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 손쉽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설계의 힘
칩 히스 & 댄 히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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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대니얼 카너먼이라는 인물을 알게 해준 책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조합한 ‘행동경제학’으로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놓친 개념들을 새롭게 정의한 일종의 혁명가이기도 하다. 그의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도서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책이 아마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데 나는 이 책 『스위치』가 가장 마음에 든다. 넛지는 일반인이 읽고 활용하기에는 대상이 적절치 않을뿐더러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 넛지는 그보단 정부를 위시한 사회 기관 혹은 단체를 이끄는 팀의 리더들에게 더 맞을 성싶고, 정말 우리 같은 소시민들, 일상의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지만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그것을 대체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좀 더 유익하다 본다.


사람들은 쉬운 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쉬운 책이야말로 가장 쓰기 어려운 책이다. 이미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그 정보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좀 배운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는 안다고 가정하고 설명을 늘어놓지 않던가. 우리가 흔히 잘 쓰인 입문서나 개론서를 칭찬하는 이유도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개념을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개론서이자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하는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대니얼 카너먼이 제시한 전망이론(시스템1과 시스템2)을 코끼리와 기수로 쉽게 비유한 작업부터 이미 저자인 히스 형제가 얼마나 독자의 관점으로 이 책을 집필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고 일단 나부터가 이 책을 통해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어려운’ 분야에 재미를 붙였으니 말이다.




변화는 결과가 아니다. 과정이다. 원숭이가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을 습득하는 순간은 없다. 그 과정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걷는 법을 익히는 순간은 없다. 그 과정이 있을 뿐이다.


p.355



공저자인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는 대니얼 카너먼의 전망이론을 활용해 먼저 평범한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그것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지를 설명(자제력은 소모성 자원, 게으름으로 보이는 것은 종종 탈진의 문제 등등)한다. 그다음 자신들이 연구한 아주 간단하고 기억하기 쉬운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하며 변화를 돕는다. 해결 방식을 이렇게 몇 가지 쉬운 키워드로 나눠서 제시하는 건 다른 책에서도 나타나는 이 형제의 특기인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특히 코끼리와 기수에 대한 그들의 비유법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코끼리(시스템 1)는 매우 즉흥적이며 행동파인데 반해 절제력이 부족하므로 기수(시스템 2)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분석적인 기수 또한 게으르다는 오점을 가졌으니 이 둘을 상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망이론의 핵심이다. 히스 형제는 이것을 다양한 실험 사례와 더불어 독자들이 일상에 적용해볼 만한 방법들을 본문에 경제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나중에 책을 펼쳐 들었을 때도 쉽게 찾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이론을 일상에 적용한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이론의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는 책 말이다. 참고로 내 책장에는 국내에 출간된 히스 형제의 저서 세 권(『스틱!』, 『스위치』, 『자신 있게 결정하라』)을 모두 꽂혀 있다. 그리고 세 권의 책 모두 내가 아는 주변인들에게 꾸준히 추천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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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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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보다 앞서 좋아하던 일본 영화감독이 있는데 바로 이와이 슌지이다. 나는 그의 CF 같은 영화들이 너무 좋아서 DVD도 몇 개나 구입했고 요즘도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본다. 이야기가 가진 힘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슌지의 영화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시키는 ‘마’력을 지녔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화면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관객의 시선을 줄곧 스크린에 붙들어 매는 힘 말이다. 최근 나오는 그의 작품들이 조금은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고 그런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예전에 이와이 슌지의 에세이집이 국내에 한 권 출간되었다. 『쓰레기통 극장』이라고 여러모로 이 책, 『걷는 듯 천천히』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라 비교해보는 맛이 있다. 슌지 감독의 글은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대개 밑줄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쓰레기통 극장은 두세 줄 그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나는 구절이 몇 개 없다. 어쩌면 나는 그의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영상적 매력을 이 책에서 경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상과 글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만 알고 씁쓸히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글이 영상에 호응한다고 해야 할까? 이와이 슌지 감독 일화처럼 나에게 영화란 보여줌으로써 가치를 얻는 예술이었다. 드러내야만 진실에 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영화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 책이 나의 믿음을 재고하게끔 만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상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얻는 행간의 매력을 스크린에 부릴 줄 아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건 분명 내가 알고 있던 관념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문학만의 미덕이라 믿었던 ‘행간’을 그가 어떻게 영화로 옮길 수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의 영화는 다분히 문학적이다. 바꿔 말해 그는 잘 찍는 감독이기 이전에 잘 쓰는 작가였던 것이다.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 문장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p.19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그의 영화와 많이 닮았다. 수록된 에세이 한편한편을 읽다 보면 그의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그의 문장은 영화적이고 그의 영화는 문학적이다. 수많은 감독이 자신이 구상한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더 많이 보여줄까 고민할 때, 그는 어떻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진실의 근삿값을 도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바로 행간의 미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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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처럼 질문하라 - 합리적인 답을 이끌어내는 통섭의 인문학
크리스토퍼 디카를로 지음, 김정희 옮김 / 지식너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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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낳아지는 그 순간부터 이미 누군가의 편견으로 걸러진 세상을 감각하고, 누군가의 편견으로 걸러진 육아를 거쳐 누군가의 편견으로 걸러진 가르침을 발판으로 사회에 뛰어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바로 누군가의 편견이 만든 총합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편견은 평생을 나와 함께 해온 오장육부와 같아서 어떤 고통을 동반해야만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은 『철학자처럼 질문하라』이다. 나도 그랬지만 다른 독자들도 제목이 말하는 ‘질문’ 의 대상에서 일찌감치 자신은 제외하고 책을 펼쳐 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질문의 가장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빅 파이브 질문,‘1.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나는 왜 여기 있는가? 3.나는 누구(어떤 존재)인가? 4.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5.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을 던진다는 것은 한마디로 앞서 언급한 내 오장육부와도 같은 편견을 들추는 작업과 다름없다. 실제로 저자는 서문에 독자가 이 질문에 답하게끔 공란을 마련해두었다. 그런데 내 편견을 발견하는 것과 논리를 주제로 한 이 책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기 믿음에 허점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 그 역할을 하면 누구도 당신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십중팔구는 당신을 골칫덩이나 잔소리꾼, 눈엣가시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맨 먼저 할 일이 나 자신을 점검하고 내가 아는 지식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p.21



정리하자면, 누군가의 논증을 파헤치고 허점을 발견하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는 옳다’ 를 전제로 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연! 나는 여기서 우리가 매번 토론이라는 이름의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논리를 주제로 한 많은 책이 이 기본을 건너뛰고 기술부터 가르치니 모두가 상대방의 허점만을 지적하다 사이 좋게 손잡고 진창에 다이빙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의 장점은 이렇게 기본에 충실하다는 데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 허술한 건 또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빅 파이브 질문을 심화하기 전에 맥락 파악하기, 논증 도식화하기(이 부분이 매우 유용했다),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논리적 오류들, 토론의 달인이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추론 방식 등을 세세하게 짚어준다. 사실 빅 파이브 질문이라는 것도 이 기술들을 익혀야만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편견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고백하듯 표출되곤 하는데 그렇게라도 발견한다손 치더라도 타인에게 이미 그것을 밝히게 된 셈이니 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벌써 피해자가 생겼을 공산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라도 주어진 반성의 기회를 대개가 불행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몹쓸 편견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때문에 그 편견을 덮으려 자구지단을 내세우고, 그 자구지단을 덮으려 또 다른 자구지단을 궁리하는 자충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자신을 대중에게 자주 내보여야 할 유명인들은 특히나 그 자충수의 늪에 더 자주 빠져들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빅 파이브 질문이라는 것이 남들의 말에 허점을 찾아내는 것보다‘내 편견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 에서 내겐 더 유용하게 다가왔다. 메모해두고 자주 꺼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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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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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책을 사들였다. 은유? 처음 보는 이름인 데다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제목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제목은 지금도 영....). 그런데 샀다. 그리고 펼쳤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나는 참 운이 좋은 독자인 듯하다.


글쓰기의 ‘기술’ 을 알려주는 책은 많다. 내방 책장에도 지금 몇 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다. 그런데 ‘왜 쓰는가?’ 라고 묻는 책은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적어도 내 책장에는 없다. 아니, 없었는데 이제는 한 권이 꽂혀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작법서를 샀는데 대뜸 왜 쓰냐고 묻는다. 질문을 받았으니 그에 맞는 답변을 궁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가 왜 쓰는지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고 든다면 그저 좋아서 쓰는 것이지 뭔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책은 ‘왜 좋으냐?’ 까지 나아간다. 한 마디로 ‘쓰기라는 행위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인 것이다.


사실 저자가 왜 쓰느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진 것은 아니다. 그냥 읽다보니 그런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쓰는지, 그게 정말 당신을 위해 쓰는 것인지를 말이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듯싶다. 결국 나의 쓰기 역사를 돌이켜 볼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건 아마 작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의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쓴다는 것에 일종의 과부하에 걸린 상태였다. 기술적인 면에 몰두한 채 온갖 방법론을 찾아봤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고 과부하의 원인을 찾았다. 그 원인은 바로 나였다.




다른 강좌가 잘 살기 위한 방향과 목표를 이미 결정한 이들에게 글쓰기의 실용적인 기법을 전수하는 방식이라면, <글쓰기의 최전선>은 왜 그 직업을 욕망하는지, 밤이고 낮이고 쓰는 글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등등 자기 생각과 욕망을 글로 풀어내며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p.31



내가 그 수많은 글쓰기 기술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는 왜 기술을 배우려는 것인지 확실히 내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엄마라는 이유로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에 좌절하며 지내다 우연히 글을 쓰게 되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p.9) 고 말한다. 쉽게 말해 저자 은유에게 있어 글쓰기란 일종의 치유인 셈이다. 이런 식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독자가 글쓰기 행위에 대한 근원을 만나게끔 유도한다. 기술은 그다음이다. 근원을 만나 서로 정리를 보지 않고서는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떤 것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얻은 하나의 정답이었다.


다들 이미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내가 왜 쓰는지, 지금 쓰는 글이 정말 ‘나’ 를 위한 것인지 확실히 하지 않고 기술부터 운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일테면 목표물은커녕 출발점도 잊은 채 바다 한가운데 오도카니 떠 있는 배 한 척과 진배없다. 저자는 묻는다. 어딘가로 가고는 있는데 대체 왜 가는 것인지 모르는 이 멍청한 항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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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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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담은 대개 지루하고 재미없기 마련이다. “이래서 힘들었고 저래서 힘들었어. 그래서 나 힘들어쪄. 호―해죠” 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 어쩌란 말이냐 지루한 이 마음을. 쉽게 말해 자신의 힘들었던 감정 따위의 순전히 본인만 아는 그 ‘느낌’ 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작가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고생했고 힘이 들었다면 무엇이, 어떤 것이 그토록 나를 힘들게 만들었는지 독자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만들면’ 그만이다. 작가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자신의 고생담을 ‘무려’ 재미있게 써내는 작가들을 보면 부럽다.


『와일드』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는 그런 방면에서는 타고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어보면 이 작가가 겪은 일들은 재미있게 읽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고 무거운 일화투성이다. 그녀가 영리하단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바로 이런 심각한 이야기들, 남들이 고개를 저으며 듣길 거부할 이야기들을 일종의 모험담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이야기’ 가 있는데 이것을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한다면? 그럴 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 꼰대식 훈계가 아니라 셰릴 스트레이드와 같이 서사의 기본적 구조 정도는 인지한 후에 펜을 드는 게 맞지 않을까?


때문에 이 책은 일종의 참고서 역할로도 충분히 기능할 성싶다.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죽음, 가족의 해체, 약물 중독, 남편과의 이혼, 무모한 도전, 목표 획득, 귀환 등 작가가 아닌 사람이라도 글을 한 편 쓰고 싶게 만드는 이런 아이템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필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정확히 3막 구조에 ‘갔다가 돌아오는’ 영웅 서사의 원형을 꼭 빼닮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겪은 일을 그저 단순하게 기록했다고 보기 어려운 기술적인 부분이다. 나는 그녀가 분명 이것을 의도했을 거라고 본다. 의도했다는 것은 이러한 기술에서 작가가 되기 위한 그녀의 부단한 노력이 느껴진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나는 거의 언제나 엄청난 높이를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냉혹한 현실에 매번 거의 울 뻔했고 근육과 허파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언제나 내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야 PCT는 내리막길을 보여주곤 했다.

p.392



군대서 40km 행군한 이야기도 지루한데 무려 4,285km 등산한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할까? 책을 펼치기 전 들었던 내 생각은 이렇게 그녀가 풀어내는 흥미로운 모험담이 500쪽을 넘어갈 때쯤 착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책은 내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완주가 어째서 위대한 여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었고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뛰어난 이야기꾼을 통해 여러 작가적 가르침을 안겨주었다. 한 편의 참고서이자 재미난 소설로서 읽히기까지.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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