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er Girl (Paperback) - 2016 Newbery
빅토리아 제이미슨 / Penguin Books Ltd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도전은 언제나 작은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전을 통해서 내가 변화하면 주변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주인공 Astrid가 Roller Girl이 되기까지 신체적/정신적 성장을 통해 친구/엄마와의 관계도 나아지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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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휴가를 내고 쉬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어느새 시간이 다 갔다.


아침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동네 산책을 50여분 정도 했다.

집에 들어와 신문을 보고 집안일 하고 책도 읽고 렌탈한 정수기 점검도 받고 나름 바쁜 하루를 보냈다.

어째 쉬는 날이 더 바쁜 듯하다^^




재밌게 읽었다.


주인공 ASTRID는 엄마가 데려간 장소에서 롤러걸 JAMMER인 RAINBOW BITE를 맞닥뜨린다.(무지개 양말을 신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ASTRID는 그녀를 보며 수퍼 히어로라고 생각한다. 꿈을 찾을 때 우상은 큰 역할을 하지 않나. 

베프인 NICOLE을 졸라 롤러 스케이트장을 가자고 하지만 NICOLE은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친구 관계는 틈이 벌어진다.

ASTRID는 롤러를 통해 한계에 부딪쳐 싸우는 법을 알게 되면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장한다.

이 때 역할을 한 것이 RAINBOW BITE와의 편지, 그리고 엄마의 응원이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롤러 시합에 출전할 기회가 생기면서 열심히 준비한다.

RAINBOW BITE가 하던 JAMMER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BLOCKER 역할 중 한명이 되었으나 최선을 다하면서 시합장에서 단연 주목을 받는다.

NICOLE과의 오해도 풀고 RAINBOW BITE 와 인사도 나누게 된다.


Everything used to be so simple. black and white. happy. sad. best friends. worst enemies.

Now everything seemed so... complex. I was in a no-man's-land of unchartered territories. 

Maybe i had to find my own path through it.




책 속에 실려 있는 사진들은 대부분 1950 or 1960년대가 많았다. 만약 당시를 짐작하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비교적 최근 사진으로 알았을 것 같다. 

컬러 사진이 더 많지만 흑백은 또 흑백의 나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도를 어떻게 이렇게 잡을 생각을 했을까 싶은 것 중에서 대부분은 사진을 잘 모르는 내가 보았을 때 구도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면에서 사진가는 건축가와 비슷하게 기술가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울 레이터가 화가이기도 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에도 놀랐다. 심지어 그는 화가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책에는 그가 그린 그림 몇 점도 함께 실려 있다.


나는 사진과 함께 실린 문장이 좋아서 잠시 쉬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작가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며 돌아다니지 않았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다.

- P48

사진이 중요한 순간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지만

사실, 사진은 미완성 세계의 작은 파편이자 기념품이다.

- P96


인생에서는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놓는가가 중요하다.

- P56

56페이지 같은 경우 작가의 생각인데 독자의 인생도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들이었다. 내가 내놓을 것은 무엇인지 어제 자면서도 생각했던 질문이었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읽기 시작했다.


장국영에 관한 스토리가 나온다.

아... 2003년으로 순간 이동을 하는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그리고 난징 대학살 사건이 등장한다.

장국영과 난징 대학살이 무슨 관련이 있지? 싶지만 이건 스포가 되므로 리뷰 때 적기로 한다.


문체 자체도 어렵지 않고 배경이 익숙해서인지 소설인 듯 실제인 듯 묘하게 어우러져서 내겐 읽기가 상대적으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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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21 0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거리의 화가님 롤러걸 읽으셨어요? 저도 재밌게 봤어요. 저는 비룡소 번역판으루다가 ㅋ
이 책 여전한 인기, 판매지수도 여전히 높네요^^

거리의화가 2022-07-21 06:41   좋아요 3 | URL
네 인기있을만하더라구요. 오래도록 사랑받는데는 이유가 있는듯ㅎㅎㅎ 그래픽 노블이라 원서로 읽기에도 부담이 없어 좋더군요.

새파랑 2022-07-21 0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엄청 알찬 휴가를 보내셨군요 ^^ 다양한 책을 읽으신거 같아 제가 뿌듯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7-21 07:45   좋아요 2 | URL
네 새파랑님 활기찬 하루 시작하셨나요?ㅎㅎ 회사 가는 출근 버스에서 댓글달고 있네요^^ 이달 초 두껍고 어려운 책들은 다 읽어놔서 편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읽고 있는중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mini74 2022-07-21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울 레이터, 아이가 들고가버렸어요 ㅎㅎ 장국영과 난징이라 궁금해요. 발 없는 새 라니, 제가 젊었던 시절 ㅎㅎ ~~~없는 새 시리즈가 한때 유행했어요. 울지 않는 새가 있다. 패봐라 지가 안 울고 배기나. 뭐 이런 썰렁한 ㅎㅎ 발 없는 새란 제목 보니 떠오르네요. 발 없는 새는 쉬지도 정착도 못하는 건가싶기도 하고. 이 책 읽고싶네요 *^^*

거리의화가 2022-07-21 14:5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이가 갖고 갔군요^^ 음 소설이라기보다는 뭔가 논픽션 듬뿍 들어간 이야기라서 저 같이 문학 잘 안 읽는 사람에게 술술 읽히는 책이에요. 최근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더 친숙한 것도 있고요. 장국영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발없는 새 제목 참 잘 지은 것 같아요^^

희선 2022-07-22 0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쉬는 날은 시간이 더 빨리 가지 않나 싶어요 거리의화가 님은 알차게 보내셨네요 걷기도 하시고 책도 보셨으니, 책은 마음 편하게 보셨겠습니다 오늘만 지나면 주말입니다 거리의화가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22 09:11   좋아요 2 | URL
ㅋㅋ 맞습니다. 묵혀 있던 집안일도 해야 하고 뭐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얼른 퇴근 시간이 와서 자유 시간이 돌아오면 좋겠어요~ㅎㅎ 희선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혜시와 공손룡 및 기타 변자

“변자”는 당시의 “유명 학파”로 “유명 학파”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변자의 저서는 ‘공손룡자’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됐다. 결론만 있어 어떤 전제로부터 추론되었는지 알 수 없다.
변자 학설은 명리(이름에 근거한 판단, 논리학)에 근거를 둔 것이다.

- 혜시와 장자
혜시는 송나라 사람으로 전해지며 장자와 벗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나이는 연장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혜시는 그리스로 따지면 소피스트와도 같았다고 보인다.

- ‘천하편’에 서술된 혜시 학설 10사
제1사: 털끝을 “가장 작은 것의 극한으로 규정”할 수 없고, 천지를 “가장 큰 것의 극한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
제2사: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인 것이 있을 수 없지만 면적은 있으므로 “그 크기는 천리에 이를” 수 있다.
제3사: 하늘은 땅만큼 낮고, 산은 못과 수평이 같다 ->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높다고 하면 만물은 높지 않은 것이 없고,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낮다고 하면 만물은 낮지 않은 것이 없다.
제4사: 태양은 남중하면서 기울고, 생물은 생기면서 죽는다. -> 생사는 상대적이고, 사물의 발전과정 중에는 생사의 두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제5사: 대동은 소동과 다르다. 이것이 소동이이다.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이것이 대동이이다. -> ‘모든 사람은 동물이다’는 인간이다는 점은 동물이다는 점을 함축하지만 동물이다는 점은 반드시 인간이다는 점을 함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소동이이다. ‘존재자’를 보편체로 보면 만물은 존재자라는 점에서 비슷하나, 각 사물을 개체로 보면 각 개체는 저마다 개성이 있으므로 다른 사물과는 다르다. 이것이 대동이이다.
제6사: 남방은 끝이 없지만 그러나 끝이 있다. -> 끝없는 남방도 사실은 끝이 있다.
제7사: 오늘 월나라로 가서 어제 그곳에 도착했다. -> 오늘과 어제는 동일한 기준에 따라야 하나 월나라에 간 오늘에 대한 어제는 아니다. 장자는 이 조목에 대해 비판했다.
제8사: 연환(연결된 고리)은 풀 수 있다. -> 연환은 완성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하므로 현재는 연환이어도 이미 연환이 아니다.
제9사: 나는 세계의 중앙을 안다. 연나라 북쪽과 얼나라 남쪽이 그것이다. -> 세계는 한계가 없으므로 어느 곳이든 중앙이고 원의 둘레는 시작한 곳이 없으므로 어느 곳이든 시작점이 될 수 있다. *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
제10사: 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몸이다. -> 우주 간의 사물은 모두 상호연계되어 있어서 “한 사람의 몸”과 같은 것이다.

- 혜시와 장자의 차이
장자의 학설은 “말”과 “지식”의 측면에서는 혜시와 일치한다. 그러나 장자는 혜시가 논변으로 명성을 추구하여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였기에 재능이 아깝다고 평했다.

- 공손룡의 “백마론”
공손룡(320?-250B.C)은 조나라 사람으로 혜시보다는 약간 뒤이지만 장자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공손룡은 “백마론”으로 유명해졌고 당시에도 “변사” 또는 “변자”로 불렸다.

- 공손룡이 말한 “지”의 의미
지와 물은 다르다. 모든 것들이 물(사물)이다. 그러나 이름은 실상을 지칭한다.

- 공손룡의 “견백론”
우리는 감각한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물에 표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 감각할 수 있지만 사유할 수 없고, 개념은 사유할 수 있지만 감각할 수 없다고 했던 것과 이어진다.

- 공손룡의 “지물론”
개별물은 존재하고, 보편자는 자존한다. 자존은 시공 속에 위치를 점한 것도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견백론과 이어지는 개념이다.

- 공손룡의 “통변론”
일반개념은 불변하지만, 개체는 변한다.

- “합동이”와 “이견백”
합동이는 혜시가 영수이고 이견백은 공손룡이 영수이다. 장자의 학설 일부는 해시와 부합되므로 “합동이”는 찬성했으나 “이견백”은 반대했다.

- 감각과 이지
혜시는 개체를 강조하였고 공손룡은 일반개념을 강조하였다.

혜시는 ‘여씨춘추’에 따르면 "거존(존귀한 지위의 폐지"를 주장했고, ‘한비자’에 따르면 "제나라와 초나라 간의 전쟁을 중지시키고자 했고", 『장자』 「천하편」에 따르면 "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몸이다"고 말했다. 즉 혜시 역시 묵가(墨家)와 마찬가지로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을 주장했다. 그러나 『장자』 「천하편」은 혜시를 묵가로 여기지 않았다. 묵가는 하나의 조직단체로서 응당 그 단체에 가입하여 "거자(巨子)를 성인으로 받들어 수령으로 삼고, 묵자의 정통 후계자일 것을 희망한" 자라야 비로소 묵학도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겸애와 비공의 설을 주장한다고 해서 곧 묵학도인 것은 아니었다. 또 혜시의 "거존"의 설은 자세히 고증할 수는없지만, 요점은 "거존"은 묵가의 상동설(尙同說)과는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맹자가 전쟁을 반대하고 공손룡 역시 언병(偃兵)을 주장한 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조류 중의 하나였고, 혜시나 공손룡이 그로써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장자』「천하편」은 혜시를 변자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말했다. "혜시는 논변으로써 천하의 일대 관심을 끌었고 변자들을 계도했다." - P314

혜시는…………사물의 본질과 법칙을 다음과 같이 논했다.
가장 큰 것은 그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至大無外). 그것이 태일(太一)이다. 가장 작은 것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小無內), 그것이 소일(小一)이다." - P316

혜시는 단지 지식(知識)으로써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천지는 한몸이다"는 설을 증명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실제로 "천지와 한몸인" 경지를 경험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자는 말(言) 외에 또 "무언(무言)"을 말했고, 지식(知) 외에 또 부지(不知)를 말했고, 이른바 "심제(心齋)", "좌망(坐忘)"을 통하여 실제로 망인아(我), 제사생(齊死生), 만물일체(萬物一體), 절대소요(絶對逍遙)의 경지에 도달했다. 따라서 「천하편」은 장자를 일컬어 "위로는 조물자와 더불어 노닐었으며 아래로는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작과 끝을 무시하는 자와 더불어 벗했다"고 한 반면, 혜시는 "도덕수양이 빈약하고 사물의 해설 따위에 뛰어났은즉 매우 협착한 길이었다"고 평했다. 이로써 보건대 장자의 학문은 참으로 혜시에서 다시 진일보한 것이었다. - P324

‘힘 (자체)‘는 대상을 고정하지 않은 힘이다(白者不定所白). 망각해도 상관 없다. 그러나 ‘흰말’의 경우는 힘이 대상을 고정한 힘이다. ‘대상을 고정한 힘’은 ‘힘 자체’는 아니다. - P329

물(物)이란 시간과 공간 중에 위치를 점하는것으로서, 현대철학에서의 구체적인 개체이다. 지(指)란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이다. 한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은 개체이므로 곧, "이름은 실상[개체]을 지칭한다." 또 한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은 보편자(共相 : 일반개념)이다. - P331

굳음과 힘은(돌과)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형이상학적으로 "굳음"과 "힘"의 보편자는 모두 독립적으로 자존(潛存)함을 밝힌것이다. "굳음"과 "힘"의 보편자가 비록 독립적으로 스스로 굳고스스로 흴 수 있을지라도, 인간이 감각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구체적인 사물에 표현된 것에 한한다. 즉 인간은 단지 사물에 깃든 굳음, 사물에 깃든 힘만을 감각할 수 있을 뿐이다. - P336

"변하는 것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해도 되는가?"
"된다."
"오른쪽이 [사물에] 깃들어 있을 경우(右有與), ‘변한다"고 말해도 되는가?"
"된다."
"그러면 무엇이 변하는가?"
"오른쪽이 변한다."

일반개념은 불변하나 개체는 항상 변하므로, "변하는 것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른쪽이 [사물에] 깃들어 있을 경우"의 "깃듬(與)"은, 즉 「견백론」에서 "굳음은 돌에 깃들어서만(石) 굳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고 한 때의 "깃듬"이다. 대체로 일반개념 자체는 불변일지라도 일반개념을 나타내고 있는 개체는 가변적이다. 따라서 ‘오른쪽의 일반개념은 불변이지만 "[사물에] 깃들어 있는" 오른쪽은 가변적이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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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도가 중의 노자학

‘노자’라는 책은 초나라 사람인 이이가 쓴 전국시대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은 이이를 전설 속의 노담으로 병치시켰는데 노담의 모습은 신령과도 같아 전설 속 인물의 모습이다.
이이가 쓴 기록에 노담의 전설이 더해진 후 순자, 장자 이후에는 노자학을 노담의 학문으로 여겼다.

- 노자학과 장자학
노자학과 장자학의 학설은 같은 듯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자.
전국시대 이후 노자학은 한대 초엽에, 장자학은 한대 말엽에 성행했다.

- 도, 덕
고대의 도는 사람의 도인 인도를 일컬었으나, 노자는 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천지만물의 생성에 도라는 것이 있다라고 이름지었다.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른다.

- 사물에 대한 관찰
사물이 발달하여 극에 이르면 그 반대로 흐른다. 마치 정-반-합의 변증법을 떠올리게 한다. ‘노자’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이라 했다.

- 처세의 방법
만약 어떤 모습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 반대의 측면에 머물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반-합의 논리다.

- 정치철학
종종 사회-정치 제도는 원래의 목적과는 상반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욕망과 지식에 대한 ‘노자’의 태도
욕망을 만족시키려 하느니 차라리 욕망을 줄이려 애쓰는 것이 낫다. 욕망을 지식에까지 확장시킨다. 헌데 끝을 모르는 욕망을 어찌 줄일 수 있나. 결국 만족에 가 닿지는 못할 것 같다는 면에서 ‘노자’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간다.

- 이상적인 인격과 이상적인 사회
덕이 두터운 이는 갓난아이에 비할 수 있다.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원시 사회가 아니라 소박함을 지키는 사회이다. 야만을 함유한 문명의 경지로 오래 지속 가능한 문명이다.

"초연히 홀로 신명과 더불어 거했다"는 말과 "홀로 천지의 정신과 더불어 교류했다"는 말만이 같은 의미이다. 이외에, 『노자』학은 여전히 선후(先後), 자웅(雌雄), 영욕(榮辱), 허실(虛實) 따위의 분별에 주목하여, "단단하면 깨지고 예리하면 꺾임"을 인식하고, 깨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술(術)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자학은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종을 무시한다." 『노자』학에서 주목한 내용은 장자학에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것들이었다." - P279

도가라는 명칭은 한나라 사람이 수립했다. 그들이 노장을 같은 도가로 여긴 것은, 『노자』학과 장자학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다같이 당시의 모든 전통적인 사상과 제도에 대한 반대파였기 때문이고, 또『노자』학과 장자학이 논한 도·덕의 두 근본 관념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나라 사람이 그들을 도가로 통칭한 이유였다. - P281

초나라 사람은 주(周)나라 문화를 동경할 경우 북으로 유학 가야 비로소 그것을 획득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나라 사람은 비록 주나라 문화의 혜택을 입지는 못했지만, 또한 주나라 문화의 구속도 받지 않았던 만큼 그들에게는 극히 신선한 사상이 많았다. 『한서』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초나라는 양자강과 한수(漢水]를 비롯하여 강과 못 그리고 산림의 풍요한 혜택을 입어 인민들은 먹을 것이 항상 풍족했다. 그래서 나약하기는 했으나 삶을 즐겼고 재물을 축적할 줄 몰랐다. - P281

사물은 유(有)라고 이름할 수 있지만, 도는 사물이 아니므로 다만 무(無)라고만 일컬을 수 있다. 그러나 도는 천지만물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유라고도 일컬을 수 있다. 따라서도는 유무를 겸한 말인데, 무는 도의 체(體)를, 유는 도의 용(用)을일컫는다. - P285

도라는 것은 아련하고 어렴풋하다(侊憁).
어렴풋하고 아련하지만, 그 가운데에 형상이 존재하고,
이아련하고 어렴풋하지만, 그 가운데에 실체가 존재하고,
그윽하고 아득하지만, 그 가운데에 정기가 서려 있고,
그 정기가 너무나도 진실하여, 그 가운데에 증표가 있도다! - P287

"덕은 도의 거처(舍)이다." 사(舍)는 당연히 머물러 깃든다(舍寓)는 의미로, 덕은 바로 도가 사물에 깃든 것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덕이란 사물이 도로부터 얻은 바에 의해서 그 사물이되는 것을 말한다. - P288

인간사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통칙(通則:常)은 다음과 같다.
천하의 정복은 영원히(常) 사건을 일으켜서 된 적이 없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常) 완성단계에서 그르친다. 합니다
살생의 주관자(司殺者 : 즉 天道)가 살생하는 것이 통칙(常)이다.
천도는 편애가 없는지라, 영원히(常) 선인(善人) 편에 있다. - P290

만물은 아무리 번성해도, 저마다 그 근본(根:道)으로 복귀한다.
근본(도)으로 복귀하는 것이 바로 "정적(靜 : 만물의 본질적 상태)"이고,
그것을 일컬어 "복명(復命 : 운명에의 복종)"이라고 한다.
복명(復命)이 바로 "통칙(常 : 영원한 법칙)"이고,
통칙(常)을 아는 것이 바로 "개명(明)"이다.

통칙(常)을 아는 사람은 관용적이고(容),
관용적이면 공평무사하고(公),
공평무사하면 포용적이고(周),
포용적이면 광대하고(大),
광대하면 도에 부합하고(道),
도에 부합하면 영구하고(久),
종신토록 위태롭지 않다(歿身不殆). - P291

오직 굽음을 내포한 곧음, 서투름을 내포한 기교라야 지극한 곧음, 지극한 기교인즉, "정"과 "반"의 "합"이다. 따라서 지극한 곧음은 굽은 것이 아니라 굽은 것 같을 뿐이고, 지극한 기교는 서툰 것이 아니라 서툰 것 같을 뿐이다. "통칙을 아는 개명한" 사람은 "웅성을 알고 자성을 지켜", 항상 "합(合)"의 경지에 처하므로 "종신토록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 P297

사회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원시사회는 이름이 없는 이른바 "박(樸 : 제작하지 않은 원재)"이고, 제작에는 이름이 있으니 이른바 "박이 흩어져 기물이 되면, 성인은 그 기물들을 사용하여 백관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말이다. "이름이 이미 생겼으면", 오직 "그칠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을 수 있으므로," 너무 많이 제작하여 그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P301

욕망을 줄이는 것(寡欲)은 즉 절제이다.
욕망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에 『노자』는 또 지식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1) 지식 자체가 본래 욕망의 한 대상이고, (2)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욕망의 대상을 많이 알게 하여 "만족할 줄 모르게(不知足)" 하고, (3)지식은 우리가 노력하여 욕망의 대상을 획득하도록 도움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칠 줄 모르게(不知止)" 하기 때문이다. 즉 "배움(학문)의 추구는 [욕망과 지식을] 끊임없이 더하는 것이다"는 말이다. - P303

나는 홀로 담박하여 아무런 동요가 없는 것이, 마치 영아(嬰兒 : 젖먹이)가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것과 같도다! - P304

국가는 작고 그 구성원은 적어야 한다.
설사 아주 우수한 효력의 기물이 있더라도 [쓸데가 없어]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시하고 멀리 이사가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사용할 데가 없고,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결승문자[結繩文字]를 사용하게 하고,
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안온하게 거처하고, 전원생활(俗)을 즐기도록 한다.
이웃 나라가 앞에 보이고 닭 울고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올지라도,
사람들은 늙어가도록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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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7-19 2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노자 철학이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위를 행한다는 것, 문자를 부정하면서 그 사상을 책으로 남기는 부분이 그런 예라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노자의 철학에서 제국의 모습을 발견하는 해설에 한편으로 수긍하게 됩니다...

거리의화가 2022-07-20 11:39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저는 노자 하면 무위, 은둔하는 삶, 자연과 물아일체 이렇게 생각했는데요. 읽어보니 범위가 상당히 넓더군요. 욕망에 대한 것이나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를 생각해보면 말이죠. 정반합의 이치도 그렇습니다^^

페크pek0501 2022-07-20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자가 말하는 소박함을 지키는 사회, 마음 끌리네요. ^^

거리의화가 2022-07-20 22:47   좋아요 1 | URL
페크님 저도 노자의 이상 사회가 좋더군요. 적당한 기준이라고 할까요. 바닥도 아니고 과한 것도 아닌 어느 정도의 만족함인 것 같아서 말이죠.
 

전국시대의 “백가 학설”

맹자 시대에 제나라 직하는 학술과 사상의 중심지였다.
맹자 역시 직하에 거하면서 “정치에 종사하지 않고 학술적 의론에만 전념했”다.
직하의 여러 선생들의 저서는 현재 모두 찾을 수 없다.

양주의 학설은 맹자가 크게 알린 것 외에는 그후 언급한 사람이 매우 적다.
양주의 주장은 맹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양자(楊子 : 즉 양주)는 ‘나 자신만을 위한다(爲我)‘는 주장을 하여, 자기의털 하나를 뽑으면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해도 행하지 않았다." - P217

맹자가 "양주의 위아주의는 임금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한 경우이다. "자신만을 위함(爲我)"은 오로지 "자기 한 몸 깨끗하게 하려는 일"이고, "임금의 존재를 부정함"은 "대륜을 어지럽힌 일이다." 이런 소극적인 "은자"가 바로 양주 학파의 선구자였다. - P222

양주 이후에 노장(老莊)의 무리가 흥기했다고 하겠는데, 노장은 모두양주의 실마리를 계승했고 또 그들의 사상 중에는 양주가 밝히지 못한 바를 탁월하게 밝힌 부분이 있어서 드디어 양주라는 이름은 노장에 가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양주의 언설은 소멸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소멸하지 않았다. - P223

양주(일파)가 말한 것은 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생을 손상시키지 않을 방법(道)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은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은 항상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자신을 손상시켜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의 양주의 방책은 오직 피(避 :도피)라는 한 글자의 비법이있었을 뿐인 듯하다. 예컨대 "은자"의 "피세(避世)"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변화 무궁해서 피하지 못할 해는 늘 있는 것이다. - P231

내게 큰 재앙(患)이 있는 이유는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몸이 없다면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깨달음(大澈大悟)의 말이다. 장자학은 이것을 계승하여 "사생을 하나로 여기고 남과 나를 동일시함(同人我)"에 대해서 논했다. [주관적으로] 해를 해로 여기지 않는다면 해는 비로소 진정 [우리를] 손상시킬 수 없다. 이로써 보건대, 노자의 학설은 양주의 학설의 진일보요, 장자의 학설은 그것의 진이보라고할 수 있다." - P232

진중자는 부귀를 버리고 오릉에 살면서, "자신은 짚신을 삼고 처는길쌈하며", 형의 봉록과 집은 "불의하다고 여겼다." 그가 왜 그것을 불의하다고 여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장은 근거가 있고 말은 이치가 서 있어서 우직한 대중을 기만하고 미혹하기에 충분했음"에 틀림없다. 또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나서 당시 통치계급의 깊은 증오를 받았으니, 한 시대의 명인(名人)이었음에 틀림없다. - P234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농가학파는 "성왕을 받들지 않았고, 임금과 신하 모두 쟁기질해야 한다고 하여 상하의 질서를 어지렵혔다." 이 학파의 학자들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 극히 새롭고 이상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 P236

맹자는 "인성은 본래 선하다고 설교했다." 그리하여 인성과 도덕의 관계는 당시에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 맹자와 이 문제를 논변하여 맹자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 고자(告子)가 가장 유명했다. - P236

고자에 따르면 성은 단지 생래적으로 그런 인간의 속성(性質)이다.
즉 "생 그 자체가 성이다"는 말이다. 이 성은 바로 천연의 산물로서 예컨대 물이나 버들처럼, 선(善)이랄 것도 없고 불선(不善)이랄 것도 없다. 즉 "성에는 선도 없고 불선도 없다"는 말이다. 후천적으로 생긴 선악은 교육과 습관의 결과이다. - P238

대략 고자의 부동심은 강제로 부동(不動)케 하는 것이고, 맹자의 부동심은 함양의 결과, 즉 "의로운 행위를 축적해서 생긴 것"으로서, 저절로 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고자는 의는 외적인 것임(外)을 주장했기 때문에, 맹자가 말한 "의로운 행위를 축적해서 생긴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없었다. 따라서 맹자는 말하기를 "고자는 의를 이해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의를 외적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 P239

『장자』 「천하편」과 앞에 인용한 책들의 내용에서 보면, 윤문과송경의 학설은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1)"만물을 대하면서 편견(울타리)의 제거를 최우선시한다."
(2)"마음의 관용이 바로 마음의 작용이라고 언명했다."
(3) "본심은 조금 욕망한다(情欲寡)."
(4) "모욕당함은 수치가 아니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의 싸움을 막는다."
(5) "침공금지와 전쟁종식의 주장으로 세상의 전쟁을 막는다."
(6) "천하의 안녕을 도모하여 인민의 목숨을 살리고, 남과 나의 생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서 그친다." - P244

「천하편」의 말에서 보면 팽몽 등의 학설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만물의 평등성(齊物)을 으뜸으로 삼는다."
(2) "공변되어 편당이 없고 평이하여 사실이 없고 결연히 아집이 없다."
(3) "지식을 폐기하고 자아를 버려 부득이한 길만 따른다."
(4) "성현은 필요 없다(無用賢聖)."
(5) "흙덩이는 도를 상실하지 않는다(塊不失道)." - P253

음양오행가는 제(齊)나라가 근거지였다. 제나라 지역은 바다에 연해 있어서 비교적 신기한 견문이 많았던 까닭에 제나라 사람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잘했던 것이다. 전국시대 제자(諸子)는 황당한 이야기를 언급할 때면 매번 제나라 사람의 말이라고 했다.
제나라 사람들의 허풍은 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했다. 그 사람들은 허풍스러웠기 때문에 황당한 말을 좋아했고, 따라서 추연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학설이 출현했던 것이다. - P271

고대의 술수(術數) 가운데 "천문", "역보", "오행" 등은 모두 이른바 "천인지제(天人之際)"에 주목하여 천도와 인간사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더욱 이런 종교적 사상을 부연하고 이론화하여 하나의 일관된 우주관으로 성립시켰다. 또 상상력을 구사하여 자연계와 인간계에 대해서 갖가지로 추측했다. 이런 사람들이 곧 한인(漢人)이 일컬은 음양가학파(陰陽家者)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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