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시와 공손룡 및 기타 변자
“변자”는 당시의 “유명 학파”로 “유명 학파”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변자의 저서는 ‘공손룡자’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됐다. 결론만 있어 어떤 전제로부터 추론되었는지 알 수 없다.
변자 학설은 명리(이름에 근거한 판단, 논리학)에 근거를 둔 것이다.
- 혜시와 장자
혜시는 송나라 사람으로 전해지며 장자와 벗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나이는 연장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혜시는 그리스로 따지면 소피스트와도 같았다고 보인다.
- ‘천하편’에 서술된 혜시 학설 10사
제1사: 털끝을 “가장 작은 것의 극한으로 규정”할 수 없고, 천지를 “가장 큰 것의 극한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
제2사: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인 것이 있을 수 없지만 면적은 있으므로 “그 크기는 천리에 이를” 수 있다.
제3사: 하늘은 땅만큼 낮고, 산은 못과 수평이 같다 ->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높다고 하면 만물은 높지 않은 것이 없고,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낮다고 하면 만물은 낮지 않은 것이 없다.
제4사: 태양은 남중하면서 기울고, 생물은 생기면서 죽는다. -> 생사는 상대적이고, 사물의 발전과정 중에는 생사의 두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제5사: 대동은 소동과 다르다. 이것이 소동이이다.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이것이 대동이이다. -> ‘모든 사람은 동물이다’는 인간이다는 점은 동물이다는 점을 함축하지만 동물이다는 점은 반드시 인간이다는 점을 함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소동이이다. ‘존재자’를 보편체로 보면 만물은 존재자라는 점에서 비슷하나, 각 사물을 개체로 보면 각 개체는 저마다 개성이 있으므로 다른 사물과는 다르다. 이것이 대동이이다.
제6사: 남방은 끝이 없지만 그러나 끝이 있다. -> 끝없는 남방도 사실은 끝이 있다.
제7사: 오늘 월나라로 가서 어제 그곳에 도착했다. -> 오늘과 어제는 동일한 기준에 따라야 하나 월나라에 간 오늘에 대한 어제는 아니다. 장자는 이 조목에 대해 비판했다.
제8사: 연환(연결된 고리)은 풀 수 있다. -> 연환은 완성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하므로 현재는 연환이어도 이미 연환이 아니다.
제9사: 나는 세계의 중앙을 안다. 연나라 북쪽과 얼나라 남쪽이 그것이다. -> 세계는 한계가 없으므로 어느 곳이든 중앙이고 원의 둘레는 시작한 곳이 없으므로 어느 곳이든 시작점이 될 수 있다. *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
제10사: 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몸이다. -> 우주 간의 사물은 모두 상호연계되어 있어서 “한 사람의 몸”과 같은 것이다.
- 혜시와 장자의 차이
장자의 학설은 “말”과 “지식”의 측면에서는 혜시와 일치한다. 그러나 장자는 혜시가 논변으로 명성을 추구하여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였기에 재능이 아깝다고 평했다.
- 공손룡의 “백마론”
공손룡(320?-250B.C)은 조나라 사람으로 혜시보다는 약간 뒤이지만 장자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공손룡은 “백마론”으로 유명해졌고 당시에도 “변사” 또는 “변자”로 불렸다.
- 공손룡이 말한 “지”의 의미
지와 물은 다르다. 모든 것들이 물(사물)이다. 그러나 이름은 실상을 지칭한다.
- 공손룡의 “견백론”
우리는 감각한 것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물에 표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 감각할 수 있지만 사유할 수 없고, 개념은 사유할 수 있지만 감각할 수 없다고 했던 것과 이어진다.
- 공손룡의 “지물론”
개별물은 존재하고, 보편자는 자존한다. 자존은 시공 속에 위치를 점한 것도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견백론과 이어지는 개념이다.
- 공손룡의 “통변론”
일반개념은 불변하지만, 개체는 변한다.
- “합동이”와 “이견백”
합동이는 혜시가 영수이고 이견백은 공손룡이 영수이다. 장자의 학설 일부는 해시와 부합되므로 “합동이”는 찬성했으나 “이견백”은 반대했다.
- 감각과 이지
혜시는 개체를 강조하였고 공손룡은 일반개념을 강조하였다.

혜시는 ‘여씨춘추’에 따르면 "거존(존귀한 지위의 폐지"를 주장했고, ‘한비자’에 따르면 "제나라와 초나라 간의 전쟁을 중지시키고자 했고", 『장자』 「천하편」에 따르면 "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몸이다"고 말했다. 즉 혜시 역시 묵가(墨家)와 마찬가지로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을 주장했다. 그러나 『장자』 「천하편」은 혜시를 묵가로 여기지 않았다. 묵가는 하나의 조직단체로서 응당 그 단체에 가입하여 "거자(巨子)를 성인으로 받들어 수령으로 삼고, 묵자의 정통 후계자일 것을 희망한" 자라야 비로소 묵학도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겸애와 비공의 설을 주장한다고 해서 곧 묵학도인 것은 아니었다. 또 혜시의 "거존"의 설은 자세히 고증할 수는없지만, 요점은 "거존"은 묵가의 상동설(尙同說)과는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맹자가 전쟁을 반대하고 공손룡 역시 언병(偃兵)을 주장한 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조류 중의 하나였고, 혜시나 공손룡이 그로써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장자』「천하편」은 혜시를 변자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말했다. "혜시는 논변으로써 천하의 일대 관심을 끌었고 변자들을 계도했다." - P314
혜시는…………사물의 본질과 법칙을 다음과 같이 논했다. 가장 큰 것은 그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至大無外). 그것이 태일(太一)이다. 가장 작은 것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小無內), 그것이 소일(小一)이다." - P316
혜시는 단지 지식(知識)으로써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천지는 한몸이다"는 설을 증명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실제로 "천지와 한몸인" 경지를 경험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자는 말(言) 외에 또 "무언(무言)"을 말했고, 지식(知) 외에 또 부지(不知)를 말했고, 이른바 "심제(心齋)", "좌망(坐忘)"을 통하여 실제로 망인아(我), 제사생(齊死生), 만물일체(萬物一體), 절대소요(絶對逍遙)의 경지에 도달했다. 따라서 「천하편」은 장자를 일컬어 "위로는 조물자와 더불어 노닐었으며 아래로는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작과 끝을 무시하는 자와 더불어 벗했다"고 한 반면, 혜시는 "도덕수양이 빈약하고 사물의 해설 따위에 뛰어났은즉 매우 협착한 길이었다"고 평했다. 이로써 보건대 장자의 학문은 참으로 혜시에서 다시 진일보한 것이었다. - P324
‘힘 (자체)‘는 대상을 고정하지 않은 힘이다(白者不定所白). 망각해도 상관 없다. 그러나 ‘흰말’의 경우는 힘이 대상을 고정한 힘이다. ‘대상을 고정한 힘’은 ‘힘 자체’는 아니다. - P329
물(物)이란 시간과 공간 중에 위치를 점하는것으로서, 현대철학에서의 구체적인 개체이다. 지(指)란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이다. 한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은 개체이므로 곧, "이름은 실상[개체]을 지칭한다." 또 한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은 보편자(共相 : 일반개념)이다. - P331
굳음과 힘은(돌과)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형이상학적으로 "굳음"과 "힘"의 보편자는 모두 독립적으로 자존(潛存)함을 밝힌것이다. "굳음"과 "힘"의 보편자가 비록 독립적으로 스스로 굳고스스로 흴 수 있을지라도, 인간이 감각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구체적인 사물에 표현된 것에 한한다. 즉 인간은 단지 사물에 깃든 굳음, 사물에 깃든 힘만을 감각할 수 있을 뿐이다. - P336
"변하는 것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해도 되는가?" "된다." "오른쪽이 [사물에] 깃들어 있을 경우(右有與), ‘변한다"고 말해도 되는가?" "된다." "그러면 무엇이 변하는가?" "오른쪽이 변한다."
일반개념은 불변하나 개체는 항상 변하므로, "변하는 것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른쪽이 [사물에] 깃들어 있을 경우"의 "깃듬(與)"은, 즉 「견백론」에서 "굳음은 돌에 깃들어서만(石) 굳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고 한 때의 "깃듬"이다. 대체로 일반개념 자체는 불변일지라도 일반개념을 나타내고 있는 개체는 가변적이다. 따라서 ‘오른쪽의 일반개념은 불변이지만 "[사물에] 깃들어 있는" 오른쪽은 가변적이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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