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도감 - 언제.어디서.누구나
오쿠나리 다쓰 글, 나가타 하루미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아니 ‘찾아서 보는 편이 아니다’라는게  맞다. 혼자인 밤에 누구라도 떠들지 않으면 긴긴 겨울을 날 수가 없어, 켜 놓고 내 일을 하곤 한다. 하지만 목요일 11식 되면,  마법에 걸린 왕자인냥 어디에 있든 집으로 가려고 내 몸은 안절부절이다.


목요일 11시.

초등학교 유년시절의 친구가 그렇게 그립고 반가운 친구인지 몰랐다. 혹시 다 연습하고 하는게 아닐까? 연예인들은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모습이 거짓이든 참이든 마냥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르고 고르고, 긴가민가 하면서 어색하게 손을 내밀 때, '반갑다 친구야'라며 일어서는 순간, 손을 먼저 내민 친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래 너 맞지?' 시간을 뛰어넘은 친구와 친구만이 서 있다. 그네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악의(惡意)가 없으며, 짙은 향수(鄕愁)에 젖어 있다. 나는 그네들의 짖굿은 장난마저도 다 이해하며, 내 추억의 일기장과 틀리지 않다며 읽어간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네들과 함께 유년시절의 일기장도 펼쳐놓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뭐해먹고 살 것인가 혹은 책 등과 씨름하다(?) 목요일 저녁, 한 시간은 시간을 지워버린다. 그리고는 유년시절의 나로 잠시나마 여행을 떠난다.


『놀이도감』 이 책 역시, 그리움의 저 밑에 둔 친구들을 불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릴 적 우리집은 동네 마당이였다. 항상 친구들은 여섯 평 남짓한 우리집을 사랑방 마냥 들락날락거렸고, 언제나 엄마는 '나가서 놀아라'라 했다. 그러고는 ‘큰 집을 지은 다음에 친구들을 마음껏 데리고 온나’ 하셨다. 나와 친구들은 집이 작아도 구애받지 않고 대문을 넘나 들었다. 여름이면 마루에 앉아 딱지 따먹기, 겨울이면 집 모퉁이에 높이선 전봇대를 기둥삼아 (다)망구며 진돌, 술래잡기 등을 하곤했다.


책을 펼치면, 어느 것 하나 낯설은 것이 없다.

화초놀이에서 보여지는 꽃(동백)목걸이는 5월에 ‘감꽃’으로 만들어 놀았으며, 피리는 보리나 물이 오른 ‘버들강아지 가지’로 만들어 놀곤했다. 논에 ‘보리깜부기‘가 있으면 옷이며 가방은 검게 물들기 십상이다. ’등나무잎‘은 가위바위보로 누가누가 빨리 떼어내나, ‘’는 침을 묻혀 개구리를 잡아 올리곤 했다. ‘민들레씨’는 축구공인냥 발길질이나 '호~'하며 입바람결에 날리곤 한다.


영웅심으로 모든 이가 다 죽고 나면, 맨 나중에 의기양양 '나 여기있다'며, '깻등'하며 죽은 이를 살려낸 일, 친구들이 한 줄에 잡혀 있을 때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힘차게 '망구야~'하며 달아나는 놀이. 난 항상 영웅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꼭꼭 숨어서 나중에 나가곤 했다. 오리길을 걸어가면 지루하기에 가방 들어주기는 심심풀이 땅콩이며, 무슨 색하며 뛰다보면 어느새 집에 와 있다. 손수건 돌리기와 보물찾기는 소풍의 최대 놀이이며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기마전은 운동회에 빠지지 않는 놀이라면 말타기는 사시사철 만만한 놀이이다. 고무줄 놀이는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하고, 고무줄 끊기 놀이는 남자라면 누구나 하는 놀이로 나뉘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갑지만은 않은 손님, 겨울이 찾아왔다. 날씨가 추워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추위는 예전만 못하다. 왜냐하면 동네 커다란 못(저수지)이 몇 해째 얼지를 않게 때문이다. 여섯평 남짓한 방에서 잠을 자면 고니 울음소리와 얼음이 우는 소리를 듣을 수가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못에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면서, 얼음의 울음소리도 듣을 수가 없었다. 얼음이 울지 않기에 어린아이들은 스케이트(썰매)를 만들지도 않는다. 겨울방학이 되면 맨 먼저 하는 것이 스케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해 마다 한 개 씩 만든다. 한번 만들면 몇 해를 쓸 수 있지만 해마다 만들며 그 설레임에 젖곤 한다.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 가지를 잘라 송곳을 만들면 완성이다. 나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는 미나리꽝이나 못에서 신나게 탄다. 못에서 탈 때에는 항상 어른들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분명 하나도 안 무서운데, 동네 어른들은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빠지면 못 올라오기에 위험하다'고 ‘어서 나온나’고 호통이시다. 스케이트가 재미 없지거나 날씨가 조금 따뜻하면 말패나 깡통차기, 다망구를 한다. 남자여서인지 말패는 쉽게 이길 수가 없지만 다망구는 자신있다. 달리기는 조금 떨어져도 고양이 마냥 이 집 저 집 담장을 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연날리기 또한 겨울철에 빼놓을 수 없는 놀이다. 지난 여름 고추 때문에 잘라 놓은 대나무를 얇게 썰어 연살을 만든 다음, 신문지나 문종이에 붙이면 멋진 가오리연이 된다. 얼레가 없어도 실을 한 아름 뭉쳐서 나오면 된다. 못둑에서 날린 연은 저 멀리 산 밑 까지 날아갔을 것이며, 그것은 그 누가 날린 연보다 멀리 갔기에 겨우내내 전설이 된다. 배가 고파지거나 하면 고구마를 부뚜막에 넣고, 스케이트 타다 젖은 양말을 말리곤 한다.


유년시절의 놀이는 철따라 달리했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해가 바뀌어도 같은 놀이로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다. 컴퓨터나 오락기 등이 없어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손등이 '터' 피가 나도 추운 것은 몰랐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창밖을 보면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에 몸을 떤다. 겨울 바람이 동네 고샅을 휭하니 쓸고가면, 들리는건 유년시절의 추억소리뿐. 지금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내가 결혼을 하여,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는 뭐라할까? 지난날의 놀이를 박물관에 손잡고 가서 보며 '우리는 이렇게 놀았다'라고 말하면 그 놀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조금씩 커 가는 모습과 쓸쓸함에 놓인 마당을 보며 깊은 회한에 잠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기억되지 못한다 하여도 너는 유년시절의 소중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네가 있어 내 삶은 추억많은 행복한 일기장을 채울 수가 있었다. 유년시절의 친구, 놀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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