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오리엔탈리즘의 구성과 재구성

제1장 재설정된 경계선, 재정의된 문제, 세속화된 종교

부바르와 페퀴세는 관념과 현실을 함께거래하지 않는 것이 유리함을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의 결말에는 두 사람이 좋아하는 사상을 책으로부터 종이 위에 믿음직스럽게 복사하는 것에완전히 만족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지식은 더 이상 현실에 적용될필요가 없고, 침묵 속에 주석도 없이 텍스트로부터 텍스트로 복사되는것이다. 여러 가지 관념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 채 전달되고 확대되며,
누구의 것이라고 정해지지도 않은 채 반복되어 간다. 문자 그대로 상투적 관념이 된다. 그것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조건 반복되고 반향되고 다시 반향되기 위하여 그것들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세》를 위한 플로베르의 초고로부터 이끌어 낸 이 짧은에피소드는, 지극히 압축된 형태로 오리엔탈리즘의 특수한 근대적 구조의 틀을 보여 준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이란 19세기 유럽사상이 품었던 세속적(그리고 사이비 종교적인) 신앙 속의 한 가지 규율에 불과했다는것이다. - P211

그 제1의 요소로 동양은 이슬람의 여러 지역을 넘어 훨씬 멀리까지 확대되었다. 이 양적인 변화의 대부분은 유럽이 끊임없이 나머지 세계를탐험하고, 그 탐구의 범위를 확대한 결과였다. 기행문학, 공상적 유토피아, 도덕적 항해기, 과학적 조사보고서의 영향이 증대됨에 따라 동양은더욱더 분명하고 확대된 형태가 되었다. -> 확대 - P211

제2의 요소로서,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더욱 지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조장한 사람들은 여행가와 탐험가뿐만이 아니라, 유럽의경험과 더욱 오래된 다른 여러 문명과의 비교가 유효한 것임을 인정한역사가들이기도 했다. -> 역사적 대결 - P212

사상가들의 일부에는 비교연구와 ‘중국으로부터 페루까지‘ 확대되는 인류의 비교에 의한 명확한 개관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대상의 공감적 동일화 sympathetic identification에 의해 초월하고자 하는 경향도존재했다. 이것이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길을 준비하는 제3의 18세기적요소이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18세기적인 관념이다. 그중에서도 비코, 헤르더, 하만의 신념에 따르면, 어떤 문화도 유기적이며 내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하나의 정신, 영혼, 풍토, 민족이념에의해 통합되어 있는 것이므로 외부인이 그것을 통찰하고자 한다면, 역사적 공감이라는 행위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 (역사적) 공감 - P213

오리엔탈리즘의 근대적 구조에 이르는 길을 준비한 제4의 요소는, 자.
연과 인간을 유형으로 분류하려는 모든 충동이었다. 이 점에 관하여 가장 위대한 이름이 린네와 뷔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신체적인(그리고 도덕적 · 지적·정신적인) 확대ㅡ곧 사물의 전형적인 물질성-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특징적인 요소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대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지적 과정은 지극히 넓은 범위에 미쳤다. 린네에 의하면, 어떤 자연의 유형에 주어진 의견은 모두 "수량, 형태, 비율, 상황의 연구결과여야 한다"는 것이고, 실제로 칸트, 디드로,
존슨의 저서를 읽어보면, 일반적인 특색을 각색하고 방대한 수의 대상을 더욱 소수로 만들어 질서를 부여하며 서술할 수 있는 유형으로 환원시키려는 유사한 경향이 여러 곳에 존재함을 알 수 있다. -> 분류 - P215

그러나 이러한 상호 연관된 여러 요소가 세속화를 추진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고 하여도, 인간의 역사. 운명. ‘실존적 패러다임‘의 낡은종교적 여러 패턴이 간단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것들은 이미열거한 여러 가지 세속적인 틀 속에 재구성되었고 재배치되었으며 재배분되었다. 왜냐하면 동양을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분명히 이러한속적인 틀에 대응하는 세속적인 어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령 오리엔탈리즘이 그러한 어휘나 개념의 저장고이며, 그것을 구사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공급했다―그것이야말로 18세기 말 이래의오리엔탈리즘이 실제로 행한 것이고, 실제로 오리엔탈리즘이란 그러한것이었다고 하여도, 오리엔탈리즘은 재구성된 종교적 충동, 곧 자연화된 초자연적인 신앙을 그 담론의 조류로 제거하지 않고 계속 보존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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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연휴를 알차게 보냈다. 나는 참 잘 보냈는데 옆지기는 3일 내내 출근해서 마음이 무겁기는 했다. 



4월에는 총 10권을 읽었다. 늘 8~9권 정도인데 시집이 한 권 포함되어서 10권이 된 것 같다. 직장인이여서 주말에 대부분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사기세가
사기열전 1, 2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학문의 권장
카프 시인집
코리아 체스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행복의 약속
토지 15





본기, 세가, 열전까지 읽으며 사기를 마무리했다. 이 중 사기열전 2권은 5월 1일에 완독했지만 우겨서 4월달 완독으로 낑겨넣는다^^;
중국 고대 전한 시기까지를 대충 끝내고 이제 뒷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밀린 책들이 많아서 이번 달은 어찌될 지 모르겠다. 읽을 책이 중간에 계속 생기고 있는지라.

여성주의 함께 읽기 책이었던 <행복의 약속>은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고마운 책이었다. 앞으로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특히 좋았던 책은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외교,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함께 읽으면서 더 도움이 되었다. <토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책이고.

<순이삼촌>은 4.3에 맞춰 표제작만 읽어서 완독 리스트에 넣기는 애매해서 뺐다.









그리고 어제 커피와 함께 두 권의 책을 주문했다. 이번 달 여성주의 함께읽기 책과 서재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책이다^^ 지금 읽고 있는 <오리엔탈리즘>과 여러 가지로 비교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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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5-02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이 선택하신 오월의 원두맛 궁금ㅎㅎ

토지 드디어 15권!
올 상반기에 화가님 토지 완독 하실 것 같습니다!
오월 화가님 멋지게 ^^

거리의화가 2023-05-02 11:07   좋아요 1 | URL
<토지> 시리즈 완독 고지가 몇 권 남지 않았네요. 과연 상반기 내 완독 가능할 것인가ㅋㅋㅋ 오월의 원두 지난 달 말에 산 것이 실패라 고소한 종류로 다시 샀어요^^; 역시 제게는 고소한 원두가 딱!ㅎㅎ 근데 맛 평가를 항상 잘 못해서... 그래도 100자평 쓰고 스탬프 야무지게 챙겨야겠죠?ㅋ
스콧님 5월 행복한 일들 가득하시길!

책읽는나무 2023-05-02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사기열전을 두 권씩이나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도 이제 이번 달 책을 주문해 보려고 열심히 골라보아야 합니다.
이번 달 여성주의 책도 재밌을 것 같네요.
요즘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어려운 내용의 책들도 그냥 읽고, 읽고 나면 뿌듯하고...이게 꽤나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데 재밌는????? 말의 앞뒤가 안맞지만, 암튼 그런 것들에 살짝 중독되었어요ㅋㅋㅋ
5월도 잘 쉬신만큼 열심히 잘 읽고 잘 살아봅시다^^

잠자냥 2023-05-02 10:41   좋아요 2 | URL
책나무 님 5월달 책 사기 전에 모바일 앱 접속하셔서 메인 화면에 뜨는 알림 중 [이벤트] 하고 어떤 책 소개하는 거 있으면 다 눌러보세요. 기대 별점 메기면 적립금 천원 줍니다. 저 어제 오늘 2개 받았어요.

책읽는나무 2023-05-02 10:48   좋아요 1 | URL
기대 별점 메기면 책 화면에 따로 뜨지 않는 거죠?
전 혹시나 읽지도 않았는데 내 이름으로 뜰까봐 눌러보질 않았어요.
그럼 이제부터....👆
마구 눌러보겠습니다.
꿀팁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3-05-02 10:55   좋아요 2 | URL
네 뜨지 않습니다. 그냥 그걸로 끝입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는 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게 유효 기간이 3일이나 되니까 잘 모으면 꽤 되더라고요??
편집장의 퀴즈 500원까지 합하면 4~5천원까지도 모을 수 있어요.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5-02 11:03   좋아요 2 | URL
오호...4~5천 원
크네요?
맨날 30원 100원의 세상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딴세상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5-02 11:11   좋아요 2 | URL
<사기열전>은 2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요ㅎㅎ
지난달, 지지난달 ... 사둔 책을 아직 못 읽은 게 많아서 일단 2권만 샀어요. 물론 이 달에 더 살 예정이구요~ㅋㅋ

나무님 원래 어려운 책 갸우뚱거리면서 잠깐씩 졸면서 계속 읽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 재미를 아셨다니 앞으로 계속 읽으시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도 여러 책들을 거쳐가다가 ‘아하!‘하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5월 힘차게 시작하시구요.

거리의화가 2023-05-02 11:13   좋아요 3 | URL
저도 기대별점 귀찮다고 넘기다가 지난 달 말에 주문할 때 긁어모아서 4천원인가 해서 주문하고 이번에도 2천원 모아서 주문했어요^^ 앞으로도 꼭 까먹지 말고 이용해야겠습니다.

잠자냥 2023-05-02 12:4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요, 30원 50원 100원이 무색해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05-02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권! 역시 꾸준한 화가님! 책 종류도 어마어마하네요 ㅋ 저도 4월 정리해봐야겠습니다 ㅋ 많이 못읽었지만 ㅜㅜ

거리의화가 2023-05-02 12:55   좋아요 1 | URL
지난달 정치-사회 쪽 책을 두 권 읽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읽은 책은 거의 리뷰를 올리는지라 결산은 간단히 정리차원에서만 하고 있어요^^ 새파랑님 5월도 즐거운 독서생활 하세요^^

독서괭 2023-05-03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묵직한 책 많이 읽으셨네요! 읽을 책이 자꾸 생겨서 계획 지키기 어려운 건 공감입니다 ㅋㅋㅋㅋ 지난달 행복의약속은 다들 좋으셨나 봐요. 저도 나중에 읽아볼 거예요!(불끈)

거리의화가 2023-05-03 06:42   좋아요 1 | URL
ㅎㅎ 중간에 생각지 않았던 책들이 끼어드는 건 서재인들 공통일 것 같아요ㅋㅋㅋ
괭님 행복의 약속 나중에 꼭 읽어보셔요. 이 달도 재미난 독서 이어가시길^^*

그레이스 2023-05-03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쉴 틈이 없으시겠어요
👍 👍 👍

거리의화가 2023-05-03 12:53   좋아요 1 | URL
책 읽는 동안 짬내서 산책도 하고 집 청소도 합니다^^; 1년에 몇 번씩 여행을 다니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일정상 올해 하반기나 가능할 것 같네요^^ 그레이스님 즐거운 5월 되세요!
 

제1부

제4장 위기

현재의 위기는 텍스트와 현실이 서로 달라서 발생한 문제이다.

어떤 사물이나 인간이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기이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연구자라면, 《캉디드》에서 볼테르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종류의 사고방식이나, 나아가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가 풍자한 현실에 대한 태도를 상기함으로써 그말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리라. 이러한 작가들에게 나무랄 데 없는 양식이라고 보이는 것은, 인간이란 서로 부닥치면서 앞을 예견할 수도 없이불확실하고 선명하지 못한 혼란상태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책 (텍스트)이 말하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라는 점이고, 또 책에서 배운 것을 문자 그대로 현실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파멸적 실패를 감수하게 한다는 점이다. - P171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낳기에 적합한 상황은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고 위협적이며 과거에는 멀리떨어져 있던 것과 매우 가깝게 만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우리가먼저 의지하는 것은 이 새로운 경험과 유사한 이전의 경험이며, 또한 그것에 대해 과거에 읽었던 어떤 문장이다. - P172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낳기에 적합한 또 하나의 상황은 (그러한 텍스트로 인하여 실제로 성공이 초래되는 경우이다. 가령 우리가 사자를맹수라고 주장하는 책을 읽고, 그 후에 실제로 사나운 사자와 만났다고하자 (물론 나는 상황을 단순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다분히같은 저자의 책을 더욱 많이 읽고자 하는 느낌을 갖게 되고, 나아가 그책의 내용을 신용하게 되리라. 그러나 만약 그 사자에 관한 책이 그밖에사나운 사자의 취급방법도 설명하고 그 설명이 실제로도 완벽할 정도로참으로 도움이 되었다면, 저자는 절대적인 신용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다른 종류의 저술에도 손을 대게 될 것이다. - P173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텍스트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서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현실 자체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식과 현실이란, 일종의 전통, 즉 미셸 푸코가 담론이라고 부른 것을 낳게 된다. 그리고 담론의 내부에서 생긴 텍스트의 내용을 결정하는 본질은, 특정 작가의 독창성이 아니라, 실은 그러한 담론의 실체적 존재나 그 무게이다. - P174

19세기에 와서 다윈주의 인류학자와 골상학자를 예외로 한다면, 비교언어학이나 비교문헌학에서만큼 인종차별주의를 학문적인 주제의 기초로 삼은 분야도 없었다. - P182

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이다. 서양은 동양의 행동의 모든 측면에 관한 관찰자, 재판관, 배심원이다. 그런데 20세기의 역사가 동양의 내부에서 동양의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오리엔탈리스트는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P199

나아가 오리엔탈리스트는 텍스트로부터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이 생기면, 그것을 외부로부터의 선동이니, 동양의 잘못된 우둔함의 결과라고간주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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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천하무적의 군비, 일본의 심장은 그것으로 뛰고 있는 것이다. (P92)

1931년 9월 18일, 선양(당시에는 펑톈) 부근의 철로에서 폭탄이 터졌다. 만주에 체류 중이던 국민정부의 미국인 고문 로버트 루이스는 중국 외교부에 전보를 보냈다.
9월 18일 금요일 밤 군용 열차 7량에 가득 탄 일본군이 조선에서 단둥을 경유하여 만주로 들어왔다. 9월 19일 토요일 밤에 4량의 열차에 탑승한 일본군이 증원되었다. (...) (일본인들은) 학교 관리자를 체포하고 쑨원의 삼민주의 교육을 금지시켰다. (...) 병사들과 생도들은 체포되어 무장 해제되었다. 일본인들은 신형 소총과, 기관총, 군용차량 등 중국군 병기고의 무기와 탄약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중일전쟁 - 레너 미터, P61)

토지 15권은 시기의 범위가 가장 넓지 않나 싶은데 1931년 만주 사변 이야기를 하다가 중후반이 되면 훌쩍 시간을 넘어 1938~1939년이 되어 있다. 때문에 그 시간만큼 인물들은 나이가 들고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도 있어 이거야말로 시공간을 뛰어 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15권 인물들 중 가장 놀라운 변신을 한 인물은 유인실일 것이다. 14권에서 유인실의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힘들게 읽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반전 케이스가 된 것인지 놀라웠다. 반전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마지막에 또 16권을 기다리게 하는 그 어떤 사건이 터져서 또 나를 궁금하게 한다. 어떻게 흘러가고 풀릴지 말이다(꼬이지는 말아주길).

15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역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꼽을 수밖에 없다. 중국 국내의 사정, 그리고 일본 국내외 사정은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가는 현실, 조선이 중국과 일찌감치 함께 합세하여 일본에 대항했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었겠느냐 생각해보면 솔직히 회의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중국 땅 내부까지 그 여파가 미쳤고 이는 중국 북부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과 독립군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중국인들의 시선도 조선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일본 군벌이나 헌병에 고발하는 사례 등이 증가).

장학량이가 작년에 공산당하고 결탁해서 장개석이를 납치한 서안사건(西安事件), 그게 멸망의 징조였던 게야. 서안사건은 노구교사건(蘆溝橋事件)의 원인이지. 일본을 상대해서 중국은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이제는 만주가 문제 아니야. 멀잖아 일본은 중국을 손아귀에 넣을 거다. 이런 판국에 조선이 독립을 해?"
"중국을 손아귀에 넣는다구……… 그게 쉬울까요? 소련이 있고 미국, 다른 나라들이 보고만 있겠습니까?"
"만주를 보아라. 군말 몇마디 듣고 끝나지 않았나. 그나마 그 귀찮은 소리 안 듣겠다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를 했거든 아무튼 일본은 지금 욱일승천이야. 기세가 하늘을 찔러. 장개석이 군대가 허약하기도 하지만 공산당을 경계해서 힘을 다 쓰지 않는 것도 일본의 전과가 오르는 이유의 하나고, 공산당이 아주 숨이 끊어져서 장개석이 강화되어도 안 될 거고 물론 공산당이 국민당을 아주 내몰아도 일본은 난감할 거고 말하자면 시기를 잡는 데 일본은 묘수(妙手)를 쓴 셈이지. 만주사변하고 꼭 같은 길을 가는 게야. 참말로 세상은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 만주만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변했지. 내가 만주땅에 온 것이 삼십 년 꽉 차고 넘었는데 변해온 꼴을 보니 마치 처음에는엉금엉금 얼음판을 기듯, 다음에는 간신히 걷고 그리고 뛰는데 지금은 날고 있어. 허허벌판, 신경의 저 대동광장은 몇 해 전만 해도 허허벌판 아니었나? 그런데 지금은 어때? 사오 층의 어마어마한 건물이 가득 들어서 장관이지. 오랑캐의 땅이 그리 번창할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P322)

남경 함락 후 전선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일본은 내심 당황하고 혼란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띄운 것이 화평이라는 기구이며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중재해줄 것을 은근히 요망했다. (...) 갖은 지랄을 다한 일본의 모든 행동이 도로(徒勞)로 끝나는 그 조건이나마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 그러나 그들이 첫째 봉착한 것은 정부나 군부 이상으로 전쟁에 들떠 있는 국민에게 뭐라 할 것인가, 총동원하여 전쟁의 열기로 몰아붙여 놓은 국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있는가. 남경 함락후 전승에 취한 국민들은 날이면 날마다 일장기 행렬, 등불 행렬로 법석을 떨고 있었으니, 그러는 동안 각 파의 반목과 대립은 오기를 자극하고 고조시키면서 화평 조건은 차츰 강경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제국정부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들 스스로 내놓은 화평안을 그들 자신이 막았고 일본은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그 후안무치한 제국정부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정부는 남경공략 후 계속 중국 국민정부의 반성에 최후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정부는 제국의 진의를 모르고 함부로 항쟁을 책동했으며 안으로는 도탄에 빠진인민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밖으로는 동아전국(東亞全局)의 화평을 원치 않았다. 하여 제국정부는 이후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과 진실로 제휴하기에 족한 신흥 지나정권의 성립발전을 기대하며 이들과 양국 국교를 조정하여 갱생 신지나설에 협력하기로 한다. 물론 제국은 지나의 영토와 주권을 위시하여 재지 열국의 권익을 존중하는 방침에는 추호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동아 화평에 대한 제국의 책임은 보다 무겁다. 정부는 국민이 이 중대한 임무 수행을 위해 한층 더 분발해줄것을 기망(望)하여 마지않는다. (P448~449)

1936년 2월 26일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이른바 '니니로쿠' 쿠데타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들은 '국가개조를 막는 통제파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부대를 이끌고 수상관저 등 국가 주요 기관을 습격, 당시 내무대신 사이토 마코토, 오쿠라대신 다카하시 고래키요(1854~1936) 등 정부 요인을 살해했다. 사건은 이들을 3일 만에 진압함으로써 마무리됐으나 군부는 숙군을 핑계로 정계 요로에 군부세력을 크게 강화했다. 이같은 진통을 겪은 군부는 대중 매체나 교과서, 나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 국민에게 '대일본 정의'를 믿도록 선전했다. (도쿠토미 소호, P256~257)
황도파는 1932년 무렵 아라키 사다오(1877~1966), 마자키 진자부로(1876~1956) 두 대장이 위관급 청년장교들을 규합하여 형성한 육군내의 한 파벌로 텐노 천황의 권위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텐노 중심의 국체 지상 주의를 신봉하였다. 통제파는 일본 육군성 중앙막료 등 영관급 장교를 주체로 형성된 군부 파벌로 재벌과 관료들과 결탁하여 군부세력을 신장시키고 전시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군부 내 통제를 주장하였다. 만주 사변 이전에 군부와 내각이 갈등을 겪었다면 이후에는 군부 내 파벌들이 나뉘며 갈등이 심화되었다. 문제는 이것을 국민들에까지 전시, 강요, 확대했다는 데 있다.

홍구사건 이후 조선 혁명당이 중국 요녕 구국회와 합작하여 항일전선을 구성함으로써 양 민족 간의 공동보조는 구체화되었고 조선 독립군과 중국 의용군이 합세하여 쌍성현(雙城縣)의 점령을 위시하여 사도하자(四道河子)에서 일만연합군(滿聯合軍)을 격파했고 동경성(京城)을 점령, 동만(東滿)의 대전자령에서 일본의 나남(南) 72연대를 대파하는 등 행동으로 나타났다. (P387)

1937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유럽에서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에 이은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시작되었다. (...) 일본의 전쟁 준비에는 일본으로의 소규모 엘리트 이주와 대규모 수사법이 수반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군사고문관을 초빙하고, 전쟁 준비를 범아시아적 이익, 다시 말해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일본의 팽창으로 합리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수사법이었을 뿐 일본의 진정한 속셈은 중국의 원자재와 사람을 비롯한 자원 그리고 (전후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1937년을 시작으로 일본은 상하이를 장악하고 중국의 많은 지역을 점령했다.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에는 일본군이 학살, 강간, 약탈도 자행했다. 그때 죽은 사람이 30만 명이었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870~1945, P650)

만주사변 후 만주국이 세워지고 1937년까지 6년간의 기간이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 사건이 있기 전까지 중국 내에서 끊임없는 중일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 내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사정과 맞물렸고 일본은 이것을 이용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다.
만약 중국 내의 그 복잡한 사정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국을 세운다는 것이 조금은 어렵지 않았을까.

"아무튼 얼마나 시체를 묻었는지 자동차가 가는데 땅이 흐물흐물 떠가는 듯 하더라는 게야." (P432)

당시 난징에 대한 상황 묘사인데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 묘사가 있지만 도저히 옮기기가 어려워서 이걸로 대신해야할 것 같다.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가장 잔악무도한 사건들 중 하나이다. 일본군은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 이유 불문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 국민, 일본 정신, 일본 문화는 대체 무엇이냐는 가장 나를 괴롭혔던 주제였다. 쉽지도 않고 지금 당장 답안을 내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황도주의를 생각했고, 황도주의 하면 대표되는 인물, 도쿠토미 소호를 떠올렸다.

일본 국민의 제일 의무는 일본국을 아는 일이다. 일본국체가 세계에 탁월한 까닭을 아는 일이다. 일본은 세계에 비교할 수 없는 국체를 갖고 있다. 만세일계의 황실을 원수로 받들고 있는 일이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 찾아도 우리와 같은 체제는 없고 버금가는 모양조차 아직 볼 수 없다. 그리고 만세일계의 황실은 우리 야마토 민족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체제이다. 황실은 야마토 민족의 중심이자 근본이며 주축이다. 동시에 야마토 민족이라는 대가족의 본가(本家) 본원(本元)이다. 황실은 이른바 군부(君父)라는 두 자로 대체할 수 있다. 임금이면서 아버지인 것이다. 이 군민 일가족이라는 생각은 일본제국의 자랑이다. (...) 일본의 원수와 인민은 머리와 몸통 관계이다.(...) 황실이 야마토 민족의 근간이고 인민은 그 곁가지이다. (...) 우리 제국은 나라가 곧 가정이고, 가정이 즉 국가이다. (도쿠토미 소호, P195~197)
일본제국헌법은 황실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국민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동시에 묶는 존재로 신격화하고 있다. 도쿠토미는 이 '일본제국헌법'을 구체화한 이론으로 '황실중심주의'를 만들어냈다. 그가 이것을 일본 국민에게 호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일본의 국체(國體)를 재확인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 한탕 주의 또는 패배 주의로 흐르는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희박해지는 충군애국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오가타는 일본과 만주국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일본군과 일본인을 욕하지만 자신도 일본인이니까(자신을 탓하기도) 마치 끝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했으나 그러기엔 자신의 출신, 상황은 한계로 몰고 간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패배주의 또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이것이 아니라면 국가가 선전하는 군국주의를 택해야 할 수밖에 없는가)

일본 아이들이 중국인은 모두 모두 죽여라! 하더라는 찬하의 말을 들었을 때 오가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며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그 자신이 목격한 적이 있었다. 만주사변이 군의 몇몇 미친놈들의 독주였었다는 것을 일본인인 오가타는 심정적으로 변명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약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관동군의 단독 행위건 정부는 무관했건 나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디 조선인이오? 일본이 뼛속까지 젖어들어 나는 이 동경에 있질 않소. 하하핫…………" (P251)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잠들거나 깨어 있을 밤은 서산에 태양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해가 차츰차츰 가라앉고 있다. 동굴 깊은 곳의 눈 먼 귀뚜라미처럼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온다. 전쟁은 아무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눈 먼 귀뚜라미처럼 도시라는 크나큰 동굴 속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내가 가는 곳은 무엇이냐. 히토미를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인가. 도피와 망각의 길인가. 무라카미 선배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 하고 말했다. 나는 뭐라 말했나? 목표가 없기론 다 마찬가지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그래왔을 거라 했다. 옛날에도 또 옛날에도, 해서 옛날의 사람들은 그렇게들 돌을 많이 쌓았는가. 엄살이지 엄살, 나도 엄살이긴 매일반이다.
눈 먼 귀뚜라미는 생존을 위해 오고 간다. 호두(虎頭)의 그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죽어갔다. 생존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끌려간 그들의 생존을 말살한 채찍과 총구는 무엇이냐! 운명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채찍을 휘두를 때 총구에서 불을 뿜을 때 그들, 또 다른 눈 먼 귀뚜라미의 무리는 생존을 구가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은 초인을 기다리는가? 인간의 최고 목표는 과연 무엇이냐? 초인을 만나는 것이냐, 초인이 되는 것이냐.‘ (P484~485)


문화에 대한 키워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건과 관련된 역사의 책을 읽어야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책들이다. (문화와 해석, 중일전쟁 관련사들)
토지를 읽으면 마치 무한 확장되는 사물처럼 내 머리가 다양한 생각들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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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다음 권을 읽고 싶게 만드는 일이 나와서 다음으로 바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책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좋은 거겠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09:06   좋아요 0 | URL
네. 제게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주지만 공부가 되는 책이기도 해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사기열전 2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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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 2권은 1권보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다.


초반에는 한나라 초기 공신들이나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 나온다. 물론 왕에게 아첨했거나 전투에서 공은 세우는데애만 목적이 있어 비판을 받을 만한 인물들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창이나 역생, 육가, 유경은 호(好) 쪽에 가깝다면 부관, 근흡, 주설은 한나라 고조 곁에서 신하로 봉호를 받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숙손통은 초한 전투 때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사람이고 계포도 그 싸움에서 유방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장수였는데 나중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이 중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인물들은 직언과 간언을 한 아래와 같은 이들이었다.

역이기(역생)은 출신이 가난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유방을 처음 만났을 때 예의가 없다고 한 방 먹였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 때 패공은 침상에 걸터 앉은 채 발을 씻고 있는 상태였다. "진실로 사람들을 모으고 의병들을 합쳐서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자 하신다면 걸터앉은 자세로 나이든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패공은 바로 발 씻던 것을 그만두고 의관을 정제하고 상석에서 그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역생은 관직에 등용되었고 사신으로 제나라 왕과 재상을 상대로 협상해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꿇리지 않고 지략과 담대함을 보여 설득해서 이익을 얻어내었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많이 하였다. 강후 주발이 황제 앞에서도 위아래 구분을 못하고 교만함을 보이자 그가 공신이지 사직의 신하는 아니라며 따끔히 일침을 가했고 회남왕이 시무의 태자의 모반에 연루되자 그를 촉 땅으로 보냈을 때 강직한 성품에 문제가 될까 염려된다고 간언했다(결국 회남왕은 가는 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이에 마음 아파하는 황제를 보며 회남왕의 세 아들을 왕으로 삼게 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권세를 누렸지만 그만큼 질시를 많이 받았을 것을 짐작케 한다. 최후도 정적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장석지는 한나라 문제 때 법 집행을 맡고 있었던(정위) 신하다. 문제가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 어떤 사람이 갑작스레 다리 아래에서 뛰어나와 놀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석지는 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벌금형에 내렸는데 황제는 "이놈이 내 말을 놀라게 했고. 내 말이 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런데 벌금형?" 그 말에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은 한쪽으로 기울면 백성은 그들의 손과 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라는 말로 폐하를 납득시켰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오늘날 한국의 법을 실행하고 집행하는 이들은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순리 열전'과 '혹리 열전'에서는 순리(청렴한 관리)와 혹리(포악한 관리)를 비교함으로써 관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당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태도 지침서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무제 때 중앙 집권이 강화되면서 관리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전쟁으로 나라는 혼란한데 지나치게 엄격한 법을 적용하면서 관리들이 뒷주머니를 차고 도적이 횡행하였으며 농민 봉기가 폭증하였다. 법령과 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적당한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인상깊게 본 주제들을 묶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한나라 주변의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흉노 열전'은 개인적으로 사마천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흉노 정벌은 한 무제의 치적으로 주로 이야기되지만 사마천은 기본적으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제가 관리를 잘못 기용했다는 비판도 들어가 있다(물론 이 때 활약을 한 위청, 곽거병 장군 같은 인물도 있다).
'남월 열전'은 진나라 말기에 조타가 자칭 왕이라고 나섰던 곳인데 무제 때 한나라에 편입되는 남월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동월 열전'은 남월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월 지역인데 지금의 복건성 지방의 이야기다. 진나라 말 반란 세력이 들고 일어설 때 이 지역도 반기를 들었고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할 때 이 지역에 왕을 봉하게 되었다.
'조선 열전'은 기자 조선에 연결되는 이야기로 위만이 평양에 들어가면서 한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남이 열전'은 '서이'와 '남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 등 서남쪽인데 중원에서 먼 데다 소수 민족으로 중국 전체에서도 멸시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어서 문화적으로 황무지라 여기기도 한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고 부락의 개수도 많다. 한 무제 때 확장 정책을 이 곳도 피해갈 수 없었다.
'대원 열전'은 지금의 티베트 분지 지역으로 한혈마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인데 한무제가 이광리를 보내 정벌의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장건의 서역 행로와 겹치기 때문에 관련하여 읽을 수 있다.
이 열전들의 특징은 이 곳 땅과 사람들의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를 공부할 때 중원은 사실 영역의 범위가 넓지 않은데 진/한나라를 둘러싼 다양한 지역의 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듯하다(물론 오류도 있겠지만).

의술과 점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 창공 열전'의 편작과 창공은 명의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다. 특히 편작은 진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였고 침을 놓는 일, 탕약을 짓는 일 모두에 뛰어났다고 한다. 창공은 편작에 영향을 받았고 그에 버금가는 명의였으나 편작의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둔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편은 이 시기 한의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당시 실제 환자의 상태로 맥을 짚고 병명을 진단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놀라웠다.

이어서 '일자 열전'과 '귀책 열전'도 흥미로웠는데 바로 점술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 역사에서 점술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인데 아마도 고대 사람들은 하늘, 거북이 등껍질, 시초 등으로 운을 점치면서 미래에 대한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자'는 하늘의 상태를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것이고 '귀책'은 거북 껍질과 시초로 점을 치는 것이다. 일자는 한나라 때 아주 성행했고 귀책은 은/주 나라에서 성행했다(갑골 문자를 생각해보셔도)

협객과 장사꾼 이야기도 있다. 사마천은 둘을 모두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협객 이야기는 '유협 열전'에 실려 있다. 사마천이 생각하는 협객은 내가 생각하는 협객보다 범위가 더 컸다. 통치 계층의 악행을 도와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자도 협객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만 협객이라고 생각했었다. 협객(유협)은 춘추전국시대 혼란한 사회상을 타고 일제히 터져 나왔지만 진한 통일기가 되면 타도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되었다.
장사꾼 이야기는 '화식 열전'에 실려 있다. 돈을 버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수단으로 벌어들인 것이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다양한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마천이 상업을 나쁘게 보지 않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장려되던 시기에 이런 주장은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 전역의 나라 별로 땅의 특성에 따라(습기, 바람 등) 어떤 산업이 발달했는지 기술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중국 진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의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넓은 땅,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가 여전히 필독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 그리고 사기 열전이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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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02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담았네요 역사책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 더 많기도 하잖아요 사마천 열전은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재미있겠습니다 그렇게 쓰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02 12: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어요. 사람들 사는 것은 지금과 비슷하구나 느낄 수가 있어요. 특히 관리들의 자세를 보면서 정권의 수뇌부들이 좀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울목 2023-05-05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한나라를 위해 대책을 세운 사람은 조착이었지만 누명을 씌운 사람은 원앙이었다.그리고 오초칠국의 난으로다급하니 조착의 온 집안을 몰살시킨이는 한경제였다. 한경제는 오초칠국의 난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그 아들 한무제와 아울러 잔혹한 황제였다.황제는 강후 주발과 그 아들 주아부는 한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장석지는 한문제에게 말을 놀래킨자를 그 자리에서 처형했으면 그것으로 끝났다는 말도 했기에 반은 잘하고 반은 잘못한것이다. 애당초 처형할만한 잘못이 아님에도 장석지 본인이 판결하기전에 황제가 처형했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인명을 경시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전진왕 부견은 비수대전의 패배로 비난받지만 인명을 소중히 한 사람였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그 최후는 너무 안타까왔다. 후연의 모용수도 그 신하에게 과거 부견이 대해준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라고하였으니말이다.
역사에서 나라가 혼란스러울때 그나마 나라를 나라답게지탱하는 것은 법을 판결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정의로움으로만 있는 사람인줄 알았던 좌파정권때의 사람들을 보면 공자가 말을 교활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는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박근혜정권시절에 그 다음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서 우파를 털고 그다음엔 다시 우파가 정권을 잡아서 운동권 사기꾼 좌파를 털어서 서로 혼이 나야만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의 좌파를 보면 전태일 열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사후에 만나면 과연 떳떳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김유신장군과 그 부인은 패배하고 살아남은 원술을 만나지 않았는데, 뇌물을 받은 아들을 둔 김대중대통령은 5.18영령들을 바라보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담으로 고위직의 여성분이 정권이 바뀐후에 제자들을 초대해서 지난정권의 김**님의 자식인 김~~의 교육을 어머님이 잘못시킨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한다.세월이 흘러 고위직 여성분의 아들 셋이 전부 뇌물관련하여 문제가 생기자 ,그때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지 아들들은‘하며 빈정대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