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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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16.






깊은 일
안현미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다

그것은 깊은 일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오래 방치해두다 어느 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오래 끌려다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어떤 마음처럼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은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

시집 [깊은 일] 중에서


세월호못봇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고 쓴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했다고 쓴다 그리하여 개조해야 할 특별 대책과 특급 망언들만 부표처럼 떠 있는 맹골바다 속으로세월호는 침몰해야만 했다고 쓴다. 100일이 넘도록 오직 진실을 알고 싶다며 눈물의 입구에서 절망의 입구까지 애통하게 견뎌온 엄마들이 있다고 쓴다 이제 그만 유사 대책과 유사 눈물에 최선을 그만두자고 쓴다 최악을그만두라고 쓴다. 그게 뭐든 누구든 희망 고문은 그만 닥치라고 쓴다 진보도 보수도 멀었다고 쓴다 제발 그리운이름 옆에서 살고 싶다고 쓴다 죽고 싶다고 쓴다 내 새끼가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이 못이 되어 박혔다고 쓴다.
돈이 되는 건 다 판다더니 정말 다 팔았다고 쓴다 지옥까지 팔았다고 쓴다 그게 뭐든 누구든 내 새끼가 보고싶다는 말에 못 박혀야 한다고 쓴다 죽어도 죽어도 죽을수는 없다고 쓴다 죽어도 죽어도 다시 죽을 때까지 시작해야만 한다고 쓴다 - P10

수학여행 가는 나무

나무는 쓴다 우리 모두가 연루되어 있다고 겨울에도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쓴다 결국 떠날 수 있는건 없다고 쓴다 다만 울음이 바닥났을 뿐이라고나무는 운다 굴뚝 위에 독재 위에 칠탑 위에 올라간사람들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위해 나무는 운다 우리는 모두 까닭이고 바보라고나무는 간다 어둠을 뚫고 바위를 타고 계급을 넘어 나무는 간다 울음을 찾아 울음의 핵심을 향해 울음의 연대를 위해 나무는 간다 사월의 사월의 바다로 나무는 난다 세계는 늘 위독하지만 수학여행 다녀게요 기억하겠습니다 기록하겠습니다 살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특별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특별해진 그 사랑을 기억하며 기록하며 나무는 난다 나무는 날아오를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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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던 그해 초, 나는 유럽에사는 아시아계 체류자들이 차별을 당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에서는 아직 아시아인을 상대로 한 인종차별 소식이들리기 이전이었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처음에는 코로나의 확산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우한이나 이탈리아에무슨 일이 났다는데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니 나와는 거의무관했다. 그러나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사건이 미국에서도발생하고 그 빈도가 잦아지자 나가서 걸어 다닐 때면 누가 나를표적으로 노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아시아계 노인과여성을 겨냥해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침을 뱉고, 괴롭히고,
인종차별적 욕을 하고, 식당에서 서비스를 거부한다는 뉴스를들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가게를 훼손하는 무리에 대한기사도 읽었다. 그러나 미국 주요 언론은 2021년 들어서 누가태국계 남성 노인을 밀어 넘어뜨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발생하기 전까지는 그와 같은 인종주의에 그다지 관심을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21년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마사지숍에서 아시아 여성 여섯 명이 총격범에게 살해당하는사건이 발생했다. - P10

물론 내가 마이너 필링스』를 집필한 배경은 코로나대확산 이전에 이미 미국에 아시아인 혐오, 정서가 널리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랬고, 내가태어나기 전에도 그랬다. 인종주의는 전혀 새롭지도 않고 결코사라지지도 않는다. 인종주의는 코로나 확산 시기에 그런 것처럼그때그때의 역사적 상황에 맞춰 적응할 뿐이다. 아시아인에대한 미국의 제노포비아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도착한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노예를 대체할 값싼노동력으로 유입된 이들은 나중에는 금광에서 금을 캐는 일을했다. 미국 백인들은 이 중국인 노동자들이 백인의 일자리를빼앗는다고 생각해 위협으로 여겼다. 중국인을 역병, 해충이라고부르며 비하했다. 결국 1882년 연방정부는 중국인의 미국 이민을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켰으며, 나중에는 아시아전역을 대상으로 이민을 금지했다.
- P11

물론 진실은 훨씬 복잡하다. 미국이 공산군의 남침을막아주었을지는 몰라도, 이후 미군 남한 점령의 식민주의적유산은 그 나름의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 아시아인에 대한미국산 인종주의가 한국전쟁 시기에 한국으로 수입되어 백인미군은 한국인을 불결하고, 인간 같지 않고, 원숭이와 비슷한존재로 간주했고 모든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면서한국인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이민금지법을 폐지하는1965년 이민국적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한국계 미국인들도미국 인종 분리 정책의 희생자였다. 다이빙 선수로 올림픽에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Sammy Lee)는1930년대에 공영 수영장에서 훈련하지 못했다. 아시아인은백인과 수영장을 같이 쓰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12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획득한 평등은 대부분 흑인민권 운동과 지금도 진행 중인 흑인의 평등 투쟁의 덕을 본것이다. 1965년에 미국이 문을 열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이민자를 받게 된 것도 바로 흑인 민권 운동 덕이었다. 아시아계미국인들이 자체적인 운동을 개시해 공평한 처우와 존중을요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1960년대 말에 블랙파워 운동에힘입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혹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오늘날미국 한인 사회와 한국에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나도 집에서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언급을 들으며 자랐다. 반은 흑인, 반은한국인인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누가 자기를 난생처음으로혹인 비하 표현인 "X"로 부른 곳이 미국이 아니라 서울이라고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심히 부끄러웠다. 이 책은 아시아사회에 존재하는 그런 흑인에 대한 반감을 지적하고 다른 인종간에 서로 어떻게 연대를 꾸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평등을 위한 미국 흑인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 부모님을비롯한 수많은 가정이 미국에 이민 올 기회조차 누리지 못했을것이다.
- P13

마이너 필링스는 나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내 나름대로솔직하게 성찰하고 따져본 결과물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수필집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몸 안에 살면서느끼는 나 자신의 상반된 감정을 가능하면 투명하게 풀어놓고자한다. 또한 이 책은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겪는 세대 간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다룬다. 우리 부모님은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오로지 앞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고 무엇이 우리에게 상처나심지어 굴욕을 주었는지 밝혀내지 않으면 진전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겪는 정신 질환 문제를 숨기지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P14

대중의 머릿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모호한 연옥상태에 놓인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흑인에게는불신당하고 백인에게는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흑인을 억압하는일에 이용당한다. 우리는 서비스 분야의 일개미이며 기업계의기관원이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에 적절한 "얼굴을 지니지못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숫자를 처리하며 기업의 바퀴가 잘굴러가도록 기름이나 치는 중간 관리자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콘텐츠를 문제 삼는다. 저들은 우리가 내적 자원이 없다고여긴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역부족이라는 기분에함돌된 내 상태를 감추기 위해 물밑에서 미친 듯이 발을 저으며언제나 과잉 보상을 한다.
유대인의 자기혐오나 미국 흑인의 자기혐오에 관한 책은얼마든지 있지만, 아시아인의 자기혐오에 관한 책은 별로 많지않다. 인종적 자기혐오는 백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는것이고, 이것은 나를 자신의 최악의 적으로 만든다. 유일한방어책은 자기를 심하게 다그치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이것이강박적으로 되면서 거기서 위안을 찾게 되고, 결국 자신을죽도록 구박하게 된다.  - P26

이 아시아인들을 다 누가 들여보낸 거야? 속으로 투덜거린다.
다른 아시아인들과 함께 있으면 결속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경계선이 흐려지고 한 무리로 뭉뚱그려져서 더 열등해지는기분이 든다.
자기를 혐오하는 아시아인은 내 세대를 끝으로 사라질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가르친 세라 로런스 칼리지의 학생들은 맹렬하여 -자율적이고 정치적 참여도 열심히 하고 똑똑했다- 참 다행이다.
이 학생들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시아인 2.0이다.
고함을 내지를 준비가 된 아시아 여성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그러다가도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가보면 머리만 예쁘게매만지고 아무 말 없이 생쥐처럼 얌전히 앉은 아시아 여학생들을만나는데, 그럴 때는 닦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너 입 좀열어라! 안 그러면 저들에게 완전히 짓밟힌다고!
- P27

나는 피해망상이라 할 정도로 과도하게 예민해져 나자신의 불안을 몽땅 소년에게 투사해버린, 신뢰할 수 없는서술자다. 정말 아팠는지 아니면 아프다고 상상했는지조차기억하지 못한다. 그 기억을 너무나 여러 번 곱씹은 나머지형체가 없어지도록 짓이겨 놓았고, 그리하여 소년은 분개의얼룩이 되고 나는 특권의 얼룩이 되고 결국 우리가 하나의얼룩으로 번져 그냥 나 하나로 합쳐질 때까지 소년의 존재를지워 없았다. 그러나 그는 나와 달랐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쓸모없는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특권을 누렸다. 방과 후 시간을모두 네일숍에서 보내는 베트남 10대 소년에 대해 내가 뭘알았겠는가?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 P30

작가 제프 창은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싶다"라고 적으면서,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지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 불확실함에 동의한다. 우리는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아시아계 미국인 의식이라는관념은 도대체 존재하는가? 그것은 W. E. B. 뒤부아가 한 세기도더 전에 확립한 이중의식 같은 걸까?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딱지에 칠해진 페인트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이 용어는거추장스럽고, 버겁고, 나의 존재 위로 어색하게 올라앉아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운동가들이 블랙팬서와 손잡고 저항운동을벌였던 1960년대 말 이후로 우리만의 대중운동이라고 일컬을만한 것이 없었다. 쓰기가 조심스러운 "우리" 라는 대명사는앞으로 하나의 공통된 집합체로 결속될 것인가? 아니면 갈라진상태로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외국인"이나 "갈색인 (brown:인종 범주라기보다는 피부가 갈색인 중남미,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을 아우르는 용어로 최근 영미권에서 널리사용되고 있다. 옮긴이)으로 남고, 다른 일부는 부를 늘리거나인종 간 결혼으로 백인 세상에 입장할 것인가?
- P50

우리 인종은 심지어 이 나라와도 무관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론조사에서 흔히 "기타"로 분류되고신고된 강간, 직장 내 차별, 가정폭력 사건의 인종별 집계에서도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사회적 신호를 박탈당해 나의 행동을 타인과의 관계에비추어 가늠할 수단이 없으니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을지, 무슨 말을하면 좋았을지 내 생각을 샅샅이 점검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듣는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무한대로 커져서,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결코 충분치못하다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더 잘하고, 더 잘되려고 강박적으로노력하며, 자기 이익이라는 이 나라의 복음성가를 맹목적으로따라 부르고, 내 순가치를 늘려 내 개인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는짓을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한다.
- P58

우리는 시의 느림을 칭송한다. 요즘처럼 감각을마비시키는 정보의 맹공격과는 반대로, 시가 마음속에 서서히스며드는 방식을 칭송한다.
우리 시인들은 청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거짓말이다. 시인들도 위상에 집착할 수 있고 내가 알기로남의 인정을 무척이나 받고 싶어 한다. 환심을 살 청중이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시인들이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외부인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사실 시인의 청중은 제도다.
우리는 학계, 심사위원단, 펠로십 제도라는 고등한 관할권에의존하여 사회적 자본을 획득한다. 수상 제도를 거치는 것은시인이 주류적 성공에 이르는 소중한 길이며, 수상 결과는심사위원단이 공들여 이뤄낸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이 타협은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수상작에 아무 위험성이 없음을보장한다.
- P66

당시 우리 가족은 LA의 신개발 지역에 살아서 주변에 온통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사슴 떼가 덤불 우거진 동네언덕 위를 돌아다니며 엉겅퀴나 산쑥을 뜯어 먹었다. 어느 날 밤보름달이 떴을 때 나는 머리에 작은 뿔이 솟은 수사슴 한 마리가뒷다리를 구부린 채 우리 집 뒤뜰에 용변을 보고 확 달아나는모습을 보았다. 나는 우리 집이 귀신 들린 집이라고 생각했다.
침대 틀이 흔들리는 바람에 몇 번씩이나 자다 깨곤 했다. 한 번은유령이 내 몸을 매트리스에서 들어 올리려는 느낌이 들어서 깜짝놀라 깼다. 나는 몸이 둥둥 뜨지 않도록 침대 시트를 움켜잡았다.
그 시절 나는 심하게 외로웠고 별로 활기도 없었다. 나는미술을 할 때, 나중에는 시를 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생기를되찾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왜냐하면 내 육체가비물질화되고, 내 정체성이 떨구어지고, 내가 다른 삶을 사는것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모든 글이 이 자유를인증했다. 존 키츠에 따르면 시인은 "정체성이 없다 - 시인은끊임없이 어떤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그 사람의 역할을 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문학은 모든 주체가 피해 가는 그 중립자,
그 합성물, 그 모호성이며, 글을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비롯하여모든 정체성이 실종되는 덫이다".
- P67

나는 개인이 겪는 인종 트라우마에 관해쓰는 일이 늘 불편했다. 인종 트라우마를 틀 짓는 뻔한 형식이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백적 서정시의 형식은내 인생이 그렇게 비범하지 않은데 나의 아픔만 특별하고,
이례적이고, 극적인 느낌이 들어서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술법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을 어떤 인류학적 경험의 틀로 사출성형하듯 가공하여,
독자가 내 소설을 읽고서 한국인의 삶은 너무 가슴 아프군! 하고여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어의 연기를 보고 나서 - 그리고 그가연기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시각적, 청각적인 면을 전부필사하고 나서 - 나는 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글로 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72

지난 20년 동안,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줌파라히리의 작품들은 아시아계 이민자는 순응적인 노력가라는환상을 지탱하는 인종적 소설의 전형이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독자를 몰입시키는 이야기꾼인 라히리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작품을 이민자의 삶에 대한 "단일한 이야기" 로 포지셔닝했던출판업계의 잘못이다. 라히리는 문화적 차이를 찾는 백인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딱 적당할 수준으로 편안한 인종적소품을 이용해 무덤덤하고 억제된 어조로 글을 썼으며, 작품속 인물들은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고 그저 행동한다. "나는 …은행 계좌를 트고, 우체국 사서함을 빌리고, 울워스 마트에 가서플라스틱 그릇 하나와 수저 하나를 샀다." 라히리 작품에 나오는인물은 언제나 절제되고 그 어떤 내면 지향성도 회피한다. - P75

프라이어를 처음 봤을 때 나도 "각성의 쇼크"를느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프라이어를보면서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한을 연삼했다. 한은 가혹했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국에 의해 지탱되었고 정치적으로바로 세우지 못한 독재의 역사 때문에 쌓인 울분, 아쉬움, 수치심,
우울, 앙심의 혼합물이다. 한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다음 세대로 대물림될 수도 있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을느끼는 것이다.
프라이어의 온갖 흉내 연기 사이사이로 분노와 절망이스친다. "내가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라서 다행이에요. 당신네백인들은 달에도 가야 하잖아요"라고 말할 때 서리는 프라이어의우수는 웃음이 그친 한참 후까지도 맴돈다. 그 우수는 그가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앙리 베르그송은유머는 숭고함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신성이 배제되어 있고온전하게 인간적이라고 적고 있다. 즉 우리는 유머를 통해초월성보다는 우리의 피부를 통절히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라이어도 "끊임없이 어떤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지만, 키츠가 말한 정체성 없는 시인과는 달리 프라이어는 - P83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 (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 P95

연기 나는 건물 가까이로 날아가자. 모로 쓰러진 자동차의새까맣게 그을린 차체, 상점 입구에서 뜯어낸 철문 셔터가바닥에 아코디언처럼 구겨져 있는 모습이 또렷이 보일 만큼가까이 가자. 온갖 경보기가 일제히 울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가까이 가자. 불타는 가게에서 한 왜소한 여자가 나와 카메라를향해 손을 흔든다. 무엇을 원하는 걸까? 뭐라고 하는 거지?
여자가 말한다. 멈춰요!" 여자가 말한다. "도와주세요! 911에전화해도 반응이 없어요. 소방관, 구급대원은 어디 있죠? 경찰은어디 있죠?" 여자에게 말해주자. 경찰은 웨스트사이드에 가있다고, 경찰 병력이 거기서 조용한 거리를 지키고 있다고,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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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객들이 온라인에서 한국영화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나요? ‘알탕영화‘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영화에 남자들만 나오고 여자캐릭터는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비평언어로는남성은 과대재현되고 여성은 상징적으로 소멸되는 현상"이라고도 합니다. 검사영화의 유행과 그 영화들에서 반복되는 관습적인재현은 이런 배타적으로 남성만 주인공이 되는 한국영화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차근차근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17년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던 정치적 열정이라든가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정치적 태도 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음모론입니다. 한국에서 이 음모론은 상당히 성별화되어 있는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남성중심적인 담론에서 음모론이 활발하게작동되어왔죠. 그래서 ‘남자다움‘, ‘남자됨‘의 성격을 상상하는 방식과 음모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말하자면 남성성과 음모론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 P181

내부자들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백윤식이 《조선일보 쯤 되는 신문의 주필입니다. 칼럼 하나로 정계와 재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이 데리고 있는 정치깡패가 이병현이에요. 그는 백윤식의 뒤를 닦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승우는 백윤식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 이너서클 네트워크, 즉 ‘내부자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검사고요. 이 세 사람이 주인공들입니다. 거기에 두 명이 더 등장하죠. 미래자동차 오회장 역할의 김홍파와 그의스폰을 받고 있는 여당 대통령 후보 이경영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화가 말하는 ‘내부자들‘이 완성됩니다. 언론과정계, 그리고 재계가 유착되어 있고, 여기에 검찰까지 연루되어 있는 형태. 물론 연예계도 연결됩니다. 조폭인 이병헌이 연예인소속사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거느리는 여성연예인들을 성상납에 이용하는 브로커 역할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잊혔던 사건, 즉장자연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내부유착관계‘를 떠올리게 됩니다.  - P183

남성들이 서로의 비리를 백업해주서 그걸 바탕으로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이너서클이 남성 -동성 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관계 안에서 여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선물이거나, 약점으로잡고 있는 히든카드이거나, 승진 혹은 신분상승을 위해 사다리같이 사용하는 매개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다리로서의 여자‘가 그나마 대사도 있고 한 명의 ‘인간‘으로 그려진 것이 <더 킹>의 조인성아내였죠. 김아중이 연기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내부자들>에서 조승우의 출신성분입니다. 조승오는 검사가 되기 전에 경찰이었습니다. 흙수저‘ 경찰(조승우의 앞길에 계속 걸림돌이 되는 아버지가 헌책방을 한다는 설정은 저에게는‘지성의 몰락‘처럼 보여서 조금 서글펐습니다). 그는 흙수저‘ 경찰이었다가 그것으로는 출세를 할 수가 없으니 다시 시험을 봐서 검사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에서 조승우는 ‘금수저 내부자들‘,
즉 ‘적폐‘의 비밀을 캘 수 있는 정의로운 남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 P187

좀 뜬금없어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영화를 한 편붙여보려고 합니다. 이 시민캐릭터가 우리를 구원할 ‘선군일 수도있다는 상상력을 보여주면서 관객 수 1,000만을 넘긴 영화가 있었조, 저는 이 영화를 포스트 - 노무현 기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하 <광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켰고, ‘쌍용차‘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있는 리더이면서, 대추리 등등에서의 국가폭력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화운동의 얼굴이자 반권위주의의 정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선군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이죠. 그 정치적 리더가 죽음을 맞이하고 난 다음, 한국사회에 닥쳐온 것은 이명박 · 박근혜의 시대였습니다. 이들은 비열한 장사꾼이거나 무능한 공주였죠.  - P189

이와 비교해볼 만한 것은 <부당거래>의 유명한 대사 "호의가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입니다. 류승완 감독이 류승범의 입에서 그런 대사를 말하도록 했을 때, 그 의도란 ‘권력자‘들이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보장을 자신들이 베푸는 ‘호의‘로 잘못 알고 있다.
는, 그런 태도를 비판하려는 것이었죠. 그런데 2017년에 와서 이유행어가 작동하는 방식은 "너네 이명박·박근혜 시대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이제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되니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시끄럽게 구는 거 아니냐"라는 말들과 정확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좀 잘해주려고 했더니, 그게 권리인 줄 아냐"라는 이야기가 한국사회의 곳곳에 숨어 있는 거죠. 그랬을 때이 검사영화들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욕망, 그리고 관객들이 반응했던 그 욕망이 과연 정의구현과 복수에만 있었을까요? 어쩌면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내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
실제로는 호의를 베푸는 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 P216

남성공동체란 또 한편으로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원주민중심적이죠.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내각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상력의 문제 역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정치적으로 합당한 대응을했어야죠. 왜냐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돌려서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그것이 남성다움을 형성한다는 그 상상력이 지금과 같은배제적인 정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탁현민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탁현민이 싫어서가 아니라, 혹은 문재인 정권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교환가치로 삼아버리는 남성중심적인 정치를 깨기 위해서이는 꼭 해결해야 할 매우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였던 거죠.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긴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언가에 대한 답을 드렸다기 보다는 제가 가진 질문을 나누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 P219

시간이 좀 흐르면서 ‘혐오표현‘이 다양한 소수자집단에 대한차별표현을 포괄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최근 몇 년동안 소위 ‘반동성애운동‘이 꽤 활발했었죠. 이들은 동성애에 대한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말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유포하고집회·시위 등 행동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러한 말이나 행동을 "동성애혐오", "성소수자 혐오표현" 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여성혐오에 맞선 미러링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등장과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데이트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살인 사건으로도 이어졌다는것이죠. 이후에 여성혐오 담론이 확산되면서 페미니즘 도서 판매가 급증하고,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페미니즘 모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죠. 지금도 그 흐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P223

여성에 대한 폭력은 현실입니다. 데이터폭력, 가정폭력, 성폭력이 만연한 현실에서 삼일한 ‘은 농담이 되기 어렵습니다. 반면, 남성에게 "저런 남자들에게는
"숨쉴한 이 답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화될 것이라고두려워하는 남성들은 없을 겁니다. 그런 현실이 거의 없으니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실제 차별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위험이 없다면 소수자차별로서의 혐오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건 상대적인 겁니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우월사회가 된다면 남성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들이 혐오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고요. 또한 현시대에도 남성들이 소수자가 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혐오표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이수적으로도 많고 권력적으로 우위인 어떤 회사에 입사한 어린 남자직원의 경우에는 그런 위치에 놓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일 뿐 일반화하여 말하긴어렵습니다.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그런 맥락은 잠시 동안위태롭게 유지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혐오나 여성혐오나 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 P234

한국사회는 혐오표현에 관해서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혐오표현이 차별과 폭력으로 언제 어떻게발전해나갈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에서는 유럽이나미국처럼 혐오집단이 활개를 치거나 혐오로 인한 조직적인 폭력이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시더군요. 물론 한국에서 노골적인 폭력의 발생 건수 자체가 많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혐오가 만연한 곳에서 그것이 차별과 폭력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개인의 취약한 지위가 강화되고 정치선동과 만나게 되면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차별과 폭력으로 치닫게 됩니다. 지금예방주사를 맞아놓지 않으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위험의 징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동성애 찬반을 묻는 장면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문제가 정치도구화된 순간이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주자나 소수종교 등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는 정치세력들이 많죠. 한국에서도 이제 성소수자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여,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소수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득표에 활용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치는결국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게임이고,  - P252

혐오가 조직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입니다. 조직화하는 조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협오와 관련해서는 2000년대 초반에 반다문화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오프라인에서 시위를 하는 정도까지 발전해나가기도 했고요. ‘일베‘도 단식 중인 세월호 참사 유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한다며 오프라인에 등장하기도 했었죠. 한 번 이렇게 오프라인에 나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나왔으면 또 나올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오프라인에 등장했다는 것은 ‘놀이‘를 넘어 일종의정치행동을 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P253

문재인 정권은 여성들에게 빚졌습니다. 여성들이 밥을 차렸는데, 밥상 아래서 밥을 먹으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죠. 아나,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밥상 엎고 싶죠. 탁현민 행정관 사태 때이미 한 번 실망했지만, 그야 뭐….…… 사연이 있겠지요. 사실 저도저 자신을 그다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 부족한 것이 많으니까요.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 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여성장관 몇 분은, 물론 훌륭하시긴 하지만 페미니스트 장관‘이 아니라 그냥 문재인 라인의 여성들이죠. 전체 차관 중에서 여성은 딱두 분입니다. 그것도 한 분은 여성가족부 차관이고요. 참고로 여성가족부 예산은 전체 예산의 0.18퍼센트입니다.
- P267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자산은 ‘문재인‘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인간 문재인이 훌륭합니다. 품격이 있죠. 우리가 언제 이런얼굴을 한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전두환씨나 이명박씨 얼굴을 생각해보세요(폭소). 그 나이가 되면 얼굴은 얼굴이 아니라 인생입니다. 실력은 물론, 친밀감, 서민적 이미지와 품격, 진정성을모두 갖추었습니다. 게다가 호남을 배려하는 영남입니다. 문재인이라는 캐릭터가 신자유주의라는 구조를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격과 스킨십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문제는 시민입니다. 구조를 직시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지,
팬덤으로 위로받으려고 하면 공도동입니다. 다 망합니다.
이들에게 유일한 약점은 젠더입니다. 젠더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사회에서나 모든 남성의 정치적 문제지만, 이들에게는 도덕적 우월감이 있어요. 문제는 그것입니다. 도덕적 우월감과 자부심 때문에 다른 정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이것이운동권, 좌파, 진보세력의 적폐가 될 것입니다. 진보나 보수나 여성문제, 성소수자문제에서는 별 자이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새 - P269

저는 저출산을 걱정하지는 않습니다만, 경제적 형편 때문에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월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의임금으로 ‘다이소‘에서 구입한 물건으로, 이마트‘에서 ‘노브랜드‘라는 유통을 장악한 재벌의 브랜드로 ‘혼술‘, ‘혼밥‘하며 먹고살 수 있어요. 그리고 문재인에 열광하고요. 삶이 만족스러워요 (웃음)혐오문제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에요. 분노가 아니거든요.
분노는 상대방과 나의 상호작용 속에 담긴 저항적 행위예요. 그런데 혐오는 자기 생각, 혼자만의 투사, 이를테면 망상이거든요. 힘오할 객관적 근거가 없어요. 사회에 혐오가 만연해 있고 일부 여성들까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혐오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놀라는 거거든요. 저는 흔히 ‘여자 일베‘라고 불리는 ‘워마드 페미적 미러링을 젠더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 P273

정상국가에 대한 욕망보다 사회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박근혜 정부도 사회가 건강하면 변화시킬 수 있고, ‘통일로 인한 혼란‘도 우리 사회의 역량에 달렸어요. 그런데 우리는 ‘사회‘가 없고 ‘국가만 있어요. 심지어 국가가 시민사회도 만들어요. 사회가 썩으면서 좌파세력과 페미니즘세력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좌파 내부의 성폭력 사건들은 오래된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뻔뻔한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이죠. 실력은 없으면서 욕망만 많은 사람 혹은 악당도 셀럽‘이 되는 사회입니다. 그런 식의 캐릭터들이 엄청나게 등장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괴로운 적 없으세요? 지금 제주도가 사람들이 많아서 가라앉을 판이잖아요? 제주도가 무슨 죄예요? 도시나 속세(?)가 너무 싫은 겁니다. 은둔, 자살, 망명, 셋 중에 선택을 하는 거잖아요. 같이 더러워질 것인가, 이렇게 사느니 은둔할 것인가, 모든 이의 고민이죠.
- P275

상식을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죠.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의 지배입니다. 그런데,
그 민중이 남녀노소, 지역, 계층 등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끝없는논쟁과 사회적 투쟁이 필요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영원한 추구의과정입니다. 청문회 나오는 사람을 보면, 이명박 성무나 문재인 정부나 다를 바가 없잖아요? 액수의 차이가 다르다면 다른가요? 표절, 부동산, 성폭력, 거의 비슷하잖아요.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다그렇게 사나봅니다. 심지어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를 가라』, 이런 책을 쓴 사람이 장관입니다. 그 사람이 서울대에서 가르치지 않는데, 그럼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한다는겁니까.
저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를 넘어 이제 가슴이 아파요. 제 강의 녹취록을 다듬는데 지금 이런 뉴스가 올라왔네요. 그룹 샤이니의 가수 종현씨의 자살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나에게 보낸 문자가
"고생했다고 말해줘, 나 좀 보내줘", 이것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증후적 현상입니다.
고통을 회피하는 사회는 더 고통을 치릅니다. 제가 문재인 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고통에 직면하고 열려 있기를………. 물론, 여성들의 고통도 포함해서요.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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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퇴행중이다.
어디까지일지...



진영논리가 무엇일까요. ‘진영‘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캠프camp‘로 번역됩니다. 대립하는 세력의 각 편을 뜻하는 말입니다. 진영논리가 힘을 발휘한다는 말은 곧 ‘편 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말입니다. 그렇다면 ‘편 가르기가 다 나쁜 일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저는 편 가르기 자체가 다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떨 때는 선명한 입장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정의를 위해 편을 분명히 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편이 나뉘어 싸우면 싸울수록 서로 이기기 위한 더 나은 논리와 방법이 제안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싸움 자체가 모두를 위해 이로운일이 됩니다. 제대로 편을 안 가르는 게 더 문제가 되겠죠. 상황을이해하는 내용상의 이견이 분명한데도 적당히 같이 있다가 수면아래에서 세력 다툼을 이어가다보면 무엇을 위해서 편이 갈라졌는지도 알 수 없게 되죠. 이때 편 가르기의 목적은 오직 권력에 있게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토론에서 말이 막힐 때마다이렇게 말한 바 있죠.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을 하려는 것 아닙니 - P138

까"진리에의 의지가 토론을 멈추게 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분명계 보여주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편 가르기의 목적이 상대방의 절멸에 있을 때 정치는 그냥 싸움판이 됩니다. 몇몇 정치인들 사이의 원한관계로 이미 편이 갈려있는 상태에서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상대방을 지도록 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죠. 일단 대립이 격화되고 편이 확 나뉘면 각 편이 추구하는 정치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체적인 실행기획과 청사진은 다 사라져버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게 됩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을 빌리자면, ‘프레임화 cognitive frame‘에 갇힌정치언어가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이죠. ‘종북‘이나 ‘빨갱이‘ 같은 말, 최근에는 ‘메갈‘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진영이라는 것 자체가 논리의 전부가 되는 것, 이것을 저는 진영논리라고 부릅니다.
- P139

다시 과거로 좀 돌아가면, 이명박 대통령 이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뜨거울 수 없는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에서 어째서 가장 탈정치적인 이명박으로 이동했을까요. 이런 비약은 어떻게 가능해졌을까요. 광장을 중심으로 생각을 이어가보죠. 우리가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1년 동안 광장의 민주주의를 통해 세계시민상도 받았지요. 누가 뭐래도 굉장한 일입니다. 무혈혁명으로 정권을 바꾸는 데 성공한 나라가 많지 않으니까요. 대단히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었죠.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있어도 특별한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집회를금지하는 독재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우리도 모이기 - P143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광장의 장이 열렸던 것이 2002년드컵부터였습니다. 월드컵 이후 한국사람들에게 광장이란 참여의 장이자 축제의 장으로 굉장히 익숙한 공간이 됩니다. 그전까지 광장이 특정한 이념적 행동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상정됐다면 20년 이후부턴 조금 더 일상적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었죠. 그리고 월드컵 응원 열기 속에 잊힌 비극적인 사건, 두 여중생의 참혹한 죽음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소위 미국에 대항하는 시위가 특전진영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대중시위로 열리게 되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열린 광장의 힘이 노무현이라고 하는 의외의 인물을당선시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참여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도 이 당시의 주요 정치적 담론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광장은 한국의 주요한 정치적 사건에서 결정적 힘을 발휘합니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193명이 대통령 탄핵발의를 가결니다. 광장은 다시 움직였습니다. 같은 해 4월 15일에 열린 17대회의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 과반의 의석을 얻습니다.
- P144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이 계속해온 얘기지만, 1997년 경위기는 여성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남성의 위기로 재현된 .
니다. 당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언론은 너도나도 고개 숙인지‘, 그중에서도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40대 아버지의 막막함을 중심으로 경제위기의 어려움을 그려냈습니다. 후에 통계를 보니,
로 당시 40대 남성들이 구제금융의 타격을 가장 적게 받은 세였습니다. 41~49세 남성들이 가장 영향을 덜 받았고, 그다음은31~39세 남성들의 순서였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집단은 보험 및 금융산업에 종사하던 30~49세 여성들과 자영업의 붕괴로아르바이트를 할 곳이 없어진 10대 여성들이었습니다. 386세대남성들의 행운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부동산시장 폭등을 이끈 주체이자 가장 큰 수혜자였습니다. 이들이집을 살 수 있는 시기, 이제 취업해서 자리를 좀 잡아가니 내 집 마련을 해볼까 하는 시기에 구제금융 여파로 폭락한 부동산이 눈앞에 왔던 거죠. 내 옆에 있는 친구는 얼마를 벌었고, 직급과 소득세수준은 상관없더라는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등장하던 때였습니다.
- P150

금융자본주의의 도덕적 해이와 파행, 세계화의 어두운 그늘과 보수화의 물결 등 새로운 사회변혁의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수정부와 보수언론에서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거짓선동에 휩쓸린 어리석은 군중들의 소요로 몰아갔고, 시민사회단체를 전문시위꾼‘으로 폄훼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이명박 정부 당시 사회연대의 희망에 불을 지폈던 것은 도드라지게 여성들이었습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강정평화마을지킴이, 홍대 ‘두리반과 명동 ‘마리‘ 등에는 언제나 젊은 20대 여성들과 예술가들이, 대학생들이, 탈학교 청소년들이 함께했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고, 때로는 ‘희망버스‘처럼 커다란 사회적 반향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과 별도로, 늘 이 판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셨던 분들은 작고 다른 목소리를 지우고 다시 진영논리를 중심으로 한 판을까기 시작합니다.
- P154

2008년 당시 용산구청장이었던 박장규는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두었습니다. 이 플래카드는 2009년 1월 일어난 용산참사 이후에 떼어집니다. 재개발문제로 매일의 생계가 미래를 알 수 없어진 상황에서 시민의 항의는 생폐거리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복지는 구휼사업이 됩니다. 복지혜택을 받는 시민들은 얼마나 가난한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1만 원을 더 벌면 30만 원을 받을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를 포기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상적인 모욕을 견뎌내야만 복지혜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부패와탐욕이 수치스러운 것이 되지 않고, 가난과 무기력이 가장 큰 죄악이 됩니다. 민주주의는 제한된 정부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경제로 대체됩니다. 정부는 작아지고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경제는커집니다. 정치라는 것 자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신자유주의체제의 특징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선거가 실시되니까민주주의다. 선거가 실시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괜찮다. 우리가비정규직에 시달리고, 양극화에, 이해할 수 없는 갑질이 사회 곳곳에 있지만 이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다. 정치체제는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이 생깁니다.  - P159

사람들은 선거가 시행되고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통해민주주의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치 자체는 점점 더 사라졌습니다. 쇼비즈니스 정치와 진짜 정치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생겨난 선거의 특징중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정책들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정책선거라는 것이 실종되었다고들 하는데, 사실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국방정책을 제외하고는 다른 정책상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요. 지방선거는 이보다 더해서 서로 정책집을 보고 베끼다시피 하는 일도 종종있었습니다. 정의당, 민주노동당과 같은 소수정당들은 기껏 정책을 만들어놓으면 다수당에서 가져가서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불만을 표시하곤 했죠.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정책선거로 가야 한다‘는 말이 매우 공허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몇몇
‘프레임화된 영역을 제외하고는 이상할 정도로 정책은 유사해져갔습니다. 점점 더요.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P160

이제 우리는 어떻게 경제로부터 분리된 정치를 되살려내고, 정치를 다시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랑시에르는 치안으로의 정치와 규칙을 만드는 정치를 구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합니다, 정치적인 것the polar과 치안 police 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저는 치안이라는 말보다는 한국어 서는 정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치안으로서의 정치는 몫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배분을 해주고, 각자의 몫을 지키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이해관계를 가진개인 및 집단 간의 정당한 분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치안으로서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의 최소화이자, 정치가거세된 형태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의 모습입니다. 반면,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살리는 정치는 몫이 없는 자들이 셈법을 다시 하자는 말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장면으로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정치는 셈법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차별을 받았던사람들이 새로운 분배의 질서를 요구하게 되고, 분배 질서에 필요한 정의에의 요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P162

우리는 감자 냄새를 맡는 박근혜가 실림이라곤 해보지 않은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은 가족정치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갑니다. "어릴 때 살았던곳"으로 청와대를 기억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며, 아버지에 대한 큰딸의 변치 않는 존경심을 표현하는 식이죠. 박근혜의 후보 시절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였,
습니다.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박근혜의 꿈과 내 꿈은 아주 다를 것 같은데, 내 꿈을 이루게 표를 달라니 얼마나 이상해요.
가족과 행복을 내세우는 건 비단 박근혜 대통령만은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이 같은 수사를 사용합니다. "여성이 행복한 나라", "가족행복론" 같은 말이 선거에 등장했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가족, 행복, 여성이 세트로 선거에 나타나게 된 거죠.
행복과 가족, 꿈, 개인적 소원성취로 정치의 언어가 바뀌기 시작한 것 자체가 하나의 경향을 보여줍니다. 조지 오웰은 감각적으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상태인 행복을 정치의 목표로 삼으면 정치가 예언이 된다고 말합니다. 행복하다는 기분은나만의 것입니다. 내가 이 순간에 행복감을 느끼는 나만의 방식을찾아가는 것,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정치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 P166

"여성학 세미나를 같이 하던 남자후배가 와서는 선배가 선거 도운 후배들 데리고 당선된 다음 경찰 만나서 서로, 상견례를 하고룸살롱에 데려가주는 문화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총여에는 꼭 비밀로 하라고 했다고."
최희영, ‘전 전여대협 활동가‘

20년 전의 기억에 대한 인터뷰가 지금 현재와 너무 비슷하게 겹쳐지는 건 우리 사회가 확실하게 퇴행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1980년대 남자운동권들과 1990년대 문화운동판에 있던 남자들이 만나, 40대 서울 남성들은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목소리 뒤에 지금까지 쌓아올린한국사회의 다른 목소리가 급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광장의 새로운 여성단체의 가능성은 역사화되지않았고, 2015년부터 2년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성혐오이슈는 정치의 공론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룸살롱 남성연대가 스크럼을 짜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다른 사람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는 사회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획과 다른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이지, 형님, 아우, 형수님의 안온한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었을 텐데말입니다.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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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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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지나왔지만 과거형으로 잊고 지내온 한 시절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그때도 이미 한 세계였음을. 완성된 하루하루의 신세계였음을 가벼운 듯 묵직한 울림으로 일깨워준다. 어린이가, 어린 사람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의견도 묻지 않았던 그들에게, 과거의 우리에게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위로를 보낸다. 작가의 글은 다정하고 시선은 깊고 따뜻하다. 덩달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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