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백가 학설”
맹자 시대에 제나라 직하는 학술과 사상의 중심지였다.
맹자 역시 직하에 거하면서 “정치에 종사하지 않고 학술적 의론에만 전념했”다.
직하의 여러 선생들의 저서는 현재 모두 찾을 수 없다.

양주의 학설은 맹자가 크게 알린 것 외에는 그후 언급한 사람이 매우 적다. 양주의 주장은 맹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양자(楊子 : 즉 양주)는 ‘나 자신만을 위한다(爲我)‘는 주장을 하여, 자기의털 하나를 뽑으면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해도 행하지 않았다." - P217
맹자가 "양주의 위아주의는 임금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한 경우이다. "자신만을 위함(爲我)"은 오로지 "자기 한 몸 깨끗하게 하려는 일"이고, "임금의 존재를 부정함"은 "대륜을 어지럽힌 일이다." 이런 소극적인 "은자"가 바로 양주 학파의 선구자였다. - P222
양주 이후에 노장(老莊)의 무리가 흥기했다고 하겠는데, 노장은 모두양주의 실마리를 계승했고 또 그들의 사상 중에는 양주가 밝히지 못한 바를 탁월하게 밝힌 부분이 있어서 드디어 양주라는 이름은 노장에 가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양주의 언설은 소멸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소멸하지 않았다. - P223
양주(일파)가 말한 것은 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생을 손상시키지 않을 방법(道)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은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은 항상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자신을 손상시켜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의 양주의 방책은 오직 피(避 :도피)라는 한 글자의 비법이있었을 뿐인 듯하다. 예컨대 "은자"의 "피세(避世)"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변화 무궁해서 피하지 못할 해는 늘 있는 것이다. - P231
내게 큰 재앙(患)이 있는 이유는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몸이 없다면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깨달음(大澈大悟)의 말이다. 장자학은 이것을 계승하여 "사생을 하나로 여기고 남과 나를 동일시함(同人我)"에 대해서 논했다. [주관적으로] 해를 해로 여기지 않는다면 해는 비로소 진정 [우리를] 손상시킬 수 없다. 이로써 보건대, 노자의 학설은 양주의 학설의 진일보요, 장자의 학설은 그것의 진이보라고할 수 있다." - P232
진중자는 부귀를 버리고 오릉에 살면서, "자신은 짚신을 삼고 처는길쌈하며", 형의 봉록과 집은 "불의하다고 여겼다." 그가 왜 그것을 불의하다고 여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장은 근거가 있고 말은 이치가 서 있어서 우직한 대중을 기만하고 미혹하기에 충분했음"에 틀림없다. 또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나서 당시 통치계급의 깊은 증오를 받았으니, 한 시대의 명인(名人)이었음에 틀림없다. - P234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농가학파는 "성왕을 받들지 않았고, 임금과 신하 모두 쟁기질해야 한다고 하여 상하의 질서를 어지렵혔다." 이 학파의 학자들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 극히 새롭고 이상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 P236
맹자는 "인성은 본래 선하다고 설교했다." 그리하여 인성과 도덕의 관계는 당시에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 맹자와 이 문제를 논변하여 맹자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 고자(告子)가 가장 유명했다. - P236
고자에 따르면 성은 단지 생래적으로 그런 인간의 속성(性質)이다. 즉 "생 그 자체가 성이다"는 말이다. 이 성은 바로 천연의 산물로서 예컨대 물이나 버들처럼, 선(善)이랄 것도 없고 불선(不善)이랄 것도 없다. 즉 "성에는 선도 없고 불선도 없다"는 말이다. 후천적으로 생긴 선악은 교육과 습관의 결과이다. - P238
대략 고자의 부동심은 강제로 부동(不動)케 하는 것이고, 맹자의 부동심은 함양의 결과, 즉 "의로운 행위를 축적해서 생긴 것"으로서, 저절로 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고자는 의는 외적인 것임(外)을 주장했기 때문에, 맹자가 말한 "의로운 행위를 축적해서 생긴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없었다. 따라서 맹자는 말하기를 "고자는 의를 이해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의를 외적인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 P239
『장자』 「천하편」과 앞에 인용한 책들의 내용에서 보면, 윤문과송경의 학설은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1)"만물을 대하면서 편견(울타리)의 제거를 최우선시한다." (2)"마음의 관용이 바로 마음의 작용이라고 언명했다." (3) "본심은 조금 욕망한다(情欲寡)." (4) "모욕당함은 수치가 아니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의 싸움을 막는다." (5) "침공금지와 전쟁종식의 주장으로 세상의 전쟁을 막는다." (6) "천하의 안녕을 도모하여 인민의 목숨을 살리고, 남과 나의 생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서 그친다." - P244
「천하편」의 말에서 보면 팽몽 등의 학설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만물의 평등성(齊物)을 으뜸으로 삼는다." (2) "공변되어 편당이 없고 평이하여 사실이 없고 결연히 아집이 없다." (3) "지식을 폐기하고 자아를 버려 부득이한 길만 따른다." (4) "성현은 필요 없다(無用賢聖)." (5) "흙덩이는 도를 상실하지 않는다(塊不失道)." - P253
음양오행가는 제(齊)나라가 근거지였다. 제나라 지역은 바다에 연해 있어서 비교적 신기한 견문이 많았던 까닭에 제나라 사람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잘했던 것이다. 전국시대 제자(諸子)는 황당한 이야기를 언급할 때면 매번 제나라 사람의 말이라고 했다. 제나라 사람들의 허풍은 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했다. 그 사람들은 허풍스러웠기 때문에 황당한 말을 좋아했고, 따라서 추연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학설이 출현했던 것이다. - P271
고대의 술수(術數) 가운데 "천문", "역보", "오행" 등은 모두 이른바 "천인지제(天人之際)"에 주목하여 천도와 인간사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더욱 이런 종교적 사상을 부연하고 이론화하여 하나의 일관된 우주관으로 성립시켰다. 또 상상력을 구사하여 자연계와 인간계에 대해서 갖가지로 추측했다. 이런 사람들이 곧 한인(漢人)이 일컬은 음양가학파(陰陽家者)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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