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00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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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 본 사람만이 그 추억에 물들어, 다시 떠남을 동경하게 하는 병. 나 역시 집을 나서기 전에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서 잠을 자고, 돈은 얼마나 들까라는 짐으로 방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떠나는 연습이 아닌 낯선 곳에서 내 몸을 맞기고 돌아오니, 그곳이 그립기만 하다.

제주도, 졸업여행이라고 간 기억 밖에 없는 곳에, 홀로 찾아가서 이것저것 보고 돌아오니, 졸업여행 뒤에 찾아온 그리움은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선 제주도가 아쉽기만 하다. 지난 여름 등대섬에 갔을 때에는 몰랐다. 그냥 등대 하나 밖에 없네라는 생각만 했는데……. 일상에서 나는 등대섬만 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왜 이럴까?

나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병의 원인을 알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치유의 약은 '책'이다. 조금씩 책을 읽으면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만만치 않다. 짧은 책 속에…….

우선 지은이는 여행이야기를 말하기에 앞서, 서양 중심의 여행이야기를, 역사교과서적인 서술을 한다. 어디에 누가 여행을 했다는 편년체 구술을 책의 반을 할애한다. 또한 너무나 서양 중심의 여행이야기를 세계적인 의미로 두고 말하니, 조금은 거북스럽다.

책의 절반을 이렇게 하고 나서는……. 진짜로 여행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 때문에 떠나는가에 시작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언제 떠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나는 다시한번 상당히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서 나온 서양 중심의 침략 전쟁을 여행이라고 버젓이 포장하여 나에게 들려주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양에 한한 역사적 여행을 한 부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전세계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 침략을 여행과 동일시 하는 점(침략=발견), 피해자로서의 고통과 제 3세계의 시선은 없다는 점. 왜 교과서에서 반복된 이야기를 다시 나열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구술할 필요가 있을까?

서양 중심의 침략적 여행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그의 여행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의 스펙터클의 진정한 풍요로움이란 그 세밀함에 있는 것이다. '본다'라는 것은 그 세밀함을 주파해간다는 것이다. 마주치는 대상 하나한의 경이로움에 잠깐이나마 머물러 그 전체적인 의미를 되새겨보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될 것이다.(60쪽)"

잠시나마, 경이로움에 도취. 여행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율적인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정답으로 내세울 수는 없지만, 주관적으로 지은이의 생각에 동의를 한다. 마음을 조금 늦추고, 눈높이를 낮추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머무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나이’와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판단력이 형성되고 머리 속에는 그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아이가 되어야만 보다 효과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아니 한다면 그 여행에서 별다른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수많은 실수와 잘못 해석한 악습 같은 것만을 흉내 내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 격이 될 뿐이다."(62쪽)

여행은 자유로움이며, 비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을 하고 있다. 즉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는 것은 아닌지. 이는 앞서 말한 여행을 '도피의 여행', '떠남 그리고 재탄생', '한 발짝 두 발짝 혹은 느리게', '조금씩 나를 비우기'라는 화두와는 등 돌아서 있는 이야기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냥 떠나야 하는 것이지, "적당한 수학적 추론 능력, 산수, 기하학, 기계학, 물리, 자연사, 화학, 기하학, 조금 더 바란다면 천문학에까지 이르는 기본 지식(62쪽)"의 축적은 짐이 될 뿐이다. 떠나고 떠나면서 하나씩 얻어도 된다. 한 번에 다 하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할 것이다.떠나고 싶으면, 그냥 떠나면 된다.

여행에 대해 조금 더 알기 위해 접근을 한 나에게 눈높이가 다른 지은이의 글은 조금 낯설어 보인다. 어쩌면 내가 여행에 대해 일단의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하지만 아무리 내 독선이 지나치다 하여도, 지은이의 시선은 서양에 대한 무비판과 동경, 여행에 대한 욕심과 심미안의 바닥을 감추기에는 힘들 듯 하다.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지만, 누구나 여행을 하면 세 번 태어난다.

한번은 어린아이로,
한번은 학생으로,
마지막으로 어른이 된다.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껌을 땅에 묻어두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흘려들어 보세요. 많은 여행을 하지 않은 나이지만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화두(話頭)는 가장 나를 오래도록 괴롭힌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내 물음과 답을 하려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이란 점을 잊지 마세요. 그러면 두서(頭序)없는 글을 늘어놓겠습니다.

1. 시인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 여행(旅行)은 사람을 들뜨게 합니다. 낯설음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 그리고 조금의 두려움. 유년시절 소풍가기 전날 밤처럼 사람들은 한껏 부푼 가슴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이때에는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때 묻지 않은 감성은 표현하는 마디마디 마다 아름다운 시구가 되고, 산수화가 되곤 합니다. 자연을 보는 눈은 산속 호숫가처럼 구름을 담을 만큼 투명합니다. 마냥 신기함 속에 자연 속으로 들어간 시인은, 내(我)가 자연(自然)인지 자연이 나인지 애써 구분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物我一體) 문명에 길들여진 이들은, 순수함 대신에 어설픈 비평(批評)으로 아이의 눈을 무심코 흩트려 놓곤 합니다.

2. 소설가
한데에서 별을 헤며, 몇 번 잠을 자고 나면 이제 자신감(自信感)이 생깁니다. 세상을 조금 아는 듯도 하고, 자연이 별것이냐며 오만함도 생깁니다. 거칠 것이 없는 파도처럼, 그들의 발걸음은 힘에 차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주인공이 되며, 사람들의 주목도 받곤 합니다. 목소리도 한껏 들떠있습니다. 이들은 시인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재창조(小說)합니다. 어디에 누가 살며, 밤새 김가 하며 졸졸 따라 다니는 이와 씨름을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빗자루였다는 둥, ‘밤길을 가면 돌을 던지는데 뒤돌아보면 없고 다시 돌아서는 순간 심장을 빼앗아 먹는다는 동물을 보았다’는 둥…….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더 묻을수록 그들은 어깨를 으슥하며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어른들은 정자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며, 빙그레 웃음만 짓습니다. 이때의 여행은 학생(學生)의 눈 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조금 알아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또한 사춘기의 소년처럼 모험심이 강하고 두려움은 큰 목소리로 누르면 된다고 허세도 피웁니다.

3. 수필가
이 파도가 잠잠해지는 시기에 이르면, 세상의 어떠한 흔들림에도 균형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나를 봅니다. 깊이를 모를 넉넉함으로 가슴을 채운 이들은, 거친 파도가 물위에서 출렁이지만 그들은 마음은 평온합니다. 즉 사춘기 소년의 허세는 바람을 모는 기운의 힘이라면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말도 없습니다. 한 번, 한 번, 다시 한 번 길을 나섬에는 별다른 차이가 들어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놀라움과 사춘기 소년의 왕성한 호기심도 없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그네들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보았던 바람이며 나무이며 바위이며, 자연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쉬운 듯 하면서 깊이를 알지 못하는 혜안(慧眼)이 담겨져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며,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다시 얼굴을 내밉니다. 옆 사람이 ‘그렇게 자주 길을 나서는데 어제와 다른 게 무엇이 있길래 가냐?’고 물어올 때면, 예의 그 미소(媚笑)를 지으며 그냥 따라오라 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여행이란 사람을 세 번 태어나게 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는 엄마 배속에서 나온 나이가 중요하지 않고, 집을 처음 나선 순간이 나이가 됩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어른이 아이가 될 수 있지만 나이 어린 아이가 길을 많이 나섰다고 쉬이 어른이 되지 못합니다. 여행이란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많은 길에 서 있는 어린아이는 세상을 조금 색다르게 혹은 비판적으로 응시할 수 있는 눈이 날카로울 뿐입니다.

왜 여행을 가냐고 묻는다면, '시인 되고 싶어서'라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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