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 언어가 춤을 춘다 세상을 다 말하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3
윤세진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어제 트위터에서 다소 황당한 일을 목격했다. 맞춤법이 엉망인 어떤 글을 캡쳐한 트윗이 타임라인에 올라왔다. 캡쳐 사진을 올린 유저는 단지 맞춤법만으로 캡쳐 속 사람이 ‘비서울권’, ‘고졸’, ‘일용직 노동자’라는 걸 유추해냈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언어 능력 하나만으로 누군가의 학력과 지역, 나아가 경제 능력까지 판단해버리는 게 문제다. 캡쳐 트윗을 올린 유저를 옹호하는 다른 트윗도 보았다. 그 사람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가여워했을 뿐이라는, 말인지 방구인지 당최 분간이 안 되는 옹색한 변명. 비난은 안 되지만 연민은 상관없다 그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저자가 좀 엉뚱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줄임말이나 신조어, 사투리나 비속어가 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 분명 저자의 말은 언어에 대한 나의 통념을 재고하도록 부추기는 면이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글을 형식에 맞도록 써야하며, 독서를 할 때에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라 배웠건만 저자는 그런 것에 굳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상하다? 티브이에선 아나운서가 18번은 일제의 잔재니까 애창곡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던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저자는 이것이 엄연한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애당초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언어가 닿고 섞여서 조금씩 변화해 온 것인데 언어순혈주의를 내세워 18번이니, 애창곡이니 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18번이라 부르면 어떻고 애창곡이라 부르면 어떤가? 이미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또 잘 사용해오고 있는데 말이다. 표현의 본래 속성이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구태여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듣고 보니 그렇다. 이어서 저자는 묻는다. ‘이 말은 일본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버리고, 저 말은 영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또 버리고, 그런 식으로 버리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순우리말'은 얼마나 될까?’(p.118)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관계 맺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익힌 언어들을 통해 내가 나의 언어를 갖게 된 것처럼, 이렇게 낯선 언어가 자신의 것과 뒤섞이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이러저러한 언어들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언어란 그렇게 처음부터 이질적인 것들의 ‘화합물’로 있었던 것이지, 결코 단일 원소로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국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건 일종의 강박관념일 뿐이다.


p.114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결국 ‘창의력’. 우리는 스스로 언어의 용법을 속박하고 있다. 언어를 가두면 가둘수록 사고 또한 갇히게 마련이고 이는 필시 창의력의 빈곤을 불러온다. 인간의 행위가 언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굳이 속박하여 사고를 제한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넌 어린애도 아니고 왜 자꾸 줄임말을 쓰냐?”, “보그체 그거 다 허세 아니야?”, “저 연예인은 아직도 사투리를 못 ‘고쳤네’”……. 이런 편견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결국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고 빼어난 사람을 나댄다고 비난한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 우리는 어쩌면 앞서 언급했던 어느 트위터 유저와 같이 규범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생까지 모조리 재단해버리는 치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글이 탄생하던 시기 조선의 고관대작들은 그것을 천한 것들이나 사용하는 언문(諺文)이라 불렀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우리는 그 언문으로 또다시 그들과 같은 벼슬아치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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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OKU 2016-02-15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책 정보 노출에 오류가 있는 모양이다.

책 제목은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다.

알라딘, 일해라!

yureka01 2016-02-1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는 결국 많이 쓰이면 그게 맞는 거란 생각입니다.자장면이 짜장면이 되듯이....

5DOKU 2016-02-15 19:28   좋아요 0 | URL
간혹 하나를 구조 전체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있긴 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 저도 님이 말씀하신 게 맞다고 봅니다.
 
[eBook] 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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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나의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 고민하세요. 그 꿈을 좇다 보면 돈을 버는 거지, 돈 벌어서 어디에 쓰겠다, 그건 아니에요.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살 때 얼굴에서도 가장 예쁜 빛이 나요. 얼마 전에 만난 젊은이에게 꿈을 물었더니 ‘7급 공무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7급 공무원은 네가 뭔가를 하고 싶은 과정이 될 순 있어도 그 자체가 어떻게 꿈이 될 수 있느냐고요.


_한비야, 인터뷰 「반장 하면 ‘반기문’ 되기 유리하냐고요?」 중에서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판타지’ 소설 작가다운 발언이다. 한비야, 그녀야말로 자신의 꿈을 팔아 돈을 번 장본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한국의 모든 젊은이가 그녀처럼 판타지 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늘의 한국은 그녀의 말마따나 꿈을 좇다 보면 돈을 벌게 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보다 돈을 벌어서 내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 시급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꿈은 그 이후에나 꿔볼 수 있는 사치와 같다. 그녀에겐 7급 공무원은 그저 과정일 뿐이겠지만 누군가는 일단 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벌이를 제공하는 7급 공무원은 엄연한 꿈이다.


『천국에서』의 케이는 한비야와 같은 어른들이 만든 ‘천국’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케이는 먼저 뉴욕에서 그 천국을 맛본다. 꿈을 좇는 사람들이 건설한 화려한 도시 뉴욕 말이다. 그곳에서 또래의 친구들이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어 서울로 돌아온 케이는 어떤 무질서를 느낀다. 뉴욕과 같은 천국이 되고는 싶지만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현실 속에서 서울은 그저 최대한 뉴욕처럼 보이고 싶은 도시일 뿐. 그래서 케이는 진짜 꿈을 좇는 친구들을 찾아 홍대로 간다.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은 적어도 꿈과 자유를 좇지 않던가.


그러던 케이의 생활은 초등학교 동창 지원을 만나면서 급격히 바뀐다. 지원의 생활은 케이가 경멸하던 삶의 전형이다. 꿈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 인천의 작은 공단에서 힘든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 지원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케이가 뉴욕과 홍대에서 느낀 천국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곳에서 케이는 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짜’를 경험한다. 비록 비루한 삶이지만 최소한 그들은 오늘날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케이는 지원을 떠날 수 없다.


아마도 케이는 그제야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천국의 실체를 깨달았을 것이다. 뉴욕, ‘꿈을 좇아’ 남의 땅을 찾아와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갈아 만든 도시. 그리고 서울, ‘꿈을 좇아’ 이전의 낡은 것을 모두 무너뜨리고 건설한 도시. 두 곳은 각각 그 나라를 대표하는 천국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여겨지는 곳. 이곳에서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는 그곳에 진짜 삶이 있다. 케이에게 사는 대로 생각하는 지원은 ‘꿈’이 아니라 ‘진짜’다.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왜 다 무너져내렸는데 아무것도 끝장나지 않지? 왜 끝장이 났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거냐고?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천국이래.


p.446



꿈을 좇는 삶,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 최고의 가치인 한비야에게 7급 공무원이 꿈인 젊은이는 ‘맞아야 할’ 대상이다. 사는 대로 생각했을 뿐인 젊은이는 꿈을 좇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다’. 똑같은 이유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에게 학살당했고, 서울의 어느 세입자는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모두들 이곳을 천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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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천국이라는 환상을 좇을 것이냐,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삶에 만족할 것이냐겠죠. *^^

5DOKU 2016-02-14 05:10   좋아요 0 | URL
꿈을 좇지 않으면 루저 취급하는 게 문제인 듯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살 수도 있는데 말이죠.
 
자신 있게 결정하라 - 불확실함에 맞서는 생각의 프로세스
칩 히스, 댄 히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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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택의 시대. 사람은 하루에 평균 150번의 선택을 한다. 양념이냐 후라이드냐, 짜장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미지 파일 확장자 ‘GIF’를 지프로 발음할 것이냐 기프로 발음할 것이냐로 한동안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인생 참 피곤하지 않은가? 사실 양념이니 후라이드니, 짜장이니 짬뽕이니, 부먹이니 찍먹이니 하는 고민은 무얼 선택하든 삶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듯싶다. 반반, 짬짜면, 덜어 먹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살다 보면 최소 5분 이상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는 법이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간 내 삶의 궤적 자체가 바뀔지도 모르는 중대한 상황.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자신 있게 결정하라』의 공저 히스 형제는 우선 분석의 환상부터 깨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투자분석가부터 증권분석가, 신용분석가 등등 참말 많기도 하다.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기업 그리고 정부까지 사회 전체가 이 분석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심한 건 사실이다. 비즈니스에 능하다는 기업들조차 분석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필요없는 곳에다 기꺼이 돈을 버리는 상황. 그들이야 돈을 버리든 말든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일 정부가 국가 예산을 결정하거나 주요 정책과 관련된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는? 그래도 상관이 없을까? 때문에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프로세스란 말 그대로 절차를 의미한다. 결정에도 체계화된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 히스 형제는 프로세스가 분석보다 약 여섯 배나 중요하다는 연구 자료를 들며 이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설명한다. 더불어 이 책은 결정에 최적화된 프로세스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히스 형제가 제안하는 의사결정 4단계 프로세스는 선택에 직면한 최초 상황, 놓인 선택안을 검증, 최종 결정, 실패에 대한 비용 준비까지 세밀하게 짜인 하나의 설계도와 같다. 나는 이 가운데 ‘우칭’이 참 와 닿았다. 마트의 시식 코너나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와 같은 일종의 체험판 개념이라 보면 되겠다. 우리 인생도 마트나 서점처럼 실패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이런 체험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라는 말에 혹해 멀쩡히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지원했다가 영영 지원만 하는 삶을 살지도 모를 일이다. 우칭은 이럴 때 유용하다. 작은 실패 모델을 만들어 가설을 검증해보는. 무작정 모든 걸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기보다는 우선 취미 활동 정도로 작게나마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히스 형제에 따르면 성공한 창업가들이 우칭을 본능적으로 실천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결정을 내릴 때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성공은 우리가 하는 결정의 질과 우리가 받는 행운의 양에 달려 있는 법이다. 행운은 우리의 권한 밖이지만 선택 방식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p.344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해서 앞으로 펼쳐질 선택지마다 최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프로세스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최선이 최고의 결과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얘기다. 어차피 미래는 예측 불가능이니까. 그보다는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내가 내린 최종 결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 최선을 다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며, 최고의 결과에 근접할 가능성 또한 커지게 마련이니까. 프로세스는 그 ‘최선’과 같다. 히스 형제는 말한다. ‘우리의 결정은 절대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나아질 수는 있다’(p.381)고. 이제 나에게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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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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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 즉, 편지 형식의 글만이 주는 이점이 있다. 첫째, 대상이 명확하다는 것. 이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불특정다수를 향해 쓰인 글 특유의 보편타당함이나 모호함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지녔다는 것. 다시 말해 교정이나 편집, 검열 등을 거치지 않은 일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편지에는 쓴 사람의 감정과 관점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그런 편지를 하나로 엮은 책이다. 중요한 건 누구의 편지냐는 것인데, 이 책은 무려 하드보일드의 전범, 버버리 코트에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문 차가운 도시 남자의 전형, 밀실에 갇힌 추리 장르를 건물 바깥으로 끌어낸 인물. 다름 아닌 레이먼드 챈들러의 편지라는 사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은 솔직히 말하자면 단지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시한 몇몇 익숙한 작가의 찬사로서만 접해본 게 다였다. 그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것도 모자라 하나의 장르를 정립한 인물임에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덜 알려진 감이 있다. 그런데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가. 지금의 한국 문학이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여, 궁금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대체 어떤 작가일까. 될 수 있으면 이미 출간된 소설로 접하기보다는 창작인으로서의 챈들러, 인간 챈들러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서간문이라는 형식은 그 조건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이 작가, 쿨하다...!” 책을 덮은 후 느낀 감상. 이력 따윈 중요하지 않다느니 독자들의 의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느니 챈들러가 동료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특정 독자에게 보낸 이 예순여덟 편의 편지는 이렇듯 하나같이 ‘쿨’하다. 이런 걸 보면 차도남 필립 말로가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편지로 그는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거침없이 화를 내기도 하며 또 언제그랬냐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아 나긋나긋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쓴다는 것, 다시 말해 창작에 대한 챈들러의 관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쿨한 문장으로 짜인 창작론. 이론서의 진부함도 없고 지루하지 않아 좋다.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성과는 느리고, 에이전트의 비웃음과 출판사의 오해를 살 겁니다. 그러다 서서히 당신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겠죠. 글을 쓰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작가는 항상 성공할 거라는.


p.35



특히 ‘스타일’과 관련된 그의 충고들은 가슴에 새겨둘 생각이다.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작가에게 그는 도리어 응원의 편지를 보낸다. 다만, ‘어느 지점까지는 연료를 좀 빌려 쓰고 가더라도, 언젠가 자기 속의 걸 태워서 스스로 탱크를 몰아야 하는 날이 올’(p.47) 거라며, 모방으로 시작한 창작도 좋지만 결국은 ‘스타일’이 없는 작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의 장르를 정립한 인물의 충고답다.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p.56) 할 각오로 부단히 써야 한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모방에서 자유로운 작가는 없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챈들러 역시 누군가의 연료를 빌려 쓰며 달려온 작가일 터. 하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 이것이 챈들러가 수십 편의 편지로 말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진리가 아니었을지. 그는 자신의 작가 인생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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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을 잘 쓰네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네요.
부럽습니다. *^^*

5DOKU 2016-02-12 00:29   좋아요 0 | URL
과찬이십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ㅠ_ㅠ

김연화 2016-02-1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작가세요jQuery18309043138869129239_1455229148914? 평론가만큼 쓰시는듯

5DOKU 2016-02-12 14:52   좋아요 0 | URL
못난 글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ㅜ

김연화 2016-02-12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작가세요jQuery18309043138869129239_1455229148914? 평론가만큼 쓰시는듯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 죽어 있던 생각을 아이디어로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10가지 방법
오스틴 클레온 지음, 노진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뭐랄까. 그냥 그 자체로 톡 쏘는 하나의 비타민C 캔디 같다. 딱딱하고 어려운 문장이 없고 글 중간마다 작가가 직접 그려 넣은 일러스트도 잘 그렸다기보다는 마치 이 책의 존재를 증명해주듯 개성적인. 크기도 작아서 독자에 따라서는 작은 가방에 넣어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는 맛도 있을 듯싶다. 일단 제본에 공을 좀 들인 흔적이 묻어난다. 글꼴이며 편집이며 모든 것을 원서와 최대한 흡사하게 현지화했다. 특히 글꼴은 직접 손글씨로 쓴 것 같은데 출판사의 이런 정성을 보면 독자로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들이 마음에 든다. 대개 이런 부류의 책은 영적 기운이니 내면의 움직임이니 하는 추상적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우선 저자 오스틴 클레온의 ‘창작론’부터가 확 와 닿는다. 제목이 말하듯 훔치라는 것. 세상에 오리지널 따위는 없다는 것. 모든 예술가는 그들이 존경하던 이들의 창작물을 훔친 일종의 도둑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창작물은 ‘무’에서 탄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당신이 존경하는 사상가들이 추앙했던 인물 셋을 찾아 그들을 공부하고 또 그들이 추앙했던 사상가를 찾아 공부하는 과정을 거듭하는 ‘가계도 그리기’를 권한다. 이런 건 따지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소위 ‘팔 때’ 거치는 흔한 과정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이런 것 하나까지도 일러스트를 그려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표절을 권하는 것은 절대 아닌 게, 저자가 말하는 도둑질도 엄연히 착한 도둑질(카피)과 나쁜 도둑질(표절)로 나뉘기 때문이다. 저자는 표절은 조작이지만 카피는 일종의 역설계(逆設計)라는 것을 강조하며 도둑질도 급이 다르다는 자신의 창작론을 확고히 한다. 그러면서 이 또한 도표로 그려 넣어주는 세심함까지 보인다. 내겐 이런 부분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이외에도 나만의 칭찬 폴더 만들기, 도메인 갖기, 아티스트인 척 해보기, 낮잠 자기 등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창작자로서는 따라서 해볼 만한 깨알 같은 조언들을 아낌없이 퍼준다. 나는 무언가 큰 성취를 이뤄서 유명해진 사람이 해주는 조언도 좋지만 이렇게 그저 나와 같은 처지에서 나보다 한 발 정도만 앞서 걷는, 어찌 보면 ‘친구’ 같은 이들이 해주는 조언에 더 감응할 때가 많다. 오스틴 클레온은 바로 그런 ‘친구’ 같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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