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 광교산에 있었다. 바람이 땀을 식혔고 아직 여린 빛이 남아 있는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해드폰으로 고정채널 cbs fm을 들으며 하버드 스퀘어를 읽는다.
평화롭고 서늘했고 ‘행복‘이란 것의 순간적 정의는 이런 게 아닐까 싶도록 충만했다. 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옷에서 책쪽으로 기웃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전까지만...ㅠ,ㅠ ‘충만은 찰나다.‘ 부족하고 미흡한 것만이 지속된다고 산을 내려오며 생각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네 사람 모두 함께하는 지금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이젠 우리가 케임브리지라는 세상에서 자신을포기한 사람, 해체된 기업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직원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월든 호수는 엄밀히 말하자면우리 소유가 아니었지만, 주인이 출타 중일 때 빈 테니스 코트를 온종일 차지할 수 있듯 우리가 그곳에서 놀게 해주었다.
우리는 태양 아래서 한두 시간 놀고자 하는 온건한 침입자들일 뿐, 불한당이나 불법거주자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국에정착하지 않고 미국을 잠깐 빌려 쓰고 있었다. 벌이 몰려드는것을 막고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수박 껍질을 서둘러비닐봉지에 던져 넣는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납작 엎드려 조 - P241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호숫가를 따라 거닐다가 발가락을 물에 적시기도 했고 저 멀리 서 있는 나무의 꼭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가 월든 호수를, 심지어 미국을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칼라지를 이해했다. 그가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사실 미국이 자신에게굴복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에 대비해서 자신도 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이었다. 요전에 변호사가 강제 추방을 언급했을 때, 우리 둘 다 움찔했던 일이 기억났다.  - P243

또한 칼라지는 미국을 폄하하고 세상의 모든 나쁜 것에아메르로크 양키라고 별명을 붙임으로써, 자신을 위한 지중해적정체성과 지중해의 실낙원을 만들고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상상 속 어느 해변에 있다고 믿을 필요가있는 곳, 그런 곳이 없다면 미국이 그에게 등을 돌릴 경우 그가 등을 기댈 데가 없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도로 챙겨 차에 싣고 쓰레기를 종류별로 나누어 버리면서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바라던 것보다 햇빛을 더 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우리 옆을 미끄러져도망가던 여름을 마침내 포획하는 데 성공한 것마냥 우리는신이 나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 P244

내가 열쇠를 갖고 책을 놓아두고 다니는 작은 강사실 밖에 한 여학생이 서서 담당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에그을린 피부와 밝은 갈색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하는 주황색 원피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나는 잠시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무슨 강의를 듣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나에게 무슨 과목을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졸업논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화하는 동안 나는그녀의 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도 내 눈에서 눈을떼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눈이 계속 내 눈을 살피는 방식이,
내 눈이 그녀의 눈을 살피는 방식이 좋았다. 서로의 눈이 서로에게 머물며 서로를 애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그것을 부인하지도, 그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지도않았다.
우리는 둘 다 프루스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졸업논문도 프루스트에 관해 쓰고 있었다. 언제 조언 - P254

라디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한 가수의 노래가 연속으로 나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심상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나운서가 충격적인소식을 전했다. 마리아 칼라스가 그날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한순간에 분위기가 싹 가라앉았다. 내 예전 룸메이트의 여자친구와 나는 칼라스의 열성 팬이었다. 백작은 그가 피에로라고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도 칼라지는 그렇게 불렀다. 특히 더 충격을 받았다. 자기 아버지가 칼라스의 오랜 친구였고, 아버지의 사무실엔 칼라스가 서명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고 했다. 화제는 칼라스로 옮겨갔고, 내게 칼라스 음반이 몇장 있어서 아리아 두세 곡을 틀었고, 그녀가 프리마 돈나 아루타 절대적 프리마돈나인 이유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내 견해를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 다른 소프라노 가수들이 부르는 아리아도 틀어서 비교하게 했다.
- P264

그러나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 떨어지고 짐 싸서 뉴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엔 이 파티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 P272

킬라지의 눈물을 본 그날 밤, 그의 절망과 절망의 일시적치료제인 희망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그는튀니지에 계신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 심지어 우는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도 삶의 매 순간 그에게 휘몰아치는 지독한 고독과 절망의 폭풍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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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3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교산은 제겐 뒷산 같은 품 너른 산이지요. 수원과 용인을 걸쳐서있는. 저도 알리디너분들이 많이 읽으시길래 주문했던건데 제가 좀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죠ㅎ 산에서 마저 읽으려했는데 벌레때문에 후다닥 내려와서 어제 마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