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어느 부분에 마음을 쓰고 일궈나가야 하는가? 바로 우리의 행동이다. 보부아르의 대답은 이렇다. 행동해야 하느냐고? 행동만이 나의 것, 오직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을 통해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된다. 오직 나만이 나와 타자를묶는 끈을 더 이롭게 혹은 더 나쁘게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 나와 타자의 관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이 창조해야하는 것. 죽을 때까지 풍성하게 가꾸든가 무시하고 남용하든가 하는것이다. 30)보부아르는 십년 넘게 사르트르와 자유 개념을 토론했고 어릴 적하느님을 사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자기가 믿는 철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 P256
하지만 헌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일단 헌신의 대상이 자기가 요구하지도 않았던 것을 받아들이는데 나의 행복이 달려 있다면 그 대상은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또한헌신을 통해서 타자의 자유를 그의 의지에 반하는 방향으로 제한한다면 타자를 위한 헌신이 되레 억압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너무 많은이가 타인에게 헌신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기에 보부아르는 궁금했다. 억압자가 되지 않으면서 헌신한다는 것이 가능한가??)이제 투명하리만치 분명해졌다. 사르트르가 제안한 것과는 다른, 자유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자유에 제한이 없다는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의 선택은 타자들의 선택에 제한당하고 우리 역시 그들의 선택을 제한한다. 그러므로 자유롭고자 애쓰는 것으로는충분치 않다. 위선 없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자라면 누구나 다른사람의 자유도 소중히 여기고 자유를 윤리적으로 행사하는 방향으로33)행동해야만 했다. 보부아르는 독자들이 자기 책을 읽고서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삶속 타자들의 세계를 형성하고 행동의 조건까지 생성한다는 시각을얻기를 바랐다. 보부아르는 이전의 정치적 무관심을 강하게 부정하는중이었다. 하지만 이 태도가 얼마나 그녀가 마주한 상황에서 비롯된것인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순간과 사생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무게를 지녔는지는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 P257
실존주의는 어떤 윤리학도 암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에서윤리학을 끄집어내려고 했지요. 그 윤리학을 《피로스와 키네아스》라는 에세이에서 자세히 썼고, 소설과 희곡으로도, 다시 말해 훨씬 구체적인 동시에 모호한 형식으로도 내가 찾은 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7) 그런데 보부아르는 왜 이 중대한 철학적 공헌을 회고록에서누락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이해하려면 보부아르가 대외적으로는사뭇 다른 자기가 되기로 선택한 과정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259
백지를 마주하고 하니 있다. 친구이자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그녀를 보고 사나워 보인다고했다. 보부아르는 글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코메티는 "아무거나 써봐요."라고 했다. 보부아르는 자전 문학의 새 지평을 연 미셀 레리스의 소설 《성년)을 좋아했기 때문데 자기이야기도 그렇게 한번 써보고 싶었다. 발상이 차차 얼개를 갖추었다. 메모를 좀 하고 사르트르와 얘기를 나눴다. 보부아르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가 여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부아르의 회고록에서 사르트르와 나눈 대화는 일종의 계시처럼묘사된다. 상황의 힘에서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자기가 여성이라는사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열등감을 느낀 적도 없고, 보이주장으로는 "아무도 감히 나에게 ‘네가 여자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지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의 여성성은 어떤 식으로든 귀찮았던 집이없다."라고 했다.7)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남자아이처럼 양육받고 자란 건 아니었다. 그래서보부아르는 그 문제를 파고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남성적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유년기를 형성한 수많은 신화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다르게 형성했다. - P284
마거릿 사이먼, 그는 보부아르가 그 전에 여성성을 사유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했다고 지적한다. 일기, 편지, 자전적 작품과 허구적 작품리 러 대목에서 반증을 찾을 수 있다. 생각이 깊고 주도면밀한 보부아르가 그 일화를 의도적으로 거짓되게 썼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십 대의 보부아르는 철학의 개척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고, 진로 선택을 두고 부모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바람을 이루려면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역할중 어떤 것과는 소원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십 대의 보부아르는 잔 메르시에 선생님에게 철학적 이성과 감정적인 면이 어떻게공존할 수 있을지 물었다. 메르시에는 감정도 온전한 생을 이루는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1927년 7월에 보부아르는 "여성으로 남고 싶지만 두뇌는 더 남성적이면 좋겠고 감성은 더 여성적이면 좋겠다고 썼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서른두 살이 되어 가는 보부아르는 전쟁 중에이런 글을 썼다. "내가 완연한 성인 여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사르트르에게도 자기가 정말로 관심을 두는 자신의 일면에 대해 썼다. 바로 자신의 "여성성", "나는 어편 면에서 여성스럽고 어떤 면에서 그렇지 않은가, 라는 문제였다. - P285
수 세기 동안 오로지 남성들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 왔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은 남성에게 속해 있다. 그 세상에는 여성의 자리도있지만 결코 여성에게 편한 자리는 아니다. 남성은 자연스럽게 자기가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영지를 탐색한다. 그는 알고자 하는 호가심으로세상을 연구하고, 자신의 사유로 그 세상을 지배하려 애쓰고, 예술을 다개로 삼아 그 세상을 새롭게 창조했노라 주장하기까지 한다. 아무것도그를 저지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의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 P296
여성의 상황은 최근 들어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투표권을 얻었을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실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교육과 기회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 결과 여성은 점점 자신에 대한 내적 앎을 심화하기 원했고 "철학으로 눈을돌렸다. 1) 하지만 보부아르는 넘어서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했다. 여성성이 겸손과 너무 자주 동일시되는 탓에 여성들은 과감성이 부족하고 과감한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한다. 보부아르는 여자들도 어릴 때는 꽤 자율적이지만 사랑과 행복을 위해 자율을 희생하라는 식의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면서 자란다고 썼다. - P297
반면에 남성은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성공을 희생하거나 마음 편히 살기 위해 성취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여성들만 이 모순에 시달렸다. 인격의 온전한 실현을 일부 포기하든가, 남성을 유혹하는 힘을 일부 포기하는가 들 중 하나라야 했다. "21) 하지만 성공이든 유혹이는 왜 그렇게 일부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보부아르는 미국에 있는 동안 여성을 주제로 하는 책을 위해서 기억해 두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다른 문화권에서 외국인의 시각을 취하다 보니 남성과 여성은 관계를 맺는 기준 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보부아르는 미국 여행기 에서 실제로 미국 여성이 프랑스 여성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놀랐다고 썼다. 미국에 직접 가보기 전에는 "미국 여성"을 "자유로운 여성"의 동의어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미혼 여성은 충격적일 정도로 미국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미국 여성의 옷차림이 거의 성적이라고 할 만큼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데 놀랐다. - P301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는 1948년에 영어로 출간되었다. 당시《피로스와 키네아스는 영어 번역본이 없었고 제2의 성》은 집필 단계였다. 그래서 이 저작이 어떻게 보부아르의 초기 철학을 발전시키고 이후 철학의 토대가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부아르는 상황‘ 개념과 타인들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방식을 여전히 사유하는 중이었다.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는 윤리적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우리와 타자들의 유대를 받아들이는 데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 고 말한다. 보부아르는 이를 타자의 자유에 대한 호소" 혹은 "부름" 이라 불렀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인생이 그저 ‘하나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므로 진실하게 보이기를 바라고 중요한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정당화 되고 싶고,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싶다. 그러나 타자의 자유의 부름을 듣지 않고 자기 자유의 부름만 듣는 태도는 유아론, - P311
생의 한창때에서 보부아르는 1930년대 초에는 ‘페미니즘과 성전쟁‘이 자기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썼다. 그랬던 사람이 어쩌다 이른바 ‘페미니즘 성시‘를 쓰게 됐을까?? 제2의 성을 출간할 때 보부아르는 마흔한 살이었다. 어려서부터어머니가 아버지와 불평등한 관계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느님 앞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고서부터는 사람들이 자신을 여자아이처럼 대하지 않기를 바랐다. 서점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날부터는 모르는 남자들과 함께 있는 게 불편리다. 친구 자자는 지참금, 재산, 사랑의 가치를 비교하는 실랑이 속에서 눈을 감았다. 보부아르는 불법 낙태 시술 후 감염으로 고생하거나입원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다른 여성들과 대화를 나눠보던 자기 동의 기능이나 쾌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보부아르는 외국을 많이 다녀본 덕분에 관습이 공통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연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 P320
제2의 성>의 첫 줄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쓸때의 망설임과 성가심을 숨기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책을 쓰기 전에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렇지만 지난 세기에 "어리석은 잡소리"가 너무 많이 책으로 나왔다. 여성성의 상실을 슬퍼하면서 여성은 "여성이어야 하고, 여성으로 남아야 하고,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책들, 그래서 더는 옆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 P321
보부아르와 같은 세대인 디자이너 샤넬은 바지를 입은 신여성으로서 중성적이면서도, 화려한 패권을 신보였다. 직업이 있는 여성의 수가 이렇게 많았던 적은 없었다. 예성은이제 막 투표권도 획득했다. 일부는 국가고시에서 남성보다 우수한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런데도 여성은 아직 자기 명의로 은행 계좌를만들 수 없었다. 1965년에 ‘나폴레옹 법전‘이 개정된 후에야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1940년대 말에 ‘페미니즘‘은 당시에는 이 단어가여성 참정권 운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는데 -- 미국과 프랑스두곳 모두에서 한계를 넘어섰다. 여성 침정권이 드디어 실현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이제 무엇을 바랄 것인가? 보부아르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이 타인의 신체적 특징에 기초한 계급, 심지어 노예 계급까지도 만들어내는 습관이 있음을 알았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성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보부아르는 남성이 여성을 ‘타자‘로 규정하고 자기들과 다른 계급 위상을 - 제2의 성을 -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 P322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남성과 여성이 처한구체적 상황은 평등하지 않다. 왜 그럴까? 누구나 알다시피 인간은두 범주로 나뉘어 있고 신체, 얼굴, 의복, 관심, 직업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여성 생식기만 있으면 ‘여성‘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할까? 어떤 여성은 여성 생식기가 있지만 여성스럽지 않다"고 비난받는다. 소설가 조르주 상드 (Genge Sand)가 관습적인 여성성을 무시했을 때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제3의 성" 운운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보부아르는 묻는다. 신체적 여성성이 여성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면 여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부아르는 여성은 남성이 아닌것이라고 답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류는 만물의 척도" 라고 했다. 이때 ‘인류‘를 판단하는 기준은 남성이다. 역사를 통틀어 여성이 ‘인류‘의 문제와 무관한 시각을 지닌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남성이얼마나 많았던가. 심지어 1940년대에도 보부아르는 단지 여성이라는이유로 자기 견해가 묵살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P323
1949년 11월에 출간된 《제2의 성 두 번째 권에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들어 있다. 모든여성은 완결된 책이 아니라 일종의 ‘되기 이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기술함으로써 그들이 삶의 여정에서 내내 타자가 되고 마는 방식을 일부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 자신도 아직은펼쳐진 책이요, ‘보부아르가 되는 중‘이었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것한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기 앞의 장애물 중 어떤 것은 다른여성들의 ‘되기‘에도 고질적인 위협임을 알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보부아르는 아직도 알프레드 푸예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는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되는 것" 이라는 생각에서 영감을 얻는 철학자였다. 이제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과 구별되거나 남성에게 복종하면서 사는 이유는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문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명‘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좋은방향으로) 열심히 일했다. - P330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한 프랑스는 국민이 필요했다. 보부아르는자신의 성별과 국가를 배신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건후 프랑스 산없은 경기 부양이 간절했고 그러자면 출산율 증가와 여성 노동력 증가가 모두 필요했다. 보부아르의 언어는 장소에 따라서 충격적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제 와 《제2의 성》을 읽어보면정치적 상황이나 ‘엄마‘라는 노예가 되었다고 느껴본 적 없는 여성들의 경험 때문에 잘못 받아들여진 대목들이 있다. 보부아르는 임신부를 기생의 숙주, 종(種)에 매인 노예로 지칭했다. (쇼펜하우어도 동일한 표현을 썼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는 이렇게까지 격렬한 비난을 받지않았다.) 보부아르는 임신을 여성이 신체적 자율의 상실과 함께 개인적으로 "안으로부터 경험한다는 점, 엄마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여성의 불안감에 관심을 두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생식 기능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목하는 이는 별로없었지만) 자신이 모성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말했다. 임신, 출산, 육아 같은 전형적인 여성만의 구체적 경험조차도여성의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 P331
보부아르는 모성을 떠받드는 사회의 자기 기만을 고발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천착했던 주제, 즉 사랑과 헌신의 유리.. 돌아갔다. 제2의 성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성과 여성에게 기다른 의미로 통하고 이 차이에서 남녀 간의 불화가 빚어지는 경우가많다고 주장했다. 남성은 사랑에서 "주권이 있는 주체로 존재해 왔다. 남성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성도 삶 전체를 이루는 부분 중 하나로서, 자기가 분에서 추구하는 다른 것들과 나란히 두었다. 반면에 여성에게는 사람이 삶 자체처럼 제시되었다. 사랑의 이상은 여성들에게 자기 회생적인 삶, 더 심하게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망각할 것을 은근히 권했다. 남성은 장차 세상에서 활동하리라는 기대를 받고성장한다. 사랑도 하되, 다른 영역에서도 야망을 품고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리라는 기대 말이다. 여성은 가치 있는 남자에게 사랑받아야자기 가치도 올라간다는 가르침 속에서 성장한다. - P332
보부아르에게 사랑의 지배적 패러다임의 문제는 상호성의 결여‘에있는 것으로 보였다. 남성은 여성이 사랑에 헌신하기를 기대하면서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랑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위험하다. 보부아르는 전적으로 남성의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여성도 상호적이지 않은 연애에 가담함으로써 억압 구조의 지속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사회가 여성이 자신을 압박하는 데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탓에, 여성이 그 구조를 거부하기란 실로어려운 일이다. 제2의 성은 다분히 이성애 중심 언어로 논의를 펼치지만 보부아르는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상호성을 둘러싼 갈등을 경험한 바 있다. 1940년에 비앙카 비넨펠트는 보부아르의 삶에서 더 중심적인 역할을원한다고 털어놓고 서로 얘기를 나눈 후 이런 편지를 썼다. 당신은 자기를 내어주지 않고 취하기만 해요.. 내가 당신 인생이라는 말은 ‘거짓‘이죠. 당신의 인생은 모자이크니까. - P333
그래도 나한테는 당신이 인생이에요. 내 전부가 당신 거예요.
보부아르는 진정한 사랑은 상호적 관계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관계가 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랐다. "여성에게 사랑이 약점이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는 날, 자기 자신을 피하기보다는 되레 발견하게 되는 날, 자기를 체념하지 않고 되레 내세울 수 있는 날, 그때 비로소 사랑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치명적 위험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 될 것이다. "2) 여성도 당당한 주체로서 연인과 자기 자신을 다 같이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상호적이지 않은 사랑의 신화가 여성을 부차적 위상에 붙잡아놓고 구원을 약속하면서 생지옥을 떠안기기 때문이다. 《제2의 성은 보부아르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낳는다. 얼마나 많은 자전적 요소를 보부아르의 철학으로 읽어낼수 있을까? 그리고 자전적 글쓰기 중 어느 것과 맞닿아 있을까? - P334
토릴 모이는 시몬 드 보부아르: 지적 여성의 형성 에서 "시몬 드보부아르는 1949년 말에 진정한 시몬 드 보부아르가 되었다. 인간적으로나 직업적으로 그녀는 ‘만들어졌다."고 썼다. 6) 1949년 이후 보부아르가 했던 작업은 "회고적이고" "자서전 외에는 거의 쓴 것이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작가로서 보부아르는 아직 문학상 수상작 "레망다랭》과 다른 소설 두 권을 쓰기 전이었다. 자서전은 아직 한 권도쓰지 않았고 노년에 대한 책, 프랑스 법을 대폭 바꾸게 될 글들도 아직 쓰지 않았다. 《제2의 성》도 페미니즘 제2물결을 일으키는 역할을하기 전이었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로서 이력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개인적인 삶 역시 상호 관계의 가능성을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아직도 되어야 할 것이 많았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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