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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옥중 19년
서승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눈 멀은 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박정희를 이야기하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같은 의견을 내세웠다. 아버지는 초가집에서 스레트, 양옥집으로 옮기면서 보릿고개에서 쌀밥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셨던 것이다. 즉 아버지에게 박정희는 현실의 굶주림을 이겨내게 한 정치적 지도자인 셈이다. 나 역시 티비로 보여지는 혹은 어께너머로 들은 박정희에 대해 아무런 비판 없이 존경했다. 그는 내게 경제발전의 핵심 주체이자 영웅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상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보곤했다.
친구와 박정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아직도 박정희에 대해 높이 평가를 한다. 나는 그에게 묻는다. '사법부 암흑의 날'을? 즉 나와 친구는 일차 정보를 티비 등 공공방송과 교과서를 통해서 얻는다. 여기에는 국가의 헤게모니는 숨겨져 있다. 즉 친일파에서 이어지는 그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정치인들은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 의한 장점만 내세우고 단점은 침묵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탄고토가 되어버린 진리는 힘의 논리와 합쳐져, 약한 자, 현실에서 억압받는 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게 울리곤 했다. 간혹 전태일이라는 이를 영웅으로 만드는 운동도 있었지만 이 역시 운동권에서 만들어 낸 신화이다. 그들은 박정희의 억압에 대한 비판적 도구로서 '전태일'이라는 노동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일제 시대에 유관순이 되살아 난 듯, 전태일은 영웅이 되어 70~80년대 살아남는다. 하지만 사회가 외면해 버린 곳에, 힘겹게 목숨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이다.
서승은 '재일교포학생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1971년에 구속되어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나는 아직도 생소한 '재일교포학생한원침투간첩단사건'을 읽어간다.
감옥에서 고문을 이겨내지못한 서승은 죽음을 결심하고, 기름을 머리에 두르고 온몸을 불사른다. 하지만 죽음은 고통을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어, 끝내 고함을 지르고 만다.
"팔을 감싸고 있던 얇은 스웨터가 타들어가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다. 경비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지만, 기세가 붙은 불길이 어깨에서 얼굴로 옮겨오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 "으~윽~으악~"하는 비명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와버렸다. 그러고는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으려고 했는데 본능적으로 불을 끄려고 햇다. 죽어야 한다는 의지와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 사이에서 갈등하며 데굴데굴 굴렀다"(39쪽)
현실의 고통은 죽음마저도 잊게할 정도로 고통이였다. 하지만 이 고통은 살아 남은 자에 대한 첫 인사이며, 나중에 찾아올 고통에 비하면 호수에 물 한방울뿐이다.
감옥의 자리
감옥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감옥이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민주적 가치를 평가가능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서양의 성인 말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감옥은 또한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높은 자리를 매김하는 곳이다.
감옥을 단순히 격리하는 곳이 아닌, 갱생을 위한 곳이나 물리적 정신적 탄압공간이냐가 왜 중요한가는 사회의 역할과 헤게모니를 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감옥을 갱생을 위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처우가 제공되는 장소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한 반성의 공간이다. 또한 가장 낮은 곳에 까지 이루어지는 인권이 그 보다 좀 더 낳은 빈민이나 서민들에게 손을 뻗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이 합법적으로 미치는 곳이 되면, 인간 존엄성이 사라지고-단결심과 협동심을 파괴하여 합쳐진 힘이 국가에 대응하는 것을 차단한다. 또한 개개인에 대한 인간 존엄성의 사라짐은 사회적 인간에 인간 존엄성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구속되며 인간 존엄성이 파괴될 수 있다. 다만 지금 그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거리'에 있을 뿐이다.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국가의 폭력으로 감옥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서승의 간첩단 사건 역시, 단순히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헤게모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숱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비정상적인 국가의 이념으로 나라를 통치하려니 올바른 소리를 감옥에 가두고, 눈멀고 귀멀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보고 듣어온 고등학교 때 까지의 이야기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 가두어 두고, 한쪽만 보게 한 것이다. 나는 그 빛이 내 살길인냥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굴을 나왔을 때, 지난 시절의 어둠이 보이며 그 길이 얼마나 모순이였는가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옥중 19년』은 한 개인이 국가와 싸운 싸운 기록이며, 숨겨져 있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기록이며, 온갖 부정이 벌어지는 감옥에 대한 기록이며, 무엇보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는 책이다.
박정희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 사회안전법이라는 것으로 출소에 앞둔 사람들을 다시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사상전향제도라는 사상초유의 인권침해를 일으킨다.
"사상전향제도는 국시인 반공이데올로기의 마지막 보루이기에 정부는 온갖 부조리와 비난을 무릅쓰고 이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단 한 장의 종이가 국가와 이데올로기라는 방대한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161쪽)"
사람들은 묻는다. 종이 쪽지에 도장 찍고 나오면 되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냐고? 이 말은 애처로운 동정심에 나왔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지켜온 사상에 대한 고뇌를 묻지 않고 있다. 왜 그가 그토록 싸워온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없는 것이다. 또한 국가적인 힘이 개인의 자유를 왜 억압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없다.
"내면 정신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이며, 인간이 독립된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시대에는 충분하지 않았다."(161쪽)
지은이는 감옥에 들어와 도장을 찍고 나가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논리앞에 위처럼 말한다. 한 인간의 내면적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없이는, 비전향 장기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국가 권력에 중심부에 있는 사람일 수록 조삼모사가 심해지니, 과연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싹트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중요하다. 내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게 되면 전제주의와 군국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개인적 인권이나 자유가 없다. 하지만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하면 민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개인적 권력욕을 숨기고 지금은 분배 대신에 성장할 때라 한다. 하지만 이 말이 1970년대 부터 국가의 가훈이라고 아는 이는 드물다.-["지금은 부를 분배할 때가 아니라 축적할 때"(63쪽) 『침묵의 뿌리』]
국가는 비전향장기수의 자유와 인권 대신에 빨갱이라 몰아붙이고, 언론은 그들의 사유를 묻지 않고,
"이어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거기서 많은 기자들이 내 얼굴의 화상에 선정주의적인 흥미를 보이고 냉전적 흑백론에 의한 단죄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분단의 틈새에서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정치범과 민중들의 절규, 분단된 민족의 부조리한 운명과 비인간적인 상황이란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관심이 적은 것을 느끼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267쪽)
티비에서 386이 민주주의의 주체인냥 떠벌리며, 그들을 영웅시 하거나 흥미 위주로 방송을 탄 적이 있다. 하지만 한 사회 일부 계층이 민주주의를 받친 냥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국가권력과 개인 존엄성과 싸워온 이들을 외면한 이야기는 뼈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단순히 이 책이 개인적 싸움을 떠나서, 국가권력과 인간 존엄성 사이에 놓인 성찰과 고통으로 읽히는 것은....
비전향장기수들은 스스로의 목숨과 맞바꾸며 국가권력과 싸웠다. 그리고 반백년에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어떠한 권력도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지향한 국가는 '힘에 의한 개인적 탄압'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존엄성의 파괴를 알지 못하고, 티비에서 보여지는 한강의 기적만 읽는다면 나는 영원히 그를 영웅으로 숭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