의 바른 태도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상처는 혼자서 감당하는 사람이다.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라나 이튼 칼리지에, 다음에는 케임브리지에 진학한 리스는 "누가 봐도 바보라는 소리를 내가 듣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런 배경들 때문이라기보다는 너그러운 신의 섭리 덕분"이라고 말한다. 리스는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어리석을 정도로 단순하게" 믿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그 믿음이 "나 자신의 부적응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했다"고 여겼지만 말이다. - P70

리스는 자기 친구의 결점들을 알면서도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는 오웰을 "표면적으로는 너무도 편안하고 붙임성 있는 남자, 유쾌하고, 유머 감각과 재치가 있으며, 사려 깊고 다정한,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남자"라고 여겼다. "나는 그가 속으로는 다루기 곤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속으로는 극도로 내성적이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독 퓨도르 pudor (수치심을 뜻하는, 리스가 마찬가지로 설명하지 않고 남겨둔 단어다)를 타고난 것처럼." 오웰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가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데 있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소 둔했거나, 둔해 보였다." 이는 어쩌면 오웰이 "한 번도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P70

아일린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는 "마치그들의 얼굴과 행동 방식이 유리같이 투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을 관찰한다고, 훗날 어느 소설가 친구는 아일린을 모델로 한 인물을 내세워 쓴다. "그가 들여다보는 건 사람들의 감정이다."
리디아는 아일린이 "세련되고, 세심하며, 대단히 총명하고 지적이었다. 아마 그 애가 결혼한 남자와는 다른 면에서 재능이 있었을 뿐, 결코 그보다 재능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쓴다.


아일린은 몸이 몹시 매력적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다소어색했지만 말이다. 아일린은 키가 크고 날씬했고, 흔히 아일랜드인의 몸 빛깔로 여겨지는 색깔들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칼은검었고, 눈은 연한 푸른색이었으며, 피부색은 섬세한 흰색과 분홍색이었다. 아일린의 말에 따르면 볼 색깔은 연지를 발라서 그 - P71

런 거였지만 말이다. "그걸 꼭 발라야 돼?" 나는 그렇게 못마땅해 했다. "안 바르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보일걸." 아일린은 대답했다. 그 애는 조지가 ‘고양이상‘이라고 부르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오웰은 사람들을 도발하려고 "무산 계급의 코스튬"을 입지만, 아일린은 옷차림에는 정말로 관심이 없고, 보통 품질은 좋지만 "허름하고 솔질하지 않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 "다소 단정치 못하기는 " 하지만 아일린에게는 독특한 우아함이, "두 다리 위로 아름답게 균형 잡힌 몸이 있다. 아일린은 "매우 사려 깊고 철학적인" 사람이다.  - P72

그는 경청하는 데 있어 비상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삶에 대한 감각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아일린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주는 영향을 온전히 받았고, 그것을 고립된 상태로가 아니라 연결된 모든 것들과 함께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아일린이 말을 할 때면, 그 말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말, 재미있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린다.
리디아는 이렇게 기억을 떠올렸다.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할 때면 그 애의 두 눈동자는 춤추듯 이리저리 움직였고, 이목구비는 온통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일린이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윤색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그 일이 그 애가 묘사한 것처럼 재미있게, 혹은 뜻밖의 방식으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있었다. 그럼에도 아일린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정확성을 문제 삼는사람은 없었다. 그런 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애가 하는 과장에 악의가 깃들어 있는 일은 드물었다. - P72

자신이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일부러 완전히 터놓고, 마치 ‘책 속의 인물들을 논하듯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의 본능을 지닌 사람이다. 타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본능. 아일린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인간이든 동물이든 다른 존재에게서 그 정수를 뽑아낸 다음, 그 각자를 자신만의 삶을 그러므로 플톳을 지닌 캐릭터로 빚어낼 수 있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바꿔냈고, 여기에는 많은 경우 주변인들을 그들 자신보다도 명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이 된 자신을 상상하는 이런 능력은 상대방에게 과도하게 관대해지는 성향이 되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능력은 심지어 자신조차 자기편을 들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일 수도 있다. 아일린의 파악하기 어려운 면모, 엉뚱한 말,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태도, 그리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뛰어난지성을 본 리디아는 결국 그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좌절감을 발작적으로 터뜨리게 된다. - P73

가부장제는 이 세상에 5,000년에서 1만 년 정도 존재해 왔다. 그 이전의 몇몇 시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사회들은 아이를 키워내는 일, 모성에 가치를 두는 일, 혹은 성적인 상대를 ‘여성이 선택하는 일‘ 위주로 꾸려져 있었다. 시몬 드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가부장제를 전쟁과 연관 지어 다음과같이 쓴다. "남자들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게 만드는 데에서 자신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를 찾는다. 이것이 인류 역사 내내 아이를 낳는 성별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죽이는 성별에게 우위가 주어져 온 이유다. 그럼에도 보부아르는 이것이 실은 이
치에 맞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세상은 언제나 남자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충분해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86

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견해에 따르면,
가부장제는 유목 생활을 하던 수렵 채집 공동체들이 정착해 땅과동물들과 여자들과 후손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발달했다. 경계가(검은 상자들이, 울타리들이) 중요해졌다. 이건 누구 땅이지? 저 짐승은 누구 거지? 이 아이는? 남자들은 자손의 재생산에 통제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여자들의 섹슈얼리티는 일부일처제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통제되었다. 부의 성별을 남성으로 유지하기 위해 상속은 오직 아들에게만 가능해졌다. "어머니로서의 권리가 전복된 건 세계 역사상 기록될 만한 여성의 패배였다. " 엥겔스는 이렇게 쓴다. "남성은 집에서도 명령을 내렸고, 여성은 강등되어 노예 상태로 전락했으며, 남성이 지닌 욕망의 노예이자 자손 생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성은 최초의 노예였다. 여자들은 짐승들과 함께 가축화되었다. 1938년,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썼다. "우리 뒤에는 가부장제가 놓여 있다. 무용함과 부도덕함과 위선과 노예근성으로 가득한그 비밀스러운 집이..." - P87

이제 한 명의 작가이자 한 사람의 아내가 된 나는 거장이라불리는 남성 작가들을, 그 생각 없는 "20세기 중반의 여성혐오자들(이 자리에는 거의 모든 유명한 이름을 넣을 수 있다)을 부러워하는나 자신을 깨닫는다.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혹은 그들이 했던 작업·여행·총기류 소지·성적인 기행 등등과 관련된 무언가 때문에 부럽다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이유로 부러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가장 부러운 건 그들의 창작 환경이다. 그 남자들 중 너무도 많은 수가 우주의 도덕적·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사회 구조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그 구조에서는 여성의 보이지 않는 무급 노동이 그들에게 창작할 시간을, 따뜻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쿠션은빵빵하게 부풀려져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가 글을 쓸 시간은 쇼핑이나 요리, 본인이나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 청소하기, 일상적인 - P89

편지 쓰기, 손님 접대, 여행이나 휴일 일정 잡기, 아이 보기(마치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혹은 자기 아이들이 아니라는 듯 육아를 ‘도와주고 감사 인사를 받는 경우는 제외), 기타 등등의 일을 할 필요에서 해방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시간이 귀중한 건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모든 유한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경제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시간은 거래하거나 흥정하거나 슬쩍하거나 훔칠 수있다. 주말은 유한하다. 배우자와 함께 주말이라는 할당된 시간과공간을 가지고 저글링을 해보려고 애를 쓰는 어떤 양육자든 그렇게말할 것이다. 삶은 유한하다. 아일린과 오웰이 함께했던 삶을 살펴볼수록, 나는 오랜 과거에 존재했던 그 역학관계가 나 자신이 엮여있는 역학관계 속으로 혼란스럽게 메아리쳐오는 걸 느꼈다. 다른모든 귀중한 재화가 그렇듯 시간에의 접근 역시 젠더화되어 있다. - P90

모든 귀중한 재화가 그렇듯 시간에의한 사람이 일할 시간은 다른 사람이 시간을 들여 하는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남자가 일해야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그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여자는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80년 전의 결혼을 살펴보다 보면 거리감이 주는 가짜 위안(우리는 당연히 저것보단 발전한 상태겠지?)도 느껴지지만, 세상은 결코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전율도 느끼게 된다. 내가 아는 이성애 커플 가운데 가정 환경 및 여타 환경을 여자가 자신을 위해 해주는 것만큼 조성해 주어서 여자도 자신만큼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남자는 많지 않다. 한 손에 꼽고 손가락이 남을 정도다. 룸미러에 비친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법이다.
보이지 않고 급료도 없으나 당신의 시중을 드는 것이 생의 피할수 없는 목적이기에 꼭 감사를 표할 필요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이 - P90

익을 얻는다는 것. 그건 당신이 해낸 일을 당신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냈다고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정복한어떤 섬에서 재산을 몰수했든, 허공에서 말들을 짜냈든 간에 말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급료를 줄 필요도, 고마워할 필요도없다. 그저 서문에 ‘나의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진심을 담아 한 문장꽉 채워서 써주면 그만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작가의 상상력에는 엄청나게 유리한 것이 된다. 작가에게 있어 상상력의 첫 번째 임무는 글 쓰는 자아를창조하는 것이다. 그건 상당히 큰일이지만, 당신들 두 사람이 함께착수하면 도움이 된다. 아내가 당신을 믿어주기에 당신도 당신 자신을 믿게 된다. 이렇게 영양분을 공급받은 자아는 작품을 생산해낸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작품이 자아의 증거가 된다. 나는 만들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P91

그리고 이 문장 속에서 당신의 아내는 사라져버린다.
작가들은 불안정한 것으로 악명이 높고, 굳건한 심지 따위는 없으며, 지지받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텅 빈 중심으로 무너져내리기십상인 부류다. 누군가가 당신 주변을 움직이고 있으면 당신은 중심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관객이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스타일 것이다.
이렇게 남성중심성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남성의 상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떠받치는 존재가 반드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공중 줄타기에서 와이어가 보이면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다. 보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는 줄을 타는 그 행위를 하늘로 솟구치게 해주는 실질적인 와이어 - P91

이며, 종종 지적인 와이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행위가 정말로 놀라운 일이 되기 위해서는 와이어도 아내도 지워져야 한다. 당대에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렇다. 아내의 노력은 그 노력으로 이익을 얻는 남자에게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그 뒤에, 아내는 남자의전기 작가들에 의해 남자가 이뤄낸 일들에서 지워진다. 혹자는 이를 1,000년이나 이어져 온 (혹은 오웰의 경우에는 거의 한 세기나 이어져온) 남성 특유의 무신경함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후일에 역사가그를 찾아내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어느 위대한 작가의 아내가 해온 보이지 않는 노력에 마음이 끌린다. 앞서 말했듯 부러움 때문이다. 내게도 아일린 같은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P92

그러다가 작가처럼 생각한다는 건 곧 남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건 남성의 관점에서 오웰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오웰이 그것을 어떻게 얻어냈는지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여성이자 아내로서의 나는 아일린의 삶이 두렵다. 그 안에서 나는 목숨을 건 투쟁을 본다. 그건 자아를 유지하는 일, 그리고 여성이 갖추면 너무도 칭찬받는 가부장제적 덕목인 자기희생과 자기말소 성향, 이 두가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다. 자기희생과 자기말소 성향이야말로 우리의 노력과 시간을 훔쳐 가는 기본 구조의 일부다. 아일린은 무엇을 내주었고, 그 대가로 무엇을 감당해야 했을까? 20년 동안 분투하며 생활과 가정을 꾸려온 경험에서 나온 이 질문이 내뿜는 한기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나는 이것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아일린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 - P92

다. 우리 시대 여성들은 동등한 존재라고 불린다. 가정에서 상상할수 없을 만큼 불균형하게 과도한 노동을 하고, 미래 세대를 돌보고,
많은 경우에는 이전 세대도 돌보고 있음에도 그렇다.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 우리는 이 모든 노력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그 간극을 만드는 일에 공모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 간극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나는 특권을 지닌 백인 여성이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시간과 노력과 삶을 약탈하고 훔쳐 가는 일종의 전 지구적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노력 없이 얻은 특권을 지닌 나는 가부장제에 관해 말하는 일이 두 가지 이유로 편치만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부유한 서구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충격적인 인종차별, 가난과 계층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이는 나로서는 둔감해질 수도 있는 투쟁들이다.  - P93

이곳에, 혹은 세상의 다른 어딘가에 사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나보다 훨씬 더 힘들게살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계속 침묵을 지킬 수만은 없다. 어디서든, 어느 인종과 계층에서든, 여성들은 집 안에서는 남성들보다많은 노동을 무급으로 하고 집 밖에서는 남자들보다 적은 돈을 벌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변하지 않고 반박되지도 않는 이성애적 규범이 존재한다. 그 규범은 민족과 피부색과 계층을 뛰어넘어 만연해 있다. 여성 집단이 남성 반려자들과 똑같은 권력이나 자유, 여가 시간이나 돈을 가진 곳은 지구상에 단 한군데도 없다.
표면상의 계층적 평등도, 반대로 부도, 이 불평등한 부담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어느 곳에서나 그렇다. 공산 국가에서는 여성 - P93

평등에 관한 수사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가사와 돌봄 노동을 책임지고 있고,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민주 자본주의 사회의 돈도 커플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여성은 부유하다 해도 여전히 가사노동을 책임진다. 설령 다른 사람에게, 보통은 여성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노동의 일부를 맡길 수 있다고 해도 그렇다. 지구상의 모든 사회는 여성들이 제공하는 무급 노동과 저임금 노동 위에 세워져 있다. 만약 그 노동에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 액수는 10조 9,000억 달러에 이를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돈을 지불하게 되면 부와 권력은 재분배될 것이고, 그렇게 재분배를 하다 보면 가부장제의 자금줄은 말라버리고 이빨은 뽑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94

또한 여러 개별적인 예외 사례도 존재한다. 한 사람(대부분 여성)이 모든 일을 다 해내는 한부모 가정이 있다. 사랑하고 살아가는 데필요한 노동을 좀 더 평등하게 분담하는 이성애 및 동성애 커플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젠더 이분법이 (좋은‘ 여자가, 혹은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가 하는 개념들과 함께) 도전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젠더를 조금 더 유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무엇이 여성이고 무엇이 남성인가 하는 허구의 이야기들로부터, 그리고 그런 정의들이 은밀하지만 아주 은밀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품고 있는 노동과 돌봄에 관한 억측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런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여긴다. 젠더화된 부담에 주의를 집중하면 우리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 생기게 될 것만 같다. 사실 그 불화의 원인은 이미 거기 있고, 그건 우리 둘 중 누구도 - P94

저명한 적 없는 가부장제의 보이지 않는 계약이 부과한 것인데도그렇다. 내가 하는 너무도 많은 여성이 똑같은 심정을 느끼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속삭이는 목소리로 한다. 우리는 갈등을 피한다.
그러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을 제대로 바로잡는 데 실패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정당한 억울함 밑에는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수 없게 만드는 수치심이 있다. 나는 내가 동등한 존재인 척하는 동안 개를 산책시키고, 식료품을 구입하고, 치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기분이 언짢은 10대들을 위로하고, 빨래를 갠다. 내가 동등한존재인 척하면서 채소를 썰고, 상담사와 병원과 변호사에게 연락을취하고, 냉장고를 청소한다. 사실 나는 이 가운데 어떤 일도 꺼리지 않는다. 이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진 내 진짜 삶이니까 안다, 나이가 들면 나는 젊은 시절의 내가 지니고 있던 분주함을, 인생의 목표를, 넓은 마음으로 바쁘게 소용돌이치듯 꾸려나가던 삶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동 분담은 평등하게 하기가 어렵다. 그 노동 가운데 너무도 많은 부분이 나다운것‘이라는 정의 안에 녹아 들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서, 혹은 ‘그냥 좋게 좋게 지내면서 아일린이 종속되어 있던 힘들과 똑같은 현재의 힘들에 내가 종속되어 있지 않은 척하는 건 일종의 광기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노동으로부터해방된 척하면서 그 노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 P95

가부장제는 한 편의 허구다. 모든 주요 인물은 남성이고, 세계는 남성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여성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배역cast, 아니 계급caste 이다. 우리 모두 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이야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현실을 대체해 버렸다. 우리 삶을 풀어뭘 다른 서사도,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어떤 역할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부장제에는 외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 허구에서는 두 가지 주된 목적의 사라지게 만드는 속임수가있다. 하나는 여성이 하는 일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남성이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다른 하나는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행동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이 남성을 결백해 보이게 한다. 이 속임수는 가부장제의 사악하고 이중사고적인 핵심이다.
전기들을 읽으며 나는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가부장제는 오웰이 자기 아내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허용해주었다. 그런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전기 작가들이 그가 그 모든일을 혼자 해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허용해 주었다. 전기 작가들은•오웰의 이야기에 들어갈 사실들을 세상에서 골라내는데, 그 사실들 - P102

은 이미 오웰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이 선별해 놓은 것들이다. 가부장제와 전기의 서술 기법은 솔기 없이 매끈하게 결합한다. 오웰을가르치고 키워 낸, 그에게 영향을 주고 도와준 여성들을 편집실 바닥에 흩날린 종이 부스러기들처럼 남겨놓는다. 건물이 올라가고 나면 제거되는 지지대들처럼.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오웰이 표현했듯, 까발리고 싶은 어떤거짓말이, 주의를 집중시키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공교롭게도 어떤 사람이.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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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펀더ANNA FUNDER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국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호주 정부에서 재직했다. 동독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평범한 사람들과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Stasi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실화를 다룬 <슈타지랜드Stasiland》(2003)는 고전 반열에 올랐으며, 2004년 영국최고의 논픽션상 새뮤얼 존슨상(현 메일리 기포드상)을 수상했다. 1930년대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네 명의반히틀러 활동가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장편소설 <음댓아이엠All that I am>(2011)은 호주에서 가장 권위 있는문학상 마일즈 프랭클린상을 수상했고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과 영연방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책 <조지 오웰 뒤에서》(2023)는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가디언> <선데이타임스> 등 주요 매체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파리, 베를린, 뉴욕에서 살았고 현재는 가족들과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서제인

번역을 하면서 세상이 거기 있다는 걸 확인한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무도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형식과 영향력><코펜하겐 3부작> <목구멍 속의 유령> <고통을 말하지않는 법> <벌집과 꿀》 등이 있다. - P-1

사랑은 ... 성적인 것이든 아니든 힘든 일이다.
조지 오웰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꾸며낸다.
필리스 로즈


남자들과 여자들은 ...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비비언 고닉 - P-1

2005년, 조지 오웰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가 가장 가까운친구였던 노라 사임스 마일즈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그 편지들 속에는 아일린이 오웰과 결혼해 살았던 1936년부터1945년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아일린의 편지들은 이 책에서 다른 서체로 등장한다. - P-1

나는 오랫동안 조지 오웰을 사랑해 왔다. 이제는 안다. 그 사랑은, 한 남자가 애써 숨기려 했던 한 여성을 사랑하는 일과도 같다는 것을. 플롯으로 세상을 직조하고, 사람들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는자신의 언어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읽게 만들었던 작가 조지 오웰 그 뒤에 서 있던 여자. 이중사고의 주인공 아일린. 그녀는 조지 오웰이 걸작을 써내는 동안 일을 하고, 살림을 하고, 그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다. 조지 오웰은 분명 알고 있었으리라. 아일린이라는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덕분에 나는 그가 "광기의 집합"이라 불렀던 ‘삶‘에 아일린이 어떤 활력을 불어넣었는지 알게 됐다. 그래. 삶이란 분명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감수하고 도전해 볼 만한 모험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일린의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나는 조지 오웰의 글에 더 충만한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은 그의 뒤에 서 있던 한 영민한 여성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아일린의 헌신에 감사를 전한다.
_강화길(소설가, 《치유의 빛> 저자) - P10

소피아 톨스토이, 젤다 피츠제럴드, 시시 챈들러, 캐서린 디킨스, 매리 워즈워스 이름은 낯설지만 성은 익숙한 이 여성들은 모두 유명 작가의 아내다. 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작품들도 많지만, 정작 이들의 이름은 빛을 보지 못했다. 여성들은 남성작가, 예술가의 삶과 작업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창작 과정의 일원이었음에도 기껏해야 ‘뮤즈‘ 정도로 불렸을 뿐 대부분은 ‘아내‘라는 배역으로 그 존재가 지워지거나, 교묘하게 가려진다.
원서의 제목 와이프덤 wifedom은 흥미로운 단어다. 아내라는 단어에 농노신분serfdom, 노예신분 slavedom 같은 표현에서 흔히 보는 접미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노예들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존재를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 아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책은 가상의 폭정에 저항한 조지오웰이 현실에서는 자기 아내 아일린의 기여와 존재를 얼마나 의도적이고, 교묘하고, 철저하게 지우려고 했는지 보여준다. 특히 오웰의 생각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는 자기연민과 근거 없는 피해의식과 얽혀 있어 21세기의 많은 남성들이 직시해야 할 거울이 된다.
_박상현(오터레터 발행인, 《친애하는 슐츠 씨》 저자) - P11

조지 오웰은 누구인가? 그는 난봉꾼, 강간범, 교활한 겁쟁이, 착취자였다. 이것이 오웰의 ‘참모습‘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문학과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이보다 더 논리적이고 정교한 책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 톨스토이, 아인슈타인이 예외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성별 분업 사회에서 그들은 조지오웰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아내는 남자에게 두 개의 삶을 선사한다."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삶과 아프거나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으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삶. 이것이 가부장제의 작동 원리다. 이 책은 오웰의 아내 아일린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일린의 남편 오웰의 이야기, 역설적인 여성의 역사이다.
저자는 글쓰기의 깊이와 두터움을 통해 현기증을 일으키는 분노를 체험케 하는 새로운 형식의 전기를 선보인다. 조지 오웰의 모든 글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_정희진(문학박사,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 P12

이제 접시를 제자리에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골집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노동이 아일린의 몫이니까. 노라에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골집에는 위생 설비도, 난방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처참했던 재래식 변소 사건에 대해서도 변변치 못한 섹스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생각들은 (거의)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 깨닫게 된다. 절친한 친구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다 보면 결국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이런 식으로 일부러 자기 계급에서 떨어져 나와 조지의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 옥스퍼드에서 받은 교육을, 그리고 이른바 ‘재능‘을 -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심한 일이다.
절대 언급하지 않을 사실이 있다면 다음 주에 조지가 참전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가라고 격려한 사람은 아일린이었지만, 이렇게 간신히 허약하게 유지되는 결혼이라는 상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다음번 편지에서는 말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일린은 대신 자신의 새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 P25

나는 반짝이는 물결 너머로 코카투섬을 바라보며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일상에서 경험한 실패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유독한비닐, 주차장에서 죽어버린 영혼, 비참하게도 끝없이 수영장 트랙을 돌고 있는 가엾은 프랑스인 교환학생, 미처 끝내지 못한 작업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들은 이제 걱정스러운 빨간 깃발을 단 채받은 메일함에 쌓이고 있었다. 나는 ‘불쾌한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그 사실이란 이랬다. 내 남편인 크레이그와 나는 살아가고 사랑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우리가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품고 있던 최선의 의도를 깔아뭉개 주려고 지금껏 음모를 꾸며온 듯했다. 그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해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우리는 더는 그 격차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세상사의 여러 가지를 알아차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내 눈으로 보면, 그리고 아홉 살 난 우리 아들의 입도 빌리자면, 이건 ‘대실패‘였다.
나는 다시 그 페이지로 눈을 돌렸다.
"대략 서른 살이 넘으면" 오웰은 쓴다.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적 야망을 포기하고 - 사실 많은 경우엔 자신이 개인이라는 감각조차 거의 포기해 버리고 - 주로 남들을 위해 살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힘겹고 단조로운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 P31

 "[오웰은] 아내들이 섹스라는 수단을 이용해 남편을 통제한다"고 암시했다. 이는 여성이 실제로 ‘통제‘하고 있는 건 자기 몸에 접근하려는 시도인데도 남성을 통제하고 있다고 묘사하는 여성혐오적인 수사다. 그러니 이것 역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특히 오웰이 자기 아내의 육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전기 작가들에게는 여성과 아내와 섹스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오웰의 분노 발작을 다룰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것을 들어내 버리거나, 그 충동에 공감하거나, 그것을 ‘일시적인 감정‘이라며중요하지 않아 보이게 만들거나, ‘픽션‘이라고 부인하거나, 다름 아넌 그 여성을 탓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오웰의 생각들은 읽기 고통스럽다. 여자들은 그를 혐오하고, 그는 자신을 혐오한다. 그에게는 피해망상이 있는데, 거짓된 ‘자신들의 모습‘을 세상에 ‘기만적으로 내세우는‘ 추잡한 여자들의 정치적·성적 음모에 속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오웰은 여자들을, 다시 말해.
아내들을 그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지, 혹은 무엇을 요구하는지‘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청소는 충분하지 않고 섹스는 너무많이 요구한다고 말이다. 그럼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내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렇다. 아마 청소는 너무 많이 해야 했고, 섹스는 충분치 않았거나 충분히 근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작품에서 삶으로, 그 남자에게서 그의 아내에게로 옮겨 가게 되었다. - P35

나는 다시 웃는다. 오웰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아이의 통찰력에 놀라서다. "아마도, 내가 나쁜 인간이라서?" 나는 말한다. 딸아이에게 이 비슷한 말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아이는 조금도 주저 없이 대답한다. "누구나 다 조금씩은 나쁜인간 아닌가요?"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책상이 놓인 돌출된 창가에 앉는다. 말벌들이 덧문에 집을 짓고 있다. 잘록한 허리로 주위를 맴도는 벌들은휴식을 취하는 중인 듯하다. 육각형 벌집 주위를 미적거리는 모습만 보고 벌들의 일과 생활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이런 게 청소년기 자녀를둔 부모의 전형적인 감정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였던 존재들이 세상을 알게 되는 걸 지켜본다. 우리가 15년 넘게그 애들에게 감추려고 헛되이 애써 온 그 세상을, 세상의 본모습을바라보는 걸 지켜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본모습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감정 상태를 표현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그들의 지성이 우리가 세워놓은 시시한 보호막들을, 밀랍으로 만든 집처럼 허약한 그 보호막들을 산산조각 낼 때 느껴지는 자랑스러움, 그리고어린 시절을 벗어난 그들이 인간의 삶 속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과 나쁜 놈들 천지인 세상으로 들어오는 데서 느껴지는 괴로움. 이 두 가지를 결합해 표현해 줄 단어가 - P39

그 편지들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다. 마치 오웰이 세상을 떠난 뒤로 반세기도 넘게 지난 지금 그의 사적인 삶으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 열리고 그 문 안쪽에서 살아갔던 여자와 그곳에서 글을 썼던 남자가전혀 다른 빛 아래 드러난 것만 같다.
장편소설을 쓰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 그 소설은 편지들을 ‘소제‘로 삼아 삼켜버리고, 내 목소리를 아일린의 목소리보다 우위에 두어버릴 테니까. 게다가 아일린의 목소리는 짜릿하다. 나는 아일린을 되살리고 싶었다. 동시에 그를 지워버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악한 마술의 속임수를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이 작업을 ‘포용하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몇 달 동안, 그러다 몇 년 동안 세상에서 멀어진채 오웰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있는 오웰 아카이브에서, 나는 아일린의 대학 시절 노트들과 그가 또렷하고 둥근 글씨체로 오웰에게 썼던 편지들을 찾아냈다. 아일린과 오웰이 1944년에 입양했던 아들 리처드 블레어와 함께 카탈로니아곳곳을 여행하면서 오웰이 스페인 내전 기간에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추적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스코틀랜드의 주라섬으로 향했고, 오월이 마지막 작품 <1984>를 썼던 집에 도착한 다음 그에게 그집을 임대했던 여성의 손자와 함께 위스키를 마셨다. - P48

그리하여, 소설을 쓰며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내가정한 소박한 기본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아일린은 되살아나 그가실제로 썼던 편지들을 다시 쓸 것이다. 절친한 친구에게 여섯 통, 남편에게 세통, 그리고 다른 편지 몇 통을. 나는 그 편지들을 쓸 때아일린이 어디에 있었는지 안다. 접시들은 싱크대 속에서 얼어붙어있었고, 아일린은 하혈을 하고 있었고, 오웰은 다른 여자와 침대에 들어가 있었으며 아일린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안다. 이이야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일린이다. 가끔,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기반해 어떤 장면을 쓴다. 그리고 대체로, 세트장에서 배우에게 연기 지시를 하는 영화감독처럼 몇 가지만 덧붙여 넣는다. 안경을 문질러 닦는 손길, 카펫 위에 떨어진 재, 아일린의 무릎에서 주르르 쏟아지듯 내려가는 고양이 같은 것들만.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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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에밀》을 읽었다.
<에밀>은 루소의 교육론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학이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소년 에밀은 부유하고 건강 상태가 아주 양호한귀족 가문 출신의 고아이고, 첫눈에 예쁘지는 않지만 볼수록 예쁜, 가상의 소녀 소피와 결혼한다.
시간순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유년기, 다섯 살에서열두 살까지,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열다섯 살에서스무 살까지, 스무 살에서 결혼까지다. 스무 살에서 결혼까지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 P265

이 책에 관하여 이러저러한 비판이 있다.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것을 두고 이 책을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루소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겠는가?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의 눈에는 시대에 뒤떨어진것으로 볼 만한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극복하면 될 것이다.
평소 자녀 교육론으로 최소 간섭과 성선설을 주장해왔던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책임에 틀림없다.
자녀 교육 역시 옳다면 실천하는 것이지, 옳은 줄 아는데 현실론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 P266

이순신 장군은 왜 전쟁 중에 일기를 썼을까?
하나, 업무 일지 성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앙에서 내•려온 명령, 관할하에 있는 관리의 방문 내용, 군율 위반으로 부하를 처벌하는 내용, 군사 훈련 내용, 무기를 마련하는 내용, 날씨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 일기 성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나라의 장래에 대한 불안, 조정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울분, 건강 상태에 대한 걱정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그렇다.
셋, 사초 성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전쟁 중에 죽으리라 예감하고 있었고, 전쟁에 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후세가 자신의 처신을 오해하지 않도록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수륙 여러 장수가 팔짱 끼고 서로 바라볼 뿐, 계책이라도 하나 세워서 토벌하려고 들지 않는다"라는 비밀 교지에 대하여 "여러 장수와 맹세하여 목숨을 걸고 복수할뜻으로 날을 보내고 있지만, 험한 소굴에 웅크리고 있는적을 가볍게 나아가 공격할 수가 없을 뿐이다"라고 기록한데서 추측해본다. - P277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하루 해가 떠있는 동안 걸어간 만큼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은 바흠은 걷다가 걷다가 지쳐 죽는다. 결국 그가 얻은 건자신의 키를 조금 넘는 길이의 자신이 묻힐 땅 2미터였다.
톨스토이에게 인생이란 선에 대한 희구다. 톨스토이의작품 속에는 사랑을 통해 선이라는 목적을 향하는 노력이담겨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가정 생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재산과 저작권을 포기했다. 자기 자신과의 극적인 화해에도달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방황의 길에 올랐다. 결국 랴잔우랄 철도의 아스타포프역에서 폐렴에 걸려 하차역장집에서 82년에 걸친 고뇌와 파란의 생을 마쳤다.
《부활》 《전쟁과 평화>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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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스위스가 다양성의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다양성을 더 큰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스위스 사람이 채택한 제도는 민주주의였다. 역사와문화가 다른 주들이었지만 개인에게 이익이 될 것 같아 1848년 연방 국가로 묶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단일 민족을 유난히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언어와 문화가 동일한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승복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부족한 게 아닐까, 그것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라투스에 서 있는 저 전나무를 보면서. - P218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책을 읽고 문득 서재에 꽂힌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꺼내 들었다. 1996년 10월18일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으로서 "선생님이주신 뜻을 생각하며" 읽었다고 그 책 끄트머리에 적혀 있었다. 다시 읽었는데 예전의 기억은 살아나지 아니하였다.
아마도 읽은 지 오래되었거나 예전에 건성으로 읽은 탓이리라.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국내 여행을 하면서 엽서 형식으로 띄운 글을 모은 것이다. 허준과 스승의 이야기가 숨 쉬는 밀양 얼음골, 황희와 한명회가 지은 반구정과 압구정,
만해가 수행하고 일해 (전두환 전 대통령)가 쫓긴 삶을 살아간 백담사,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충무공의 한산섬, 남명 조식 선생의 혼이 숨 쉬는 지리산 등등이 신영복 선생이 다녀간 곳들이다. - P232

강릉 단오제에서 띄운 엽서가("조調는 글자 그대로 말言을 두루周 아우르는 민주적 원리이며 화和는 쌀米을 나누어 먹는口 밥상 공동체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거친 범죄에 분노하는 자신을 성찰하는 밤이다. 맨손으로 일하는 그들의 거친 손마디에도주의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 P234

공부 달인 30인이 쓴 <공부의 즐거움》을 읽었다.
저자를 훑어보면 《우리 선비>를 쓴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 나노 소재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한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 한반도 역사를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 선사고고학자 손보기 교수, 세상에서 공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는 전 서울대 국문학과 조동일 교수... 가히 공부 달인이라고 부를 만한 서른 분이등장한다.
공부는 삶이다. 공부는 새로움이다. 공부는 즐거움이다. 공부는 깨달음이다. 이 네 가지 주제로 공부에 대한 생각을 펼쳐놓았다. - P235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있는데 그의 수업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한다.
하나, 공리나 행복의 극대화다.
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 선택은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선택일 수도 있다(존 롤스 같은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견해).
셋,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다(저자의 견해). - P259

저자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는
하나, 시민의식, 희생, 봉사,
둘, 시장의 도덕적 한계,
셋,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넷, 도덕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해묵은,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논쟁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러내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존 롤스의 연구 성과를 자양분으로 삼으면서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저자의 고민과 성과가 보인다.
무수히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각자의 철학에 따른 결론과 그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한 다음 저자의 철학을 제시하는 서술 방식이 매우 강력하고 일관되어 있다. 정의라는 주제에 관하여 관심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또 하나의 고전이다. - P260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를 읽었다.
지금 읽는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읽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책 소개는 번역자인 박홍규 영남대학교교수의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유론은 남북한 대립을 비롯한 수많은 대립적 의견이상충하는 우리 현실에서 그 모든 의견의 평화 공존을 위한 최소 조건의 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사회의 도덕적 획일성을 유지하려는 법적 강제를 확고하게 반대하는 입장, 그런 법적 강제로부터 시민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생각은 지금의 어떤 진보적 사고나정책보다 앞서 있다. 아나키즘적 자유론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 P261

게오르규 《25시》를 읽었다.
저자는 루마니아 몰다비아 지방의 작은 산마을에서 가난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소설엔 주인공인 루마니아 농부 요한 모리츠, 그의 아내 스잔나, <25>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트라이안 코루가가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다. 요한 모리츠는아내를 탐내는 헌병대 소장의 계략에 유대인으로 몰려 루마니아 수용소, 헝가리 수용소, 독일 수용소, 미국 수용소에 13년간 수용되는 가혹한 운명을 맞게 된다.
게오르규에 의하면 유럽 사회는 세 가지의 훌륭한 유산 - P263

을 상속받았다. 그리스인이 남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존경, 기독교가 가르쳐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 로마인이 보여준 정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다. 그러나 현대기계사회는 이 세 가지 귀한 유산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나치가 왜 나빴던 것인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작가가 개인을 강조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수 있다. 이 사회가 나아갈 길은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사이 균형을 이뤄내는 잣대로서의 정의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독을 권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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