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장은 뒤늦게 모든 음모와 흉계를 알았다. 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저놈들 뒤에는 늙은 관리사 이범윤이 노회한 미소를 지으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수백명 바람잡이들이 박문길(朴文吉)의 집 앞에 몰려와서 대문을 발로 박차 부수고 거기 머물던 홍대장을 끌어내어 결박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왕거우의 유사장네 집 튼튼한 곳간으로 거칠게 끌고 가서 가두었다. 그날부터 홍 대장을 심하게 문초하기 시작했다.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패고 쇠꼬챙이로 찌르며 각목으로 주리를 틀었다. 왜적들에게도 안 받던 갖은 고통과 고문을 연해주 동포에게 당하고 말았다. 왜적이라면 차라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겠지만 동족에게 당하는 더러운 유린과 모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홍 대장의 두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찌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 P440
"이 땅에서 왜적을 말끔히 물리치는 날, 그날에 나는 비로소죽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들과 싸우고 또 싸우리라. 없던 힘을 새로 내어 이젠 의병대가 아니라 독립군대의 조직으로 새롭게 출발하리라. 용맹한 군대를 새로 짜서 식민지가 되어버린 신음하는 내 조국으로 진격하리라." 이로써 홍 대장은 독립군 조직과 국내 진출사업 구상에 모든 힘을 쏟았다. 열혈청년들을 불러 모아 조직의 힘도 확충하고 강화시켰다. 독립군 모집대가 사방으로 떠나갔다. - P448
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국정(林國植, 1894~1921), 한상호(韓相浩, 1899~1921), 윤준희(尹俊熙, 1892~1921), 이용맹한 애국청년들의 이름을 길이 기억하자. 그들은 죽기 전크게 한 마디 외쳤다. "일제 강도 놈들이 우리의 작은 몸이야 죽일 수 있겠지만 조선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강해져만 갈 것이다. 들어라 일본아! 조선은곧 해방된다! 하지만 일본은 마침내 멸망하고야 말리라." 한편 최봉설은 뒤늦게 잡혀갔다가 놀랍게도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이름을 계림으로 바꾸었다. 최계립(崔桂立)은 과연 죽음터에서도 죽지 않는 놀라운 불사조였다. - P484
주린 범의 코앞에 서서 먹잇감 찾아준다는 못된 창귀(張鬼)처럼 밀정이란 것들은 자기를 버린다. 자기뿐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윗대 조상의 족보 따위도 썩은 짚단처럼 걷어차 버린다. 그의 창자는 일찍이 뒤집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환장자‘(換腸者)라고 부른다. 살아서 적의 꼭두각시 노릇이나하니 ‘괴뢰’(傀儡)요, 일제의 더러운 발톱이나 독한 송곳니 되는 일을 자청했기에 ‘조아‘ (UI)라고도 부른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책갈피에 몰래 숨어서 아, 지금도 기회 - P513
를 엿보고 있는 악질 밀때꾼의 무리여. 그들의 호시탐탐이여. - P514
"북로독군부 소속의 전체대원은 일본군 본대가 포위망에 들때까지 그곳에서 결코 자리를 뜨지 말고 철저히 매복하라! 나홍범도가 맨 먼저 권총을 발사하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 사격하라! 어떻게든 독 안에 들어온 왜적을 섬멸시키자!" 홍 장군 전술은 이번에도 『육도삼략』과 『손오병법』을 적절히응용하고 배합시킨 놀라운 활용이었다. 모든 부대가 산 높은곳에만 진을 치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다. 그래서 산 밑에 진을치면 적에게 포위되고 만다. 이때 음양을 두루 갖춘 조운(趙雲)의 진(陳)을 친다. 혹은 음(陰)의 지역 혹은 양(陽)의 지역에다산의 양쪽으로 두루 산병선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양에선 음을 방어하고 음에선 양의 방향을 지킨다. 진이 산의 왼쪽이면오른쪽을 방어하고 오른쪽 진이면 왼쪽을 방어한다. 적이 무리하게 몰려오면 아군이 일면 방어한다. 이때 급히 지름길을 - P534
고 다른 기습 부대는 적의 교통을 차단한다. 대장기를 높이 올리고 전군을 경계하며 왜적이 우리의 정보를 쉽게 알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을 옛 중국의 전법에서는 산성(山城)이라 일컫는다. - P535
그날 밤 홍 장군의 방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호랑이 같은 지휘관이었지만 만상이 잠들어자 앉은 깊은 밤, 장군의 눈은 서러운 물기에 젖었다. "이 아비는 항일투쟁에 바친 몸. 네가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생활도 해보았으련만…" 교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고 측은한 심정이 치밀어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심장은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듯했다. 급기야 아픈가슴을 쓸어안고 신음하며 엎드리니 온몸의 피란 피가 거꾸로솟는 것 같았다. "에구 불쌍한 것, 애처로운 것..." - P556
연길 주재 중국군 대장 맹부덕(德)은 곧바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일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론 일본군 요청을 수락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대한국민회와 연락을 가졌다. 대한독립군을 자신의 경계 지역에 주둔시키다가 봉천에서 쫓기면 길림으로, 길림에서 수색이 시작되면 다시 봉천으로 이렇게 왕래하라는 자세한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민족은 달라도 그는 항일투쟁의 대열에서 둘도 없는 동지였다. 맹부덕의 중국 군대는 모든 독립군 부대가 자신의 근거지로 이동하도록 은근히 도왔다. 이로써 북간도 일대의 모든독립군 부대 근거지 대이동은 일사불란하게 단행되었다.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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