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 몇 주는 버틸 수 있게 해줄 신라면컵이 넉넉히 들어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엄마는 의류 스팀기며 보풀 제거 롤러, 비비 크림, 양말 세트까지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건 좋은 브랜드"라는 설명을 굳이 덧붙여 보낸 티제이맥스에서 세일할 때 구입한 치마도 카우보이 부츠는 부모님이 멕시코로 휴가 여행을 다녀오면서사와 음식과 함께 내게 부쳐준 것이었다. 그걸 신어보는데 웬일인지 가죽이 이미 부드럽게 길들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그걸 일주일 동안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는 거다. 엄마는양말을 두 겹 신은 발로 그걸 신고 매일 한시간씩 걸어다니면서 뻣뻣한 신발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놓고 자기 발바닥으로 평평한 밑창까지 모양을 잡아놓았다. 행여 내가 처음그걸 신을 때 불편할까봐 말이다. 나는 기숙사 방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혹시 뭐라도 잘못된 게있는지 죽 훑어보았다. 적절한 복장인지, 실밥이 나와 있지는않은지 샅샅이 점검하면서 엄마의 노련한 시선으로 나를 보려 애썼다. 특히 엄마가 잔소리하던 부분을 유심히 살폈다. 엄마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컸는지, 엄마없이도 내가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 P121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 상봉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갈비를 재워놓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냉장고를 채우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몇 주 전에사놓고서 하루 전에 꺼내놓았다. 좀더 익혀서 내가 도착해서먹을 때 적당히 알싸한 맛이 나도록. 참기름, 물엿, 탄산소다에 재운 부드러운 갈비가 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내뿜는 달큼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엄마는 신선한 적상추를 깨끗이 씻어 내가 앉아 있는 거실 유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연이어 다른 반찬들도 가져다 놓았다. 먹기 좋게 반으로 자른 계란장조림, 파와 참기름으로 무친아삭한 콩나물, 국물이 넉넉한 된장찌개, 딱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였다. - P122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손바닥을 쫙 펴서 거기에 상추 한 장을 올려놓고 내 식대로 음식을 착착 쌓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 한 조각, 따끈한 밥 한 숟가락, 쌈장 약간 얇게 저민생마늘 한 조각을 차례차례로, 그런 다음 그걸 얌전하게 오므려 입에 쏙 집어넣고는 눈을 감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몇 달 동안 집밥에 굶주린 내 혀와 위는 그제야 깊은만족감을 되찾았다. 밥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재회였다. 밥솥에서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가 기숙사에서 생존을 위해 먹던 찐득한 즉석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엄마는 내 반응을 살피려고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맛있어?" 엄마는 김봉지를 뜯어 내 밥그릇 옆에 놓았다. "진짜 맛있어!" 나는 입안에 아직 음식이 반쯤 남은 상태로연방 쓰러질 듯한 시늉을 하면서 대답했다. - P123
나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엄마를 감싸안았다. 나 또한 몰라볼 정도인 거울 속 모습에, 우리 인생에 들어온 이 거대한 악마의 물리적 현현, 나도 엄마와 같이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는 대신 나는 몸이 뻣뻣해지고, 심장이 단단해지며, 감정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명령했다. ‘울면 안 돼. 네가 울면 지금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아. 네가 울면 엄마는울음을 멈추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울음을 삼키고 단호한목소리로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로 엄마를 달래기 위해서만이아니라, 나 스스로도 진심으로 그걸 믿게 하려고 "그냥 머리카락이잖아, 엄마. 금방 다시 자랄 거야." - P158
나는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어서, 갑자기 얼굴이 벌렇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꾹꾹 눌러 간신히 참았다. 한때 어떻게든 미국 교외의 또래 사이에 섞이려 안간힘을 쓰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내 소속을 증명해야 할 무언가로 느끼면서 성인이 되었다. 내가 어느 편에 설지, 누구에게 동조할지 결정하는 일은 번번이 남의 손에 맡겨졌지 내스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나보다 그 세계의 지분이 더 많은 누군가가 온전하고 완전한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날 쫓아낼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오랫동안 미국이라는 나라에 속하려고 별짓을다 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랐다. 하지만그 순간에 내가 바란 것은 오직 나를 밀어낸 두 사람에게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우리 세상 사람이 아니야. 네가 아무리 애써본들 네 엄마한테 필요한 게 뭔지 결코 제대로 알지 못할 거야. - P188
엄마는 한국 친구 몇 사람과 소규모 미술 수업에등록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카카오톡으로 작업중인작품 사진을 보냈다. 처음에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줄리아를연필로 그린 그림은 꼭 뚱뚱한 소시지처럼 생겨 특히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실력이 점점 늘었다. 나는 엄마가 드디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낸 데 열광했다. 엄마는 집에 있는 장식품, 장식 술, 찻주전자처럼 일상에서흔히 보는 작은 물건을 그렸다. 그리고 명암을 넣어 계란의 입체감을 나타내는 것처럼 단순한 것을 공들여 완성하는 데 완전히 열중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연노란색과 라벤더색 꽃에 맑은 청록색 줄기를 물감으로 그려넣은 카드를 내게 보내왔다. "이건 특별히 너를 위해 만든 카드야. 난생처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카드" 안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 P195
나는 그냥 엄마, 나는 그냥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양 무릎을 끌어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다가정신없이 딸꾹질했고, 또 그러다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마구 헐떡였다. 얼굴은 극도의 고통으로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나는 내 방 나무 바닥에서 멍하니 몸만 앞뒤로 까딱였고 그 순간 내 존재가 완전히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처음으로 우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아마도 이제 더는 자신의 격언을 들먹일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내가 그동안 참고 참아온 눈물을 터뜨려도 될 때가 됐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 P203
그리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다잘될 거라는 말을 전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마지막말이 고통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것만 아니라면 무슨 말이든 다 좋았다. 엄마!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반복해서 외치던 그 말. 목구멍 깊은 데서 터져나오는 원초적인 한국식 흐느낌. 한국 영화와 연속극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 엄마가 자기 엄마와 동생을 위해 울면서 냈던 그 소리. 고통에 찬 비브라토로 시작해점점 스타카토로 이어지다 나중에는 작은 돌기에 통통 부딪히며 떨어지듯이 끝나는 그 소리. 하지만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거운 숨만 몰아쉬었고, 들숨소리는 갈수록 뜨문뜨문해졌다. - P259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85
고기 요리와 갑각류 요리 그리고 버터와 치즈와 크림 배합을달리한 갖가지 감자요리를 만든 끝에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진짜로 원한 요리는 바로 이것이란 걸 이 담백한 죽은 난생처음으로 내게 깊은 만족감을 준 요리였다. 망치 여사는 온갖 비법을 한 단계 한 단계 전수해주었다. 마치 어느 때고 의지할수 있는 디지털 후견인처럼 내가몰랐던 지식, 의당 내 것이어야 할 지식을 알려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씨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뒷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 P320
이모 집에 도착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이 내 생일이었다. 이모ㄴ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은 영양이 풍부해 원기를 북돋아ㄴ주는 해조류 수로, 본래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권장하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생일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이 음식을 먹는 전통이 있는데 이제 내겐 이 음식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감사한마음으로 국물을 들이켜고서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미역을 오물오물 씹었다. 그 맛은 고대의 어떤 바다 신이 바다 거품 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해초를 포식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그 안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 P335
2주간 발효된 김치를 꺼내 먹으니 마침맞게 좋았다. 그것은끼니때마다 내 식사를 완벽하게 해주는 이상적인 반찬이자나의 역량과 수고를 매일매일 상기시켜주는 음식이었다. 그모든 과정 덕분에 김치의 진가를 더 제대로 알게 됐다. 어렸을땐 식사가 끝나고 접시에 김치 몇 조각이 남아 있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김치를 만들어봤기에 남은 김치를 꼬박꼬박 옹기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찌개나 전이나 볶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엌에 식료품 유리병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병에 종류별로 담긴 김치는 익은 정도가 제각각 달랐다. 조리대 위에선담근 지 4일 된 총각김치가 새콤하게 익어갔고, 냉장고에선갓 담근 깍두기가 수분을 내보내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커다란 배추 한포기가 반으로 쩍 갈라진 채 소금물에 절여질 채비 - P360
를 하고 있었다. 멸치액젓, 마늘, 생강, 고춧가루의 풍미 속에익어가는 향긋한 채소 향이 그린포인트의 작은 부엌에 물씬풍겼다.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것이 곧 당신이다." - P362
애써 표정을 꾸미지 않은 솔직한 사진들도 좋다. 엄마가 소파에 앉아서, 은미 이모가 보낸 선물을 열고 있는 내 뒷모습을 예뻐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 의자에 기댄채막 맥주를 한 모금 마시려는 모습. 옛날 집 거실 카펫 위에앉아 무언가를 바라보는 모습. 잠옷이 어깨 한쪽에서 비스듬히 내려와 엄마의 어깨 끝에 꼭 라이터 불로 지진 자국처럼 보이는 예방주사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상처 때문에, 엄마는나도 언젠가 그런 상처를 갖게 될까봐 두려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후회할지도 모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지키는 일이 엄마의 임무가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이런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없었다. 기록되지 않은 일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 P371
나는 발효가 통제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놔두면곰팡이가 피고 부패한다. 썩어 못 먹게 된다. 하지만 배추를소금에 절여두면 부패 과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당이 분해되면서 젖산을 만들어내 배추가 썩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나와 절임이 산성화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질감이 변하고, 톡 쏘는 새콤새콤한 맛이 나게 된다. 요컨대 발효는 시간속에 존재해 변화한다. 그러니 발효가완전히 통제된 죽음인 건 아니다. 사실상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거니까.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 P372
이모가 터치스크린 위로 차트를 죽 훑어내리더니 <커피 한잔>을 찾았다. 심벌즈를 천천히 두드리는 소리로 노래가 시작되자 기타가 바통을 이어받아 즉흥연주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멜로디 라인이 나왔을 때 나는 틀림없이 전에 들어본 적 있는 노래임을 확신했다. 어렸을 때 다 같이 간 노래방에서 엄마와 이모가 듀엣으로 불렀던 것 같다. 긴 전주가 끝날 무렵 화면 위로 천천히 가사가 올라왔다. 이모는 하나 더준비돼 있던 무선마이크를 내게 건넸다. 이모는 내 손을 잡아나를 화면 앞으로 끌고 가서 내 얼굴을 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모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며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모음 소리라도 따라 내면서 멜로디를 좇아가려 애썼다. 저 깊은 곳에 존재했을 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억을, 혹은 어떻게든 내가 접했을 엄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모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느껴졌다. 지난 한주 동안 내가 이모에게서 찾으려 하던 것이었다. 이모가 나의 엄마도, 내가 이모의 동생도 아니었지만, 그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그다음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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