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가는 마음
신영훈 지음 / 책만드는집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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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레 눈에 읽은 것이 절(山寺)이다. 국립공원이라면 적어도 한 개의 절들이 탁 버티고 서서는 문화재관람료라며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 산에 오르는데, 절에서 돈내라고 한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 시주승들이 개나리봇짐을 메고 고샅을 돌며 시주를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국립공원 입장료보다 더 비싼 돈을 강제로 달라고 한다. 더구나 어린아이의 코흘리게 돈 마저 앗아가는 풍경이라니... 그리고 절터까지 잘 닦여진 도로는 처마밑 풍경의 자리를 참 무색하게 한다. 언제가 풍경도 자리를 비켜줄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나와 대면한 절에 대한 인상은 가히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항상 산에 가면 절은 나와 다시 대면케 하니, 이제는 애써 피하기 보다 그와 마주하기로 했다. 처마밑에 들려오는 바람의 풍경 소리도 흘려 듣지 않기로 했다. 돌탑도 그냥 넘기지 않고, 세월을 읽어내려 한다.

지은이는 차근히 절을 찾아 나선다. 그를 처음 만난건 절의 소유지를 나타내는 석표이다. 석표(장승, 승선교)를 지나면 일주문(부도, 철주)- 금강문 -사천왕문 -탑, 석등에 이르게 된다.

장승은 남도의 인물이 좋고, 일주문은 부산 범어사의 눌림이 기예가 있으면 금강문은 단연코 석불사이다. 지은이는 글을 잡다한 지식으로 나열하며, 길게 풀어간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식은 조리를 갖지 못한다. 또한 절에 대한 예찬은 '혼자서 신나' 더하고 물러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객관적 중립을 잃어버린 글은 깊이가 없으며, 수필이라 할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절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라든가 풍경 혹은 아름다움을 조리있게 풀어낼 수가 없으니, 단순한 지식의 나열과 더불어 개인적인 글쓰기가 휘장을 두른다. 또한 김정한의 『사하촌』에 묘사되었듯이 서민들의 삶도 없다. 분명 지은이는 절 소유지의 경계 석표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누린 부와 그에 따린 백성들의 궁핍을 외면하고 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로 이 부분을 덮고 있다.

덜하고 더하고를 자유롭게 부릴 수 없는 만용의 글은 읽기에 적잖게 부담스럽다. 절을 쫓는 사람이 '비움'이 아닌 '담기'에만 연연하지 않나라는 풍경 소리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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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도감 - 언제.어디서.누구나
오쿠나리 다쓰 글, 나가타 하루미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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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아니 ‘찾아서 보는 편이 아니다’라는게  맞다. 혼자인 밤에 누구라도 떠들지 않으면 긴긴 겨울을 날 수가 없어, 켜 놓고 내 일을 하곤 한다. 하지만 목요일 11식 되면,  마법에 걸린 왕자인냥 어디에 있든 집으로 가려고 내 몸은 안절부절이다.


목요일 11시.

초등학교 유년시절의 친구가 그렇게 그립고 반가운 친구인지 몰랐다. 혹시 다 연습하고 하는게 아닐까? 연예인들은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모습이 거짓이든 참이든 마냥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르고 고르고, 긴가민가 하면서 어색하게 손을 내밀 때, '반갑다 친구야'라며 일어서는 순간, 손을 먼저 내민 친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래 너 맞지?' 시간을 뛰어넘은 친구와 친구만이 서 있다. 그네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악의(惡意)가 없으며, 짙은 향수(鄕愁)에 젖어 있다. 나는 그네들의 짖굿은 장난마저도 다 이해하며, 내 추억의 일기장과 틀리지 않다며 읽어간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네들과 함께 유년시절의 일기장도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뭐해먹고 살 것인가 혹은 책 등과 씨름하다(?) 목요일 저녁, 한 시간은 시간을 지워버린다. 그리고는 유년시절의 나로 잠시나마 여행을 떠난다.


『놀이도감』 이 책 역시, 그리움의 저 밑에 둔 친구들을 불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릴 적 우리집은 동네 마당이였다. 항상 친구들은 여섯 평 남짓한 우리집을 사랑방 마냥 들락날락거렸고, 언제나 엄마는 '나가서 놀아라'라 했다. 그러고는 ‘큰 집을 지은 다음에 친구들을 마음껏 데리고 온나’ 하셨다. 나와 친구들은 집이 작아도 구애받지 않고 대문을 넘나 들었다. 여름이면 마루에 앉아 딱지 따먹기, 겨울이면 집 모퉁이에 높이선 전봇대를 기둥삼아 (다)망구며 진돌, 술래잡기 등을 하곤했다.


책을 펼치면, 어느 것 하나 낯설은 것이 없다.

화초놀이에서 보여지는 꽃(동백)목걸이는 5월에 ‘감꽃’으로 만들어 놀았으며, 피리는 보리나 물이 오른 ‘버들강아지 가지’로 만들어 놀곤했다. 논에 ‘보리깜부기‘가 있으면 옷이며 가방은 검게 물들기 십상이다. ’등나무잎‘은 가위바위보로 누가누가 빨리 떼어내나, ‘’는 침을 묻혀 개구리를 잡아 올리곤 했다. ‘민들레씨’는 축구공인냥 발길질이나 '호~'하며 입바람결에 날리곤 한다.


영웅심으로 모든 이가 다 죽고 나면, 맨 나중에 의기양양 '나 여기있다'며, '깻등'하며 죽은 이를 살려낸 일, 친구들이 한 줄에 잡혀 있을 때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힘차게 '망구야~'하며 달아나는 놀이. 난 항상 영웅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꼭꼭 숨어서 나중에 나가곤 했다. 오리길을 걸어가면 지루하기에 가방 들어주기는 심심풀이 땅콩이며, 무슨 색하며 뛰다보면 어느새 집에 와 있다. 손수건 돌리기와 보물찾기는 소풍의 최대 놀이이며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기마전은 운동회에 빠지지 않는 놀이라면 말타기는 사시사철 만만한 놀이이다. 고무줄 놀이는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하고, 고무줄 끊기 놀이는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놀이로 나뉘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 겨울이 찾아왔다. 날씨가 추워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추위는 예전만 못하다. 왜냐하면 동네 커다란 못(저수지)이 몇 해째 얼지를 않게 때문이다. 여섯평 남짓한 방에서 잠을 자면 고니 울음소리와 얼음이 우는 소리를 듣을 수가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못에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면서, 얼음의 울음소리도 듣을 수가 없었다. 얼음이 울지 않기에 어린아이들은 스케이트(썰매)를 만들지도 않는다. 겨울방학이 되면 맨 먼저 하는 것이 스케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해 마다 한 개 씩 만든다. 한번 만들면 몇 해를 쓸 수 있지만 해마다 만들며 그 설레임에 젖곤 한다.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 가지를 잘라 송곳을 만들면 완성이다. 나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는 미나리꽝이나 못에서 신나게 탄다. 못에서 탈 때에는 항상 어른들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분명 하나도 안 무서운데, 동네 어른들은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빠지면 못 올라오기에 위험하다'고 ‘어서 나온나’고 호통이시다. 스케이트가 재미 없지거나 날씨가 조금 따뜻하면 말패나 깡통차기, 다망구를 한다. 남자여서인지 말패는 쉽게 이길 수가 없지만 다망구는 자신있다. 달리기는 조금 떨어져도 고양이 마냥 이 집 저 집 담장을 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연날리기 또한 겨울철에 빼놓을 수 없는 놀이다. 지난 여름 고추 때문에 잘라 놓은 대나무를 얇게 썰어 연살을 만든 다음, 신문지나 문종이에 붙이면 멋진 가오리연이 된다. 얼레가 없어도 실을 한 아름 뭉쳐서 나오면 된다. 못둑에서 날린 연은 저 멀리 산 밑 까지 날아갔을 것이며, 그것은 그 누가 날린 연보다 멀리 갔기에 겨우내내 전설이 된다. 배가 고파지거나 하면 고구마를 부뚜막에 넣고, 스케이트 타다 젖은 양말을 말리곤 한다.


유년시절의 놀이는 철따라 달리했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해가 바뀌어도 같은 놀이로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다. 컴퓨터나 오락기 등이 없어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손등이 '터' 피가 나도 추운 것은 몰랐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창밖을 보면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에 몸을 떤다. 겨울 바람이 동네 고샅을 휭하니 쓸고가면, 들리는건 유년시절의 추억소리뿐. 지금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내가 결혼을 하여,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는 뭐라할까? 지난날의 놀이를 박물관에 손잡고 가서 보며 '우리는 이렇게 놀았다'라고 말하면 그 놀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조금씩 커 가는 모습과 쓸쓸함에 놓인 마당을 보며 깊은 회한에 잠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기억되지 못한다 하여도 너는 유년시절의 소중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네가 있어 내 삶은 추억많은 행복한 일기장을 채울 수가 있었다. 유년시절의 친구, 놀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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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의 현장
이경모 / 눈빛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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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구도와 감정의 일치점이라 했든가?

보여지는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눈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보여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잃어내는 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비극 또한 마찬가지이다. 드러난 비극은 쉽게 나를 흥분시킬 수가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비극은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1945년 해방과 여수순천 반란사건, 한국전쟁

과연 우리 현대사에, 나에게 이 세 사건은 무엇이였나? 지은이는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라며 사진을 보며 끊임없이 되내였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현대사에 대한 내 지식의 부족함이 우선이겠지만 사진 한 장으로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떠나지 않는다. 사진... 어쩌면 아직도 나는, 어렵다.

더 많은 자극적인 일면을 원하는 것인지, 상징적인 대통령의 악수 장면을 원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체 책을 덮는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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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옥중 19년
서승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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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눈 멀은 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박정희를 이야기하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같은 의견을 내세웠다. 아버지는 초가집에서 스레트, 양옥집으로 옮기면서 보릿고개에서 쌀밥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셨던 것이다. 즉 아버지에게 박정희는 현실의 굶주림을 이겨내게 한 정치적 지도자인 셈이다. 나 역시 티비로 보여지는 혹은 어께너머로 들은 박정희에 대해 아무런 비판 없이 존경했다. 그는 내게 경제발전의 핵심 주체이자 영웅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상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보곤했다.

친구와 박정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아직도 박정희에 대해 높이 평가를 한다. 나는 그에게 묻는다. '사법부 암흑의 날'을? 즉 나와 친구는 일차 정보를 티비 등 공공방송과 교과서를 통해서 얻는다. 여기에는 국가의 헤게모니는 숨겨져 있다. 즉 친일파에서 이어지는 그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정치인들은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 의한 장점만 내세우고 단점은 침묵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탄고토가 되어버린 진리는 힘의 논리와 합쳐져, 약한 자, 현실에서 억압받는 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게 울리곤 했다. 간혹 전태일이라는 이를 영웅으로 만드는 운동도 있었지만 이 역시 운동권에서 만들어 낸 신화이다.  그들은 박정희의 억압에 대한 비판적 도구로서 '전태일'이라는 노동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일제 시대에 유관순이 되살아 난 듯, 전태일은 영웅이 되어 70~80년대 살아남는다. 하지만 사회가 외면해 버린 곳에, 힘겹게 목숨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이다.

서승은 '재일교포학생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1971년에 구속되어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나는 아직도 생소한 '재일교포학생한원침투간첩단사건'을 읽어간다.

감옥에서 고문을 이겨내지못한 서승은 죽음을 결심하고, 기름을 머리에 두르고 온몸을 불사른다. 하지만 죽음은 고통을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어, 끝내 고함을 지르고 만다.

"팔을 감싸고 있던 얇은 스웨터가 타들어가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다. 경비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지만, 기세가 붙은 불길이 어깨에서 얼굴로 옮겨오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 "으~윽~으악~"하는 비명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와버렸다. 그러고는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었다. 죽으려고 했는데 본능적으로 불을 끄려고 햇다. 죽어야 한다는 의지와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 사이에서 갈등하며 데굴데굴 굴렀다"(39쪽)

현실의 고통은 죽음마저도 잊게할 정도로 고통이였다. 하지만 이 고통은 살아 남은 자에 대한 첫 인사이며, 나중에 찾아올 고통에 비하면 호수에 물 한방울뿐이다.

감옥의 자리


감옥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감옥이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민주적 가치를 평가가능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서양의 성인 말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감옥은 또한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높은 자리를 매김하는 곳이다.

감옥을 단순히 격리하는 곳이 아닌, 갱생을 위한 곳이나 물리적 정신적 탄압공간이냐가 왜 중요한가는 사회의 역할과 헤게모니를 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감옥을 갱생을 위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처우가 제공되는 장소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대한 반성의 공간이다. 또한 가장 낮은 곳에 까지 이루어지는 인권이 그 보다 좀 더 낳은 빈민이나 서민들에게 손을 뻗히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이 합법적으로 미치는 곳이 되면, 인간 존엄성이 사라지고-단결심과 협동심을 파괴하여 합쳐진 힘이 국가에 대응하는 것을 차단한다. 또한 개개인에 대한 인간 존엄성의 사라짐은 사회적 인간에 인간 존엄성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구속되며 인간 존엄성이 파괴될 수 있다. 다만 지금 그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거리'에 있을 뿐이다.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국가의 폭력으로 감옥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서승의 간첩단 사건 역시, 단순히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헤게모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숱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비정상적인 국가의 이념으로 나라를 통치하려니 올바른 소리를 감옥에 가두고, 눈멀고 귀멀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보고 듣어온 고등학교 때 까지의 이야기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 가두어 두고, 한쪽만 보게 한 것이다. 나는 그 빛이 내 살길인냥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굴을 나왔을 때, 지난 시절의 어둠이 보이며 그 길이 얼마나 모순이였는가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옥중 19년』은 한 개인이 국가와 싸운 싸운 기록이며, 숨겨져 있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기록이며, 온갖 부정이 벌어지는 감옥에 대한 기록이며, 무엇보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는 책이다.

박정희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 사회안전법이라는 것으로 출소에 앞둔 사람들을 다시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사상전향제도라는 사상초유의 인권침해를 일으킨다.

"사상전향제도는 국시인 반공이데올로기의 마지막 보루이기에 정부는 온갖 부조리와 비난을 무릅쓰고 이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단 한 장의 종이가 국가와 이데올로기라는 방대한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161쪽)"

사람들은 묻는다. 종이 쪽지에 도장 찍고 나오면 되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냐고? 이 말은 애처로운 동정심에 나왔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지켜온 사상에 대한 고뇌를 묻지 않고 있다. 왜 그가 그토록 싸워온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없는 것이다. 또한 국가적인 힘이 개인의 자유를 왜 억압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없다.

"내면 정신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이며, 인간이 독립된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시대에는 충분하지 않았다."(161쪽)

지은이는 감옥에 들어와 도장을 찍고 나가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논리앞에 위처럼 말한다. 한 인간의 내면적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없이는, 비전향 장기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국가 권력에 중심부에 있는 사람일 수록 조삼모사가 심해지니, 과연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싹트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중요하다. 내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게 되면 전제주의와 군국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개인적 인권이나 자유가 없다. 하지만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하면 민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개인적 권력욕을 숨기고 지금은 분배 대신에 성장할 때라 한다. 하지만 이 말이 1970년대 부터 국가의 가훈이라고 아는 이는 드물다.-["지금은 부를 분배할 때가 아니라 축적할 때"(63쪽) 『침묵의 뿌리』]

국가는 비전향장기수의 자유와 인권 대신에 빨갱이라 몰아붙이고, 언론은 그들의 사유를 묻지 않고,

"이어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거기서 많은 기자들이 내 얼굴의 화상에 선정주의적인 흥미를 보이고 냉전적 흑백론에 의한 단죄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분단의 틈새에서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정치범과 민중들의 절규, 분단된 민족의 부조리한 운명과 비인간적인 상황이란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관심이 적은 것을 느끼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267쪽)

티비에서 386이 민주주의의 주체인냥 떠벌리며, 그들을 영웅시 하거나 흥미 위주로 방송을 탄 적이 있다. 하지만 한 사회 일부 계층이 민주주의를 받친 냥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국가권력과 개인 존엄성과 싸워온 이들을 외면한 이야기는 뼈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단순히 이 책이 개인적 싸움을 떠나서, 국가권력과 인간 존엄성 사이에 놓인 성찰과 고통으로 읽히는 것은....

비전향장기수들은 스스로의 목숨과 맞바꾸며 국가권력과 싸웠다. 그리고 반백년에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어떠한 권력도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지향한 국가는 '힘에 의한 개인적 탄압'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존엄성의 파괴를 알지 못하고, 티비에서 보여지는 한강의 기적만 읽는다면 나는 영원히 그를 영웅으로 숭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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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하단과 행성 2006-02-27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변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박정희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한국사회의 비극이죠. 그가 남긴 국가주의와 반공주의의 유산이 빨리 청산되어야만 할 텐데요. 경제성장의 신화에 가려진 인권탄압과 부조리도 널리 알려져야 하고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꺼벙 2006-03-0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네요. 개인의 존엄성이 파괴된 시대임은 분명한데, 그 존엄성의 파괴를 단순히 박정희 자신의 권력욕 때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한강의 기적과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개인 인권에 대한 탄압과 별개의 문제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요?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안고 있는 문제만큼이나 나를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생각또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00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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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 본 사람만이 그 추억에 물들어, 다시 떠남을 동경하게 하는 병. 나 역시 집을 나서기 전에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서 잠을 자고, 돈은 얼마나 들까라는 짐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떠나는 연습이 아닌 낯선 곳에서 내 몸을 맞기고 돌아오니, 그곳이 그립기만 하다.

제주도, 졸업여행이라고 간 기억 밖에 없는 곳에, 홀로 찾아가서 이것저것 보고 돌아오니, 졸업여행 뒤에 찾아온 그리움은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선 제주도가 아쉽기만 하다. 지난 여름 등대섬에 갔을 때에는 몰랐다. 그냥 등대 하나 밖에 없네라는 생각만 했는데……. 일상에서 나는 등대섬만 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왜 이럴까?

나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병의 원인을 알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치유의 약은 '책'이다. 조금씩 책을 읽으면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만만치 않다. 짧은 책 속에…….

우선 지은이는 여행이야기를 말하기에 앞서, 서양 중심의 여행이야기를, 역사교과서적인 서술을 한다. 어디에 누가 여행을 했다는 편년체 구술을 책의 반을 할애한다. 또한 너무나 서양 중심의 여행이야기를 세계적인 의미로 두고 말하니, 조금은 거북스럽다.

책의 절반을 이렇게 하고 나서는……. 진짜로 여행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 때문에 떠나는가에 시작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언제 떠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나는 다시한번 상당히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서 나온 서양 중심의 침략 전쟁을 여행이라고 버젓이 포장하여 나에게 들려주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양에 한한 역사적 여행을 한 부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전세계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 침략을 여행과 동일시 하는 점(침략=발견), 피해자로서의 고통과 제 3세계의 시선은 없다는 점. 왜 교과서에서 반복된 이야기를 다시 나열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구술할 필요가 있을까?

서양 중심의 침략적 여행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그의 여행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의 스펙터클의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그 세밀함에 있는 것이다. '본다'라는 것은 그 세밀함을 주파해간다는 것이다. 마주치는 대상 하나한의 경이로움에 잠깐이나마 머물러 그 전체적인 의미를 되새겨보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될 것이다.(60쪽)"

잠시나마, 경이로움에 도취. 여행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율적인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정답으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주관적으로 지은이의 생각에 동의를 한다. 마음을 조금 늦추고, 눈높이를 낮추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머무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나이’와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판단력이 형성되고 머리 속에는 그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아이가 되어야만 보다 효과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 한다면 그 여행에서 별다른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수많은 실수와 잘못 해석한 악습 같은 것만을 흉내 내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 격이 될 뿐이다."(62쪽)

여행은 자유로움이며, 비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을 하고 있다. 즉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는 것은 아닌지. 이는 앞서 말한 여행을 '도피의 여행', '떠남 그리고 재탄생', '한 발짝 두 발짝 혹은 느리게', '조금씩 나를 비우기'라는 화두와는 등 돌아서 있는 이야기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냥 떠나야 하는 것이지, "적당한 수학적 추론 능력, 산수, 기하학, 기계학, 물리, 자연사, 화학, 기하학, 조금 더 바란다면 천문학에까지 이르는 기본 지식(62쪽)"의 축적은 짐이 될 뿐이다. 떠나고 떠나면서 하나씩 얻어도 된다. 한 번에 다 하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할 것이다.떠나고 싶으면, 그냥 떠나면 된다.

여행에 대해 조금 더 알기 위해 접근을 한 나에게 눈높이가 다른 지은이의 글은 조금 낯설어 보인다. 어쩌면 내가 여행에 대해 일단의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하지만 아무리 내 독선이 지나치다 하여도, 지은이의 시선은 서양에 대한 무비판과 동경, 여행에 대한 욕심과 심미안의 바닥을 감추기에는 힘들 듯 하다.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지만, 누구나 여행을 하면 세 번 태어난다.

한번은 어린아이로,
한번은 학생으로,
마지막으로 어른이 된다.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껌을 땅에 묻어두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흘려들어 보세요. 많은 여행을 하지 않은 나이지만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화두(話頭)는 가장 나를 오래도록 괴롭힌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내 물음과 답을 하려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이란 점을 잊지 마세요. 그러면 두서(頭序)없는 글을 늘어놓겠습니다.

1. 시인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 여행(旅行)은 사람을 들뜨게 합니다. 낯설음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 그리고 조금의 두려움. 유년시절 소풍가기 전날 밤처럼 사람들은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이때에는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때 묻지 않은 감성은 표현하는 마디마디 마다 아름다운 시구가 되고, 산수화가 되곤 합니다. 자연을 보는 눈은 산속 호숫가처럼 구름을 담을 만큼 투명합니다. 마냥 신기함 속에 자연 속으로 들어간 시인은, 내(我)가 자연(自然)인지 자연이 나인지 애써 구분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物我一體) 문명에 길들여진 이들은, 순수함 대신에 어설픈 비평(批評)으로 아이의 눈을 무심코 흩트려 놓곤 합니다.

2. 소설가
한데에서 별을 헤며, 몇 번 잠을 자고 나면 이제 자신감(自信感)이 생깁니다. 세상을 조금 아는 듯도 하고, 자연이 별것이냐며 오만함도 생깁니다. 거칠 것이 없는 파도처럼, 그들의 발걸음은 힘에 차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주인공이 되며, 사람들의 주목도 받곤 합니다. 목소리도 한껏 들떠있습니다. 이들은 시인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재창조(小說)합니다. 어디에 누가 살며, 밤새 김가 하며 졸졸 따라 다니는 이와 씨름을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빗자루였다는 둥, ‘밤길을 가면 돌을 던지는데 뒤돌아보면 없고 다시 돌아서는 순간 심장을 빼앗아 먹는다는 동물을 보았다’는 둥…….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더 묻을수록 그들은 어깨를 으슥하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어른들은 정자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며, 빙그레 웃음만 짓습니다. 이때의 여행은 학생(學生)의 눈 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조금 알아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또한 사춘기의 소년처럼 모험심이 강하고 두려움은 큰 목소리로 누르면 된다고 허세도 피웁니다.

3. 수필가
이 파도가 잠잠해지는 시기에 이르면, 세상의 어떠한 흔들림에도 균형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나를 봅니다. 깊이를 모를 넉넉함으로 가슴을 채운 이들은, 거친 파도가 물위에서 출렁이지만 그들은 마음은 평온합니다. 즉 사춘기 소년의 허세는 바람을 모는 기운의 힘이라면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말도 없습니다. 한 번, 한 번, 다시 한 번 길을 나섬에는 별다른 차이가 들어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놀라움과 사춘기 소년의 왕성한 호기심도 없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그네들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보았던 바람이며 나무이며 바위이며, 자연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쉬운 듯 하면서 깊이를 알지 못하는 혜안(慧眼)이 담겨져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며,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다시 얼굴을 내밉니다. 옆 사람이 ‘그렇게 자주 길을 나서는데 어제와 다른 게 무엇이 있길래 가냐?’고 물어올 때면, 예의 그 미소(媚笑)를 지으며 그냥 따라오라 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여행이란 사람을 세 번 태어나게 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는 엄마 배속에서 나온 나이가 중요하지 않고, 집을 처음 나선 순간이 나이가 됩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른이 아이가 될 수 있지만 나이 어린 아이가 길을 많이 나섰다고 쉬이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여행이란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많은 길에 서 있는 어린아이는 세상을 조금 색다르게 혹은 비판적으로 응시할 수 있는 눈이 날카로울 뿐입니다.

왜 여행을 가냐고 묻는다면, '시인 되고 싶어서'라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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