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제4장 위기

현재의 위기는 텍스트와 현실이 서로 달라서 발생한 문제이다.

어떤 사물이나 인간이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기이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연구자라면, 《캉디드》에서 볼테르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종류의 사고방식이나, 나아가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가 풍자한 현실에 대한 태도를 상기함으로써 그말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리라. 이러한 작가들에게 나무랄 데 없는 양식이라고 보이는 것은, 인간이란 서로 부닥치면서 앞을 예견할 수도 없이불확실하고 선명하지 못한 혼란상태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을 책 (텍스트)이 말하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라는 점이고, 또 책에서 배운 것을 문자 그대로 현실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파멸적 실패를 감수하게 한다는 점이다. - P171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낳기에 적합한 상황은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고 위협적이며 과거에는 멀리떨어져 있던 것과 매우 가깝게 만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우리가먼저 의지하는 것은 이 새로운 경험과 유사한 이전의 경험이며, 또한 그것에 대해 과거에 읽었던 어떤 문장이다. - P172

텍스트 의존적인 태도를 낳기에 적합한 또 하나의 상황은 (그러한 텍스트로 인하여 실제로 성공이 초래되는 경우이다. 가령 우리가 사자를맹수라고 주장하는 책을 읽고, 그 후에 실제로 사나운 사자와 만났다고하자 (물론 나는 상황을 단순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다분히같은 저자의 책을 더욱 많이 읽고자 하는 느낌을 갖게 되고, 나아가 그책의 내용을 신용하게 되리라. 그러나 만약 그 사자에 관한 책이 그밖에사나운 사자의 취급방법도 설명하고 그 설명이 실제로도 완벽할 정도로참으로 도움이 되었다면, 저자는 절대적인 신용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다른 종류의 저술에도 손을 대게 될 것이다. - P173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텍스트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서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현실 자체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식과 현실이란, 일종의 전통, 즉 미셸 푸코가 담론이라고 부른 것을 낳게 된다. 그리고 담론의 내부에서 생긴 텍스트의 내용을 결정하는 본질은, 특정 작가의 독창성이 아니라, 실은 그러한 담론의 실체적 존재나 그 무게이다. - P174

19세기에 와서 다윈주의 인류학자와 골상학자를 예외로 한다면, 비교언어학이나 비교문헌학에서만큼 인종차별주의를 학문적인 주제의 기초로 삼은 분야도 없었다. - P182

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이다. 서양은 동양의 행동의 모든 측면에 관한 관찰자, 재판관, 배심원이다. 그런데 20세기의 역사가 동양의 내부에서 동양의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오리엔탈리스트는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P199

나아가 오리엔탈리스트는 텍스트로부터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이 생기면, 그것을 외부로부터의 선동이니, 동양의 잘못된 우둔함의 결과라고간주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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