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가는 마음
신영훈 지음 / 책만드는집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산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레 눈에 읽은 것이 절(山寺)이다. 국립공원이라면 적어도 한 개의 절들이 탁 버티고 서서는 문화재관람료라며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 산에 오르는데, 절에서 돈내라고 한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 시주승들이 개나리봇짐을 메고 고샅을 돌며 시주를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국립공원 입장료보다 더 비싼 돈을 강제로 달라고 한다. 더구나 어린아이의 코흘리게 돈 마저 앗아가는 풍경이라니... 그리고 절터까지 잘 닦여진 도로는 처마밑 풍경의 자리를 참 무색하게 한다. 언제가 풍경도 자리를 비켜줄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나와 대면한 절에 대한 인상은 가히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항상 산에 가면 절은 나와 다시 대면케 하니, 이제는 애써 피하기 보다 그와 마주하기로 했다. 처마밑에 들려오는 바람의 풍경 소리도 흘려 듣지 않기로 했다. 돌탑도 그냥 넘기지 않고, 세월을 읽어내려 한다.

지은이는 차근히 절을 찾아 나선다. 그를 처음 만난건 절의 소유지를 나타내는 석표이다. 석표(장승, 승선교)를 지나면 일주문(부도, 철주)- 금강문 -사천왕문 -탑, 석등에 이르게 된다.

장승은 남도의 인물이 좋고, 일주문은 부산 범어사의 눌림이 기예가 있으면 금강문은 단연코 석불사이다. 지은이는 글을 잡다한 지식으로 나열하며, 길게 풀어간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식은 조리를 갖지 못한다. 또한 절에 대한 예찬은 '혼자서 신나' 더하고 물러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객관적 중립을 잃어버린 글은 깊이가 없으며, 수필이라 할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절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라든가 풍경 혹은 아름다움을 조리있게 풀어낼 수가 없으니, 단순한 지식의 나열과 더불어 개인적인 글쓰기가 휘장을 두른다. 또한 김정한의 『사하촌』에 묘사되었듯이 서민들의 삶도 없다. 분명 지은이는 절 소유지의 경계 석표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누린 부와 그에 따린 백성들의 궁핍을 외면하고 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로 이 부분을 덮고 있다.

덜하고 더하고를 자유롭게 부릴 수 없는 만용의 글은 읽기에 적잖게 부담스럽다. 절을 쫓는 사람이 '비움'이 아닌 '담기'에만 연연하지 않나라는 풍경 소리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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