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이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빈약한 환경은 사고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떨어뜨린다.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이며 제한적이고 시종 감정적인, 언어로 발화된다.

언어는 나다.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
나, 그리고 대상.
세상은 이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나를 제외한 전부가 대상이다.
- P46

대상은 내가될 수 없지만
나는 모든 대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따금 내가 나에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상의 명명(命名)은 이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어사전에 등재된 50만여 개, 세계 최대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 전자사전에 등재된 5,500만여 개.
우리는 그 낱말들로 대상과 사물을 가리켜 묘사하거나설명하고, 생각과 느낌 등을 표현해 상호작용하며 성장한다. 0어휘력은 낱말에 대한 지식의 총합을 일컫는다.
달리 말해 세상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것들을 불러내나와 대상에 일어나는 현상을 구조화하며 의식세계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재량이다. - P47

‘산말(실감 나도록 꼭 알맞게 표현한 말)‘, ‘산소리(어려운가운데서도 속은 살아서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고 하는 말)‘는 있어도 ‘죽은 말‘, ‘죽은 소리‘는 없다. 대신 ‘거짓말(사실이 아닌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말)‘, ‘신소리 (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 ‘허튼소리(함부로 지껄이는 말)‘, ‘헛소리(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 등이 있다.
접히고 구겨지고 꼬부라지고 늘어지고 너절해지는 한이 있어도 죽지 않으며 하거나 듣거나 못하거나 많거나 적을 수 있을 뿐이다. 나거나 굳거나 떨어지거나 뜨거나 되거아닐 수 있을 뿐이다. 죽이려 한 권력자는 많았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말을 죽일 수는 없다. - P48

사람에게 났으나 사람보다 오래도록 존속하다 깊숙히 묻힐 것이다. 지구에서 태어나 가장 멀리 날아갔다. 얼마나멀리 갔느냐 하면 지구로부터 무려 210억 킬로미터 이상이다. 참고로 지구 한 바퀴는 고작 4만 킬로미터다.
나는 사람들이 꼴보기싫어지거나 사는 게 힘에 부칠때면 보이저 1호를 떠올린다. 지구의 자연과 인류에 대한정보를 담은 ‘골든 레코드‘를 싣고 1977년에 우주로 날아간그는 44 년째 춥고 어둡고 하염없는 고해를 홀로 헤쳐 가고있으며, 2030년이면 지구와의 교신마저 완전히 끊긴다. 그의 목표는 다른 생명체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4만 년을 더 가야 하고 그 즈음이면 지구의 현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4만 년 후, 보이저 1호가 다른별의 생명체에 건네는 지구의 골든 레코드, 지구의 말과 글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 P49

다음은 ‘말‘에 대한 관용구했다.
말(을) 내다; 남이 모르고 있던 일을 이야기하여 소문을 내다
말(을) 듣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다. 꾸지람이나 나무람을 당하다. 기계 따위가 마음대로 잘 다루어지다.
말(을) 못 하다: 말로써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말(이) 굳다; 말할 때 더듬거려 말이 부드럽지 못하다.
말(이) 나다; 남이 모르고 있던 일이 알려지게 되다. 말이 이야깃거리로 나오게 되다.
말(이) 되다; 하는 말이 이치에 맞다. 어떤 일에 대하여서로의 사이에 약속이 이루어지다.
말(이) 떨어지다; 명령이나 승낙 따위의 말이 나오다.
말(이) 뜨다; 말이 술술 나오지 않고 자꾸 막히거나 굼뜨다.
말(이) 많다. 말수가 많다. 수다스럽다. 말썽이 끊이지아니하다.
말(이) 아니다: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지가 매우 딱하다.
- P50

표정으로 떠오른 마음은 진심이었고 그 덕에 나는 한번도 실감한 적 없는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한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고유의 언어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역사가 깊고 문화적인 나라일 거라 추측했고 종이를 내밀며 "네 이름을 네 나라 글자로 써달라" 하더니 내가 써준 한글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며칠 후 다시 그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또 내게 물었다.
"선경, 너의 나라에도 바다가 있니?"
얼른 바다가 있다고, 삼면이 바다라고 자랑했다.
"멋지구나. 그런데 너의 나라 바다는 무슨 색이니?" - P55

우리나라에선 웬만한 자연 풍경의 색을 ‘푸르다‘로 두루뭉술하게 통칭한다. 하늘도 푸르고, 강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나뭇잎도, 풀도, 산도 푸르다. 눈으로 그것들의 색이 뻔히 다른 걸 보면서도 ‘푸르다‘로 통칭한다. 파란색을 푸르다고도 하지만 연두색도 초록색도 푸르다 하고 물색까지 푸르다 하는 셈이다. ‘빛깔이 밝고 선명하다, 싱싱하다‘는 뜻으로 푸르다고 할 수는 있으나 색깔을 묻는데 하늘도, 강도, 바다도, 나뭇잎도, 풀도, 산도 푸르다 하면 틀린 말은 아니나 옳은 말도 아니며파랑인지 초록인지는 순전히 듣는 사람이 알아서 알아들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삼면의 바다 색깔이 모두 다르고 무엇보다 블루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무 살이나 먹고 대한민국삼면의 바다가 없는 독일에서 알아차렸다. 5분도 안 되는사이에 벌어진 이 날의 대화는 내게 중대한 인식의 전환점이었다. 사물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보지 못하 - P57

고 있었다. 남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말과 글의 관성에갇혀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타성적으로 표현하고있었다.
관성이나 타성은 건성이나 비슷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반대말은 ‘관심‘ 42이다. 나는 사람이 제일 가지기 45힘든 것이 관심이라 여긴다. 강퍅할 때는 온통 자기만으로가득 차 깃털 한 개조차 꽂을 데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 안에 다른 무엇을 들이는 게 쉽겠는가. 대수롭지 않은 주변과일상이라면 더욱 데면데면하다. 옆에 있어도 옆에 없고봐도 본 게 아니며 들어도 들은 적 없다. - P58

어휘력은 문장을낱말로, 서술을 명사나 형용사로 줄이는 기술이기도하다. 세상의 사물과 현상은 저마다 명칭을 가졌고 이 장에 소개한 것처럼 소소해 보이는 것들마저가지고 있다. 심지어 사전에 실린 풀이는 평소 말로 풀어서술한 내용보다 두루뭉술하지 않고 명확하다.
맞춤한 낱말을 구사하면 불필요한 곁가지 서술을 줄여효율적일 뿐 아니라 그 낱말을 디딤돌 삼아 하려는 이야기를 자신감 있게, 자유자재로 발전시킬 수 있다. 사람에 대해서는 이름을 안다고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사물과 현상은맞춤한 이름을 알면 거의 아는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아는게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아는 것이다. - P75

앞서 내 동생도 세상에 태어난 지 5년이나 됐는데 내말에 대응하지 못했잖은가. 나 역시 세상 산 지 7년이나 됐어도 중학생과 말다툼을 벌이면 턱없이 밀렸을 것이다. 혹여 이겨도 중학생 언니나 오빠의 분노를 유발해 꿀밤 맞았을지 모른다. 그러면 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을 거다.
울고싶지만 울지 않고, 꿀밤 때리고 싶지만 때리지 않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감정을 품위 있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표시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파악하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퀴지을 지성을 갖췄다는 뜻이다. 이과정은 언어라는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뇌속에 수많은낱말들이 혼잡스럽게 뛰어다니느라 다소 골치 아플 수 있지만 활용 능력치가 커질수록 앞서의 과정을 명확하게 진행시켜 세상살이를 한결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언어와 의식은 함께 성장하며 총본산이 문학이고 인문학이다. - P81

어른이라고 올 일 없으랴. 목 놓아 펑펑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 저마다 가슴 열어젖히면 눈물이 그득히 쏟아져 온 땅이 물에 잠길 것이다. 그러나 그뿐, 눈물은나를 변화시키지도 상황을 바꾸지도 못한다. 말 안 하면 왜우는지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울지 마라, 소리 내 말하라, 글을 쓰라.
그래야 내가 변할 수 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내 속을 풀어내는 것도 타인을 설득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설령 말 때문에 사달 68 날 위험이크다 해도 결국 말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타인과의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며 이런 상호작용은 주로 말을 통해 확립된다."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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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한 것은 상상, 공상, 망상. 일곱 살 때부터 멈춘 적 없는 것은 책 읽기와 글쓰기, 세상 구경. 그것은 작가가 떠나지 않고 작가를 떠나지 않은 유일한 꿈, 위로, 그리고 감옥이었다.
3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으며, 1993년부터 라디오방송에서 글을 썼다. 일주일에 5권 이상 책을 읽는 다독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만나면서 어휘력 부족이 단순히 국어능력 문제가 아니며 얼마나 일상에 커다란 불편을 가져오는지 깨닫는다.
지금 우리에겐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작가는어휘력의 쓸모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 책에 담았다.
<월간 미술>에 유선경의 곁을 보는 시선들‘이라는 글을연재했으며, 또 다른 책으로는 《문득, 묻다》,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등이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못하는 홍길동이 적지않다. 허균의 홍길동처럼 서자라서가 아니다. 마땅한 어휘를 떠올리지 못해서다.
아버지가 아버지고 형이 형인 것처럼 세상의 대상과사물, 현상 등에는 알맞은 어휘가 있는데 딱 짚어 부르질못 한다. 머릿속에 형체는 있으나 명칭이나 이름이 바로 나오질 않는다. 누가 머릿속 연상을 찍는 카메라는 발명 안하나 싶다. 자신이 느낀 기분이나 감상 등을 표현하고 싶지만 어떻게 옮겨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체온기처럼 기분이나 감상을 감지해 알려주는 기기는 누가 발명 안 하나 싶다. 아직 그런 기기가 없어 대충 이 두 가지 말을 가지고 돌려막는다. - P5

"하! 이놈의 건망증!"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 책은 일 년 전 한모씨가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시작되었다.
"낱말이 떠오르지 않는 걸 두고 사람들이 자꾸 나이 들어 생긴 건망증이라고 하는데 저는 건망증이 아니라 어휘력 부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견해가 맞는지 틀리는지 구태여따지지말자. 건망증이라고 하면 외워야 한다 할 것이고 어휘력 부족이라고하면 어휘력을 키우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5

대한민국의 어른은 대체로 수능을 치르고 나면 따로어휘를 외운다든가, 어휘력을 키우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매일 보고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모국어 아닌가. 그래서일상에서 겪는 불편이 설마 모국어의 어휘력 부족 때문인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가장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불편이 글과 말귀가 어두워지는 것이다. 학습 능력은 둘째치고 소통에 상당한 불편을 겪는다.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과 말귀 못 알아듣게 말하는 사람이 만나 말해봐야 복장 터질 일밖에 없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뿐인데 ‘그 인간 문제있다‘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물론 어휘력과 인격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이 경우 어휘력 ‘부족‘보다 ‘잘못‘에 가깝다.
일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의이런생각과 감정, 느낌 등을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잃는다.  - P6

어휘로 생각하고 정리해 표현하지 않는 게 일상이되면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자기가 파악할 줄 모른다. 자신(自身)의 생각에 대해서 자신(自信)이 없다. 간혹 성격에 따라 미운 일곱살처럼 공격적이 되는 수도 있다.
어휘력은 말발 센 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려면 낱말을 양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긴해도 낱말에 대해 ‘잘‘ 알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더 - P6

효과적이다. 여기서 ‘잘‘이란 다른 낱말과 함께 배치했을 때의미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섬세하게 파악한다는 뜻이다.
뒤집어 얘기해서 어떤 말이나 글의 의미나 어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눈치‘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
이 부족한 탓이 크다. 말인즉슨 맞는데 묘하게 거슬리는 말도 ‘인간미‘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이자 대상과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러한힘과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말이 상대의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른‘다운 어휘력이다. 이 책의 제목을 《어른의 어휘력》으로 삼은 배경이다. - P7

"책을 읽고 싶어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서 읽기 힘들어."

초등학생이라면 영락없이 책 읽기 싫어 둘러대는 핑계라 하겠지만 10여년전부터 친구들에게 꾸준히 듣고 있는말이다.
마흔 넘으면 ‘내가 왜이럴까‘ 싶은 게 도대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변화라곤 나이 먹은 거밖에 없으니 부정적인변화의 원인을 나이 탓으로 모집었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나중에 기억나지 않는 것도 나이 먹어 그런 거라 무감하게 대꾸했다. 책을 펼치고 딴생각으로 빠지기는 모든 세대에 공통이나 중년에 접어들면 딴생각의범위가 광활해진 의무와 책임만큼이나 공활해진다. 나이탓이 영 허튼소리는 아니다.
그렇게 10여 년 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내게 확실하게벌어질 일은 ‘더 나이 먹고 늙어 죽는 것뿐이라는 진실을깨우쳤다. 속절없는 나이 타령만 하다간 될 일도 안 되겠다017 - P17

싶기도 했다. 안 되는 일을 죄다 나이에 책임을 떠넘기는스스로가 좀 뻔뻔한 듯도 싶었다. 10년 전에 책 읽기 힘들다던 친구는 서서히 책 읽기를 포기하고 있고, 내가 제사날로 찾은 원인은 이러했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래."

친구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나와 30여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휘력 부족이라는 소견‘ 따위나 듣다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휘력이 부족하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고, 내용을 이해하기 힘드니까 책장이 넘어가질않고, 책장이 넘어가질 않으니까 졸린다.  - P18

원시인류는 사냥, 수렵, 채집 등으로 먹을거리를 구하고 맹수 등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고 관찰하고 경계해야했다. 눈 두 개가 가운데 몰려 있어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데 적합하지 않으니 고개나 몸의 방향을 쉴 새 없이 바꿔가며 두리번거렸으리라. 
그 초원이 오늘날에는 인터넷에 있다. 눈 두개가 가운데 몰려 있어 휴대전화의 좁은 화면을 보는 데 적합하니 고개와 몸의 방향은 절로 고정된다. 먹잇감을 찾아 손가락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눈동자가 두 발인 양 쫓아간다. 그때는 실재였고 현재는 가상이지만 뇌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인간의 뇌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산만하다.
인류는 먹고 사는 데 노력을 소진하느라 책 읽는 데 쓸노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책과 무관하게 살았으며 현재도 대체로 그러하다.  - P20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는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한다.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같다. 자신의 그릇이 작아 상대의 말을 제대로 주워 담지 못한 채 흘려버리거나 심지어 제멋대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진심이나 진실을 깨달았을 때면 이미 늦어 과거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밉다.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아직 살아 - P25

보지 않은 시간이라 당장 이해하기 힘들어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군.‘ 하는 식의 감(感)을 얻는다. 신비로운 일이다.
정신 밭에 뿌려둔 감(感)이라는 씨앗은 여하튼 어떻게든 자란다. 그러다 문득 내게 당도해버린 시간을 통과할 적에 떠오른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니고 혼자지만 혼자가아닌 것 같은 기분, 서툴게 더듬어 찾아가면 오래 전 내정신 밭에 뿌려둔 씨앗 자리에 뼈가 자라고 살이 붙어 서있는 형상과 마주한다. - P26

내게는 열아홉에 읽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러했다. 모르는 낱말로 가득해 나름 자부한 독해력에 혐의를 두게 했다. 정신에 균열이 가 불편했을 뿐 아니라 가뜩이나 허무한 아이가 더 허무해져버렸다. 이상하리만치 잊히지 않았다. 흡사 나쁜 남자에게 매혹당한 순진한 소녀 같았다.
다시 읽지 않았다. 그저 한 선배에게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사는 것 같지 않다."는 소감을 남기며 열아홉 살답게 겁도 없이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가지라고 선포한 ‘행복을추구할 권리‘ 를 무시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200년 - P26

넘게 절절이 그리는 심정을 말로 표현하라면 ‘행복추구권‘이 아닐까. 우리가 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 왜 아직도 추구해야 하는지, 맘껏 누리는 것도 아닌 고작 추구 따위가 왜 권리인지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분통이 터졌다.
이러구러 세월이 흘렀다. 내 인생의 표석이 십대의끝자락에 이해하지 못한 채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말했다》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최근의 일이다.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 했으나 이것이 삶의 진실일지 모른다는 감(感)을 모태삼아 뼈가 자라고 살이 붙은 어떠한 형상이 돼 묵직한 무게감으로 내 삶을 밀고 있었다.
차라투스트라에게서 왔으나 이해하지 못했기에 딱히차라투스트라라고 하기 힘든 그 형상은 내가 인생 자락의고비에 놓일 때마다 뜨거운 회초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 P27

하이패스 단말기가 없으면 고속도로나 유료도로의 톨게이트마다 정차해야 하는 것처럼 어휘력이 부족하면 말이나 글에 지체구간이 생기고 늘어진다. 표현하고 싶은 용어나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것을 설명하느라 정작 하려던말이나 글을 중단하고 곁가지 서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말이나 글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미용어나 낱말을 아는 사람에게는 쓸데없고 지루하다.
정확한 어휘를 구사해야 하는 이유는 해석의 여지를줄이기 위해서다. 시나 소설 등의 문학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쓴 애매모호한 표현은 여운과 사유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모호함에서 비롯된 해석이 제각각 달라 벌어지는 논의 - P35

조차 의미 있다. 그러나 언론기사나 논문, 논술이나 프레젠테이션, 자기소개서 등 정보나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글에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어휘와 표현을 써서 읽거나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을수 없다.
글쓰기가 업(業)인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없을 정도로 정확한 어휘와 표현을 찾는 것이 목표다. 이룰수 없는 목표를 바라보고 하염없이 헤맨다. 뜻이 통하면 됐지 구태여 그런 수고까지 할 필요 있느냐 묻는다면, 이과정에서 겪은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바로, 찾아 헤매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마치 생각만 어휘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어휘도생각을 찾아와 중간 어디쯤에서 극적으로 만나 부둥켜안는것 같다. 분명 내 자아에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 - P36

베아트리스는 맛이 궁금해 안달하고 마침내 버질이 소개한다. "배를 작게 잘라내면 속살은 새하얗지. 안에 전등이켜진 것처럼 하얗게 빛난다고. 그래서 과도 하나와 배 하나만 있으면 어둠이 무섭지 않아." "배를 씹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나 감각도 정말로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어. 어떤 배는 아삭아삭하기도 해." 베아트리스가 배 맛을 상상하기 위해 묻는다. "사과처럼?"
당신이 배맛을 안다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할 것이다.
"아니라니까. 사과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니까!" 버질도 그랬다. 앞서 배의 모양을 설명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배의 맛에대해 찬찬히 알려준다. - P39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끝내 묻고 만다. "그럼 배맛은 뭐랑 비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팽팽하게 쌓아올린 배에 대한 설명은 이 지점에서 와르르 무너진다. ‘우리는 이미 반쯤 아는 것을 듣고 이해한다.‘고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은 과연 진실일 수밖에 없을까. 결국 버질도 포기한다. "배 맛은 뭐랑 비슷하냐면, 뭐하고 비교할 수 있냐면…… 모르겠어. 말로는 표현할수가 없어. 배 맛은 배 맛 그 자체야. 어떤 맛으로도 비교할수 없어." 베아트리스는 안타깝다. "너한테 배가 있으면 좋을 텐데." 버질도 같은 심정이다. "그래, 나한테 지금 배가 있다면 당장 너한테 맛을 보여주었을 거야." 둘은 침묵한다. - P40

버질은 베아트리스가 알고 있는 것에 기대어 한참 설명했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을 끝내 알릴 수 없었다. 베아트리스는 버질의 이야기에 푹 빠져 머릿속에 온갖 형상을 열심히 그려봤지만 최종적으로 몰랐다. 언어의 한계다. 상상의 한계다. 인식의 한계다. 이 한계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가 되어 상대가 전하는 의미를 두드려 펴 늘이거나 - P40

머리 혹은 사지를 가차 없이 잘라낸다.
흔하디흔한 과일 하나 설명하기도 이렇게나 힘든데 나는 알고 당신은 모르고, 나는 겪고 당신이 겪지 않은 일에대해서라면 오죽할까. 그래서 대화가 각자 말을 하거나, 그저 그런 진부한 언어의 나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그럼에도 나만 겪은 일을 당신에게 알리고, 당신이 겪은 일을 내가 알 길은 언어밖에 없다. 언어는 강철보다 견고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려 금 가게 하고, 틈이 생기게 하고, 마침내 드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언어의 한계를 서로 달리 살아온 삶의 경험과환경에서 비롯된 거라 믿어 소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휘를 선택할 때 조금은 더 친절해질 수 있다. 상대의 처지에 적절한 낱말을 찾게 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대화에 등장하는 ‘배‘가 상징한것은 ‘홀로코스트‘ 였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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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함께 걷는 길


말타기와 사냥을 즐겼던 안중근의 변화는 어디에서 온 걸까? 천주교입교는 안중근을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바꿔놓았다.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 그의 가두선교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안중근의 두 번째 변화는 한반도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의 을사늑약이다. 북간도와 상하이를 다녀온 안중근은 연해주로 망명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시종 한반도의 독립과 아시아 평화를주창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한반도에초대 통감부로 부임한 이토를 제거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해보였다.
역사는 때로 강물의 걸음걸이로 흐른다 했던가. 어떤 것들은 사라지고 어떤 것들은 여전히 그곳에 맴돈다. 한 그루 나무가 숲을 이뤄가듯 그 생명력 또한 무한하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찬란한 숲을 볼 수있다. - P6

안중근과 함께 걷는 첫 번째 여정은 단지동맹비가 세워진 크라스키노에서 시작되었다. 안중근의 손도장 기념비는 장엄했다. 왼손 무명지가 잘린 손도장에서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강한 의지가 읽혔다. 반면크라스키노는 의병 전투에서 패한 안중근에게 우울한 망명지였다. ‘다시는 크라스키노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그의 선언이 절명처럼 들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날아온 한 장의 전보가 없었다면 하얼빈 역거사도 어려운 일이었다.
안중근이 기선을 타고 떠난 포시에트 항구를 빠져나와 빨치산스크(수정)로 향했다. 연해주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은, 시보데알린 산맥에 위치한 빨치산스크는 안중근에게 매우 각별한 장소다. 의병모집 연설에 감동한 백여 명의 청년들이 ‘수청파‘를 결성했고, 한인동포들은 6000루블의 군자금을 내놓았다. 의병 모집 연설에서 안중근은 ‘의‘와 ‘단합‘을 강조하는데,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겨눈 총구만큼이나 이천만 동포에게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분열은 곧 패망을 의미했다. - P7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동공보》 신문사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포그라니치나야 거리(개척)에 언덕을 지칭하는 웅덩마퇴와 둔덕마퇴가 백 년 전 흑백사진의 기억을 어렴풋이 되살려주었다. 여섯발의 총성으로 막을 내린 하얼빈 거시는 치밀하게 진행되었고, 경비와총기를 제공한 곳도 《대동공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행 기차에 오르기 전 안중근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번 길에 꼭 총소리를 내리다.‘
안중근과 함께 걷는 길에서 잠깐 다녀올 곳이 있었다. 최재형과 이 - P7

상설이 잠든 우수리스크다. 페치카 최재형은 안중근의 소리 없는 후원자로 헤이그 밀사 이상설은 안중근이 가장 존경한 인물로 생을 마감했다. 또한 우수리스크는 안중근 가족이 이주해 살 때 두 동생(정근, 공근)이 최초로 벼농사를 성공시켰던 곳이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에선 신경이 곤두섰다. 무장한러시아 군인과 감시 카메라가 그라데코보 역 주변을 에워쌌다. 용기를낼 수 있었던 건 안중근을 믿었기 때문이다. 들불처럼 번지는 번뇌 속에서도 안중근의 과녁은 흔들림이 없었다. 국경역 사진은 간절한 기도의 선물이었다.
연해주 벌판을 거슬러 오른 두 번째 여정은 쑤이펀허, 무링, 하얼빈,
차이자거우, 창춘, 북간도, 뤼순, 상하이로 이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안중근의 아내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였던 김아려의 심정을 헤아려보았다. 신부가 되길 바랐던 장남 분도를 무링에서 잃고 만 것이다.
- P8

안중근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임무를 마친 하얼빈 역은 역사에 안중근 기념관이 들어서면서 사람들로 붐볐다. 중국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이채로웠다. 베이징대학 천두슈 교수는 하얼빈 거사를 지켜보며 흥미로운 말을 남겼다.
"나는 (중국) 청년들이 톨스토이나 타고르가 되기보다 콜럼버스와안중근이 되길 원한다."
첫 번째 거사 장소로 삼았던 차이자거우와 안중근 일행이 하룻밤을 보낸 창춘의 관동군 헌병대도 빠트릴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뤼순행 기차에 오른 안중근의 망명 생활도 만주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적소리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 - P8

으니 외로운 길만은 아니었으리라. 안중근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천명으로 받아들였다.
안중근과 함께 걷는 길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형 집행을당한 뤼순감옥에서 크라스키노를 바라보니 아득하게 느껴졌다. 날짜도 구월에서 시월로 바뀐 지 오래다. 평일인데도 뤼순감옥은 하얼빈역 기념관보다 붐볐다. 누군가의 죽음이 훗날 기념이 될 수 있다는 건신념을 굽히지 않은 의사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 아닐까? 안중근과같은 장소에서 순국한 신채호, 이회영과의 해후도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뤼순에서 상하이는 기차로 꼬박 스물다섯 시간을 달려야 하는 먼여정이다. 안중근사형 후 가족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크라스키노 무링, 우수리스크를 거쳐 상하이에 정착하는데 그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안중근과 함께 걷는 길에서 성찰의 시간도 주어졌다. 하루하루 기도하는 삶이다. 먼 여정의 길잡이가 되어준 안중근 의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P9

과거 한인들은 크라스키노를 ‘연주‘라고 불렀다. 연주에 관한 설명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읽을 수 있다. 조선을 네 차례 여행한 비숍은 1894년 가을, 연추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평평한 평지의 농촌 지역은 깊고 기름진 검은 땅 위에 곡류와 근채채소들이 거의 다 자란 상태였다. 이미 곡식의 수확이 끝난 뒤라 땅은깔끔하게 갈아엎어져 있었다. 조선의 농촌 마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더 좋은 집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중략) 노보키예프스키에서 조금 더 가니 안지혜 (연)라 불리는 큰 마을이 나타났는데, 이곳에는 러시아 학생들과 한인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 깔끔한 학교가 있었으며, 내부 장식이 두드러지게 화려하고 사제의 사택이 붙어 있는 러시아정교 교회가 있었다. 안지혜는 매우 부유한 마을이었다. 이 마을과 부근 지역에서 모두 400명의 한인들이 러시아정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사제에게 한인들의 삶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배울것이 많고 다음 세대에 보다 많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 P15

안중근은 그보다 조금 늦은, 1909년 연추에서 단지동맹을 결행했다.


1909년 2월 나는 연주 방면으로 돌아왔다. 열두 명의 동지와 상의 끝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동안 아무 일도 이룬 것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 뿐만 아니라, 특별한 단체가 없으면 어떤 일이고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손가락을 끊어 맹세함으로써 한마음으로 단체를 이루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목적을달성하는 것이 어떻소?"
모두가 따르겠다고 했다. 이에 열두 명은 각각 왼손 무명지를 끊어 그 피로써 태극기 앞면에 ‘大韓獨立(대한독립)‘ 네 글자를 크게 썼다. 쓰기를 마친 우린 ‘대한독립 만세‘를 삼창하였고, 하늘과 땅에 맹세한 다음 흩어졌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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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 브룩스의 
피플오브 더북 People of the Book
2008년


미합중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오래지 않아, 우리 지역 신문에서 내가 잊을 수 없는 사진을 한 장 내보냈다. 바그다드 도서관을 서둘러 나서는 어떤 이라크 남자의 사진이었는데, 연기 가득한혼란스러운 길거리에 선 그 남자의 품에는 책이 가득, 아니 흘러넘치도록 무겁게 담겨 있었다. 몇 권은 화집이나 오래된 기록물처럼크고 무거워 보였으니 희귀한 보물들이었을지도 모르고, 그저 불타는 건물의 혼란 속에서 건질 수 있는 책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남자는 사서였을 수도 있고, 그저 독자였을 수도 있다. 약탈자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얼굴에는 고통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열렬한 비탄도 보였다. - P364

제럴딘 브룩스의 피플 오브 더 북 도서관 파괴로부터책을 구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읽고 싶어졌다. 그 시의적절함에 지금이다 싶고 그 역설에 가슴이 저미니, 저항할 수 없는유혹이었다. 이 소설은 어느 무슬림 사서가 화재에서 오래된 유대교 경전을 구한 실화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인들이 사라예보를 폭격하면서 도서관과 박물관들을 겨냥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보스니아의 자랑이자 영광인 소장품 ‘사라예보 하가다‘를 도서관에서 빼내어 은행 금고에 숨겨두었다. 하지만 그 원고가 구출받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반세기전에는 그 경전을 나치의 코앞에서 빼돌려서 내내 어느 마을 모스크에 숨겨 두기도 했다. 1941년에 경전을 구한 사람은 이슬람교 학자인 데르비스 코르쿠트였다. 1992년에는 무슬림 사서인 엔베르 이마모비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잊지 못하는 그 사진 속 이라크인과 마찬가지로) 불타는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나오려던 이마모비치의 동료 하나가 스나이퍼에게 저격당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아이다 부투로비치였다. - P365

‘사라예보 하다‘는 유대교 경전으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기독교 성무일도서처럼 엄청나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삽화를넣은 책이다. 14세기 중반에 스페인에서 쓰고 삽화를 넣었는데,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어떤 사제가 "레비스토 페르미(revisto per mi)", 즉 내가 살펴보고 승인했다고 적고 서명을 해둔 덕분에 1609년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종교재판에서 불타지 않 - P365

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그 원고가 베네치아에서 보스니아로 가게되었고, 그래서 20세기에 두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구출되었는지사연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한다.
여기에 이야기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유럽과 아프리카와 중동의 전쟁과 곤란을 다루던 배경이있고, 넓은 역사 캔버스를 좋아하며 퓰리처 상을 타기도 한 제럴딘브룩스라면 그 이야기를 맡기에 딱 맞는 소설가 같다. 브룩스의 성과는 많은 독자를 만족시킬 것이다. 이야기엔 복잡한 우여곡절이가득하고, 심지어 끝에 가서는 살짝 미스터리 플롯까지 가세한다.
섹스, 다소 보잘것없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의무적인 폭력 행위 묘사도 있다. 소설은 실제 사건과 상상 속의 우여곡절을 통해 이 고문서의 기원을 따라가느라 몇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번갈아 나오는 챕터로 역사적인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킨다.  - P366

그러나 중심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나아가며, 해나 히스라는 이름의 동시대 오스트레일리아 희귀본 전문가이자 똑똑한 교양인을 다룬다. 해나는 (가상의) 하가다를 분석하기 위해 사라예보로 불려 가고, 하가다를 구해 낸 (가상의) 사서에게 빠져든다. 우리는 이 책의 모험가들을 따라 5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이사이에 해나의 직업적인 의무,
해나가 애정 없는 어머니와 겪는 어려움, 해나 자신의 민족 유산에대한 뜻밖의 발견을 뒤쫓는다. 이야기는 넓게 뻗어 나가지만 모두탄탄하게 짜여 있다. 어쩌면 너무 탄탄한 구성인지도 모른다.
해나가 1인칭으로 서술하는 챕터들에는 대화가 가득하고, - P366

활기 넘치고 산뜻하며 저널리스트스러운 스타일로 쓰인 데다, 산문으로서 탁월하거나 미학적이진 않을지 몰라도 읽기 쉽고 실용적이다. 안타깝게도 이 자신만만한 확실성은 첫 번째 과거 챕터에서, 빨치산에 합류하는 어느 유대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쓴 1940년유고슬라비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자마자 사라진다. 스타일은투박해진다. 힘겹게 굴러가는 소리마저 들릴 지경이다. 1492년 바르셀로나에 갈 무렵에는 대화가 에드워드 불워리턴 수준으로 떨어지고 -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른단 말입니다!" - 서술은 유용한 정보와 예측 가능한 행동, 다방면의 묘사가빡빡하게 섞인 글이 되어 버렸다. 주머니 속에 돌을 집어넣듯, 수많은 역사소설을 무겁고 굼뜨게 만드는 조합이다! - P367

사건은 가득하지만 유머도, 심리적인 깨달음도, 묘사에 주의를 집중시킬 선연한 언어도 없는 이 챕터들은 끼긱거리며 이어진다. 역사소설로서는 정말 안타깝게도, 지역 특유의 생각과 정서에 대한 감수성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있다 해도 인간의 차이에 대한 포용력으로 과거를 생생하게 살려낼 정도는 못 된다.
브룩스는 현대식 정의와 윤리 판단을 맞지 않는 공간과 시간에 가져다 놓으려 애타는 노력을 쏟아붓는다. 사람들은 그런 갈망을 "정치적 적절성(political correctness)"이라 부르는데, 한때는 의미 있었지만 이제는 대개 반발의 비웃음만 초래하는 용어다. 브룩 - P367

스의 진지한 선의는 존중해 마땅하지만, 사실 소설이 시대착오를저지르고도 빠져나갈 수 있을 때는 그 시대착오가 전혀 눈에 띄지않을 때뿐이며, 오래된 부적절함을 바로잡으려는 브룩스의 노력은지나치게 눈에 띈다. 페미니즘 때문에 브룩스가 귀한 책을 만들고지켜 내는 데 중요했던 여성들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늙은 랍비들 사이에 그런 여성들을 넣다니 무리한 시도지만, 작가는 고집대로 밀고 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삽화를 그린 화가가 여자였고, 그것도 흑인 여자였음을 알게 된다.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설명은 그럴듯하다. 나도 믿고 싶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다. 이 사람, 이 화가, 이 화가의 세계는 내가 믿을 수 있을 만큼 진짜같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건 그냥 소망 충족이다. 진정한 픽션다운 치열한 현실성을 띠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만일 경험 많은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지어내기를 포기하고 사라예보 하가다의 놀라운 실화를 그대로 따라갔다면 더 나은 책이 되진 않았을까 생각하고 만다. 누군가가 아이다 부투로비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소설이나 시를 지을 수 있었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하고 만다. 괴로움 가득한 얼굴로 품에 책을가득 안고 있던 그 이라크인의 사연은 영영 알 수 없을 것을 알기에. - P368

여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서는 드러누워서 푹 빠져들길고 두툼한 멋진 장편 소설 한 권, 아니면 여름 과일바구니처럼한 번에 한두 개씩 빼먹으며 온전히 음미하기 좋은 훌륭한 단편 잔뜩이다. 여기, 이탈로 칼비노가 보낸 큼지막한 이야기 바구니가 있다. 복숭아, 살구, 천도복숭아, 무화과, 다 있다.
그것이 『우주만화Le cosmicomiche』 (1968년에 영어로 출간)의 개요다. 『세상의 기억과 다른 우주만화La Memoria del mondo』(1968)에서 새로 번역한 일곱 편, 『시간과 사냥꾼 Ticon zero』(1969) 수록작 전체, 『어 - P369

둠 속의 숫자들 Prima che tu dico Pronto 』 (1995) 수록작 네 편, 그리고 묶여 나오지 않았던 단편 몇 개까지. 우주만화 전체를 한 권으로 보게 되다니 기쁜 일이거니와, 멋진 책이고 잘 만든 책이다. 수록작의3분의 1 이상이 나에게는 새로운 글이었고, 영어로 읽는 독자들 대부분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중 몇 편은 그야말로 보석이다. 윌리엄위버와 팀 파크스, 마틴 맥러플린의 번역은 다 만족스럽고, 맥러플린 씨의 서문은 이 눈부시게 색다른 이야기들에 더 좋을 수 없는안내서다. - P370

이탈로 칼비노는 무엇이었을까? 선(先)-포스트-모더니스트? 아무래도 모더니즘에서 온갖 접두사들을 없앨 때가 됐나 보다. 나치의 이탈리아 점령 기간 동안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싸우던젊은 레지스탕스 전사였던 칼비노는 독창적인 지적 판타지 작가가되었고 쭉 독창적인 작가로 남았다. 그리고 그가 작가 생활 중반쯤 만들어 낸 이 형식은, 우주만화는 무엇일까? 분명히 SF의 한 아종일 이 형식은 보통 (대개 진짜지만, 때로는 현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과학 가설에 대한 진술로 서술 무대를 설정하며, 서술자는 대개Ofwfq"라고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게 언젠가는‘이 시작된다. - P370

부디 그 정어리들을 주시하라. 그게 칼비노의 기법과 스타일이 지닌 특징이자 핵심이다. 이야기는 이런 도입부에서부터 지극히 논리적으로 전개되는데, 적어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논리에 현대 천체물리학만이 아니라 제논의 역설, 보르헤스의 알레프, 그리고 미친 모자 장수의 티파티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에 그렇고, 또 그래야 한다.
칼비노의 나중 작업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단편이라기보다는 콩트로 여겨질 수 있다. 지적인 통각(apperception)의 서술 예시, 하나의 아이디어 또는 가설, 심지어는 착상이다. 콩트는 계몽주의가 제일 좋아하는 매개체로, 풍자와 코미디에 적합하다. 볼테르의 『캉디드』가 이런 유형의 걸작이다. 콩트는 인물보다는 캐리커처를, 공감보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한다.  - P371

칼비노는 너무나 많은 면에서 시대를앞서 나갔던탓에,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그의 작품이 판타지라는 이유로 하찮은 취급을 받지 않고 획기적인 소설이자 거장의 작품으로 널리여겨지게 되었다. 칼비노가 글을 쓰던 시기에 SF는 문학으로 거론되지 않았고, 만화는 심지어 그보다 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만화를 진지하게 논한다는 상상조차 하는 문학 평론가가 거의 없었다. 그 평론가들은 칼비노가 이이야기들에 부여한 이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둘 때조차도 그게한 가지 암시이고 우주 코미디를 강조하려는 제목이라 여겼다. 하지만 칼비노는 분명 우리가 급작스러운 접근을 비약과 방대한 단순화를, 테두리 안에 그려진 그림 서사를, 카툰을, 만화를 생각하기를 의도했다. 그리고 단편 「새의 기원‘origine degli Uccelli」은 정확히그런 심상을 가지고 놀면서 독자에게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지시한다. "여러분이 효과적으로 그려 넣은 배경에 온갖 자그마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카툰 시리즈를 상상해 보면 좋겠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분은 어떤 인물도, 배경도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합니다." - P375

열여덟에서 열아홉 권에 이르는 마거릿 드래블의 소설들은 나온 시기의 표현양식으로 각 시기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기록해 왔으나, 진정으로 유행을 따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날카롭고 비판적인 지성 때문에 유행을 빈틈없이 알았고, 역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드래블의 소설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특징들은 모더니즘이라 부르기도 석연치 않고 그렇다고 포스트모던도 아니다.
물론 나는 구식이라는 말을 피하려고 노력 중인데, 드래블이 그 말을 죽음의 입맞춤으로 여길까 걱정스러워서다. 그러나 뭐라고 할까? 근본적으로 솔직하지만 즐겁도록 절묘하기도 한 강렬한 서사추진력, 선명하지만 대부분 말로 하지 않는 도덕적 부담, 사회와 젠 - P376

더와 예절과 유행에 대한 적확하고도 즐거운 관찰, 어쩌면 성격이곧 운명인지도 모를 강렬한 개성을 갖춘 등장인물들 세상에, 내가지금 제인 오스틴에 대해 말하고 있나?
얼마 전, 드래블은 연쇄살인자들이 우리 모두에게 발휘한다고 하는 매력 같은 가짜 사안들에 열중하다가 조금 방황하려는것 같았다. 나는 그것 때문에 드래블의 소설들이 나빠졌다 생각했다. 바다 숙녀』를 읽으며 『바늘의 눈The Needle‘s Eye』를 썼던 영리하고 빈틈없고 속지 않으며 타협하지 않는 저자를 다시 찾아 기쁘다.
흉을 잡자면, 바다 숙녀」에서 딱 한 인물이랄까 목소리, 아니면 페르소나에게 이의를 제기하련다. ‘공개 연설자(PublicOrator)‘로 남성인데, 한번씩 자의식을 얻어 이야기에 대해 의견을내놓으면서 메타픽션적으로 개입하는 저자, 독자들에게 던지는 새커리 스러운 방백, 그리고 희미한 번연의 향기를 아우른다. 그를 다루는 몇 대목은 이렇게나 달변이다. - P377

그리고 배경이 있다. 이 나라의 동쪽 절반에 사는 사람들은다발풀 무성한 방목장과 목장에 사는 카우보이들을 진지한 소설배경이 아니라 마초 영화용 소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뭐예요, 거기 진짜 사람들이 산다고요?
엠시윌러가 그리는 1905년 시에라 산맥 비탈의 캘리포니아는 루이스 라모어‘와는 아주아주 거리가 멀고 할리우드와도 다른행성에 있다. 그러나 메리 오스틴의 『비가 오지 않는 땅 Land of LittleRaing에서는 길만 건너면 바로다. 여기는 "성공"이 아무 의미가 없는 미국, 건지 농업과 궁핍한 목축업의 땅, 외톨이 하나하나가 옆에있는 외톨이를 아는 곳이다. 이들은 기대치가 낮고 강인한 사람들, 특이한 실패자와 도망자들, 사막 사람들이다.  - P387

이 무정하게 위험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람의 행동과 관계들은 깊은 정적을 깨뜨리는 어떤 목소리나 몸짓과도 같은 중요도를 띤다. 하지만 엠시윌러는 사막의 삶을 열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작가는 그곳을 목장 일꾼들이 알듯이 풍경이 아니라 땅으로 안다. 그곳 사람들을 원형이 아니라 개인으로 안다. 그 땅의 정적에, 그리고 사람들의 정적에 귀 기울일 줄 안다.
산과 사막 지역에서 온 ‘머나먼 서부인들‘인 내 어머니 쪽 친척들이 딱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엠시윌러는 그 사람들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어린 로티가 쓰는 일기가 소설 내내 계속 다시 나온 - P387

다. 그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계속 1880년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우리 이모할머니 벳시를 생각했다. 이건 꼭 벳시 같네, 생각했다. 벳시라면 이 애를 알았을 거야. 벳시가 이 애였어. 서부인이 소설 속에서 자기 친척들을 발견하고, 친척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말하는소리를 듣기란 아직까지도 드문 경험이다. 20세기 초에는 그들을아는 여자 작가들이 있었다. 월러스 스테그너가 출처 표시 없이 작품을 도용해서 소설을 썼던 메리 할록 푸트도 그런 작가였다. H. L.
데이비스의 뿔 속의 꿀과 몰리 글로스의 점프오프 크리크』는서부 지역과 인물들에 대한 확고한 솔직성을 갖췄다. 캐럴린 시, 주디스 프리먼, 디어드리 맥네이머, 앨리슨 베이커 같은 작가들이 그전통을 최근으로 불러오고 있다. 마침내, 그리고 서서히, 그리고 대부분 여성 작가들이 서부를 쟁취하고 있다. - P388

하지만 엠시윌러가, 너무나 뉴욕스럽고 세련된 글을 쓰는데다 뉴욕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그가 어떻게 우리 이모할머니에 대해 다 아는 걸까? 아마 뛰어난 소설가라서이리라. 소설가란 상상력을 이용하고, 그래서 회고록 작가들과 다른 법이니. 엠시윌러는 자기 소설의 배경을 속속들이 알고, 자작 목장에서의 삶이어떤지 알며, 말을 탈 때 어느 쪽에서 오르는지 안다. 책 뒤표지에실린 사진에서 작가는 잘생긴 애팔루사말을 향해 효율적인 안장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하지만 배경의 나무인지 덤불인지는 바스토 근처의 개울 바닥일 수도 있고, 롱아일랜드일 수도 있고, 어디든 가능하다. 내가 확신하는 건 그녀가 『레도잇」에서 무엇에 대 - P388

해 쓰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건 쓸 가치가 있었고, 달리 아무도 그런 소설은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쓰는 이 소설 『레도잇』이 아직도 절판 상태라는 사실을 적게 되어 유감이다. 혹시 요새 모두가 책을 사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레도잇』을 찾아본다면, 나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은 『레도잇』이지만 벨라루스에 대한 책이 한 권 있다. 또 이런 꼴이다. 노도 없이 아마존 강을 거스르는 꼴. 그저 어느출판사가 「레도잇』을 재출간할 분별을 발휘해 주길 빌 뿐이다. 격렬하고도 다정하게 성장하는 어느 소녀의 격렬하고 다정한 초상.
애정과 슬픔에 재능이 있는 남자의 슬픔 가득하고 애정 어린 초상.
서부극이자, 감상적이지 않은 사랑 이야기, 이상화하지 않은 미국의 과거 모습, 강인하고 달콤하며 고통스럽고 진실한 소설을. - P389

머릿속에서나 포스터에서나 콜로라도 하면 온통 산봉우리와 그림 같은 스키 산장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동쪽에서 운전해서콜로라도로 진입해 본다면, 대체로키산맥은 어디다 감춘 걸까 의아해질 수도 있다.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높아지는 평원은광대하고 단조로우며, 가끔 하나씩 못생긴 소도시가 튀어나올 뿐이다. 미국의 서부는 온갖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며, 그 장엄함은 피상적인 게 아니다.
그런 못생긴 소도시 중 하나인 홀트는 소설가 켄트 하루프의 창작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세 장편 『플레인송』, 『이븐타이드Eventide』, 그리고 『축복』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그 마을을 거리 하 - P395

나하나, 주민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안다. 피에르와 나타샤, 아니면 헉핀 같은 하루프의 인물들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가며,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건조하고 수수하며 서부 특유의 느긋한 운율을 띠고, 저자의 서술도 그렇다. 대화에 따옴표를 넣지 않으니 이 연속성이 부드럽게 강조된다. 절제하는 목소리, 조용한 음악이다. - P396

다수가 타고나기를 외톨이인 홀트 사람들의 열정은 미국소도시의 억압적인 인습과, 가난과 무지와 가차없는 고된 노동이라는 온갖 구속에 매인 채, 가끔은 폭력으로, 가끔은 연민의 손을뻗는 행위 또는 그러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폭력은 이 시대 소설들에 흔히 나오고, 연민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하루프는 인간관계를극도로 사려 깊고 신중하게 다루며 격분과 충절, 동정, 도의심, 소심함, 의무감을 탐구한다. 그는 복잡하며 거의 언급되지 않는 도덕문제들을 다루며, 아마도 이심전심의 경지를 향해 밀고 나아간다.
때로는 감상적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또 한두 번은 감상주의에빠지기도 하지만, 홀트 소설을 통틀어 평범한 사랑의 형태를 지속되는 좌절, 헌신적 애정이 치르는 오랜 대가, 일상적인 애정의 위안을 탐구하는 하루프의 용기와 성취는 내가 아는 그 어떤 동시대 소설도 능가한다. - P396

서술은 이 중심인물과 그 주위를 돌면서 보조적인 이야기와 인물과 세대들로 복합적이고 풍성한 결을 자아낸다. 하루프는어른 여자와 여자아이들을 이상화 없이 애정을 담아, 개별 인간으로 쓴다. 청소년기의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 단정도 없이 공감하고,
조악함과 위선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본다. 성애와 무관한 애정 관계를 보여 주는 기술,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양쪽 관점에서 묘사하는 그의 기술은 드문 만큼 반갑다.
하루프는 아주 많은 면에서 놀랍도록 독창적인 작가다. 그독창성은 특성상 많은 전통적 비평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가식을 부리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차분하게, 친밀하게, 그러면서도 어려워하면서, 한 어른으로서 다른 어른에게 말을 건다. 그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조심한다. 그리고 제대로 해냈다. 딱좋다. 진실되게 와 닿는다. - P399

일상에 대해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비범한 것, 전율스러운것, 초월적인 것은 자동으로 매력을 발하지만 심지어 특별히 불행하지조차 않을 만큼 흔한 삶을 묘사하려면 용감한 저자여야 한다.
게다가 행복이라니, 성적인 만족도 아니고 야심에 대한 보상도, 황홀경도, 지복도 아니고 그저 일상의 행복이라니 이건 사실상 소설에서 사라진 무언가다.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감상주의로 보거나,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쓰기 쉽지가 않다. 진실성 있게 울리려면 가장 초라한 종류의 성취와 만족에 대한 묘사조차도 인간의 부족함과 잔인함, 언제나 질병과 몰락과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쓰여야만 한다. - P400

한 마디만 잘못 써도 모든 게 믿기지 않아진다.
켄트 하루의 밤에 우리 영혼은』에는 잘못 쓴 한 마디가없다. 구어체의 편안함과 투명함을 갖춘 산문체와 단순해 보이는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말이나 뻔한 말 하나가 없다.
보통 어떤 소설을 어떤 상황에서 썼느냐는 독자인 나에게별로 흥미를 일으키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저자가 죽어 가면서 쓴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동받고 경외감마저 느낀다. 이 책은삶의 먼 가장자리에서,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책임감을 품고 써낸보고서다. 하루프는 증언하고 있다. 우리보다 멀리 가서, 그곳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하루프가 자신의 상황을알고 있었고, 내가 그 사실을 알면서 책을 읽었기에, 나는 오직 해야만 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과 함께한다는 귀한 특권을 고맙게 여겼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다. 그곳에는 모든 어둠이 다 있으나, 우리는 빛을 보고 있다. 콜로라도의 어느 소도시, 어느 침실에 켜진등불 빛을. - P401

향해 깊게 뿌리를 뻗는다.
홀트는 뉴욕에서 멀다. 어쩌면 런던이나 프라하보다 더 멀것이다. 많은 동부 미국인에게, 서부 미국은 오직 선인장과 할리우드, 문학이 아니라 서부영화의 무대일 뿐이다. 어쩌면 편협한 도시비평가들은 매력도 없고 유행과도 거리가 먼 홀트에 바치는 하루프의 신의 때문에 그의 사려 깊고 섬세하며 능란한 작품에 마땅한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마 하루프는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성공을 열망하여 움직이지도, 홍보용 유명인 공장의 기계적인 과대 선전을 겪지도 않고 고집스레 켄트 하루프로 남아서 자기 일을 계속 하고, 방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그게 옳긴 한건지조차 잘 모르면서도 옳다고 여기는 일을 계속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우리가 서로에게나 스스로에 - P402

게나 얼마나 가혹한지에 대해서, 우리들 대부분이 얼마나 힘들게일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갈망하고 얼마나 조금에만족하는지에 대해서 계속 쓸 수 있었다.
이 모두가 탄탄하고 만족스러운 장편의 재료인데, 이 마지막 책에서는 거기에 아주 희귀한 뭔가가 더해졌다. 수많은 소설이행복 추구에 대해 썼지만, 이 소설은 실제 행복의 빛을 발한다.
"그러다가 애디 무어가 루이스 워터스를 찾아가는 날이 왔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편과 사별한 애디는 아내와 사별한 이웃을 찾아가서, 혹시 가끔 같이 자러 올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뭐요?" 루이스는 당연히 깜짝 놀라서 말한다. "그게 무슨뜻입니까?" 그러자 애디가 말한다.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너무오래 혼자 지냈어요. 몇 년이나 그랬죠.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혹시 밤에 와서 나와 같이 잘 생각 있나요. 대화도 하고요." - P403

변한 것이 있다면, 글쓰기의 본질에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언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군살 없이 팽팽한 미니멀리즘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런 형용사들은 상당히 많은 현대 서사 산문을 묘사하기도 한다. 유행에 맞는 식욕 억제 스타일로 스릴러와 경찰소설, 실존 누아르에 잘 맞지만 아우르는 영역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 얀손의 영역은 효율적으로 통제되어 있긴 해도 크다. 얀손의 간결한 정확성은 긴장과 스트레스만이 아니라 깊은 감정, 확장, 휴식, 평화까지 표현할 수 있다. 묘사는 서두르지 않고 적확하며 선명하다. 화가의 눈이다. 스타일은 "시적"이긴커녕 정반대로 가장 잘 짜인 산문이다. 순수한 산문이다. 그 고요하고 명료한 글을 통해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를 위협적인 어둠을 약속된 보물을 본다. 문장은구조, 움직임, 운율 모두 아름답다. 필연적으로 어울린다. 심지어번역인데도! 토머스 틸은 표지에 토베 얀손과 같이 이름을 올려야마땅하다. 그는 진정한 번역가의 기적을 일으켰다. - P406

COMPAGE디스토피아는 그 천성이 음울하고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다. 초기 탐험가들에게는 온갖 발견의 흥분이 있는 곳이었고, 아직까지도 그들의 글에 꽉 찬 그 흥분이 디스토피아를 신선하고 강력하게 유지해 준다. E. M. 포스터의 기계 멈추다』,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그렇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디스토피아는 흔한 관광 상품이었다. 모두가 그곳에가서 책을 한 권씩 쓴다. 그리고 그 책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디스토피아의 영역은 한정되어 있고 그 본질은 단조롭기에,
디스토피아에서 제일 익숙한 그림은 대재난으로 망가졌거나 방치된 야생의 풍경에, 자연과 다른 종들은 물론이고 때로는 외 - P415

부 대기로부터도 차단된 인간 정착지가 드문드문 흩어진 모습이다.
이런 지하, 아니면 돔 속, 아니면 벽 안의 거주지들에는 인간이 빽빽하게 모여서 정부와 정해진 일과의 통제를 받으며, 엄격하게 관리되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대단히 비자연적이며 종종 사치스러운
"유토피아" 생활을 영위한다. 거주지 안에 사는 사람들은 바깥에사는 사람들을 원시적이고 무법하며 위험하다 여기고, 바깥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지만, 또한 자유롭기도 하다. 그래서 디스토피아에는 영웅이 있다. 바깥으로 나가는 거주민이다. - P416

이창래의 디스토피아 안내서는, 문예창작 교수라면 예상하다시피 예측 가능한 주제들의 독창적인 변주로 가득하고, 디스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처럼 보이기는 할 정도로 복잡하고 교묘한 관점에서 쓰였다. 소설은 전형적인 안밖 패턴을 따라간다.
‘당국‘이라고 불리는 모호한 단체가 두 종류의 정착지를 유지한다.
인구밀도 높고 부지런한 노동계급 정착지들은 ‘차터‘라는 상류층정착지에 필요한 물건들을 생산하고, 차터 사람들은 경쟁적으로사치하며 풍요롭게 살아간다. 이 (어느 정도) 보호받는 구역들 바깥은 자치주라고 불리는 무질서한 황야다. 서술자 겸 안내자는 차터를 위해 식량을 키우는 아시아계 노동자들의 거주지 B-모어 (볼티모어)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말하는 1인칭 복수의 목소리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이 "우리"의 목소리는 또한 바깥에 나가는 영웅의 여정과 감정을 알고 이야기할 수 있다. - P416

상상 문학에서는 이토록 기본적이고 합리적인 질문들을무시하는 것이 문학적인 자유로 양해를 받거나, 심지어 정당화되는 일이 많다. 저자는 문학 작가로 알려져 있으니, 아마 자기가 가진 그런 자유를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과학소설은 그런 무책임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강력한 정치 통제 하의 미래 사회를 그리는 소설은 사회과학소설이다. 코맥 매카시와다른 작가들이 그랬듯, 이창래는 진지한 장르의 핵심 요소들을 무책임하게, 피상적으로 이용한다. 그 결과로 이창래의 상상 세계에는 현실감이 거의 없다. 체제 전체가 너무 자기모순이 심해서 경고나 풍자로도 알맞지 않다. 설령 책 끝에 가서는 서술자가 그 비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해도 그렇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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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타임머신』에서 음침한 몰록과 무기력한 엘로이라는 인류분화가 일부러 사회 계급 체계를 인간 유전자에 짜 넣은 것이라면, 그 역효과는 무시무시하다. 귀족들은 노동 계급의 고기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모로 박사의 섬』에 나오는 사고 실험의 결과도 나을 게 없다. 유전 법칙을 잘 모르던 시절 소설의 무대 속에서, 강박에 사로잡힌 과학자가 벌인 진화 조작은 오직 괴물들만 낳는 끔찍한 실패이다.
「달의 첫 방문자』에서는 실험 조건이 다르고 결과도 모호하다. 다양한 쓰임과 장점으로 스스로를 선택하고 개량하는 존재는인간이 아니라 외계인, 월인들이다. 월인(Selenites)들이 이성적이고실용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적 곤충들은 오랜 시간의 무작위 선택에 의해 맡은 일에 완벽하게 맞도록 만들어졌기에, 월인들은 유전자 통제와 태아나 유아 조작을 통해 신중하게 자신들을 개량하여, 가난도 폭력도 없는 효율적이고 평화로우며 조화로운 사 - P304

회를 만들었다. 그들의 고도로 전문화한 개별 신체가 인간의 눈에기괴하고 무서워 보인다는 점은 그들의 도덕성이 아니라 우리의편견을 비춘다. 미학적으로는 우리에게 소름 끼치는 존재지만, 윤리적으로는 아마도 우리보다 우월하지 않을까?
웰스는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판단을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특히 부족한 서술자 두 명에게 맡김으로써, 결국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
주요 서술자인 베드퍼드는 무엇에든 준비되어 있지만 아무짝에도 쓸모는 없는 부패하고 자아도취 심한 무능력자다. 잔인한면이 터져 나올 때면 역겹지만, 너무나 무능하지만 스스로의 무능함을 알지조차 못한다는 점에서 그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코믹 히어로로 받아들일 만하다. 홀로 귀환하는 여행에서 그는 한순간 우주적인 이해와 날카로운 자기 인식을 경험하지만ㅡ"머저리…………수많은 머저리들의 자손의 자손...….." - 하지만 그 순간은 곧 날아간다. 지구에 돌아온 베드퍼드는 다시 원래 모습 그대로다. - P305

소설 속에서처럼 삶에서도 웰스의 충동은 언제나 스스로의 해방이었던 것 같지만, 그는 부정하거나 배신하지 않으려고 힘들게 노력했다. 이렇게 정착하지 못하는, 혹은 정착을 거부하는 성향은 아마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동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시대의 끝이자 다른 시대의 시작에살고 있다고 보았고, 그럴 만도 했다. 웰스의 소설들은 자신이 "두시대 사이"에 존재한다고 느끼고, 이쪽저쪽으로 당겨지며 어느 쪽에도 편히 머물지 못하는 남자의 강렬한 시간적 고통을 보여 준다.
두 개의 시대에 살고, 두 시대 사이를 오가며 산다는 아이디어는웰스의 긴 경력 내내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주제다.
그리고 여기, 그의 첫 장편에 그 정수가 담겨 있다.
내가 일곱 개의 과학 로맨스 seven Scientific Romances』라는 뚱뚱한 진녹색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몇 살이었는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통틀어 타임머신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얀스핑크스 아래 철쭉 사이에 펼쳐진 잔디밭은 내가 성장한 집의 정원처럼 친숙하다. 그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자신감 있는(모방자들이생각한 "빅토리아 산문과 너무나 다른) 운율은 아직도 본보기가 된다. - P313

멜로드라마 같은 폭력이 펼쳐지는 한두 단락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모두 가볍고 빠르고 확실한 필치로 쓰인다. 여행자가 집에 가져온 물건의 전부인 "아주 커다란 하얀 당아욱을 닮은 듯도한 두 송이 꽃이라든가, 타임머신이 실험실에 다시 놓였을 때 정확히 어디에 있었으며 왜 딱 그곳이었는지 설명하는 문장처럼 우아하고 능숙한 부분이 많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이야말로 SF적인 상상의 가장 순수한 정수이다. 흠잡을 데 없이 단단하다.
정원 전체가 상상의 산물이지만, 그 속의 두꺼비들은 진짜다.
타임머신은 잘 지은 제목이었다. 지금까지 낡아 가는 징후도 없이 3세기를 보았다. 상아와 니켈로 만든 막대며 석영 막대기도 온전하고 놋쇠 난간 구부러지지 않았으며, 그 언어와 통찰은 107년 전에 출발했을 때와 똑같이 새롭다. 이것이 몇 번이고 몇번이고 거듭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 기계를 처음 타려는 독자들 모두를 질투했을 것이다. - P316

그는 사회주의자가 되어 잠시 페이비언 협회에도 들어갔으나, 그곳은 웰스에게 충분히 활동적이지 않았다. 그는 유토피아미래주의자이자 (어느 정도는 페미니스트였고, 사회와 불평등과 자본주의 상업주의의 비평가요, 당선되지 못한 노동당 후보였고, 대격변과 사회개조 양쪽에 대해 지치지 않는 선지자였다. 『막다른골목에 다다른 정신Mind at the End of Its Tether』을 쓰던 70대 후반, 모든다툼과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고 대공세 내내 런던에서 폭격을 겪고 나서도 그는 아직도 인류를 위해 희망을 찾고 있었지만, 그 희망을 새로운 인류, 개선하고 변화시킨 새로운 인간 종이라는 아이디어에서밖에 찾지 못했다. "적응하느냐 소멸하느냐는 자연에 주어진 불변의 과제입니다." - P319

대단히 뛰어난 스승 밑에서 생물학자로 훈련받은 웰스는다윈의 역동적인 생물관을 받아들이는 데 흔들린 적이 없었다. 생명을 사회적 다원주의자처럼 우세를 점하기 위한 투쟁으로 보지않았고, 기독교인 다윈주의자처럼 인간으로 올라가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보지도 않고 오직 진화로 이해했다. 멈추지 않는, 필요한 변화로 변하지 않고 머물면 죽는다. 적응하면 계속 살아간다.
유연하게 적응할수록 더 멀리 간다. 포용력이 전부다. 변화는 어리석고 잔인할 수도 있고, 지적이고 건설적일 수도 있다. 도덕성은 오직 생각하고 선택하는 정신이 있을 때만 체제에 들어간다. 웰스는어둡고도 밝은 미래 양쪽을 상상했는데, 그의 신념이 양쪽 다 약속하지 않으면서 양쪽 다 허용했기 때문이고 그의 80년 인생이 어마 - P319

살아생전에, 그리고 작가 자신의 눈에 웰스의 중요 저작은리얼리즘 소설들이었다. 「앤 베로니카Ann Veronica』와 『토노-번게이같이 개념 중심적이고, 사회 계층과 압박을 잘 관찰하며, 시사적이고 도발적이고 자주 풍자적인 데다가 때로는 열렬히 분개한 작품들은 버나드 쇼‘의 희곡에 비견할 만하다. 버나드 쇼는 그렇게 진부하지 않지만 말이다. 웰스는 별나고 때로는 서툰 소설가였으며,
그의 소설 대부분은 재미있고 번득이는 데가 있긴 해도 시대에 뒤떨어졌다. 스스로의 기대를 넘어서고, 우월 의식에 사로잡힌 모든평론가들의 저항을 넘어서서 남은 것은 그의 "과학 로맨스"들이었다. 판타지와 SF 소설들이었다. - P320

『타임머신』, 『달의 첫 방문자』, 『우주전쟁』, 『투명인간』, 모로 박사의 섬』…… 오늘날 우리에게 H. G. 웰스라는 이름은 이런 의미이고, 마땅히 그럴 만하다. 이 짧은 장편이나 중편 소설들은 장르 전체를 확립했다. 몇 세대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리고영화 제작자, 그래픽 아티스트, 만화 애호가, TV 사이파이 팬, 팝 컬처 열광자, 포스트모던 전문가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이미지와 표상, 원형을 남겼다.
웰스는 과학소설이 과학소설이라는 이름을 갖기 오래전에과학소설을 썼다. 그는 그것을 "과학 로맨스"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가능성의 판타지"라고 불렀는데, 지금 정착한 이름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웰스의 독창성과 창의력은 놀라웠다. 어떤 SF를 보든 웰스에게서 그 최초의 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F와 판타지를 구별하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아직 아무도 그 둘을 구별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수십년간 그랬기 때문이다.  - P321

"나는 단편소설의 어떤 변함 없는 확고한 형식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웰스가 그렇게 한 것은 확실히 옳았다. 그러나 단편에대한 그의 오만하기까지 한 설명, "이 간결하고 유쾌한 글쓰기 방식"
은 좀 더 못한 작품들에는 잘 맞는 말일지 모르나 헨리 제임스나키플링, 심지어는 본인의 최고 작품들은 포함시키지 못한다.
물론 그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1939년, 아마도 그의 가장 뛰어난 단편일 눈먼 자들의 나라 수정을 논하면서 웰스는 아이디어 중심에 비밀 장치, 교묘한 결말로 이루어진, 그러니까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써 보인 수많은 사례와 같은 작품들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다고 썼다. "웅웅거리는 발전기, 퍼덕이는 박쥐, 세균학자의 실험관, 뭐든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손을 대어……… 그 장치를 둘러싼 인간의 반응을 살짝 첨가하고 오븐에 집어넣으면, 짜잔." 그는 언제까지라도 그럴 수 있었지만 "단편도 매력적이고 만족스러우며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느낌, - P323

그는 17세에 도제 생활을 그만두었을 때 천을 잘라 파는 일도 그만두었다. 단어를 길이당으로 판매하는 작업이 그를 작가로만들었으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형식 자체를 못 견디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1890년대에 단편소설이 꽃을 피우고 그 후에 시시해졌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편이라는 형식은 20세기 내내 발전하고 번창했다. 나는 혹시 웰스가 단편을 쓰지않게 된 것이 편집자들이 뛰어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비평가들이 갈수록 소설을 사회적 심리적 리얼리즘에 구속하고, 그렇지 않은 작품은 다 문학 이하의 오락으로 치부하던 경향탓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이 아무리 좋다 해도 주제가 환상적이거나 소재가 과학이나 역사나 다른 지적 훈련에 쏠려 있으면 "장르소설" 분류로 일축당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상상 영역을 다루는 작가들은 모두 겪는 위험이다. 문학적인 존경을 갈망하는 작가들은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쓴 SF가 SF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어한다. 적어도 웰스는 상상의 총을 지켜냈다.
그러나 그 총을 쏘는 일은 그만두었다.
그런 한편, 타임머신』은 이제 1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절 - P324

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웰스의 단편소설 중에서 진정 영원히 읽힐 문학에 다가간 작품은 몇 편뿐이지만, 최고작들은 생생하게 살아있고, 놀랍도록 적절하며, 때로는 불안할 정도로 선견지명을 발휘하여 악몽처럼 달라붙거나 기억할 수 없는 꿈처럼 빛을 발한다.
나는 존 해먼드의 귀하고 거대한 『H. G. 웰스의 단편소설전집에 수록된 여든네 작품 중에서 스물여섯 편을 골랐다. 물론여기에서는 별 쓸모도 의미도 없는 리얼리즘 기준에서의 탁월함이 아니라 포괄적인 탁월함을 기준으로 선택했다. 이야기가 지적인 긴박감이나 도덕적인 열정, 특별한 미덕이나 기이함이나 아름다움 면에서 그 자체로 두드러지는가? 이야기가 같은 종류 중에서뛰어나며, 그 종류는 흥미로운가? 유익하고 중요하며, 다른 작가들의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가? 나는 오직 "위대함"만을 소중히 여기고 "위대한 예술은 흉내낼 수 없이 유일무이한 막다른 길로 정의하는 독자가 아니다. 나는 예술을 공간과 시간 양쪽에서 다 공동체 산업으로 보며, 홀로 뛰어난 불모의 작품보다는 더 많은 예술로이어지는 예술이 더 가치 있다 믿는다. - P325

그 이야기들을 다 합쳐서 한 세트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웰스는 포착하기 힘든 작가다. 확실히 책 전체에 걸쳐 웰스의 독특한스타일이 보이기는 한다. 많은 단편이 저널리스트 분위기로 쓰여, 쉽고 경쾌하며 극도로 자신감이 있지만 가식은 없고 명료하고 휙휙 나아간다. 하나같이 아주 단순하고 꾸밈없어 보이는데, 정확히저자가 원한 대로다. 웰스는 고도로 심미적인 태도를 불신했다.(헨리 제임스와 웰스의 우정에 따라붙는 매력적인 주석은, 두 작가 모두 서로의작품을 다시 쓰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주의 깊은 작가이자 지칠 줄 모르고 다시 쓰는 작가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자각했고 자신의 기술에 예민하고 능숙했다. 웰스의 글투를 바꾼다는 건 음악에서 조성을 바꿔 버리는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326

여기 수록한 조각글 중 많은 수는 원래 발표했을 때와 세세한 차이가 있다. 이 책에 실을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편집했기 때문이다. 많이 바꾼 글은(주로 업데이트하느라 그랬다.) 실비아 타운센드 워너의 「도싯 이야기 Dorset Stories 』 서평 딱 한 편이다.
이 서평들은 연대순으로 정리할지, 알파벳 순으로 정리할지망설이다가 독자들이 찾고 싶은 작가를 쉽게 찾을 수 있게 알파벳순에 만족했다. 대부분 서평의 원래 발표 버전은 내 웹사이트에서찾을 수 있으며, 처음 발표한 지면 목록은 뒤에 실어 둔다.
나는 서평을 좋아하고, 서평을 계속 하기 위해서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많은 책을 읽어 보아야 했다. 폐부를 쥐어짜는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라고 선언하는 광고문들의 구름을몰고 도착한 책을 미리 읽어 봤더니 완전히 실패였을 경우는 슬프다. 하지만 대개는 내가 이미 흥미를 품고 있는 저자의 책이나, 별기대 없이 잡았다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는 행운을 누렸다. - P330

여기 수록한 서평 대부분은 《맨체스터 가디언>에 실렸는데,
그곳 편집자들에게는 훌륭한 책을 서평할 기회를 많이 주셨다는점에서도, 놀랄 만큼 유연하고 지적인 편집에 대해서도, 1만30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마울 따름이다. 뉴욕과미국 동부 해안 문학계는 언제나 내가 그 문학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뻐했을 정도로 외부에 관심이 없고 편협하다. 하지만런던에 살 때 나는 진지한 영국 문학 파벌들, 악랄한 경쟁, 허용되는 만행의 정도에 상당히 겁먹었다. 그런 심술도 이제는 어느 정도누그러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가디언》에 영국책 서평을 쓸 때마다 내가 오리건에 산다는 게 기뻤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늘 그렇기는 하다. 캘리포니아에 대한향수를 느낄 때만 빼고 언제나. - P331

단편 하나는 극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붕 떠 있다. 우리는 두 번째 단편을 시작으로 넬을 따라가며 여동생과 부모와 함께였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반(半)결혼의 우여곡절과(티그가 정말로그 끔찍한 아내와 이혼하고 넬과 결혼하긴 할까?) 아마추어 농사일과 늦은 부모됨의 시련을 거쳐 마지막에는 죽음의 문턱에 이른 부모의중년 딸이 되기까지 지켜본다. 하지만 첫 번째 단편은 연대상 마지막에 해당한다. 그것은 노년이 되어, 스스로 죽음의 문턱에 이른 부모가 된 빌과 티그의 초상이다. 왜 이런 역배치가 그토록 성공적인지 모르겠다. 첫 단편 「나쁜 소식」이 재치와 에너지, 애트우드 특유의 공포와 고통에 대한 가슴 아리도록 날카로운 감각이 전기처럼흐르는 눈부신 1번 타자라서일까. 이 단편에서 애트우드는 이보다더 날카롭고, 건조하고, 웃기면서 슬플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단편을 마지막에 놓지 않은 데에는 지혜로운 구석이 있는데, 마지막 단편의 두 사람은 곧 죽을 테고, 이 두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 P336

인류에게 그나마 좋은 얼마 안 되는 것들, 애정과 의리와 인내심과 용기가 우리의 오만한 어리석음과 원숭이 급의 영리함과 미친 혐오에 갈려 먼지가 되어 버린 데 대한 애도곡.
유전 실험이 인류를 대체할 휴머노이드들을 만들었다는사실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누가 섹스를 원할 때면 파랗게 변하는,
그래서 남자들의 거대한 생식기가 늘 파란색인 사람들에게 대체당하고 싶어 할까? (그리고 누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가 SF가 아니라고믿고 싶어 할까??)책의 마지막 몇 문장은 뜻밖이었다. 언뜻 피할 수 없어 보였던 무자비한 결말이나 죽어 가는 내리막도 아니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해결법도 아니라니, 놀라움이자 수수께끼였다. 횃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 없는 홍수의 해에는 오직 정원사들만이 노래를 했다. 정원사는 다 죽은 게 아닌가?
어쩌면 이번에도 내가 단서를 놓쳤을지 모른다. 여러분이 이 비범한 소설을 읽고 직접 판단해야 마땅하다. - P345

지난 세기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진지한 시인들은 오직 시만 쓰지, 소설은 쓰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런 순수주의자들에게 괴테는 무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모더니즘 소설 비평가들은 상상 문학을 쓰면 진지한 소설가로서 자격이 없어진다고 선언했다. 현실주의자들에게 메리 셸리는 무의미했다. 교수와 문학상 수여자들은순수주의를 더 좋아했기에, 타고난 재능 탓에 국경을 서성인 이단아 작가들은 계속 가시철조망에 부딪치고 말았다.
젊은 마거릿 애트우드는 그 울타리를 쉽게 뛰어넘어, 일찌감치 시와 소설은 물론이고 문학 비평에서도 캐나다 총독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오웰의 1984처럼 - P346

뛰어난 근미래 사회풍자 경고 SF의 본보기인 「시녀 이야기』로 높은 울타리와 맞섰다. 헉슬리와 오웰은 아무 문제 없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는 문학 영역에서 미래가 추방당해 있었다. 문학상을바라보는 출판인은 누구나 SF라는 딱지를 두려워했다. 회피의 귀재인 애트우드는 그 딱지를 피했고, 그때도 그 후로도 약간의 대가를 치렀지만 유연하고 적응력 높고 매우 지적이며 대단히 고집스러운 재능 탓에 계속 기존의 리얼리즘으로부터 멀리 배회했다. 최근에는 애트우드도 장르를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었으니,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보는 일은 변함없이 흥미롭다. - P347

포위전 이후, 폭력과 인종차별자들의 공격이 수그러들고,
텔레비전도 가족 정보와 독서클럽 토론으로 되돌아가자 피어슨은우리에게 말한다. "일단 사람들이 소설에 대해 열렬히 말하기 시작하자 자유에 대한 희망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한 페이지를 넘겨,
책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분별 있는 이들이 깨어나 연대하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면 더욱 강력한 공화국이 문을 열고 낙원으로손짓해 부르는 회전문을 돌릴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라거나 분별공화국 같은 말들은 의미가 손상된 나머지 무의미해진다. 이 서술자에게는 아무것도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고, 아무것도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하지만 정보 조작의 달인에게 이야기를 시켰을 때 문제는 독자가 그에게 그 자신이 던졌던 질문을 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어때서요?" - P355

침대에 누워서 크리스 앤드루스가 멋지게 새로 번역한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팽 선생」을 읽던 나는 갑작스러운 불안감과 더불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한 엄청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연민의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어쩌면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계속 깜박거리는 독서등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주 오래된 영화 속 길거리 장면의 회색빛과 구름 낀 12월의 화요일에 내리쬐는 평범한 빛 사이를 오묘하게 오가는 햇빛 자체가 문제였을까? 더 심란한 건, 구체적인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건만, 이전에 이 책은 아니라도 이 책과 무척 비슷한 책을 여러 곳에서 여러 번 읽었다는 기분, 그런데 그 어느 것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 P356

혹자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도 하는세자르 바예호는 활동적인 공산주의자로, 조국 페루의 정부에서박해를 받아 인생 후반을 망명지에서 살았고, 1938년에 진단 미상의 병으로 파리에서 죽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구하려고 "대체요법" 의사들을 불러들였다.
이제는 보르헤스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후계자로 불릴 때가 많은 로베르토 볼라뇨는 독재자 피노체트가 권력을 잡자 조국칠레를 떠났고, 여생의 대부분을 망명지에서 보냈다. 『팽 선생쓴 것은 1983년, 서른 살 때였다. 그는 2003년에 죽었다.
사실이라는 씨앗에서 상상의 거대한 덩굴이 자라나 한데얽히고 감기며 그림자를 드리우니, 그 덩굴이 맺는 열매는 때로는달고 때로는 쓰도다. - P359

ㄹㄹㄹㄹㅁ이 책에는 안식도, 평화도 없다.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아침햇살 속에서 먹는 아침식사마다, 채널 아일랜드의 아름답고 호젓한 해안과 산비탈을 찾는 순간마다 곧 닥칠 재난의 위협에 대한 예감에 내리눌리고 부질없어진다. 어떤 행복이든 의미 있기에는 너무 짧은 환상이다. 그 에너지와 긴박감에도, 그 역사적인 정확성과범위에도, 그 뛰어난 사건 쓰기와 동시대의 말과 생활에 대한 흠 없는 재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심장이 식을 만큼 황량하다. 그점에서는 우리가 우리 세상에 한 짓을 바라보고 책임질 방법을 찾는 대부분 사람들의 기분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난파로 시작해서 어둠 속의 방울뱀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희망할 여지를 많이남겨 두지 않는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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