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순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집이 있을 뿐,

이제 이를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꽃 
병 



아 
다 

자서

이 시집 중의 어느 시에서 부턴가 내가 직업적으로 능청을 떨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든다. 그참, 벌써 능청이라니, 하고 말하면, 그것도 능청스럽게 들린다. 그렇다면더욱 더 시적으로 능청을 떨든가 아니면 ..
1984년 가을최 승 자

망 제

기도하십시요, 주여.
기도하십시요, 우리에게.
우리가 가까왔읍니다.
——파울 첼란, 암야행」에서


봄에는 속이 환히 비치는 옷을 입고,
일곱 송이의 꽃을 머리에 꽂고
마지막으로 신발을 벗어 버리고서,
청파동에서 수유리까지 손가락질하며
희죽거리며 걸어가고 싶다.
봄에는 황사처럼 아지랭이처럼 미쳐
수유리 하늘 끝에서
고요히 가물거리다 스러지고 싶다.

그러나 모든 까무러치지 못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아찔한 한 시절이 가고 아득한 또 한 시절이 와,
남쪽 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안> 날고,
꽃잎은 하염 없이 바람에 <안> 지고
이제 위로받아야 할 것은 우리,
무릎 꿇고 먼 세월을 기어가는 우리.
- P30

"우리 청춘의 유적지에선 아직도 비가 내린다더라.
그래서 멀리 누운 우리의 발가락에도
때로 빗물이 튀긴다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헛소문이 간간이 들린다고도 하더라."

올 봄에도 하나님은 하늘의 궁창에 새를 심고 계시고
들판 식물들은 일시에 버혀짐으로써 향내를 풍기지만
당신들은 이제 진흙과 먼지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발목으로 그리운 옛 시가지를 헤매며
당신들은 살아 잠든 우리의 몸뚱어리를 노린다.

당신들을 무사히 물리쳐 버릴 수 있을까.
당신들을 무사히 죽음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까.
죽음과 삶이 상피붙는 신성 코리아여
우리가 당신들을 다시 낳을 수 있을까.
자자손손 거듭 낳을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발목들의 낮은 헤매임을
한반도 막막한 보편으로 흐르게 할 수 있을까.
- P51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순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집이 있을 뿐,

이제 이를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 P32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꽃 
병 



아 
다 
- P33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삼십 삼 세 미혼 고독녀의 봄
실업자의 봄
납세 의무자의 봄.

봄에는 산천초목이 되살아나고
쓰레기들도 싱싱하게 자라나고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이
내 입안에서 오물이 자꾸 커 간다.
믿을 수 없이, 기적처럼, 벌써 
터널만큼 늘어난 내 목구멍 속으로
쉴 새 없이 덤프 트럭이 들어와
플라스틱과 고철과 때와 땀과 똥을
쿵 하고 부려놓고 가고

내 주여 네 때가 가까왔나이다
이 말도 나는 발음하지 못하고
다만 오물로 가득찬 내 아가리만
찢어질 듯 터져 내릴 듯
허공에 동동 떠 있다.
- P44

즐거운 일기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번역료를 받았고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 받았으므로,

오늘도 여의도 강변에선 날개들이 풍선돋친 듯 팔렸고 도곡동 개나리 아파트의 밤하늘에선 달님이 별님들을 둘러앉히고 맥주 한 잔씩 돌리며 봉봉 크랙카를 깨물고 잠든 기린이의 망막에선 노란 불립 꽃들이 까르르거리고 기린이 엄마의 꿈 속에선 포니 자가용이 휘발유도 없이 잘 나가고 피곤한 기린이 아빠의 겨드랑이에선 지금 남몰래 일 센티 미터의 날개가 돋고.…

수영이 삼촌 별아저씨 오늘도 캄사캄사합니다. 아저씨들이우리 조카들을 많이 많이 사랑해 주신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코리아의 유구한 푸른 하늘 아래 꿈 잘 꾸고 한판 잘 놀아났습니다.

아싸라비아
도로아미타불 - P45

비극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 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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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봄밤

적막히 녹아드는 햇빛소리만
굴러다니는 비인 바람 소리만
실은 겨우내 말라붙은 꿈을 적시다
오늘밤 어질머리 푸는 비의 관능을
떠도는 발들의 아픔을

어둠 속 잇몸들의 덧없는 입맞춤 사이
밤새 홀로 사무치는 머리칼 사이
실은 고적한 곳으로 흘러가는 마음을
조금씩 서걱이며 부서지며
아직도 남아 있는 부끄러운 뼈를

묻지는 말고 그대여
눈물처럼 애욕처럼
그대의 혀 끝으로 적셔 주려나
깊게, 절망보다 깊게.
- P71

황혼

저무는 어디에서 기다리리.
알 수 없는 뿌리로 떠돌다
병의 끝에서 만나는그리운 그리운 육신들
지친 홀로의 이름들이
저세상 바람 소리 빗소리
독한 노래로 젖어들 때
이 무게를 지워다오.
이 무게를 지워다오
몸부림치는 저승의 달빛

사물이 저 혼자서 저문다
세상 밖으로 그대는
그대의 뿌리를 내린다.
- P72

이 시대의 사랑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비밀에 젖는다.

늘 그대로의 길목에서 집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빠져들어
세상 밖의 잠 속으로 내려가고
꿈의 깊은 늪 안에서 너희는 부르지만
애인아 사천 년 하늘 빛이 무거워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이다.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 P75

가을의 끝

자 이제는 놓아 버리자
우리의 메마른 신경을.
바람 저물고
풀꽃 눈을 감듯.

지난 여름 수액처럼 솟던 꿈
아직 남아도는 푸른 피와 함께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오래 전에 죽은 용암의 중심으로
부끄러움 더러움 모두 데리고
터지지 않는 그 울음 속
한 점 무늬로 사라져야겠네.
- P46

어느 여인의 종말

어느 빛 밝은 아침
잠실 독신자 아파트 방에
한 여자의 시체가 누워 있다.

식은 몸뚱어리로부터
한때 뜨거웠던 숨결
한때 빛났던 꿈결이
꾸륵꾸륵 새어나오고,
세상을 향한 영원한 부끄러움.
그녀의 맨발 한 짝이
이불 밖으로 미안한 듯 빠져나와 있다.
산발한 머리카락으로부터
회푸른 희푸른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일찌기 절망의 골수분자였던
그녀의 뇌 세포가 방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져 나와
구더기처럼 꿈들거린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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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두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 모른다 나는너를 모른다.
너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산문집<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시집을 펼쳤다.
가진 시집이 다섯 권, 다시 최승자다.
찬란한 계절 오월과 최승자시인은 극과 극이어서 닮았다.





시를 뭐하러 쓰냐고?

시를 뭐하러 쓰냐고? 글쎄 그럼 시를 뭐하러 안 쓰지? 뭐하기 위하여 시를 안 쓰는 것은 아닌 것처럼, 뭐 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른 시인들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일는지도 모른다. 종로 같은 큰길을나다닐 땐 꼬리를 잘 감추고 다녀야지, 느닷없이 걷어차이지 않도록,
내 인생은 언제나 예감 혹은 암시에 앞이마가 얻어터지고, 기억에 뒷덜미를 물렸다. 앞으로도 얻어맞고 뒤로도 얻어맞고, 겉으로도 얻어맞고 속으로도 얻어맞았다. 홍, 내가동네북인 줄 아느냐. 얻어터지기만 하는 게 괴로워서 나는정말로 내 머리통을 뽀개버리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최악의 불길한 예감과 찰거머리 같은 뻔뻔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나는 내 머리를 폭파해버리고 - P24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들, 나에게 괴로움과 상처를 가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 편에서 괴로움과 상처를 가했던 사람들, 나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 나는 당신들의 발꿈치의 때라도 핥으면서, 나를 학대하지 말아달라고,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이제 정말로 지겹고 정말로 지쳤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당신들은 아직도 내게서 받을 빚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꼬박꼬박 피나게 이자를 물어왔다. 하지만 영원히 본전을같을 수 없는 것이라면, 갚는 게 불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과감히 이자도 본전도 줄 수 없다고, 떼어먹겠다고 선언하겠다. 나는 이제, 결코 나의 피눈물 나는 돈을 당신들에게 한푼도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내 머릿속에서 찰거머리처럼 내 피를 빨아먹고 살아왔다. 나는 갚을 만큼 갚았다. 나는 감히 당신들의 본전을 떼어먹을 것이다. 당신들 찰거머리들을 내 머릿속에서 없애버리기 위하여 내 머리통 자체를 없애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당신들께 돈을지불할 수 없다는 파산 선고를 스스로 내리고 당신들로부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갈 것이다.
- P25

도덕은 자신의 가치체계의 정통성을, 따라서 새로운 가치나 자신의 율에 어긋나는 가치에 대해서는 비정통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따라서 상대방의 부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자기 보존과 자기 수호의 속성을 굳히고, 그리하여상대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강경하고 경직된 태도를 취한다. 기존의 도덕률은 마치 합법적 정통성 위에 세워진 전권을 부여받은 최고 권력구조와도 같아서, 그 권력에 위배되는 것을 반역으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대다수의민중은 기존 도덕률의 보이지 않는 강압적인 힘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며 거기에 맞추어 자신이 부도덕하지 않다는 것만으로 이미 자신은 도덕적이라고 믿으면서 도덕의 기득권 아래 편히 안주하려 하고, 때로는 기존의 도덕에 브레이크를 - P30

반면에 헤스터 프린은 비록 주홍글씨를 몸에 달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죄인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한 인간의 행동에 서로 모순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기존도덕률에 의해 유죄 선고된 새로운 가치관을 몸소 행복하게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옳음을 보여주거나 혹은 기존 도덕률의 응징에 따라 스스로 철저하게 파멸함으로써 그 기존도덕률이 썩어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1982) - P34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원리이다.
- P59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한 젊은이의 죽음 소식에 나는 착잡해질 수밖에없었다. 물론 피붙이들의 죽음을 접했을 때처럼 슬프지도않았고,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근원이 어딘지도..
모를 둔하고 무딘 어떤 미미한 통증일 뿐이었다. 1 청년의사회적 죽음은 결코 옳다고 보이진 않았고, 분명 잘못 선택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왜 잘못 선택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잘못 선택하게 만들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오랫동안 내 의식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겪게 되고, 그리고그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되리라. 마침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을 보게될 때까지. (1986) - P96

앞서 나는 1980년대는 (그리고 1970년대는) 내게 가위눌림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위눌림을어떻게 구체화시켰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이 그것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그가위눌림에 대하여 시적 저항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저항은 강한 비명과 비탄, 과격한 에너지를 가진 어휘들과 이미지들의 사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앞서 나 자신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많이 기대어왔다고 고백한 것은, 나를 짓누르는 그 가위눌림에 관하여그것의 실체나 구조를 이성적으로 분석한다거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 무섭다고 싫다고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140

가위눌림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자, 그것으로부터 깨어나는 나의 방법 또한 몇 단제로 변화했던 것이 생각난다. 첫번째 단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에 휩싸인 채 본능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움 으로써, 내게 극심한 육체적 아픔을 가해오는 가위눌림 속의 그 억압자를 쓰러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온 힘으로 저항하다가 그 와중에나 자신이 또다시 가위에 눌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그리하여 이제는 공포감 없이, 싸우면 내가 이기도록 되어있다는 확신을 갖고 싸워 깨어나는 것이다. 세번째는, 가위눌림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이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나 경험으로 보아 어쨌든 간에 조만간 깨어나도록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 억압자에 대한 저항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그러자마자 이상하게도 그 가위눌림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이다.
- P141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최승자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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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텅 빈 하버드 광장
마지막 햇빛 속에 우리가 있었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서로에게 무엇이 될 수도 없었던
다신 돌아갈 수 없어 
아름다운 시절에 대하여 .....(뒷 표지에서)

본 수아레


그러나 우리는 우연히 손이 스칠 때 제외하고는 서로를 만진 적이 없어서 지금 그렇게 하는 게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신 나는 그의 손바닥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가 그의 손등을 잡았고, 처음에는 부드럽게 잡고 있다가 점점 더 힘을 주어 꽉 잡았다. 이조차 나로서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그에제도 쉽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뼛속 깊이 지중해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우리 두 남자보다 더 감정 표현을 할 줄 모르고자제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우리 둘 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고, 칼라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같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나는 다시 일어서는 대신 그의 옆에 누워서 그를 바라보며 한팔로 그의 가슴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도 팔을 뻗어 내 손을 잡더니 내 쪽으로 돌아누워 한 다리로 나를 휘감고 나를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의 숨죽인 흐느낌을 제외하고는 둘다 철저히 침묵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75

알 수 없었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후 분장실에 홀로 있기를 원하는 배우처럼, 나는 천친히 화장을 지우고 가발, 의치, 속눈썹을 제거하고 천천히 나 자신이로 돌아오고 싶었다. 가면이 아닌 내 맨얼굴을 보고 싶었다.
또 가면을, 언제나 가면만을 보고 싶진 않았다. 나는 나에게프랑스어로, 나만의 프랑스어 억양으로 말하고 싶었다. 나를낳은 부모로부터 배운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영어에 넌덜머리가 났고, 여름날의 바다 소금 맛이 나지 않는 모든 것에, 끝없이 이어질 듯했던 여름날 오후 우리 집 부엌에서 만들어지던 짭조름한 맛이 나지 않는 모든 것에 넌덜머리가 났다. 매미가 미친 듯이 울어대고, 시간이 느려지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우리를 손짓해 부르던 그 여름날 오후, 낮잠 잘 생각이 없을 때도 자장가처럼 우리를 재우던 파도 소리가 그리웠다. 나는 심지어 내 환상 속의 파리에 넌덜머리가났고, 내가 쌓은 장벽에,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내진짜 얼굴에 대한 갈망에, 내가 불화하는 것은 가면이 아니라내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에 넌덜머리가 났으며, 사실은 내 진짜 얼굴이란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넌덜머리가 났다.  - P332

칼라지는 미국에 푹 빠져들자마자 약해졌다. 그때까진미국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냈었다. 그 혐오가 그의 떠돌이 신분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는 격리된 발코니에서 이 새로운 세상을 관찰할 수는 있었지만 접하긴커녕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비록 하룻저녁 잠깐 들여다보는 정도에 그쳤음에도그 세계에 초대받아 들어가본 그날 이후, 그는 곧바로 개종했다. 그의 마음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물었다. 부자들의 풍요, 호화로움, 자기만족? "사실 이게 다 햄때문이야."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의 초라한 엉 돌라르뱅두가 그들의 레드 와인에는 비교도 안 된다는 사실하고."
- P339

자신은 이미 프랑스를 보았고 그곳에서 살면서 결혼도 했지만 다시는 그곳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라니, "그러면 미쳐버릴 텐데." 내가 말했다. 불현듯 내가 알렉산드리아를 영원히 버리고 나서 다시 그곳에 던져진다면 어떤 기분일지 떠올랐다. "마치 도망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곳에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겠네요."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시 죽는 것 같겠죠." 모로코인 택시운전사가 말했다.
"그러게요. 그럴 것 같네요."
칼라지는 프랑스 이전과 이후의 시기에 다시 죽는 것과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경험은 항상 환영할 일이라고, 인생에서 필요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사람과 우리가 가는 모든 장소와 우리가 가진 가장 초라하고별 볼 일 없는 직업까지도 지금의 우리를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식적인 헛소리고, 칼라지는 자신이 그런 헛소리에 빠지지 않도록 대단히 냉혹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했다. 그의 사전에는 새로운 기회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축내며 살고, 먼저 죽은 사람들이 남긴 적은 유산을 물려받아 살 뿐. 그에게는 사방에 함정이 있었고, 잔인한 속임수가 있었고, 끔찍한 실수가있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 P360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쁜 짓을 한 손을 잘라야 했고, 끝없이 자르고, 쳐내고, 찢고, 긁어내야 했다. 가장 기본적인 뼈대만 남을 때까지. 우리의 뼈는우리를 드러낸다. 뼈는 숨길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모두 자르고 뼈대만 남기는 거였다. 그러면 우리가 고백할 필요도 없고 그들이 고백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지푸라기만 남았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고 형제자매가 알고 애인이 알 듯이 우리 자신도 알기 때문에. 한편 용서를 모르는 그의 신은 그를 치유해줄 약도, 도와줄 사람도 보내주지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무기가 분노와 칼라슈니코프였다.
그는 내가 자신과 똑같이 빈 수통을 들고, 자신과 똑같이맹물이 아닌 다른 음료에 대한 갈증을 느껴서 같은 술집에 들른 같은 부대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실망시켰다. 그는내가 자신처럼 인간적이고 날것의 욕망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뉴잉글랜드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지중해를 동경하고는 있지만, 이미 반대편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 칼라지 같은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 P361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참을 수 없는 슬픔 사이를 오가는,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격통느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짓을 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아닌 내가. 그동안은 이렇게까지 비열하고 천박한 인간으로전락한 적은 없었는데, 나는 죽어가는 친구를 보러 가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전화해서 몇 분 만이라도 들렀다 가라고 부탁할 때마다. 그 아픈 사람의 사기를 북돋운다는 핑계로 그의 걱정을 무시한다. 내일 가보도록 애써볼게. "내일이 없을지도 몰라." 죽어가는 친구가 말한다. 여전하군, 자네, 두고 봐, 자네가 우리 모두보다. 오래 살 거야."
그러나 지극한 수치심으로 통증을 느낀 것과 거의 동시에, 페르시아 여자의 집에서 걸어 나온 밤 이후로 느껴보지못했던 즐겁고 가벼운 마음과 안도감이 들었다. 여러 달 동안나를 쫓아다니고, 짓누르고, 갉아먹던 불안과 걱정이 갑자기싹 사라진 것처럼, 자유와 기쁨과 해방감을 느꼈다. 내 마음은 구름 사이로 자꾸만 올라가는 연처럼 가볍게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P373

칼라지 때문에 만난 모든 이들, 하비스트와 카사블랑카와 일요일 저녁의 하버드 엡워스 교회, 처음부터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만의 언어, 그 언어 때문에 꽃을 피웠던우정, 그 모두에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가 내 삶에 가져다준 많은 새로운 것들에게, 친구들과 함께했던 저녁식사에, 우리 둘만의 저녁식사에, 해피 아워에, 내 삶에서 빠져 있었고우리의 공통점을 찾게 도와주었던 공모자 의식에, 본 수아레.
영주권에 대한 그의 걱정과 학업에 관한 내 걱정이 먹구름을드리울 땐 우리 삶 속으로 표류해 들어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여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그 먹구름을 몰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여자들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준 것은 그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우리 둘이 그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작은 오아시스에, 우리의 상상 속 지중해에, 우리의 작은 프랑스 마을에,
나 자신을 미국이라는 춥고 외롭고 어두운 평원에서 발목이잡혀 오도가도 못하게 된 외로운 이방인으로 생각했던 내 착각에, 본 수아레. 나는 이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 P379

우리 입술에 떠올랐다가 소리로 변환되기 전에 즉시 재갈이물리듯이. 어느날엔 그의 택시를 불러서 타보자고 계속 되뇌인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 했는데, 내 형편에택시를 타는 것은 가당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차 문을열었을 때 내가 계속 찾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리라는 사실을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항상 구두 가게를 연상시켰던 그낡고 갈라진 가죽 덮개의 냄새, 월든 호수에 차를 세우고 나서 두 소년을 함께 앉힌 뒤로 젖힌 보조좌석, 이제 생각해보니 영원히 그의 주위를 맴돌았던 지울 수 없는 담배 냄새, 그리고 또 그 택시를 타면 안 되는 이유는 내가 뒷좌석에 타본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차에 올랐을 때, 그가나를 집까지 태워다주었을 때, 혹은 어느 날 밤늦게 브루클린에 사는 여자와 자고 싶어 안달이 난 나를 브루클린까지 태워주었을 때, 나는 항상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언젠가는, 어쩌면 케임브리지를 떠나기 몇 주 전에라도 그의 택시를 부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걸 잊었다. 그리고 그 택시는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사라졌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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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광교산에 있었다. 바람이 땀을 식혔고 아직 여린 빛이 남아 있는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해드폰으로 고정채널 cbs fm을 들으며 하버드 스퀘어를 읽는다.
평화롭고 서늘했고 ‘행복‘이란 것의 순간적 정의는 이런 게 아닐까 싶도록 충만했다. 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옷에서 책쪽으로 기웃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전까지만...ㅠ,ㅠ ‘충만은 찰나다.‘ 부족하고 미흡한 것만이 지속된다고 산을 내려오며 생각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네 사람 모두 함께하는 지금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이젠 우리가 케임브리지라는 세상에서 자신을포기한 사람, 해체된 기업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직원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월든 호수는 엄밀히 말하자면우리 소유가 아니었지만, 주인이 출타 중일 때 빈 테니스 코트를 온종일 차지할 수 있듯 우리가 그곳에서 놀게 해주었다.
우리는 태양 아래서 한두 시간 놀고자 하는 온건한 침입자들일 뿐, 불한당이나 불법거주자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국에정착하지 않고 미국을 잠깐 빌려 쓰고 있었다. 벌이 몰려드는것을 막고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수박 껍질을 서둘러비닐봉지에 던져 넣는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납작 엎드려 조 - P241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호숫가를 따라 거닐다가 발가락을 물에 적시기도 했고 저 멀리 서 있는 나무의 꼭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가 월든 호수를, 심지어 미국을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칼라지를 이해했다. 그가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사실 미국이 자신에게굴복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도 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이었다. 요전에 변호사가 강제 추방을 언급했을 때, 우리 둘 다 움찔했던 일이 기억났다.  - P243

또한 칼라지는 미국을 폄하하고 세상의 모든 나쁜 것에아메르로크 양키라고 별명을 붙임으로써, 자신을 위한 지중해적정체성과 지중해의 실낙원을 만들고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상상 속 어느 해변에 있다고 믿을 필요가있는 곳, 그런 곳이 없다면 미국이 그에게 등을 돌릴 경우 그가 등을 기댈 데가 없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도로 챙겨 차에 싣고 쓰레기를 종류별로 나누어 버리면서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바라던 것보다 햇빛을 더 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우리 옆을 미끄러져도망가던 여름을 마침내 포획하는 데 성공한 것마냥 우리는신이 나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 P244

내가 열쇠를 갖고 책을 놓아두고 다니는 작은 강사실 밖에 한 여학생이 서서 담당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에그을린 피부와 밝은 갈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하는 주황색 원피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나는 잠시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무슨 강의를 듣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나에게 무슨 과목을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졸업논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화하는 동안 나는그녀의 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도 내 눈에서 눈을떼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눈이 계속 내 눈을 살피는 방식이,
내 눈이 그녀의 눈을 살피는 방식이 좋았다. 서로의 눈이 서로에게 머물며 서로를 애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그것을 부인하지도, 그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지도않았다.
우리는 둘 다 프루스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졸업논문도 프루스트에 관해 쓰고 있었다. 언제 조언 - P254

라디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한 가수의 노래가 연속으로 나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심상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나운서가 충격적인소식을 전했다. 마리아 칼라스가 그날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한순간에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내 예전 룸메이트의 여자친구와 나는 칼라스의 열성 팬이었다. 백작은 그가 피에로라고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도 칼라지는 그렇게 불렀다. 특히 더 충격을 받았다. 자기 아버지가 칼라스의 오랜 친구였고, 아버지의 사무실엔 칼라스가 서명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고 했다. 화제는 칼라스로 옮겨갔고, 내게 칼라스 음반이 몇장 있어서 아리아 두세 곡을 틀었고, 그녀가 프리마 돈나 아루타 절대적 프리마돈나인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내 견해를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 다른 소프라노 가수들이 부르는 아리아도 틀어서 비교하게 했다.
- P264

그러나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 떨어지고 짐 싸서 뉴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엔 이 파티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 P272

킬라지의 눈물을 본 그날 밤, 그의 절망과 절망의 일시적치료제인 희망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그는튀니지에 계신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 심지어 우는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도 삶의 매 순간 그에게 휘몰아치는 지독한 고독과 절망의 폭풍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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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3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교산은 제겐 뒷산 같은 품 너른 산이지요. 수원과 용인을 걸쳐서있는. 저도 알리디너분들이 많이 읽으시길래 주문했던건데 제가 좀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죠ㅎ 산에서 마저 읽으려했는데 벌레때문에 후다닥 내려와서 어제 마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