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두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 모른다 나는너를 모른다.
너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산문집<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시집을 펼쳤다.
가진 시집이 다섯 권, 다시 최승자다.
찬란한 계절 오월과 최승자시인은 극과 극이어서 닮았다.





시를 뭐하러 쓰냐고?

시를 뭐하러 쓰냐고? 글쎄 그럼 시를 뭐하러 안 쓰지? 뭐하기 위하여 시를 안 쓰는 것은 아닌 것처럼, 뭐 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른 시인들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일는지도 모른다. 종로 같은 큰길을나다닐 땐 꼬리를 잘 감추고 다녀야지, 느닷없이 걷어차이지 않도록,
내 인생은 언제나 예감 혹은 암시에 앞이마가 얻어터지고, 기억에 뒷덜미를 물렸다. 앞으로도 얻어맞고 뒤로도 얻어맞고, 겉으로도 얻어맞고 속으로도 얻어맞았다. 홍, 내가동네북인 줄 아느냐. 얻어터지기만 하는 게 괴로워서 나는정말로 내 머리통을 뽀개버리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었다. 최악의 불길한 예감과 찰거머리 같은 뻔뻔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나는 내 머리를 폭파해버리고 - P24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들, 나에게 괴로움과 상처를 가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 편에서 괴로움과 상처를 가했던 사람들, 나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 나는 당신들의 발꿈치의 때라도 핥으면서, 나를 학대하지 말아달라고,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이제 정말로 지겹고 정말로 지쳤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당신들은 아직도 내게서 받을 빚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랜 세월 동안꼬박꼬박 피나게 이자를 물어왔다. 하지만 영원히 본전을같을 수 없는 것이라면, 갚는 게 불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과감히 이자도 본전도 줄 수 없다고, 떼어먹겠다고 선언하겠다. 나는 이제, 결코 나의 피눈물 나는 돈을 당신들에게 한푼도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내 머릿속에서 찰거머리처럼 내 피를 빨아먹고 살아왔다. 나는 갚을 만큼 갚았다. 나는 감히 당신들의 본전을 떼어먹을 것이다. 당신들 찰거머리들을 내 머릿속에서 없애버리기 위하여 내 머리통 자체를 없애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당신들께 돈을지불할 수 없다는 파산 선고를 스스로 내리고 당신들로부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갈 것이다.
- P25

도덕은 자신의 가치체계의 정통성을, 따라서 새로운 가치나 자신의 율에 어긋나는 가치에 대해서는 비정통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따라서 상대방의 부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자기 보존과 자기 수호의 속성을 굳히고, 그리하여상대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강경하고 경직된 태도를 취한다. 기존의 도덕률은 마치 합법적 정통성 위에 세워진 전권을 부여받은 최고 권력구조와도 같아서, 그 권력에 위배되는 것을 반역으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대다수의민중은 기존 도덕률의 보이지 않는 강압적인 힘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며 거기에 맞추어 자신이 부도덕하지 않다는 것만으로 이미 자신은 도덕적이라고 믿으면서 도덕의 기득권 아래 편히 안주하려 하고, 때로는 기존의 도덕에 브레이크를 - P30

반면에 헤스터 프린은 비록 주홍글씨를 몸에 달고 살아야 했지만 자신이 죄인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한 인간의 행동에 서로 모순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기존도덕률에 의해 유죄 선고된 새로운 가치관을 몸소 행복하게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옳음을 보여주거나 혹은 기존 도덕률의 응징에 따라 스스로 철저하게 파멸함으로써 그 기존도덕률이 썩어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1982) - P34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원리이다.
- P59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한 젊은이의 죽음 소식에 나는 착잡해질 수밖에없었다. 물론 피붙이들의 죽음을 접했을 때처럼 슬프지도않았고,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근원이 어딘지도..
모를 둔하고 무딘 어떤 미미한 통증일 뿐이었다. 1 청년의사회적 죽음은 결코 옳다고 보이진 않았고, 분명 잘못 선택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왜 잘못 선택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잘못 선택하게 만들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오랫동안 내 의식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겪게 되고, 그리고그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되리라. 마침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을 보게될 때까지. (1986) - P96

앞서 나는 1980년대는 (그리고 1970년대는) 내게 가위눌림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위눌림을어떻게 구체화시켰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이 그것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그가위눌림에 대하여 시적 저항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저항은 강한 비명과 비탄, 과격한 에너지를 가진 어휘들과 이미지들의 사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앞서 나 자신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많이 기대어왔다고 고백한 것은, 나를 짓누르는 그 가위눌림에 관하여그것의 실체나 구조를 이성적으로 분석한다거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 무섭다고 싫다고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140

가위눌림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자, 그것으로부터 깨어나는 나의 방법 또한 몇 단제로 변화했던 것이 생각난다. 첫번째 단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에 휩싸인 채 본능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움 으로써, 내게 극심한 육체적 아픔을 가해오는 가위눌림 속의 그 억압자를 쓰러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온 힘으로 저항하다가 그 와중에나 자신이 또다시 가위에 눌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그리하여 이제는 공포감 없이, 싸우면 내가 이기도록 되어있다는 확신을 갖고 싸워 깨어나는 것이다. 세번째는, 가위눌림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이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나 경험으로 보아 어쨌든 간에 조만간 깨어나도록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 억압자에 대한 저항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그러자마자 이상하게도 그 가위눌림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이다.
- P141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최승자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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