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초한지 3 원본 초한지 3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바지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안타까움과 회한이 밀려오는 역사의 장이었다. 패왕 항우는 오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신은 버림 받은 뒤 모함을 받아 여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팽월, 영포도 목이 잘려 죽는다. 그나마 장량만이 스스로 물러나 은퇴하여 신선처럼 은거했다는 것이 달랐을까. 물론 소사도 자연사하기는 했다. 자신이 맡던 업무를 조참에게 넘겨주고 주변의 칭송을 받으며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 지극히 정상인데 사건 사고들이 많은 시대니 더 비정상처럼 여겨지는 아이러니다. 나는 장량의 마무리가 참 멋지게 보인다. 권세를 누리며 계속 최고위에 있어도 되었을텐데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았고 그 후에는 벼슬길을 계속 사양하며 끝내 신선처럼 노닐고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힘과 권세에 의지하는 사람은 잠시나마 권력과 부귀는 얻을 수 있을 지언정 그 말로는 결국 좋지 않은 듯 싶다.

역이기(역생)는 한왕의 명에 따라 한나라에 투항을 설득하기 위해 제나라로 떠난다. 이 때 조나라에 있던 한신은 제나라를 정벌을 결심하던 차였는데 역이기의 서찰을 받고 제나라에 있는 역이기를 만난다. 한신은 역이기와 성고에서 한왕과 연합하여 초나라 정벌을 논의하려했던데 괴철이 이를 막아선다. "불가하오! 한왕은 애초에 장군에게 제나라를 빼앗으라 했으므로 그 뜻이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지금 또 역생을 파견하여 제나라에 유세하라 한 것은 틀림없이 역생이 장군의 공을 탈취하려고 벌이는 일입니다." (P.36)
한신은 고심 끝에 역생의 간청을 듣지 않았는데 제왕은 역생을 기름을 가득 채운 가마솥에 삶아 죽인다(팽살).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고 하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나.

패왕은 제왕이 한신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용저와 주란으로 하여금 제나라를 구원하고 한나라를 격파하라 지시를 내린다. 한신은 유수강 상류에 모래주머니를 놓아 물을 흐르지 못하게 해놓고 강 중간에 '등롱을 매달고 용저를 참하리라'(P.52)라는 나무 팻말을 세워 놓는다. 초나라 장수 용저가 등롱을 내리치자 한나라 군대는 쏟아져 나오고 유수강물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용저는 조참에게 죽고 주란은 도주한다. 한신은 주란을 추격하다 실패하였으나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전횡은 도망). 이 때 한왕이 '자신과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자'라며 조서를 보낸다.

괴철은 한신에게 한나라를 배반하라고 유세한다. 삼분지계다. "두 왕의 목숨은 모두 족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쪽의 이득을 모두 취하고 천하를 삼분하여 솔발처럼 정립하면 누구의 세력도 감히 먼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족하께서 강력한 제나라를 근거지로 삼고 연나라와 제나라를 복종시켜 백성이 바라는 바에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백성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보호해주면 천하가 바람에 휩쓸리듯 호응할 것입니다."(P.69) 하지만 한신은 육가의 반대가 있기도 했고 스스로 주저하면서 괴철의 계책은 한신에게 쓰여지지 못한다(이후 괴철은 시장통에서 미치광이 짓을 하며 혼자서 노래를 부르거나 실없이 웃고 떠들었다).

초나라 군과 한나라 군은 형양성 근처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이 때 패왕은 한왕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네놈과 여러 해 전투를 치렀지만 아직 직접 싸워본 적은 없다. 오늘 승부를 내자. 네놈과 내가 대적하여 자웅이 결정되면 온종일 서로 대치하며 삼군을 괴롭히지 말자." 한신이 한왕과 사이에 틈이 생기고 코너에 몰려 있는 패왕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길은 없고 지금 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때 한왕은 지지 않고 패왕의 10가지 죄를 이야기하며 패왕의 분노를 증가시킨다. 패왕의 창 끝을 피한 한왕이었으나 종리매 휘하의 궁수들의 화살은 피하지 못했다. 한왕의 가슴에 꽂힌 화살은 심장 깊숙한 곳까지 입은 부상은 아니었어도 피부가 찢어지는 등 한동안 병상에 일어나지 못한다.

패왕은 군량이 부족하고 형양성을 단시간에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광무에서의 일전을 위해 퇴각한다. 마침 한신도 한나라 군대에 합류하고 드디어 광무산에서 초나라와 한나라가 큰 전투를 벌인다.
"내일 장수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각각 방향을 알려준 뒤 약정한 시간이 되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서 스스로 묘책을 찾아야 하오." (P.91) 한신은 진채를 세우고 10진영으로 군대를 배치한 뒤 포성이 울리자 공격에 들어간다. 초나라 군사 5천명이 궁노수가 쏜 화살을 맞고 7, 8할이 쓰러지는 동안 주은과 환초가 패왕을 따라 포위망을 뚫으며 탈출한다. 한왕은 패왕 무리를 쫓았고 종리매가 태공을 이용하자 간언한다. 팽성에 구금되어 있던 태공을 군영으로 진작부터 데려왔던 터였다. "나는 생전에 우리 부모님을 봉양할 수 없겠구나." (P.104) 한왕은 역시나 아버지를 구조할 마음이었다. 그러나 장량과 진평은 패왕의 계략을 눈치채고 항복해서는 안 된다 간언한다.
한신은 초나라의 탈출로를 차단하고 광무산을 에워싼 뒤(태을진을 펼치고) 패왕 항우를 마침내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고대 중국의 진법은 보통 주역을 바탕으로 한다. 진법에 따라 배치된 군사들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당시 전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고 비장함과 엄정함을 느끼게 하였다.

긴 전투 끝에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한 초와 한은 홍구 회담을 통해 국경의 경계를 정하고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한왕은 약속을 위반하고 100만의 군대를 모으며 초나라와의 결전을 준비한다(한신, 영포, 팽월은 참가하지 않았다). 드디어 성고를 나선 한나라 백만 대군은 구리산 전투에서 매복 작전을 펼치며 승기를 잡는다.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군대와 초나라 군대는 크게 격돌한다. 이 때 패왕 항우의 기세는 마치 한 마리의 범을 보는 듯하였다. 그의 전투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느낌인데 1:1로 붙어서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고 심지어 1:N으로 붙을 때도 결코 밀리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라니 가히 탄복할 만하였다. 책에서도 대체 몇 번이나 이런 장면들이 나오는지 세다가 포기했을 정도다. 항우의 전투력은 아무튼 최고인 걸로.
하지만 그의 마지막이 찾아오고야 말았으니... 오강에서 초나라 대군의 모습은 워낙 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나와 있어 그 모습을 가히 짐작할 만하지만 소설로 직접 보니 비장미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는 무엇보다 한나라 장량의 계책이 주효한 탓이다. 남은 초나라 군사가 8천여명 정도였는데 고향을 떠나 전투에 임한지 오래 되었고 군량까지 떨어져 배도 고파서 다들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 때 장량이 초나라 군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그 유명한 피리 불기 작전을 결행한 것이다. 구슬픈 피리 소리와 더해진 노래는 초나라 군대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하였다. 마치 흔들리는 등불에 지속적으로 바람을 불었다고나 할까. 8천명의 군사 중 남은 군사가 8백명도 되지 않았다니 대세는 한나라로 크게 기운 셈이다.
마지막임을 직감한 패왕 항우는 우희에게 피하여 한나라에 투항할 것을 종용하지만 우희는 자결로 삶을 마감한다. 우희의 마지막을 보면서 솔직히 유방의 정부인 여후와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왜? 죽을 이유는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역사적 평가는 후대의 몫이겠지만. 오강에서 오추마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며 장강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도 유명하다. 오추마가 사라질 때 그의 마음이 또 한번 무너졌을 것이다. 패왕 항우도 이곳에서 유방과의 싸움을 끝내고 스스로 삶을 끝맺는다.

한왕이 조회를 마치고 신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밀 급보가 날아든다. "한신이 초왕에 책봉된 뒤 평민의 밭을 빼앗아 부모의 묘를 썼고, 병마를 늘여 세워 고을을 소란하게 합니다. 또 초나라 패장 종리매를 숨겨 주고도 자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이는 진실로 반란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서둘러 그자를 처리하셔야 합니다."(P.274) 한왕은 한신의 속뜻을 알아내기 위해 진평의 계책에 따라 운몽으로 순행을 가면서 지방의 민심을 살피기 위해 제후들을 회동시키고 만약 이에 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정벌하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종리매는 한신에게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자 자결하고 한신은 그의 수급으로 한왕과 교섭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의심에 가득찬 이의 눈과 귀에는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 법, 한왕은 한신을 포박해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한왕은 한신이 개국 공신임을 생각하여 회음후에 봉하고 돌려 보낸다. 한신은 이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

한신이 팽당한 것을 알게 된 진희는 처음에는 분노였고 이후 반란을 결심한다. 한왕은 이에 영포와 팽월에게 진희를 토벌하게 하였고 소식을 들은 한신은 구원병을 보내지 말것을 간언하는 서찰은 보낸다. "만약 두 분이 진희를 격파하고 나면 한나라 군주는 틀림없이 꼬투리를 잡아 두 분을 해칠 것이오."(P.323) 한왕은 조나라와 대나라에 진희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원정을 나선다. 이 때 한신의 심복 사공저가 승상인 소하에게 가 몰래 고변을 한다. "진희의 장수와 군사에게 지름길로 와서 장안을 탈취하게 하고 한신 자신은 관중에서 거병하여 호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털끝만큼의 거짓도 없습니다. 소인이 술에 취해 나막을 폭로하자 한신이 소인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고변한 것입니다."(P.339) 소하 옆에는 여후도 있었다. 여후는 상의할 일이 있다며 한신을 입조하게 하고 포박당한 한신은 "괴철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이 참으로 후회된다."(P.343) 그렇게 한신은 미양궁 장락전에서 참수당하고 삼족이 멸해졌다.
한신은 한나라의 모사꾼으로 초나라와의 전쟁의 수많은 전투에서 비상한 계책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재상이었으나 말로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의 욕심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한왕 유방의 눈과 귀가 가리워진 탓일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괴철은 참수당한 한신의 목을 거두어 묘소를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 팽월과 영포도 목이 잘리며 참수 당한다.

한왕 유방의 말로는 어떠했을까. 나이가 들고 병이 든 그는 "내 병은 오래 전쟁터를 전전하며 종일토록 우울한 마음을 품고 살다가 생긴 것이오."(P.414) 황후는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한왕을 진찰하게 하고 10일이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한왕은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진료를 거부한다. 이후 유방은 더 병이 위중해졌고 태자를 불러 앞으로의 한나라를 부탁한다. 향년 63세에 한 고조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진나라 말 혼란한 시기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일어난 많은 장수들 중 하나였던 유방과 항우. 둘은 한나라와 초나라를 이끌며 한 시대를 이끌었고 대결 끝에 한나라의 시대로 접어든다. 유방이 항우에게 승리한 것은 결코 개인의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만으로 따지면 유방은 항우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지혜나 계략으로는 유방이 좀 더 나았으나 비등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결국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잘 사용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고조가 죽고 나서 들어선 황제 혜제는 여후의 힘에 밀려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초한지를 보면서 진나라 말의 혼란한 상황과 한나라로 통일되기까지의 과정을 스릴감 있는 전개로 만날 수 있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목 2023-02-16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물지만 장량에 대해 신랄하게 평한 학자가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량과 진평은 모두 한고조의 참모였다. 그러나 장량의 재주는 진평보다 훨씬 뛰어났다. 진평의 집안은 증손에 이르러 죄를 받아 작위를 박탈당했다.그러나 진평보다 뛰어난 장량의 집안은 그가 죽은 지 겨우 10년 만에 작위를 박탈당했고,이후의 후손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장량은 어째서 진평보다 먼저 화를 당했을까?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패공(한고조 유방)이 요관을 공격할 때 진나라는 패공과 연합작전을 펴려했다. 이때 장량이 패공을 설득했다. ‘‘저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 공격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패공이 장량의 말에 따라 병력을 이끌고 싸워 진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주 - 패공이 요관을 지키는 진나라 군대를 공격할 때 장량은 진나라 장수를 매수할 것을 권했다. 과연 진나라 장수가 진나라를 배반하고 패공과 연합하려 하자, 장량은 다시 진나라 군대가 태만해진 틈을 타서 공격하도록 권했고, 패공은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항우는 한왕(한고조 유방)과 천하를 나누기로 약속하고 병력을 철수해 팽성으로 돌아갔다. 장량은 한왕을 설득하며 군대를 돌려 항우를 추격할 것을 권유했다.결국 한왕은 항우의 군대를 섬멸하였다. 이 두가지 일은 항복한 적군을 죽인 것보다 지나친 것이니 장량이 후손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위의 글은 용재수필에 기록된 내용이다. 항우를 이긴 후에 장량이 조언한 내용들도 살펴보면 다수의 개국공신들이 장량을 좋게 생각했을리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이든다. 개국공신을 숙청한 주역은 여후였고, 한고조 유방 사후에 여후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장량의 아들이었다.

그로인해 공신들은 여후사후에 여씨일족을 멸족시킨 후에야 안도할 수있었다. 여후가 권세를 쥐고 있을 때 장량이 여후에게 적절한 조언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2023-02-1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2-17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 이야기가 나오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시간이 가면 다 죽지요 그런 거 보면 어쩐지 아쉽기도 해요 삼국지 마지막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다음 왕은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이고,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17 13:48   좋아요 2 | URL
그렇죠. 삼국지도 배경만 다르지 결국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온갖 사건이 발생하며 벌어지는 암투와 싸움이 나오는 것은 비슷한 듯 합니다^^; 왜 강력하게 들어선 왕 뒤에는 유약한 왕이 들어서는 걸까요?ㅎ
 
여성, 인종, 계급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업자본주의가 촉발한 가정과 공적 경제의 분열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열등함을 확고하게 굳혔다. 지배적인 선전물에서 '여자'는 '어머니'와 '주부'의 동의어가 되었고, '어머니'와 '주부' 모두에는 치명적인 열등함의 표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흑인 여성 노예들 사이에서 이 어휘는 어디에도 확인할 수 없었다. - P41

흑인 여성 운동, 그리고 흑인에게 해방이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전미여성협회의 주요 멤버들은 백인 중간계층의 여성들이었고 이들은 여성 참정권을 부르짖으면서도 계급 불평등(노동자)과 인종 불평등(흑인 등)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성평등과 인종평등과 계급평등은 함께 가지 못했고 1890년대 미 남부 인종 분리 정책이 시행되면서 흑인들의 투쟁은 더 험난해질 수 밖에 없었다.

흑인 여성의 일자리는 대부분 가사 노동이고 일부는 노동자로 일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밑바닥층이어서 저임금 등 낮은 환경에 시달렸다.
그들이 매달린 것은 교육이었다. 백인 여성들이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여 백인 학부모들로부터 질타를 받거나 고발당하는 등 불평등을 감내해야 했으나 그들의 교육열은 계속되었다. 한국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 난리통에서도 가르칠 공간을 만들어 교육을 진행했던 대한민국을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아이다 B. 웰스와 메리 처치 테럴은 둘 다 흑인 여성 운동의 지도자들로 각자의 입장은 달랐으나 그들이 있지 않았다면 흑인 여성들의 투쟁은 힘겨웠을 것이다.
아이다 B. 웰스는 철도에 탔다가 불평등을 목도하고 철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후 친구들이 린치 사건에 연루되면서 린치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인물이다. 메리 처치 테럴은 노예 소유주 아버지 밑에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부유한 환경에 있었기에 오히려 이런 운동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었을 인물이기에 놀라웠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흑인 여성 운동을 대부분 지지하지 않았던 시기에 남성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프레더릭 더글러스, 20세기 W. E. B. 듀보이스 같은 인물이 있었다.

여성 권익 찾기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상태였다.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온 이후 1900년에 사회당이 창당될 무렵에서야 여성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사회당은 흑인의 근본적인 억압에 대한 것은 외면한 채 프롤레타리아 투쟁만을 외쳤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후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이 구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흑인의 특수 위치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가며 흑인 강간범에 대한 신화가 어떻게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지 궁금했다. 11장이 되어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이 책을 읽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었다.
노예제 시스템에서 매질과 더불어 강간은 흑인 여성과 남성을 모두 제어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였고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억압 무기였다. 남북전쟁 이전과 직후만 해도 흑인 강간범 신화의 사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1872년 KKK 같은 인종주의 자경집단들이 득세하면서 린치는 백인의 우월함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조치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린치는 남부의 백인 여성들을 성폭행한 흑인 남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방법으로 설명되고 합리화되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자기 여자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용인되었고 그 동기는 숭고함으로 포장되어 백인 여성을 강간한 흑인 남자들에게는 린치를 가해야 마땅하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억지 논리의 끝판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주의, 남성우월주의가 결합하며 흑인 강간범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몇 십년간 우생학의 선풍적인 인기도 이를 고착화시키는 데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쉽게도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어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게다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지배 체계인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는 탓에 성차별은 이어지고 폭력과 강간은 사라지지 않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노동에 몸담은 여성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하위에 있으면서 지배 당하고 가정에서는 주부로 착취 당한다.

앤절라 Y. 데이비스가 공산주의 운동에 투신한 이유도 결국 여성들의 불평등을 목도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궁극적으로 혁파되어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공산주의는 이제 더는 주요 체제가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흑인 여성 운동의 역사를 살펴 보고 그 과정에서 인종과 성별, 계급이 어떻게 엮이면서 진행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자의 입장에서 쓰였음은 감안해야겠지만(이 때만 해도 공산주의는 유효했으니까) 아주 유용한 읽기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2-11 2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바마가 집권 했을때 미국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트럼프의 극우, 인종주의가 가능했던걸 보며 의문이 많았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해소된것 같습니다. 화가님 수고하셨어요!^^

거리의화가 2023-02-12 08:55   좋아요 2 | URL
현 바이든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결국 자국의 이익을 위한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면... 자본과 권력, 힘의 논리는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이전의 여성 운동의 역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어요. 저도 상당 부분 궁금증이 해소된 것 같아요. 미미님도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다락방 2023-02-13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유용한 읽기 였다니 다행입니다. 리뷰중에 언급하신 흑인의 강간신화 부분은 저도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어느 페미니스트(기억이 잘 안나요)의 에세이에서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 유감을 표현한 걸 읽었었거든요. 왜 굳이 그 흑인이 누명쓴 것을 백인 여성에 대한 강간으로 골랐을까, 그래서 왜 ‘강간당했다고 거짓말한 여자‘를 만든걸까 하는거였죠. 저는 그 말이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거든요. 왜 하필 여자가 강간당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흑인에게 누명을 씌울까, 하고요. 그런데 오늘 거리의화가 님 이 리뷰를 읽다 보니 그게 흑인의 강간신화를 말하고자 했던 거였겠구나 싶어요.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2-13 14:26   좋아요 0 | URL
저는 흑인의 강간 신화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됐어요. 초반에 그걸 언급하길래 읭? 해서 궁금했는데 다행히 11장에서 완벽한 이해는 아니지만 기원을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종과 성별에 대한 차별은 어느 정도 인지했었지만 계급과의 연결 고리까지 거론해주어 앞으로 페미니즘 책 읽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원본 초한지 2 원본 초한지 2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사람이 말하기를 벼슬자리에 나가기는 어렵고 물러나기는 쉽다고 했다. 만약 나가기가 쉬우면 끝내 크게 쓰일 수 없을 터이니, 반드시 시작을 어렵게 해야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가볍게 보지 않으리라.'
등공은 한신의 겉모습이 평범하지 않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일찍이 들은 적이 있다. 본래 초나라 신하라 했는데, 어찌하여 천릿길을 멀다 하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인가? 틀림없이 까닭이 있을 것이다.' (26)
"아무개는 위험을 무릅쓰고 천릿길에 고통을 당하며 이곳으로 왔습니다. 만약 진실한 견해 없이 한 치 혀로만 큰소리를 치며 사람을 속인다면 이는 미치고 망령된 언행으로 죄를 짓는 일입니다. 여기 한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패왕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어린아이보다 못한 자일 뿐입니다. 어찌 그의 무예가 고금을 꿰뚫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현사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육도삼략』을 읽으셨습니까?"
"어찌 『육도삼략』만 읽었겠습니까?" (31)
한신도, 등공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등공은 초나라에 있던 한신이 한나라에 와서 자신을 보러 온 것에 의아함을 느꼈으나 그 속절을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했고, 한신도 시작을 쉽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어렵게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쉽게 써주지 않을 거라 미리부터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등공은 한신이 읊는 말과 『육도삼략』의 내용을 일일이 대조하였으나 단 한 글자도 틀리는 것이 없었다. 또 음양오행, 의술, 점술에 관한 책을 가져와서 한신의 말과 비교해보아도 틀림이 없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주제로 토론하였는데 조금의 착오도 없었다고 한다.

이미 등공은 한신에 대한 검증이 끝난 상태였고 그가 주선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둘은 초나라의 정벌에 대한 방략과 장수에 대한 도리를 논한다.
"장수에겐 다섯 가지 재능과 열 가지 허물이 있습니다. 이른바 다섯 가지 재능, 즉 오재(五才)는 지(智), 인(仁), 신(信), 용(勇), 충(忠)입니다. 지혜로우면 속일 수 없고, 어질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신의가 있으면 약속을 어기지 않고, 용기가 있으면 범할 수 없고, 충성스러우면 두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장수된 자는 이 다섯 가지 재능을 갖춘 연 후에야 장수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 가지 허물, 즉 십과(過)는 이렇습니다. 용기만 갖고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성격이 성급하여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탐욕에 젖어 이익만 좋아하는 것, 어진 마음만 있어서 차마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것, 지혜로우나 마음이 비겁한 것, 신의가 있으나 사람을 함부로 믿는 것, 깨끗함만 좋아하고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것, 꾀는 있지만 마음이 너무 느긋한 것, 성격이 강하여 자신의 계책만 사용하는 것, 마음이 유약하여 남에게 일을 맡기기 좋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장수에게 이 열 가지 허물이 있으면 장수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군사를 잘 거느리는 사람은 다섯 가지 재능은 갖추되, 열 가지 허물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격하여 격파하지 못할 적이 없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며, 도모하여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으므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어집니다." (40)
장수에 대한 오재와 십과는 당시 뿐 아니라 오늘날에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도 무리없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장수들도 5가지 재주를 모두 가진 이는 드물었다. 용기는 있지만 꾀가 없거나 꾀만 있고 용기가 없는 자,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하여 남들의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 등등. 사람을 잘 쓰는 것이 곧,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이 된다.
소하는 한신을 얻고 나서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신이 비범한 인물임을 인지하였기 때문에 한나라에 그가 들어오는 것이 큰 재산임을 알았던 것이다. 한나라 삼걸 중 둘은 그렇게 만났다. 사실 나는 나머지 한 사람인 장량도 유능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소하와 한신이 한나라에 있음으로 인해서 유방이 항우를 이기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은 재주꾼이자 탁월한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다.

한신은 드디어 한왕과 만난다. 하지만 한왕은 한신이 초나라에서 낮은 벼슬에 있었고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하고 한나라까지 온 만큼 그를 가벼이 보았다. 
치속도위가 된 한신은 결국 꾀를 내어 달아났고 소하는 그를 뒤쫓는다. 한신을 놓치는 순간 한나라에 큰 손실이다 생각한 소하는 그를 필사적으로 쫓았던 것이다. 소하는 한왕에게 그를 다시 데려가 보이고 그가 쓰임을 받지 못한 것은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며 제대로 된 자리에 등용해줄 것을 요청한다.
"지금 대왕마마께서 현인을 보고도 천거하지 않으시고 현인을 천거하고도 중용하지 않으시니 신이 밤낮으로 불안하게 생각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에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대왕마마께 말씀을 올립니다."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왕은 한신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다. 이에 한신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장량의 각서를 소하에게 내민다(필승의 전략? 한신은 참으로 언제가 적시인지 잘 아는구나). "한왕께서 이 각서를 보시면 진정으로 수많은 성과 맞먹는 보배를 얻었다고 생각하시며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71) 둘은 한왕을 만나 각서를 보였다. "경이 여러 번 한신을 천거했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소. 그런데 뜻밖에도 장자방도 각서로 천거했구려. 그를 천하의 호걸로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견해가 대략 같소. 이 점에서도 한신이 진실로 위대한 인재임을 알 수 있소. 짐은 소견이 어두워서 오랫동안 경의 충성스런 마음을 멀리했소. 짐은 오늘에야 비로소 그동안의 잘못을 알게 되었소! 한신을 바로 대장에 임명하라고 명령을 내려 천거한 뜻에 따르도록 하겠소." (72)

한신이 대장군이 되었지만 수하 장수들은 단번에 따르지 않았다. 번쾌는 이제 막 등용한 사람을, 그것도 한나라에 공적도 없는 장수에게 대장군의 자리가 맡겨진 것에 대해 불만이 컸다. 하지만 한신은 그를 결국 굴복시켰으며 부서진 잔도를 수리하는 공사의 지휘자로 임명하였다.

막상 현장에 가본 번쾌는 이것이 무척 어려운 공사임을 느꼈고 한왕에게 SOS를 청했다. 한신의 조언에 따라 장수인 강후 주발과 극포후 시무를 비롯하여 인부들이 대산관 관문으로 가 일부러 투항한다.
"우리는 보안군의 장정인데 한왕이 차출하여 잔도를 수리하게 했습니다. 온종일 먹을 것을 아무것도 못 받았습니다. 또 번쾌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매일 공사를 재촉하며 핍박했습니다. 게다가 잔도는 너무나 험한데도 한 달 안에 공사를 완료하라고 합니다. 또 한왕이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하자 군사들이 복종하지 않고 근래까지 많은 사람이 도망갔습니다. 원컨대 장군의 휘하에 투항하여 작은 공이라도 세우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밥만 배불리 먹여주신다면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먹겠습니까?"
한신은 한왕에게 출정을 요청한다. 아직 잔도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사들은 어떤 길로 나아갈 지 알 수 없어 모두들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이를 의도한 것이다.(너에게는 다 생각이 있구나!) "그것은 겉으로 잔도를 수리하는 체하여 장함이 대비하지 못하게 하려는 작전이오. 나는 진창도 오솔길로 진격하여 닷새도 되지 않아 대산관에 도착할 것이오. 그럼 장평은 우리 군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할 것이오. 이것이 바로 몰래 진창도로 나가는 계책이오. 대산관에 도착하는 날 바로 관문을 격파할 것이오. 그럼 대왕마마의 어가는 활과 화살을 쓰지 않고도 저절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오." (131)

한왕은 포중의 어른들에게 술과 밥을 대접한 뒤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소하로 하여금 포중에 남아 백성을 위로하고 구휼하게 함으로써 민심을 얻는다. 패왕 항우와 근본적으로 달랐던 점은 인재의 Pool의 차이도 있겠지만 덕과 사랑으로 백성의 마음을 끌어안았음에 있었다.



한신은 대산관을 깨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폐구를 공격하고 삼진을 평정한 뒤 함양까지 취하며 한나라군의 승리를 이끈다.
한신과 신기는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였으나 만나지 못하는 사이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고 신기는 노모와 산에서 지내며 살고 있었다. 신기는 한나라군이 잔도로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에서 기다렸고 드디어 한신과 만난다. 한신은 황금 100량을 노모에게 바쳤지만 신기는 감히 받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한왕께서 하사하신 예물이네. 아우가 어머니를 부양하는 자금으로 쓰라고 말일세. 아우는 이제 나를 따라가서 공을 세우고 어버이의 이름을 드날리면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곳은 노모께서 거처하실 만한 곳이 아닐세. 내가 군대의 인장을 찍은 문서를 써줄테니 노모와 식솔을 남정 승상부로 옮기게. 그곳에서 관가의 숙소 몇 칸을 마련해주고 매달 식량도 제공해줄 것이네. 여기보다는 훨씬 지내기 편할 것일세." (152)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쩌면 기본적인 '인'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신기가 설사 쓰임을 받고 싶었어도 노모가 걱정되서 섣불리 떠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고 그저 돈만 건네지 않고 살 곳을 마련해주고 먹을 것까지 해결해줌으로써 신기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이렇게 하여 신기도 한나라 군에 합류하게 되었고 대산관 싸움에서 선봉대 장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한나라 장수 주발과 시무는 잔도 수리 인부를 가장하여 대산관에 들어가 투항하여 초나라 장수로 가장하고 있었다. 한나라 군대가 대산관 앞에 당도한 뒤 화포 소리가 들리자 장평을 사로잡고 주발과 시무는 성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맞이하였다.

장함은 폐구에서 한나라 군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단단히 대비하라 일렀다. 하지만 그는 바보같이 한신이 계곡에 유인하는 대로 따라가고 만다. 이 틈에 한신의 군사는 성을 코 풀지 않고 들어가 차지했다. 한신은 장함이 성을 되찾기 위해 공격해 올 것을 짐작했다. "번쾌 장군과 시무 장군은 군사 3000을 이끌고 초나라 군사의 북쪽 길을 막으시오. 하후영 장군과 주발 장군은 군사 3000을 거느리고 초나라 군사의 남쪽 길을 막으시오. 본영의 군사는 모두 30리 뒤로 물러나 진채를 세우시오." 한신은 후군에 매복을 하게 하였다. 장함의 군사가 한나라 본영으로 쳐들어갔으나 적의 본진은 텅 비어 있었다. 속임수에 빠져든 것을 알았지만 늦었다. 화포와 화살의 쏟아지는 공격이 이어졌고 초나라 군사는 흩어져서 도망하였다. 장함은 화살에 맞았으나 장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였으나 남은 초나라 병사들은 모두 한군에 의해 학살당하고 만다. 한신은 장함을 뒤쫓아 그를 사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격이라고 병가에서도 궁지에 몰린 적을 추격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장수를 사로잡아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소탐대실이라고 작은 것을 탐하다 큰 일을 그르칠 수 있음을 그는 알았다.

한신은 폐구의 지형을 이용해 공격한다. "이 성 아래의 물길은 서북쪽에서 와서 동남쪽으로 감돌아 흐르는데, 물살이 매우 급하오. 장군은 군사 1000명을 데리고 가서 모래 가마니로 강물 입구를 막아 물이 흘러나가지 못하게 하시오. 막은 물길을 돌려 폐구로 흘러들게 하면 한 시진도 못 되어 폐구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오." (176) 수공으로 폐구를 물바다로 만들자 장함을 비롯한 장수들은 도망할 수 밖에 없었다. 막혔던 물이 빠지자 한왕은 폐구로 들어가서 백성을 위무했고 역양과 고노를 비롯한 각 군현을 평정하면서 삼진의 땅이 모두 한왕의 수중에 들어간다.

장함은 앞서서 대패하여 도림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신기와 시무 장군에게 퇴로를 차단당한데다 적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번쾌와 주발에게 쫓기기까지 한다. 더는 물러날 길이 없었던 그는 한신에게 잡혀서 명성을 더럽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지 자결한다. 한왕은 이 때도 백성들을 위무하며 함양성에 들어간다. "오늘 예기치 않게 다시 함양으로 오시니 이는 정말 우리 만민의 복입니다.!" 백성들은 양쪽으로 늘어서서 한왕을 환영했다고 한다.

사마앙이 한왕에게 사로잡혀 한나라에 귀의하고 하내가 함락된 소식을 듣자 패왕은 분노한다. 진평은 곁에서 참언했다가 파직당하고 황하를 건넜다 도적을 만나는 수모를 겪는다. 진평은 함양에 가서 친구인 위무기를 만난다. 위무기는 한왕에 기댈 것을 말하고 한왕에게 그를 추천한다. "초나라 진평이 폐하의 성덕을 깊이 사모하여 지금 초나라를 버리고 우리 한나라에 귀의했습니다. 신은 그의 옛 벗이라 평소부터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잡아두시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왕은 이전에 홍문을 진평 덕에 탈출할 수 있었기에 한 번은 만나고 싶어했고 또 투항까지 해왔으니 잘 됐다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해 묻는다. "그대는 위나라를 끝까지 섬기지 않고 초나라를 섬기러 갔고, 지금은 다시 나를 따르고 있소. 신의를 지키며 충직하게 사는 사람은 본래 이같이 행동하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여 등용해주느냐에만 따를 뿐입니다. 평소에 소문을 듣기로 대왕마마께서 능력에 따라 사람을 등용하신다기에 1000리를 멀다 하지 않고 달려와 대왕마마를 알현했습니다. 그러자 역시 대왕마마께서는 신을 등용해주셨습니다. (263) 제가 계획한 일 중에서 대왕마마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것이 있으면 그 계획을 써서 공적을 세우십시오. 그럼 대왕마마께선 잃으시는 것은 적고 얻으시는 것은 많을 것입니다." (264) 한왕은 진평의 말을 듣고 상을 내렸으며 호군중위로 삼은 뒤 여러 장수를 감독하게 하였다.

한왕은 연합군 병력이 56만에 이르자 동쪽으로 정벌을 나서는 것은 어떠하냐 고견을 묻는다. 하지만 들으려고 하는 의지는 없었고 자신의 의지를 감행하겠다 표현하고 이에 거역하면 듣지 않겠다며 고압적 자세를 보였다. 이는 사실상의 통보가 아니었나. 한신은 "대왕마마께선 관중과 관동을 얻었지만 아직 항왕과 싸워보지 않았습니다. 신이 항왕의 세력을 관찰해보건대 바야흐로 강성기에 들어섰습니다. 지금 제나라, 양나라와 분쟁하고 연나라, 조나라와 사단을 만들고 있으니 각국에서는 항왕의 힘이 분산되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내년까지 연장될 것이니 그때 대왕마마께서 북을 울리며 동쪽으로 진격하십시오. 적이 지친 틈을 타서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273~274) 이에 한왕은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공격을 주저하는 한신에 불만을 표시하며 때를 거스를 수 없다 판단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에 한신은 대원수의 자리를 포기하고 휘하 장수를 거느리고 함양으로 가 버린다.
한나라 동정은 감행되었고 서위의 위표를 대원수로 삼아 군대는 팽성으로 이동한다. 패왕은 위표에 쇠채찍 공격을 받아 본진으로 후퇴하고 한나라 군대는 군사 30여만 명이 살상되고 만다. 시신이 물길을 막아 수수가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 (284) 한신의 말을 듣지 않고 섣불리 공격을 감행한 한왕은 결국 대패하고 말았다.

한신을 내쫒은 뒤 대패를 겪은 한왕은 그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고심한다. 이 때 장량이 소하에게 계책을 내놓아 일을 진행한다. 함양의 성문에 남녀노소, 계급 막론하고 호구 조사를 한다는 방을 붙인다. 이 때문에 성안의 군사와 백성이 수수에서 패배한 한왕이 관중의 모든 군현을 패왕에게 바친 것이라고 수군댔다. 이 소식을 들은 한신이 소하를 만나 호구문서를 작성하게 하면 민심이 놀란다며 간언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한왕이 한신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장군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수수에서 패하고 말았소. 오늘 기쁘게도 이렇게 멀리서 와주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오." (316)

한신은 함양에 있는 동안 병거 수백 량을 만들어 초나라 정벌에 대비하고 있었다. '평탄한 땅에서는 병거로 싸울 수 있고, 험악한 산지에서는 보병으로 싸울 수 있고, 공격과 추격을 할 때는 기마병으로 싸울 수 있다.' 한신은 형양성의 평탄한 땅에서 이 병거를 이용하여 초나라 군사에 승리한다.

"신이 위나라를 정벌하면 패왕이 소식을 듣고 틀림없이 우리의 빈틈을 노려 형양을 공격할 것입니다. 장수들 중에서 왕릉에게 큰일을 맡길 만하니 그를 시켜 초나라 군사를 막으십시오. 그 사람은 지혜와 용기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무사히 형양을 지킬 것입니다." 한신은 한왕에게 이렇게 간언하였으나 왕릉의 모친이 초나라에 구금되어 있어 명령을 주저하였다. 그러나 왕릉의 모친은 현명한 분이라 괜찮을 것이라며 한신의 계획대로 진행된다. 한왕은 모사 숙손통을 초나라 진영으로 보내 왕릉의 모친을 만난다. "아들 왕릉이 어머니께서 고통을 당하신단 소식을 듣고 즉시 초나라에 투항하여 어머니를 만나 뵈려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거짓말일 수도 있으므로 한왕께서 아무개를 보내 노부인의 친필 서찰 몇 글자라도 얻어오게 했습니다. 그럼 그걸 보고 초나라에 투항하여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말입니다." (354) "한왕께선 어질고 도량이 넓으신 분이오. 부디 공은 돌아가 내 말을 왕릉에게 전해주시오. 한왕을 잘 섬기고 일찌감치 뛰어난 공훈을 세워 한나라의 명신이 되면 이 어미는 죽어도 산 것과 같다고 말이오." (355) 말을 마치고 왕릉의 모친은 자결했다. 지혜와 용기를 지닌 장수가 괜히 탄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어머니를 두었으니 왕릉은 믿을 만한 장수임이 증명된 게 아닐까.

한신은 대주 정벌에 나섰고 왕릉을 장수로 삼았다. 한왕은 태자로 하여금 관중을 지키면서 법령을 선포하고 군민을 단속하고 종묘사직을 세우도록 하였다. 소하는 왕명을 받들고 관중의 호구를 조사하고 조운을 이용하여 군량을 공급했다. 한나라 군사가 정벌에 나가서도 군량 문제가 없었던 것은 소하의 공로가 컸다. (364)

이어 한신은 배수진을 치고 정예병 10만을 나누어 조나라 공격을 감행해 격파하였다. 조나라가 무너지자 옆의 연나라 백성 뿐 아니라 연왕도 공포에 떨었다. 한신은 연왕에게 서찰을 보내 대세에 따르라는 서찰을 보낸다. 투항하면 백성의 목숨을 아끼게 될 것이고 왕직도 잃지 않고 봉토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결국 연왕은 투항 문서를 쓰는 것에서 나아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명령도 내렸다(한나라의 길에 제나라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패왕은 경솔하고 주변의 말을 잘 듣지 않은 단점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범증을 내쳐서 그가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신은 여러 해 동안 폐하를 섬기며 간담까지 쏟아부었는데, 어찌 감히 저들과 사통하겠습니까? 우리 군신의 불화를 조장하여 몰래 해치려는 계략이니 폐하께선 들으시면 안 됩니다." "우자기는 짐의 가까운 인척이고 이미 분명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가 어찌 거짓말을 할 리 있겠는가?" (396) 사실상 초나라의 귀재 중에는 범증만한 인물이 없었다. 유일한 귀재였다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를 놓쳤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쏙쏙 들어 믿는 패왕의 태도는 참 안일하다고 해야 할까.

초나라를 속이기 위해 기신이 한왕을 대신하여 거짓으로 항복하여 죽는다. 한왕은 대신 기신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 세 사람을 온전히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런 왕을 위해서 기신은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법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패왕은 기신을 불태워 죽이고 한나라 패잔병을 학살한 뒤 형양성을 탈출한 한왕을 뒤쫓는다.

초한지 2권은 한신에 의한, 한신을 위한 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3권은 드디어 한왕과 패왕의 대일전이 나온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2-11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신을 위한, 한신에 의한 역사이지만 그의 말년을 생각하면 권력의 무상함이 많이 느껴졌어요
민초로 사는 제가 행복할 정도로요^^

거리의화가 2023-02-11 19:04   좋아요 2 | URL
2권의 내용은 한신이 쓰임을 받는 역사가 나왔다면 결국 3권에는 권력자에 의해 버림받고 토사구팽되는 내용이 나오겠죠. 패왕에게만 충성하던 범증이 내쳐진 것처럼요. 이런 자리도 결국 권력자에 의해 선택받지 못하면 끝까지 갈 수 없는 것을 보면 비정하게 느껴집니다.

희선 2023-02-13 0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신이 나중에는 잘 안 되는군요 한신이 한왕을 위해 이것저것 하는데... 처음에 달아났을 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이런 건 생각하기 어렵겠습니다 역사는 바꾸지 못하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13 09:14   좋아요 1 | URL
권력자가 참모를 여럿 두지만 자기 듣기 좋은 말 하는 아첨꾼에게는 아무래도 더 귀를 기울이고 듣기 싫은 말 하는 사람 말은 점점 안 듣게 되잖아요. 결국 한신도 그런 식으로 버려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3권 읽고 있는데 점점 항우와 유방의 대결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다 아는 결말입니다만 그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
 
Wonder (Paperback, 미국판, International Edition) - 『아름다운 아이』원서
R. J. Palacio / Random House USA Inc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대 시절 이야기를 잘 읽지 못한다. 학창 시절은 내게 괴로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홈스쿨링을 하던 아이가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가 겪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야기 전개 방식이 1인칭이 아니라 같은 사건을 다양한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방식을 취했다. 이렇게 한 것은 일방적 방향의 서술을 지양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판단된다. 이는 책의 주제와도 관련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어떤 폭력이든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폭력은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가해자는 가볍게 던진 농담이나 신체적 학대가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모를 것이다. 나는 이를 실제로 겪었고 아주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겪었다. 지금도 때때로 괴로운 기억으로 올라오기도 하니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진도가 쑥쑥 나갔는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후부터는 읽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한 템포씩 쉬면서 읽어 내려갔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얼굴에 흉터가 있다고, 냄새가 난다고, 미의 기준에 떨어진다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고 쉽게 차별을 가한다. 타인이 자신과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Standard를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비켜서 있으면 그를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 있나.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는데 나의 생각을 옳다 여기고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 다정함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가해를 주지는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2-11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거리의화가님 피해자셨나요 ㅠㅠ 읽기 힘드셨겠습니다… 이런 책이 사람들에게 폭력을 지양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3-02-11 12:34   좋아요 3 | URL
피해의 강도가 있을 뿐 일상 생활 속에서 차별의 행위는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사실은 3점을 줄까 하다가 이런 책은 많이 읽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1점을 더했어요. 괭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2-11 09: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주말 ‘더 글로리‘ 란 넷플 드라마를 봤거든요. 너무 끔찍해서 내 삶이 피폐해지고, 무기력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것도 힘들고, 본 이후도 힘들더라구요.
이 책도 그러한 종류의 책이군요?
어휴~ 더욱 힘드셨겠습니다.
저런 쪽의 드라마든 책이든 자극적인 요소로 재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었음 싶은데, 그 효과는 얼마만큼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하더군요.
드라마의 후유증이 넘 컸네요.
차라리 책을 읽는 게 더 나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2-11 12:37   좋아요 4 | URL
저는 ‘더 글로리‘ 이런 드라마류 자체를 못보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이지만 사실 실상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테니까요. 저는 학교폭력 뿐 아니라 성폭력, 강간, 일상적인 차별과 배제 행위를 접할 때마다 분노하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다만 이런 매체를 통해서 이를 모방하는 것으로 이어질까 두려워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니까요. 나무님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3-02-12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어로 읽으셨군요 ~! 사람이 사람을 왜 괴롭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 저도 알게 모르게 제가 누군가에게 생각을 강요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이켜보게 되는군요~~

거리의화가 2023-02-13 09:11   좋아요 1 | URL
네^^; 한 달 넘게 붙잡고 있었네요ㅠㅠ 사실 영어 수준은 쉬운데 내용 때문에 좀 오래 걸렸습니다.
왕따, 따돌림 이런 장면 나올 때 답답해지더라구요. 그래도 공유하고 싶은 책입니다^^
 
원본 초한지 1 원본 초한지 1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한지는 초한 전쟁, 항우와 유방 간의 대결로 익히 알려져 있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책을 쓴 견위는 명나라 신종 때 민간에서 활동하던 문학가로 중국 민간에 전승되던 초한 쟁패의 이야기를 『서한연의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본화하였다. 그리고 명나라 말기에 『검소각비평동서한통속연의』가 간행되고 여기에 포함된 『검소각비평서한연의』가 유행하면서 '초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자리를 굳힌다. 여기서 '연의'라는 말을 쓴 것은 정사인 역사에 상상을 가미하여 풀어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1권은 조나라에 인질이 된 진나라 왕손 이인으로부터 시작한다. 장사꾼 여불위가 이인을 알아보고 사람과 각종 재화를 투자하고 여불위가 진나라로 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만나 부절을 나누어 이인을 후사로 세우기를 약속받은 뒤 다시 돌아온다. 여불위의 여인을 이인에게 주고 그들 사이에 정이 태어난다. 이인이 진으로 돌아오고 진시황이 황제에 오른 뒤에 여불위는 국상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지나친 욕심을 부렸던 탓에 스스로 목숨을 재촉한 끝에 자결의 운명을 맞는다.

초한지가 재밌어지기 시작하는 때는 장량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한다. 앞부분은 이를 위한 배경이자 전사에 불과하다. 진시황은 우여곡절 끝에 황제가 되었고 시시각각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서복을 시켜 신선을 찾게 하는 등 영생을 얻는 것에 집착하고 아방궁, 황릉 조성에 백성을 동원하는 등 신임을 잃으면서 진승과 오광을 시작으로 장량, 항량과 항우, 유방 등의 군사들이 일어서며 진의 수레바퀴는 기운다.

장량은 한나라에서 재상을 지냈는데 진시황이 한나라를 멸망시켰기 때문에(진은 한나라를 가장 먼저 멸망시키고, 이후 조->위->초->연->제를 차례로 멸망시키면서 전국을 통일하게 된다) 그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러다 마을에서 역사(장사)를 만난 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진시황이 양무현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장량은 역사로 하여금 수레를 공격하게 했으나 안타깝게도 일은 미수에 그치고 역사는 목숨을 잃는다.

진시황이 또 동쪽으로 순행을 떠났는데 회계성 사거리에서 어떤 소년 장사가 달려나와 칼로 자신을 공격했다. 이 때 한 노인이 황급히 제지하며 말했다.
"안 된다 대장부가 자손만대에까지 전해질 불후의 공적을 세워야지, 어찌 자객 따위의 행동을 본받으려 한단 말이냐?"
그러자 소년이 마침내 행동을 멈추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노인의 성은 항(項), 이름은 량(梁)이고, 소년의 성은 항(項), 이름은 적(籍)이으로 자는 우(羽)였다. (P141)
항량과 항우의 등장이다.

진시황은 민심도 잃었지만 주변에 있던 조고와 이사 같은 간신에 놀아났던 것도 국운울 기울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황제는 죽기 전 이사에게 부소를 임금으로 옹립하라는 유조를 내렸지만 조고는 이사를 조정하여 명령을 받들지 않는다.
조고가 이사에게 말하기를 "대장부는 하루라도 권력을 놓쳐서는 안 되오. 권력이 없으면 벼슬과 은총이 사라져서 몸이 위태롭게 되오. 저는 승상을 위해 유조를 고쳐 공자 호해를 옹립하려고 하는데 승상의 뜻은 어떤지 모르겠소." (P145)
결국 이사와 조고는 유조를 고친 뒤 형인 부소는 사약을 마셔 죽게 하고 동생인 호해를 왕위에 옹립한다.

초나라 항량은 회계성에서 군대를 일으키고 영포 등 힘센 장수들을 받아들이면서 세력을 키웠다. 항량은 이 때 모사 범증에 대한 명성을 듣고 그를 초빙한다.
"장군께서는 대대로 초나라를 보좌한 가문의 후예답게 이런 의거를 일으키셨으니 천하의 민의가 귀의하고 만민의 여망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군의 위엄과 무용이 미치는 곳이라면 어느 누가 기꺼이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범증의 방략과 대책은 모두 적절하고도 타당했다. 항량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들의 만남이 너무 늦었다고 탄식했다. (P179~180)

유방은 하후영, 번쾌 등 주요 장수 등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장량 일행과 의기 투합한다. 그리고 강렬한 만남 항량과 한신이 있었다.
항량은 처음에 한신의 용모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를 등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범증이 그의 비범한 기개를 보고 그를 등용할 것을 종용한다.
"이 사람은 외모가 깡말랐지만 가슴속에 뛰어난 지략을 품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을 내치면 현인들이 귀의할 길이 막힐까 두렵습니다." 항량은 범증의 말에 따라 한신을 막하에서 명령에 따르게 했다. (P189) 한신은 가난하게 살아서 갖은 모욕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시비 거는 이를 공격할 수 없어 바지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일도 있었다.

조고의 횡포로 나날이 기울어가는 진나라였으나 그럼에도 장함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그대가 대장의 몸으로 저들을 쓸어버리지 않고 좌시하다가 마침내 반란군이 창궐하면 아마도 이곳 진나라 땅으로 쳐들어와 도성까지 뒤흔들 것이오. 그때 가서 후회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소?" 장함이 말했다. "이제 바야흐로 상소문을 올리고 출정하려던 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승상께서 대책을 논의하려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출병은 신속함을 귀하게 여기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당장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P191) 이사를 죽이고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조고였는데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니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장함, 사마흔, 동예, 이유 등 정예병 30만을 꾸린 진나라 군대도 출정하게 된다.

진나라 군대는 초나라 군대에 맞서 싸웠으나 패하여 세 갈래로 갈라져 장함은 정도로 달아나고, 사마흔과 동예는 복양, 이유는 옹구로 달아난다. 장함은 정도에 들어가 군사를 주둔한 뒤 성을 지키며 영포와 싸우려 하지 않았다. 지연 전략이었다. 하지만 항량은 영포가 공격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다 생각하여 꾸짖는다. 이후 억지로 공격을 했다가 대패하자 항량은 초조해진다. 이 때 한신과 송의 등이 간언을 하였다.
"나는 회계에서 군사를 일으킨 이래 가는 곳마다 적수가 없었다. 이까짓 외로운 성 하나를 쳐부수는 것이 무에 어려울 게 있겠느냐? 장함은 내 이름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인데, 어찌 감히 성을 나와 우리 진채를 칠 수 있겠느냐?" (P198) 그날 밤 장함은 장졸들을 배불리 먹이고 나무 막대를 입에 물린 채 성문을 열었다. 그는 삼군을 통솔하고 몰래 두 길로 나누어 초나라 진채로 쳐들어갔다. ... 이때 항량은 이미 술에 취해 일어날 수 없었다. (P199) 부하들의 고언은 외면한 채 안일함에 빠져 술에 취해 자고 있던 항량은 상대의 칼에 참수되는 운명을 맞고 만다.
물론 이후 항우가 장함을 무찌르기는 한다. 진나라 군대가 연이어 대패하고 물러설 곳이 없게 된 장함은 항우에게 눈물을 흘리며 받아달라 간청한다.

마침내 진나라 수도 황궁까지 들어오게 된 유방은 황제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전각의 웅장함과 규모의 방대함과 화려함에 놀란다. 패공은 진나라 궁궐의 화려한 휘장, 명마, 명견, 보옥, 비빈과 미희 1000여 명을 보고 그곳에 거주하고 싶어하며 휘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진나라의 부귀가 이런 경지에까지 이르렀구려! 내가 이제 이곳에 거주하며 민심을 편안하게 하면서 제후들이 서로 쟁탈하지 못하게 하고 싶소." (P279) 이 때 휘하 장수 번쾌와 장량, 소하가 직간하여 본인의 생각을 내려놓는다. 휘하에 이런 인물들이 있다는 것은 유방에게 큰 재산이었다. 만약 이 때 눈치 보며 간언해주는 이가 없었다면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방이 먼저 관중에 도착했으므로 초 회왕의 유지에 따르면 본래 항우는 패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항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지 않으면 뒷날 우환이 될 것이라며 세 가지 계책을 내놓았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범증은 유방을 죽일 장사, 항장을 만난다. 그는 항우의 친척이었다. 범증은 귓속말로 항장에게 말했다. "주군은 사람됨이 성격은 강하지만 결단력이 없다. 오늘 유방을 놓아주면 뒷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다. 너는 칼춤을 추며 즐기는 척하다가 유방을 죽여라. 그럼 너는 큰 공을 세우게 된다." (P315) 장량은 항장의 칼춤을 보고 패공을 죽일 의도가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황급히 눈을 들어 항백을 쳐다보았다. 항백은 칼을 들고 항장에 맞서 칼춤을 추며 줄곧 자신의 몸으로 패공을 보호하려 했다. 범증은 항백을 깊이 원망했고 장량은 사태가 위급하다고 보았다. (P316) "그대는 누구를 위해 죽으려 하는가? "진나라는 범과 늑대의 마음을 가지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사람을 죽였고, ...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끼어든 것은 첫째 목이 말라서이고, 둘째 패공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것입니다." 항우는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고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패공에게 이런 참승이 있다니."(P320) 범증의 계획은 이로써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항우 곁에는 많은 장수들이 있었지만 범증 말고는 모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아무튼 항우는 초 회왕과의 약속을 어기고 서초 패왕에 등극한다. "나는 초 땅에서 태어났고, 회수(淮) 이북은 서초(楚)가 되므로 여러 신료께서 조서를 초하여 나를 서초 패왕으로 삼아 천하에 반포하도록 하시오." (P346) 유방은 한왕에 봉해진다.

1권의 마지막에서 한신은 항우를 떠나 유방에게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항우는 서초 패왕에 등극했으나 의제를 죽이고 팽성으로 천도하기 위해 무리하여 점점 인심을 잃는 등 스스로의 위치를 좁게 만든다. 주변의 모사들이 떠나는 것은 분명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2-04 2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초한지에는 장량이 있어야 재밌어지죠. ㅎㅎ

거리의화가 2023-02-05 07:38   좋아요 0 | URL
초한지를 드라마로만 봤었고 소설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정말 재밌네요~ㅎㅎㅎ 장량부터 온갖 인물들이 등장해서 전략 짜고 사람들과 회합하고 다투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하더군요. 이후 과정도 재미날 것 같습니다ㅎㅎㅎ

희선 2023-02-05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나라 왕이라면 자기만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두루두루 살피고 백성을 생각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신하 마음이 떠나겠습니다 왕이 신하를 잘 보고 뽑아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겠네요 왕이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옳은 말을 못 들을 때도 있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05 07:40   좋아요 0 | URL
왕이 스스로 중심을 못 잡으니까 주변에 간신들의 소리만 들어오는 것도 있는 것 같구요. 궁궐 짓고 공사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무리하게 천도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백성들이 힘들었겠다 생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면 망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