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름 있는 미디어와 공인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비판할 때, 여성들이 보컬 프라이vocal fry를 너무 많이 쓰고 ‘같아요’,‘진짜’ 등의 표현을 남용하며, 과도하게 사과한다고 지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들은 그런 평가를 유사 페미니즘적 조언이라 이름 붙인다. - P15~16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같아요’가 있다. 이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용 빈도를 줄이기가 쉽지가 않다. ‘같아요’를 쓸 때 내 심리는 대부분 단언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때이다. 내가 하는 말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면 갈수록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크다. 그러다보니 이 말의 빈도는 점차 증가하는 듯하다.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장에서 신선했던 내용은 영어 단어 자체에는 젠더화된 차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발화자들이 언어를 젠더화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예를 들면 ‘남성’과 ‘사람’이 영어에서 동의어로 쓰인다. 여성은 꼭 ‘여교사, 여승무원’ 등등…으로 ‘여’를 붙인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직업의 구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멋진’, ‘똑똑한’이 칭찬인 반면 여자 아이들에게는 ‘귀엽다’, ‘예쁘다’로 칭찬하는 패턴도 너무나 흔하다. 여자들이 똑똑함을 발하면 ‘나댄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역시 기대만큼 재밌다. 앞으로 나올 내용이 기대가 된다.

우리의 발화-단어, 억양, 문장구조-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보이지 않는 신호다. - P13

언어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언어는 언제나 권력 구조와 사회규범을 반영하고 그것을 강화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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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9-06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글을 쓸 때 확고함을 피해야 한다고 여길 때 같다,듯하다 등을 쓰게 되는데요 그게 아닐 가능성을 인지하거나 유보적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느끼는 거죠 단호함에 대한 거부감이 들 때도 종종 발생하고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9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6 12:54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도 서곡님과 마찬가지 이유로 그 단어를 쓰고 있는데 줄여보자 싶으면서도 쉽지 않네요.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09-06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는데 왜 ~같다 라고 하냐는 글을 보고 그러게? 싶어서 제 감정에는 ~같다를 피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게 잘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이 책 뭔가 읽다 보면 짜릿짜릿할 듯 합니다. 저도 곧 시작할게요. 뽜이팅!!

거리의화가 2023-09-06 12:55   좋아요 2 | URL
저 단어 빼는게 쉽지 않더라구요. 저도 요새는 줄여보려고 나름 노력하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책 도입부장인데도 흥미로워요. 뒷부분은 더 재미날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도 화이팅!

책읽는나무 2023-09-06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몇 달 전 1장정도 읽어봤었는데요. 아주 재밌겠더군요. 읽으면서 언어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겠더군요.
칭찬의 뉘앙스도 남자와 여자에게 하는 말이 다르긴 하죠? 저도 고쳐보려 하는데 잘 안 됩니다. 그래도 노력해보는 게 어딘가요. 그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거리의화가 2023-09-06 16:39   좋아요 1 | URL
언어라는 것이 결국 내 안에 있는 사상이나 개념들이 목소리로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내 생각이나 감정, 느낌이 그대로 배어져나오는거구나 싶습니다.
어릴 적 주변 사람들 보면 여자 애들에겐 ˝예쁘게 자라라!˝ 이런 말 쓰고 남자 애들에겐 ˝씩씩하게 자라라!˝ 또는 ˝똑똑하게 자라라!˝ 이런 말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희한한 말이에요. 저는 그 때도 지금처럼 잘 넘어졌는데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왜 그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만큼 얌전하지 않다라는 늬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독서괭 2023-09-06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나봐요!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언어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요.
딸아들 키우면서 조심한다고 하는데 잘 하고 있는지..
앞으로도 재밌을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7 09:03   좋아요 1 | URL
언어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굴러가는 사회! 언어의 영향이 정말 큽니다^^
막상 자식을 키울 때 조심한다고 하지만 신경쓰기 쉽지 않을 듯해요. 하지만 염두에 둔다는 것만으로 이미 멋지신거죠^^ 책 내용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기록을 보니 작년 딱 오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페이퍼에 올렸는데(https://blog.aladin.co.kr/roadpainter/13905626공교롭게도 오늘 3번째 읽게 되어서 놀라웠다.

신기한 건 3번째 읽는 것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정말 잘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나는 그냥 정말 읽은 소감을 간단하게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한 가지의 단어만 꼽아보려 한다. 함께 읽는 멤버분들이 정리를 잘 해주시기도 하고 3번째니까 좀 널널하게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해서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저런 식으로 책의 중요 문장을 꼽아가면서 읽는다. 모르는 단어나 인상적인 단어는 색연필로 단어를 표시해둔다. 나중에 읽을 때 도움이 많이 되더라! 다음에도 또 모르는 단어인 채로 남아 있으면 질타 좀 하면서 다시 외우면 되지뭐^^;;;



첫 번째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뭐니뭐니 해도 shaduf다. 책에 있는 이미지가 정말 친절해서 이미지와 원서 설명문을 읽으면 그렇게 찰떡일 수가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이 아닐까.


유목민들이 어떻게 농경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우리가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그 실례를 Tarak의 가족을 통해서 이야기해준다. 이것이 정말 좋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lizard stew 맛이 궁금하면서도 그 과정이 훈훈했고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에 만들어진 fertile crescent를 이야기하며 Tarak 가족도 자리를 잡게 된 이야기를 해 준다. Tarak은 매일 음식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수영을 잘하니까 뽐낼 수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떠돌이 생활보다는 정착 생활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제 ch1. 지금부터 시작이니 무리하지 말고 이렇게 계속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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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9-05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arak이 아침에 일어나면 옷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는 점도
신선했어요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9-06 09:0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아 그러네요! Tarak의 눈은 새롭게 보는 시선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느껴져요^^

하이드 2023-09-05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haduf는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이집트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이 책에서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 여튼,고대에서 현대까지 연결된 것을 보니 좀 놀라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6 09:06   좋아요 1 | URL
이집트에서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니 놀랍네요! shaduf가 농경에 그만큼 획기적인 산물이었던 것이겠죠.

책읽는나무 2023-09-05 2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3번째 독서도 그저 부럽습니다.
저도 이 책은 참 잘 만든 책이란 생각을 옛날부터 하고 있었네요.
근데 애들 읽으라고 사다 놓은 이 좋은 책을 애들은 안 읽고 제가 읽고 있어 조금 아이러니 합니다만..^^;;;

거리의화가 2023-09-06 09:09   좋아요 2 | URL
애들에게도 좋지만 어른들에게도 정말 좋은 책입니다. 사례나 예시, 설명문이 좋아서 모르는 단어는 그대로 정리해서 나중에 사용해도 좋겠어요^^ 시리즈 중 Vol1만 3번째 독서고 이후에는 2번째로 읽게 됩니다. 나무님도 같이 읽으시는 거죠? 화이팅!

독서괭 2023-09-05 23: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충 하겠다 하셨지만 중요한 건 다 적으신 것 같은걸요?^^ 화가님의 3독을 응원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9-06 09:11   좋아요 2 | URL
응원 고맙습니다. 쓰다보니 또 길어졌네요!ㅎㅎ 괭님의 앞으로의 여정도 응원합니다!^^

희선 2023-09-06 0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번째로 읽으시는군요 세번째인데도 재미있게 읽히다니 좋은 책이네요 거리의화가 님 끝까지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06 09:11   좋아요 2 | URL
네. 3독인데도 재미나요^^ 신기한 마법!ㅎㅎ 희선님 감사합니다.
 

이날 전투에서 기관총 중대장 최인걸(崔仁傑)의 용맹한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감동이다. 그는 사수가 죽자 제 몸에 기관총대를 묶어서 쏘았다. 그렇게 쏘다가 기어이 탄환이 바닥나자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전쟁터에서 충실히 자기 임무를완수하고 세상을 떠난 장렬한 죽음이었다.
김상하(河). 그는 아직 어린 소년인데 교전 중 얼굴에 총상을 입었다. 왼쪽 뺨이 찢어지고 아래턱이 깨어져 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악이 돋았다. 눈에서 불꽃이 활활타올랐다. 윗도리를 홱 벗어 던지더니 혼신의 힘으로 수류탄을집어 던졌다. 나중엔 죽은 전우의 몸에서 수류탄을 벗겨내어던지고 또 던졌다. - P613

1920년 경신년 10월 21일. 그날 늦은 아침부터 26일 꼭두새벽까지 무려 6일 동안을 격렬하게 싸웠던 청산리 독립전쟁. 그눈부신 혈전(血戰)의 막은 서서히 내렸다. 청산리 전투는 오로지 우리 겨레의 단합된 힘으로 제국주의 외세 일본의 정규군대 공격을 통쾌하게 무찌른 그야말로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대승리였다. 청산리 일대 여러 골짜기에서 여러 날 동안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군정서 사령부에서는 일본군 1,600명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 측 보도는 ‘2,000명 사망‘이라고 했다. 용정 일본영사관 비밀보고서는 가노 연대장 이하800명이 전사했다고 축소발표했다. 독립군 측은 200여 명이죽거나 다쳤다. 그 무엇보다도 군정서부대와 홍범도의 연합부대가 서로 힘을 합쳐 막강한 왜적을 쳐부순 것이 가장 큰 성과요 감격이었다. 이날의 패배가 너무나 창피하고 면목이 없었던 아즈마는 독립군의 숫자를 무려 세 배나 불려서 거짓보고를했다. - P629

1920년 경신년 10월 5일부터 11월 23일까지 간도 일대에서왜적에게 무참히 학살된 무고한 조선인 동포는 그 수가 어림추산으로 무려 3만 명이 넘는다. 훈춘, 화룡, 연길, 왕청과 기타남만, 북만 등지에서 체포된 사람은 5,000명이었고, 6,000호의동포들 살림집이 부서지고 불탔다. 학교는 50여 개소, 양곡 손 - P647

실은 4만 5,000석 등이다. 피해추산 총액은 187만 8,600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오로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당한 놈들의패전 분풀이였다.
곳이였다역사는 이를 일러 ‘경신년대참변‘(庚申年大慘變)이라고 적었다. 다른 말로는 ‘간도대학살‘이라고 한다. 왜적은 놈들의 여러공식적 기록에서 ‘간도사변‘ 혹은 ‘간도토벌‘이라고 기록했다.
완전 무방비의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마을마다 찾아다니며총과 칼로 공격하여 집단으로 살상했던 대표적인 제노사이드(genocide), 즉 한국인에 대한 집단학살극이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당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그렇게 광기에 차서 서슴없이 자행했던 극악무도한 복수극이었던 것이다. - P648

조선민중의 항일 무장투쟁 기본 전선은 바로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의 국경지대였다. 그 주력부대가 바로 홍범도 장군을 위시한 여러 지도자들이 이끌던 대한독립군이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독립군 수령들은 공명심과 소영웅주의,
영도권 독점의 야심 등등 마음속에 도사린 헛된 욕망들 때문에 - P660

제대로 된 연합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오직 단독행동으로 무언가를 펼치려 했다. 이것은 우쭐거리는 소영웅주의에 불과했다.
독립군 수령들은 대개 자기네 관할로 일정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영토 안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여러 사업을실시했다. 군중문화 사업에 아동교육 사업에 후생 사업에 웬만한 민사사건은 물론이요, 강도 일제의 밀정 침투를 막는 방첩사업까지 모두 독립군 부대가 맡아서 처리했다. 그런데 사업은여기서 끝나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서 말그대로 봉건 영주를 닮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일그러진 공명심과 자기과시, 우쭐거림,개인적 탐욕, 터무니없는 야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홍범도 장군만이 이러한 지방세력을 전혀 갖지 않았다. 단한 가지 빛나는 경력인 항일투쟁 사례 하나만으로도 그 신망은다른 어떤 지도자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크고 우뚝194했던 것이다. - P661

일본군 토벌대와의 그토록 치열한 전투에서도 모진 목숨이용케도 이날까지 잘 버텨왔다. 그런데 살벌한 러시아 땅 자유시의 한구석에서 같은 핏줄을 나눈 동족들에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이처럼 원통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홍범도 장군은 부하들과 함께 다니며 죽은 병사의 시신을 일일이 수습하고외곽지 한곳에다 큰 구덩이를 파서 묻었다. 이 궁핍한 시기에염습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ㅇㅂ그저 길게 파놓은 흙구덩이에 한 줄로 시체를 가지런히 눕혔다. 그러곤 그 위에 하얀 광목천을 덮고 그대로 흙을 덮었다.
매장을 끝낸 다음 홍범도 장군은 가까운 언덕 솔밭 속으로 들어갔다. 비 맞은 소처럼 크게 흐느끼는 통곡 소리가 들렸다. 무릎 꿇고 엎드려 땅을 치며 우는 홍 장군의 슬픈 울음이었다. - P712

1941년 봄 최진동이 일본군 정보기관의 호출을 받고 그곳을다녀온 뒤로 그는 일본군의 노골적인 협조자로 변신했다. 점차확고한 신임까지 얻어 당당하게 일본 여행도 다녀왔고, 일본방문길에는 내각대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를 접견했다. 도조란 놈은 최진동의 손을 잡고 "그대는 대일본제국의 모범적 신민"이라며 "잘 부탁한다"는 칭찬과 부탁의 말만 자꾸 되풀이했다. "천황폐하가 그대를 높이 평가하신다"는 말로추켜세우기도 했다. 최진동은 그로부터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그의 일본행은 시종일관 일본 측의극진한 환대 속에서 우호와 친선의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 P732

그로부터 최진동은 완전히 일본을 위한 충성파로 변신했다.
‘일본군 간도성 선무부 도문본부 정보계 경리‘가 왕년의 독립군이었던 최진동의 명함에 표시된 공식적 직함이었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 조센징의 항일역량을 철저히 감시하고 그것을 아주 뿌리 뽑는 역할을 충직하게 수행하고 다녔다. 자기 휘하에배정된 200~300명가량의 특무 밀정을 운영하며 미친 듯이 항일독립군 전력자들을 잡아들였다. - P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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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크M Critique M 2023 Vol.6 - 마녀들이 돌아왔다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섹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잡지를 애써 구매하고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녀들이 돌아왔다> 섹션은 내 기대를 대체적으로 충족시켰다.

아무래도 국내 필자가 쓴 내용들이 나와 대체적으로 더 맞는 것 같았고 '마녀사냥' 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칼럼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잡지를 읽기 전 그 책을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페데리치는 중세 유럽에서 억압당한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여성들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마녀로 몰렸는지를 밝히고 있다. 소외된 여성이 마녀로 몰렸다. 정부와 교회는 주류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공격해 기준을 세웠다.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여성들, 즉 독신으로 사는 여성, 자유분방한 여성, 부랑자 여성, 근대 의학이 등장해 이 시기에 사라져가는 민간요법을 잘 아는 여성들이 타깃이었다. [ 재조명되는 마녀의 시대 by 나이케 데크슨 ]

중국에 양리라는 코미디언이 마녀사냥으로 집중 포화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큐 <피의 연대기>를 다룬 칼럼도 인상적이었다(다큐를 막상 보지는 못했지만 여자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칼럼은 현대미술에서 제의로 표현되는 예술가의 표현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예술가의 이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브라모비치, 이름이 알려진 만큼 아시는 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를 탄 작품 때문에 그녀는 이후 활동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한국 현대 미술계에도 초기 박영숙 선생님 등이 활동을 시작하신 후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는 것 같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씩 이해도를 높여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고기와 지방이 부패하는 악취가 지하에 가득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소뼈 더미 위에 앉아 브러시를 들고 뼈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고향인 유고 슬라비아의 민요였다. 노래를 부르며 뼈를 닦다가 울부짖는 행위가 나흘 동안 지속되었다. 1997년 6월,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발칸 바로크>(1997)다. 영적인 에너지를 탐구하고 신체를 적극 활용하며 파격적인 형태를 선보이는 작품들 때문이기는 하지만 결정타는 <영혼요리>(1996) 때문이다. (...)


<발칸 바로크>는 1990년대 발칸 반도에 피바람을 불러온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고향인 유고 슬라비아가 자행한 대량 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속죄의 퍼포먼스였다. 완전한 외부인이 아니었던 그는 전쟁과 인종 청소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기도, 그렇다고 외면할수도 없었기에 피를 닦아내고 노래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에 쌓인 업을 지워내고 희생자들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 [ 현대미술의 제의적 순간, 마녀와 예술가 사이 by 김지연 ]



다만 아쉬운 것은 성서에서의 마녀, 악마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인데 내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냥 훓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성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덧) 100자평을 쓰기에는 모자란 것 같고 리뷰 쓰기에는 내용이 빈약한 것 같았지만 100자가 넘어서 리뷰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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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9-05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화가님 빠르게 읽으셨네요! 👍👍👍
역시 성경 공부는 언젠가 해야 하는 숙제일까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3-09-05 09:15   좋아요 1 | URL
잡지는 오래 읽으면 좀... 한 번에 후딱!ㅎㅎ 근데 내용이 은근히 많아서 나중엔 대강 훓어 읽은 느낌이!
뒷부분의 성경 인문학도 그렇고 <마녀들이 돌아왔다> 섹션에도 관련 칼럼이 있었는데 내용이 제겐 많이 어려웠습니다. 성경 공부까지 할 시간은 안 되는 것이 현실!ㅎㅎㅎ

건수하 2023-09-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펴보지 못했는데 화가님 리뷰를 보니 얼른 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3-09-05 09:14   좋아요 1 | URL
수하님 저야말로 감사하죠. 덕분에 구매해서 읽게 되었네요^^*

청아 2023-09-05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중국 코미디언 양리를 검색해 봤는데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여성혐오가
떠올랐어요. 저도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3-09-05 11: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미님. 저는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농담이나 개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그 반대는 포화를 가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정작 양리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는데 남성들의 공격이 참... 아무튼 미미님 즐독하시길요!
 

~ 7부

홍 대장은 뒤늦게 모든 음모와 흉계를 알았다. 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저놈들 뒤에는 늙은 관리사 이범윤이 노회한 미소를 지으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수백명 바람잡이들이 박문길(朴文吉)의 집 앞에 몰려와서 대문을 발로 박차 부수고 거기 머물던 홍대장을 끌어내어 결박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왕거우의 유사장네 집 튼튼한 곳간으로 거칠게 끌고 가서 가두었다.
그날부터 홍 대장을 심하게 문초하기 시작했다.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패고 쇠꼬챙이로 찌르며 각목으로 주리를 틀었다. 왜적들에게도 안 받던 갖은 고통과 고문을 연해주 동포에게 당하고 말았다. 왜적이라면 차라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겠지만 동족에게 당하는 더러운 유린과 모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홍 대장의 두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찌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 P440

"이 땅에서 왜적을 말끔히 물리치는 날, 그날에 나는 비로소죽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들과 싸우고 또 싸우리라. 없던 힘을 새로 내어 이젠 의병대가 아니라 독립군대의 조직으로 새롭게 출발하리라. 용맹한 군대를 새로 짜서 식민지가 되어버린 신음하는 내 조국으로 진격하리라."
이로써 홍 대장은 독립군 조직과 국내 진출사업 구상에 모든 힘을 쏟았다. 열혈청년들을 불러 모아 조직의 힘도 확충하고 강화시켰다. 독립군 모집대가 사방으로 떠나갔다. - P448

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국정(林國植, 1894~1921),
한상호(韓相浩, 1899~1921), 윤준희(尹俊熙, 1892~1921), 이용맹한 애국청년들의 이름을 길이 기억하자. 그들은 죽기 전크게 한 마디 외쳤다.
"일제 강도 놈들이 우리의 작은 몸이야 죽일 수 있겠지만 조선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강해져만 갈 것이다. 들어라 일본아! 조선은곧 해방된다! 하지만 일본은 마침내 멸망하고야 말리라."
한편 최봉설은 뒤늦게 잡혀갔다가 놀랍게도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이름을 계림으로 바꾸었다. 최계립(崔桂立)은 과연 죽음터에서도 죽지 않는 놀라운 불사조였다. - P484

주린 범의 코앞에 서서 먹잇감 찾아준다는 못된 창귀(張鬼)처럼 밀정이란 것들은 자기를 버린다. 자기뿐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윗대 조상의 족보 따위도 썩은 짚단처럼 걷어차 버린다. 그의 창자는 일찍이 뒤집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환장자‘(換腸者)라고 부른다. 살아서 적의 꼭두각시 노릇이나하니 ‘괴뢰’(傀儡)요, 일제의 더러운 발톱이나 독한 송곳니 되는 일을 자청했기에 ‘조아‘ (UI)라고도 부른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책갈피에 몰래 숨어서 아, 지금도 기회 - P513

를 엿보고 있는 악질 밀때꾼의 무리여. 그들의 호시탐탐이여. - P514

"북로독군부 소속의 전체대원은 일본군 본대가 포위망에 들때까지 그곳에서 결코 자리를 뜨지 말고 철저히 매복하라! 나홍범도가 맨 먼저 권총을 발사하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 사격하라! 어떻게든 독 안에 들어온 왜적을 섬멸시키자!"
홍 장군 전술은 이번에도 『육도삼략』과 『손오병법』을 적절히응용하고 배합시킨 놀라운 활용이었다. 모든 부대가 산 높은곳에만 진을 치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다. 그래서 산 밑에 진을치면 적에게 포위되고 만다. 이때 음양을 두루 갖춘 조운(趙雲)의 진(陳)을 친다. 혹은 음(陰)의 지역 혹은 양(陽)의 지역에다산의 양쪽으로 두루 산병선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양에선 음을 방어하고 음에선 양의 방향을 지킨다. 진이 산의 왼쪽이면오른쪽을 방어하고 오른쪽 진이면 왼쪽을 방어한다. 적이 무리하게 몰려오면 아군이 일면 방어한다. 이때 급히 지름길을 - P534

고 다른 기습 부대는 적의 교통을 차단한다.
대장기를 높이 올리고 전군을 경계하며 왜적이 우리의 정보를 쉽게 알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을 옛 중국의 전법에서는 산성(山城)이라 일컫는다. - P535

그날 밤 홍 장군의 방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호랑이 같은 지휘관이었지만 만상이 잠들어자 앉은 깊은 밤, 장군의 눈은 서러운 물기에 젖었다.
"이 아비는 항일투쟁에 바친 몸. 네가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생활도 해보았으련만…" 교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고 측은한 심정이 치밀어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심장은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듯했다. 급기야 아픈가슴을 쓸어안고 신음하며 엎드리니 온몸의 피란 피가 거꾸로솟는 것 같았다.
"에구 불쌍한 것, 애처로운 것..." - P556

연길 주재 중국군 대장 맹부덕(德)은 곧바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일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론 일본군 요청을 수락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대한국민회와 연락을 가졌다. 대한독립군을 자신의 경계 지역에 주둔시키다가 봉천에서 쫓기면 길림으로, 길림에서 수색이 시작되면 다시 봉천으로 이렇게 왕래하라는 자세한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민족은 달라도 그는 항일투쟁의 대열에서 둘도 없는 동지였다. 맹부덕의 중국 군대는 모든 독립군 부대가 자신의 근거지로 이동하도록 은근히 도왔다. 이로써 북간도 일대의 모든독립군 부대 근거지 대이동은 일사불란하게 단행되었다.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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