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초한지 2 원본 초한지 2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사람이 말하기를 벼슬자리에 나가기는 어렵고 물러나기는 쉽다고 했다. 만약 나가기가 쉬우면 끝내 크게 쓰일 수 없을 터이니, 반드시 시작을 어렵게 해야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가볍게 보지 않으리라.'
등공은 한신의 겉모습이 평범하지 않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일찍이 들은 적이 있다. 본래 초나라 신하라 했는데, 어찌하여 천릿길을 멀다 하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인가? 틀림없이 까닭이 있을 것이다.' (26)
"아무개는 위험을 무릅쓰고 천릿길에 고통을 당하며 이곳으로 왔습니다. 만약 진실한 견해 없이 한 치 혀로만 큰소리를 치며 사람을 속인다면 이는 미치고 망령된 언행으로 죄를 짓는 일입니다. 여기 한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패왕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어린아이보다 못한 자일 뿐입니다. 어찌 그의 무예가 고금을 꿰뚫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현사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육도삼략』을 읽으셨습니까?"
"어찌 『육도삼략』만 읽었겠습니까?" (31)
한신도, 등공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등공은 초나라에 있던 한신이 한나라에 와서 자신을 보러 온 것에 의아함을 느꼈으나 그 속절을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했고, 한신도 시작을 쉽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어렵게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쉽게 써주지 않을 거라 미리부터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등공은 한신이 읊는 말과 『육도삼략』의 내용을 일일이 대조하였으나 단 한 글자도 틀리는 것이 없었다. 또 음양오행, 의술, 점술에 관한 책을 가져와서 한신의 말과 비교해보아도 틀림이 없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주제로 토론하였는데 조금의 착오도 없었다고 한다.

이미 등공은 한신에 대한 검증이 끝난 상태였고 그가 주선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둘은 초나라의 정벌에 대한 방략과 장수에 대한 도리를 논한다.
"장수에겐 다섯 가지 재능과 열 가지 허물이 있습니다. 이른바 다섯 가지 재능, 즉 오재(五才)는 지(智), 인(仁), 신(信), 용(勇), 충(忠)입니다. 지혜로우면 속일 수 없고, 어질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신의가 있으면 약속을 어기지 않고, 용기가 있으면 범할 수 없고, 충성스러우면 두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장수된 자는 이 다섯 가지 재능을 갖춘 연 후에야 장수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 가지 허물, 즉 십과(過)는 이렇습니다. 용기만 갖고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성격이 성급하여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탐욕에 젖어 이익만 좋아하는 것, 어진 마음만 있어서 차마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것, 지혜로우나 마음이 비겁한 것, 신의가 있으나 사람을 함부로 믿는 것, 깨끗함만 좋아하고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것, 꾀는 있지만 마음이 너무 느긋한 것, 성격이 강하여 자신의 계책만 사용하는 것, 마음이 유약하여 남에게 일을 맡기기 좋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장수에게 이 열 가지 허물이 있으면 장수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군사를 잘 거느리는 사람은 다섯 가지 재능은 갖추되, 열 가지 허물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격하여 격파하지 못할 적이 없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며, 도모하여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으므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어집니다." (40)
장수에 대한 오재와 십과는 당시 뿐 아니라 오늘날에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도 무리없이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장수들도 5가지 재주를 모두 가진 이는 드물었다. 용기는 있지만 꾀가 없거나 꾀만 있고 용기가 없는 자,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하여 남들의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 등등. 사람을 잘 쓰는 것이 곧,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이 된다.
소하는 한신을 얻고 나서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신이 비범한 인물임을 인지하였기 때문에 한나라에 그가 들어오는 것이 큰 재산임을 알았던 것이다. 한나라 삼걸 중 둘은 그렇게 만났다. 사실 나는 나머지 한 사람인 장량도 유능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소하와 한신이 한나라에 있음으로 인해서 유방이 항우를 이기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은 재주꾼이자 탁월한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다.

한신은 드디어 한왕과 만난다. 하지만 한왕은 한신이 초나라에서 낮은 벼슬에 있었고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하고 한나라까지 온 만큼 그를 가벼이 보았다. 
치속도위가 된 한신은 결국 꾀를 내어 달아났고 소하는 그를 뒤쫓는다. 한신을 놓치는 순간 한나라에 큰 손실이다 생각한 소하는 그를 필사적으로 쫓았던 것이다. 소하는 한왕에게 그를 다시 데려가 보이고 그가 쓰임을 받지 못한 것은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며 제대로 된 자리에 등용해줄 것을 요청한다.
"지금 대왕마마께서 현인을 보고도 천거하지 않으시고 현인을 천거하고도 중용하지 않으시니 신이 밤낮으로 불안하게 생각하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에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대왕마마께 말씀을 올립니다."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왕은 한신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다. 이에 한신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장량의 각서를 소하에게 내민다(필승의 전략? 한신은 참으로 언제가 적시인지 잘 아는구나). "한왕께서 이 각서를 보시면 진정으로 수많은 성과 맞먹는 보배를 얻었다고 생각하시며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71) 둘은 한왕을 만나 각서를 보였다. "경이 여러 번 한신을 천거했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소. 그런데 뜻밖에도 장자방도 각서로 천거했구려. 그를 천하의 호걸로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견해가 대략 같소. 이 점에서도 한신이 진실로 위대한 인재임을 알 수 있소. 짐은 소견이 어두워서 오랫동안 경의 충성스런 마음을 멀리했소. 짐은 오늘에야 비로소 그동안의 잘못을 알게 되었소! 한신을 바로 대장에 임명하라고 명령을 내려 천거한 뜻에 따르도록 하겠소." (72)

한신이 대장군이 되었지만 수하 장수들은 단번에 따르지 않았다. 번쾌는 이제 막 등용한 사람을, 그것도 한나라에 공적도 없는 장수에게 대장군의 자리가 맡겨진 것에 대해 불만이 컸다. 하지만 한신은 그를 결국 굴복시켰으며 부서진 잔도를 수리하는 공사의 지휘자로 임명하였다.

막상 현장에 가본 번쾌는 이것이 무척 어려운 공사임을 느꼈고 한왕에게 SOS를 청했다. 한신의 조언에 따라 장수인 강후 주발과 극포후 시무를 비롯하여 인부들이 대산관 관문으로 가 일부러 투항한다.
"우리는 보안군의 장정인데 한왕이 차출하여 잔도를 수리하게 했습니다. 온종일 먹을 것을 아무것도 못 받았습니다. 또 번쾌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매일 공사를 재촉하며 핍박했습니다. 게다가 잔도는 너무나 험한데도 한 달 안에 공사를 완료하라고 합니다. 또 한왕이 한신을 대장으로 임명하자 군사들이 복종하지 않고 근래까지 많은 사람이 도망갔습니다. 원컨대 장군의 휘하에 투항하여 작은 공이라도 세우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밥만 배불리 먹여주신다면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먹겠습니까?"
한신은 한왕에게 출정을 요청한다. 아직 잔도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사들은 어떤 길로 나아갈 지 알 수 없어 모두들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이를 의도한 것이다.(너에게는 다 생각이 있구나!) "그것은 겉으로 잔도를 수리하는 체하여 장함이 대비하지 못하게 하려는 작전이오. 나는 진창도 오솔길로 진격하여 닷새도 되지 않아 대산관에 도착할 것이오. 그럼 장평은 우리 군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할 것이오. 이것이 바로 몰래 진창도로 나가는 계책이오. 대산관에 도착하는 날 바로 관문을 격파할 것이오. 그럼 대왕마마의 어가는 활과 화살을 쓰지 않고도 저절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오." (131)

한왕은 포중의 어른들에게 술과 밥을 대접한 뒤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소하로 하여금 포중에 남아 백성을 위로하고 구휼하게 함으로써 민심을 얻는다. 패왕 항우와 근본적으로 달랐던 점은 인재의 Pool의 차이도 있겠지만 덕과 사랑으로 백성의 마음을 끌어안았음에 있었다.



한신은 대산관을 깨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폐구를 공격하고 삼진을 평정한 뒤 함양까지 취하며 한나라군의 승리를 이끈다.
한신과 신기는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였으나 만나지 못하는 사이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고 신기는 노모와 산에서 지내며 살고 있었다. 신기는 한나라군이 잔도로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에서 기다렸고 드디어 한신과 만난다. 한신은 황금 100량을 노모에게 바쳤지만 신기는 감히 받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한왕께서 하사하신 예물이네. 아우가 어머니를 부양하는 자금으로 쓰라고 말일세. 아우는 이제 나를 따라가서 공을 세우고 어버이의 이름을 드날리면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곳은 노모께서 거처하실 만한 곳이 아닐세. 내가 군대의 인장을 찍은 문서를 써줄테니 노모와 식솔을 남정 승상부로 옮기게. 그곳에서 관가의 숙소 몇 칸을 마련해주고 매달 식량도 제공해줄 것이네. 여기보다는 훨씬 지내기 편할 것일세." (152)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쩌면 기본적인 '인'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신기가 설사 쓰임을 받고 싶었어도 노모가 걱정되서 섣불리 떠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고 그저 돈만 건네지 않고 살 곳을 마련해주고 먹을 것까지 해결해줌으로써 신기의 마음을 가볍게 했다. 이렇게 하여 신기도 한나라 군에 합류하게 되었고 대산관 싸움에서 선봉대 장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한나라 장수 주발과 시무는 잔도 수리 인부를 가장하여 대산관에 들어가 투항하여 초나라 장수로 가장하고 있었다. 한나라 군대가 대산관 앞에 당도한 뒤 화포 소리가 들리자 장평을 사로잡고 주발과 시무는 성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맞이하였다.

장함은 폐구에서 한나라 군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단단히 대비하라 일렀다. 하지만 그는 바보같이 한신이 계곡에 유인하는 대로 따라가고 만다. 이 틈에 한신의 군사는 성을 코 풀지 않고 들어가 차지했다. 한신은 장함이 성을 되찾기 위해 공격해 올 것을 짐작했다. "번쾌 장군과 시무 장군은 군사 3000을 이끌고 초나라 군사의 북쪽 길을 막으시오. 하후영 장군과 주발 장군은 군사 3000을 거느리고 초나라 군사의 남쪽 길을 막으시오. 본영의 군사는 모두 30리 뒤로 물러나 진채를 세우시오." 한신은 후군에 매복을 하게 하였다. 장함의 군사가 한나라 본영으로 쳐들어갔으나 적의 본진은 텅 비어 있었다. 속임수에 빠져든 것을 알았지만 늦었다. 화포와 화살의 쏟아지는 공격이 이어졌고 초나라 군사는 흩어져서 도망하였다. 장함은 화살에 맞았으나 장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였으나 남은 초나라 병사들은 모두 한군에 의해 학살당하고 만다. 한신은 장함을 뒤쫓아 그를 사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격이라고 병가에서도 궁지에 몰린 적을 추격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장수를 사로잡아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소탐대실이라고 작은 것을 탐하다 큰 일을 그르칠 수 있음을 그는 알았다.

한신은 폐구의 지형을 이용해 공격한다. "이 성 아래의 물길은 서북쪽에서 와서 동남쪽으로 감돌아 흐르는데, 물살이 매우 급하오. 장군은 군사 1000명을 데리고 가서 모래 가마니로 강물 입구를 막아 물이 흘러나가지 못하게 하시오. 막은 물길을 돌려 폐구로 흘러들게 하면 한 시진도 못 되어 폐구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오." (176) 수공으로 폐구를 물바다로 만들자 장함을 비롯한 장수들은 도망할 수 밖에 없었다. 막혔던 물이 빠지자 한왕은 폐구로 들어가서 백성을 위무했고 역양과 고노를 비롯한 각 군현을 평정하면서 삼진의 땅이 모두 한왕의 수중에 들어간다.

장함은 앞서서 대패하여 도림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신기와 시무 장군에게 퇴로를 차단당한데다 적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번쾌와 주발에게 쫓기기까지 한다. 더는 물러날 길이 없었던 그는 한신에게 잡혀서 명성을 더럽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지 자결한다. 한왕은 이 때도 백성들을 위무하며 함양성에 들어간다. "오늘 예기치 않게 다시 함양으로 오시니 이는 정말 우리 만민의 복입니다.!" 백성들은 양쪽으로 늘어서서 한왕을 환영했다고 한다.

사마앙이 한왕에게 사로잡혀 한나라에 귀의하고 하내가 함락된 소식을 듣자 패왕은 분노한다. 진평은 곁에서 참언했다가 파직당하고 황하를 건넜다 도적을 만나는 수모를 겪는다. 진평은 함양에 가서 친구인 위무기를 만난다. 위무기는 한왕에 기댈 것을 말하고 한왕에게 그를 추천한다. "초나라 진평이 폐하의 성덕을 깊이 사모하여 지금 초나라를 버리고 우리 한나라에 귀의했습니다. 신은 그의 옛 벗이라 평소부터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잡아두시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왕은 이전에 홍문을 진평 덕에 탈출할 수 있었기에 한 번은 만나고 싶어했고 또 투항까지 해왔으니 잘 됐다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해 묻는다. "그대는 위나라를 끝까지 섬기지 않고 초나라를 섬기러 갔고, 지금은 다시 나를 따르고 있소. 신의를 지키며 충직하게 사는 사람은 본래 이같이 행동하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여 등용해주느냐에만 따를 뿐입니다. 평소에 소문을 듣기로 대왕마마께서 능력에 따라 사람을 등용하신다기에 1000리를 멀다 하지 않고 달려와 대왕마마를 알현했습니다. 그러자 역시 대왕마마께서는 신을 등용해주셨습니다. (263) 제가 계획한 일 중에서 대왕마마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것이 있으면 그 계획을 써서 공적을 세우십시오. 그럼 대왕마마께선 잃으시는 것은 적고 얻으시는 것은 많을 것입니다." (264) 한왕은 진평의 말을 듣고 상을 내렸으며 호군중위로 삼은 뒤 여러 장수를 감독하게 하였다.

한왕은 연합군 병력이 56만에 이르자 동쪽으로 정벌을 나서는 것은 어떠하냐 고견을 묻는다. 하지만 들으려고 하는 의지는 없었고 자신의 의지를 감행하겠다 표현하고 이에 거역하면 듣지 않겠다며 고압적 자세를 보였다. 이는 사실상의 통보가 아니었나. 한신은 "대왕마마께선 관중과 관동을 얻었지만 아직 항왕과 싸워보지 않았습니다. 신이 항왕의 세력을 관찰해보건대 바야흐로 강성기에 들어섰습니다. 지금 제나라, 양나라와 분쟁하고 연나라, 조나라와 사단을 만들고 있으니 각국에서는 항왕의 힘이 분산되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내년까지 연장될 것이니 그때 대왕마마께서 북을 울리며 동쪽으로 진격하십시오. 적이 지친 틈을 타서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273~274) 이에 한왕은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공격을 주저하는 한신에 불만을 표시하며 때를 거스를 수 없다 판단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에 한신은 대원수의 자리를 포기하고 휘하 장수를 거느리고 함양으로 가 버린다.
한나라 동정은 감행되었고 서위의 위표를 대원수로 삼아 군대는 팽성으로 이동한다. 패왕은 위표에 쇠채찍 공격을 받아 본진으로 후퇴하고 한나라 군대는 군사 30여만 명이 살상되고 만다. 시신이 물길을 막아 수수가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 (284) 한신의 말을 듣지 않고 섣불리 공격을 감행한 한왕은 결국 대패하고 말았다.

한신을 내쫒은 뒤 대패를 겪은 한왕은 그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고심한다. 이 때 장량이 소하에게 계책을 내놓아 일을 진행한다. 함양의 성문에 남녀노소, 계급 막론하고 호구 조사를 한다는 방을 붙인다. 이 때문에 성안의 군사와 백성이 수수에서 패배한 한왕이 관중의 모든 군현을 패왕에게 바친 것이라고 수군댔다. 이 소식을 들은 한신이 소하를 만나 호구문서를 작성하게 하면 민심이 놀란다며 간언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한왕이 한신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장군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수수에서 패하고 말았소. 오늘 기쁘게도 이렇게 멀리서 와주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오." (316)

한신은 함양에 있는 동안 병거 수백 량을 만들어 초나라 정벌에 대비하고 있었다. '평탄한 땅에서는 병거로 싸울 수 있고, 험악한 산지에서는 보병으로 싸울 수 있고, 공격과 추격을 할 때는 기마병으로 싸울 수 있다.' 한신은 형양성의 평탄한 땅에서 이 병거를 이용하여 초나라 군사에 승리한다.

"신이 위나라를 정벌하면 패왕이 소식을 듣고 틀림없이 우리의 빈틈을 노려 형양을 공격할 것입니다. 장수들 중에서 왕릉에게 큰일을 맡길 만하니 그를 시켜 초나라 군사를 막으십시오. 그 사람은 지혜와 용기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무사히 형양을 지킬 것입니다." 한신은 한왕에게 이렇게 간언하였으나 왕릉의 모친이 초나라에 구금되어 있어 명령을 주저하였다. 그러나 왕릉의 모친은 현명한 분이라 괜찮을 것이라며 한신의 계획대로 진행된다. 한왕은 모사 숙손통을 초나라 진영으로 보내 왕릉의 모친을 만난다. "아들 왕릉이 어머니께서 고통을 당하신단 소식을 듣고 즉시 초나라에 투항하여 어머니를 만나 뵈려 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거짓말일 수도 있으므로 한왕께서 아무개를 보내 노부인의 친필 서찰 몇 글자라도 얻어오게 했습니다. 그럼 그걸 보고 초나라에 투항하여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말입니다." (354) "한왕께선 어질고 도량이 넓으신 분이오. 부디 공은 돌아가 내 말을 왕릉에게 전해주시오. 한왕을 잘 섬기고 일찌감치 뛰어난 공훈을 세워 한나라의 명신이 되면 이 어미는 죽어도 산 것과 같다고 말이오." (355) 말을 마치고 왕릉의 모친은 자결했다. 지혜와 용기를 지닌 장수가 괜히 탄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어머니를 두었으니 왕릉은 믿을 만한 장수임이 증명된 게 아닐까.

한신은 대주 정벌에 나섰고 왕릉을 장수로 삼았다. 한왕은 태자로 하여금 관중을 지키면서 법령을 선포하고 군민을 단속하고 종묘사직을 세우도록 하였다. 소하는 왕명을 받들고 관중의 호구를 조사하고 조운을 이용하여 군량을 공급했다. 한나라 군사가 정벌에 나가서도 군량 문제가 없었던 것은 소하의 공로가 컸다. (364)

이어 한신은 배수진을 치고 정예병 10만을 나누어 조나라 공격을 감행해 격파하였다. 조나라가 무너지자 옆의 연나라 백성 뿐 아니라 연왕도 공포에 떨었다. 한신은 연왕에게 서찰을 보내 대세에 따르라는 서찰을 보낸다. 투항하면 백성의 목숨을 아끼게 될 것이고 왕직도 잃지 않고 봉토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결국 연왕은 투항 문서를 쓰는 것에서 나아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명령도 내렸다(한나라의 길에 제나라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패왕은 경솔하고 주변의 말을 잘 듣지 않은 단점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범증을 내쳐서 그가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신은 여러 해 동안 폐하를 섬기며 간담까지 쏟아부었는데, 어찌 감히 저들과 사통하겠습니까? 우리 군신의 불화를 조장하여 몰래 해치려는 계략이니 폐하께선 들으시면 안 됩니다." "우자기는 짐의 가까운 인척이고 이미 분명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가 어찌 거짓말을 할 리 있겠는가?" (396) 사실상 초나라의 귀재 중에는 범증만한 인물이 없었다. 유일한 귀재였다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를 놓쳤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쏙쏙 들어 믿는 패왕의 태도는 참 안일하다고 해야 할까.

초나라를 속이기 위해 기신이 한왕을 대신하여 거짓으로 항복하여 죽는다. 한왕은 대신 기신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 세 사람을 온전히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런 왕을 위해서 기신은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법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패왕은 기신을 불태워 죽이고 한나라 패잔병을 학살한 뒤 형양성을 탈출한 한왕을 뒤쫓는다.

초한지 2권은 한신에 의한, 한신을 위한 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3권은 드디어 한왕과 패왕의 대일전이 나온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2-11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신을 위한, 한신에 의한 역사이지만 그의 말년을 생각하면 권력의 무상함이 많이 느껴졌어요
민초로 사는 제가 행복할 정도로요^^

거리의화가 2023-02-11 19:04   좋아요 2 | URL
2권의 내용은 한신이 쓰임을 받는 역사가 나왔다면 결국 3권에는 권력자에 의해 버림받고 토사구팽되는 내용이 나오겠죠. 패왕에게만 충성하던 범증이 내쳐진 것처럼요. 이런 자리도 결국 권력자에 의해 선택받지 못하면 끝까지 갈 수 없는 것을 보면 비정하게 느껴집니다.

희선 2023-02-13 0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신이 나중에는 잘 안 되는군요 한신이 한왕을 위해 이것저것 하는데... 처음에 달아났을 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이런 건 생각하기 어렵겠습니다 역사는 바꾸지 못하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13 09:14   좋아요 1 | URL
권력자가 참모를 여럿 두지만 자기 듣기 좋은 말 하는 아첨꾼에게는 아무래도 더 귀를 기울이고 듣기 싫은 말 하는 사람 말은 점점 안 듣게 되잖아요. 결국 한신도 그런 식으로 버려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3권 읽고 있는데 점점 항우와 유방의 대결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다 아는 결말입니다만 그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