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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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들려주는 일화들은 고발적이기보다는 고백적이기에 더욱 와 닿는다. 퀴닝이라는 그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달려가는 오늘날 사회의 모습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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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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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내가 없다는 사실, 쓰는 행위가 곧 나라는 진리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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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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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을 (지금도) 잘 모른다. 이름만 들어봤지 단 한 번도 그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일부러 읽지 않은 건 아니고 인연이 닿지 않아서,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그는 연애 소설 작가 정도의 이미지가 전부였으니까. 그러다 제작년 즈음 강렬한 북 트레일러 한 편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날 뉴스에 대해 조용히 읊조리는 저자 알랭 드 보통의 내레이션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몽환적인 화면들. 흡사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의 그 트레일러에 매료되어 어떤 책인지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냅다 주문을 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한 마디로 알랭 드 보통의 영업에 당한 것이다.


핑계를 좀 대보자면 정말 잘 만든 북 트레일러였다. 흔히 책 한 권 출판되면 대충 급조되는 그런 영상물들과는 다르게 러닝타임이 무려 3분 16초(?)에 달하는, 공을 좀들인 ‘작품’에 가까웠단 말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처럼 트레일러만 보고 책을 사들인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라고 나를 위안해본다).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해 좀 알아보았다. 연애 소설 작가로만 단순히 알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다. 커리어 스펙트럼이 꽤 넓다. 문학을 비롯한 철학, 종교, 역사, 건축 등 다방면에서 두루 활동하는 ‘운동가’에 가까운 느낌. 실제 지금도 그는 여러 사회 운동에 몸을 담고 있다. 그런 그가 뉴스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공유했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뉴스의 시대』를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이것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한동안 떠들썩했던 종편 채널 문제와 더불어 지난 대선 터졌던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큼지막한 일들을 경험하며 어렴풋하게나마 이 뉴스라는 것이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구나 정도는 많이들 알게 되었을 성싶다. 그러나 내 성향에 맞는 뉴스를 선택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 그렇다고 뉴스를 끊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뉴스 없이는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 뉴스가 변하지 않으면 시청자가 변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공고히 하길 소망하는 당대의 독재자는 뉴스 통제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사악한 짓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그 또는 그녀는 언론으로 하여금 닥치는 대로 단신을 흘려보내게만 하면 된다. 뉴스의 가짓수는 엄청나되 사건의 배경이 되는 맥락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고, 뉴스 속 의제를 지속적으로 바꾸며, 살인자들과 영화배우들의 화려한 행각에 대한 기사를 끊임없이 갱신하여 사방에 뿌림으로써, 바로 조금 전 긴급해 보였던 사안들이 현실과 계속 관계를 맺은 채 진행중이라는 인식을 대중이 갖지 않도록 조처하기만 하면 된다.


p.36



이 책은 쏟아지는 정보에 휩쓸리지 않고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법 즉, ‘뉴스 항해술’과 같다.대소사에 대해 떠들면서도 정작 ‘뉴스 자신’은 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뉴스라는 촌철살인으로 도입부를 여는 게 인상 깊다. 이어서 정치, 해외, 경제, 유명인, 재난, 소비자 정보, 여섯 가지로 뉴스의 범주를 크게 나누고 미디어라는 망망대해를 좀 더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항해술을 공유한다. 낮게 읊조리던 트레일러 속 알랭 드 보통의 목소리가 책에서도 죽 이어진다. 때문인지 좀 심심한 면이 있다. 마치 두꺼운 철학서적을 한 권 펼쳐 놓은 기분도 들고. 다만, 재미로 치장한 가벼운 교양 몇 권 읽는 것보다 이런 책도 가끔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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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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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배계급이 겪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제국주의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만이 식민지 문학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소설 속 더블린의 풍경은 지금껏 읽은 식민지 문학과는 표현 양식이나 분위기나 여러모로 다르게 다가온다.  이 소설 또한 영국의 식민지 아일랜드와 그 속에서 그들이 겪는 척박한 삶을 그려내고 있긴 하다. 다만, 이러한 표면적 고통은 활자 이면에 감추어져 있으며 저자 제임스 조이스 역시 애당초 그렇게 표현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대단하다. 당시 제임스 조이스는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이는 몇 세기에 걸쳐 영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긴 식민지 역사에서 나타나는 피지배계급의 삶의 양상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감상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했는데 단편 「작은 구름」에서 꼬마 챈들러라는 인물이 ‘반복되는 신념과 체념, 소박한 즐거움으로 정련된 우울’(p.105)라는 표현으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오랜 식민지 역사와 그 중심에 있는 도시 더블린. 그들은 반복되는 신념과 체념 속에서도 소박한 즐거움을 찾아 살아가지만 그것은 결국 정련된 우울일 뿐이라는 것. 마치 제임스 조이스가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이렇게 느낄 줄 알고 있었어요.”라고 직접 말하는 듯한 기분. 그는 더블린 사람들의 일상을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묘사함으로써 아일랜드가 가진 오랜 피지배적 상흔을 활자 이면으로 던져버렸다.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이 앞서 언급했듯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매 단편 이어지는 일순 깨달음은 그러기에 더 치명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말했던 ‘에피퍼니’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오늘날까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편으로는 상상해보게 된다.


수록 단편 「애러비」를 읽다 문득 내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한 여동생의 생일이었고 나에겐 생일 선물을 살 돈이 없었다. 절대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꼼꼼하게 뒤지던 책상 서랍에서 새 노트 한 권을 찾았다. 제본이 고급스러운 양장 노트였으면 좋으련만, 어릴 적 학교에서 쓰던 흔한 ‘공책’이었다. 200원. 노트 뒷면에 쓰인 가격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는 설렘을 안고 집을 나섰다. 꽤 먼 거리였지만 들뜬 마음에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실로 많은 사람이 생일상에 둘러앉아 있던 기억. 모두 비밀히 준비했을 선물들이 예쁜 포장지에 싸여 저마다 앉은 자리 뒤편에 놓여 있었다. 불안했다.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축하곡이 한 소절 끝날 때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다가올 선물 증정식 생각뿐이었다. 저녁 시간 창 밖이 어두워졌다. 생일상 아래, 아무도 관심 없는 그 어두운 공간에, 가지고 왔던 공책을 두고 나왔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이 유난히 멀고 차가운 바람에 입고 나온 코트 소매가 펄럭대던 기억이 난다. 걷는 내내 생일상 아래 두고 온 공책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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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 필리버스터 중단 결론…"선거법 지연 역풍 우려"



이번 일은 야당의 총체적 문제를 단번에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몇몇이 공들여 밥을 지어놓으면 반드시 무능한 누군가가 나타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재를 턴단 말이지.


반대로 야당 간에도 저렇게 소통이 안 되는데 밥을 짓던 그 몇몇이 국민에게 걸었던 희망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지. 버티지 못할 무게를 빚처럼 떠맡기며 그들 마음 또한 얼마나 지난했을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건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모두 아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그들의 노고를 짓밟는 건 또 왜 이리 쉬운 것인가.


지금껏 야당이 역풍을 맞은 건 ‘역풍 우려’라는 핑계로 대변되는 내부인의 재 뿌리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 왜 역풍을 우려하는 것이며, 어째서 옳은 일을 해온 사람들의 노력마저 허망하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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