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윤

서울대학교병원 조직은행 간호사이자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로 ‘철학하는 간호사다. 병원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조직은행 업무를 담당하고, 대학에서는 응용현상학을 가르친다.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근무했으며, 한때 CTS기독교TV 앵커와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간호사로 복귀, 인체조직을 기증받아 필요한 환자에게이식하는 전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간호사로 일하며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현장에서 수많은 삶과 죽음을 마주하며 인간 존재에 근원적인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 질문은 철학적 탐구로 이어졌고, 이 책은 임상과 철학을 오가며 죽음을 사유한 기록이다. 연명의료와 돌봄, 임종처럼 죽음을 앞두고 만나는 사건은 물론, 고립사와 안락사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까지 폭넓게 다룬다. 죽음을 둘러싼 현실을 의료인의 눈으로 세심하게 살피고, 철학자의 시선으로 그 의미를 다시 묻는다.
죽음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삶과 생명의 감각을 새롭게 깨우는 일이다.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지금의 삶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죽음은 낯설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그 어떤 것보다 낯선 사건이다. 반면 타인의 죽음은 상투적으로느껴질 만큼 익숙하다.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죽음의 학자‘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이 차이를 생생하게 설명한다. "타인의 죽음은 동물원 철창에갇힌 호랑이를 보는 것과 같지만, 자신의 죽음은 그 호랑이가 철창 밖으로 나와 덤벼드는 것과 같다." 타인의 죽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대개 관찰자의 자리에 선다. 죽음의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아직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두꺼운 쇠창살 안의 호랑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러나 죽음이 나에게 직접 찾아오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쇠창살을 뚫고 나온 호랑이가 덮쳐드는 극심한 공포와 혼란을 경험하는 것이다. - P5

여행자는 낯선 곳으로 향한다. 낯선 곳에서는 익숙했던 하늘과 바람,
땅의 감촉마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낯섦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낯섦은 굳어버린 삶을 다시움직이게 하는 윤활유와 같다. 죽음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아무 감각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익숙한 명제 앞에서 잠시 멈춰 서면, 죽음은 먼관념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 찾아올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익숙한 삶에 머무는 일이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나 낯선 곳으로 떠날 때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나 - P8

듯, 죽음을 새롭게 보려면 마음의 절전모드를 해제해야 한다. 익숙한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죽음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물어야 한다. ‘죽음 낯설게 보기‘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작은 모험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죽음을 둘러싼 제도와 문화,
오래된 습관까지 새롭게 보게 된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것들이 낯선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나 역시 죽음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병원과 조직은행에서 일하며 죽음 가까이에 있었고, 그 곁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작은 깨달음들을 얻었다. 이 책은 그 기억과 질문을 따라, 죽음이라는 낯선사건에 한 걸음 다가가보려는 시도이다.
우리의 삶은 늘 죽음과 동행한다. 생명의 이면에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죽음은 늘 밀물처럼 질문을 던지고 썰물처럼 물러난다. 파도가포말로 부서져 사라질지라도 늘 다시 다가오듯, 죽음이 던져오는 끝없는 질문에 언제나 낯선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생명처럼 아름답다. - P9

서두에 밝힌 것처럼 우리나라 노인의 38%는 집에서 죽기 원한다. 그런데 직업이 의사인 경우에는 그 비율이 현저히 높아진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의사의 63.1%가 자택 임종을 원하고 10% 정도만이 병원이나요양기관을 원한다고 한다. 아마도 의사들이 병원 임종의 민낯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 국민의료보험이 확대된 1989년 이후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세계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우리는 많은 의료 혜택을 누리게 되었고 이것이 병원 임종의 큰 원인 중하나로 꼽힌다. 낮은 수가로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병원에서끝까지 치료받다가 돌아가시는 병원 임종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약 40년 전인 1983년에는 무려 85% 가까이가 집에서 죽음을 맞았다. 요즘 상황과 비교하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놀라운 숫자다. - P26

사망자의 사인은 단순한 의학적 관찰기록을 넘어선다. 한 개인의 삶을 사회적으로 평가하고 고립시키는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둘러싼 온갖 자의적인 해석과 억측을 낳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삶 전체를 아주 편협하게 오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죽음은 단지 죽음 그 자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반드시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어야 하며, 결국 ‘질병과 진단‘이라는의학의 영역으로 귀결된다. 한 인간의 종결로서 죽음은 생물학적 종말이라는 과학적·의학적 관점에서 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의사가 발급하는 사망진단서는 이러한 의학적 정의를 최종적으로 확증하는 가장 간결한 문서다. 사망진단서는 행정의 틀로 죽음을 유형화하고 그 원인을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듯하지만, 자살한 아버지의 소리 없는 외침과 남겨진 자의 고통은 단 한 줄도 담지 못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론적 사고방식을 아무리 대입해보아도 그 깊은 상처와 고통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 P38

병원 직원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공지글 중 하나가 부고(告)다. 직원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조부모상 공지도 간혹 올라온다. 평균 수명이 퍽 길어졌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다만 직원이 7,000명이 넘다 보니 거의 매일 부고가 올라오는데, 잘 아는 직원의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그저 업무의 연장선쯤으로 여겨져 무감각해지기 일쑤다.
어디 회사 게시판만 그런가.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타인의죽음을 알리는 부고는 차고 넘친다. 도로 위 번쩍이는 LED 전광판에 표시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 TV 뉴스를 장식하는 전쟁 전사자 숫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사망자, 세월호, 이태원 희생자 명단 등. 이 죽음의숫자들은 모두 부고들이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부상자와 사망자 숫자는 당신도 저기에 합산되지 않도록, 혹은 타인을 합산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무언의 시그널이다. - P39

그 숫자 속에는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서사‘는 사라지고 오로지 숫자 1로 기억된다. 참혹한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폭탄에 맞아 처참하게 죽어간 이름 모를 병사의 죽음은 수만리떨어진 대한민국의 나에게 그저 숫자 1에 불과한 외신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너무나 길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뉴스의 부고는 수많은 정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는 나의 목적 달성을위한 취사선택에 필요하거나 유용한 차원으로 소비되는 도구의 성질을 지닌다. 그래서 이런 정보에 사람의 이야기가 머물 공간은 존재하지않는다. 정보는 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내가 감당할 수준을 벗어나면 축소되고 탈색되어 원래 있던 알맹이는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는다. - P40

"참혹한 전쟁터에서 청년들이 죽어 나가지. 주인공 폴이 총에 맞아 숨을 거두던 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는 최고사령부의 공식 발표가 나온다네. 거기선 백 명 이상 죽으면 이상이 있지만,
한 사람이 죽으면 아무런 이상이 없어. 그런데 죽어간 폴의 어머니에게는 과연 서부 전선에 이상이 없었던 걸까?"


사실 백 명의 죽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더해진 것이다. 역설적으로 단 한 사람 죽음의 무게는 백 명의 죽음이 지닌 무게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즉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 예수가 "한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말한 것도 한 생명의 가치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의미다.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사회일수록 죽음의 양을 나타내는 통계 속숫자는 죽음을 누구나 납득할 만한 보편적 기호로 재단해 관리하기 쉬운현상으로 바꿔버린다. 죽음이 통계 수치로 전환되고 나면 폴의 어머니가 겪은 고통은 물론 참혹한 대량학살의 비극마저 그저 언제나 일어날수 있는 일상의 사건으로 정리된다. 스탈린이 말했다고 알려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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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세트 - 전2권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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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첫 시선집, 독자들에게 새롭게 인사드린다
그동안 내 시집들을 읽어주신 분께
작은 의미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조현병이라는
절망스런 상황이 수십 년 이어졌었고
그러나 이제는 천주교에 귀의하여
환한 길을 걷고 있는 나로서도 이 시선집은
어떤 획을 긋는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봄은 봄이지만 늘 맞던 봄이 아니라
처음으로 맞는 봄 같다

2026년 봄
최승자

일찍이 나는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개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廢水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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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농, 좀 걸어요, 지노가 제게 말해요. 우리는 그레차나 쪽으로 걸어가요. 지노는 아무도 모르는 길들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신기하죠. 그는 고속도로를 한 번도 건너지 않고도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갈 수 있거든요. 나중에 저는 그의 얼굴과 그 기다란 코 때문에산토끼라고 불렀는데, 제가 옳았어요. 그는, 다른 사람들은 찾기는커녕 보지도 못하는 길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날은 그가 저를 만지지 않았어요. 종종 둑을 내려가거나 나무 아래를 지날 때 손을 잡아주기는 했죠. 그는 이전에 남자들이 제게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행동들을 했어요. 그는 자제하고 있었어요. 원숭이들이 하는 짓과는 정반대죠. 원숭이들은 다 망치고 다니잖아요. 그는 자신의 악기를 꼭 쥔 채 온몸으로 그 악기를 감싸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 같았어요. 지노는 사이프러스가 자라는 베로나의 햇빛 아래에서, 아무런악기도 없이 그렇게 했던 거예요. 그런 모습 때문에 제가 그를 만지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 P53

평원은 초여름이다. 풀은 녹색이고 어리다. 도로가 포 강에 가까워질 때마다 강은 점점 더 넓어진다.
이곳 그리스에서 섬들 사이의 바다는 다른 모든 것보다 오래 남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곳 평원의 담수는 다르다. 포 강은,
한데 모여서 점점 불어나는 동안(일정 시점이 지나면 모든 큰 강은더 많은 물을 끌어모은다), 그 무엇도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음을 강요한다.
도로 가장자리에 양귀비가 자라고 있다. 늘어선 버드나무들이 강의 경계를 알려 주고, 부드러운 바람은 그 꽃들을 마치 베개 안의솜털처럼 도로 건너편으로 날려 준다.
그러는 내내 땅은 점점 더 평평해지고, 나이 든 여인의 손끝에서펴지는 테이블보처럼 주름도 사라진다. 여인은 다른 손으로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있다. 땅이 점점 더 평평해지면서 거리감도 늘어나고, 인간은 아주 작게 느껴진다. - P54

신호수는 오토바이를 빠르게 몬다. 발뒤꿈치를 들고, 팔꿈치를구부리고, 손목의 긴장을 풀고, 허리 부분을 연료 탱크에 밀착시킨다. 어쩌면 이른 아침의 햇빛 덕분에 모든 것이 또렷이 보이면서, 속도에 대한 욕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모습을 그려보면, 바다에 이르는 것이 강의 본성이듯, 속도를 꿈꾸는 것은 남자의 본성임을 알 수 있다. 속도는 인간이 신의 것으로 여긴 최초의특성들 중 하나다. 그리고 여기, 아직 교통 정체가 시작되기 전의 화창한 아침에, 커다란 강 옆에서 장 페레로는 마치 신처럼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손가락을 움직이고 어깨를조금 틀기만 하면,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그 어떤 인간적인 지체도없이, 그 효과를 기계에 전달할 수 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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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 눈이면 훌륭하지
여름의 열기에 힘들어하는 남자의 입에는
봄바람이면 훌륭하지
항해에 나서려는 선원들에게는
홑겹 이불 하나면 그 무엇보다 훌륭하지
침대에 누운 두 연인에게는


상황이 맞을 때면 오래된 시구를 인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들은 것은 거의 기억하고, 온종일 귀를 기울이지만, 가끔은 그 모든것을 조리있게 하나로 맞춰낼 방법을 알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진실한 울림이 있는 듯한 단어나 구절에 매달린다.
한 세기 전에는 습지였지만 지금은 시장이 열리는 플라카 주변구역에서, 사람들은 나를 초바나코스라고 부른다. 양치기라는 뜻이다. 산에서 온 사람. 내가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은 노래 한 곡 때문이 - P5

었다.
매일 아침 시장에 나가기 전에 나는 검은색 구두에 광을 내고 카우보이 모자에 묻은 먼지를 떨어낸다. 도시에는 먼지와 오염물질이 많고, 햇빛 때문에 그것들은 더 나빠 보인다. 나는 넥타이도 맨다.
제일 좋아하는 넥타이는 화려한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것이다. 맹인은 절대 외모에 무심하면 안 된다.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보석상처럼 옷을 입고, 시장에서 타마타(tamata, 그리스 정교에서 누군가에게 기적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와 함께 교회에 바치는 편액(扁額)-옮긴이)를 판다.
타마타는 손으로 만져서 그 위의 형상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맹인이 팔기에 적합한 물건이다. 양철로 만든 것도 있고, 은이나, 아주 가끔은 금으로 만든 것도 있다. 리넨처럼 얇고 크기는 신용카드만 하다. ‘타마(tama, 타마타의 단수형-옮긴이)‘는 ‘맹세를 하다‘라는 뜻의 동사 ‘타조(tázo)‘에서 유래했다. 맹세의 대가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축복이나 구원을 기대한다.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은 칼이 찍힌 타마를 사는데, 이는 ‘제대할 때까지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는 바람을 표현하는 것이다. - P6

몇 주가 지났다.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프랑스어를 말하는 게 들릴때, 심장이 새겨진 타마를 팔 때, 신호등에서 멀어지는 오토바이의바퀴 소리를 들을 때, 가끔씩 그럴 때마다 철도원과 그의 딸 니농이생각났다. 두 사람은 스쳐 갔고, 절대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유월이 시작될 무렵, 무언가 달라졌다.
저녁이면 나는 플라카에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온다. 맹인이 되고 나서 생긴 효과라면, 시간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지니게 된다는것이다. 시계는 쓸모없어진다(나도 가끔은 시계를 팔기도 하지만).
시계가 없어도 나는 시간을 분 단위까지 알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열 명의 사람을 정기적으로 지나치며 그들과 몇 마디 나눈다. 그들에게 나는 시간을 알려 주는 사람이다. 일 년 전부터 그열 명 중에는 코스타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와 나의 관계는또 다른 이야기이고, 아직은 말할 수 없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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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서성이는 사람
위수정


최근(이라고 말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거실 소파에 앉거나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영화 보는것을 좋아하지만 요즘엔 영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책을 펼쳐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같은 드라마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딴짓을한다. 성인 ADHD인가? 정신과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건 아닐 거라고 한다. 나는 친구의 말을 믿을 수 없지만 굳이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할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ADHD라면?
SNS에서 본 적이 있는데, ADHD 환자가 약을 먹으면 평소에 산만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길 수 있고 집중력도 놀라울 정도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약은 나를 - P221

위한 것이 아닌가? 내가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면 친구는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어찌되었든 가능한 한 약은 먹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 친구는 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의사니까. 나는 내가 집중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약을 먹는 쪽을 택할 텐데, 하고 생각하며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일찍 잔다. 일찍 일어난다. 공복에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신 뒤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을 쓴다. 약 두 시간 정도 천자에서 이천 자 분량을 쓴다. 그렇게 글쓰기를 마친 뒤 기분좋게 스트레칭을 한다. 건강한 아침식사를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한다. 잔잔한 클래식이나 감성적인 인디밴드의 음악을 틀어놓은 뒤 강아지와 함께 각자의 식사를…… 평온하고 이상적인 루틴.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상.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안 되는 일들이다. 역시, 오늘도 글렀어. 자기 전에 거의 매일하는 생각이다.
여행을 다니 - P222

여행을 다니면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여성복(이라는 말도 언젠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저 스커트라든가 드레스 같은 말로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을 잘차려 입은 남성들. 나는 왠지 그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건 슈트 차림의 여성을 볼 때와는 또다른 감정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편견에 맞서려는 좀더 깊은 의지와 용기가 전해진달까. 그리고 그중 어떤 이들은 외부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는 듯 수염을 기르고 가슴의 털을 그대로 노출한 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자연스럽게 걷고 있기도 했다. 국내에서 - P222

도 크로스드레서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기이함과 존경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응원의 마음이 든 것은 내 안에 학습된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의 작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마음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습된 작용이든 뭐든 그것이 내 진심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입고 싶은 옷을 입고도 그 누구의 어떤 종류의 폭력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비단 옷차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거리낌없이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혹시 내게 배우자나 아이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까, 가정이 있는 이들이 사회적 규율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시 소수의 말에 좀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써야하니까. 아니, 그 이전에 국가나 사회가 ‘잘‘ 작동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을 본능적으로 의심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내안에 다양한 형태의 보수성이 있음을 종종 느낀다. 그런 것들은 의식적으로 떨쳐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하고 싶다. 잘 안 되더라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은 먼지만큼, 또는 우주만큼 다르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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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없는 집에 나오는 코요와 관련된 설화를 들었을 때 나는 머리에 작은 등이 깜빡 켜지는 경험을 했다. 그런 경험은 잘 찾아오지 않는, 작가로서 언제나 고대하는 순간이다. 기나사 설화는 「귀신이 없는 집」보다 한 계절 앞서 발표한 단편소설 「눈과 돌멩이」의 초고를 먼저 읽어주신 허병식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내 소설을 읽고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하셨는데 그 순간 그동안 쓰고 싶었던 이야기의 구름들이 손에 닿았다. 쓸 수 있겠다는 기분. 작가로서 가장 설레는 순간.
한 작품으로는 그리고 싶은 인물들을 다 그리지 못해 두 편의 소설에 코요의 이야기를 담게 되었다. 하지만 두 편으로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2부작보다는 3부작이 익숙해서인가? 코요에게서 뻗어나간 작품 하나를 더 쓰고 싶다. 연결되는듯 전혀 다른 독립된 작품으로, 언젠가는 쓸 수 있기를. - P224

사실 나는 시간을 낭비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성실함이라는 것 역시 사회에서 요구하는 덕목 아닌가. 과거의 양반이나 귀족들의 행태를 보면, 성실함의 미덕은 피지배층을 부려먹으려는 지배층의 계략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함에도, 역시 나태하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다. 반면, 유용하게 시간을 보냈다고 느끼면 안정감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행인 점은 내게 유용한 시간은 문학을 할 때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어쩌다. 이 시대에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을 유용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전시회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일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당을 주는 일을 하는 것보다 유용하게 느껴진다. 나는 비경제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유 - P224

일한 자부심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이 유용하다고 믿는 마음을 억지로 가지려 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그렇게 향한다는 것. 이런 마음은 타고난 것은 아닐 것이다. 문학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환경에서 자란 것(부유하게 자랐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경제적 이득보다 다른 가치를 더 중요하며 살아가는 동료와 선생님들이 내 주위에 있어서 나는 불안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예술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못하)는 사회에도 빚을 졌다면 졌을 것이다.
작가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위치인 동시에 시대가 부여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경계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의 내면에 감추어진 각자의 소수성을 찾아내고 관찰하는 것이 나의 임무. 그들이 오십대 남성이건, 십대 소녀이건, 나는 꾸준히 그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성실한 작가가 되고 싶다. 힘을 주세요. 내일은 좀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오늘도 잠들기 전에 기도해본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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