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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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16.






깊은 일
안현미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다

그것은 깊은 일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오래 방치해두다 어느 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오래 끌려다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어떤 마음처럼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은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

시집 [깊은 일] 중에서


세월호못봇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고 쓴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했다고 쓴다 그리하여 개조해야 할 특별 대책과 특급 망언들만 부표처럼 떠 있는 맹골바다 속으로세월호는 침몰해야만 했다고 쓴다. 100일이 넘도록 오직 진실을 알고 싶다며 눈물의 입구에서 절망의 입구까지 애통하게 견뎌온 엄마들이 있다고 쓴다 이제 그만 유사 대책과 유사 눈물에 최선을 그만두자고 쓴다 최악을그만두라고 쓴다. 그게 뭐든 누구든 희망 고문은 그만 닥치라고 쓴다 진보도 보수도 멀었다고 쓴다 제발 그리운이름 옆에서 살고 싶다고 쓴다 죽고 싶다고 쓴다 내 새끼가 너무 보고 싶다는 말이 못이 되어 박혔다고 쓴다.
돈이 되는 건 다 판다더니 정말 다 팔았다고 쓴다 지옥까지 팔았다고 쓴다 그게 뭐든 누구든 내 새끼가 보고싶다는 말에 못 박혀야 한다고 쓴다 죽어도 죽어도 죽을수는 없다고 쓴다 죽어도 죽어도 다시 죽을 때까지 시작해야만 한다고 쓴다 - P10

수학여행 가는 나무

나무는 쓴다 우리 모두가 연루되어 있다고 겨울에도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쓴다 결국 떠날 수 있는건 없다고 쓴다 다만 울음이 바닥났을 뿐이라고나무는 운다 굴뚝 위에 독재 위에 칠탑 위에 올라간사람들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위해 나무는 운다 우리는 모두 까닭이고 바보라고나무는 간다 어둠을 뚫고 바위를 타고 계급을 넘어 나무는 간다 울음을 찾아 울음의 핵심을 향해 울음의 연대를 위해 나무는 간다 사월의 사월의 바다로 나무는 난다 세계는 늘 위독하지만 수학여행 다녀게요 기억하겠습니다 기록하겠습니다 살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특별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특별해진 그 사랑을 기억하며 기록하며 나무는 난다 나무는 날아오를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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